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어람미디어 vs 사흘
폐족'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인물은 노무현'이 아니라 정약용 가문이다. 명문가는 하루 아침에 폐족이 되어 귀양을 떠나야 했다. 후에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돌아와 명예를 회복하고 천수를 누렸으나,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生을 마감한다. 방대한 저서를 후대에 남긴 동생 정약용과는 달리 형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남긴 것은 몇 권이 안 된다. 그중 하나가 < 자산어보 > 다. ( " 유배지에서 남긴 그의 저서로는 『자산어보』와 함께 정부의 소나무 정책에 대해서 쓴 『송정사의』와 우이도에서 홍어를 유통하던 문순득이라는 사람이 바다에 표류하였다가 오키나와, 필리핀 등을 거쳐 4년만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것을 듣고 저술한 『표해록』등이 있다. " 고 합니다. )
조선 시대 가장 명민한 선비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물고기와 하루 종일 놀다가 쓸쓸히 귀천하였다. 이태원의 < 현산어보를 찾아서 1,2,3,4,5 > 는 정약전이 기록한 흔적을 찾아떠난 기록'이다. 이 책은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단 지은이'는 200년 전 정약전이 쓴 < 자산어보 > 에 나오는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리고는 흑산도의 어류 생태'를 관찰한다. 정약전이 본 물고기와 저자가 본 물고기'를 통해서 저자는 200년 전에 흑산도에서 쓸쓸히 죽어간 정약전과 소통한다.
여행기행문이면서 동시에 생태학이면서 도감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약전 선생의 평전으로 읽어도 좋다. 욕심을 조금 더 내자면 메타 픽션으로 읽어도 좋다. 여기에는 저자가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취재한 땀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7년이라는 긴 세월이 묻어 있다. 노력은 작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400컷에 가까운 세밀화와 800컷이나 되는 사진, 그리고 섬세한 레이아웃은 출판사'가 이 책에 헌신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좋은 책은 출판사가 만든다. 그리고 좋은 독자'라면 적어도 이 책은 읽어야 한다.
종종 작가가 쓴 글은 뛰어난데 출판사 때문에 욕을 먹는 책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제프 다이어가 쓴 < 지속의 순간들 > 이다. 사진 에세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진'이다. 대부분 사진이 가로가 길고 세로가 짧은 직사각형 행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책이 선보인 판형은 끔찍한 것이다.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판본과 거의 흡사하다. 비교를 해보니 가로 크기'가 동일하다. 그러니깐 독자가 흔히 접하는 일반 판형보다 가로 폭이 좁고 세로가 길다는 말이다. 내가 이 판형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이유는 가로 폭이 좁기 때문에 책 속에 삽입된 사진이 상대적으로 작게 인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132mm 라는 가로 폭에 사진을 맞추다 보니 사진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든 것. ( 이 책을 번역한 한유주의 이상한 번역체'는 일단 논외로 하자. )
의문점은 왜 굳이 일반 판형도 아닌 변형판으로 책을 뽑았냐는 것이다. 시각 이미지가 강조되는 책'들은 대부분 가로 크기를 키운다. 어린이 그림책 판형을 보면 알 수 있다. 상당수의 그림책은 길쭉한 직사각형보다는 정사각형에 가깝다. 그 이유는 이미지'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출판사 < 사흘 > 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평범한 영화 감독은 훌륭한 대본으로 형편없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지만, 그 아무리 뛰어난 감독이라고 해도 형편없는 대본 가지고는 훌륭한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충무로에 떠도는 이야기'이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출판사는 좋은 책을 형편없는 책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청어람미디어'에서 나온 이 책은 명불허전이다. 야구에 빗대서 말하자면 구단 선수들도 열심이지만 구단 또한 열정'적으로 참여한 결과이다. 그나저나 LG는 가을 축제에 나갈 수 있을까 ? 가을 축제에는 전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야구도 있다. 십 년 넘게 기다렸다. 이젠 지친다.
숭어'에 대한 불편한 진실
물고기 이름은 주로 - 치'와 - 어/魚'가 많다. 물고기 이름이 궁금하여 " 내가 제일 잘 나가 ! " 라고 외치는 지식인'들에게 물어보니 < ~ 치 > 는 순우리말로 물고기를 나타내는 종결형'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치'로 끝나는 물고기 존함'이 모두 순우리말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멸치'에서 멸'은 업신여길 멸'이거나 멸할 멸'로 기록되어 있으니, 옛사람들은 몸집이 작다고 해서 제대로 무시한 것 같다. 그리고 꽁치'에서의 꽁'은 아가미 근처에 구멍이 있다고 해서 빌 空'와 합쳐져서 꽁치'가 되었다고, 그런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객관적 사실'이다. 자, 지금부터 쓰는 글은 모두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추론이다. 일리'있는 추론이라면 열렬한 박수를, 황당하다고 생각하면 신랄하게 반론을 제기해도 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 ~ 치 > 로 끝나는 물고기 이름은 가장 오래된 원형'에 가깝고, < ~ 어 > 로 끝나는 이름은 " 원형의 변형 " 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의문을 갖는 것은 멸치와 꽁치'에서 보듯이 왜 한글과 한자'가 혼용되었을까, 였다. 멸치에서의 멸이 한자 滅/蔑'이라면 뒤에 오는 치' 또한 -魚'로 불려야 하는 것이 상식적인 것이 않을까 ? 물론 무슨무슨 어보'에는 멸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생활 입말'에서는 멸치'가 대세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 아... 궁금해서 미치겠군요. 나의 시냅스는 똥구멍에서 등골을 거쳐 빠르게 간뇌'와 소뇌를 거쳐 측두엽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과연 이 미스테리를 풀 수 있을까 ?
답은 간단하다. ~치' 대신 ~어'로 부르기 싫은 것이다. 물고기 이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양반 사회의 더러운 차별주의를 엿볼 수 있다. 사실 그 시대 양반 사회'에서는 양반이 아닌 하층민'에게는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이 없었다. 이름이 있다 해도 그저 개똥이, 간난이, 몽실이, 순둥이'라고만 불리웠을 뿐이다.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름은 어느 정도 신분이 보장될 때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잘난 양반'들은 멸어 대신 멸치'라고 부른 것이다. 그들은 공자 맹자 순자 덕자'를 외치며 어른 행세를 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굉장히 저질이었다. 몸집이 작다고 멸해도 된다고 정의하다니 !
어, 어, 어자로 끝나는 이름은 많다. 양반들은 어떤 물고기에게는 어'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어떤 물고기에게는 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그 기준이 무엇일까 ? 여기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우선 대부분 ~ 어'로 끝나는 물고기는 잘생겼다. 잘생긴 물고기의 대표적 존함이 바로 < 숭어 > 다. 몸집이 작다는 이유로 멸치의 멸을 멸할 멸'로 부르더니, 잘생긴 숭어'에게는 숭배할 숭'자를 써서 숭어'라고 부른다. 물고기 세상에서는 원빈 정도 된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키에, 날렵한 유선형의 몸매, 초롱초롱한 눈. 누가 봐도 잘생겼다. 보면 꼴린다. 맛도 좋다. 씹으면 달큰하다. 아, 아아아. " 씹 " 으면......
그러니깐, 이름에 - 魚'가 들어간 물고기는 숭어'를 표준으로 해서 유전적으로 보기 좋은 물고기'에게 한자 이름을 하사한, 일종의 외모 지상 주의적 발상'인 셈이다. 이처럼 < ~ 어 > 라는 지위'를 얻기 위해서는 유선형 몸매를 유지해야 하고, 유선형이라고 해도 몸집이 너무 크거나 작아도 안 되는 것이다. 숭어보다 조금 크거나 작아야 한다. 개복치는 몸무게가 300킬로그램이 넘는 거대 복어과의 물고기인데 몸집이 크다고 개- 자를 붙여서 " 개복치 " 라고 부르고, 멸치는 작다고 죽어도 좋은 놈으로 정의한다. 참치는 유선형의 몸매이나 덩치가 크다고 < ~ 어 > 라는 감투를 못 받고, 넙치는 넙적하다고 탈락된다. 갈치는 어떤가 ? 길쭉하게 생겨서 탈락이다. 색깔로도 차별을 했다. 가물치는 검다고 가물치'라고 불렸다. 하물며 못생긴 꼼치와 아귀는......
피는 못 속인다고 작금의 성형 열풍은 다 그 옛날 어르신의 외모를 중시하는 DNA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아귀의 몸값이 비싸다는 사실을, 재수없다고 버리던 물텀벙이 맛이 좋다는 사실을, 감자와 무를 넣고 간장에 칼칼하게 조린 갈치 조림에 침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그 양반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멸치'는 국물을 낼 때 없어서는 안 되는 생선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여기에는 한글을 경시하고 한자를 숭배했던 사대주의자들의 볼썽사나운 꼰대 정신'을 엿볼 수 있어서 불편했다. 그것이 바로 기득권이 어떻게 대중을 기만하고 멸시하며 조롱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리사를 굳이 쉐프'라고 부르는 욕망과 무엇이 다를까 ?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말하면 와, 와와와와와 하는 천박한 리액션'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영어, 몰라도 된다. 혹시... 영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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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 사람 > 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 저런 치들과 놀아나지 마라 " 할 때의 그 < 치 > 다. 양아치, 장사치 할 때의 - 치' 또한 대상을 낮게 볼 때의 의미'다. 양반들이 보기엔 자신이 속한 계급을 제외하면 모두 천박한 치'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물며 비린내나는 생선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물고기를 처음에는 싸잡아서 ~ 치'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 치' 중에서 보기 좋은 놈들은 골라서 ~ 魚' 라는 한자를 하사했다. ( 치와 어'의 분류가 비늘이 있고 없고 에 따라서 구분되었다고 주장도 있다. ) 하여튼 이 의도적인 이분법적 분류에는 한자 사대주의가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