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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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양들의 침묵 : 사라진 알파벳(들) b, u, s.
희생자는 모두 “ 가죽이 벗겨진 채 ” 죽는다. 더군다나 희생자의 목에는 커다란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연쇄살인범‘은 < 버펄로 빌 > 이라고 불리는 놈이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가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 다.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이 그는 죽은 자의 살갗을 벗기기보다는 차라리 그 인육을 먹는다 ! 토머스 해리스의 < 양들의 침묵 > 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조나단 드미 감독의 영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소설/영화‘는 장르 특유의 상투적인 공식’을 과감하게 뒤집는다. FBI 수사 요원‘인 클라리스는 연쇄살인범 버펄로 빌’을 잡기 위해서 감옥에 갇힌 연쇄살인범인 한니발 렉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상한 짝패 관계이다. 여기서 홈즈 역은 연쇄살인범이고, 왓슨 역은 여형사‘이다. 범죄자는 멘토이고, 형사는 멘티이다. 클라리스는 렉터의 도움 없이는 사건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 그뿐이 아니다. 살인자와의 인터뷰가 진행하는 동안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관계가 역전된다. 감옥 안에 있는 살인자가 질문을 던지고 감옥 밖에 있는 형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 lam(b)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말하는 입과 먹는 입 / Oral 이다. 버펄로 빌’이 죽인 희생자의 목구멍에는 나방의 고치‘가 걸려 있다. 식도가 막혔다는 것은 곧 발설과 배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입은 항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유년기는 바로 구순기/Oral 와 항문기/Anal 의 지배를 받는다. 버펄로 빌이 강박적으로 목구멍 속에 좀벌레 나방‘의 고치를 목구멍 속에 넣는 행위’는 그가 소화에서 배변까지, 혹은 상대방과의 소통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구강 기관 장애‘는 비단 버펄로 빌의 문제만은 아니다.
제목 < 양들의 침묵 > 에서 “ 침묵 ” 은 바로 목이 막혀서 말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병적 증후이다. 이 말할 수 없음’은 사건이 점점 진행되면서 클라리스의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양을 뜻하는 lamb은 철자 b가 묵음으로 처리되면서 단어 lam 과 동음이의어‘로 작동한다. lam의 사전적 의미’는 때리다, 내빼다, 달아나다 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단어’가 스탈링이 렉터 박사에게 힘겹게 고백하는 자신의 정신적 상흔을 완벽하게 재현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밤중에 양/lamb 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린 클라리스는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간다. 거기서 목격하게 되는 것은 양을 도살하는 남자의 모습이다. 그는 양을 격렬하게 때린다.(lam : 때리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클라리스는 그 자리에서 달아난다. ( lam : 달아나다. ) 이 장면은 프로이트가 말한 < 원초적 장면 > 과 겹친다. 어린 클라리스‘에게는 양 도살 장면’이 정신적 상흔으로 남은 것이다. 성인이 된 뒤에도, 그녀는 이 상흔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녀가 힘차게 말하지 못하고 몰래 도망치기에 급급했다는 사실은 결국 그녀 스스로 남은 양들의 살육‘을 도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lamb 에서 철자 b 를 묵음으로 처리함으로써 양의 죽음에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알파벳 b 다. 이렇듯 이 소설/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는 괄호 ( ) 다.
▦ mo(u)th
이러한 알레고리‘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 나방 > 의 존재에서도 드러난다. 나방을 뜻하는 moth 는 mouth 와 유사하다. 영화 < 양들의 침묵 > 메인 포스터’는 클라리스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가 정면을 응시하는 디자인인데, 입 대신에 나방이 있다. 그러니깐 mouth 대신 moth 로 대체된 것이다. 그러므로 클라리스, 한니발 렉터, 버펄로 빌’은 모두 < 입 > 이라는 단어와 서로 깊은 관계가 있다. 그들은 모두 구강 기관‘에 문제가 있다. 클라리스가 발화‘에 문제가 있다면, 렉터 박사’는 섭식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의 병명은 인간이 먹어서는 안 될 인육을 먹는 < 이상 섭식 장애 > 이다. 그리고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목구멍 속 깊숙이 나방의 고치‘를 삽입한다.
작품 속에서 버펄로 빌의 직업은 재단사‘다. 그는 희생자들의 피부에서 벗겨낸 여성 인피로 가죽 옷을 만든다. 그의 욕망은 여성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 피부로 만든 옷으로 몸을 감싸서 자신의 남성 육체’를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고치 속에 몸을 숨긴 좀나방 유충처럼 말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나방을 뜻하는 단어인 moth는 입을 뜻하는 단어인 mouth'에서 알파벳 u가 생략된 낱말이다. mo(u)th‘이다. 그래서 버펄로 빌’은 희생자의 mouth'‘에 mo(u)th' 를 삽입한다. 이 얼마나 황홀하며 상징적 제스츄어인가. 이것은 살인자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이다. 버펄로 빌의 목적이 여성이 되는 것이라면, 렉터 박사의 목적은 지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라리스의 정신적 해방은 무엇일까 ? 밤마다 들리는 죽어가는 양들의 성난 울음소리‘를 잠재울 방법 말이다.
방법은 하나다. 그녀의 목구멍 속에 있는 나방의 고치’를 빼내서 소리가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마치 호리병의 뚜껑을 빼서 병 속에 갇힌 요정을 빠져나오게 하듯이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정신과 치료의 가장 기초적인 치료법‘이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의 목구멍 속에 숨겨진 비밀‘을 발설하게 함으로써 병을 치유하는 직업이지 않은가 ? 공교롭게도 작품 속 한니발 렉터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래서 유리벽 사이‘로 나누는 렉터와 클라리스의 대화는 사실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대화요법’인 것이다. 렉터는 그녀에게 아직도 밤마다 양의 울음소리‘를 듣는가, 라고 묻는다. 그녀는 그의 집요한 질문에 굴복하여 자신의 비밀을 발설한다. 그 순간, 십 년이 넘도록 꽉 막힌 목구멍이 뚫린다. 비로소 그녀는 버펄로 빌의 작업실을 발견한다. 클라리스가 버펄로 빌’의 집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그는 이제 여섯 번째 희생자의 살가죽을 벗겨 옷을 완성하려고 한다.
▦ jame(s)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가 lamb 에서 알파벳 b 가 묵음이라는 것에 착안해서 발음이 같은 lam 를 이야기에 편입시키고, mouth 에서 알파벳 u를 생략시켜서 moth의 서사를 만들었다면, 이번에는 clothes와 mo(u)th라는 두 단어를 결합시킨다. 해리스는 버펄로 빌의 욕망의 오브제인 clothes 와 mo(u)th를 연결한다. 결국 우리는 최종적으로 a clothes moth' : 좀벌레 나방이라는 단어를 얻는다. 그가 키우는 나방 이름이다. 이렇듯 단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방식은 버펄로 빌의 이름에서도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의 진짜 이름은 제임/ jame 이다.
원래는 james인데 병원 담당 계원의 실수로 jame 이라고 표기하는 바람에 제임스가 아니라 제임이 되었고 책의 에필로그에 나온다. 그러니깐 그는 자신의 잘못된 이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잘못된 이름인 jame 으로 살아간 것이다. 그의 이름인 제임은 알파벳 s가 탈락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희대의 살인자인 버펄로 빌을 이해해야 한다. 좀나방 유충은 천으로 된 옷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그는 좀나방 유충이 갉아먹지 못하는 인피로 만든 여성 가죽 옷을 간절히 원했던 것은 아닐까 ?
이 영화의 원작자인 토머스 해리스‘는 매우 정교하게 씨줄과 날줄’을 엮는다. 겉으로는 선정적이며 엽기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나가는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위에서 열거한 해석이 과연 내가 억지로 짜 맞춘 것에 불과할까 ?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종류의 대중소설‘을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가 없는 펄프픽션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짜인 구조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형편없이 지루한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이 낫다. 헤르만 헷세의 성장소설이나 토머스 해리스의 성장소설이나 다 같은 성장소설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