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독설' 사이.

 

 

 

 

 

 

 

 

 

 

 

 

 

 

 

 

 

 

 

 

 

 

< 소설가의 각오 > 에서 미루야마 겐지는 일본 문단의 지랄같은 꼰대의 풍경'을 비판한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일본과 한국은 비슷하다. 그가 요구하는 소설가의 각오'는 수도승 같은 속세에 초월한 무욕'이다. 그래야 좋은 소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단의 풍경은 무욕은커녕 무념'으로 일관하고, 단단한 각오 대신 가오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한 마디로 폼생폼사다. 그래서 그는 일본 주류 문단 밖의 작가'로 생활한다. " 문학 살롱이여, 조까라 ! " 반면 스티븐 킹'은 돈 벌어서 좋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미루야마 겐지가 보기엔 스티븐 킹이 속물처럼 느껴지겠만, 킹은 꽤 진지하게 글쓰기 강의를 한다. 그는 순문학이 가지고 있는 엄숙주의'를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그가 보기엔 " 주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창작 교실이나 문학 강의에서는 흔히 귀찮을 정도로 ( 그리고 공연히 우쭐거리면서 ) 주제에 매달리는데,사실 주제는 ( 놀라지 마시라 )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 라고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글쓰기 관련 서적 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 이에 필적할 만한 책으로는 밀란 쿤데라의 < 소설의 기술 > 이 있다. 얼핏 보면 소설 작법 같지만 위대한 타자의 텍스트에 대한 독후감이다. 가장 좋은 작법은 위대한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이니 말이다. 미루야마 겐지'가 요구하는 소설가의 각오를 제대로 실천한 사람을 한국에서 찾는다면 김수영이 될 것이다. 그를 볼 때마다 자주 조지오웰과 겹친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Battle Royale by Adam Rabalais

 

21세기 한국 단편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 재미없다 ! " 물론 걸출한 몇몇의 작가는 있다. 박민규, 김애란, 김영하, 최제훈, 배명훈 정도 ?!  21세기 한국 장편 소설의 특징 또한 " 재미없다 ! "  다. 물론 예외적인 작가는 있다. 박민규와 김영하는 단편과 장편 모두 고른 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머지 작가는 단편의 퀼리티와 장편의 퀼리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한국 작가들은 대부분 단편에 강하지만 장편에 약하다.  하성란의 경우 단편은 훌륭하지만 장편은 형편없다. 김애란이 < 두근두근.. > 에서 실패한 이유는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종목 변경에 따른 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10,000미터 달리기를 할 때와 같다.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법과 호흡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특성상 대부분의 예비 작가들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로 키워진다. 처음 시작하는 주 종목이 단거리‘다. 대한민국은 등단이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작가 등용문이 있는데, 등단을 위해서는 단편' 을 선보여야 한다. 선배들 앞에서 노래 한 곡 ! 얼핏보면 멘토와 멘티의 관계이지만 사실 갑'과 을'의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슈퍼스타 K에서 중요한 것은 멘토의 취향에 누가 가장 근접한가에 있다. 멘토의 요구 조건'에 가장 가까운 자'가 살아남는다. 그것은 말 그대로 요구 조건'이지 진심어린 충고'가 아니다. 더군다나 언어란 누구나 공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재산'인데 도 불구하고 이 공공재산'을 사용할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검열'하는 방식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쫌, 역

겹다.

 

이런 시스템으로 키워진 등단 작가들은 단편을 문예지에 팔면서 근근이 생활한다. 단편이 모이면 단편집을 내고, 같은 방식으로 몇 권의 단편 소설집’을 낸 후 장편에 도전한다. 다시 육상종목에 빗대자면 단거리 선수로 출발했는데 중간에 장거리 선수로 전향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하는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만다. 물론 단거리와 장거리 모두 좆 빠지게 달려야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지만 이 두 분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단거리는 전력 < 집중형 > 이고, 장거리는 전력 < 분배형 > 에 있다. 달리기에서 자신의 종목을 바꾼다는 것은 한 체급 올려서 도전하는 권투 경기와는 다르다.


반면 평론가는 좋은 작가를 발굴해서 대중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게 뒤집어져서 작가가 평론가의 구미에 맞춰 글을 쓴다. 그리고 평론가가 모시는 윗분은 출판사다. ( 혹은 출판사가 스타 평론가를 모신다. ) 뭐 대충 이런 시스템이 운영되니 문학의 가장 밑바닥엔 소설가'가 깔린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하여튼 신진 작가들은 윗분에게 잘보여야 한다. 잰 체하는 속물의 대명사인 교수 집단 내의 문학평론가‘는 고도의 압축을 선호한다. 그들은 수수께끼를 푸는 형식을 선호한다. 평론가는 공선옥 작가처럼 쉽게 글을 쓰면 글 쓸 거리’가 없어서 당황한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오, 라며 허세를 작렬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래서 평론가는 공선옥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하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보기엔 그녀의 소설은 " 재미

 

없어요, 공선옥 씨! "

 

사연이 이러하니, 글을 써서 먹고 살려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대충 문단 돌아가는 꼴을 파악해야 한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 단편만 써서 먹고 살 가능성은 이명박이 십년 안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확률보다 낮다. )  신인 작가들은 문학평론가에게 눈도장을 찍혀야 한다. 자주 노출될수록 유리하다. 문학평론가가 방앗간'이니 작가들은 기꺼이 참새'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평론가들에게 먹히는 단편을 쓴다. 성과 죽음에 대해서, 식욕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대충 이런 식의 알레고리‘로 이야기를 푼다. 막힌다 싶으면 < 현대인의 고독 > 을 이야기하고, 그래도 막힌다 싶으면 < 현대인의 불안 > 에 대해 진술하면 대충 그럴 듯한 소설이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출판사 교정을 보는 사람들은 무척 피곤할 것 같다. 까닥 잘못하면 < 현대인의 불안 > 을 < 현대인의 불알 > 로 인쇄되는 대형 실수를 범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그러니 일반 독자‘는 한국 소설이 재미가 없다. 어찌나 심각한지 이 세상 고뇌는 모두 자신들이 짊어진 것만 같다.


편혜영의 소설을 보면 평론가들이 참 좋아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평론이라는 것이 그렇다. 홍상수 영화처럼 밑밥이 잘 깔린 영화는 평론가가 평론하기에 좋다. 차이와 반복 운운하며 들뢰즈를 인용하면 A4 용지 10장은 거뜬하게 쓸 수 있다. 난해할수록 평론가에게는 쉽다. 오히려 평론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쉬운 영화들이다. < 디워 > 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나. 디워는 평론가들에게는 개미지옥이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 디워 > 를 미워한다. 편혜영의 단편은 평론가가 좋아할 작품이다. ( 평론가가 좋아하는 작품이 모두 좋은 작품은 아니다. ) 그러니 평론가들이 개미떼처럼 몰려들어서 성찬을 늘어놓는다. 이것은 일종의 공생관계다. 그녀는 평론가를 위한 단편을 쓰고, 평론가는 그녀를 위한 글을 쓴다. 평론의 성찬이다. 알레고리는 착착 감긴다. 그러니깐 주인공의 두려움은 남성 가부장에 대한 억압에서 비롯된 것이죠. 먼 곳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는 여성을 둘러싼 경계가 이미 남성의 폭력적 세계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죠, 편혜영 씨 ?

 

당연하죠, 평론가 선생님 ! 사실... 그렇게 해석하시라고 안개 속에서 개 짖는 소리'를 연출했습니다. 호호호. 쓸 거리'를 제공하는 거죠.


가장 대표적인 단편이 천운영의 < 바늘 > 이다. 기막히게 좋은 단편이라는 평론가들의 설레발이 무색할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다. (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단편이 매우 뛰어나다는 데는 공감한다. ) 문제는 심사위원이나 평론가들이 참 좋아할 모든 문장을 고루고루 갖추었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엔 독자를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을 위해 쓴 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듯, 어려운 것을 좋아하는 평론가의 구미에 맞게 글을 쓰니 일반 독자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른다. 엿 먹어라, 한국 소설 ! 이라며 모두 외면해도 요지부동이다. 어차피 1년에 책 한 권 읽는 대중에게 봉사하느니 차라리 윗분에게 잘 보이는 것이 낫다는 태도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게 먹힌다. 먹물은 먹물끼리 놀아야 제격이다. 요지경이다. 요지경 속 인물들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꼴이다. 퀼리티, 퀼리티에 목숨 걸지 말고 스티븐 킹’처럼 신나게 재미있는 소설 좀 썼으면 한다. 어쩌면 대중의 형편없는 독서 문화'는 유감스럽게도 < 독설 > 을 책임져야 하는 평론가의 직무 유기와 < 독서 > 를 책임져야 하는 소설가의 직무 태만 때문인지도 모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3-03-21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의 가오라. 연달아 흥미로운 글들을 쓰시는 군요.
21세기 한국 소설의 특징을 한 가지 더 붙이자면 "다 똑같다!" 입니다.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
눈썰미가 없는 탓인지, 소설집을 읽다보면 이것이 누가 쓴 것이더라 헷갈리곤 합니다.
다 비슷해요. 박민규와 황정은이 그래서 돋보이는 게 아닐까요. 제가 그렇게나 사랑하고 좋아하는 한강 작가도 사실 일반인이 보면 다른 작가와 똑같은 작가입니다. 음...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다 비슷비슷하다구요.
그리고 사실 저는 편혜영을 썩 괜찮게 봅니다. 그녀의 단편들을 괜찮게 읽었거든요. 물론 그녀가 비대중적인 소설을 쓰는 건 맞아요. 한번은 제 친구에게 그녀의 장편소설을 빌려주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당최 어려워서 못 읽겠다고 돌려주었습니다. 장편뿐 아니라 단편도 마찬가지죠. 저는 편혜영의 작품을 그리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어쩌면 김숨과 그녀는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곰곰님께서 언급하신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다는 점에서요. 어떻게보면 이 한국문학은 현대인의 불안과 고뇌의 범주에서 절대 멀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것을 얼마나 개성있게 다루느냐에 따라 진부하다와 경이롭게 새롭다의 갈래가 나뉘어지겠죠. 편혜영도 개성 있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개성이라기보다 자기만의 문체를 갖고 있는 것이겠지요. 김미월은 영 심심해요.
평론이 자기들만의 리그인 것은... 저도 평론가를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음...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01:22   좋아요 0 | URL
사실 전 소설 잘 몰라요. ㅋㅋㅋㅋㅋㅋ. 그냥 아는 척을 제가 좀 한 것 가타 부끄럽습니다.
전 주로 추리소설을 읽었습니다. 재미있으면 장땡이다,주의거든요...ㅎㅎㅎㅎㅎㅎ
소이진 님은 한국 문학에 대해 깊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저와는 좀다른 레벨이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이곳으로이사온지 며칠안 되서 좀 낯설고 그러네요..ㅎㅎㅎㅎ


사실 소설가가 현대인의 불안을 안 건드리면 그건 직무유기죠.
그런데 저는 너무 노골적인 불안 타령은 심히 불만이 가더라고요.

나탈야 2013-10-18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루야마 겐지가 느꼈던 문학계의 폐단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이글 엮어 가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0-18 21:22   좋아요 0 | URL
나의 뮤즈 나턀야, 나의 사랑 나탈야 오셧구려... 사랑해요. 나탈야, 얼릉 나라 결혼합시다...
 

 

 

 

 

 

 

 

옛날 신문을 읽었어.

 

 

 

The Prestige by Jason Heatherly

 

 

남산 아래 양동'에서 몇 년'을 보냈다. 서울역 창녀촌'이 있는 동네'다. 앵벌이들도 이곳에 모여 살았다. 늙고 병들어서 매춘을 할 수 없는 창녀들은 앵벌이들의 돼지엄마'가 되어서 그들의 돈을 노렸다. 창녀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던 포주와 돼지엄마'는 쪽방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비싼 숙박비'를 뜯어냈다. 아이들이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러미널로 불리는 알약 때문이었다. 돼지엄마는 약사와 뒷거래를 해서 다량으로 알약을 구입해서 백 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을 만 원'에 팔고는 했다. 아이들은 모두 러미널 중독자'들이었다. 날마다 열 알'을 삼켰다.

 

그들은 감기약 알약인 러미널'을 다량으로 삼킨 후, 환각 상태'에서 구걸을 했다. 이 약을 다량으로 삼키면 환상이 보인다. 어머 ! 별이 반짝반짝.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알약 성분은 근육을 마비시켜서 인간 광우병 환자'와 비슷한 병증을 보였다. 침을 흘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손을 심하게 떤다. 뇌 신경계를 자극시키는 것이 분명했다.약에 취한 어린 앵벌이들은 서울역'에서 1호선과 4호선을 타고 구걸을 했다. 사람들은 앵벌이들을 보며 멀쩡한 사람이 구걸을 위해서 앉은뱅이' 흉내를 낸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약 기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닥이 될 수록, 캄캄한 밑바닥을 보일 수록 돈벌이는 좋았다. 얼마만큼 밑바닥 메소드 연기'를 잘하느냐에 따라 어른의 동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어 새끼, 아이들은 바닥을 기며 구걸을 하는 자신을 문어에 비유하고는 했다. 뼈 없는 짐승 흉내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조롱 섞인 비하'였지만 나는 그 말이 슬펐다. 뼈 있는 짐승이 뼈 없는 짐승 흉내'를 내다니. 어쩌면 저 구걸은 숭고한 노동이리라. 예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곳에 천막 교회'를 열었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 밑바닥이 되는 삶.

 

http://myperu.blog.me/20152853398

 

 

다들 아시다시피, 남산 아래에는 두 개의 도서관이 있다. 남산 도서관과 용산 도서관이 10미터 간격을 두고 모여 있었다. 내 하루의 일과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도서열람실이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들어가 책을 읽었다. 하루에 3권씩 읽었다. 열람실은 집중이 잘 되어서 속독이 가능했다. 비봉 출판사에서 4권으로 나온 맑스 < 자본론 상, 중, 하 1,2 > 를 이틀 만에 읽기도 했다. 읽고, 읽고, 읽고, 읽는 것이 전부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을 기계적으로 읽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가만히 앉아서 나무가 물이 들어가는 창밖 풍경을 오랫동안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가 재미를 붙인 것이 옛날 신문'을 보는 것이었다. 일반 책이야 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책을 사서 보면 되지만, 옛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 유일하지 않던가 ? 그때부터 옛날 신문일 읽기 시작했다.

 

오늘의 뉴스가 아닌,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뉴스'를 읽었다. 시장 생선장수가 버린 생선 내장을 먹고 죽은 기사'도 있었다. 아이들이 굶자 아버지는 시장에 버려진 생선 내장으로 생선국을 끓여 먹었는데, 그 생선이 복어 내장이라는 가슴 아픈 기사'도 읽었다. 아주.... 오랜 전 이야기'다. 새마을 운동 이야기도 읽었다. 박정희는 단골 뉴스'였다. 전두환은 강철 군화를 벗고 대통령이 되었고, 사람들이 날마다 민주화를 외치며 자살을 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아, 옛날 신문은 세계 문학 전집'보다 재미있었다. 아침 9시에 1986년도 9월 6일자 신문을 읽기 시작해서 1986년도 12월 24일 신문'을 읽을 때가 되면 도서관을 나오고는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날마다 찾아와서 옛날 신문을 읽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 하지만 이 취미'도 몇 달'을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 비치된 낡은 신문은 모두 보았으니깐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옛날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산다고 말했다. 넌, 현실적이지가 않아 ! 핸드폰이 나오는 세상에 그 옛날 섬 마을에 불이 들어온 기사'를 탐하고 있으니 그들의 지적이 맞긴 했지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귀기울여 듣고는 조용해 말하고는 했다. 조까 !

 

옛날 신문을 읽지 않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서울역이 지긋지긋했다. 야밤도주하듯, 서울역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조까, 서울역 ! 빠이빠이다. 앵벌이들의 소식도 그 이후로는 알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신간 뉴스'만 골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뉴스투데이'만 보았다. 그럴 수록 서울역에서의 이야기들은 모두 꿈같은 농담이 되어버렸다.

 

오래만에 남산 도서관'에 갔다. 단풍 구경하러 갔다가 옛 생각이 나서 들렸다. 이곳에서 옛날 신문을 읽고는 했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앵벌이와 돼지엄마를 만났지. 그러데 그들은 다 어디 갔을까 ? 그 많던 서울역 앵벌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 문득 궁금해서 열람실에 들려 옛날 신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봄날, 꽁꽁 언 수도가 터지듯 눈물이 났다. 한때 나는 옛날 신문을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셜록 홈즈와 프로이트

 

 

 

 

 

 

 

  

 

 

 

 

 

 

 

 

 


 

 

 

 

 

 


 

셜록 홈즈의 추리'는 철저하게 < 박물학적 세계 > 에서 나온다. 그는 모르는 것이 없다. 발자국의 크기나 범인이 벽에 쓴 경고성 메시지의 높이를 통해서 범인의 키'를 유추하는 물리적 추론은 물론이고, 살인 현장에 남겨진 담배의 담뱃잎 종류나 흙의 성분을 분류하여 범인의 거주지'를 파악하기도 한다. 이 모든 능력'은 박물학'에서 나온다. 먹물 투로 말하면 박물학이고, 천박하게 말하자면 잡학다식'이다.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해야지 좋은 탐정이 될 수 있다. 각하처럼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저돌적인 몰입'은 탐정에게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론은 이렇다 : 탐정이란 잡다하게 많이 아는 사람이다.

 

프로이트'가 추리소설광'이었다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밤 새워 홈즈, 뒤팽, 루팡 and 브라운 신부 따위'를 읽었을 것이다. 그는 몇 페이지'를 읽고서는 단번에 범인'을 파악했으리라.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추리소설 광'이 존재한다. 끝까지 재미있게 읽는 독자와 중간에 결말을 예측하는 독자. 프로이트는 후자'였을 것이다. 내가 프로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신분석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추리소설가'이기 때문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프로이트'는 논문을 추리소설'처럼 쓴 전무후무한 먹물'이다. 그것도 아주 근사한 먹물'이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추리적 기법'으로 글을 썼다. " 그라디바에 대한 논문 " 은 한 편의 잘빠진 스릴러 소설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의 기억 " 이나 "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 살해 " 는 그의 문학적 이해'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알려준다. 그는 미학, 문학, 철학, 고고학, 문화 인류학'을 종횡무진하며 활약한다. 프로이트야말로 정말 모르는 게 없는 탐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이트와 홈즈는 동급 최강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론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 전이 " 와 " 말실수 " 다. 전이'란 어떤 대상에 향한 감정이 다른 대상에게로 옮겨가는 감정의 전염 현상인데, 이와지 슈운지의 < 러브레터 > 는 이와 같은 전이 현상'을 쉽게 설명한다.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첫사랑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다. 옛사랑에 대한 감정이 지금의 애인'에게 전이된 예이다. 하지만 전이'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러브레터'에서는 사랑에서 사랑으로 옮겨가지만 어떤 전이'는 사랑이 변형된 증오'로 바뀌기도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각하를 향한 나의 증오'는 어쩌면 사랑이 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자기애'다. 마음에 드는 이성 사진'을 고르는 실험'이 있다. 10장의 사진 중 가장 끌리고, 꼴리는 사진 한 장을 골라야 한다. 그런데 여기엔 실험 제작진의 꼼수'가 하나 있다. 10장의 사진 중 1장은 사진을 골라야 하는 실험자의 사진'이라는 점이다.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포토샵을 한 후 끼워넣는 것.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 대부분의 실험자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사진 앞에서 오랫동안 쳐다본 후 그 사진을 고르게 된다. 이 여자가 가장 매력있어요, 이 남자가 끌려요. 그 사진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는 채 말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신과 닮은 대상에게 홀리게 되어 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자기가 사랑에 빠졌던 대상을 살펴보아라. 내 남편이 문어처럼 생겼다고 ? 내 아내가 곰처럼 생겼다고 ?! 맙소사, 그것은 당신이 문어나 곰처럼 생겼다는 명확한 증거다. 우리는 많이 보았던 얼굴'을 친숙하고 편한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과 닮은 이성'을 보면 한눈에 반하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사랑은 어쩌면 전이'인지도 모른다. < 나 > 에서 < 나를 닮은 이성 > 으로의 전이' 말이다.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전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돈 많은 추남과 미녀의 결합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사랑의 전이'가 맺은 결실이 아니라 이해득실에 따른 밀실 야합'이다. 심장의 선택이 아닌 머리'로 맺은 언약식이다.

 

이 시대에 프로이트'를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벨 문학상은 개나 줘라. 노벨상 수상 목록이나 기웃거리며 수상작이나 골라서 읽는다고 당신의 문장력이 좋아질 리는 없다.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읽어라. 나는 좋은 명탐정이 되기 위해서 프로이트를 읽었다.

 

 

 

 

 

 

http://myperu.blog.me/20128585529 식스센스 : 전이와 역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꿈' 이야기.

 

 

                                                     -   다섯 개의 꿈 중 하나는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다.

 

 

 

■ 1.

꿈에 사슴 농장이 나왔다. 하지만 농장은 텅 비어 있었다.

사슴없는 농장을 울타리 밖에서 보고 있는데

서슴없이 사슴이 다가와서 내 귓볼을 핥았다. 꿈에서 깨어 곰곰 생각하다가 < 서슴없다 > 란 단어를 찾아보았다.

그 사전에는 단어 설명 대신 사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 2.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이명박과 노무현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노무현은 미운 정'이 들어서 밉다가도 그립고

이명박은 미운 정'조차 없어서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

산신령이 금 도끼'를 선물로 주었다.

 

 

■ 3.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미술관과 여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미술관은 혼자 가야 제대로 된 그림 감상을 할 수 있고

여 관은 둘이 가야 제대로 된 쾌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산신령이 금 도끼'를 선물로 주었다.

 

 

■ 4.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빵의 종류를 나열하라고 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 빵은 갓 구운 빵과

갓 구운 적이 있는 빵으로 나눕니다. "

산신령이 그냥 도끼'를 주었다. 나는 그 나무로 가문비나무를 베었다.

 

 

■ 5.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새옷과 헌옷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새옷'을 선택했다.

산신령이 다시 새 애인과 낡은 애인 중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라고 물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애인은 구두와 같습니다.

새 구두가 탐이 나지만 길들여지지 않은 구두는 불편합니다.

비록 낡고 더러우나 발이 편한 낡은 구두'를 선택하겠습니다. "

산신령이 낡고, 늙고, 병든 애인'을 주었다. 그녀의 등뼈를 어루만지며 울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사르 2013-03-2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다 진짜 같은데..
굳이 뽑자면 전 5번!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1   좋아요 0 | URL
후훗.... 틀렸습니다.
 

 

엽편소설 no.1

 

 

 

 

 

 

 

 

 

 

400번째 안타.

 

 

 

Rocky by Daniel Norris 

 

 

 

술을 많이 마시거나 피곤하면 종종 화장실에서 혈변을 보고는 했다. 치질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대장암'이라면 어떻게 될까 ? 걱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검사를 계속 미룬 이유는 쪽팔려서 병원을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낯선 남자에게 내 항문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애인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항문을 남자에게 보여줘야 하다니, 눈 앞이 캄캄한 것이다. 하지만 계속 미룰 수가 없어서 병원 예약을 했다. 예약 당일, 나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목욕탕으로 갔다. 3시간 동안 항문만 닦았다. 그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리라. 종로 속옷 가게에 들러 19,900원짜리 메이커 팬티'를 사 입고 병원에 도착했다.

 

순간 아차 했다. 산부인과에 가는 환자는 팬티보다 양말이 깨끗해야 창피하지 않다고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 어차피 산부인과 의사가 보는 것은 팬티가 아니라 거치대에 올려진 양말을 신은 발이니 말이다. 발의 바닥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남편과 산부인과 의사가 유일할 것이다. 간호사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소율 손님 ! "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 갑자기 똥구멍이 간지러워 ! 빌어먹을. 문을 열고 들어갔으나 의사'는 갑자기 진행에 차질에 생겼는지 서류를 뒤적이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진찰실 안을 이러저리 살펴보았다.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진열장에 야구공과 투수 글러브'가 보였다. 그런 나를 보았는지 의사가 물었다.

 

 

- 야구 좋아하세요 ?

- 네에... 십 년째 엘지'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사회인 야구'를 하시나 보죠 ?

- 아 ? 핫핫 ! 네에. 의사도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환자들 더러운 똥구멍만 하루 종일 봐야 하니... 앗! 농담입니다.

- 아, 네에 ! 포지션이 투수신가 봅니다. 왼손잡이 투수'가 좋죠.

- ( 차트를 보며 ) 소율 씨 ? 야구에 대해 해박하시군요. 일반 사람들은 투수 글러브와 야수 글러브'가 다르단 사실을 잘 모르거든요.

   하하 반가워요. 그나저나 엘지는 올해 잘 할까요 ?

- 잘 하겠죠. 10년째 그 생각으로 야구장에 가고는 했습니다.

- 하하하

- 허허허

- 이크, 웃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바로 가죠 ? 증상이...

- 종종 혈변을 봐서요.

- 음, 뭐, 동성애.. 이런 건 아니시죠 ? 애널섹스에 의한 단순 파열이 있을 수 있거든요.

- 아, 아닙니다 !

- 그럼 한번 봅시다. 똥구멍 벌려보세요.

 

의사는 수술용 장갑을 끼더니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 아... >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무너진 건물 안에 갇힌 고양이를 살피기 위해 투입되는 카메라 내시경'처럼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 아................ 아프지만 좋다. 갑자기 의사가 내게 속삭였다. " 기모치이이 ? " 기모치 ?!! 의사는 느닷없이 나에게 일본말로 좋냐고 물은 것이다. 뭐가 좋다는 건가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손으로 내 엉덩이를 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 기모치 ? " 아, 아아..... 나는 그의 강압적인 재촉에 그만 무의식적으로 " 야메떼 구다사이 !!!! " 라고 소리쳤다. " 자... 됐습니다. 소율 씨. 이제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 나는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른 채 그 앞에 섰다. 그는 방그레 웃고 있었다.

 

" 선생님은 동성애 항문 섹스에 의한 출혈은 아니신 것 같군요. 대부분은 애널 취향을 창피하게 여겨서 감추는 경향이 있어요. 여성 환자의 40%는 단순한 애널 섹스에 의한 항문 파열 때문에 오죠. 남성의 경우는 더욱 그렇죠. 선생님은 이성애자'예요. 이성애 야동을 많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기모치와 야메떼 구다사이'란 단어에 익숙해요. 왜냐하면 남자 배우가 기모치라고 물으면 여자들은 앙앙거리면서 야메떼 구다사이'라고 외치죠. 제가 선생님에게 기모치? 라고 닥달을 했을 때, 선생님이 생각없이 야메떼 구다사이'라고 말한 것은 일종의 무조건반사적 학습효과입니다. 선생님은 노멀한 포르노'를 많이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고로 동성애자가 아니십니다. 동성애자들은 이성애 야동을 보지 않거든요. 게이 포르노는 기모치, 뭐 야메떼... 이런 앙앙거리는 멘트를 날리지 않거든요. 그들의 섹스는 돌직구'예요. 웅장하죠. 이성애 포르노가 피아노 소곡이라면, 게이 포르노는 오르간 연주처럼 묵직해요.푹, 윽, 퍽, 악, 이런... 하여튼 선생님의 병명은.... "

 

나는 무척 긴장이 되었다. 의사는 사무적인 말투로 선고를 내렸다. " 안구 착색 망막 손상'이 진행 중이십니다. 쉽게 말해 1년 안에 눈이 멀게 되는 병입니다. 괄약근은 눈과 연결이 되어 있죠. 눈은 아시다시피 괄약근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눈이 나쁘면 괄약근에 이상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요. " 나는 대장항문과 전문의로부터 시력 상실'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눈이 괄약근이라는 사실은 태어나서 처음 듣지만... 의사가 괄약근이라고 하면 괄약근인 거다. 의사란 그런 존재다. 나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에 펑펑 울었다. 남자는 그런 존재다. 의사는 유쾌하게 말을 이었다. " 아니, 뭐 그리 죽상이십니까 ? 꼴도 보기 싫은 인간들 얼굴 안 볼 생각하면 좋지요. 저도 눈이나 멀었으면 좋겠네요. 더럽고 험한 꼴 안 보게 말이지요.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디 눈 뜨고 볼 만한 풍경입니까 ? 각하 얼굴 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행운입니다.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강타구입니다... " 의사의 말을 들으니 그럴 듯했다. 각하를 보지 않아도 된다니. 야홋 ! 인생이란 케세라세라 !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다음날 한강 공원에 나와 공을 주고 받는 연습을 했다.

 

- 메이져리그는 어느 팀 좋아하십니까, 소율 씨 ?

- 전 보스톤 레드삭스 좋아합니다.

- 왜요 ?

- 빨간 양말 로고가 예뻐서요

- 그거 아십니까 ? 스티븐 킹이 보스톤 광팬이라는 사실 ?

- 그럼요, 알다마다요. <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 라는 소설에서 톰 고든은 그 유명한 레드삭스 선수 아닙니까.

- 하하하. 그래요. 소율 씨 꿈은 뭐였습니까 ?

- 투수요 ! 저도 의사 선생님처럼 투수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야구부 투수였습니다.

- 그래요? 어쩐지... 꿈 포기하지 마십시요. 인생이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잖아요. 럭비공 같아요.

  럭비공이 하늘을 날 때는 예상 가능한 포지션이지만 땅에 바운드 되는 순간 어디로 튈지 모르죠.

 

우리는 밤 늦게까지 공을 주고 받았다. 나는 그날 결심했다. 눈이 안 보이는 그날까지 공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그게 세상의 진리'이다.

 

 

 

 

 

 

 

 

 

에필로그.

 

눈이 먼 지 7년이 지났다. 나는 현재 마운드 위에 서 있다. 레드삭스 팀 투수'가 되었다. 물론 나는 맹인'이다. 앞을 못 보는 데 어떻게 공을 던지냐고 ? 비웃지 마라 !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각하는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나? 불가능한 것은 각하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동료인 포수가 종을 울리면 그 소리를 향해 공을 던진다. 내 공은 낙차가 크다. 지금까지의 방어율은 3.12, 10승 5패의 전적이다. 꽤 좋은 성적이다. 타선의 도움도 받았다. 팬들은 나를 소울 재즈 킹'이라고 부른다. 내가 등장하면 팬들은 와와 한다. 그리고 원정 경기에 가면 우우 한다.

 

지금까지 399개의 안타를 허용했다. 한 개 더 맞으면 400개의 안타를 허용할 것이다. 오늘의 경기에서도 운이 좋으면 3,4개의 안타를 내줄 것이다.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몇 번의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인생이란 그러한 실수들의 총합이 아니었던가 ! 몇 번의 성공과 수백 번의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 인생이다. 나는 지금까지 399번의 실수를 허용했으나 399번의 실패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실수와 실패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3회까지는 안타 없이 잘 막았다. 퍼펙트 게임'을 꿈꾸지는 않는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승리를 기원할 뿐이다.

 

" 소울 투수 ! 와인드업 !! 던졌습니다 !!!!!!!!!!!!!!"

 

장내 야구 해설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세상의 모든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optrash 2013-03-22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정말 재미있네요. 이 새벽에 깔깔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2   좋아요 0 | URL
톰 고든이란 소설을 읽다가 생각났습니다. 아, 나도 레드삭스 팀을 좋아했었지.. ㅎㅎ.

달사르 2013-03-22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주어 눈의 괄약근을 오므려보며 깔깔깔 웃는 2인.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2 13:52   좋아요 0 | URL
명심하십시요. 눈은 괄약근입니다.

이진 2013-03-23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요새 안 그래도 눈 근육이 다 녹아 사라진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눈이 괄약근이어서 그런가요? ㅋㅋㅋ
아 이글 정말 재밌어요, 정말 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11:11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는 반응이 좋군요.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시큰둥했는데 말이죠..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