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관전서 세트 - 전13권
이덕무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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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첫사랑은 모두 독이다.

 

아름다움이란 우리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함으로

- 두이노의 비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

 

 

황석영이 몽골 대연합을 주장하고 김지하가 율려운동이라는 범우주론을 제시했을 때, 나는 웃으면서 코 팠다. 꼴사나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구호가 거창할수록 가짜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시아 대연합론이나 범우주론은 얼핏 보기엔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뜬구름 잡는 헛것이다. 두 거목은 이러한 거대 담론이 자기 몸에 맞는 옷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이 정도 수준은 되야 내 품격에 맞다는, 일종의 허세가 작용한 탓이다. 누누이 지적하지만 미시적 비판은 쪼잔한 것처럼 보이고, 거시적 비판은 거창한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 새정치 > 는 거시적 비판이다.

 

인간 존중 사회, 특권 없는 사회, 공정 사회, 신뢰 프로세스 등 또한 모두 거대 담론이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있을까 ? 아무도 없다. 여기에는 이데올로기적 색깔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확장된 범위를 좁히면 충돌이 된다. 무상급상, 수도 이전, 제주 해군 기지 건설 등등. 사실 여기까지도 범위가 넓다. 이 범위를 더 좁혀보자. "화장실에서 똥 닦은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지 말고 변기 안에 버리자. 개새끼들앙 ! " 이라거나, " 데이트 비용은 각자 추렴하자, 개새끼들앙 ! " 이라고 하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안철수 같은 분들은 결코 화장실 휴지 문제나 데이트 비용 쪼개기'에 대한 이의 제기'는 하지 않는다. 왜냐, 쪽... 팔리니깐.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지식인이 있었다. 김수영 시인'이다. 그는 지식인들이 항상 거창한 것에만 문제를 제기한다고 지적한다. 생활인으로써의 지식인은 없고 온통 민주, 평화, 자유와 같은 투사 이야기만 쏟아낸다고 비판한다. 그가 보기엔 한심한 것이다. 한국 문단에서 가장 위대했던 이 시인'은 에세이'에서 온통 쪼잔한 일상을 쏟아낸다. 가난 때문에 쪽팔리다는 말은 해도 가난 때문에 넉넉한 삶이오, 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는 " 나는 왜 쪼잔한 것에만 분노하는가 ! "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김수영을 대신해서 내가 속 시원히 한마디 하련다. " 글 좀 쓰는 문인이라고 하는 양반들, 김수영이 쓴 글은 읽어봤냐, 개새끼들앙 ! "

 

한국 문단 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이도 김수영이었다. 등단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것이다. 없어져야 할 제도라는 지적과 함께. 그 스스로도 등단 작가이면서 말이다. 등단 작가 중에서 한국 등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는 김수영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가 지금 쓰고자 하는 이는 김수영이 아니라 이덕무'라는 선비이다. 현대사에 김수영이 있다면, 조선사에는 이덕무와 같은 백탑파'가 존재했다. 조선 선비들이 사상과 선비로서의 자세에 대해 글을 쓸 때, 이덕무라는 선비는 신변잡기에 대한 글을 썼다. < 이목구심서 > 는 잡다한 것투성이'다. ( 박물학적 글쓰기의 결정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아닐까 ? )

 

쥐가 닭 똥구멍을 갉아먹는 이야기, 지네가 뱀 몸속에 들어가 뱀을 죽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사대가 양반들이 보기엔 잡문이요, 신변잡기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 작품이야말로 위대한 작품이다. 그는 박학다식했으며 박물학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다. 耳目口心書라는 책 제목이 말하듯이 그는 공자, 맹자 같은 뜬구름 잡는, 뽐나는 사상을 말하기보다는 그냥 자신이 듣고, 보고, 마음이 동한 것'들에 대한 담담한 것만을 적는다. 적어도 알지도 못하면서 구름 위를 걷는 짓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내가 < 이목구심서 > 에서 흥미롭게 본 대목은 뱀과 지네'에 대한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지네-포비아'라고 할 만큼 지네를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다리 없는 무지류에 대한 애정 ( 지렁이를 직접 키웠다. ) 은 다지류에 대한 혐오와 공포'로 전이된 탓이리라. 하여튼.... 다지류 가운데에서도 지네는 범접을 할 수 없는, 절대적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짐승이었다. 지네를 보면 사람들은 오금이 저린다. 땀이 나고, 호흡이 빨라지며, 무서워서 몸이 굳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토록 무서운 존재이면서도 지네를 계속 보게 된다는 점이다.

 

이 지네- 포비아'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나는 한 여자'를 우연히 보았다. 땀이 났다. 호흡이 빨라졌다. 모든 시간은 멈춘 채 동상처럼 한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 토록 무서운 존재.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지네를 무서워하는 것은 사실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나는 지네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첫눈에 반한 거라고 말이다. 매혹적인 주체는 모두 독을 가지고 있다. 조인성과 송혜교는 아름다운 얼굴이 아니라 독을 가진 얼굴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런 경험들. 그래서 나는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에 다음과 같이 쓴다.

 

지네 : < 동물 > 지네강의 절지동물을 통들어 이르는 말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그 마디마다 한쌍의 밭이 있다. 다리에는 한 쌍의 더듬이와 독을 분비하는 큰 턱이 있고 눈은 없거나 네 개의 홑눈만을 가지고 있다. 붉은 색일수록 독이 강하다. 축축한 흙에 살고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데 전 세계에 2000여 종이 분포한다. [ 비슷한 말 ] 첫눈에 반한 사람 : 실패한 첫사랑은 모두 독이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형설시공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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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5-23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이지 지네님의 위엄 앞에 바퀴쯤이야...
처음 글을 접했던 순간부터 팬이었지만, 곰곰발님 글은 싸지르듯 쓰신 글들까지 좋아하지만
어제 오늘처럼 조금은 정색하면서 쓰신 글들이 전 참 좋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3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벽 님 저의 본질을 꿰뚫고 계십니다. 저 싸지릅니다...ㅎㅎㅎㅎㅎ

새벽 2013-05-24 03:2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제가 감히 곰곰발님 본질을 꿰뚫다니요. 거기까진 아닌 것 같구요.
제 표현이 좀 부적절하고 경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암튼, 어느 쪽이든 독자로서의 제겐 좋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4 07:3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정확히 보신겁니다. 싸지르는 거 저 좋아해요.
제가 무슨 이런 표현에 꽁하고 그러겠어요.. 하하하.. 정마 전 싸지르는 거 좋아합니다.

2013-05-24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3 21:09   좋아요 0 | URL
사실 독은 모두 약입니다. 약초는 본질적으로 독이잖아요.
적당한 약초는 약이 되지마 과하면 독이 됩니다.
문득 지네 생각ㅎ다가 오래 전에 써둔 글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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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스 벗고 덤벼라 : 윤창중 사태'에서 희망을 보아야 하는 이유.

 

윤창중은 빤스'를 벗었다. 거두절미하고... 아무래도 그는 기자 생활을 너무 열정적으로 해온 탓에 영화 관람 같은 문화 생활을 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던 듯하다. 공포 영화 몇 편'만 보았어도 국제적 개망신'은 피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공포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피 범벅 난도질 영화가 주는 교훈은  집 밖에서는 빤스를 내리지 마라, 이다. < 할로윈 > 이나 < 13일밤의금요일 > 같은 영화에서 잔인하게 죽는 사람은 항상 무리에서 벗어나서 으슥한 곳에서 빤스를 내리는 남녀'가 아니었던가 !  이들 영화에서는 빤스를 자주 내리는 남자와 브래지어를 자주 풀어헤치는 여자가 제일 먼저 죽는다. 반대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대부분 금욕적인 사람이다. 우리 빤스까지는 내리지 말기로 해요 ! 아흥.

 

" 꼴리면 죽는다 " 는 서사는 신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기나 덴타타 신화/ 이빨 달린 질' 가 대표적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메두사 신화'일 것이다. 프로이트는 남자들이 메두사를 보면 돌처럼 굳어서 죽는 현상을 < 페니스의 발기 > 라고 설명한다. 타당한 접근이다. 자세히 보면 메두사는 여성 성기'를 닮았다. 메두사 얼굴은 촉촉한 검은 구멍이고, 뱀은 여성 성기 주변에 웃자란 거웃이다. 메두사는 바기나 덴타타이다. 이 신화를 변형해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각색해서 성공한 작품이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 링 > 이다. 영화 속에서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검은 우물은 말 그대로 촉촉하고 검고 깊은 구멍이다. 이 영화에서 링 바이러스'에 감염된 비디오를 보는 사람은 모두 딱딱하게 굳은 채 죽는다. 곰곰생각하는발이란 녀석이 근본없는 태생임을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서 한 마디 하련다. " 링은 성병에 대한 공포를 다룬 영화다. 링은 여성 성기를 의미하고, 바이러스는 성병 병원균을 의미한다 !!   " 이처럼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 미국에서 빤스 벗고 주접 떤 사건 > 으로 윤창중은 단칼에 갔다 !  그가 슴가 속에 품은 에로스는 타나토스로 연결이 되었다. 윤창중이 공포 영화에서 이 메시지'를 깨달았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포영화, 꽤..... 좋은 장르다. 무시하지 마라.  만약에 내가 감독이어서 이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로 각색한다면 제목으로 < 개새끼들아, 빤스 벗고 덤벼라 ! > 따위로 짓겠다. 블랙코미디 장르로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누가 될까 ? 문제는 주인공이다. 윤창중일까 ? 아니면 ( 윤창중 식으로 ) 가이드일까, ( 박근혜 식으로 ) 해외 동포 학생'일까 ? 나라면 문화원 여직원'을 주인공으로 선택하겠다. 핵심은 윤창중이 아니라 문화원 여직원'이다. 그녀는 작은 영웅이다. 불의에 분노한 내부 고발자이며 정의를 알리기 위한 공익 제보자'이다. 만약에 당신이 문화원 여직원이라고 하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사표까지 던지고 불의에 대항한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피해자의 불행에 함께 분노하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린 용기'야말로 아름다운 용기'다.

 

언론은 온통 윤창중과 피해 여성에게만 촛점을 맞추고 있을 뿐, 불의에 대항한 한 여성의 용기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언론의 생태적 천안함이다. 오타다, 천박함이다. ( 천안함, 아님 !! ) 내가 아는 선에서는 이 공익 제보자에 대한 용기를 조명한 기사나 사설'은 찾아볼 수 없다. 사회적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느니, 나라 망신이니 그만하면 됐다는 논조가 슬슬 기어나온다.  내부 고발자, 공익 제보자를 대하는 삐딱한 자세'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삐딱함에는 감춰도 될 것을 중뿔나게 설치고 다닌 문화원 여직원에 대한 원망도 섞인 것처럼 보인다. 국익을 위해서는 사소한 공익은 은폐해도 좋다는 사회적 동기가 암암리에 작동한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좋은 태도가 아니다. 국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해야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애국심은 타자가 보기에는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일본 식민지 시대를 떠올려 보라. 일본 입장에서 보면 일본군의 용맹은 애국심이 되지만 식민지 국가로 전락한 한국인이 보기에는 군국주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당신이 하면 불륜이 되는 것이 바로 애국주의'이다. 문화원 여직원은 국익보다는 공익'을 선택한다. 그녀는 정의를 위해서 사표까지 던진 것이다. 번데기보다 뻔뻔하고 쫀드기보다 쫀쫀한 우리는 늘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외면했던 불의를, 그녀는 정면으로 직시한 것이다.

 

허먼 멜빌의 눈부신 걸작 < 필경사, 바틀비 > 에서 바틀비'는 항상 " i would prefer not to ~ " 라고 말한다. 문법적으로나 통사적으로는 딱히 틀린 문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연스러운 문장도 아닌 이 상투어를 번역하면 " 차라리 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시렵니다아아아앙. " 정도가 될 것이다. 그는 상사에게 웃으면서 개긴다. 상사가 이것 하라, 라고 주문하면 웃으면서 " 차라리 하지 않으렵니다. 잇힝 ! " 하며 코판다. 하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말투에는 핵심을 찌르는 화두'가 숨겨져 있다.  바틀비의 불복종을 단순한 거부이거나 게으름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왜냐하면 바틀비는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 하는 것 > 과 < 안 하는 것 > 사이에서 심사숙고 끝에 < 안 하는 것 > 을 선택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乙인 바틀비는 ( 甲인 상사의 명령에 대항하여 ) 소극적 거부 대신 적극적 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 선택 " 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출판사 책 소개'에서는 바틀비가 취하는 태도를 소극적 저항이라고 했는데, 왜 이러한 태도가 소극적 저항인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신이라도 해야 적극적 저항으로 인정해 줄 것인가 ? ( 피식 ) 웃으면서 코 판다. 바틀비는 할 건 다 한다. 해고에 저항해 출근 투쟁을 벌이고, 단식 투쟁'도 마다하지 않는다. 바틀비가 거부하는 것은 상사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에 대한 거부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을 거부한다는 것은 니체가 신은 죽었다, 라고 말한 것과 유사하다. 갑을 향한 빅엿'이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68737  : 필경사 바틀비.

 

문화원 여직원은 국익보다는 공익을 선택했다. 甲 입장' 에서 보면 그녀의 태도는 적극적 거부'에 해당한다. 명령 불복종이다. 그녀가 사표를 던졌다는 사실은 윗선에서 강압'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사표란 결국 불복종에 대한 강한 의사 표현이 아니었던가 ? 아마도 정부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쉬쉬하는 차원에서 막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국익이라는 거대한, 정말 거대한 甲 앞에서 쫄지 않을 소시민 乙이 있을쏘냐.  더군다나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 여성이여, 군대에서 딱총은 쏴봤냐잉? " 보잘것없는 여자가 방미/ 訪美 를 불미/不美'로까지는 번지게 하지는 않으리라, 라는 수컷들의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을 했을 거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녀의 이름이 바틀비였다는 사실을.

 

한국 사회는 내부 고발자나 공익 제보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북아메리카나 유럽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시츄에이션이다. 한국에서 영웅은 김연아나 박세리 같은 스포츠 스타이지만 북아메리카나 유럽 국가에서는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자를 영웅 취급한다. 문화적 차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만 자랑할 만한 문화적 차이'는 아닌 것 같다. 김연아는 개인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 빙판을 달렸고, 추신수 또한 부와 명예를 위해 방망이를 휘두른 것뿐이지 애국심과는 관련이 없다. 외화벌이'를 했으니 애국했다'는 주장은 매우 낯익은 기시감을 전해준다. 그렇다, 북한의 태도와 다를 것이 없다. 도토리 키재기다.

 

노무현은 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것은 상부의 권력 구조가 매우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안철수를 믿지 않는 것만큼 문재인도 믿지 않는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의도는 없다. 그들이 상부 권력에 대항하기에는 벽은 지나치게 딱딱하게 고착화되어서 부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위에서부터의 개혁이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의 실패가 그 예이다. 오히려 희망은 아래로부터의 딴지'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문화원 여직원이 내린 용기가 좋은 예이다. 남양유업 사태에 대한 乙의 단결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창대'는 미미한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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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 2013-05-2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뻥~~~ 유쾌 상쾌 통쾌
위에서부터의 개혁은 강령, 명분만을 내세울 뿐이고...
맞아요 참 맞아요 아래로부터의 갈망정도에 따라 새벽이 오지요.
곰..발님 100표 아니 하늘 만큼 땅 만큼 표 꾸욱.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11:53   좋아요 0 | URL
음... 하늘 땅 만큼 표 주욱 대신.... 감사 표시로
광화문에서 만세삼창 10번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9시 뉴스로 확인하겠습니다.

히히 2013-05-2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엥@@
여서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하지 싶은데...
주소를 알면 울동네 특산물인 미더덕을 보낼 수는 있삼요.
눈 보다는 입이 행복해지리라.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23:14   좋아요 0 | URL
미더덕이라... 흠냐... 후르릅... ㅎㅎㅎ.
안됩니다, 만 !!!! ( 요거 직장의신 컨셉입니다. )
반드시 광화문에서 홀랑 옷 벗고 만세삼창 하십시요 !

새벽 2013-05-21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감 또 공감.. 근본적으로 밑으로부터의 사고, 체제 전환 없이 세상이 변하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밑, 서민 혹은 보통 사람들, 을의 가치와 행동 메커니즘이 갑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회의적인 게 늘 저의 문제..
참, 무슨 일이 있어도 필경사 바틀비는 반드시 읽겠습니다.
(기왕이면 이참에 모비딕도 청소년 문고판 말고 제대로 된 번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지만 과연... ;;)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23:15   좋아요 0 | URL
모디딕... 좋습니다. 하지만 엄청 지루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읽고 나면 엄청난 감동이 몰려옵니다.
아마, 타임캡슐에 들어간 한 권의 소설은 아마도.... 모비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
전 퇴근하겠습니다.

새벽 2013-05-22 00:0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음.. 네이버와 알라딘의 미쓰김 곰곰발님의 퇴근을 늦추려면 시간외수당을 지급해야 하는 건가요.. -_ㅜ

말씀 들으니 겁보다 기대감이 더.. :)
저는 아주 얇은 축약판으로 오래 전 읽었으니 읽은 것이 아니고
존 휴스턴 감독이었나요, 영화를 보긴 봤는데 암튼..
여러 개인적인 오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모비딕은 꼭 제대로 읽어봐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2 09:59   좋아요 0 | URL
어제 드디어 미스김이 끝났군요. 원래 마지막 회란 그냥 보는 것...ㅎㅎㅎ.
전 1회부터 12회 정도까지가 제일 재미있더군요. 1회는 정말 한편의 코미디 영화였습니다.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 만 !!!!!!!!!!!!!!!!!!!
됐고.... 전 이제 출근합니다.
 
오소리 입말 사전

 

 

 

 

오소리 입말 사전 : 乙은 새다.

 

소율이 쓴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10년 동안 총 124부가 팔렸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팔린 책 가운데 100부'는 출판사가 사재기'를 해 충무로에 위치한 회사 창고에 쌓아두었는데, 그나마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결국은 24권 정도만 팔린 것이다. 그렇다고 24권이 다 팔린 것도 아니다. 사전을 집필한 소율 본인이 보관 및 선물용으로 구매한 책이 20권이니 실제로 팔린 책은 4부가 전부다. 그는 온몸을 바쳐 쓴 책-사전'이 외면받는 현실에 실망하여 자신이 선물로 나눠준 책을 모두 수거한 후 책을 불태운다. 천박한 독서 문화와 개 같은 독자를 향한 소리없는 항의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소율은 술만 마시면 " 더러운 독자여, 언니의 독설 같은 책이나 읽다 죽어라 ! " 라고 외쳤다고 한다. 설상가상 이 책을 출간한 형설시공사도 화재로 재고를 쌓아둔 창고가 소실되는 바람에 인쇄 필름 원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잔인한 비극이다. 행운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공교롭게도 나는 이 위대한, 절판된 책-사전'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이 책을 소유한 책 주인을 찾아다녔다. 그들에게 나는 죽음의 사자였다. 그들은 오로지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살해되었다. 그렇다, 나는 에코의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눈 먼 호르헤 수사'였다.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책사전 : 소설과 사전이 혼합된 형식이다. 소율의 글쓰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사전은 매우 독특하다. 기존의 사전 분류, 체계, 기표, 기의'를 180도 뒤집는다. 이 전복성은 지금까지 자리잡았던 언어체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보자. 민중사 판 국어사전에서는 < 희한하다 > 를 " 매우 드물거나 신기하다. " 로 정의하고 있으나, 형설시공사 판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에서는  < 희한하다 > 라는 형용사에 대한 정의를 " 히읗'이 연속적으로 3개'가 이어져서 보기 드문 형용사 " 라고 기술한다. 이러한 전복적 정의'는 단어가 맺고 있는 관계를 허물고 새로운 짝을 맺어준다. 민중사 국어사전'은 < 희한하다 > 와 비슷한 단어로 < 놀랍다 > 를 선택했지만, 형설시공사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은 < 희한하다 > 와 비슷한 단어로 < 두덜대다 > 라고 말한다. 디귿'이 연속적으로 3개가 나열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희한하다 > 라는 낱말과 비슷한말은 < 두덜대다 > 이다.

 

■ 두덜대다 : 남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자꾸 불평을 하다

 

< 두덜대다 > 는 결국 < 혼잣말하다 > 와 상황이 유사한데, 우리는 흔히 < 혼잣말 > 하는 사람을 정신이 이상한 자 혹은 희한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가. 광인이란 본질적으로 타자와 소통을 거부한 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odd 다. 그렇기 때문에 희한하다와 두덜대다는 한 뿌리이다. 소율은 < 희한하다 >의 뿌리말'까지 추적하여 기술한 것이다.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단어와 단어가 맺는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단어는 < 갑 > 에 의해 쓰여진 불평등한 관계라고 지적한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이전'은 모두 갑의 시선으로 작성된 관계로, 갑은 철저하게 을을 조롱하며 파괴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 새되다 > 다. 싸이가 " 나 완전히 새 됐어 ! " 라고 외칠 때, < 새 > 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 부정적 언어'로 쓰인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짐승 중에서 < 새 > 인가 ?! 쥐 됐어, 소 됐어, 따위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 이러한 의문점을 소율은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 이 사전이 1999년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율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사전에서 부분 발췌한다.

 

" 나, 완전히 새 됐어 ! " 에서 새 됐어'는 좆 됐어'라는 말을 순화한 것이다. < 좆 > 은 남성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인데, 주로 부정적 의미로 신분이 미천하거나 비하할 때 쓰인다. 좆만 한 새끼, 좆 까라, 니미 좆이다, 8월의 물렁 좆, 좆도 없는 놈으로 활용되고, 존나, 졸라 등으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이 걸죽한 입말에서 좆은 새로 치환된다. 좆 = 새'다. 그렇다면 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우리가 흔히 갑과 을'이라고 할 때 쓰이는 한자 乙에 정답이 있다. 乙이라는 한자 뜻은 새(bird)다. 새 乙이다. 결국 새 됐어, 좆 됐어, 따위는 乙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단어는 갑 중심이다. 21세기는 갑과 을이 대립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형설 시공사. 1999

 

甲은 갑옷 갑이고, 乙은 새 을'이다. 그러니깐 갑은 무거운 것을 의미하고, 을은 가벼운 것을 의미한다. 소율은 이 지점에서 가벼운 존재에 대한 갑의 무의식적 경멸을 읽는다. 대표적인 낱말이 벌레'다. 벌레는 가볍다는 이유로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율은 새 = 좆'을 동일한 범주로 묶은 후 언어적 폭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요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밝혀낸다. 여기서 남근과 좆'은 다르다. 남근은 권력을 의미하고, 좆은 권력이 거세당한 대상을 의미한다. 비주류다.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갑은 좆을 새와 동일한 범주에 놓는다. < 새되다 > 가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여성적인 남성에 대한 조롱처럼 읽힌다. 새란 여성성을 대표하는 대표적 짐승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마초인 갑은 비주류를 항상 폭력적으로 다룬다. 그 흔저은 고스란히 사전에 침투하였다는 것이 소율의 주장이올시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놀랄 만한 책이다. 김훈이 쓴 < 칼의 노래 > 가 벼락 같은 축복이라면, 소율이 쓴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개벽 같은 출현이라 할 만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사전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 단 한 권의 책을 타임캡슐 안에 넣어야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위대한 책이다.

 

 

 

+

■ 을씨년스럽다 : 을씨년은 '을사년(乙巳年)'이 변해 생긴 말이다. 을사년(1905년)은 우리나라가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정치가 실시된 해다. 즉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었으므로 을사년은 민중들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해인 것이다.그래서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릴 때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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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5-20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고 있는 society(community) 중 가장 개방적인 것이 알라딘입니다. 저는 알라딘 시작할 때 '나는 안티 페미니스트다'라는 글로 시작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4:46   좋아요 0 | URL
저도 교보문고, 예스24, 인터파크에서 책 주문하다가 알라딘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책값이 가장 저렴해서가 아니라 리뷰가 가장 좋더라고요. 알라딘 리뷰는 뭔가 좀 믿을 만한 구석이 있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용한지 한 5년 되네요... 그나저나 안티 페미니스트였군요.. ㅎㅎ

마립간 2013-05-20 15:56   좋아요 0 | URL
저는 페미니스트(여성주의)도 편향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양성 평등/공정 주의자죠. 여성에 반대하기 보다 편향에 반대한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6:14   좋아요 0 | URL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성으로서의 입장과 지지'는 좋은데, 그것을 극단적으로 여성의 적은 남성이다, 라는 식으로 몰가가면 ( 물론 그렇지는 않지만... ) 그건 참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새벽 2013-05-2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평소 싸이 노래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 완존히 새됐어~♪ 가 새로이 들리는군요. :)
싸이.. 을의 정서를 이용해서 갑이 되다니.. 하하.
그러고 보니 히치콕의 새,도 을의 역습으로 볼 수 있는.. (읭?)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1 00:57   좋아요 0 | URL
읭?! ㅎㅎㅎㅎㅎㅎㅎ.
어쩌면 싸이의 새'는 갑과 을의 대립을 다룬 최초의, 아니다... 최초는 아닌 것 같습니다.
최초는 빈대떡신사'가 있지 않습니다. 두 번째 시사 노래'인 것 같습니다.
싸이'를 한 글자로 줄이면 쌔' 잖아요. 강낭스타일도 가만 보면 갑을 조롱하는 것을 담고 있고 말이죠..

히히 2013-06-19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덜대다 - 혼잣말 - 희한한 --> 희한하다
여기에 '옹알이하다' 추가요.

딸들이랑 차에서 연상놀이를 즐겼는데
귀,옹달샘, 스웨터 ------ 토끼
칼,토끼,김수현 ------ 초승달
독,잘못, 아이폰 ----- 사과
우유, 고무, 메주 ----- 치즈

또는 세명이 단어를 하나씩 내뱉습니다.
엄마, 라면, 비행기하면
아마도 저는 파마 - 보글파마하면 머리카락이 너풀거려서
작은 딸은 음식 - 기내식
큰 딸은 최고 - 좋아하는 라면을 엄마가 끊여주면 기분 날아간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6-20 07:53   좋아요 0 | URL
오홋... 세 단어 연상 게임 재미있습니ㅏ.
이게 아이들에게 엄청 도움이 될 거예요.
결국은 창조는 연상입니ㅏ
연상이 기본이 되야 골때리는 발상이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옹알이... ㅎㅎㅎㅎ. 요것도 있었군요. 세 개 연속으로 나오는 단어가 또 뭐가 있을까요 ?
 
갑질 사회 : 완장은 문신이다 !

 

 

 

 

 

 

 

 

 

 

 

 

 

 

 

 


 

 

 

낙지 사회 : 내 죽음을 족구'하지 마라 !

 

 

포크와 나이프가 암시하듯이 중세 때에만 해도 서구인의 식탁에는 동물이 통째로 올라오곤 했다. 동물의 사체를 해체하는 일이 식탁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7세기만 해도 통째로 올라온 고기를 손님들에게 칼로 잘라 나눠주는 것이 집주인의 영광으로 여겨졌다. 문명화 과정을 통해 동물 해부는 부엌에서 이뤄지고, 식탁에는 도살된 동물을 연상시키지 않을 정도로 조각이 난 예쁜 요리가 오르게 된다.

 

- 호모 코레아니쿠스 , 진중

 

 

이 좋아 " 나이프 " 이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 식칼 " 이다. 종종 중세 풍경을 다룬 그림을 보면 식탁 위에 돼지가 통째로 올려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다. 그러니깐 나이프'는 사체'를 해부하기 위한 용도'였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도살 작업이 식탁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나이프보다는 젓가락 문화가 열 수 위'다. 젓가락 문화에서 칼질'은 반드시 부엌에서만 이루어진다. 엘리아스의 표현을 빌리면 젓가락은 우아하다. 동양에서는 식사 도중 다툼이 생기면 밥상을 엎지만 서양에서는 종종 나이프'로 찌르거나 포크로 찍었을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음식은 문명화의 결과이다.

 

사체를 해부하는 풍경'은 문명화 과정'을 통해서 점차 사라진다. 그 결과 우리가 보는 것은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음식 데코레이션 작품'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음식 문화의 퇴화라 할 만한 증후'가 곳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기괴한 풍경'이다. 다음은 해물탕 가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a. 어서옵셔 ! b. 해물탕 大자 주세요. c. 냄비는 보글보글. d. 주인 등장하며 해물탕 냄비 뚜껑을 열어 산낙지'를 넣는다. 산낙지는 말한다. " 앗, 뜨거워 ! 이 잔인한 인간 새끼들아 !!!! "  e. 뜨거운 물 속에서 몸부림치는 산낙지. f. 하하하, 호호호. 신기한 듯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한국인. g. 마,디,꾸, 나 !

 

침,     이 고인다. 한국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점 잔인해진 것이다. 이제는 뜨거운 물속에서 몸부림치는 낙지를 보며 즐거워한다.  싱싱하구나 !  내가 이 장면에서 딴지를 거는 이유는 볼거리를 위한 낙지의 죽음이 몇몇 금기를 어겼기 때문이다. 첫째, 볼거리를 위해 살해 장면이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죽은 후에 뜨거운 물속에 넣는 것과 살아 있는 상태에서 끓는 물속에 넣는 행위는 다르다. 후자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편을 연상시킨다. 둘째, 부엌에서 이루어져야 할 과정이 식탁에서 벌어졌다는 점이 그것이다. 젓가락 문화'라는 세련된 문명을 가진 우리는 어느 순간 나이프를 쓰던 중세 서양'보다 못한 야만으로 퇴화한 것이다.

 

산낙지의 죽음을 보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 해물탕 가게 주인이 산낙지'를 손님이 보는 앞에서 펄펄 끓는 냄비 속에 넣는 속내는 전시 효과/과시 효과' 때문이다. 산낙지'는 식당 손님에게 있어서 싱싱한 것, 믿을 만한 식재료'로 인식된다. 아, 낙지 낙지 산 낙지 ! 산낙지의 즉결 처형은 한마디로 믿고 먹을 만하다는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주인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광고는 없다. 산낙지만 싱싱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이윤/돈'을 위해서 윤리/생명'를 외면한다. 적어도 상업적 용도를 위해 죽음을 전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끓는 물 속에서 꿈틀거리는 낙지 다리'를 보며 싱싱한 것을 연상하면 안 된다. 당신이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그 몸짓을 통해서 고통이라는 기표'를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생명윤리는 지나가는 개에게나 주라지 ! " 주의'다.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다.

 

볼거리를 위해 처절하게 죽어가는 해물탕 속 산낙지 현상'은 한국인이 문자 문화 대신 시각 문화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 서양 문명의 기원 > 을 쓴 강유원은 현대 문명이 서양 중세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성당과 같은) 화려한 볼거리'에만 신경 쓰고 문자 해독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던 중세 서양 문명과 (텔레비젼 시청과 같은) 보는 문화만 있고 생각하는 문화는 사라져 가는 현대 문명'은 서로 닮았다고 지적한다. 대한민국은 중세 문화를 닮았다. 대한민국이 드라마 왕국이라는 월계관은 결코 좋은 의미가 아니다. < 구술 문화와 문자 문화 > 를 쓴 월터 옹'도 같은 지적을 한다. 선진국은 대부분 문자 문화에 속하고, 후진국은 구술 문화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시각 문화와 구술 문화'에 속한다. 아침에는 아침 드라마를 보고, 저녁 6시 이후에는 시트콤을 본다. 그리고 채널을 돌리면 일일연속극을 시청하다가 9시가 되면 뉴스를 본다. 신랄한 장탄식이 이어진다. 정치평론가가 따로 없다. 뉴스를 보는 시간만큼은 도덕주의자가 된다. 그리고 10시가 되면 드, 드드드드드디어 드라마가 시작된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월화 드라마를 시청하고,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수목 드라마를 보며,금요일에는 드라마 스페셜을 본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주말 드라마를 또 본다. 오직 본다. 문제는 눈과 입'은 바쁜데 뇌'는 정지되었다는 점이다. 시청각 중심이 되면 생각은 열불이 나서 집을 나간다.

 

 

이러한 폐허는 고스란히 한국 사회에서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산낙지의 죽음'이 볼거리'를 위한 쇼라면, 갑의 횡포는 명함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이다. 명함은 오로지 보여주기 상품'이 아니던가. 대한민국 특유의 전시행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멀리 볼 것 없다. 오세훈이 열정적으로 진행한 디자인 서울은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다. 한강에 둥둥 뜬 것은 섬이 아니라 오리다. 또 하나. 명품 브랜드에 대한 열광적 지지 또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효과이다. 아빠는 중형차로 으스대고, 엄마는 가방으로 으스대고, 자식새끼는 등산복으로 으스댄다. 이 모든 게 다 과시적 욕망이 만든 참사다. 

 

< 웨이터 법칙' > 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업 파트너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상대방이 웨이터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박근혜 각하'가 윤창중을 임명하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레스토랑에 가서 함께 식사라도 했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다. 결혼해도 좋을 사람이 생긴다면 해물탕 가게'에 데리고 가라. 상대방이 끓는 물 속에서 꿈틀거리는 낙지 다리를 보며 즐거워한다면......

 

 

 

 

 

 

 

 

 


 

 

+  1. 활어보다는 선어가 맛있다

일본은 활어회'보다는 선어회'를 먹는다. 회를 뜬 후 냉장 숙성'을 시켜야지 감칠 맛이 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인은 활어회'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것은 입맛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활어회와 선어회를 놓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대부분 선어회'가 맛있다고 한다. 한국인이 입맛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활어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먹거리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다. 두 눈으로 보아야지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수족관은 그러한 욕망을 채워준다. 믿을 놈은 오로지 내 가족뿐이고, 두 눈으로 직접 보는 수밖에 없다. 

 

 

 

+   2. 울릉도'만 소중하냐 낙지도' 소중하다

숨탄것'은 모두 진화의 결과이다. 치타'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몸무게'를 줄이다 보니 뱃살을 줄이게 되었다. 핀치 또한 환경에 맞는 쪽으로 부리가 진화하였다. 하지만 진화가 반드시 좋은 쪽으로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치타만 해도 그렇다.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마른 체형을 유지하다 보니 다른 짐승에 비해 굶으면 쉽게 지친다. 지방이란 대체 에너지'가 아닌가. 통통한 하이에나는 사냥감을 놓쳐도 지구력 하나로 버티지만, 치타에게는 치명타다. 그래서 이름이 치(명)타'다. 

낙지도 수천 년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진화를 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 진화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에 사는 낙지'는 불행한 존재다. 구라파나 아랍에서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왜 하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일까. 알다시피 다른 나라들은 비늘 없는 생선'은 잘 먹지 않는다. 더군다나 구라파 사람들은 문어'를 악마의 물고기'라고 해서 두려워 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혐오'이지만, 낙지 입장에서 보면 축복이다. 그렇지 않은가 ? 최상위 먹이사실인 인간이 혐오스럽다며 잡지 않으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한국에서 낙지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낙지 한 마리면 병든 소도 일으킨다고 하니 그들에게는 한국이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이나 다름없다. 낙지 미디어 < 딱지 > 에서 밀착취재한 결과 한국인은 낙지를 산 채로 먹는다는 특종을 보도했다. 한국은 무간지옥'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산 낙지'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 할 필요가 있다. 치타처럼 잘못된 진화로 인하여 목숨을 앗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안 된다. 과연 한국에서 벌어지는 산낙지 문화'에 대항할 비장의 무기'는 무엇이 있을까 ? 만약에 당신이 낙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한국인이 산낙지를 거부감 없이 즐겨 먹는 이유는 < 무혈 >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낙지'는 빨간 피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 무혈 > 은 < 무통 > 으로 인식된다. 만약에 낙지 몸에 빨간 피'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산낙지를 즐겨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산 산낙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유사 빨간 피'를 만들어서 다리가 잘려나갈 때 분수처럼 쏟아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 낙지 씨, 이 글 읽고 있나요 ?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시고 유사 피'를 뿜어내는 방식으로 진화의 방향을 돌려보세요.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한국 자본주의'란 천민 근성이어서 잔인한 방식으로 진화했지요. 고통 속에서 끊어진 다리를 꿈틀거리는데, 한국인은 그 비참을 보며 침이 고입니다. 그뿐입니까. 사람이 보는 앞에서 펄펄 끓는 탕 속에 산 채로 넣어야 속이 시원한 족속입니다.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지요.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부디 편안하시옵소서. 울릉도만 소중하냐, 낙지도 소중하다 ! 독도만 소중하냐, 낙지도 소중하다 ! 그럼 이만 총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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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5-18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 살기 위해'란 말 한마디로 참 많은 게 허용되고 용서되는 야만스런 사회 아닌가 합니다.
어제부터 곰곰발님 포스트를 읽고 자꾸 여러 생각이 드는데,
을인 낙지 입장에선 칼만 대면 새빨간 피를 분출하는 몸으로 진화하면서
갑과 을이 전복되는 바닷물 속으로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야.. 등등..
혼자 별별 상상 다 하고 있어요. 하하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8 12:06   좋아요 0 | URL
수사반장에서 범인들이 늘 하는 소리가 먹고살기위해서 아니겠습니까..ㅋㅋㅋ
이놈의 먹고살기'는 한 80년 동안 끈덕지게 이어져오고 있는 실정이니 짜증이 납니다.
하긴 물속이라면...ㅎㅎㅎㅎㅎ. 낙지가 갑이 되겠네요.
하루빨리 낙지도 빨간 피를 품어야 하는데 아쉽습니다.

구리구리 2014-01-22 0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찌하다 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분이 있는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이세상의 모든 자연에 인간은 최소한의 요구만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낙지는 정말 아니더군요.
지금까지도 TV에 그런게 나오는데... 아.... 뭐가 잘못된것인지....
한번 제대로 언론에서 두들겨 맞아야 하는데...
언론도 같이 놀고 있으니....
정말 공감하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직접 쓰신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3-14 10:47   좋아요 0 | URL
2년이 흐른 후 댓글을 달게 되네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갑질 사회 : 완장은 문신이다 !

 

 

 

 

 

 

 

 

 

 

 

 

http://myperu.blog.me/20181545253  : 혈액형을 묻는 심리.

 


 

 

 

 

 

 

 

 

벼락 사회 : 과정이 생략되면 과장'이 된다.

 

 

< 빨리빨리'> 는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 재벌 > 과 함께 상징적 단어'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다이나믹 코리아'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 팬티도 안 내리고 똥 쌀 나라 " 이다. 쓰고 보니... 이런 질펀한 판타지'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심기를, 아 !  거슬릴 터, 그냥 잊기로 해요, 우리.  한국형 DNA는 원래 이렇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급했을까 ? 농경 사회'는 본질적으로 기다림과 느림'이 미학인 구조이다. 벼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사회'였다.  당연히 시간 개념도 식물이 자라는 성장 속도에 맞추어져 있었다. 한국인이야말로 케 세라, 세라, 세라' 였던 셈이다. 한국 음식 문화'가 슬로우푸드'인 이유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 개념이 코페루니쿠스적 전회'를 가져온 계기'는 일본 제국 침략이 원인이었다. 식민주의'란 점령 기간 동안 식민지 국가 자원을 최단 시간 안에 악랄하게 수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게으른 조선인을 부지런한 조선인으로 개량'할 필요가 있었다. 빨리빨리'는 알고 보면 일본인이 한국인에게 소리쳤던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봉건 농업 사회'였던 조선은 빠르게 산업 자본주의 과정으로 진입되었다. 농민은 빠르게 장삿꾼이 되었고, 농촌은 하루아침에 도시가 되었다. 문제는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변화다. 비유를 들자면 < 구순기-항문기- 남근기 > 라는 성장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항문기가 생략된 채 < 구순기 - 남근기 > 로 성장한 것이다. 기형적인 발육 속도'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 당신은 만날 한다는 소리가 웃으면서 코 파거나, 코 파면서 웃거나, 피똥 싸는 이야기가 팔 할'이군요 ? "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진지하게 코 파면서 웃으리라. 잇힝.

 

항문기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항문기 성격'이 된다.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면 결핍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귀환하는 법. 어른이 되어도 이들은 항문기에 집착하게 된다. 항문기 고착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놀부이다. 이런 부류는 자기중심적이다. 싫증을 자주 내고, 고집에 세고, 인색하다. ( 항문기 과정은 2세- 4세'를 의미한다. " 미운 4살 " 이라는 말은 동서양 공통이다. ) 종합하면 항문기 과정을 건강하게 보낸 아이들은 타자에 대한 에티켓을 배우지만, 이 과정에서 고착된 아이들은 커서도 자기 중심적 인간이 된다. 항문기의 핵심은 에티켓'이다.  왜냐하면 에티켓이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 태도를 버리고 타자에 대해 배려하는 습속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르게 산업화가 되는 바람에 중요한 항문기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에티켓을 배울 수업 시간이 짧았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벼락 사회'다. 빨리빨리'가 지배하는 구조'다. 문제는 이 속도'가 < 절차를 생략하는 > 편법을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다. 과정 1 - 2 - 3 - 4 - 5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과정 1에서 과정 5로 점프컷'을 하기 때문에 발생한 속도'다. 바로 이 지점이 벼락'이다. 벼락 공부'는 단기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졸부라는 의미로 희화화되는 벼락부자는 어떤가 ? 포스코 라면 상무와 윤창중 선생님의 공통점은 감투(완장)을 찬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벼락 같은 신분 상승'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더욱 딱딱하게 만든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뷰,                 티플하다.

 

엘리아스는 < 문명화 과정 > 에서 식사예법'을 통해 에티켓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밝혀낸다. 에티켓은 수백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습속인 것이다. 에티켓은 타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다. 이러한 에티켓은 개인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개인주의란 이기주의가 아니라 개인을 존중하는 에티튜드이다. 그러니깐 타자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존중이 바로 개인주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떤가 ? 과정이 생략되면 과장'되는 법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은 종종 불쾌한 태도'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인은 모든 면에서 " 빨리빨리 " 다.  사람 간에 오고가는 탐색도 그렇다. 인간 관계란 오랜 시간을 두고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 벼락 > 이 몸에 벤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 몇 학번이세요 ? 결혼하셨나요 ? 체위는 ? 혈액형이 ?!

 

낯선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제일 흔한 질문이 혈액형을 묻는 것인데, 이 심리에는 대화의 과정을 생략하고 상대방을 빨리 알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 이들은 지속적인 만남 과정을 통해서 상대방 성격이나 생각을 차근차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 혈액형은 내 궁합과 맞는 사람을 가장 신속하게 고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따봉이다. 혈액형을 묻는 심리야말로 < 벼락 심리> 가 작용한 것이다. 나이를 묻는 것은 어떤가 ? 나이로 서열을 정하는 것은 애매모호한 관계 설정을 종식시키는 데 좋다. " 내가 나흘 먼저 태어났네 ? 말 놓아도 되지 ?! "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말은 과천 경마장 가서나 풀어줘라. 왜, 술집에서 말을 놓아주냐. 이러한 나이 위세는 싸울 때도 드러난다. 너 몇 살 처먹었어 ? 직위 서열도 마찬가지다. 포스코 상무는 회사와 사회'를 혼동한다. 회사'를 뒤집으면 사회'가 되니 연장선상인 줄 착각한 것이다. 도상학적으로 말하자면 에티켓은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고자 하는 심리이고, 서열은 수직적 관계를 중시하는 심리이다. 벼락 시스템은 수직적 관계일 때 제대로 작동된다.  

 

한국 사회는 벼락'이 지배하는 사회다. 재벌, 갑을사회, 혈액형, 나이 서열, 직위 서열, 학번, 군번 등은 모두 벼락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기형적 유산이다. 심각한 부작용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벼락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혈액형을 묻는 게 왜 잘못이지, 나이를 물어보는 게 왜 예의에서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한번 해병대는 영원한 거 아닌가, 학번을 묻는 게 왜 폭력이 되지 ? 정말 그 사실을 모른다면 당신은 천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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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5-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글에 공감을 누르고 그리고 로또를 사러 가지요.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p_dataid=03935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6 08:54   좋아요 0 | URL
아니 왜 로또를... 안 물어보겠습니다.

새벽 2013-05-16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벼락 시스템 속에서 주렁주렁 매달린 표식들이.. 정말이지 우리들에겐 너무 많이 매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7 07:59   좋아요 0 | URL
열매가 너무 많이 달리면 따줘야 하는데... 그걸 안 하면 열매들이 다 부실하게 되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3-05-1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계질서 지키는 것을 예절과 혼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7 12:02   좋아요 0 | URL
한국 사회'는 싸가지 문화죠. 다음 시리즈는 싸가지 사회'로밀고 나가야겠습니다.

히히 2013-05-18 21: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예절에서 위계질서는 오히혀 배려라고 하는 게 맞죠.
가령,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생선 등살을 자식 보다는 부모님 밥 위에 올려주는 것,
할머니의 느린 걸음을 앞질러 가지 않는 것,
영 아니다 싶은 훈계에도 굽신거리는 것,
연세에 비해 많이 젊으세요,아직도 참 고우세요 라고 아첨하는 것....

곰곰생각하는발 2013-05-19 08:13   좋아요 0 | URL
히히 님. 히히히...
제가 보기엔 그것은 딱히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나이 많다고 무조건 예스'라고 하는 건 좋은 미덕은 아닙니다.
영 아니다 싶은 훈계에는 굽신거리지 말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야 하는 것은 옳은 건 아닐까
힘주어 말하고 싶군요. 히히..

히히 2013-05-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곰...발님 처럼 확실한 때가 길었습니다.
자식을 키우며 한 해 두 해 더해지니 영 아닌게 아니라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을 느낄 때가 허다합니다.
세대차이라는 말은 결국엔 내 울타리을 허물기 싫은 핑계를 대기에 충분한 단어였습니다.
'절대' 가 얼마나 간사한 단어이고
흑백의 논리가 극히 주관적인 견해이며
인간적은 요행을 바란다는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배려는 상대의 마음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동정심, 자선과는 다르게 측은지심과 나눔은 배려입니다.
어른들과의 차이을 느끼기 전에 그 마음을 읽어내고 싶은 히히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5-20 13:16   좋아요 0 | URL
네, 알겠습니다. 히히 님. 히히히히....
히히 님 닉네임 때문에 좀 히히 님을 삐딱하게 보려고 해도 그게 안 됩니다. 히히히...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