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비낚시'는 팔 할'은 딴소리고, 마지막 한 줄'만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다고 마지막을 내리꽂는 비수가 일류 문장가답게 치열하다. 영화에 대한 글'은 두 가지'로 크게 나뉜다. 영화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와 영화'라는 장르에 기대어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텍스트. ▥ 루이스 쟈네티의 영화의이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책'이다. 자동차 운전 면허 필기 시험을 보기 위해서 문제집을 고를 때, 주저없이 크라운 출판사 문제집을 고르듯이 영화 개론서'를 고를 때 0순위는 당연히 루이스 자네티의 < 영화의 이해 > 다. 영화사 전체에 대한 고른 분배와 다양한 스틸 사진'은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보다 전문적인 개론서를 읽고 싶다면 보드웰의 < 세계영화사 > 를 추천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 헐리웃 문화 혁명 :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영화'를 열심히 보는 행위'가 아니다. 영화 " 만 " 열심히 보는 사람은 " 오따꾸 " 가 되고, 영화 " 도 " 열심히 보는 사람은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이다. 오따꾸가 될 것인가, 문화인인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은 " 만 " 이냐 " 도 " 냐의 태도에 달려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희망 사항이 감독이나 평론가'가 아니라면 다양한 문화를 골고루 섭취하기를 바란다. 소개한 앞의 두 권'을 읽었다고 이제부터 학술 서적'을 읽겠다고 덤비지 마라. 아직은 즐길 때'다. 이 책'은 헐리우드 뒷담화'다. " 누가 누구랑 잤는가 " 에서부터 " 누가 마약을 했는가 " 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매우 좋다.
▥ 히치콕과의 대화 : 감독 관련 서적'은 이 책 하나만 선정했지만 개인적으로 영화를 이해하는 가장 훌륭한 책은 감독이 자신의 작품을 말하는 책들이다. 다만 중복되므로 이 책을 대표로 선정한 것뿐이다. 개인적으로 트뤼포의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히치콕과 대화하는 트뤼포'는 사랑한다. 이토록 감동적인 인터뷰는 본 적이 없다. 트뤼포'는 질문하기에 앞서 히치콕의 영화를 99% 이해한 질문자'였다. 질문 하나하나는 조심스러웠고, 히치콕은 이에 성실히 대답한다. 장담하건대, 이보다 더 위대한 좌담집을 100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 반면 정성일과 박찬욱의 인터뷰는 최악이다. 정성일은 그것은 이것이죠, 라고 말하면 박찬욱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성일은 박찬욱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이 부끄러운 엇박자. 그래도 꿋꿋하게 질문을 던지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질문은 " 아니다 " 다. )
▥ 헐리우드 장르의 구조 :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술서'다.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장르'를 이해하는 것이다. 장르를 이해한다는 것은 줄거리 중심에서 테크닉 중심으로 영화를 사고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장르의 법칙을 통해서 무대 장치, 영화의 계보학, 그리고 클리쉐'를 받아들인다. 영화 계보학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걸작 텍스트'다. ▥ 영화와 소리, 영화와 빛, 영화와 모더니티 :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학문적 베이스'가 깔려 있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해하기란 힘들다. 영화와 소리, 그리고 영화와 빛'은 테크닉 중심의 영화 서적이 아니라 영화적 사유'에 관한 책'이다. 특히 영화와 빛은 빛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미셀 시옹'은 평론가이기에 앞서 시인이며 철학자이다. 만약 읽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때에는 과감하게 책을 덮을 필요가 있다. 건너뛰어도 된다. 조금 더 곰삭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도전하는 것도 좋다.
▥ 시네마 테크노 문화의 푸른 꽃 : 여전히 정성일'이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정성일의 허황된 말빨'에 속는 것이다. 그것은 성석제가 황만근의 입을 빌려 입말의 장관을 펼치는 꼴과 같다. 정성일의 비평이 후진 이유는 솔직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임권택의 모든 영화는 훌륭한 것이 아니라 몇몇 영화가 훌륭할 뿐임에도 불구하고 정성일은 모든 것이 훌륭하다고 이야기한다. < 천년학 > 과 < 달빛길어올리기 > 를 시대의 걸작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차라리 심형래의 < 디워 > 가 더 훌륭하다고 이야기하겠다.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비펴어는 김소영의 < 시네마, 테크노... > 이다. 그녀는 진지하게 한국영화'를 사유한다. 정성일처럼 까이예와 사이트 영화잡지'를 카피하지 않는다. 그녀는 6,70년대 한국영화를 호명해서 여성과 소수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한국 비평계의 놀라운 업적이다.
▥ 돈 키호테에서 장 뤽 고다르까지 : 이 책 또한 만만하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 이론, 영화 이론 그리고 철학 이론을 두루 섭렵해야 한다. 어설픈 이해력으로 책을 펼쳤다가는 낭패를 볼 확률이 높다. 이 책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자기반영성에 대한 이야기다. 쉽게 말하자면 소설가나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자신의 무의식이 반영된다고 말한다. 모든 텍스트의 무의식의 결과다.
▥ 삐딱하게 보기 :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프로이트를 읽어야 한다. 그건 이 책을 읽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다음에는 라캉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지첵을 읽어야지 대충의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내가 잘난 척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설레발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당신은 맑스를 이해하지 않고서 알뛰세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천만의 말씀. 이명박을 이해하기에 앞서, 썩은 고기만을 먹는 하이에나의 습성을 이해해야지 비로소 이명박과 한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책 또한 만만한 책이 아니다. 라캉의 텍스트는 비트겐슈타인과 아이슈타인의 텍스트만큼 난해하다. 이 책은 라캉의 사유를 빌려서 히치콕 영화와 잡다한 범죄 소설 그리고 영화를 분석한다. 지첵은 후에 < 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 이란 책을 출간해서 영역을 확장한다. 일독을 권한다.
▥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화 평론가는 로저 에버트일까, 정성일일까 ? 내 생각엔 이들은 모두 로빈 우드의 발가락 사이의 때만도 못하다. 만약 나에게 영화 평론에 관한 책 중에서 단 한 권을 선택하라면 주저없이 로빈 우드의 이 책을 선정하겠다. 이 책은 너무나 우아하고, 정직하며, 황홀해서 놀라울 지경이다. 지금까지의 영화 분석이 세계 영화 베스트 100 목록에 오른 걸작 영화'로 한정되었던 반면, 로빈우드는 7,80년대 싸구려 공포 영화'를 통해서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 호모포비아'가 만들어지는가를 탐구한다. 로빈우드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한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바로 감사의 말이다. 그가 쓴 감사의 말 마지막은 이렇다.
" 마지막으로 1977년 이후로 나의 애인이었던 리차드 리프의 공헌을 인정하고 싶다. 리차드는 한줄한줄 꼼꼼이 읽고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여기 실린 대부분의 글들은 처음부터 쓰여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
+ 사실은, 위의 목록보다 더 훌륭한 텍스트-들.
■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영화 베스트 10.
1.현기증 / 히치콕/ 1958 : < 시민케인 > 이 기술적 진일보'였다면, < 현기증 > 은 현대 철학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였다. 당대의 철학자들은 모두 자신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히치콕을 콕콕 건드렸다. 아마도 < 현기증 > 은 현대 철학자들이 가장 많이 찔러본 영화가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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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민케인 / 오손웰스 / 1941 : 내가 아무리 히치콕을 응원한다고 해도 < 시민케인 >이 빛을 잃을 수는 없다. 영화는 더럽게 재미없지만 이 영화에 쓰여진 모든 기술'은 오손 웰스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그는 시대를 앞선 천재가 맞다 ! ( 개인적으로 오손 웰스의 영화 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 상하이에서 온 백작부인 > 이다. )
3. 거울 / 타르코프스키 / 1975 : 타르코프스키의 최고 걸작은 < 안드레이 류블료프 > 다. 이 영화의 도입부'에서 보여준 크레인샷'은 경이롭다. 하지만 나는 < 거울 > 을 선정하겠다. 바람에 흔들리는 벌판의 들풀'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사로잡는 것'은 전체가 아닌, 어떤 특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것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선명한 것이 아니라 모호한 것이다.
4. 아라비아의 로랜스 / 데이비드 린 / 1962 : 누누이 강조하지만 큐브릭의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 와 < 아라비아의 로렌스 > 는 비디오 화면으로 감상하면 안 된다. 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프레스코화인 " 천지창조 " 를 미술책 도록'으로 보고서는 그 작품의 우아함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70미리 대형 화면으로 보지 않고 모니터 화면으로 감상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 감상 목록에서 삭제하라. 그것이 위대한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감독에 대한 예우'다. 관객인 우리는 왜 영화 속 스펙타클에 경도되는가. 그 해답은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아바타'나 타이타닉'이 스펙타클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판단은 틀렸다. 그것은 스펙타클이 아니라 사이즈'다. 당신은 거대한 사이즈'에 반한 것뿐이다.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대형 화면으로 보질 못 했다. 부득이... 이번 목록에서 제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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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태어나긴 했어도 / 오즈 야스지로 / 1932 : 오즈의 카메라'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경제적 효율성'으로 이해했다. 카메라 워킹이 현란하면 할수록 촬영은 복잡해지고, 비용 또한 늘어나며, 촬영 시간도 길어진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즈의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는 영상을 너무 쉽게 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로 먹네 !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하는 일마다 안 되고, 상처 받고, 멍이 든 무릎'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문득 오즈의 영화가 생각났다. 오즈의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는 게으른 것이 아니라 수줍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이것저것 강제로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곁을 지키면서 바라보는 오즈의 카메라는 우리에게 겸손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준다.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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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분노의 주먹 / 마틴 스콜세이즈 / 1980 : 가장 아름다운 오프닝 장면을 뽑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 분노의 주먹 > 이다. 카메라는 날개'가 달린 듯 종횡무진 자유롭게 이동한다. 흑백필름이 주는 강한 대조'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링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콜세이즈 감독'은 이 영화에서 현기증의 줌인트랙아웃'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흑백 사용으로 인한 검은 피'는 사이코에서 자넷 리'가 흘리는 검은 피'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 영화는 히치콕 감독에 대한 오마쥬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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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시티라이트 / 채플린/ 1931 : 쟈끄따띠를 좋아한다. 버스트 키튼도 좋아한다. 그리고 찰리 채플린'도 좋아한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채플린의 영화보다 버스트 키튼과 쟈크 따띠의 영화가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는 채플린 영화의 가치'보다 채플린 자체의 아우라 때문에 그를 버릴 수가 없다. 채플린은 오손 웰스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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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살아난 시체들의 밤 / 조지 로메로 / 1968 : 어쩌면 이 영화는 공포 영화 감독이나 B급 영화 감독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 아닌 저주의 대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더이상 이 영화보다 더 위대한 B급 공포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투철한 반항 정신, 삐딱한 시대 정신, 소비자본주의사회'를 제정신이 아는 놈들로 만들어버리는 용기와 전복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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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냥꾼의 밤 / 찰스 로튼 / 1955 : 이 영화가 훌륭한 이유는 감독이 훌륭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욕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배우였던 찰스 로튼'은 심심풀이 땅콩 삼아 영화 한 편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 영화'다. 이 영화는 로튼의 감독 데뷔작이자 그가 연출한 유일한 작품이 되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이게 바로 크로싱오버'가 되었다. 범죄 스릴러 영화였다가 느닷없이 어린이 동화가 되었다가 뮤지컬이 되기도 한다. 뒤죽박죽이지만 바로 그것이 이 영화를 빛나게 한다. 매우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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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용서받지 못한 자 / 이스트우드 / 1993 : 이스트우드'라는 배우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적'이다. 그는 자신이 늙어가는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새로운 남성 서사를 남긴다. 마카로니 서부 영웅에서 그는 이 영화에서 늙고 겁 많은 총잡이로 등장한다. 전설 속 영웅은 살기 위해서 땅바닥을 기며, 쥐새끼처럼 눈깔을 두리번거린다. 서부 영화 속 영웅은 모두 조작된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며 그것을 증명한다. 이스트우드의 부고 소식이 들리면 많이 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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