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내가 여의도 대로에서 묻지 마 칼부림 범죄'를 저지른다면 조선일보는 제일 먼저 이 글'을 기삿거리에 인용할 것이 뻔하다. 곰곰생각하는발, 평소 잔인한 영화 자주 봐... 웨스 크레이븐의 < 왼편 마지막 집 > 에서 시체 훼손 장면을 보며 환상 키운 듯 ! 이왕 인용할 거라면 다음과 같은 문장도 꼭 인용해 주길 바란다. " 나는 평소 아침마다 배달되는 조선일보'를 읽지도 않은 채 그 신문종이로 똥을 닦고는 했다. "
P.S 조선일보는 이런 기사 내용을 쓸 것이다 : 곰곰생각하는발은 평소 잔인한 영화를 자주 보았다.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에서의 그 유명한 시체 훼손 장면을 보며 환상을 키운 듯하다. 또한 조선일보'를 혐오한 점으로 보아 극렬 좌익 세력에 세뇌가 된 것으로 보인다.
Freaks : 애타게 공포 영화를 찾아서......
나는 중학생 때부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공인한 걸작들만 보러다녔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시네마떼끄는 물론이고 불란스 문화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 아, 불란서 하니깐 조경란이 생각난다. 불란서'스러운 조,경,란 ! 그래서 친구들이 3류 동시 상영 극장에서 하는 공포 영화‘나 에로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할 때마다 속으로 코 팠다.
" 그 영화 정말 무섭대 ! 학동이는 그거 보고 오줌까지 지렸다고 하던걸. 시바, 존나 무섭나 봐. 더군다나 영화 < 반지하 제왕 씨' > 이라는 영화는 주인공 제왕이가 서울 여자 다 따먹는 얘기래. 젖꼭지는 물론이고 여배우 털도 보여준대. 강식이 형이 말하던데 세상의 모든 거시기 털'은 다 곱슬이라네. 너 자지에 털 났냐 ? 났으면 한 번 보여 줘. 나도 다음에 나면 보여줄게. 응, 으으응? 이거 좆나 환상적인 조합 아니냐. 당장 야자 까고 보자 ! " 그럴 때마다 나는 작품의 질과 취향의 저급함’을 들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아이콩, 므므므므므 무서워라. 보다가 똥도 쌀 놈들. 꺼져, 병신들아 !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와. 쮸쮸바나 빨아랏 ! " 당시 나는 적어도 아카데미 수상작 정도는 되어야 내 수준에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각은 자유다.
동네 동무들이 할로윈따위의 공포영화에 열광할 때, 나는 점잖게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 지옥의묵시록 > 감독판'을 혼자 보고 있었다. 말론 브란도’가 말한 “ horror ... horror! " 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 할로윈 > 과 < 나이트메어 > 시리즈‘를 미치게 좋아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보고 싶었으며, 겨드랑이와 겨드랑이 사이’에 있는 물컹한 것을 한 번 만져보는 것이 당시의 소원이었다. 뽀송뽀송한 우윳빛 젖가슴이란. 당시 나는 커다란 도화지‘에 영화 별점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벽에 붙이고는 그날 그날의 영화와 별 스티커 점수를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공포 영화‘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별 세 개 이상은 무리였고, 반면에 아카데미상 출신 영화들은 지루해서 잠을 자는 한이 있어도 최소 별 세 개’ 이상이었다. 사실 입 주변에 솜털이 4월의 새순처럼 듬성듬성 자라던 아이‘가 < 지옥의묵시록 > 를 이해한다는 것은 파리가 경제를 이야기하는 뉴스 스튜디오에서 진지하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나는 < 지옥의 묵시록 > 을 보고 나서 " 별 다섯 개 ! 가장 위대한 영화!!!!!!! " 라고 그날의 영화 관람 카드’에 적은 기억이 난다. 허세가 작렬했던 시절이었고, 제대로 된 중2병이 도지던 시절이었다. 반면 < 무릎과 무릎 사이 > 따위의 영화를 영화 관람 카드에 적을 때‘는 부모님이 볼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 무와 무 사이 > 로 적고는 별 하나도 아까워 별 스티커‘를 매기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 장대를 든 여자 > 는 < 연필을 든 여자 > 로 개명하고는 혼자 까르르르 웃었다. 공포영화는 마치 친구들과 어울려서 거리를 걷는데 몸빼 바지’를 입고 머리에 다라이‘를 이고 가는 엄마’를 볼 때와 비슷했다. 나름 예술 영화 마니아로서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는 고백은 창피하고, 외면하고 싶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그 무엇이었다 !
그렇다, 당신도 전생에 한때는 자작나무‘이었듯이, 나 또한 한때는 영화광’이었고, 자일리톨‘이었다. 예술영화에 대한 열광이 시들해질 무렵, 동네 비디오 가게’를 지나가다가 문득 공포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는지는 지금이 모르겠다. 나는 바로 비디오 가게 문을 열고 공포 영화’ 코너‘를 훑어보았다. 신간들이 1박2일로 대여료 2000원에 팔리고 있는 사이 방구석 모퉁이의 공포 영화’는 먼지를 이불 삼아 드르렁드르렁 잠을 자고 있다. 늘어진 하얀 런닝구 사이로 젖꼭지를 보인 채 낮잠을 자고 있는 사과 장수인 아버지‘처럼. 굴러다니느라 멍들어서 상품가치가 떨어진 오래된 공포영화 테이프'는 개 당 500원에 한 개씩 팔리고 있었다. 떨이'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지 않는 것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던가 ? 안쓰러운 마음에 나는 대한민국 비디오 가게‘에 팔리지 않고 낮잠을 자는 세상의 모든 공포영화’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이후로 공포 영화 비디오 테입‘은 번개 맞은 박달나무’처럼 분주하게 팔리고 있었다. 물론 유일한 고객은 나뿐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여전히 공포 영화‘는 팔 할이 쓰레기였다. 그래도 나는 이탈리아 장인처럼 한 땀 한 땀 공포 영화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그해 본 공포 비디오테이프’가 이미 100개를 넘었다. 공포 영화 오디세이‘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싸구려 공포영화는 매우 훌륭한 장르라는 점이었다. 거기에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 있었고, 자일리톨이 있었고, 오래된 자작나무가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는 < 고무인간의 최후 > 였다. 처음에는 < 고무지우개의 최후 > 의 오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얼마나 그림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지우개가 닳고 닳았을까? 비디오테이프 뚜껑을 보니 조잡하기 그지없다. 뚜껑에 쓰인 카피 문구'처럼 정말 눈 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영화인지도 몰랐다. 차라리 < 우뢰매 > 의 특수효과를 칭찬해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 감독을 보니, 피터졌어 ?! 빵 ! 콩 콩 스카이콩콩.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없다. 당시 나는 비디오 가게에 나열된 순서대로 비디오를 선택했기 때문에 4편의 공포영화를 빌리는 데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이 작품은 뉴질랜드 영화'라는 것 때문에 설레였던 기억이 난다. 기대하지도 않았으면서 기대한 영화다. 하지만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기가 막히게 훌륭했다. 기득권에 대한 냉소와 경멸 그리고 힘 있는 유머‘가 영화 전체’를 든든하게 지원사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나중에 이 영화를 만든 < 피터졌어 > 감독은 < 반지의제왕 > 으로 헐리우드를 정복한다. 피 터트리는 재주로 헐리우드의 제왕이 된 피터잭슨‘에게 경배를 !
< 나이트메어 > 를 만든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을 구하는 것도 이 오디세이의 별미’였다. 서울시의 모든 비디오 가게의 공포 코너‘를 샅샅이 뒤져서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연희동 < 으뜸과버금 > 에서 < 왼편 마지막 집 > 을 발견했을 때'는 서울대학교 전체 수석'을 차지한 것만큼이나 기분 좋았다. 그렇게 재미있냐고 ? 그렇게 훌륭하냐고 ? 천만에, 웨스 크레이븐의 초기작만큼 재미없고, 후지고, 지루한 영화’도 없다. 사실 별 스티커 하나도 아까운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 왼편 마지막 집 > 에 감동한 이유는 베르히만의 걸작 < 처녀의 샘 > 을 아주 싸구려틱하게 리메이크했다는 점이다. 고상한 영화를 싸구려로 만드는 웨스 크레이븐의 연출력에 나는 감동했다. 시바, 그래 그거다.
다른 영화들처럼 진지하지도, 교훈을 주지도,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지만 진지하지도 않아도 좋고, 교훈을 주지 않아도 좋고, 아름답지 않아도 좋고, 재미를 주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들의 지루한 그리고 비루한, 재미있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은, 명풍 루이비통 가방을 가지고 싶지만 가짜 루이비통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 지상의 삶은 교묘하게 싸구려 공포영화‘를 닮았다. 가끔은 상사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박살내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하빠리의 비애’를 공포 영화는 시원하게 만족시켜 준다.
가끔 뉴스에서 잔인한 공포영화와 포르노‘가 모방범죄의 원흉으로 지목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 나라’를 더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싶다.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빈곤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을 외면하는 눈이고, 교육’을 빌미로 약장사 하는 사학이며, 뒷돈 챙기기에 혈안이 된 정치권이다. 이들이야말로 공포영화나 포르노‘보다 더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렇지 않을까 ? 나는 저예산 공포영화를 보면 몸빼 바지에 똥색 다라이‘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생각나고, 한여름 그늘 아래에서 늘어진 런닝구 차림으로 낮잠을 자는 대책 없는 아버지의 초라한 젖꼭지가 생각난다.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하셨던, 스펙타클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족보에서 너희들이 태어난 것이 유일한 스펙타클이라고 말씀하시던, 그런 싸구려 삶.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삶. 안녕 나의 괴물들. 안녕, 나의 프릭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공포 영화와 에로 영화'다, 라고 말할 줄 알았지 ? 뻥이야. ㅋㅋㅋㅋ.
접힌 부분 펼치기 ▼
- 벽지에 때가 타서 도배 할 생각은 엄두도 안 나고, 곰곰 생각하다가 직접 그렸다.
프릭스'와 카프카'라는 이름의 술병이다. 프릭스는 공포 영화'에 대한 개인적 오마쥬'이고, 카프카는 카프카에 대한 오마쥬다. 그 전에 살던 집에서는 한쪽 벽면 전체'에다 니체의 얼굴을 그렸다. 정말 말 그대로 얼굴만 그려서 거대했다. 다행히 그 집은 재개발 지역 아파트여서 내가 이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헐렸다.
花 라고 그려진 꽃병은 릴케'다. 윤희상 시인이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 흔들리는 꽃을 그렸다고 고백하듯, 나는 릴케를 그리기 위해서 화병을 그렸다. 화병 주둥이에 꽂힌 줄기는 장미'다. 그리고 장미 가시에 찔려 흘린 피는 릴케의 피다. 릴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즐거움이여. 내가 외우는 유일한 묘비명이다.
펼친 부분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