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이 나오면 밑줄을 긋는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노란색으로 밑줄 친 부분만을 빠르게 다시 읽는다. 책을 덮는다. 봄 그리고 겨울, 여름, 가을이 지나간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흐른다. 책을 다시 펼친다. 다시 밑줄 친 문장을 읽는다. 읽다 보면 어느새 밑줄을 치지 않은 문장만을 골라서 읽는 자신을 발견한다. 궁금한 것이다. 너희들은 그때 왜 내 맘에 쏙 들지 않았던 것이더냐.간택 받지 못한 문장을 읽는다. 좋은 문장을 발견한다. 기쁜 마음에 밑줄을 긋는다. 책을 덮는다. 밥을 먹는다. 밥을 먹다가 영화를 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밑줄을 긋고 싶은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밑줄 긋고 싶은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 스승이 제자의 간절한 부탁을 받고 병실을 찾아와 산소 호흡기를 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극의 절정이다.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맛을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장면이다. 관객을 펑펑 울리면 스코어는 좋아진다. 이 장면에서 욕심을 내지 않는 감독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무뚝뚝하게 이 장면을 진행한다. 잠깐의 참회와 어두운 병실을 걷는 늙은 남자의 뒷모습만 보인다. 감독은 관객들이 펑펑 울지 않도록 이 씬을 간결하게 묘사한다. 감독이 이 장면에서 원했던 것은 슬픈 동정이 아니라 아픈 공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아마도... 이 늙은 감독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펑펑 울 것 같다.

실미도 : 밑줄 아닌 밑줄을 긋고 싶은 영화도 있다. 밑줄이 문장 밑에 그어지지 않고 땅에 그어지면 광기의 이데올로기로 변한다. 영화 <실미도> 는광기어린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대중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돈벌이에 이용한 영화. 나는 실미도라는 제목에 밑줄을 긋고 싶다. 그러니까 지우개 대신 사용하는 경멸의 밑줄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실미도는실미도가 아니라 실미도.

거울/안드레이타르코프스키: 여자는 직녀이고 남자는 견우이다. 그들은 단 한 번 만난다. 남자가 여자의 집을 방문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떠난다. 여자는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다. 갈대 숲 너머의 남자는 점점 작아진다. 그때 거친 바람이 분다. 바람은 갈대를 흔든다. 순간 갈대가 파도처럼 출렁거린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그 사이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은 너무 아름다워서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 장면 속에 등장한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 ? 대형 선풍기를 동원했을까 ? 아니면 특수효과를 동원했을까 ?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기계적 장치의 도움을 받기에 숲은 너무나 광대했고, 특수효과를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아름다웠으니깐.

타르코프스키의 자서전을 통해서 안 사실이지만 그 장면은 우연이었다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바람이었으며, 그 계절에 그런 바람이 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한다. 바람은 그렇게 느닷없이 영화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낯선 사람이 생방송 중인 스튜디오로 뛰어들어와 내 귀에 도청장치가 달렸다고 외쳤던 것과 비슷하다. 어떤 것은 해프닝이 되고, 어떤 것은 예술이 된다. 그게 인생이다. 고다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자연이 예술을 위해 마련한 작은 선물과 같은 것.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해리와 샐리는 서로 앙숙이다. 해리는 샐리가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는 꼴을 이해하지 못하고, 샐리는 해리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꼴을 천박하게 생각한다. 앙숙인 그들이 연인이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들은 우연히 자주 마주치지만 이 우연이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손에 장을 지지지요 ! 그들은 결국 그 선을 넘어 결혼하게 된다. 해리는 손에 장을 지지지지지지진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역설적이게도 밑줄을 칠 문장보다 밑줄을 치지 않을 문장이 더 많을 때 밑줄을 긋게 된다. 만약에 첫 페이지 첫 문장 첫 음절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밑줄을 그어야 한다면, 우리는 아예 밑줄을 긋지 않을 것이다. 밑줄이 길면 길수록 밑줄은 그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밑줄이 단 한 번도 그어지지 않은 책은 둘 중 하나다. 정말 형편없거나 너무 위대하거나. 나는 영화 < 아라비아의 로렌스> 에 밑줄을 긋지 않겠다. 4시간 40분 동안 밑줄을 긋고 있을 내 자신을 상상하면 골치가 아프기 때문이다.

http://myperu.blog.me/20112485211

베티블루 37.2 : 자신의 몸에 밑줄을 긋는 사람도 있다. 자살이란 인생이라는 이름의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문장의, 마지막 마침표에 밑줄을 긋는 행위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은 문장 대신 마침표에 주저흔을 남기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밑줄을 긋는다.

러브레터:소수의 문장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사랑 고백을 닮았다.그것은 지지, 동감, 환호, 동맹이며 당신을 향한 연정이다. 밑줄은 혜진이고, 문장은 민식이다. 혜진은 민식을 사랑한다. 그녀는 쇼바 잔뜩 올린 민식의 오토바이와 개 짖는 소리보다 우렁찬 배기통의 부르릉 소리와 평범한 경적을 경멸하는, 적적한 밤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빠라빠라빠라빰을 사랑한다. 영화 < 러브레터 > 는 편지를 뒤늦게 발견한 소녀의 이야기다. 편지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사내는 너무 일찍 떠났다. 여기서 편지는 사랑 고백이 담긴 하나의 문장이다. 그녀는 잘 계시나요 ? 라는 문장 아래 밑줄을 긋는다. 그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는 것은 저도 잘 있습니다, 라는 뜻이다. 사랑합니다 라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 것은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뜻이다. 파인 탱큐, 앤드 유 다. 그들은 서로 화해한다. 손으로 쓴 글씨를 통해 서로의 마음씨를 읽는다.

http://myperu.blog.me/20127455827

 

*

좋은 책은 좋은 여자와 같고, 좋은 독서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걷는 산책과 같다. 그녀와 남산에 오른 적이 있다. 우리는 말없이 남산을 향했다. 걸으면서 그녀의 옆모습을 훔쳤다. 그녀는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그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입 대신 손으로 사랑 고백을 했다. 봄 그리고 겨울,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일 년, 이 년, 삼 년이 흘렀다. 세월이 흘렀다. 책을 펼치는 날보다 덮는 날이 많아졌다. 문득 그 책 속에 있던 문장이 다시 읽고 싶어서 책장을 뒤졌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 문장이 담긴 책을 잃어버린 것이다. 내가 밑줄 친 문장들이 생각났다. 땀에 젖은 귀밑머리, 왼쪽 젖가슴, 숱이 적은 거웃, 촉촉한 동굴, 검은 머리, 앙상한 어깨, 무릎, , 무릎, . 나의 리타헤이워드, 나의 검은 동굴, 나의 예상치 못한 바람, 나의 러브레터. 내가 사랑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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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겁다.

 DEXTER Season 1 by Travis English

 

1.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욕망의 과다한 표현이지만, 한국인은 " 죽이다 " 라는 말이 붙어야 입말이 제대로 살아난다. 배 고파 죽고, 배 불러 죽고, 보고 싶어 죽는 것이 한국인의 언어 습관이다. 사랑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야 비장해지고, 미움도 " 미워 죽겠어 ! " 라고 말해야 실감이 난다. 대한민국은 死의 공화국'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이 화끈한 상상'은 남성과 여성 중에서 어느 쪽이 더욱 간절할까 ?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가능하다. 폭력의 주체인 가해자는 주먹을 휘두르지만 피해자는 상상 속에서만 칼을 휘두른다. 아무래도 가부장 사회에서 당하는 쪽은 여성이 아니던가. 이 칼부림이 타자를 향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하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살인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은폐'는 어렵다. 더군다나 당신이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 중 하나가 살인에 공모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똥 눌 때와 살인 할 때는 오로지 혼자여야 한다.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남성의 평균 몸무게는 70kg이다. 40kg인 당신이 이 시체를 처리한다는 것은 어렵다. 설령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낑낑거리며 옮긴다고 해도 증거는 곳곳에 남는다. 엘리베이터 안의 시시티븨가 창백한 당신의 얼굴과 거대한 여행용 가방을 비출 것이다. 용케 피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만큼 곳곳에 시시티븨'가 깔린 곳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멍청한 살인자는 빅 사이즈 여행용 가방을 거리에 끌고 나오는 것이다. 강력계 형사들은 당신이 이 커다란 가방을 끌고 돌아다닌 흔적'에서 빙고를 외칠 것이다.

 

똑똑한 독자라면 내가 곧 말할 내용을 간파했을 것이다. 여행용 가방은 안 되지만, 이스트팩 가방'은 매의 눈과 같은 형사의 감시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스트팩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각 조각 잘라서 넣으면 가능하다.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말을 인용하면 토막 살인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적합한 작업이다. 시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겁다. 두 팔을 쓰러진 남자의 겨드랑이에 넣어 힘을 줘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 < 무겁다 > 는 곧 < 무섭다 > 로 바뀌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거운 냉장고를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 안의 반찬통을 꺼내는 일이다. 다음의 목록'은 여성을 위한 지침서'다. 윤리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난 당신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

 

 

 

 

 

 

 

 

 

 

 

 

냉장고'를 옮길 때는 냉장고 속 내용물을 모두 빼야 한다. 힘이 장사라면 상황은 달라지겠으나 당신은 연약한 여자다. 더군다나 두려움에 떨고 있다. 수고스럽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빼내야 한다. 그 방법은 기리노 나쓰오의 걸작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 아웃 > 에 자세히 나온다. 기리노 나쓰오의 표현을 빌리면 손질하는 작업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적합한 작업이다. 리플리 시리즈의 하이스미스는 < 낯선 승객 > 에서 교환살인'이라는 기묘한 방식'을 제안한다. 서로 죽이고 싶은 대상을 대신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결고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바로 이 철저한 익명성'은 완전범죄'를 완성시키는 주요 요소'로 작동한다. 그런가 하면 미저리에서는 납치, 감금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수많은 방법이 있다. 선택은 당신 몫이다.

 

 

 

 

2.

 

며칠 동안 책 정리'를 했다. 책장 7개 분량의 책을 다섯 개의 책장 안에 구겨넣어야 하다 보니, 이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십 년 전 어머니는 보유한 주식이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치며 하루에 백만 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자 들뜬 나머지 통 크게 오동나무 책장 하나를 사주셨다. 당시 어머니의 회고에 의하면 벼락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단다. 뜬구름 위를 걷는 심정이요, 무지개와 장밋빛 인생이 보였다고 ! 결과는 1억 탕진'이었다. 현찰로만 1억을 주식으로 날렸으니 그때 화폐 가치'로 따지면 아파트 한 채 날아간 것이다. 어머니가 주식으로 남긴 재산은 이 오동나무 책장 하나가 전부였다. 내가 이 책장을 기특하게 여기는 이유는 칸막이의 변형이 없다는 점이다. 책장이 깊어서 책장 두 개 분량의 책을 수납할 수가 있는데 20년 동안 이 엄청난 무게'를 잘 견디는 것으로 보아 오동나무'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머지 싸구려 책장들은 몇 년을 못 버티고 칸막이가 늘어지기 일쑤였다. 하루는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천둥소리에 벌떡 일어났더니 천둥소리가 아니라 책장 칸막이가 부서져서 책이 쏟아질 때 나는 소리'였다. 당신은 내 말을 믿을 지 모르겠지만, 화가 잔뜩난 나는 책장을 없애기 위해서 책 400권을 팔았다. 내가 받은 돈은 70만 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시는 7만 원짜리 책장은 사지 않으리라 ! 하지만 이 굳은 맹세'는 파기되었다. 책 판 돈으로 배 터지게 삼겹살'을 사 먹고 남은 돈 7만 원으로 다시 싸구려 책장을 샀다. 내 인생은 베니어합판'이구나 ! 아, 나란 존잰 이런 존재.......

 

후배 중에 음악'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음악을 하다 하다 안 되니깐 진로를 바꾸었는데, 놀랍게도 의료기기 판매상이었다. 고가의 의료기기'를 파는 것이다. 팔기만 하나 ? 기기 작동법을 의사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날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뼈를 자르고, 살을 찢는다. 어때요, 뼈가 잘 잘리지요 ? 음악하던 놈이 그짓을 하고 있는 거다. 곰곰 생각하니, 사람 일이라 것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누가 그 녀석이 수술실에서 사람 뼈나 자르고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나.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니깐 ! )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치자. 도덕적 인간이라면 자수를 하는 것이 마땅하나, 당신은 일주일 후면 대기업 사장의 딸과 결혼하게 되어 있다. 곧 아내가 될 여자는 아름답다. 절세미인이다. 누워도 젖가슴은 싱싱한 계란 노른자'의 형태를 유지한다. 장인 어른은 간암 4기 말기다. 외동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자수하는 순간 결혼은 없던 것이 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건을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범죄를 은폐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다음 독서 목록은 불한당의 독서 목록'이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목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목록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해야 될 책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목록의 도움으로 당신은 완전 범죄'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차가운 철창 안의 딱딱한 바닥 대신, 누워도 퍼지지 않는 싱싱한 계란 노른자 같은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 한 가지 ! 이 목록은 완전 범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목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범죄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폭로한 목록이기도 하다. 범죄자의 필독서이면서 동시에 탐정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누가 이길까 ? 모를 일이다.

  

 

 

 

 

 

 

 

 

 

 

잔혹과 매혹은 실화'를 다룬 기록물'인데 문학 작품보다 더 문학적'이다. 여기에는 근친과 도플갱어, 계급과 동일시가 묘하게 섞여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 와 < 마인드 헌터 > 는 전직 프로파일러'의 기록들이다. 끝으로 리 고프의 < 파리가 잡은 범인 > 은 곤충 법의학자'의 책이다.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다.

 

 

그 수많은 살인들 , http://myperu.blog.me/2014856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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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대결 : 섹스피어냐, 스티븐 킹이냐 !

 

 

 

 

 

Fight Club by Dee Choi
Society6, Tumblr, Twitter.

 


 

 

2010년 1월'이었다. 가입된 철학 문학 카페'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주선한 것이다. 2009년 연말 망년회'가 밀리고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은 연초'에 뒤늦은 연말 망연회가 열린 것이다. 평소 이런 모임'에 참석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카페 회원 중 친하게 지내는 문청 L 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해 참석을 하게 되었다. 열 명 남짓 모였다. 문학 카페이다보니 " 그 흔하고 흔하고 흔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되시겠다. 그중에서 자신을 명문대 영문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K라고 소개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이 친구를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잘난 척을 너무 고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대화의 5할은 이 친구의 몫이었다. 특유의 평론가 말투로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이야기하더니 셰익스피어에서 토마스 핀천까지 줄줄줄. 신형철스러운 말투로 좌중을 압도하니 그날 모임의 슈퍼스타였다. 여성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았으니깐.

 

나는 그냥 테이블 한 모퉁이에 앉아서 맥주만 홀짝이고 있는데 K가 나를 동물원 원숭이 보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쳐다보았다. 손가락에 반지를 네 개 끼고, 목걸이는 다섯 개를 걸고, 팔찌는 왼쪽 오른쪽 네 개에 그 특유의 치요를 썼기 때문이었다. <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오시지 왜 이런 문학의 향기에 나오셨어 ? > 이런 눈빛이었다. K가 대뜸 내게 말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밤하늘에 높이 뜬 인공위성 같은 사내를 바라보던 눈들이 그 사내의 말에 온통 내게로 쏠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셜록 홈즈와 스티븐 킹'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는 한 달 전에 알라딘에서 홈즈 전집 반값 세일을 하길래 사서 열독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K가 웃었다. 웃었다. 시니컬하게 웃었다. 왜 좋아하냐는 후속 질문도 없었다. 그냥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처럼 보였다.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나는 것처럼 고고한 영문학을 이야기하는데 대중 추리소설 작가 얘기가 웬 말이냐, 이런 식이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다가 내가 L에게 물었다. " 혹시 좋아하시는 영문학 작가 있으세요 ? "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전공 과목이 과목인지라 셰익스피어 고전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논문도 그에 대한 눈문입니다. " 하하하하하하. 내가 웃었다. 나는 하하하하, 라고 웃었지만 그에게는 " 지랄하고 자빠졌네 " 로 읽혔을 것이다." 왜요 ? " 그가 대뜸 물었다. 말투에 독이 서렸지.

 

- 아, 네에... 미안해요 ! 하하하. 전 셰익스피어 싫어하거든요 !

- 어떤 텍스트 말씀하시는 거죠 ? ( 말투가 꼭 책은 읽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라는 투였다. )

- 전부 다요. 제국주의자의 앞잡이 같아서 싫습니다. 으하하하하.

- 제국주의자의 앞잡이요 ?

- 네에, 알랑방구 대마왕 ! < 베니스의 상인 > 보세요. 그 재판이 무슨 세기의 재판입니까 ?

 

오고가는말대답'이 한참 이어졌다. ( 설전은 링크로 걸어둔다. ) 셰익스피어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됐거든요. 셜록 홈즈도 그런 분 아니시거든요 ? 제임스 조이스 님은 그런 분 아닙니다. 됐거든요. 스티븐 킹 님도 그런 분 아니십니다. 분위기는 험악까지는 아니었으니 약간 우중충해졌다. 대화에서 밀리지 않으니깐 그가 철학으로 문학을 이야기하며 셰익스피어와 제임스 조이스'를 옹호했다. 철학이라는 게 그렇다. 계보학을 꿰뚫은 놈이 이긴다. 철학의 창세기'를 읊는 놈이 이긴다.

 

깊게 아는 놈이 얕게 아는 놈을 이기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무조건 창세기 잘 읽는 놈이 이긴다. 소크라테스에서 알랭 바디우까지 누가 더 많이 철학 노선도를 암기하느냐의 차이. 물론, 나는 졌다. 반격을 가할 수는 있었으나 재미없고 지루한 대화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자식의 눈이 다시 한밤의 인공위성처럼 반짝거렸다. 반짝 반짝 반짝. 와와, 와와와와. 모임에 참석한 아가씨들은 다시 그에게 박수를 쳤다. 다시 토론의 주도권은 k에게 돌아가고... 한편 웅이네 가족은......

 

K가 스티븐 킹을 비판한 것 중 가장 어이없는 것은 주장은 킹의 다작'을 문제삼은 것이었다. 하긴 스티븐 킹은 어마어마한 다작의 작가'다. 심농, 세이초, 킹 세 사람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을 쏟아낸 장본인들이다. 이들 셋이 출간한 책은 대한민국 전후 작가들이 출한한 모든 책을 합쳐도 다작 3인방의 책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농담이다. 하여튼 K는 킹의 몇몇 작품이 좋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빈약하다는 논리를 폈다. 셜록 홈즈나 킹의 작품은 문학적이기보다는 마니아적 현상으로 고찰해 보아야 한다고 친절하게 지적질을 하셨다. " 문학을 소비 상품으로 이해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 허허허. " 라는 질문에 " 소비 상품으로 이해한다. 시부랄 놈아 ! "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싸우면 질 것 같아서 해해해 웃었다.

 

쪽수에서 밀린 나는 할 수 없이 말문을 닫았다. 순문학 모임에서 대중문학 팬이 홈즈와 킹이 최고라고 우기는 것도 예의는 아닌 듯 싶어서 그냥 술만 마시고 나왔다. 가끔 교수들의 회식자리를 상상하고는 한다. 이런 놈이 전부 다 모여서 재미없는 이야기를 재미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허허허. K 선생, Y 선생, P선생 하면서 말이다. 교수 사회 참 재미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나는 홈즈의 문장력은 후졌다에는 동의하지만 홈즈의 작품이 후졌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고, 셰익스피어의 문장력이 킹의 문장력보다 월등하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자 카페 회원들이 몇몇 더 모였다. 나와 L은 그 자리를 나와서 2차로 종로 굴보쌈집에 갔다. 셰익스피어를 좆나게 욕했다. 제임스 조이스도 덩달아 욕을 먹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셰익스피어보다는 스티븐 킹'이 훌륭하다.

 

 

 

 

 

 

 

+

 

 

 

 

+ 유혹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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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13-04-22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섹스피어의 저주문에 놀라곤 합니다. 어쩜 그리 독하게 저주를 일삼던지...당시 유행이었을랑가요??...전공자들은 좀 재미있고 흥미로운 얘기들을 해주면 오죽 좋겠습니까...
곰곰발님 글이 워낙 많으셔서 미처 못읽은 게 많네요^^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4-22 17:37   좋아요 0 | URL
네이버 하도 지랄 같아서 폭파시킬려고 하루종일 자료 옮겼씁니다...ㅎㅎㅎㅎ


생각해 보니... 정말 섹스피어는 저주하는 대사'가 자주 나오죠. 복수'는 역시 모든 스토리텔링 중에서 갑인 거 같아요... ㅎㅎㅎㅎㅎ.

섹스피어 섹스 사전'도 있어요. 섹스피어'가 성적 은유를 즐겨 사용해서 아예 그것들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전이 있다고 합니다. 햄릿도 보면 사실 거의 성적 도발'입니디ㅏ.

대단한 양반이기는 한가 봐요... 전 딱히 동하지는 않더라고요.. 후후..
 

 

 

 

내가 밑줄 친 문장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행위와 비슷하다. *장정일은 밑줄을 두고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 곧 대화 라고 말한다. 밑줄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공감, 동의, 지지, 환희를 나타낸다. 그것은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 라는 부분을 부를 때의 감정적 동화와 같다. .

하지만 밑줄 친 문장이 우리를 항상 매혹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다 보면 밑줄 친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그 문장을 읽으면, 내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화려했던 문장이 지금에 와서는 평범한 문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릴 적 흠모의 대상은오래 전에 밑줄 친 문장과 비슷하다. 매혹적인 주체였던 대상은 지금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추억 속에서는 화려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초라한 것이 바로 그 옛날 흠모의 대상이다.

반대로 처음 읽었을 때는 평문처럼 보여서 밑줄을 긋지 않았다가 다시 읽을 때 좋아지는 문장이 있다. 권정생의<몽실언니> 가 좋은 예이다. 권정생의 글은 피카소의 드로잉처럼 보인다. 예술가가 보기엔 그것은 예술처럼 보이지만 문외한이 보기엔 낙서처럼 보이는 것처럼, 권정생의 글도 문외한이 보기엔 초등학생 일기처럼 보인다. 바로 그것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을 난해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은 쉬우나, 어려운 문장을 쉽게 설명하는 것인 어렵다. 오랜 사색 끝에 내놓는 간결한 문장은 깊이 우려낸 녹차의 맛과 비슷하다.

문장의 곁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문장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딱지처럼 딱지딱지 붙어있거나, 포도처럼 포동포동한 문장은 수상한 문장이다. 지금 이 문장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단순한 것이 좋아진다. 화두란 버리고 버리고 남은 벼린 칼을 말한다. 단순한 질문 하나가 남지만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밑줄 친 문장도,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순하지만 벼린 칼 하나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 좋다.

 

 


 

 

 

밑줄 친 문장()

 

 

 

 

 

 

 

 

 

 

스티븐 킹 산문 :나는 그의 글이 셰익스피어의 글보다 좋다. 적당히 천박하고, 꽤 웃기며, 약간 무섭다. 그의 글쓰기 창작 강좌인 <유혹하는글쓰기> 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창작론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입문서였다. 그는 젠 체하는 먹물들을 신랄하게 조롱한 다음, 십 분 후에 다시 꼬집는다. 그리고는 다시 씹고, 다시 조롱하고, 다시 비웃는다. 칭찬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신난다. 그의 잡담은 늘 재미있다. 그게 바로 그의 치명적 매력이다.

김애란의 소설 : 나애리는 나쁜 계집애. 캔디는 좋은 계집애다. 하니는 나애리 때문에 종종 울지만, 캔디는 이라이자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오히려 캔디는 우리에게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우냐 ?참치냐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어라?!이쯤되면 우리는 캔디의 씩씩한 명랑에 홀린다. 김애란의 소설이 좋은 점은 아버지의 부재를 자신의 트라우마로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캔디가 등장하는 김애란식 가족 서사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이 아니라 < 지나가는 행인 3> 에 불과하다. 김애란 소설이 빛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신경숙처럼 지지리 궁상도 아니고, 은희경처럼 맹랑하지도 않다. 김애란은 명랑하다.

롤랑바르트에세이 : 우리가 에세이를 싸구려 분야라고 인식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신달자나이어령 같은 사람들의 에세이 때문이다. 에세이란 본래 신변잡기 류의 글이 아니라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서다. 나는 그들이 거리 청소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부지런한, 대한민국 성공 신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식으로 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불평등 사회에서 직시해야 될 것은 부지런한 일꾼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계급 모순에 대한 분노다. 롤랑바르트나 파스칼 키냐르의 에세이를 읽으면 대한민국에서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통되는 텍스트가 지나치게 천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키냐르의 에세이는 우아하고, 바르트의 에세이는 에로틱하다.

함민복의시 :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내게 있어서 시의 본질은 < ~ 타령’> 이다. 타령이란 본질적으로 신파이고, 한탄이며, 유행가 가사이지만 그래도 시는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질 때 위력을 발생한다. 미래파 시인들이 모던보이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시인은 좀... 지지리 궁상이어야 멋있다. 함민복의 시는 지지리궁상이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를 버려야 하는 아들의 투가리에 어미가 자신의 설렁탕 국물을 부어줄 때, 시인은 눈물은 왜 짠가 라고 묻는다. 닝기미.... 캔디도 울지 않는데, 이라이자가 괴롭히지도 않는데, 나애리도 없는데 왜 우냐고 말하고 싶지만 묘하게 이 신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정말 좋은 멘트: 그 사람의 방송 멘트가 하나의 문장이었다면, 나는 당장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역 이름을 친절하게 방송하던 철도 기장은 그만 다음 역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다음 역은...“ 침묵. 다음 역은...“ 또 침묵. “ 다음 역은...“ 다시 침묵! 방송을 듣고 있던 승객들이 오히려 긴장하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다음 역은 신림이라구요. 승객들은 모두 아는데 기장 혼자 모르는 상황이다.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다음 역은...“ 승객들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 ! 드디어 기장이 말을 이었다. “ ....... 어디 일까요 ? “ 기장의 멘트를 들은 승객들은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내 친구가 직접 경험한 실화다. 사람들은 < 어디일까요 역 > 에서 내렸다. 가끔 신림 역에 갈 일이 있으면 킥킥 웃게 된다. 신림의 다른 이름은 어디일까요 역이기도 하다.

 

 

http://myperu.blog.me/20110667235

 

 

 

 

 

 

 

 

권정생의동화 :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책에는 밑줄을 그은 흔적이 없다. 그의 소설 첫 문장을 읽었을 때 깨닫게 되었다. 첫 문장의 첫 음절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이어지는 그 끝없는 길 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매우 긴 밑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갠이치로의소설 :갠이치로의 소설은 황당무계하다. 엽기 만화 <이나중 탁구부 > 를 소설로 만든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도 <아침에배아파서알낳어> 라는 식이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포르노를 열심히 보아야 하고, 얼음 주스 냉장고는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일사병에 걸려 죽는다. 사람들이 보기엔 미친 정신병자가 쓴 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의 판단이 옳다. 갠이치로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글에 열광하는 이유는 매우 독하게 슬프기 때문이다. 착란은 종종 찬란한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갠이치로를 통해서 배운다.

김훈의 기행문 : 김훈이 쓴 문학 평론은 그저 그렇고, 그렇고, 그렇다. 하지만 기행문은 황홀하다. 그가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사색할 때의 문장력은 압도적이다. 소설보다는 기행문이 더 좋다.

제품 사용 설명서 :아이폰 4 제품 사용 설명서에 쓰인 지시문을 읽으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까 ? 없을 것이다. 사용 설명서에 쓰인 문장은 지극히 사무적이며, 냉정하고, 예의바르지만, 무뚝뚝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 없는 문장이 바로 제품 사용 설명서 문체.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15,000원짜리 쿠스코 바르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하나 샀다. ( 쿠스코 티는 보통 몇 십만 원 한다. 내가 입고 다니는 쿠스코 바르셀로나는 짝퉁이 아니라 디자인 문양만 흉내낸 옷이다.

가짜라기보다는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다. ) 포장지 속에는 옷과 함께 제품 사용 설명서가 있었는데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자신있게거리를 활보합시다 !“ 태어나서 제품 사용 설명서 읽고 감동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싸구려 가짜 동대문 옷이지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워킹하라는 말. 이 정도면 참... 센스 있으신 분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온라인 쇼핑몰은 문을 닫았다. 쿠스코바로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찾는 사람은 대한민국 0.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쿠스코 스타일의 옷은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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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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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방 한 칸 : 광합성, 너무 많거나 너무 적거나 !

 


 

옥탑 방에서 산 사람은 다시는 옥탑 방에서 살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일종의 와신상담이다. 반 지하 셋방 세입자도 다시는 반 지하’에서는 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를 한다. 하지만 집 없는 민달팽이 신세인 도시 빈민‘은 다시 옥탑 방에서 옥탑 방으로 이사를 하고, 반 지하 세입자도 다시 눅눅한 반 지하 방’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놈의 돈이 문제다. 나는 옥탑 방에서도 살아 보았고, 반 지하에서도 살아 보았다. ( 그러고 보니, 모텔에서도 장기투숙자로 살았네 ? 빌어먹을,

 

전형적인 빈곤 생활 유형 3종 세트구나 ! ) 옥탑은 지나치게 볕이 들어서 여름에는 너무 더웠고 겨울에는 오지게 추었다. 여름 한낮에 방에 있다 보면 복날의 개처럼 혀가 축 늘어져서 헉헉거리기 일쑤였고, 겨울에는 불알이 쪼그라들어서 내가 키우던 마르치스 애완견의 그것보다 작아져서 수치스럽기도 했다. 맙소사, 아니 내가 개보다 작단 말이야 ? 지져스 크라이스트 ! 반면 반 지하‘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습기로 눅눅했다. 검은곰팡이가 늙은 노인의 검버섯처럼 자랐다. 이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내 얼굴에 검은곰팡이’가 필 것만 같았다.


그렇다, 나는 도시 빈민’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누가 옥탑이나 반 지하에서 살겠는가. 그놈의 돈이 문제이지. 종종 택배 아저씨‘가 정확한 주소를 요구해 오면, 나는 반 지하 대신 반 지상’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 반 지상 ’ 이요 ?! 그리고는 이내 내 의중을 안다는 듯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빈곤을 저주하고는 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부끄럽지만 번듯한 지상의 방 한 칸을 원했을 뿐이다. 광합성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지도 않은, 혹은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낮지도 않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지상의 땅이 발아래 밟히는, 그런 < 나만의 방 > 이 필요했다.

 

하지만 빈민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반지하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바닥에 깔린 자의 비애'를 알지 못한다. 창밖을 통해 목격하게 되는 행인들의 낡은 신발'은 무척 구슬프다. 자신의 눈높이로 신발의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묘한 슬픔을 전해준다. 마치 나 또한 한 켤레의 신발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 반지하에서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신발'을 몰래 훔쳐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볕이 적당히 들어오는 지상의 방 한 칸'을 간절히 원했다.

 

 

http://myperu.blog.me/20054537238 - 내가 살던 반 지상 호화 룸.


김애란 소설‘의 키워드는 방이다. < 지상의 방 한 칸 > 이다. 이 꿈은 너무 소박해서 종종 슬프다. 집 한 채’도 아니고 방 한 칸‘이지 않은가 ? 김애란의 문체가 명랑하지 않았다면 독자는 슬퍼서 술 펐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콩, 슬퍼라 ! 멋진 방 하나만 있으면 신나서 방방 뜰 것 같다. 연인이라면 크리스마스‘엔 모두 < 방 > 에서 하고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크리스마스'를 꺼낸 이유는 그녀의 단편 < 성탄특선 > 의 배경 때문이다. 하여튼, 이날 안 하면 고자요, 불감증이다. 나이키 본사는 < 져스트 두 잇 >이라고 섹스를 독려하며, 기타노 다케시는 < 크리스마스에 모두 다 하고 있습니까 ? > 라고 묻는다. 그러니 대한민국 여관‘은 이날만큼은 밤 9시면 여관 간판’이 꺼진다.

 

이 신호는 < 방 없음, 지금 모두 하고 있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 > 라는 신호다. 여관방의 불은 꺼졌지만, 벌거벗은 육체는 불타고 있는 중이다. 아, 졸라...... 좋겠다. 음냐. 이날 독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티븨에서 하는 성탄 특선‘을 보는 것이 전부다. 말이 좋아서 특선이지 재방송이다. 2012년 크리스마스'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고, 2013에도 < 나홀로집에 > 는 특선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될 것이 분명하다.

 

 

2014, 2015, 2016년에도 영원히 ! < 나홀로집에 > 를 나 홀로 집에서 보는 비애'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른다. 내가 크리스마스 때 원하는 것은 당신의 클리토리스'다. 아, 이거 너무 라임을 억지로 맞춘 부적절한 랩 가사인가 ? 그나저나 예수의 생일날 모두 하다니, 심히 불경스러워라. 단편 < 성탄특선 > 은 크리스마스에 모텔 방이 없어서 날밤을 꼴딱 세는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다. 모두 할 때, 하지 못한 연인의 이야기라니, 슬프지 않은가 ?

 

그들이 원한 것은 방음이 잘 된 지상의 방 한 칸인데, 그것마저도 사치가 되는 사회다. 가난이라는 것이, 좀 그렇다. 내가 만약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크리스마스 연인들을 위해서, 이날만큼은 전국의 공무원 관사‘를 무료로 개방할 용의’가 있다. 그것도 모자르면 동사무소 숙소'를 러브하우스로 개조할 용의도 있다. 물론 숙박업계의 암살 음모에 시달리겠지만, 연인들을 위하여 의욕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한다. 다른 날은 몰라도,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 져스트 두 잇 >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 사족.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재미있다. 단편이라는 것'은 각자 작품의 편차'가 있기 마련인데, 김애란'의 단편은 모두 일정한 궤도 이상을 유지한다. 그러한 뒷받침에는 든든한 이야기의 재미도 한몫하지만 그보다는 그녀의 탄탄한 문장에 있다. 김애란은 조경란처럼 감정을 불란서'처럼 비비꼬지 않고, 공지영처럼 감정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배수아처럼 지나치게 쿨하지도 않으며 편혜영처럼 그로테스크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명랑을 가장한 다른 문체와도 비교된다. 박민규와 더불어 독보, 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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