甲과 멘토'는 다르지 않다.

 

 

 

옛날 조폭은 사시미칼 들고 싸웠다.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은 떼로 몰려다닌다고 했던가 ? ( 웃자고 한 소리다. ) 휠라'를 입고 일수 가방을 손에 든 남자는 대부분 조폭이었다. 오셨습니까, 행님 ! 조폭 세계에서 乙은 느닷없이 하와이 가라고 하면 가야 하는 존재이다.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말할 때는 이미 乙이 아니다. 하와이는 조선 시대 흑산도'다. 수많은 乙들이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서 귀양'을 갔던 그 흑산도 말이다. < 넘버 3 > 의 송강호가 증명했듯이 조폭 세계는 甲이이라는 이미지의 과잉'이다. 갑과 을이 명확한 세계가 바로 조폭이다. 그들에게는 딱 두 가지다. 현정화와 임춘애. 갑이 현정화라면 현정화인 거다. 을이 " 임춘애입니다, 행님 ! " 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녀석은 존나게 맞게 된다. 조폭은 그런 놈들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다.

 

 

그런데 조폭'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 이상 사시미칼을 들고, 떼 지어 몰려다니지 않는다. 휠라 대신 아르마니'를 입었다.뭔가 바뀌긴 바뀌었다. 그런데 조폭의 우아하며 동시에 이상한 세계'를 변화'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진화한 것이지 변화한 것이 아니다. 휠라 입은 조폭이나 아르마니 입은 조폭이나 다른 것은 없다. 폭력의 논리'로 타인의 재물을 불법적으로 빼앗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하나다, 라는 뜻이다. 인간이란 자기합리화의 달인이어서 박정희와 (몇몇) 강철군화들은 君을 軍으로 이해하기도 했고, 또 몇몇 양아치'는 頭'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통일된다. 甲'이다 !

 

 

 

< 갑 > 을 다른 말로 하면 명령하는 주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갑의 커뮤니티에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 닥치고 내 말 들어 ! " 오로지 명령과 지적과 충고'가 있을 뿐이다. 현대의 조폭이 휠라에서 아르마니로, 순금 목걸이에서 넥타이로 진화를 모색했다면, 갑'은 색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며 자신의 정체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보다 극단적이며 극적이다. 변화보다는 변장'에 가까운 허물 벗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재수없는 君, 軍, 頭 '는 어떤 식으로 변신했을까 ? 궁금하신가 ? 정말 궁금하신가 ?! 궁금하면 500원.

 

 

< 신화 > 의 핵심'은 변신'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뿐만 아니라 각 나라의 건국신화는 변신'이 핵심이었다. 멀리 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 조선 호랑이는 부실한 반찬에 성질이 뻗쳐서 밥상 엎고 김밥천국으로 달려갔고, 조선 곰은 견디어서 고조선 천년왕국의 시조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참는냐 못 참느냐에 따라서 누구는 김밥천국의 다꽝이 되고, 누구는 천년왕국의 대빵'이 된다. 모든 것은 한 끗 차이'다. 이 한 끗이라는 아슬아슬한 간극은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 " 이라는 유행가 가사로 설명된다.

 

 

 

여기서 님'은 나와 너를 동일시하는 사랑의 욕망이고, 남'은 나와 너를 확연하게 차이를 만들고자 하는 미움의 욕망이다. 사랑에 눈이 멀면 님이며, 미워하면 남이 된다. 하이데거나 들뢰즈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들이 말하는 < 동일성과 차이 > 를 쉽게 풀면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인생사 " 다. 이 얼마나 쉽고 간결한가 ! 독일에 위대한 하이데거라는 철학자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김명애'라는 가수가 있다. 하이데거와 들뢰즈'가 나오니 복잡하신가. 독자여, 지루하신가 ? 대한민국 티븨 드라마에 빠져서 머리가 똥이 된 독자여. 좋다, 쉽게 가자 ! 님과 남이라는 아슬아슬한 한 끗'은 " 변신 " 이라는 현상에 대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변신의 핵심은 A에서 B 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A에서 약간 다른 A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김명애'라는 가수가 말한 < 님과 남 > 은 동일인물이다. 김명애 씨가 말한 사람은 황만근 씨다. 사랑에 눈이 멀어 황만근의 불기둥을 받아들일 땐 님이었으나, 니미럴 ! 도장 찍었더니 남이다. 님도 황만근 씨요, 남도 황만근 씨다. 동일인물이다.

 

 

 

자,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자. 위에서 지적한 군림하는 갑'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 바로 멘토와 힐링'으로 바뀌었다. 갑이라는 꼰대의 이미지'가 부정적이다보니 변신을 모색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 요즘은 특정 직업군을 외국어'로 부르는 것이 대유행 아니었던가. 주방장'보다는 셰프'라고 하면 고급스럽다. 그래서 甲은 한자를 버리고 알파벳을 선택한다. 사실 갑이나 멘토나 힐링의 공통점은 잔소리 늘어놓는 갑'이다. 그런데 젊은 乙은 이러한 변신'을 알지 못한다. 엄마가 하는 잔소리'는 늙은이의 쉰소리가 되고, 멘토 이은미의 잔소리'는 깨달음이 된다. 김난도가 < 아프니깐 청춘이다 > 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젊은이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잔소리'다. 청춘은 다 아픈 법인가 ? 나도 아팠으니 너도 아파야 한다는 말인가 ? 김난도가 하고 싶은 잔소리는 " 어릴 땐 다 방황하는 법이란다. " 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그렇다, 당신의 아버지가 늘 하는 소리 아닌가. 그런데 왜 돈 주고 잔소리'를 사서, 잔소리를 듣고, 잔소리에 감동하는 것일까. 지금 당신은 김난도 씨의 < 아픔이라는 감성'은 가족력'이다 > 라는 황당한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이다. < 아프니깐 청춘이다 > 는 새빨간 혀'다. 청춘은 아플 수 있다는 전제는 가능하지만 아프니깐 청춘이다는 성립이 될 수 없다. 전자는 전체에서 부분을 말하지만, 후자는 부분에서 전체를 규정짓는다. 논리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저런 소리 못한다. 당신이 김난도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아픔이라는 감성은 가족력에 따른 유전병'이라는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니라 마케팅'이다. 잔소리도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영악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이 정도면 강물을 판 김삿갓'이다.

 

 

 

김난도가 청춘을 위로하는 것은 주접이다. 같은 이유로 이은미가 < 위대한 탄생 > 에서 멘티'에게 쏟아내는 사랑의 매 또한 주접이다. 김태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러한 잔소리에 감동하는 시청자나 독자도 주접이다. 그들의 말은 위로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잔소리다. "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 라는 전제 하에 쏟아내는 충고는 이미 "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 라고 발화하는 순간 (본론을 듣기도 전에) 기분이 나빠진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열정을 무료로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돈벌이'를 위해서 멘토를 수락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멘토링이 굴러가기 전에 미장원 가서 몇 시간 동안 머리를 하고, 최고 비싼 옷을 입고, 비싼 화장으로 자신의 공작 깃털을 펼치는 태도'가 가진 것이라고는 가난한 맨발' 밖에 없는 멘티'를 대하는 진심어린 태도인가 ? 그것이 무슨 멘토의 자세인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홍상수의 < 생활의 발견 > 에 나오는 말을 살짝 바꿔 " 乙이여, 우리 적어도 < 똥 > 은 되지는 말자 ! " 이다. 무식하게 멘토로 변신한 갑'도 못 알아보고 열광하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또 당해야 하나. 돈 주고 잔소리'를 산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닐까 ? 휠라 입은 양아치나 아르마니'를 입은 양아치'나 모두 한 끗이다. 변신의 핵심은 차이'가 아니라 동일성'이다. 깨닫지 못하면 당신은 하와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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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6-16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원시원한 곰곰발님 글.
위치 상 전 함정에 빠지기가 너무 쉬운.. 정말 꼰대, 갑, 멘토는 삼지도 되지도 말아야겠어요.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03:51   좋아요 0 | URL
하여튼 지적질해서 책 팔아먹는 사람 보면... 슬프죠. 이런 책을 열심히 읽는 것 자체도 슬프고 말입니다.

히히 2013-06-16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의 말을 살짝 꼬아서
"乙이여, 우리 되도록 <똥>이 되자!"
또 압니까? 甲이 될랑가.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7 01:12   좋아요 0 | URL
을이여, 우리 똥이 되자 !!!

오, 이거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킹은 킹이다 !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실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춘향이는 변학도에게 몸을 줄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변학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화려한 비단 음경가리개'로 갈아입는 꼴이다. 곰곰생각하는발 씨'가 그렇다. 그는 미리 근사한 수상 소감 전문을 작성한 것이다. 소설을 쓰기도 전에 말이다. 당선자들은 수상 소감으로 " 문학이여, 영광 있으라 ! " 를 외치며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문학이라고 고백한다.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나 ? 문학이 당신을 키웠다면 당신을 키운 부모는 시다바리'인가 ? 그런 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문학 대신 부모를 하와이에 보낼 위인이다. 너무나 상투적인 당선 소감문에 질려버린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소설을 쓰기도 전에 미리 수상 소감'부터 적었다. 가급적이면 건방지게, 쿨하게,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부모이고, 일 할은 영화였으며, 나머지 일 할'은 문학이었노라고 고백하리라.

 

" 원, 투, 쓰리... 아아아,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 삐이이익 ) 원투쓰리 강냉이, 아주 공갈 염소똥 십 원에 열두 개... 아, 아아아 ! 이 자리를 빛내주신 문청 여러분. 제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훌륭한 선배로부터 후대에 빛날 벼락 같은 작품이라는 칭찬 릴레이'보다는 " 해법수학 " 이나 " 성문기본영어 " 처럼 잘 펼려서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작품을 쓰는 것이 제 목표올시다. " 이렇게 수상 소감을 작성하고는 혼자서 낄낄 웃는다. 아, 통쾌하다 ! 그렇다, 제임스 조이스'가 되느니 스티븐 킹'이 되겠다. 킹이 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재미있었나 ! 그런 그가 < 유혹하는 글쓰기 > 라는 소설작법 창작론" 을 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박장대소하게 된다. 오이도행 전철 안에서 무릎을 치며 읽다가 웃겨서 침을 흘린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고향 찾아 삼만리" 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 시원적 원형의 광명'을 찾아 떠나는 오이디푸스적 맨발의 고행 " 이라고 쓴다는 것이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 먹물 " 이다. 그나마 " 먹물 " 이면서 " 먹물 " 이라고 말하는 문어는 계급에 대한 커밍아웃'이므로 봐줄 만하다.  문제는 꼴뚜기이면서 문어 행세'를 한다는 점이다. 킹 할아버지가 보시기엔 심히 좋지 않다. 거짓'은 문장을 망치는 첫 번째 요소'이다. 나는 창작론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르며 읽고 있는데 결정적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 나는 이 책을 2006년에 읽었다. ) 바로 이 문장이다.

 

나는 등장 인물의 신체적 특징이나 옷차림 따위를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특히 의류 명세서 같은 소설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옷에 대한 설명을 읽고 싶으면 차라리 패션 상품 카탈로그를 보겠다. )

 

이 지점에서 독자는 우우, 하지 말고 와와, 해야 한다. 혹은 우와, 라고 말해도 좋다. 그렇다 ! 바로 이 지점이 킹의 소설작법이 다른 국문과 교수가 쓴 소설작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일반적 소설 작법은 대부분 이렇게 쓸 것이다. " 등장 인물의 신체적 특징과 옷차림'은 등장 인물의 캐릭터 구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세밀하게 구축할 것 ! " 나는 <  보봐리부인 > 을 읽다가 미쳐서 죽을 지경까지 간 적이 있다. 나는 보봐리를 읽는 내내 차탈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세부 묘사는 보봐리 부인의 벌거벗은 몸에 대한 집요한 세밀화였지, 옷 입은 보봐리 부인의 풍경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옛날옛적 옷'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로베르가 매우 훌륭한 작가라는 점을 안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닐 뿐이다. 나는 복장도착자는 아니다.

 

이 책에서 킹 할아버지'는 그답게 뻔한 " 문장 강화 훈련 " 을 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작법 책이 플롯이 중요하다고 강조할 때, 킹은 플롯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플롯은 개나 줍시다 ! 이처럼 이 책은 시니컬한 조롱이 대부분이다. 받아쓰기 몇 번 한다고 해서 세익스피어가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소설을 쓸 것이다. 킹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자기 밥그릇을 넘볼 호랑이 새끼'를 키우겠는가 말이다. 프로야구 타격왕'은 절대 현역 시절에 " 타격교본 " 따위를 쓰지 않는 법이다. 은퇴 후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가 마지막 즈음에 쓴 문장 하나'가 묘하게 가슴을 울린다.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그는 별 수식 없이 빠르게 쓰고는 조용히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더러는 우정 때문에 했던 일도 있지만 - 출판계의 용어로는 상부상조라고 한다 - 그것은 아무리 깎아내려도 좀 유치한 물물교환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그렇다. 그는 오르가슴을 위해서 글을 쓴 것이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좋아서 쓰다 보니 돈도 생기고 명예도 생긴 것이다. 특별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니고, 어떤 사명감을 위해 쓴 것도 아니다. 지구는 독수리 오 형제'가 지키고,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킨다 !  킹은 그냥 좋아서 쓴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보았던 고백 중에서 가장 소박하면서 감동적인 것이었다. 오, 오오오르가슴을 위해서 썼다니 !  하루키가 자위하려고 씁니다, 라고 고백한 것보다 좋다. 마지막으로 킹이 남긴 조롱으로 끝을 맺겠다.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글을 써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기꺼이 격려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나쁜 작가란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형편없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하다.

 

 

 

 

 

 

 

+

 

http://myperu.blog.me/20144553474 : 사진에 대한 글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87511 : 정성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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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orte 2013-06-1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였더라. 흄이라 그랬던가 (워낙 기억력이 떨어지는 관계루다가 이부분은 대충 생략..). 처음에 낸 책이 더럽게 안팔리자 작정하고 한 2년정도 창작법을 배웠답디다. 그리고 똑같은 책을 문체만 바꿔서 재출간 했더니 대박이 났다고해요. 그거 읽구 혹자는 창작법 책만 산더미로 쌓아놓고 있다는 소문이.. 험 험..

글쓰기는 읽을줄 알면 누구나 되는건줄 알았는데.. 요즘 곰발님 글을 읽으면서 새삼 글 잘쓰기의 위대함에대해 알아가고 있읍니다. 좋은 글 읽으면 (것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심장은 펄펄 뛰는데.... 머리가 영 따라주지 않네요. 필빨 좋아봤자 내용 없으면 안되는 건조한 글만 먹구살던 처지라...흑흑.. 그냥 좋은 글로 눈호사하는걸루 만족하기만 하는 불쌍한 중생입니다. 중생구원을 위해 많이 글 올려주셔요. 지금처럼만, 쭈욱....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23: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쉬운 글을 어렵게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어려운 글을 쉽게 쓰는 글은 어렵다.전 이오덕처럼 옛글 옹호자는 아니지만 그들의 말에는 찬성합니다. 쉽게 글을 쓰기 위한 생각이니 말이죠. 요즘 문학평론가라는 사람들이 작성한 글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들어요. 쉬운 글을 왜 저렇게 어렵게 쓰지 ? 정성일 평론 읽다가 성질나서 책 덮었습니다.

iforte 2013-06-15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뜬금없지만... 아래 서재목록에 보니 아버스에 대한 책도 있네요. 혹 사진에대해 쓰신 글도 있나요? 있음 올려주어요. (조름과 협박 사이의 미묘한 톤으로..) 전 갠적으로 Andre Kertesz랑 Cartier-Bresson 팬이랍니다. ㅅ.ㅅ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23:01   좋아요 0 | URL
사실 알라딘에도 사진 이야기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알라딘이 워낙 후져서 사진 이미지들이 며칠 지나면 액박이 뜨더라고요. 그래서 다 삭제했습니다. 대신 네이버 링크 걸어드릴게요. 저번에 올린 짧은 글들은 모두 사진에 대한 단상입니다. 위에 네이버 링크 걸어두었습니다.




전 다이안 아버스, 시디셔먼, 로버트 프랭크 팬입니다... ㅎㅎㅎㅎㅎ.

iforte 2013-06-16 04:48   좋아요 0 | URL
오늘은 공부에 집중도 안되고... 커피를 홀짝이며 링크 걸어주신 사진글들을 다 읽었네요. 감사합니다. 귀한 글들을 감상할 기회를 주셔서.

원래 순수미술을 추구하던 경력때문인지, 전 사진이나 그림이나 메시지가 넘 강한 작품은 덜 보게되요. 어떤 작품은 맘을 불편하게 만들어서 더더욱 눈이 안가요. 아버스도 그렇구... 신디 셔먼도...죄송... 워낙 공부할때 외에는 뇌를 빼놓고 사는 축이라.. ㅎㅎ... 아, 이번 여름엔 우연히 달라스에 놀러갔다가 신디셔먼 작품 전시회를 보게되었는데 매일 조그만 화첩으로보다가 거대한(?) 화판으로보니 느낌이 틀리긴 하더라구요. 어쨌든, 전 갠적으로 정신줄 놓고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작품들을 좋아해요. 사는일 자체가 힘이 들어서 그런가... 거기에 시각적 자극까지 과부하를 걸면, 피곤해서...... 그냥 무뇌인으로 살게 냅두어도 좋아요... ㅠㅡㅠ
그래두 듀안 마이클은 좋아해요. 워낙 특이한 상상력에 감탄, 또 감탄.... 사진도 좋구요.

iforte 2013-06-16 04:51   좋아요 0 | URL
아...근데 올리신 글들 중에 '셋이 모이면 할수있는거'... 전 고무줄을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고무줄은 둘만 있어도 할수있겠더라고요. 전봇대에 한쪽 매고... 그래서 생각한게, 야구...? 왜냐면, 최소한 투수, 포수, 타자는 있어줘야...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05:2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셋이 모이면에 대한 포르테 님의 댓글 제가 좀 어디에서 인용해도 되겠습니까 ?
저도 오늘은 잠 안 자고... 글이나 잔뜩 올려야겠어요...

사진 저도 참 좋아합니다. 집에 암실을 꾸며놓기도 했고,
암실에서 작업하다가 기절 비슷한 것도 경험했습니다.
왜 암실 작업 오래하면 현상액 냄새 때문에 가끔 쓰러지는사람들 있잖습니까...

현상액에서 사진 이미지가 떠오를 때... 그거 그거 중독인데 말입니다.
빨간 불빛 아래 이미지 떠오를 때의 그 묘한 오르가슴 말입니다...

iforte 2013-06-16 08:06   좋아요 0 | URL
우왓, 암실실실...!! 전 디지탈. 좋은 컴하나만 있음... ㅋ
넹. 언제든지 인용하셔도 되요. 전 글재주도 없어서 곰발님이 잘 요리해주시길 바랄뿐. 갑자기 백호의 '왼손은 거들뿐' 대사가 중첩되고....

새벽 2013-06-16 0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스티븐 킹.. 맨날 영화로만 접했네요. 언젠가 스티븐 킹 작품은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두세 권 추천 좀.. 지난 몇 달 제 취향 어느 정도 캐취하셨으니 감안하셔서.. ^^;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03:49   좋아요 0 | URL
일단... 사계 추천합니다. 리타헤이워드와 쇼셍크 + 스탠바이미' 두 개가 사계'입니다. 입문하실려면 그의 대푝적 시리즈도 좋지만 일단은 이렇게 가볍게 시작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새벽님 취향으로는 11.22.63도 좋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애완동묠 묘지를 애정합니다. 걸작입지요.... 아, 그린 마일도 좋고... 뭐...

무순위..

사계, 애완동물묘지, 그린마일, 11 22. 등입니다요. 킹은 모두 질이 다 비슷비슷해요... 아무거나 읽어도 모두 걸작입니다...

새벽 2013-06-16 14:2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펫 세메터리..도 스티븐 킹 원작이었네요 그러보 보니.
사계와 애완동물묘지부터 시작해봐야겠어요. 추천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14:35   좋아요 1 | URL
미칠 정도로 좋은 작품입니다. 전 늘 애완동물이 킹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Nina 2013-06-1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킹 진짜 매력있어요. 킹 짱! ㅋ
이 사람 영화 중에 얼마전에
Dreamcatcher랑
The Mist 두개 봤어요. Stand by me랑 Shawshank Redemption은 이미 봤고.. Misery는 하도 어렸을때 봐서 가물가물.. 검색해보니 제가 안본게 아직도 많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09:09   좋아요 1 | URL
미스트 좋죠 ? 역시 킹 전문 감독은 다라본트 감독입니다.
전 이 양반 영화가 그렇게 좋더라고요...

히히 2013-06-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계중에서 "호흡법'을 읽다가 제 숨이 빨라져서
책을 덮고도 한참 후에 담담하고 유연한 날숨을 내쉬었답니다.
몰입도 끝장나더이다. 차츰 읽어 볼 생각입니다.
김진준의 역서를 찾다 '스텐바이미'를 들었는데 상당히 신나게 읽었더랬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16:05   좋아요 0 | URL
뭐 이 양반... 대단한 양반이에요. 1408은 버릴려다가 그냥 단편집에 실었다고 하더라고요.
미친 양반입니다. 이런 야반 때문에 평범한, 재능없는 한국 작가들이 욕을 먹는 거 아니겠습니깡..

고양이라디오 2016-04-28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 이 글 너무 좋습니다. 킹은 정말 킹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4-29 14:42   좋아요 1 | URL
으하하 재미있으셨나요. 이게 원작이 재미있으니 리뷰도 재미가 더해진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모든 공로는 킹 오브 킹` 님에게...

고양이라디오 2016-04-29 21:39   좋아요 0 | URL
이런 미스트도 킹작품이었나요????
영화 정말 재밌게 봤는데
진짜 킹오브 킹이네요
역시 이름따라 가나봅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5-01 03:06   좋아요 1 | URL
미스트 읽어보세요. 뛰어납니다. 킹 할아버지가 이 정도랍니다. 허허허허허허허..

고양이라디오 2022-04-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등장인물의 신체적 특징이나 옷차림을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킹의 설명에 공감 많이 갔어요. 저는 그런 묘사를 읽어도 전체 머리 속에 그림이 안떠오르고 먼말인지 모르겠더라고ㅠㅋ 그래서 그런 부분은 그냥 대충 읽고 넘어갑니다ㅎ

근데 킹은 플롯은 중요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제 기억으로 하루키도 플롯은 중요하지 않다고 햇던거 같거든요. 둘다 등장인물이 알아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내버려둔다고 했던 거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서ㅎ;; 킹의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플롯이 기가막힌데... ‘플롯은 거들뿐이다.‘ 라고 이해하면 되려나요?
 
[블루레이] 마더 : 일반판
봉준호 감독, 김혜자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마더 ㅣ 식물은 무섭다 ?

 

 

 

 

예리한 눈썰미‘를 가진 관객이라면 봉준호가 감독한 영화 마더‘라는 제목이 머더’의 숨은 뜻이라는 사실을 쉽게 간파했을 것이다. 이 은유는 은유라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보이는 직유이다. 그러니깐 영화 속 어머니는 살인하는/머더 어머니/마더‘이다. 동시에 양육과 사냥을 겸하는 암수한몸’이다. 아니다, 정정하겠다. 사냥 영역으로 확장하는 모호한 암컷‘이라고 쓰겠다. 각자의 성-역활'은 탈영토화와 재영토화'를 겪으면서 서로 섞인다. 사실 김혜자'라는 배우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선 배우이다. 신경쇠약직전의 배우' 이다. 다만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영화 마요네즈'에서 보여준 김혜자의 연기'는 불안한 눈빛, 신경질적인 얼굴 근육의 떨림, 그리고 병적으로 연약한 목소리'는 뭔가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이시켰다. 전무후무한 배우였다. 어쩌면 전설적인 베티 데이비스'의 악녀 역'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던 그녀가 영화 마더'에서 기괴한 - 엄마 역을 연기했다. 봉준호, 그는 늘 탁월하다.

 

그녀가 일하는 곳'은 약재상'이다. 각 식물의 뿌리, 열매, 잎을 분류하고 보관하는 곳으로 그녀는 온전히 식물의 영역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러니깐 이곳은 식물의 서지학'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하지만 동시에 식물의 시체안치소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의 사생활'은 뒤집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폭력적이다. 자신의 몸에 치명적인 독'을 품은 것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의 독성이다. 흔히 우리가 잿물이라고 하는 독 ( 마시면 죽는다. ) 은 식물의 죽은 몸인 재에서 추출된 성분이 아니었던가 ?

 

입 구에서, 뿌리 근' 까지 : 김혜자는 아들 원빈의 섭취에서 배설까지의 전 과정을 관찰, 기록, 처방한다. 이 장면에서 아들은 보약'을 마시면서 담벼락에 소변'을 본다. 그러자 여자는 아들의 배설되는 구멍'을 유심히 바라본다. 口에서 根 ( 아무래도 이 글을 읽는 당신, 이 한자 모를 것 같다. 뿌리 근‘이다. ) 까지 ! 어머니는 순환의 이상 유무’를 체크한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수상한 모자‘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 은밀한 부분을 볼 수 있는 시선의 자유는 곧 우월적 신체 소유권자-들이다. 우리가 아우슈비츠 와 미 포로수용서에서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권력자는 노예의 벌거벗은 신체'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녀는 그동안 헌신적으로 남편 없이 외아들'을 돌본다. 어화둥둥, 내 새끼. 어화둥둥, 내 새끼 ! 엄마에게 있어서 아들 도준은 온실 속 화초다. 아들에게 물을 주자 물은 곧바로 뿌리'를 통과한다. 아들의 뿌리 ( 아들의 뿌리'를 곧이곧대로 한자로 표기하자면 남근/男根이다. ) 가, 촉촉하게 물에 젖는다 !! ! 입에서 똥구멍까지, 섭취에서 배설까지 신속하게 진행되는 이 순환은 동물의 소화 기관'이 없을 때에만 가능한 설정이다. 말 그대로 아들은 온실 속 화초이다. 어쩌면 그녀는 아들의 소화 기관을 제거했는지도 모른다. ( 아들의 고백으로 밝혀지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독초제'를 먹여서 장기를 불태운다. 28살의 아들이 5세의 지적 수준에서 성장이 멈추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수상하다. 이들의 관계. 바로, 이 지점. 라캉을 인용하자면 얼룩'이다. 틈이며 균열이다. 뭔가 꼬였다는 뜻'이다 !

 

빗금 친 아버지 A ,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하는 아들 : 남편 역'을 담당하는 28세의 아들'은 사실 5세 전후로 성장'을 멈춘 상태'이다. 구순기와 항문기 사이에 놓여있는 존재'이며 발기하지 않는 페니스를 가진 존재이다. 딱딱한 존재가 아니라 물컹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 마더에서의 모자 관계는 성관계는 없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서편제의 플롯과 얽힌다. 서편제에서는 아버지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딸을 눈을 멀게 하지만 영화 마더'에서의 어머니'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들의 성장을 멈추게 한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어머니는 강제로 아들의 성장'을 멈추게 했을까 ?

 

 

프로이트는 욕망의 삼각형'에서 그 관계망'을 아버지 - 어머니 - 아들'로 설정했다. 처음부터 딸'은 배제되었고 프로이트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여성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있어 여성은 알 수 없는 nothing'이었다. 그러니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처음부터 여성이 배제된 텍스트'였다. 어머니'라는 지위, 즉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 안에서만 여성은 분석되어졌다. 완전하지 않은 텍스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영화 마더'는 오히려 위의 욕망의 삼각형'에서 아버지'를 빗금 친다. 아버지의 자리를 부재 중'으로 남겨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자 모자 관계'는 기괴하게 엮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원빈은 엄마와 떡친 아들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수상한 관계'다. 김혜자는 남편의 자리'에 원빈을 놓고, 원빈은 애인의 자리에 김혜자를 놓는다. 성-관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의미가 없다. 서로 빈 자리를 채웠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그들은 서로의 욕망을 채운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성 관계의 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관계의 지정학이 오류를 범하자 문제는 심각해진다.

 

▷ 죽음의 저장소 , 건초 약재상 : 이곳은 죽은 식물/여성-들의 집합소다. 다만 피비린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살육장과는 다를 뿐이다. 빅-마더 김혜자는 작두로 식물의 목을 자른다. 울대 없는 성대'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그러니깐 김혜자는 식물들의 목을 자르는 도살업자 - 괴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종 살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는 사냥 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모호한 여성‘이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동물 가면'을 숨긴 채 식물-되기'를 재현하고 있거나 식물성을 버리고 동물-되기'를 준비하는 길짐승'이다. 하, 수상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알 수 없는 존재’였다.

 

▷ 영화 에이리언과 괴물' : 이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디자이너 기거가 창조한 남근을 닮은 에이리언'이 아니라, 그 알'들을 품은 저 거대한 동굴'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두려움의 본질은 날뛰는 괴물의 실체'가 아니라 장소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품은 한강 철교의 내부'다. 그렇다면 이 동굴/내부'의 은유는 무엇일까 ? 정답은 여성의 거대한 자궁'이다. 불임에 대한 남성 컴플렉스'는 생산의 공간인 자궁'에 대한 두려움을 낳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괴물은 여성형'이다. 거대한 자궁에 대한 경외'다. ( 위의 이미지와 이 스틸사진은 기분 나쁘도록 닮았다. )

 

 

 

리플리 ! 당신, 배 배배배배배 배신이야. " : 지금까지의 영화이론은 공포영화에서의 괴물의 실체'를 남성'이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는 괴물-남성'이 여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괴물-여성'이 사회 전체'를 상대로 히스테릭을 부리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괴물 영화 혹은 난도질 영화에 나오는 공격자의 공통점은 가면이다. 이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데 이 가면'은 모두 자신의 얼굴과는 다른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깐 가장 무시무시한 가면을 쓴 괴물일수록 가면 속의 얼굴은 선량한 얼굴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을 공격하는 괴물 / 공포영화 속 남성'은 사실 남성이 아니라 남성이라는 가면을 쓴 여성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모든 괴물은 여성이다. 에이리언3'에서 시고니 위버'를 공격하는 퀸 에이리언의 행위는 여성 주인공을 공격한다기보다는 여성성을 스스로 거세한 주인공을 응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를 삭발하는 행위'는 곧 남자와 섹스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며, 생산 주체의 포기 선언'이다. 퀸 에이리언'이 리플리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 당신 배. 배,배,배,배, 배신이야 ! "

 

 

 

 

이 영화에서 주인공 마더'는 얼핏보기엔 자신의 모성 역활'을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세상에나 ! 이 영화를 지극한 모성애'로 이해하다니, 내가 보기엔 그 정반대'다. 이 영화는 여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이며 영역 가로지르기'에 대한 재미있는 보고서다. 그녀는 아들과의 오이디푸스적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식물에서 동물-되기'를 이행 중에 있는 괴물'이다. 퀸-에일리언'이라 할 만하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김혜자의 성 역활 바꾸기'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는 식물성을 버리고 동물성'을 연기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알레고리'가 바로 초원이다. 여기서 초원은 일종의 경계'이다. 자아와 이드'의 경계이며, 문명과 금기의 경계이고, 식물과 동물의 경계, 생과 사의 경계 그리고 이곳과 저곳의 경계이다. 그녀가 이 초원을 가로지른다는 행위는 넘어서면 안 되는 영역으로의 월담 행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넘어서면 절대 안 되는 영역이다. 김혜자는 이 영역을 가로지름' 으로써 동물이 된다.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영화 " 캐리 " 는 여성 생산성/ 거대- 자궁 '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잘 묘사한 영화다. 이 영화의 오프닝'은 사춘기 소녀의 생리'로 시작해서 돼지 피를 뒤집어쓴 소녀의 모습으로 끝난다. 캐리의 몸이 생산의 주체'( 생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 다 아는 이야기지만 ! ) 가 되자 남성 사회는 생리를 시작한 사춘기 소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그때가 가장 건강한 자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돼지 피'를 뒤집어쓴 캐리의 얼굴은 생리하는 오프닝 이미지와 겹치면서 생리하는 여성 성기'를 떠오르게 한다. 캐리는 이빨 달린 여성 성기, 바기나 덴타타'이며 메두사의 얼굴이다. 생리혈이 흘러 넘친다는 측면에서 캐리는 대-생산자'이며 초월자'이다. 메두사 신화의 핵심은 메두사의 얼굴을 보면 딱딱하게 굳는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메두사의 얼굴'을 여성 성기'로 보았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메두사의 얼굴을 보자마자 딱딱하게 굳어 돌덩이'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딱딱하게 굳는 현상'을 페니스의 발기'로 보았고, 메두사의 얼굴을 여성 성기'로 이해했다. 캐리의 얼굴을 본 순간 수컷인 당신은 죽는다.

 

 

피 흘리는 여성 얼굴 이미지'는 마더'에서도 차용된다. 피 묻은 얼굴'은 폐경이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는 증거와 함께 섹스 할 수 있는 여자, 나아가 생산의 주체자'임을 나타낸다. 그렇다, 그녀는 아직 생리하는 여자'이다. 설명했다시피, 피흘리는 얼굴 혹은 생리하는 메두사'는 불완전한 여성의 몸이 생산-주체'가 되어 완전한 몸으로 재탄생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김혜자는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하여 문아정'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이 행위'는 일종의 과거로의 여행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라. 21 세기 대한민국에서 쌀을 얻기 위해 몸을 판다는 것, 상당히 오래된 매춘 아닌가 ? 화폐 거래가 아닌 곡물 물물교환이라는 점이 오래전 과거형임을 암시한다.

 

감독은 동시대성으로 두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사실은 옛날옛적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다. 자, 여기서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김혜자가 마주친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깐 문아정'은 김혜자의 과거형'이다. 이쯤에서 영리한 독자'는 김혜자의 정체'를 간파했을 수도 있다. 김혜자 그 여자는 문아정 이 여자의 유령이다. 그러니깐 김혜자는 누명 쓴 아들의 진짜 범인을 찾아나서는 게 아니라, 자신을 죽인 진짜 범인'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는가 ? 그녀는 nothing 이다. 영화 마더'는 남성사회가 창조해낸 모성 신화'의 허구를 폭로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김혜자는 자상한 어머니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성관계를 맺는 어머니, 나아가 가짜 아들-들과 관계'를 맺는 어머니'를 연기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위해서 폐경'을 미룬 여자이며, 동시에 유사 아들-들의 욕망을 위해서 자리에 눕는 퍼블릭 우먼'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들과 섹스하는-여자, 나아가 창녀'로 명명하는 순간 가부장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그러자 빗금 친 존재인 대상 A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복귀한다. 감독은 교묘하게 현재와 과거의 영역'을 하나의 공간 속에 가두어두고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 7박8일 : 눈물겨운 어머니의 모험담 " 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 한 여자의 일생 " 을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마더'를 연기하는 김혜자'는 문아정의 다른 이름'이다. 그녀는 지금 문아정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범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는 중이다. 김혜자의 어릴 적 이야기가 바로 문아정'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귀환, "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 " : 고물상은 고장난 기계들의 무덤이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돌아와서 오이디푸스 욕망-기계'를 다시 가동하려고 한다. 이 기계'가 작동되면 아버지의 자리'를 넘보던 어머니와 아들'은 응징되리라. (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고장난 보일러 기계'는 오이디푸스 욕망 기계이다. 이제 그가 이 기계를 작동시키면 혼돈은 질서를 찾을 것이다. ) 그가 전화를 거는 순간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친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견고해진다. " 씹새끼, 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 "


 

약재상과 고물상'은 죽은 것들을 저장하는 곳'이란 측면에서 서로 닮았다. 어머니의 영역으로 대표되는 약재상이 죽은 식물들의 저장고라면, 아버지의 영역으로 상징되는 낡은 기계-들'은 고장 난 기표들의 저장고'다. ( 시작 글, 서두를 보라 ! ) 그리고 버려진 잡동사니를 쌓아둔다는 의미에서 이 두 영역은 모두 의식 너머의 영토에 속한다. 문아정의 핸드폰 또한 같은 의미에서 동일하다. 핸드폰은 부모와 성관계를 맺는 ' 아이의 은밀한 영역 ' 이다.

 

 

약재상의 약초, 고물상의 고장 난 기계, 주인을 잃은 핸드폰 속에 저장된 죽은 메모리'는 모두 자아와 충동하는 이드'이다. 이들은 ( 죽은 식물/ 죽은 기계/ 정지된 핸드폰 ) 모두 the old 이지만 다시 재생될 수 있는 질긴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다. 죽었지만 다시 재활용되는 존재'이다. 프로이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 억압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이다. 아버지 라이오스의 생환'은 아들을 범한 이오카테스'의 목을 조여온다. 그녀가 고물상 주인으로 변신한 라이오스 왕'을 죽인 이유는 아들이자 애인인 오이디푸스'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지속하기 위해서였다. 어찌 되었든, 김혜자'는 아들과 관계 맺는 어머니이면서, 남편을 죽인 아내이고, 마을 남정네들과 관계 맺는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다. 그녀는 팜므파탈이며, 바기나 덴타타이고, 메두사의 얼굴'이다. 이 영화'는 어머니의 성에 대한 도발적 질문이다.여자는 어머니'가 되는 순간 여성에서 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자발적 선택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법이 정한 강제성'에 가깝다.

 

 

 

 

 

 


 

 

 

 

번외 ㅣ

 

 

1. 식물은 무섭다.

 

잿물'을 먹은 짐승은 죽는다. 사람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마시면 식도'가 타서 죽는다.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는 독약이다. 옛날에는 자살을 할 때 크기가 넓은 잎에 양잿물 가루'를 넣어서 쌈'처럼 먹었다고 한다. 목구멍이 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어머니와는 먼 친척이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라움보다는 묘하게 슬펐다. 무서운 독이다. 그런 잿물'은 식물을 태워서 만든 재'로 우려낸 물'이란다. 어쩌면 식물은 동물보다 무섭다. 사실 알고보면 성대 없는 꽃대'는 무시무시하다. 영화 마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 약재상'은 그녀 고유의 영역'이다. 김혜자는 죽은 식물'을 우려서 만든 즙/보약'으로 아들을 키운다. 이 행위는 아들을 짐승에서 식물-되기'로의 변신을 바라는 마더의 욕망이다. 공교롭게도 그녀는 식물의 뿌리'를 태우는 제초제'로 아들의 소화 기관을 모두 태운다. 그러자 아들'은 물을 마시자마자 바로 뿌리( 말 그대로 남근'이다. )로 흡수되어 배출된다. 그러자 아들은 온전히 어머니의 영역에 속한다.

 

 

 

 

2. 동물은 우습다.

 

이 세상에서 제일 웃긴 동물은 남자'다. 독서에 대한 수다' 를 진행하는 스누피 님의 ( 온북 티븨 팟캐스트 진행자 ) 말에 의하면 남자는 두 가지 중 하나란다. 개새끼이거나 애새끼'이거나 !  전적으로 동의한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5646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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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6-16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프로이드의 메두사의 얼굴에 대한 정의는 상당히 흥미롭네요.

물에서 거품은 물입니까? 아닙니까?
부싯돌의 불은,
선풍기의 바람은,
.
.
.
아들은?
엄마 가라사대
이것들아! 내 살점 떨어진거여.
이것이 며느리와 동지가 될 수 없는 모성입니다.
불안하면 자기몸을 움쳐려 껴안듯이 아들(자신)을 품는거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09:08   좋아요 0 | URL
프로이트 전집 사놓고 ( 다 낱개로 구매했음.. ) 읽긴 다 읽었느데, 다른 책 읽다가 프로이트 인용 글 나오면 다시 그 논문만 다시 읽고 합니다. 역시 잘 구매했어요. 책은 이런 책을 돈 주고 사야 해요.
제가 요즘 심각하게 고민하는게 딱 한번 읽을 거 굳이 사야 하나 라는 겁니다.
하여튼... 방긋.

물거품이나 거품은 물입니다.
나머지는 몰것습니다..

히히 2013-06-1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올드보이'로 글 적으시면 윗글과 비교되어 재미있겠네요. 혹시라도...

그나저나 우리집 애새끼는 밖에서 개새낄라나?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14:44   좋아요 0 | URL
본문에 올드보이 첨부했습니다.

히히 2013-06-16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대수가 혀(언어)를 자른다 = 항문기
그래서 마지막장면 눈밭에서 그의 얼굴이 남근기에 불가능한 표정이였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6 15:55   좋아요 0 | URL
남근기는 곧 언어를 습득하는 단계입니다. 오대수가 혀를 자른다는 행위는 곧 거세'를 의미하는 거죠...
상징적 거세인 것입니다.
 

 

 

 

 

 

 

 

 

 

 

 

 

 

 

 

 

" 하지만 생각해 보라.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계획적인 어린이 유기로 시작하더니만 어린이 납치로 발전하고, 노예 만들기, 불법 감금까지 더해지더니, 마지막에는 정당화된 살인과 시체 소각까지 나온다. 대부분의 어머니와 아버지라면,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하자 비행기에 타고 있던 럭비 선수들이 죽은 동료 선수를 먹음으로써 살아남았다는 내용을 극단적으로 선정적으로 다른 멕시코 날림 영화 < 생존하라 > 를 결코 자녀들이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모들도 마녀가 아이들을 살찌워서 잡아먹으려고 하는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반대할 명분을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런 막돼먹은 동화를 꼬마들에게 선사하면서도, 어쩌면 더욱 깊은 마음 속에서는 이러한 동화들이 꼬마들의 두려움과 반항심을 구체화시키는 완벽한 구심점이 된다는 것을 거의 본능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

 

 

- 죽음의 무도 中, 스티븐 킹

 

 

 

 

 

 

미녀는 마녀다, 라는 명제는 틀리다. 하지만 마녀는 미녀다, 라는 말은 맞는 명제'다. 왜냐하면 마녀는 둔갑술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늙은 마녀는 사람들 앞에서는 미녀로 둔갑한다. 영화 < 양들의 침묵 > 에 나오는 연쇄살인마인 가죽 재단사'는 남성화된 여성 마녀'다. 성형 중독인 그(녀)는 탱탱한 젊은 피부를 찢고, 이어붙이고, 재단한다. 그(녀)는 백 번째 피부 조각으로 꿰맨 옷을 입고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시늉을 할 것이다. 흉물이란 늘 그런 존재'다. .

 

작품 속에서 버펄로 빌의 직업은 재단사‘다. 그는 희생자들의 피부에서 벗겨낸 여성 인피로 가죽 옷을 만든다. 그의 욕망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 피부로 만든 옷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남성 육체’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고치 속에 몸을 숨긴 좀나방 유충처럼 말이다. 드라큘라의 송곳니'가 보톡스 주사바늘의 은유라면, 재단은 몸매 성형의 은유다. 현대의 성형 여성은 드라큘라와 마녀'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주사바늘에 의지해서 젊음을 유지하거나 clothes moth'를 욕망한다. 주름이 없는 탱탱한 피부를 갖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한 욕망은 그로테스크하다.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뜸 이런 반응이 날라온다. 왜 <그따구 >영화/소설을 보세요 ? 더군다나 소설이 토막 살해'된 시체 중 일부는 어디에 숨겨두었을까, 라는 내용을 다루면 < 그따구 > 라는 비표준어는 깔따구'처럼 수십 마리'가 하늘을 날며 나에게 공격을 가한다. 고상한 척하더니 변태로군요 ! 그런데 이 공격적 비아냥거림'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늘 궁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티븐 킹이 말한 헨젤과 그레텔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하리라. 알맞은 답변이다.

 

 

 


 

 

 

 

 


 

 

 

세기의 마녀들.

 

 

 

영화 < 양들의 침묵 > 에 나오는 연쇄살인마인 가죽 재단사'는 남성화된 여성 마녀'다. 괴물'은 여성 피부 거죽'을 자기 몸에 착용함으로써 상징적 여성화'를 꾀한다. 자신이 가장 탐나는 피부'를 찢고, 이어붙이고, 재단한다는 측면에서 이 행위'는 성형과 직결된다. 그'는 성형을 통해서 여성'이 되고 싶어 한다. 이 영화를 비틀면 < 백설 공주 > 코드'가 나온다.  백설공주에서 마녀의 정체는 젊은 척하는 흉물이다. 마녀는 젊음이라는 피부 거적때기'를 몸에 두른 코스튬 플레이어'다. 하지만 이 피부 거적때기'는 가죽과는 달리 영원한 것이 아니라 쉽게 낡고, 썩고, 해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피부 가죽 원단을 교체해야 한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 여자'의 심장이 아니라 피부'이다.

 

 

< 양들의 침묵 > 에서 조디 포스터'는 안소니 홉킨스의 딸이며 렉터 박사는 노심초사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왕'이다. 그리고 살인 재단사'는 최종적으로 딸을 죽임으로써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가 되고 싶어하는 왕비다. 왕비'는 말랑말랑한 젤라틴'을 원한다. "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은 누구니 ? " 거울은 과연 누구를 호명할 것인가 ? 거울은 명쾌하게 쏟아낸다. 

 

 " 삐리리리... 곰곰생각하는발'입니다. 그는 웃으면서 코 팔 때 매력적입니다 ! 섹시한 새끼손가락을 콧구멍에 걸며 조심스럽게 목표를 향해 움직일 때는 마치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유인하는 아일랜드 살무사처럼 우아합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는 곰곰생각하는발'입니다. 그는...... 똥구멍까지 아름다울 위인입니다. 국화 무늬 괄약근이라니.  "  그 말에 마녀, 웃으면서... 코 판다. 부숴버리겠...... 어.

 

현대 성형 여성은 마녀'의 후손들이다. 그들은 모두 요술 거울 앞에서 "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 라고 묻는 마녀와 같다. < 백설공주 >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 향숙이는 예쁘다 > 가 아니라 < 왜 왕비는 날마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질문을 던지는가 > 에 있다. 그것은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지속적인 불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 백설공주에 나오는 왕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 자기 존재 부정 환자 " 이다. 성형중독은 본질적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는 현상이다. 성형 미인'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 몸은 썩어서 사리지지만 가슴에 넣은 실리콘과 철심은 그대로 남는다.

 

 

 

 

 

세월을 긍정할 때‘가 온다. 그것은 타협도 아니고 포기’도 아니다. 세계의 사물에 관대해지는 법을 깨닫는 것, 늙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말랑말랑한 무른 몸‘은 잘 익은, 곰삭은, 관대한 여유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생생한 복숭아보다 썩은 복숭아’가 더 향기로운 향내‘를 간직하듯이 나이든 몸’은 무저항을 향한 하얀 백기‘다. 누구나 " 회춘 " 을 욕망하지만, 회춘'이란 기본적으로 영혼을 팔아야지만 얻을 수 있는 머스트 헤브 아이템'이다. 파우스트는메피스토 펠레스'에게 영혼이라는 심장을 팔아서 탱탱한 피부'를 얻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이름 없는 괴물을 창조한 이유’도 늙은 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늑대인간은 ? 캣피플은 ? 드라큘라 백작의 여인들은 ?

 

 

 

그들은 처지지 않은 탱탱한 젖가슴과 주름 없는 피부를 얻기 위해서 드라큘라 백작이나 메피스토 펠레스에게 매혈을 한다. 드라큘라 백작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현대판 성형 주사바늘이다. 보톡스 주사’다. 피를 판 대가로 얻은 것은 젊은 척하는 늙은 몸이다.

 

40대 여배우가 성형으로 20대의 얼굴과 몸매를 유지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들이 괴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보톡스 주사로 마비된 얼굴은 마치 " 살아 있는 척하는 죽은 자의 얼굴 " 을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 그들은 Undead/ 죽지 않은 몸'이 아니라 Living dead/ 살아 있는 시체 같다. 늙은 색욕이다.

 

배우란 얼굴 근육'을 써서 표정을 연기하는 직업이다. 투수가 팔 근육을 써서 공을 던지듯이 말이다. 그런데 보톡스'란 얼굴 근육을 마비시키는 독'이다. 웃고 있는데 얼굴 근육이 마비되어서 웃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젊음이라는 불멸을 얻기 위해 표정을 잃는다.

 

주름이야말로 표정을 연기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렇게 ! 그것은 마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곡을 연주해야 하는 피아니스트가 미용을 위해서 손톱을 길게 기르는 것과 같다. 나는 나이 든 여배우의 깊은 주름을 보고 있으면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깊은 주름이 매력인 수전 새런든은 별다른 연기 없이도 그녀가 살았던 삶에 대한 고집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녀는 굳이 대사를 읊지 않아도, 우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그것이 바로 주름의 놀라운 효능이다. 자연스럽게 늙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젖가슴은 처지더라도, 젖꼭지가 점점 진한 색깔을 보이더라도, 머리가 희끗희끗 흰머리‘가 관목처럼 밑동에서 가지’를 치며 올라오더라도, 그 세월을 순응하고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누누이 말하지만 " 성한 복숭아보다는 상한 복숭아가 맛이 좋다. 그리고 성한 복숭아보다는 상한 복숭아가 더 달콤한 몸내를 풍긴다. " 시인의 말이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홍상수처럼 말하자면 적어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한다. 회춘‘은 역설적이게도 괴물이 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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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6-14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들의 침묵의 살인마가 남성화된 여성마녀!란 표현 기막히다!
드라큘라의 이빨이랑 보톡스 주사 바늘의 비유도 정말 그럴듯 해!
(대체 이런 생각은 어떠케 나나 몰라~ㅎㅎㅎㅎ)
한국에서 이젠 남자들 포경수술처럼 보편화된 쌍까플 수술..
내게는 정!말! 의아한 얘긴데.. 그런 나를 보고 "왜 쌍꺼플 안 해?" 이러는
여러 친구 보면... ㅠㅠ 나의 두터운 외꺼플이 막.. 씁쓸해진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14:26   좋아요 0 | URL
남자의 포경수술 사랑을 매도하지 망 !!

( 전에 올린 포스팅인데 수정 보완해서 다시 올린다.. 욕하지 마라.. )

Forgettable. 2013-06-14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선가 봤는데 아름다음을 유지하기 위해 늙고 싶지 않아하는 욕망은 곧 썩지 않고 싶어하는 욕망이고, 썩지 않는 인간은 상당히 흉하기 때문에 결국은 추하게 된다는 ㅎㅎ (여기서 읽은건가?)
암튼.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겠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귀결되네요 ㅋㅋㅋ

(쓰다보니 말이 짧아져서 다시 존대말로.)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14:50   좋아요 0 | URL
전... 하나로 통일 주의자'입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반말해도 좋도 모두 존대말해도 좋습니다.
반말한다고 화내는 성격은 아님요.. 전 가끔 50대 여배우들이 보톡스 잔뜩 맞고 와서 연기할 때 보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옛날에 ( 실화임 !! ) 자식 살해범으로 어머니가 용의선상에 오른 적이 있씁니다. 범인은 따로 있었으나 형사들이 이 여자를 용의자라고 생각한 이유는 합당했어요.
무표정 !!!!!!!!!!!!!! 자식이 죽었는데 무표정한 겁니다. 운다고는하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우니 연기하는 것처럼 느낀 겁니다. 알고 보니 보톡스 때문이라고 ....


하물며 배우가 얼굴에 보톡스라니요.

마립간 2013-06-1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 보편성(불멸)을 위해서는 세월도 긍정해야... ; 의도하는 의미의 문장이 안 써지네요.

http://blog.aladin.co.kr/maripkahn/433794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23:21   좋아요 0 | URL
의도하신 바대로 덧글을 다셨습니다.

히히 2013-06-1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초등학교 교문에서 눈 좀 보자는 어른들이 많았는데
까만 피부에 상대적으로 쌍거풀 진한 눈이 선명하였겠지요.
당시 동네 또래 중에서 눈거풀에 풀칠놀이를 즐기지 못한 홍일점이였습죠.
지금은 20세 이상 무쌍거풀녀를 찾을 수가 없으니...
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자연산인가요? 랍니다.
이놈의 깜놀할 성형술의 발달.
고마 이마에 뽕넣고 실리콘으로 코를 정복할까 보다.
이젠 얼굴에서 디밀게 없어요.

I am from Vietnam 혀짧은 소리를 하면 모두가 믿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23:22   좋아요 0 | URL
히히 님 까만콩이란 별명도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자주 느끼지만 히히 님 뭔가 고수란 느낌이....
혹시 작가 아니십니까 ?

소나기 2013-06-1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관대해지는 법을 깨닫지 못해서인지 세월을 긍정하기가 힘이 듭니다.
마녀의 속성을 갖고 있는 소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04:08   좋아요 0 | URL
전에 50대 여성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염색을 안하셨더라고요. 거의 백발인...
아.. 그런데 이분 정말 멋있더라고요....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왜 염색 안 하녀고 누가 물었더니... 자기는 나이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 염색을 안한다고 하시더라고요...

iforte 2013-06-15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지젝의 글을 읽고 뿅(?) 빠져든적이 있었는데, 곰발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지젝 생각이 나네요. 영화와 현실을 참으로 적절히 버무려 공감버튼을 꾸욱꾹 누르게하는 힘. 그래도 제가 읽었던 책에서 지젝은 동화까지는 건들지 않았던듯.. (소설은 많이 인용했지만..). 그래서 지젝의 글은 여린 감성과 시적 감흥이 떨어지는 거여요. 그런 의미에서 곰발님이 한수위...?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04:07   좋아요 0 | URL
동화까지 건드린 분 많습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 이엉돈 피디 목소리로..) 지첵 한 번 먹어볼까요 ? 맛있는데요.... 킹의 죽음의 무도 추천합니다. 무척 재미있어요. 킹은 참... 소설도 잘 쓰지만 이런 에세이도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의 < 유혹하는 글쓰기 > 는 제가 읽은 역대 가장 재미있는 비소설 분야' 중 킹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제첵도 있었구나... ㅎㅎㅎㅎㅎ. 지책 하니 로쟈 님 생각부터 먼저 드네요..ㅎㅎㅎㅎㅎ 지첵이 나온 다큐 본 적 있는데... 아이고... 이분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 같습니다.

iforte 2013-06-15 07:43   좋아요 0 | URL
오홋..꼭 킹의 에세이 함 봐야겠어요. 추천 감사요. 방학이 아니면 전공외 서적 볼 시간도 잘 없다죠... 지젝은 유튭에 떠도는 강연 본 적이 있는데 영어 액센트가 넘 강해서 저같은 비영어권자가 보기에는 무지하게 인내를 요한다는요. 잠잘때 틀어놓으면 수면제가 따로 없어요. 그나저나, 이 아자씨, 대중 강연할때 쫌 옷좀 잘 입고 나오시지... 막 막노동하다 온 아자씨같아요, 패션이요. ㅎㅎ 머, 그게 지젝 아자씨의 매력이겠구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08:07   좋아요 0 | URL
그게 매력입니다. 지첵 아저씨는 늘어진 라운드티 입고 나와야지 지첵 같아요.
이웃집 아저씨 같아서 전 좋더라고요.
이번에 전주영화제였나요 ? 그때 상영했다고 하는데... 흠흠...
 

 

 

 

 

 

 

 

 

그녀 옆에 앉다

 

정호승 시인은 외로우니깐 사람이라 말하고 시인 침연은 외로우니깐 귀신'이라고 말했다 외로운 존재를 전제로 하자면 사람이나 귀신이나 모두 한통속이지만 나는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는 신파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귀신을 본 적이 있다, 홀로 서 있었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 내 눈 앞에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쓸쓸해 보였다 귀신은 눈을 마주친 사람도 없었고, 대화를 나눈 사람도 없었고, 어깨를 토닥여준 사람도 없었다 귀신은 온종일 혼자 말없이 서 있었다, 쓸쓸해 보였다, 외로워 보였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고독은 외로운 축에도 들지 못한다 인간이란 잠시 외로울 뿐이다 정말 외로운 사람은 미친 사람'이다 오래전 버스 안에서 미친 여자를 본 적이 있다 형색이 초라한 여자는 맨 뒷좌석에 앉아서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고, 말을 걸지도 않았으며, 옆에 앉아 그녀를 위로하지도 않았다 아, 저 외로운 짐승 귀신처럼 외로운 존재! 옆에 가서 앉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외로우면 광인이 된다 외로우면 귀신이 된다 당신은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페루는 곳곳이 토말/土末'이다.

 

페루'는 곳곳이 땅끝이다. 국경선도 땅끝이며, 해발 높은 고지도 땅끝이며, 벼랑도 땅끝이며, 마추픽추 돌벽도 땅끝이다. 심지어 페루의 중심인 수도 리마'도 땅끝이다. 그러므로 페루'에는 중심이 없다. 오직 끝만 있다. 그래서였을까 ? 로맹가리는 단편소설에서 < 리마에서 북동쪽으로 10킬로미터'에 위치한 작은 해안가 > 를 새들이 와서 죽는 무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곳은 새(들)의 끝'이다. 한때 홀려서 그곳에 간 적'이 있다. 해바라기 군락'을 보았다. 해바라기'가 피었다가, 졌다. 그곳도 끝이었다. 꽃대는 초식동물인 라마의 아킬레스'보다 질겨서 쉽게 꺾이지 않았고, 하늘에는 듬성듬성 새들이 수련처럼 떠 있었다. 문득 저 새는 새가 아니라 부레로 숨을 쉬는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늘은 푸른 바다이고, 지금 내가 발 디디고 있는 이 검은 땅은 심해 밑바닥 끝'이다. 페루는 모든 것이 온통 끝이다, 무덤이다, 죽음이다. 하지만 끝이란 절망 끝에 주는 작은 위로. 터널은 끝이 보일 때 환해지듯이, 종종 지긋지긋한 사랑의 끝이 보일 때 위로'를 얻는다. 페루라는 이상한 나라, 이 지독한 짝사랑.

.

 

 

 

편지를 쓴다 1 : 소설에 대하여...

 

새 편지지'에 글'을 쓴다. 종이가 구겨질까, 더러워질까 조심스럽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글씨체'가 예쁘지 않다고 생각되면 다시 쓴다. 그러니깐 당신에게 보낸 편지는 늘 몇 번의 실패 후에 보낸 편지'이다. 다시 편지를 쓴다. 구겨질까, 더러워질까 조심스럽다. 문장이 마음에 들거나 글씨체'가 예쁘더라도 틀린 문장을 발견하면 다시 쓴다. 조사의 쓰임에도 신경을 쓴다. < - 이 > 대신에 < - 은 > 으로 고쳐 쓴다. 이제 다 쓴 편지'를 편지봉투에 담아야 한다. 그때서야, 깨닫는다. 편지봉투에 담기 위해서는 애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지를 접어야 한다는 사실을 ! 접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접는다. 이 연서'가 당신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는 편지지'를 칼날처럼 선명하게 접어야만 한다. 접힌, 흔적. 그것이 바로 얼굴의 주름'이다. 접히는 아픔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름'은 누군가를 향해 편지를 띄운 흔적(들)이다. 이 세상 모든 연서'는 선명하게 접힌 종이'이다.

 

 

 

 

편지를 쓴다 2 : 시에 대하여...

 

손 편지를 써서 보내던 날들이 있었다. 편지를 쓰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편의점 영수증처럼 구겨서 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 가을비가 내리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구나 " 라는 문장은 " 어젠 가을비가 따스하게 내렸다 " 라고 고쳐 쓰다가, 다시 " 가을비가 내렸으니 이제 곧 겨울이 올 것이다 " 라고 수정했다. 하지만 이내 편지지를 찢고는 다시 " 가을비가 내리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다. " 라고 보내고는 했다.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는지 당신은 모른다. 사실, 그해 가을에 당신에게 보낸 한 장의 편지'는 한 권의 노트였다. 찢어서 버리고, 찢어서 버리고, 찢어서 버리고 남은 노트의 한 페이지'만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그 편지 한 장의 무게는 노트 한 권의 무게와 같았다. 가슴이 마른 여자를 보았을 때 오래전'에 당신에게 보냈던 편지'가 생각났다. 저 사람도 한때는 풍성한 가슴이었을 것이다. 찢고, 찢고, 찢고 남은 한 장의 가슴이리라. 파랗게 멍든 가슴이리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말라비틀어진 가슴이 아니라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편지이다. 소설가는 열 장의 종이를 찢어버리고 남은 한 장으로 소설을 쓰고, 시인은 백 장의 종이를 찢어버리고 남은 한 장으로 시를 쓴다.

 

 

 

 

당신이라는 여자, 밑줄을 그었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는다. 10년 전에 처음 읽고, 4년 전에 다시 읽었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펼친다. 그러니까 나는 십 년 동안 이 책을 세 번째 읽는 중이다. 곳곳에 밑줄이 그어진 문장이 보인다. 밑줄을 그은 것으로 보아 그 문장들이 < 의미심장 > 하다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때 그은 문장들은 모두 평범한 것(들)뿐이었다. 내가 왜 그 문장 밑에 밑줄을 그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책 속엔 10년 전에 그은 밑줄과 4년 전에 그은 밑줄과 오늘의 밑줄이 전봇대에 걸친 전선줄'처럼 엉켜 있다. 오늘도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낱말과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늘은 중요한 것이었으나 먼 훗날에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 되는 글 밑에 말이다. 내가 오늘 그은 문장은 4년 전에는 평범하다고 생각한 문장이었으며, 10년 전에도 모르고 지나친 것들이었다. 인생도 같은 순리'가 아닐까 싶다. 한때 한 여자를 사랑했다. 그 여자 밑에 밑줄을 그었다. 헤어지면 못 살 것 같아서 목놓아 운 적도 있다. 고래처럼 오래, 망망해서 울었다. 그 여자는 내 삶의 전부였으나 돌이켜보니, 그때 내가 그은 밑줄은 어쩌면 평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 없이는 못 살 것 같아서 손목을 밑줄처럼 그었으나 부질없는 짓.  이렇게 살아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는다. 그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밑줄을 긋지 않는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그러므로 살아 있으라. 그때 당신이 밑줄 친 미문은 그저 평범한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먼 훗날 깨닫게 된다.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잊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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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6-14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곳이 온통 끝이라니..
페루라는 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내년 쯤 페루나 갈까?

나도 밑줄긋듯 사랑을 하고 싶은데 그게 안돼.
결국 내 사랑들은 그때 그때 활활 타서는
돌아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어서 떠올릴래야 떠올릴수가 없음.
난 왜이렇게 소모적인 인생 뿐이 못사는 걸까.. 답답하다..곰발동생.
오늘 글들 참 멋지다. 일년만에 다시보는 글도 있어 새록새록 그러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04:44   좋아요 0 | URL
김신용의 시 중 가시'란 시가 있다. 아주 섬뜩한 시인데...
어제 이러저리 글을 모으고 정리하다가 문득 나란 인간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관계를 가시'로 정의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몹시

웃으면서 코 팠지. 울면서 코 파면 추잡스럽잖냐..

2013-06-14 0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14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6-1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등 뒤에 주름을 데리고 있다 하여 반기지 못할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차라리 움푹 패인 흔적을 인내하지 보톡스 한 방으로 해결되는 잔주름은 손사래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4 14:52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등 뒤에 주름이라.. 흠흠... 생각할거리'를 주시는군요. 전 등과 주름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히히 님... 그나저나 히히 님도 알라딘 하나 만드십셔 ~

소나기 2013-06-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굴 주름은 그가 마주쳤던 많은 사건들과 타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씨실과 날실의 얽힘으로 서로의 얼굴에 주름으로 남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6-15 04:19   좋아요 0 | URL
전 이상하게 주름이 많은 사람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말이죠...
깊은 주름은 늘 현자에 대한 상징'이었어요. 내가 만난 사람은 교양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인간적 매력 자체만으로 보았을 때 멋진 주름은 인간적인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