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시간이 지나면 새 책은 반드시 중고 매매 시장으로 나온다. 새책에서 헌책으로의 이동 기간이 짧다는 것은 책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을 받는 책이라면 외면 받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중고 매매 시장을 가득 채우는 책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들)이거나 자기계발서들이다. 대중으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은 책들이 사실은 주인으로부터 제일 먼저 버려지는 것이다. 중고 서적 도매 시장 서고에 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깐 그곳은 베스트셀러의 유기보관書요, 고려장'이다. 내가 김난도의 힐링 에세이나 김미경의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이유는 그 책들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그 책들보다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는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지면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버려지는 것들이다. 새끼 때는 귀엽다며 키우다가 다 크면 시끄럽게 짖는다고 몰래 버리는 염치없는 반려견의 주인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탕'이다. 달아서 핥아먹는 것이다. 김미경은 인문학서를 시건방진 것'으로 정의했는데, 이 정의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생각은 자유요, 착각도 자유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헌책방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새책은 자기계발서이다. 반면 가장 늦게 도착하는 책은 인문학서'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알라딘 중고 장터'에서 가장 빈약한 서고는 인문학 분야'이다. 적게 팔리지만 책 주인으로부터 가능 늦게 버려지는 책이 바로 인문학서'이다. 김미경의 말대로 책은 잘못 없다. 책을 고르는 대중의 안목이 문제다. 사랑과 사탕을 혼동하지 말자.

 

 

 


 

 

 

 

 

 

 

 

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 주인이 만든다.

 

 

며칠 동안 100편에 가까운 글을 " 올렸다. "  내가 이 문장에 < 쓰다 > 라는 동사를 굳이 쓰지 않은 이유는 전에 사용하던 블로그에 있던 글(들)을 이곳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이미지 하나 첨부하고 서체'를 바꾸는 정도가 내가 알라딘 서재'에서 했던 전부다. 그동안 이삿짐을 풀고 책장을 정리한 꼴이다. 이젠 얼추 다 정리가 된 것 같다. 차분한 마음으로 첫 번째 독서 일기'를 " 쓴다. "

 

오래된 잡지'를 샀다. 서른 권 정도니 크게 들인 것이다. 그것도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의 월간 영화 잡지 키노'를 말이다. 학창시절 때 용돈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명절 때 받은 돈으로만 잡지'를 사다보니 이 빠진 옥수수 모양이 됐다. 12, 1월호는 있는데 2, 3, 4, 5, 6월호는 없고, 7, 8월호는 있는데 9, 10, 11월호는 없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사서 읽지 못했던 것을, 빌려 읽느라 조심스럽게 읽었던 잡지를 이제 다시 읽는 것이다. 근 20년 전의 잡지를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 기분이 묘하다. 한껏 멋을 낸 모델의 패션이 촌스러울 때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오래 전 잡지'라는 것을 각인시켜 줄 뿐 그다지 생경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간혹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앳된 최진실의 인터뷰나 이경영의 스틸 사진'을 볼 때이다. 그들은 10년 후의 일들은 까마득히 모른 채 방긋 웃고 있었다. 소녀의 들뜬 열의, 세상에 대한 낙천적 호의 그리고 성공에 대한 굳은 결의. 그런 것들. 누가 알았으랴. 운명이라는 이름의 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반면에 한류 스타의 낯선 모습도 종종 보인다. 단역으로 스틸 사진 프레임의 끝에 있는, 스치고 지나가는 촬영 현장에 찍힌 모습이 이채롭다. 알고 있었을까 ? 누구는 10년 후에 몰락하고, 누구는 10년 후에 우뚝 솟은 스타가 되어 있다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또... 모른다. 10년 후의 어느 독자가 10년 전 오늘의 잡지를 보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잭 상태는 새책이나 다름없었다. 볕을 받아서 누렇게 변색이 되었을 뿐, 읽은 흔적은 거의 없다. 구겨진 흔적도 없고, 밑줄을 긋거나 잘생긴 리버피닉스의 사진을 오린 흔적도 없다. 하긴 누가 월간 잡지따위'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겠는가. 하지만 서운하다. 흔적(밑줄)이란 일종의 고백'이다. 그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헌책을 읽을 때 발견하게 되는 책주인의 밑줄을 볼 때마다, 나는 읽기를 잠시 멈추고 밑줄'만을 본다. 밑줄을 긋는다는 행위는 책의 주인이 책의 저자에게 보내는 동의, 공감, 하이파이브'다. 비록 밑줄 친 문장이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나는 그 문장을 깊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책 주인은 밑줄로 자신의 생각을 " 쓴다. "

 

보르헤스'의 단편 <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 은 필사의 대가 피에르 메나르'가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를 마침표 하나까지 그대로 옮겨 적음으로써 원전을 능가하는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이야기'다. 여기서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표절이 아니라 창조'다. 여기서 굳이 저자의 죽음이나 독자 반응 이론, 시뮬라시옹, 현상학, 후기구조주의 등의 딱딱한 먹물 꼰대 스타일로 풀어낼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저자/텍스트'는 세르반테스이고, 독자/수용자'는 피에르 메나르'는 점이다. 그러니깐 돈키호테의 애독자 피에르 메나르의 필사는 곧 밑줄'에 대한 은유이다. 밑줄은 쓰는 행위'이다. 밑줄이 하나의 완성된 " 묶어서한말 " 이라면, 서표 대신 모서리를 접은 흔적은 마침표와 쉼표이다. 그리고 책 사이사이에 끼워진 오래된 영수증이나 극장표 등'은 독자의 딴생각'이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헌책의 역사를 만든다.

 

▶ 묶어서한말 : 깨알오소리사전을 참조하라.

 

 

사실 소설가들은 모두 제 2의 피에르 메나르'였다. 이 밑줄(들)을 모아서 결국은 자신의 책을 완성하는 것이다.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 천명관 등은 모두 수천 번의 밑줄 끝에 자신의 글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새책 같은 헌책'보다 더 풍요로운 것은 헌책 같은 헌책'이다. 헌책의 가치는 흔적에 있다. 밑줄이나 메모 그리고 모서리가 접힌 흔적은 책의 텍스트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소설은 소설가가 만들고, 새책은 출판사가 만들지만, 헌책은 책의 주인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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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1이다.
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양들의 침묵 : 사라진 알파벳(들) b, u, s.

 

 

 

 

 

 

 

 

희생자는 모두 “ 가죽이 벗겨진 채 ” 죽는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목에는 커다란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연쇄살인범‘은 < 버펄로 빌 > 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가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 다.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죽은 자의 살갗을 벗기기보다는 차라리 그 인육을 먹는다 ! 토머스 해리스의 < 양들의 침묵 > 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조나단 드미 감독의 영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영화‘는 장르 특유의 상투적인 공식’을 과감하게 뒤집는다. FBI 수사 요원‘인 클라리스는 연쇄살인범 버펄로 빌’을 잡기 위해서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범인 한니발 렉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상한 짝패 관계이다. 여기서 홈즈 역은 연쇄살인범이고, 왓슨 역은 여형사‘이다. 범죄자는 멘토이고, 형사는 멘티이다. 클라리스는 렉터의 도움 없이는 사건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살인자와의 인터뷰가 진행하는 동안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감옥 안에 있는 살인자가 질문을 던지고 감옥 밖에 있는 형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lam(b)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 / Oral 이다. 버펄로 빌’이 죽인 희생자의 목구멍에는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식도가 막혔다는 것은 곧 발설과 배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입은 항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유년기는 바로 구순기/Oral 와 항문기/Anal 의 지배를 받는다. 버펄로 빌이 강박적으로 목구멍 속에 좀벌레 나방‘의 고치를 목구멍 속에 넣는 행위’는 그가 소화에서 배변까지, 혹은 상대방과의 소통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구강 기관 장애‘는 비단 버펄로 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목 < 양들의 침묵 > 에서 “ 침묵 ” 은 바로 목이 막혀서 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병적 증후이다. 이 말할 수 없음’은 사건이 점점 진행되면서 클라리스의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양을 뜻하는 lamb은 철자 b가 묵음으로 처리되면서 단어 lam 과 동음이의어‘로 작동한다. lam의 사전적 의미’는 때리다, 내빼다, 달아나다 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단어’가 스탈링이 렉터 박사에게 힘겹게 고백하는 자신의 정신적 상흔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밤중에 양/lamb 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린 클라리스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간다. 거기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양을 도살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그는 양을 격렬하게 때린다.(lam : 때리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클라리스는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 lam : 달아나다. ) 이 장면은 프로이트가 말한 < 원초적 장면 > 과 겹친다. 어린 클라리스‘에게는 양 도살 장면’이 정신적 상흔으로 남은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그녀는 이 상흔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녀가 힘차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결국 그녀 스스로 남은 양들의 살육‘을 도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lamb 에서 철자 b 를 묵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양의 죽음에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알파벳 b 다. 이렇듯 이 소설/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는 괄호 ( ) 다.

 

 

 

▦ mo(u)th

이러한 알레고리‘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 나방 > 의 존재에서도 드러난다. 나방을 뜻하는 moth mouth 와 유사하다. 영화 < 양들의 침묵 > 메인 포스터’는 클라리스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가 정면을 응시하는 디자인인데, 입 대신에 나방이 있다. 그러니깐 mouth 대신 moth 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므로 클라리스, 한니발 렉터, 버펄로 빌’은 모두 < 입 > 이라는 단어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그들은 모두 구강 기관‘에 문제가 있다. 클라리스가 발화‘에 문제가 있다면, 렉터 박사’는 섭식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병명은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인육을 먹는 < 이상 섭식 장애 > 이다. 그리고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목구멍 속 깊숙이 나방의 고치‘를 삽입한다.

 

작품 속에서 버펄로 빌의 직업은 재단사‘다. 그는 희생자들의 피부에서 벗겨낸 여성 인피로 가죽 옷을 만든다. 그의 욕망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 피부로 만든 옷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남성 육체’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고치 속에 몸을 숨긴 좀나방 유충처럼 말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나방을 뜻하는 단어인 moth는 입을 뜻하는 단어인 mouth'에서 알파벳 u가 생략된 낱말이다. mo(u)th‘이다. 그래서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mouth'‘에 mo(u)th' 를 삽입한다. 이 얼마나 황홀하며 상징적 제스츄어인가. 이것은 살인자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다. 버펄로 빌의 목적이 여성이 되는 것이라면, 렉터 박사의 목적은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정신적 해방은 무엇일까 ? 밤마다 들리는 죽어가는 양들의 성난 울음소리‘를 잠재울 방법 말이다.

 

방법은 하나다. 그녀의 목구멍 속에 있는 나방의 고치’를 빼내서 소리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마치 호리병의 뚜껑을 빼서 병 속에 갇힌 요정을 빠져나오게 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신과 치료의 가장 기초적인 치료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목구멍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발설하게 함으로써 병을 치유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 공교롭게도 작품 속 한니발 렉터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래서 유리벽 사이‘로 나누는 렉터와 클라리스의 대화는 사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대화요법’인 것이다. 렉터는 그녀에게 아직도 밤마다 양의 울음소리‘를 듣는가, 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의 집요한 질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비밀을 발설한다. 그 순간, 십 년이 넘도록 꽉 막힌 목구멍이 뚫린다. 비로소 그녀는 버펄로 빌의 작업실을 발견한다. 클라리스가 버펄로 빌’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는 이제 여섯 번째 희생자의 살가죽을 벗겨 옷을 완성하려고 한다.

 

 

 

▦ jame(s)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가 lamb 에서 알파벳 b 가 묵음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발음이 같은 lam 를 이야기에 편입시키고, mouth 에서 알파벳 u를 생략시켜서 moth의 서사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clothes와 mo(u)th라는 두 단어를 결합시킨다. 해리스는 버펄로 빌의 욕망의 오브제인 clothes 와 mo(u)th를 연결한다. 결국 우리는 최종적으로 a clothes moth' : 좀벌레 나방이라는 단어를 얻는다. 그가 키우는 나방 이름이다. 이렇듯 단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방식은 버펄로 빌의 이름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임/ jame 이다.

 

원래는 james인데 병원 담당 계원의 실수로 jame 이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제임스가 아니라 제임이 되었고 책의 에필로그에 나온다. 그러니깐 그는 자신의 잘못된 이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이름인 jame 으로 살아간 것이다. 그의 이름인 제임은 알파벳 s가 탈락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희대의 살인자인 버펄로 빌을 이해해야 한다. 좀나방 유충은 천으로 된 옷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는 좀나방 유충이 갉아먹지 못하는 인피로 만든 여성 가죽 옷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 ?

 

이 영화의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는 매우 정교하게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 겉으로는 선정적이며 엽기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해석이 과연 내가 억지로 짜 맞춘 것에 불과할까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종류의 대중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없는 펄프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짜인 구조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형편없이 지루한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 낫다. 헤르만 헷세의 성장소설이나 토머스 해리스의 성장소설이나 다 같은 성장소설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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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44 = 1이다.
    from 새빨간 활 2013-05-01 06:46 
    44 = 1'이다. 특정 장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는 편이다. 깊게 파기보다는 넓게 파는 스타일'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깊게 파기 위해서는 넓게 파야 한다. 그래야 깊게 팔 수 있는 법이니깐. 추리 소설'도 건드려 보고, 하드보일드 소설'도 찔러 보고, 공포 소설도 건드려 본다. 그리고 스릴러'도 살짝 간만 본다. 설핏 보기엔 곁가지만 요란하게 뻗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 범죄 소설 > 이라는 큰
 
 
 

 

 

 

 

 

 

 

 

 

 

 

 

 

 


 

 

 

DEXTER Season 1 by Travis English

 

 

 

완벽한 범죄'를 꿈꾸는 당신을 위한 조언.

 

 

"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놈은 나와 입사 동기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던 녀석은 늘 부장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는 크게 웃는다. 출세는 상사의 농담에 크게 웃는 자의 것. 하지만 경멸은 나의 것. 입사 동기가 크게 웃을수록 내 얼굴은 굳어진다. 속 좁은 놈이라고 욕하지 마라. 그는 지금 내 아내와 바람을 피고 있으니깐 말이다. 어쩌면 저 녀석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침대 속에서 내 아내와 뒹굴면서 나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 테니깐...

 

 

 

 

아침에 눈을 뜬 당신은 넥타이'를 조이면서 혹은 화장을 하면서 결심한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완벽한 계획을 설계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죽어버렸으면...... " 하던 처음의 넋두리는 점점 살이 보태지고 보태어져서 나중에는 " 죽여버리고 싶다.... " 로 바뀌게 된다. < 죽어... > 에서 < 죽여... > 로, " ㅓ " 가 " ㅕ " 로 바뀌는 순간, 어느덧 이 욕망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망 시간에 맞추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증거를 없애야 한다. 거짓 증언을 위해서 믿을 수 있는 공모자를 포섭해야 할까 ? 아니다. 그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섹스와 배설 그리고 살인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누가 보면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 이 모든 것이 꺼림직하다면 사체를 은폐하는 것도 좋으리라. < 은폐 > 만큼 훌륭한 방식은 없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 토막살인 ? 수장 ? 혹은 숲속 은폐 ?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해야 될 사항이 있다. 은폐는 당신 혼자서 처리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지독한 노역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노역 > 이라고 다소 먹물 투로 말했지만 < 묶어서한말 > 식으로 표현하자면 피 ! 똥 ! 싼 ! 다 !

 

▶ 공모는 늘 비극적으로 끝난다. 배신자'란 보다 나쁜 놈이 선택하는 것 아니라 보다 약한 놈이 선택하게 되는 룰이다. 스콧 스미스의 무시무시한 걸작 < 심플플랜 > 은 간단한 공모에서 시작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살인'이란 혼자서 해야 되는 고독한 일이란 사실을 일깨워준다.

▶ 묶어서한말 : 숙어, 관용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입말사전 中 )

 

시체를 절단해 보라. 당신은 인간의 몸이 매우 단단한 유기체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건강한 성인 남자가 시체의 팔, 다리 그리고 몸통을 자르고 몸속 부속물을 봉투에 담아 정리하는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단, 완벽한 절단 도구가 있다는 가정에서 산출된 기본값이다. 초보자인 당신이라면 시체를 절단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한다. 생각했던 계획보다 시간이 초과된 사실에 당신은 절망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시체를 절단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실감나게 전달해 줄 것이다.

 

▶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작업의 A에서 Z 까지의 전과정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 하나의 힘든 노동이다. 나쓰오 여사의 말에 의하면 손질하는 일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잘 맞는 일이란다. 

  

설령 당신의 남편을 " 작업 " 해서 땅 속에 묻었다 해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경우,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사람은 아내'다. 형사의 의심을 냉정하다고 탓하지 마라.  수사학의 기본 자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의심하라, 이니깐 말이다. 뜨거운 물이 식으면 맹물이 되지만, 사랑이 식으면 독이 된다. 형사들은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수도사업부'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실종된 날을 전후로 한 며칠 간의 수도사용량'을 점검할 것이 분명하다. 평상시와는 달리 남편이 사라진 날의 물 사용량이 몇 배나 많다면 ? 형사들은 더욱 집요하게 당신을 물고 늘어질 것이다. 수색 영장을 발부 받은 과학수사대는 집안 곳곳에 루미놀 혈액 반응 검사를 할 것이다.

 

▶ 토막 살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가장 탁월하게 소설을 구성한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 점성술 살인 사건 > 이다. 이 작품은 심은하의 < 텔미썸씽 > 에 영감을 주었다.

 

이처럼 죽은 남편의 팔을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작업 하는 경우는 흔적을 남긴다. 그렇다고 100kg에 육박하는 죽은 남편을 커다란 트렁크에 싣고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씨씨티븨'는 당신의 창백한 얼굴과 함께 축축하게 적은 대형 트렁크'를 비출 것이다. 비싼 아파트일수록 씨씨티븨의 화질은 좋은 법, 파리 한 마리가 트렁크 주변을 맴돈다면 백 프로다.  당신은 끝이다. 당신은 나일론 80%가 섞인 땀 흡수가 안 되는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 좆된 거다.

 

▶ 현대 사회'는 감시 사회이다. 씨씨티븨는 곧 미셸 푸코가 < 감시와 처벌 > 에서 말하는 " 판옵티콘  " 이며, 기 드보르가 지적한 " 스펙타클의 사회 " 다. 그리고 조지 오웰은 씨씨티븨를 < 빅브라더 > 라고 말한다. 이제 사생활이란 없다. 핸드폰, 신용 카드, 교통 카드 사용 내역은 당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한다. 범죄를 예방하는 용도의 씨씨티븨'는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노동자를 범죄에 노출시킨다. 강남을 중심으로 설치된 씨씨티븨는 범죄자를 내쫒는 대신 씨씨티븨'가 없는 할렘'으로 모이게 만든다. 그들은 씨씨티븨가 설치가 안 된 외각지역의 주민을 타킷으로 삼는다. 강호순 사건이 좋은 예이다.

 

어찌 되었든, 당신은 실행에 옮겨야 한다. 완벽한 트릭'을 만들어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한다. 알리바이만 완벽하다면 굳이 사체를 은폐하기 위해서 차 뒷 트렁크에 시체를 싣고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욕실 바닥에서 뼈마디를 쇠톱으로 자르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 " 그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거야 ! "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당신은 자신의 살인 계획을 좀 더 디테일하게 설계한다. 디테일할수록 자신의 알리바이'는 완벽해진다. 그렇다고 변하는 것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해야 한다. 

 

 

" 김연아 성이 金이 아니라 李 였다면 큰일 날 뻔했어. " " 왜요, 부장님 ? " " 이년아, 가 되잖아 ! " 으, 하하하하하. 제일 크게 웃는 사람은 나와 입사 동기다.  그는 늘 긍정적이다. 반면 굳은 얼굴로 동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 남편이다.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시니컬하다. 우리 셋은 모두 입사 동기였다.  운명이란 짓궂은 것. 그때 내가 선택한 남자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편이 아닌 이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어쩌면 내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침대를 같이 쓰면서 우린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동상동몽일지도 !  먼저 칼을 뽑은 자가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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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스포츠 특집과 한국 노동 사회.

 

 

 

 

 

- 한국 재벌은 괴물이 되었다. 모든 골목 상권을 무차별적으로 집어삼켰다.

 

 

 

 

무한도전의 시작은 정말 무()한 도전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좌충우돌을 전면에 내세운 오락프로그램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이 프로는 띨빵과 띨띠리의 만담-였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요. 빨간 것은 사과예요 ! 사과는 맛있어요. 맛있으면 바나나예요 ! 바나나는 길어요. 길면...

 

                                              내 거시기네요 !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평균 이하 헐렁이들이 아니다. 유재석 사단은 방송 3사의 모든 오락 프로를 점령했으니, 이제 평균 이하 찌질이라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다. 오락프로의 진일보한 진화란 이런 것일까 ? 그들이 변했다. ()한 도전은 이제 무()한 도전으로 업종 변경한 지 오래이다. 스포츠댄스 경연 대회에서 경연을 하고, 봅슬레이 국제 경기에서 선수로 경기를 펼치며, 프로레슬링 경기도 소화한다. 그리고 이제는 조정 경기에 도전장을 내민 모양이다. 말 그대로 무한한 도전이다. 고생 끝에 눈물이 맺힌다. 감동이란 이런 것입니다 ! 강열한 임팩트, 긴 여운 ! 긴 건...

    내 거시기'라니까요 !

 

그런데 요즘 무한도전 특별 기획 시리즈를 보면 지나치게 속도전'이다. 연습 기간이 짧다. 짧은 시간 안에 미션 파서블 해야 한다. 일 년에 걸쳐 배워야 할 것을 한 달 안에 마스터해야 한다. 일 년에 걸쳐서 배울 분량을 일 년에 걸쳐서 배우면 감동이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속도전이다. 이 기간 안에 마스터할 수 있습니까 ? 할... 수 있습니다 !!!

 

이 짧은 기간이라는 악조건을 이기기 위해서는 방법은 단 하나 ! 밤낮없이 연습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스포츠댄스도 아니고 프로레슬링 운동도 아니고 조정 스포츠도 아닌 새벽 별 보기 운동이다. 미션 ()파서블한 과제를 미션 파서블로 바꾸는 기적, 무한도전의 포맷은 어느새 무()한 도전이 되었다. 무모에서 무한으로, 그리고 무한에서 다시 무리한 도전으로 진화한 것이다.

 

 

무한도전 레슬링 특집 : 레슬링은 위험한 스포츠다. 실수는 곧 죽음이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니라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이 죽음의 무도'에 무한도전이 말 그대로 도전한다. < 특집 > 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 특집 편성은, 여름철 장마가 끝나면 웃자라는 잡초의 꽃대처럼, 시청률 20%를 훌쩍 넘었다.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대실패작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감동'은 천박한 것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다. < 정형돈 뇌진탕 투혼 > 이라는 낯뜨거운 카피'로 도배되었지만 사실 이 프로레슬링 특집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기도 했다. 그것은 투혼이라기보다는 잘못하면 사람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단 잠재적 증후'에 가깝다.

 

문득, 이 오락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라는 감동적 스포츠 서사를 끌어들인 무한도전의 방식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의 욕망과 유사하다. 그것은 마치 일 년 치 일감을 던져주고는 한 달 안에 끝마쳐야 된다고 강요하는 봉제공장 사장의 얼굴을 닮았다. 일 년에 걸쳐서 연습해야 할 분량을 한 달이라는 기간 안에 마스터하라는 요구가 과연 합당한 것일까 ? 이건 폭력이다. 빨리빨리 속도전과 노동력 착취를 통해 얻게 된 임무 완수를 과연 감동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 생활의달인 > 도 마찬가지다. 빠른 것은 아름다운가 ? 왜 대한민국의 숙련 노동자만이 번개 같은 속도의 달인이 되었을까 ? 왜 그들은 속도전의 희생양이 되어야 할까 ? 나는 < 생활의 달인‘ > 에 나오는 기계보다 빠른 숙련 노동자를 볼 때마다 괴물이 연상된다. 그것은 노동에 대한 값진 가치가 아니라 혼자서 노동자 세 사람 몫을 해야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어느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그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찬양해야 할 미덕도 아니다.

 

이 눈부신 속도는 충원되어야 할 노동력이 충원되지 않아서 부여된 늘어난 일의 양과 비례한다. 왜냐하면 모든 과제는 일정한 기간 안에 끝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늘어난 일감만큼 마감 기간은 연장되지 않는다. 밤낮없이,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낮밤없이 일해서 주문 날짜에 맞춰야 한다. 대한민국 가내수공업의 특징이다. 일감은 늘어났지만 마감은 일정하다. 결국 노동자 1인이 두 사람 몫을 해낼 수밖에 없다. 결론은 속도전이다. 컨베이어 속도를 높인다. 그 속도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어, 쩔 수 없다. 기계보다 빠른 손동작으로, 기계 톱니바퀴의 rpm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한다. 그것이 몸에 밴 것이다. 배달 쟁반을 아홉 개나 머리에 쌓아올리며 아슬아슬하게 걷는 아줌마의 힘겨운 노동을 미화시키면 안 된다. 장한 어머니라고 칭송하기 전에 배달 직원을 더 많이 고용하지 않은 식당 주인의 횡포를 생각해야 한다.

 

생활의 달인 : 감동인가 ? 한 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한다고 해서 칭찬받아야 할까 ? 자본가가 보기에는 훌륭한 노동자이나 노동자가 보기에는 무모한 도전이다. 모 블로그 만담에서 엿들은 이야기 한 토막. 별다른 장비 없이 물질을 하는 늙은 해녀에게 스킨 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물질을 하면 열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물론 그 말에 늙은 해녀는 동의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내가 열 사람 몫을 하면 나머지 해녀는 뭘 하나요 ? " 우리가 생활의 달인에서 보아야 할 것은 묘기대행진이 아니다. 노동은 묘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늘 이런 식이다. 무한도전의 이상한 진화'를 보면 마치 대한민국 건설 토목 공화국의 현대사를 보는 것 같다. 평균 이하의 나라였을 때 닥치는 대로 주어진 임무를 하던 우리는 어느새 국격의 20 회원국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평균 이상의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노동의 강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임무는 점점 미션임파서블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자본가의 세뇌와 착취는 아주 교묘하다. 우리는 늘 무리한 일감에 허덕이는 평균 이하 노동자들이다. 오늘도 우리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무도장에 간다. 지르박을 추고, 탱고와 차차차를 연습한다. 취미생활이 아닌 목표 달성을 위해서. 슬로우, 슬로우, , ! 프로그램은 보다 세련되고 재미있어지지만 우리의 평균 이하 노동자는 지친다. 그래도 방긋,  " 쉘...  위 땐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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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3-03-25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한도전 레슬링은 "일 년에 걸쳐 배워야 할 것을 일 년에 걸쳐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요.. 잘못 알고 계시는 사실을 근거로 지나치게 비난하시는 듯 ;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은 저 역시 천박하다고 생각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21:10   좋아요 0 | URL
무한도전 팬입니다. 무한도전을 싫어한다가 아니라 기획 작품인 스포츠 도전 프로그램에 대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레슬링 편이 장기 프로젝트'라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재석을 비롯한 모든 맴버들의 월화수목금토일 스케쥴이 빡빡 찬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유재석의 경우는 단 하루도 연습을 위해 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번 나와서 그렇게 3,4시간 훈련해서 1년을 채운다고 해서 그것이 알찬 연습 과정이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기간이 아니라 연습한 시간의 총합이 아니겠습니까 ? 중요한 것은 기획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 21세기 각하 > 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 20세기 각하 > 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각하가 2007년 12월 추운 겨울,  시장 바닥에서 빨간 핸드마이크를 잡고 " 믿숩니까 ? " 라고 외쳤을 때, 일단은 믿음을 유보하고 2007년 12월 이전의 생의 내역'을 뽑아서 분석하면 된다는 말이다. 내역이 곧 내력'이다. 각하는 스스로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라며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한다고 외쳤지만, 21세기는 조용필 이외'에는 아무도 욕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입말의 첫 글이 길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는 아버지요, 아들은 현대'다. 아들은 아버지의 습속을 유전적으로 닮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뒷조사'라는 말을 쓰기가 민망해서 고고학'이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후 16세기 프랑스 사회를 뒤진다. 조사하면... 다 나와 ! 미셸 푸코는 현대의 권력 구조를 폭로하기 위해 중세와 근대를 분석한다. < 감시와 처벌 > < 광기의 역사 > < 성의 역사 > 는 모두 그러한 것들의 결과였다. 그가 < 감시와 처벌 >에서 인용한 판옵티콘은 원형감옥으로 1인의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레미 벤덤이 고안한 원형 감옥 그림을 첨부할까도 생각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해하기 쉬운 예가 있다. 지금의 국정원이 바로 판옵티콘'이다. 국가 권력 기관의 보이지 않는 눈이 민간인 사찰에 쓰이는 것이 바로 판옵티콘의 나쁜 예이다. 각하가 " 믿숩니까 ? " 라고 말할 때 우리는 믿으면 안됐다.  왜냐하면 옵하/오빠'가 " 옵하, 믿지 ? " 라고 말하는 순간 믿으면 안된다는 사실은 모두 다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각하는 그런 존재다. 옵하'가 그런 존재니깐. < 감시와 처벌 > 은 푸코의 저서 중 가장 쉽다. 일독을 권한다.

 

 

 

 


 

 

 

판옵티콘의 새로운 변종 : 셀프카메라'가 당신을 노린다.

 

 

 

 

 

 

 

 

이 세상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 위에서 다 내다보고 계십니다 ! " 다. 심판이 안 볼 때 다람쥐처럼 날쌘 메시의 옆구리 쿡쿡 찌르고 싶지만 위에서 내려다보시니 그럴 수 없다. 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니 그럴 수 없다. 그분은 다 알고 계십니다. 이게 바로 종교의 기본적 성격이다. 이 세계관을 푸코'는 약간 다른 각도로 비튼다. 하느님의 내려다보심'과 부처님의 손바닥'을 하드코어 판타스틱 느와르 버젼으로 변형하면 < 판옵티콘 > 이 된다.  

 

 

판옵티콘이란 원형감옥 core에 위치한 높이 솟은 탑의 감시창에서 죄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감시자는 죄수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으나 죄수는 감시자를 볼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눈'이다. 뜬구름 잡는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판옵티콘은 현대사회에서 널리 활용되는 시스템이다. 청와대 민간인 사찰도 보이지 않는 눈'이다. 권력을 남용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열어볼 수 있다. 스토커 또한 판옵티콘의 변형이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어 ! 아...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모두 알고 있다면 그 무더운 밤 야동을 보며 혼자..... 손으로 자두와 키위'를 집어먹었다는 사실도 그는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 무쉬무쉬하다. 

 

 

그런데 이 판옵티콘이 이상한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타인의 눈이 자신을 감시하는 방식에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감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 아마... 이 사실은 푸코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어느 철학자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이 자리를 빌어 처음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첵도 아직 모르고 있을걸, 바디우도 아직 모르고 있을 거야. 허허허. 

 

 

21세기 카메라의 성능은 관음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단춧구멍으로 진화한 몰카는 당신의 침대를 엿본다. 흥분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그것을 불기둥이라고 소리친다는 사실도, 흥분하면 솔과 라 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진다는 사실도, 아와 어 사이의 애, 매모호한 원시적 소리를 낸다는 사실도 카메라는 죄책감 없이 담담하게 기록한다는 사실도 ! 이놈이야말로 < 보이지 않는 눈 > 이요, 판옵티콘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몰카의 시대는 가고 셀카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반전이 생긴다. 사람들은 타자의 카메라가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기록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자신의 카메라로 자신에게 불리한 기록을 한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찍힌 것은 불리하고 찍은 것은 안전하다는 생각은 당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찍힌 사진이 초상권 침해라면 자신이 찍은 사진은 초상권을 판 것이 된다. 찍힌 것과 찍은 것은 동일하다. 패밀리레스토랑만 가만 먹기 전에 사진부터 찍는 버릇은 언젠가 당신의 유죄를 증명할 결정적 한방이 될 것이다. 검사는 당신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혹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린 모든 내역을 조사해서는 결정적 한방을 찾아낼 것이다. 검사가 프로젝터'를 설치할 때 당신은 이미 끝 !  ( 긴장하시라... )

 

" 재판장 님 ! 오춘자 씨가 5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 한 장을 첨부합니다 !!! " 스스스스스슥... 프로젝터의 열이 오르고 나면 이내 스크린에 음식 사진 하나'가 뜬다. 재판 참관인들 우, 우우 하거나 오, 오오 한다. 그런데 예상 밖이다. 그냥 평범한 사진 한 장.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음식 나오면 후레쉬 터트리며 찍는 단순한 사진 한 장. 파스타 요리 사진이 전부다. 프레임 주변에는 포크를 순에 쥔 손가락들만 보인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이 당신의 감형 없는 25년 유죄를 증명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존경하는 재판장 님 ! 여기 사진 한 장을 첨부합니다. 오춘자 씨는 5월 13일 자신의 블로그에 아욱백에서 찍은 음식 사진 하나를 올립니다. 사진 왼쪽 프레임을 보시면 남자의 손이 보이죠 ? 얼굴은 안 보이지만 손가락은 보이실 겁니다.  새끼 손가락에 푸우 밴드 보이시나요 ? 바로 살해된 피해자의 손입니다. 그날 죽은 피해자 또한 새끼 손가락에는 푸우 곰돌이 밴드를 붙여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그날 피해자인 황만근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지요 ? 예 아니오 라고만 답하십시요. 다시 묻겠습니다. 그날 당신은 황만근 씨를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죠 ? 여기 오춘자 씨의 진술 녹취록을 첨부합니다. 이 사진을 보면 오춘자는 그날 피해자와 강남 아욱백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하셨죠 ? " 

 

 

그렇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올린 한 장의 사진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결국 당신은 당신의 유죄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것이다. 무쉬무쉬하지 않은가 ? 스스로 타자의 눈이 되어서 자신의 일상을 체록하는 것이다. 물론 당신은 동치미 무처럼 결백해서 죄 짓지 않고 살 위인이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당신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란 당신이 제어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니깐 말이다. 당신이 찍은 사진은 당신의 올가미가 될 수 있다 ! 

 

어쩌면 손톡톡소식상자* 에 부착된 렌즈'는 거대 판옵티콘 지도부의 계략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원형감옥의 감시창 대신 핸드폰의 렌즈로 모습을 바꾼 것이리라. 축소지향적 사회가 아니었던가. 아무도 믿지 마라. 당신이 찍은 것들은 언젠가 결정적 한방이 될 것이다. 각하도, 옵하도, 셀카도, 아무도......

 

 

 

 

 

* 손톡톡소식상자 : 휴대폰의 다듬글

-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著

 

* 다듬글 : 순화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 입말 사전 / 소율 著

 

* 묶어서한몸 : 관용어의 순우리말

- 오소리 입말 사전 / 소율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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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3-03-25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코 성님이시여!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5 23:42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푸코 성님은 갑인가 봅니다. 21세기는 푸코와 들뢰즈의 세상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