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밑줄 친 문장들.
책에 밑줄을 긋는 행위는 상대방의 손을 잡는 행위와 비슷하다. *장정일은 밑줄을 두고 “ 당신도 내 생각에 동의하느냐는 물음 곧 대화 “ 라고 말한다. 밑줄은 독자가 저자에게 보내는 공감, 동의, 지지, 환희’를 나타낸다. 그것은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 라는 부분을 부를 때의 감정적 동화와 같다. .
하지만 밑줄 친 문장’이 우리를 항상 매혹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서 읽다 보면 밑줄 친 문장’을 발견하게 되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그 문장을 읽으면, 내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는지 도무지 모를 때가 있다. 화려했던 문장이 지금에 와서는 평범한 문장으로 보이는 것이다. 어릴 적 흠모의 대상’은오래 전에 밑줄 친 문장과 비슷하다. 매혹적인 주체였던 대상’은 지금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추억 속에서는 화려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초라한 것’이 바로 그 옛날 흠모의 대상’이다.
반대로 처음 읽었을 때는 평문처럼 보여서 밑줄을 긋지 않았다가 다시 읽을 때 좋아지는 문장이 있다. 권정생의<몽실언니> 가 좋은 예’이다. 권정생의 글’은 피카소의 드로잉’처럼 보인다. 예술가가 보기엔 그것은 예술처럼 보이지만 문외한이 보기엔 낙서’처럼 보이는 것처럼, 권정생의 글도 문외한이 보기엔 초등학생 일기’처럼 보인다. 바로 그것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쉬운 문장을 난해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은 쉬우나, 어려운 문장을 쉽게 설명하는 것인 어렵다. 오랜 사색 끝에 내놓는 간결한 문장은 깊이 우려낸 녹차의 맛과 비슷하다.
문장의 곁가지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문장’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을 나타낸다. 딱지처럼 딱지딱지 붙어있거나, 포도처럼 포동포동한 문장은 수상한 문장이다. 지금 이 문장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단순한 것이 좋아진다. 화두란 버리고 버리고 남은 벼린 칼’을 말한다. 단순한 질문 하나가 남지만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다. 밑줄 친 문장도, 사랑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단순하지만 벼린 칼 하나를 가슴에 품은 사람이 좋다.
밑줄 친 문장(들)
스티븐 킹 산문 :나는 그의 글이 셰익스피어의 글’보다 좋다. 적당히 천박하고, 꽤 웃기며, 약간 무섭다. 그의 글쓰기 창작 강좌인 <유혹하는글쓰기> 는 지금까지 내가 읽은 소설 창작론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입문서였다. 그는 젠 체하는 먹물들’을 신랄하게 조롱한 다음, 십 분 후에 다시 꼬집는다. 그리고는 다시 씹고, 다시 조롱하고, 다시 비웃는다. 칭찬도 여러 번 들으면 짜증이 날 만도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신난다. 그의 잡담은 늘 재미있다. 그게 바로 그의 치명적 매력이다.
김애란의 소설 : 나애리’는 나쁜 계집애’다. 캔디는 좋은 계집애다. 하니는 나애리 때문에 종종 울지만, 캔디는 이라이자 때문에 울지는 않는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 오히려 캔디는 우리에게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우냐 ?참치냐 ?라고 당돌하게 반문한다. 어라?!이쯤되면 우리는 캔디의 씩씩한 명랑’에 홀린다. 김애란의 소설이 좋은 점’은 아버지의 부재’를 자신의 트라우마’로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애란 소설의 주인공들은 아버지가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캔디가 등장하는 김애란’식 가족 서사에서 아버지’는 주인공이 아니라 < 지나가는 행인 3> 에 불과하다. 김애란 소설이 빛나는 점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의 문장은 신경숙처럼 지지리 궁상’도 아니고, 은희경처럼 맹랑하지도 않다. 김애란은 명랑하다.
롤랑바르트에세이 : 우리가 에세이’를 싸구려 분야’라고 인식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신달자나이어령 같은 사람들의 에세이 때문이다. 에세이란 본래 신변잡기 류의 글이 아니라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철학서다. 나는 그들이 거리 청소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부지런한, 대한민국 성공 신화의 일등 공신’이라는 식으로 미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불평등 사회에서 직시해야 될 것은 부지런한 일꾼에 대한 예찬이 아니라 계급 모순에 대한 분노다. 롤랑바르트나 파스칼 키냐르의 에세이’를 읽으면 대한민국에서 에세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통되는 텍스트가 지나치게 천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키냐르의 에세이는 우아하고, 바르트의 에세이는 에로틱하다.
함민복의시 :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내게 있어서 시의 본질은 < ~ 타령’> 이다. 타령이란 본질적으로 신파이고, 한탄이며, 유행가 가사’이지만 그래도 시는 멜랑꼴리하게 만드는 힘을 가질 때 위력을 발생한다. 미래파 시인들이 모던보이’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시인은 좀... 지지리 궁상이어야 멋있다. 함민복의 시’는 지지리궁상’이다. 가난 때문에 어머니’를 버려야 하는 아들의 투가리에 어미가 자신의 설렁탕 국물’을 부어줄 때, 시인’은 눈물은 왜 짠가 라고 묻는다. 닝기미.... 캔디도 울지 않는데, 이라이자가 괴롭히지도 않는데, 나애리도 없는데 왜 우냐고 말하고 싶지만 묘하게 이 신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정말 좋은 멘트: 그 사람의 방송 멘트’가 하나의 문장’이었다면, 나는 당장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그었을 것이다. 역에 도달하기 전까지 역 이름’을 친절하게 방송하던 철도 기장’은 그만 다음 역 이름을 까먹고 말았다. “ 다음 역은...“ 침묵. “ 다음 역은...“ 또 침묵. “ 다음 역은...“ 다시 침묵! 방송을 듣고 있던 승객들이 오히려 긴장하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다음 역은 신림이라구요. 승객들은 모두 아는데 기장 혼자 모르는 상황이다. 다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다음 역은...“ 승객들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 ! 드디어 기장이 말을 이었다. “ ....... 어디 일까요 ? “ 기장의 멘트’를 들은 승객들은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내 친구가 직접 경험한 실화다. 사람들은 < 어디일까요 역 > 에서 내렸다. 가끔 신림 역’에 갈 일이 있으면 킥킥 웃게 된다. 신림의 다른 이름은 어디일까요 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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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의동화 :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책’에는 밑줄을 그은 흔적이 없다. 그의 소설 첫 문장’을 읽었을 때 깨닫게 되었다. 첫 문장의 첫 음절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이어지는 그 끝없는 길 위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포기하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내 눈에는 매우 긴 밑줄이 선명하게 보인다.
갠이치로의소설 :갠이치로의 소설은 황당무계’하다. 엽기 만화 <이나중 탁구부 > 를 소설’로 만든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 이름도 <아침에배아파서알낳어> 라는 식이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포르노’를 열심히 보아야 하고, 얼음 주스 냉장고’는 너무 열심히 일한 나머지 일사병에 걸려 죽는다. 사람들이 보기엔 미친 정신병자’가 쓴 글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당신의 판단이 옳다. 갠이치로’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의 글에 열광하는 이유’는 매우 독하게 슬프기 때문이다. 착란은 종종 찬란한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갠이치로’를 통해서 배운다.
김훈의 기행문 : 김훈이 쓴 문학 평론’은 그저 그렇고, 그렇고, 그렇다. 하지만 기행문’은 황홀하다. 그가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사색할 때의 문장력은 압도적이다. 소설’보다는 기행문이 더 좋다.
제품 사용 설명서 :아이폰 4 제품 사용 설명서’에 쓰인 지시문’을 읽으며 감탄하는 사람이 있을까 ? 없을 것이다. 사용 설명서에 쓰인 문장은 지극히 사무적이며, 냉정하고, 예의바르지만, 무뚝뚝하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 없는 문장이 바로 제품 사용 설명서 문체’다. 하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15,000원짜리 쿠스코 바르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하나 샀다. ( 쿠스코 티’는 보통 몇 십만 원 한다. 내가 입고 다니는 쿠스코 바르셀로나는 짝퉁이 아니라 디자인 문양만 흉내낸 옷이다.
가짜라기보다는 디자인을 카피한 것이다. ) 포장지 속에는 옷과 함께 제품 사용 설명서’가 있었는데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다. “자신있게거리를 활보합시다 !“ 태어나서 제품 사용 설명서 읽고 감동한 적은 처음인 것 같다. 싸구려 가짜 동대문 옷이지만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워킹하라는 말. 이 정도면 참... 센스 있으신 분이다. 그런데 얼마 후 온라인 쇼핑몰은 문을 닫았다. 쿠스코바로셀로나 스타일’의 옷을 찾는 사람은 대한민국 0.1%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쿠스코 스타일의 옷은 입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