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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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다. 아무리 재미있게 써도 나와 관점이 다르면 재미'는 시시한 것'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니깐. 사유가 곰삭은 진국이라면 모를까, 어설프게 핏기만 뺀 국물은 맛이 밋밋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원본보다 훌륭한 사본을 작성하는 것은 원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래저래 비평-사본'은 찬밥 신세일 뿐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문학비평'이 원본의 사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본'도, 그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평론가들은 늘 거들먹거리며 원본에 대하여 논하지만 사실은 부러운 거다. 대학 사채업자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덥썩 물거나, 출판사에서 던져주는 떡을 냉큼 삼키면서 그들은 먹물들의 세계사를 쓴다. 문학은 나의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문학의 나의 돈줄이라는 불편한 속내를 숨긴 것에 불과하다.

 

 


 

 

 

 

 

 

 

김애란, 두 번째 이야기



▶ 도도한 생활

김애란의 소설집 < 침이고인다 > 를 읽고 있으면, 나는 220 볼뜨‘1 백열전구의 필라멘트‘가 된다. 김애란이 단편 < 도도한 생활 > 에서


엄마는 탈수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탈탈탈탈 울었다.

- 20

 

거나,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아빠는 오토바이 ‘쇼바’를 잔뜩 올린 채 도로 위를 달리며 울고 있었다. 아빠는 오토바이 속도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 앞바퀴를 들며 “ 얘들아 너흰 절대 보증 서지 마 ! ” 라고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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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표현했을 때, 이 여자의 대책 없는 명랑함‘에 나의 필라멘트’는 깜빡깜빡 까르르르르 흔들리며 정신줄을 놓았다. 꺼, 졌다 켜졌다 ! 깜빡깜빡... 안녕하시렵니까 ? 반갑습니다. 읽다 보면 이 명랑함은 비극에 대처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명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애란의 < 맹랑하지 않은 명랑함 > 을 좋아한다.

 

참 좋다 !


이 명랑함은 슬픔을 감춘 명랑'이다. 서울 반지하 셋방에서 언니와 살아가는 나‘는 ( 한때 그럴듯하게 살았던 상징적 유물인 ) 처치 곤란한 피아노’와 함께 동거한다. 가장 낮은 음계‘인 도’만 울려도 득달같이 달려오는 지랄같은 주인 눈치에 피아노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 피아노, 너 밤에 짖지마 ! 쓸데없이 울지마 ! 낑낑거리지 말란 말이야 ! 소리내서 울지 말고, 웃지도 마 ! 음냐...... " 아 설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순간 장대비’가 쏟아지고 검은 물은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아빠처럼 쇼바‘를 잔뜩 올린 채 울까? 말까?


갑자기 깜빡깜빡 거리며 신나게 까무러치던 나의 필라멘트‘가 쨍 하며 파르르르 떤다. 열이 난다. 그때 알았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리라. 필라멘트’는 울 때 쨍 하며, 밝은 곳에서만 운다는 사실. 인간과는 정반대'다.



침이 고인다.


원룸은 < 원 맨 룸 > 에서 맨‘이 빠진 것이다. 한때 급진 페미니스트’은 남성화된 언어의 전범으로 원룸‘을 지목하며 원-맨-룸’을 원 피플 룸‘으로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인 적이 있으며, < 한글을 사랑하는 모임 > 의 회원들은 원룸 대신에 단칸방’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한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어찌되었든, 원룸은 혼자 살기에 적합한 방 구조‘다. 그런데 이곳에 후배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슬픈 서사/트라우마’ 로 원 피플 룸 주인을 유혹한다. 엄마가 껌 한 통을 손에 쥐어주고는 자신을 버렸다고, 껌을 한 통 다 씹을 동안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입 안에서는 침이 고였다고 !2 결과는 ? 원룸에 둘이 함께 산다.

 

 

이쯤에서 우리는 1룸에 함께 사는 2여자의 아름다운 동거'를 바라보게 될 거란 기대'를 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 좋아할 만한 떡밥이군, 이라고 생각할 때 어찌 돌아가는 꼴이 좀 수상하다. 기획 상품이라면 모를까, 애인이라면 모를까, 1룸에 1 + 1 ‘ 은 불편하다고 김애란은 솔직하게 말한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현관문을 열 때 후배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뭐,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니깐. 타인의 트라우마’는 나의 상흔이 되기엔 방이, 너무 좁다 !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 지금도 침이 고여요. ”

- 61

 



성탄특선


지상의 방 한 칸‘이 이토록 간절할 때’는 크리스마스 때‘가 아닌가 싶다. < 성탄특선 > 의 연인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서로 엉키려고 하는 순간, 방이 없다 ! 엄기영 앵커’가 “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라는 통속적 멘트를 날리기도 전‘에, 이미 모텔 간판’은 불이 꺼진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 연인들은 이미 벌거벗은 채 전투 중이다. 이때‘가 바로 < 정기 대 방출 > 이 아니라 < 정액 대 방출 > 이 시작되는 기간'이다. 정액들의 엑소더스다.

 

 

모두, 하고 있습니까? 모두 탈출 하셨습니까 ? 개불 같은 전립선에서의 지저분한 삶, 이제 박차고 나가세요. 불알은 당신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딱딱한 알'일 뿐입니다. 아브락삭스의 새가 되십시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진하십시요. 저기 아늑한 궁이 보이지 않습니까 ? 자, 달립시다. 탈출합니다 ! 으리으리한 궁궐을 향해서 짝꿍의 등짝을 세게 한 대 때려도 좋습니다. 오늘은 예수가 우리에게 준 자유의 기회입니다 ! 영광의 탈출입니다, 여러분 !!!!

 

 

소설 속 연인‘은 모두 다 하고 있을 때 하지 못한다.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닌 모텔 방은 이미 벌거벗은 어처구니들로 가득 찼고, 호텔은 지나치게 비싸며 여인숙은 정액을 고급스럽게 대 방출하기에는 너무 왁자지껄한다.


한국의 좌파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그들이 편안하게 누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건설교통부에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 제대로 하라고 항의 전문'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아, 신발 ! 아, 시 ㄴ 발 ! 나의 필라멘트가 깜빡깜빡 거리다가 쨍 하고 떴다 ! 여전히 김애란은 < 자기만의 방 > 을 이야기한다.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방음 잘 되어서, 신나게 응, 응, 응, 아흥'을 당당하게 샤우팅으로 내지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방'이 필요하다고.

 

 

 


칼자국

 

 

김애란이 그동안 자기만의 방‘에 집착했다면 < 칼자국 > 에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엄마의 방을 바라본다. 엄마의 방은 부엌이다. 말랑말랑한 밀가루를 칼로 썰어서 < 칼-국수 > 를 만드는 엄마의 맛’은 한 마디‘로 칼칼하다. 이 위험한 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엄마의 방/부엌‘에서 주인공 나’는 숭고를 경험한다. 배가 고픈 나‘는 허겁지겁 사과를 깎아서 먹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 어둑한 부엌 안, 사과 깎는 소리가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사과는 내 손에서 둥글게 자전하며 자신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 180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 이다, 라고.

-170

 


아버지가 쇼바‘를 이빠이 올리며 간지나게 울었다면, 어머니’는 탈수기 아래에서 탈탈탈탈 우는 존재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운다. 물기 하나 없는 탈수기 속 옷처럼 ! 왜 엄마는 그 흔한 방이 없는 것일까 ? 기껏해야 탈수기 옆이거나, 부엌이란 말인가 ?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며 말'이다, 라고.




네모난 자리들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나의 필라멘트‘가 주책없이 쨍 하며 운다. 부끄럽게, 남세스럽게, 이게 뭔가. 다 큰 사내가. 12센티미터 페니스’를 가진 수컷이 이게 뭔가 말이다. 빌어먹을, 필라멘트 새끼.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걸을 때, 나는 길라잡이‘를 자청했었다. “ 제가 길을 잘 알죠. 지름길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나는 A에서 B’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남들은 잘 모르는 골목길‘로 그녀를 안내했다. “ 평소라면 30분 걸리는 거리인데, 이 길로 가면 20분이면 가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요. ” 내가... 안내했던 그 길. 그녀는 모르리라, 사실 그 길은 가장 빠른 동선이 아니라 가장 늦은 동선이라는 사실 말이다.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나는 20분에 걸쳐 길을 안내한 것이다. 가끔 그 길‘을 걷고는 한다. 걸을 때마다 설레이는 골목이다. 궁금하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깐. 아, 이런... 나의 필라멘트’가 우는 바람에 잠시 딴 생각을 했다.


< 네모난 자리들 > 은 골목골목을 누비는 남자와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그 남자의 방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먼 곳에서 불 밝힌 창문만 보았을 뿐. 어느 날 남자’가 사라진다. 여자는 용기를 내서 그 남자를 찾아간다. 문은 잠겨 있다. 그녀는 문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찾아서 방 안‘을 본다. 그녀가 본 것’은 텅 빈 방이 아니라 쓸쓸한 남자의 모습이리라. 아니다, 그녀가 본 것‘은 쓸쓸한 자신의 방’이다. 타자의 방에서 자기의 방‘을 본다.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단편집을 읽을 때, 나는 하나의 단편‘은 읽지 않은 채 책’을 덮는 습관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가 이 행위에 나름의 상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책 읽기는 없다고, 독서는 언제나 미완의 행위라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단편‘을 읽지 않고 책을 덮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가 끝내지 않은 책이다. 미완의 책이다.

 

 

 

 

 

 

 

 

김애란'은 " 집 " 이 아닌 " 방 "을 이야기한다. 집과 방은 뿌리와 리좀의 관계와 같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순환, 계통, 소통'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은 모두 방이다. 집에 딸린 방이 아니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 하나다. 이 방은 자폐적이다. 그래서 생래적으로 고독한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혼자 생활하는 표범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독한 곁'이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3.

 

 

하지만 ( 자본주의적 ) 현재의 삶'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자기만의 방'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 머물 모텔 방'마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은 지하'이거나 하늘 아래4' 그리고 부엌 혹은 독서실 바닥5이다. 땅 냄새에 멀미를 하는 지상은 이미 가진 자의 공간'이다. 현대의 빈민은 고독하려고 해도 공간이 없어서 고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김애란은 그 사실을 직시한다. 깔깔거리면서, 때론 심각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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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 전2권 - side A, side B + 일러스트 화집
박민규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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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공중보건 위원회 !


 

 

 

 

 

 

 

 

 

 

 

1. 낮잠


주춤, 쭈뼛쭈뼛 ! “ 물건 ” 을 살 때 주눅 들게 되는 곳이 < 약국 > 이다. 이 상점‘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손님이 왕이던 자부심은 어디 가고 약사 눈치 보기 바쁘다. 코, 코코코콘돔 주세요 ! 당당한 척하지만 쪽팔려서 죽을 것 같다. 그럴수록, 오히려 태, 태태태태평한.... 얼굴로. 코코코코콘돔 주세요 ! 속내를 들킨 것일까 ? 약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심드렁하게 묻는다. 약사가 무표정하면 할수록 당황하는 손님을 위한 주인의 배려인 것 같아 오히려 더 불안하다.


도트형 콘돔으로 드릴까요, 아니면 소용돌이형으로 드릴까요, 울트라 슬림형은 어떤가요 ? 착용 시 이물감’을 느끼는 분이라면 낀 듯 만 듯한 초슬림형 0.3미리 콘돔을 추천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이죠. 그리고는 귓속말로 말한다. 조루‘에게는 두꺼운 콘돔이 최곱니다 ! 도트? 소용돌이 ?? 울트라 슬림 ??? 이물감 ???? 이물감이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듣자 긴장감이 고조된다. 여자 친구 집에서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집 강아지가 나를 똑바로 노려볼 때의 기분이 섹스 시 이물감'이겠지 ? 아, 아아아아무거나 주세요 !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 아무거나 콘돔 > 을 끼고 섹스를 하고는 했다. 내심,

 

두꺼운 콘돔이 걸렸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금이야 택배 주문하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때는 반드시 “ 진찰은 의사에게, 콘돔은 약사에게 ! ” 였다. 하여튼, 그때는 콘돔을 사기 위해서는 동네 몇 바퀴‘를 돌아야 했다. 대한민국 약사는 죄다 여자인 것일까 ? 여자 약사에게 콘돔 유니더스에서 출시된 0.3미리 초슬림’으로 주세요. 써 보니 착용감이 훌륭하더군요. 아, 도트형에 망고망고 향‘으로 주문할게요. 비밀인데 소용돌이는...


아파요 ! 크크크.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그래서 나는 남자 약사를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고는 했다. 옳거니,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약국을 보시네 ? 문을 열고 들어선다.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어서 오시구랴, 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불쑥 젊은 여자 약사‘가 진열대 밑에서 나타난다. “ 아빠, 계속 식사하세요 ! 손님, 무엇을 찾으시나요 ? ”


쌍화탕 주세요!


따라락, 뚜껑을 따서 쌍화탕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지깽깽이 같은 의료 보건 분야 국회의원 새끼들 ! 왜 콘돔을 약국에서만 파는 거야 ! 고생 고생해서 얻은 콘돔이니 1일 3회 복용은 엄두도 못낸다. 어떻게 해서 얻은 소중한 콘돔인데... 비닐 커버를 찢을 때마다 손이 벌벌 떨린다. 재활용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세상이 좋아졌다. 이제는 편의점과 인터넷 거래‘로도 구입할 수 있으니깐 말이다. 이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면 하루 세 끼는 기본이요, 참에 야식까지 먹을 수 있다. 콘돔이 흔한 세상에 되었다. 약국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는 약국에 가서 우리의 은밀한 사생활을 폭로해야 한다. 박민규의 단편 < 낮잠 > 에서의 늙은 노인은 약국에서 나와 같은 상황에 직면한다. 약국에 들어선 노인은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 서, 서서성인 의료용 기저귀를 주세요.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는 콘돔을 사며 부끄러워하지만 늙어서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면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콘돔이 어른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성인용품이라면 기저귀‘는 어린이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오브제‘라는 사실. 약국에 가서 콘돔을 산 지’가 꽤 오래되었다. 그리 생각하니 약국은 인생의 축소처럼 느껴졌다. 나도... 언젠가는 요실금용 기저귀를 사기 위해서 약국에 갈지도 모른다.

 


 

 


2. 별


사람들은 별을 안 보고 산다. 그냥 별일 없이 사는 것이 그럭저럭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볼 일 없는 삶은 처량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별별’이라는 단어도 사실 잡동사니를 가지가지 나열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던가 ? 이제 더 이상 별을 그리라는 유치원선생님의 주문에 ☆ 를 그리는 뽀로로 열혈 마니아’는 없다. 오히려 star‘라고 쓰는 조기 영어 교육 부모의 자녀가 존재할 뿐이다. ( “ 준장 ” 이라고 쓰는 어린이의 정신세계는 무엇일까 ? )


현대인이 하늘의 별을 보지 않는 이유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문제이니 사람들은 발등의 불만 바라본다. 작은 불씨 꺼지랴, 노심초사다. 그러니 하늘의 별을 누가 감상하겠는가. 단편 < 별 > 의 주인공은 대리기사‘다. 꽃뱀 때문에 인생 망친, 카드 돌려막기로 꽃뱀의 명품 핸드백’을 사주다가 급기야는 회사 돈을 유용한 인간이 등장한다. 단물만 쏘옥 빼먹고 도망간 여자는 들리는 소문에 의사 부인이 되었단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서,


우연히 만난다. 술 취한 고객과 대리기사의 관계로... 여자는 의식을 잃은 채 뒷좌석에 쓰러져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살의를 느낀 남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다. 복잡하다. 차를 길가에 세워둔 후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핀다.


제목이 < 별 > 이지만 별이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밤은 그냥 어두울 뿐이고, 새벽도 그냥 어두울 뿐이다. 그냥, 그냥, 그냥 어두운 밤이다. 별이 없는 하늘이다. 신용불량자인 그는 먹고살기 위해서 그냥 발등의 불‘만 본다. 불과 별, 묘하게 이질적이지만 교묘하게 닮은꼴이다.



 

 

 

 


3. 아스피린


젠장, 왜 안 나오나 했다 ! 하늘에 거대한 아스피린이 둥둥 떠 있다. 어마어마한 아스피린이다. 처음에는 우주선인 줄 알고 흥분했던 사람들도 아스피린이라는 소식에 시큰둥이다. 광선 좀 지지직, 하며 쏴 주어야 스펙터클 할 텐데 말이다. 아스피린을 보니 아, 머리 아파, 두통, 치통, 생리통이다. 단편 중 가장 박민규스럽다 !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을 능청스럽게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4.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


박민규가 말하길, 좆이 안 선다고 한다. 천하장사 소세지 2개를 점심 끼니 삼아 먹었는데도 좆이 안 서면,

 

 


안... 서는 거다.

 

속된 말로 좆 된 거다. 그는 단 한 대의 차도 팔지 못한 차 판매원. 경제력도 무능한데 성력‘도 무능하다니 ! 설상가상 서랍에서 아내의 것으로 보이는 딜도’가 발견된다. 오, 오오오잉 ? 그 길이가 18센티미터'요 넓이는 4센티미터다. 콘돔 재료로 쓰이는 라텍스 고무 재질이라 딱, 딱하지도 않다. 물렁물렁하다. 커다란 초록 애벌레 같다. 그러니깐 아내가 쓰는 딜도는...


세상에나 !


딜도 씨는 꼴리지 않고도 18 센티미터인 것이다. 꼴리면 도대체 몇 센티미터인 것이냐 ? 50센티미터 자 ? 맙소사, 우리의 차 판매원 사정이 딱 (딱)하다 ! 자신의 그것을 본다. 3센티미터 ? ? 절박하다. 결국 그는 화성까지 가서 차를 세 대나 파는 데 성공한다. 의기양양 돌아온다. 피곤하다. 누군가는 이런 게 소설이 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천박하다며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돌팔매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 문학이 세상을 구원합니까 ? ”


음담이 팔 할이다. 그래도 좋다, 박민규‘이니깐 가능한 설정이다. 소설이 거창할 것 없다고 박민규는 말한다. 딜도처럼 그저 누군가의 클리토리스를 살살 긁어주면 소설의 역할은 다했다고 말한다. 천박하면 어떤가 ?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위무하면 그만이지.

 

 

이 블로그’를 모녀가 함께 보는 이웃 블로거가 있다. 딸아, 이 블로그의 주인장, 참 재미 있는 양반이구나. 함께 읽으면 유익한 글이 많구나. 엄마는 40대를 훌쩍 넘겼고, 딸은 사춘기 소녀다. 모녀가 함께 내 글을 읽는다니 감격스럽다. 그런데 아뿔싸 ! 내가 딜도‘에 관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같이 읽던 딸이 묻더란다. 엄마, 딜도가 뭐야 ? 엄마는 침묵하고 딸은 어느 순간 깨닫고 자리를 피했다고 !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모녀가 함께 읽을 수 있는 유익한 글만 올리려고 했는데 어찌어찌하여 이리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순전히 박민규 탓이다. 내 탓이 아니다.


 

5. 루 디


단편집을 읽을 때, 단편 하나는 반드시 빼고 읽는다. 어찌어찌하여 징크스가 되었다. 이 버릇은 나중에 제의처럼 변질되어서 단편집의 단편 모두를 읽으면 다음날 길을 가다가 묻지 마 살인의 희생양이 될 것 같다는 재수 없는 생각‘이 들어서 이 철칙을 반드시 지킨다. 몇 년 묵혔다가 나중에 읽는 법도 없다. 그냥 읽지 않는다. 그러니깐 < 루디 > 는 앞으로 영원히 읽지 않는 단편 중 하나이다.


16편의 단편이 수록된 < 더블 > 단편집에서 가장 훌륭한 단편이 < 루디 > 라면... 물론, 억울하다 !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뺑뺑이 돌려서 선택된 것이 < 루디 > 이니 말이다. 훌륭하다고 한들 어쩔 수 없다. 누가 < 루디 > 를 영화화했으면 좋겠다. 원작에 충실한 영화로 말이다. 단편집‘이 후지길 바랐는데 좋다 ! 빌어먹을, 졸라 좋다. 박민규는 인정하기로 하자 !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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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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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가족 서사(극) : 두근두근 내인생, 삼부자.

 


 

애란 장편소설 < 두근두근내인생 > 에 대한 반응이 좋다.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평단 또한 칭찬 일색이다. 놀라 다시 본다, 라는 성석제의 기막힌 40자 평이 있는가 하면 요즘 잘 나가는 젊은 평론가는 역시 김애란이라며 엄지 세 개‘를 올린다. 하지만 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띄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그뿐인가 ? 이웃집 할아버지는 항문기에 집착하는 꼬마 한스 같다. 공교롭게도 유일한 어른은 조로에 걸린 주인공 소년’이다. 그들은 모두 항문기로 퇴행 중인 노인이거나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문 철없는 부모이거나 혹은 너무 늙은 애어른‘이다. 자기 나이에 맞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한 편의 명랑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문제는 고착으로 인하여 이 아이들의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성이 결여되었으니 등장인물들은 모두 명랑하고, 유쾌하며, 긍정적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계급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명랑한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성숙한 비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대책 없는 무비판성‘은 작가로써 치명적 결점이다. 그녀는 거리’를 은폐한다. 꼴랑 보여주는 것은 골목길이다. 거리가 사회화된 영역이라면 골목길은 사회화가 거세된 낭만적 장소이다.

 

소설가는 어떤 식으로든 당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 소설에는 그것이 없다. 명랑’하기만 하면 장땡인가 ? 심각할 때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뷰, 티블 마인드- 하다.

 

 

 

 

 

 


 

 

 

 

면 손창섭의 < 삼부녀 > 는 나쁜 가족극‘이다. 근친 욕망이라는 이름의 총천연색 만화경’처럼 화려하다. 일본 도까이 에이브이 성인 공작소‘라면 이 원작을 입수해서 근사한 포르노를 찍었을 것이 분명하다. 주인공은 소라 아오이 ? 손창섭은 이 소설에서 에둘러 이야기하는 법‘ 이 없다. 읽다 보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이 작품은 1970년 주간여성에 연재된 장편소설인데 과연 이러한 내용의 소설이 검열 없이 연재되었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점은 생생하다는 것이다. 40년이나 지난 작품이 2010년의 당대성을 획득한다는 사실은 거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니깐 손창섭은 40년 앞을 내다보고 이 소설을 쓴 것이다. 그는 너무 앞서간 인물이었다.


간단하게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가족은 해체된다. 아내는 바람나서 도망가고, 딸들도 모두 아버지를 부정하고 집을 나간다. 이제 남은 것은 늙은 수컷‘과 텅 빈 집이다. 소설은 해체된 가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복원한다. 위기를 겪은 가족의 복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하는 것이다. 스폰서를 하는 조건으로 아내의 빈자리‘를 젊은 여자가 채우고, 딸의 빈자리 또한 다른 젊은 여자’가 채우는 방식이다. 계약 가족이다. 문제는 두 여자 모두 아버지의 남근을 빨고 싶다는 것이다. 그녀들은 끊임없이 유혹한다. 가짜 아내는 딸의 욕망을 견제하지만 나무라지는 않는다. 가짜 딸은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의 침실을 노린다 !


하지만 유사 가족 관계 안에서 불협화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유사 가족 제도는 평화‘ 롭다, 놀랍게도 ! 손창섭이 보기에 혈연 중심적 가족주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해체를 주장한다.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다. 대안가족의 탄생이다. 박정희가 군화발로 동토를 철권통치하는 시대에 손창섭은 성적으로 도발을 한다. 엿 먹어라,  페니스 !


그는 남근 중심의 숨 막히는 한국 유교 사회‘를 혐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근과 대한민국을 동일시했고, 그 속에서 광기의 소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조국을 야반도주했는지도 모른다. 이 위대한 소설가는 끝끝내 조국을 등진 채 일본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


 

김애란 장편소설이 후진 이유는 한심할 만큼 무비판적 태도에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한심한 것은 김애란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평단의 알 수 없는 침묵‘이다. 정, 말 이 소설은 놀라서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인가 ? 많이 팔리면 장땡인가 ? 김애란을 손창섭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손창섭의 치열한 현실 인식에 비하면 김애란은 지나치게 낙관적이어서 뻔뻔하다.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다. 갈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갈등이 없으니 봉합이 없고, 봉합이 없으니 트라우마가 없다. 대충 그까이꺼 대강 웃으면 이와요. 그, 런 겁니까 ?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겁니까 ? 물론 나쁜 사람만 등장하는 소설 또한 좋은 서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쁜 사람만 등장하는 서사가 차라리 좋은 사람들만 등장하는 서사보다는 훌륭한 작품이 나올 확률이 높다. 소설이란 근본적으로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탐구하려고 하는 만화경이 아니었던가 ? 김애란은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김애란이 잘 팔리는 소설가가 되어 신경숙을 따르기보다는 당대의 현실에 고민하는 공선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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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한국 소설.

 

 

 

 

 

 

 

 

 

 

우리는 일본 소설을 할리퀸 로맨스 문고 시리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저질 소설의 대명사로 판단해인지, 내가 일본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많고 많은 책 중에 그런 책 을 읽는다고 타박을 한다. 많고 많은 책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일본 소설 대부분을 싸구려 대중 소설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그들은 태백산맥, 아리랑, 토지와 같은 좋은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혹은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읽는 것은 교양인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이 즈음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책과 나쁜 책의 기준은 명확하다. 순문학은 좋은 책이고, 장르문학은 나쁜 책이라고 판단한다. 그런데 나는 그해의 이상문학상 후보 명단에 오른 단편()을 읽을 때마다 < 참고 참고 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한 참치의 울화통 > 이 되어서 책을 집어 던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누군가 이 참치의 울화통이 기초적인 소양과 교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독해력에 문제가 발생해서 생긴 심리적 자격지심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한국 단편 소설이 지나치게 지적 허영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화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트라우마가 전적으로 아버지/어머니 부재에 기초한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 억압 서사에서 벗어나려하지 않으려는한국 소설가들의 게으른 천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소설가만큼 상상력이 빈곤한 창작 집단을 본 적이 없다. 무조건 아버지 때문이라고 징징거리는 단편을 읽을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그들은 담당 교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학생처럼 보인다. 문학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학교 안의 문학 담당 교수가 아니라 시장의 독자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프랑코 모레티의 말이다.

현대 일본 소설은 집단적 요구에 의한 개인의 욕망을 다루지 않는다. “ 가족과 나 의 연대가 불러오는 트라우마는 없다. 그보다는 순수한 개인의 욕망과 취향을 다룬다. ( 류는 재즈로 빠지고, 하루키는 와인에 빠진다. ) 신경숙은 현대인의 결핍을 엄마의 부재로 읽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새빨간 사기극이며,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의 부재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대인은 엄마가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엄마를 대체할 케어 시스템/사회 복지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국가의 복지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회 안전망인데, 대한민국은 이 대체 어머니가 부재한다.

국가 복지 시스템이 잘 된 나라일수록 가족 서사에 목숨을 걸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에 가족 말고 믿을 놈이 생각보다 꽤 많기 때문이다. 복지가 케어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후진국들은 이 세상에 믿을 놈은 < 가족 >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신경숙이 문제를 제기했어야 할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그녀는 개인의 <케어>를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으로만 판단한다. 그것은 소설가가 사회를 읽는 눈이 부족하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엄마는 만병통치약인가 ? 엄마만 있으면 행복은 민들레 홀씨처럼 착박한 황무지에도 꽃을 피우는가 ? 이런 가족 신파는 좋은 소설이 될 수 없다.

순문학의 대표주자인 신경숙의 한심한 사회 인식보다는 장르문학의 미야베미유키의 소설이 더 사회 비판적이며 날카롭다. < 화차 > 는 그 정점에 다다른 소설이다. 그녀는 추리 장르라는 대중적 친화력과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당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 날카롭게 파고든다. 한국 작가들이 엄마 없어, 아빠 없어, 고양이도 없어, 다 없어. 어떡해 ! 라며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말투로 징징거릴 때, 일본 작가들은 사회 곳곳에 침투한 병폐를 읽는다. 미유베는 신용 사회와 소비 사회가 개인을 파멸시키는 무간지옥을 화차를 타고 주위를 돌며 서술한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정확히 십 년 후의 한국 사회를그대로 반영한다.

 

 

 

 

 

 

 

그런데 한국 소설가는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는 듯하다. 아니면 대중에게 읽히는 소설을 쓸 능력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편혜영의 소설들이 현대인의 불안을 다룬 훌륭한 단편이라는 평단의 판단에는 동의하지만 대중적 친화력에는 완벽하게 실패한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장편 소설 < 재와 빨강 > 을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 작가가 대중적 소통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작품도 형편없었지만, 재미도 형편없었다. 쉽게 말해서 평단과 흥행 모두에 실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훌륭한 작가는 많다. 김연수는 선전할 것이고, 박민규 또한 건재할 것이며, 김애란은 첫번째 장편 < 두근두근...> 의 완벽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천명관도 좋은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작가는 김중혁이다. 그의 소설은 늘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백민석은 고집을 꺾고 다시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윤대녕은 여행 가서 묘령의 아가씨와 < 하는 > 서사는 이제 그만 썼으면 하고, 신경숙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지독한 탐미주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은희경은 적당히 쿨했으면 하고, 공지영 소설은 솔직히 왜 잘 팔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작가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경란은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너무 고고한 척하지 말았으면 한다.

 

+

오츠이치라는 작가가 있다. 그의 작품은 기괴하고, 유치하며, 때론 무섭기도 하다. < 작가는 불안과 고뇌가 팔 할이야! > 라고 외치는 순문학 지망생들이 보면 참... 한심한 작품만 쓰는 작가. 제목도 얼마나 유치하냐면<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 < 암흑 동화 >, 리스트컷 사건 > 등이 있다. 그의 작품 중에 <평면개> 라는 중편이 있다. 나는 이 소설을 읽다가 박장대소했다.

주인공인 여고생은 엄마가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아빠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진단 결과를 받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사실은 마지막 남은 남동생마저 불치병으로 6개월 후면 죽는다. 그러니깐 6개월 후면 주인공 말고는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서로가 처한 상황을 깨닫게 된다. 얼마나 우울한가!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모두 시한부 인생이라고 밝혀졌으니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겠네 !, , ....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생각은 뒤통수를 맞는다. 가족들은 다음날부터 신나게 웃고 떠든다.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 두고 집안에 쳐박혀서 책만 읽을 결심에 기뻐하고, 엄마도 이 기간을 6개월의 휴가정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남동생은 아주 긴 방학이라며 기뻐한다. ... 함께 뿅 하고 사라질 것이니 그리 억울한 것도 아닌 것이다. 주인공 소녀는 그들 사이에서 소외를 느낀다. 가족은 발랄하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었다. , 아아아아니... 이건 우리가 익히 보았던 가족의 풍경이 아닌 것이다. < 억압받는 한국 가족 서사 > 에 익숙했던 한국 독자들은 이런 식의 반전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오츠이치는 가족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쓴다.“ 반년 뒤. 세 사람 모두 죽었다. “이 간단한 문장은 가족 서사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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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ogs 2013-03-1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지만 우리에게도 훌륭한 작가는 많다. 김연수는 선전할 것이고, 박민규 또한 건재할 것이며, 김애란은 첫번째 장편 < 두근두근...> 의 완벽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천명관도 좋은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작가는 김중혁이다. 그의 소설은 늘 궁금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백민석은 고집을 꺾고 다시 소설을 쓸 것이다. 개인적으로 윤대녕은 여행 가서 묘령의 아가씨와 < 하는 > 서사’는 이제 그만 썼으면 하고, 신경숙은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지독한 탐미주의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은희경은 적당히 쿨했으면 하고, 공지영 소설은 솔직히 왜 잘 팔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작가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경란은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한다. 너무 고고한 척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성일 문체?

곰곰생각하는발 2013-03-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일 문체로 보이시나요 ? 성동일 스타일로 썼습니다.

모리 2013-03-2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좋아서 페이스북에 링크걸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02:3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꾸벅..

이진 2013-03-2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소에 늘 갖고 있던 생각이라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는 한국소설만 읽지만 그때문에 종종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지요. 저의 이 슬럼프(?)를 뛰넘게 해준 책들이 님께서 언급하신 몇명을 포함한 젊은작가들입니다. 저는 김중혁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황정은과 손보미는 반드니 성공할 수 있을 것이고 김성중이나 김혜나 또한 그럴것이라 봅니다. 황정은이야 이미 그럭저럭 성공한 작가고 손보미나 김성중, 특히 김혜나는 인지도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손보미는 글을 잘 쓰고, 김성중은 재밌게 쓰며 기발하고 풍부하며, 김혜나는 기존의 한국소설과 분위기는 닮았다고 생각되나(그러니까 편혜영쯤이랄까요...음) 좀더 현실적이면서 날카로운 구석이 있습니다. 폰으로 치다보니 앞에 뭐라고 쳤는지 까먹어서 더는 못하겠네요. 전적으로 님의 말에 공감함을 밝히며 (저는 신경숙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요. 편혜영에 관한 것은 크게 동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14:43   좋아요 1 | URL
황정은은 확실히 요즘 뜨시더군요. 황정은 좋다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봄날에 꽃 터지듯 들려옵니다.
사실 전 한국소설을 잘 안 읽습니다. 안 맞더라고요...ㅎㅎㅎㅎㅎ
하여튼 황정은은 크게 성공할 사람처럼 보이고, 김혜나'는 솔직히좀 의심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사과'와 김숨 눈여거 보고 있습니다.

김성중은 아직 안 읽어보았어요. 이번 기회에 함 보아야겠습니다.

이진 2013-03-21 21:52   좋아요 0 | URL
황정은은 개성이면 개성 기발함이면 기발함 문장이면 문장 구조의 탄탄함이면 탄탄함... 모두를 골고루 갖춘 작가인 듯합니다.
그렇긴하죠 김혜나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요.
김사과와 김숨, 맞네요. 말고도 젊은 작가가 많은데 더 생각을 못해내겠네요.
배명훈도 뭐랄까, 눈 여겨 볼만합니다.
(댓글에 신경숙 작가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 조금 달리 말하자면 저도 곰곰님께서 바라시는 탐미주의적 소설을 좋아한답니다. 벚꽃잎 같은 소설들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1 22:07   좋아요 0 | URL
아, 배명훈이 있어군요 ! 마자요. 배명훈... 최제훈과 더불어 아주 독특한 분위기가 감지 됩니다. 뭔가 문단 먹물스럽지가 않아서 좋습니다.

전 신경숙 초기작들을 아주 좋아해요. 아, 이렇게 그냥 주구장창 아름다운게 좋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구나 했거든요.

희극인조르바 2013-03-2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츠이치라는 작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언급하신 '평면개' 재미있군요. 황당한 것 같지만 황당하지만도 않은것은 역시 죽음을 기억하는 자는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뭐 그런 주제의식을 희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아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3 23:08   좋아요 0 | URL
오츠이치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만만한 작가는 절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예요. 반갑습니다. 방긋.
제가 여긴 거의 초면이어서.. ㅎㅎ

samadhi(眞我) 2017-03-0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혜영 소설 검색하다 들어왔더니 곰발님 글이 딱! 아, 읽지 말아야겠다. 합니다. ㅋㅋㅋㅋ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서랍 속 잡동사니

축구는 한심한 스포츠다, 농구도 한심한 스포츠다, 골프도 한심한 스포츠다, 체조도 한심한 스포츠다, 피겨스케이팅도 한심한 스포츠다. 오직 야구만이 위대한 스포츠다! 그렇다, 야구는 위대한 스포츠다. 나는 줄곧 보스턴 레드삭스 팀을 응원했는데 내가 레드삭스 팀을 응원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빨간양말이라는 앙증맞은 팀 토템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에는 보스톤레드삭스 대신 템파베이를 응원했다. 나는 템파베이를 늘 < 서랍 > 이라고 부르고는 했다. 왜냐하면 서랍 속에는 온갖 싸구려 잡동사니가 다 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를 서랍 속에 넣어두지는 않지 않은가 ? 서랍은 잠시 넣어두는 곳이지 보관하는 곳이 아니다. 서랍 속에서 잡동사니와 뒹굴다가 다이아몬드가 된 놈은 고급 쥬얼리 케이스를 요구하고는 했다. 고급 장식의 쥬얼리 케이스를 살 수 없는 템파베이는 몸값이 오른 선수를 시장에 팔아서 그 돈으로 무명이지만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영입하거나 구단 운영비로 쓰고는 했다. 한 마디로 명문 구단은 아니다. 템파베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이다.

 

2. 0.1%의 한계.

템파베이는 예상대로 <존나> 못했다.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투수들은 템파베이와 상대하면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이길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8월이 끝날 때까지 템파베이의 팀 성적은 초라했다. 그해템파베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0.1%였고 보스턴은 87%’였다.하지만 템파베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템파베이와보스톤의 승패는 똑같았다.리그 1위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였다. 전체 2위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두 팀은 마지막 남은 경기에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템파베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약자에 대한 본능적 지지가 발동한 것이다. 당시 보스톤은 꼴찌였던 볼티모어와 경기를 했고, 템파베이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와 마지막 경기를치뤘다. 이미 템파베이는양키스와의 마지막 3연전에서 기적의 2연승을 한 터였다. 당시에 메이저리그 최강 팀이자 리그 1위인 양키스는 3연패를 당한 경험은 있어도 같은 팀에게 3연패를 당한 기록은 없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8회말까지)보스톤은 32로 이기고 있었고 템파베이는 70으로 지고 있었다.템파베이 0.1%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

 

 

3. 우우 하지 맙시다. 와와합시다 !

- 라고 판단할 때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7 0’으로 지고 있던 템파베이는8회에 몸값이 가장 비싼 친구였던 상대 팀 투수에게서 무려 6점을 얻었고 9회엔 1점을 추가해서 동점을 만들었다. 아나운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리고 연장 12회에서는 굿바이 홈런을 터트려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아나운서는 또 다시 기적이라고 울부짖었다. 그 시각 보스톤은 9회에 2점을 헌납하고 역전패한다. 최종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친구는 템파베이였다.

나는 이 경기를 생방송으로 보면서 펑펑 울었다. 정말 펑펑 울었다. , 시부럴..... 야구는 정말 위대한 스포츠야. 템파베이의 기적은 싸구려 스포츠 서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동이 있었다. 그것은 원숭이도 찍을 수 있도록 만든 십만 원 똑딱이 자동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서 대한민국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먹은 꼴과 같았다.

 

4. 망토와 바바리

메이저리그에 템파베이가 있다면 코리안리그에는 삼미슈퍼스타즈가 있었다. 박민규의 놀라운 데뷔작 <삼미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 > 은 우승할 확률 0.1%를 가진 대책 없는 삼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타 구단의 토템이 곰,,사자,호랑이, 거인등 용맹스러운 전사 이미지라면, 삼미의 토템은 망토 입은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슈퍼맨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냥 사람이 망토 입은 모습이다. 망토 입은 사람이라... 망토 입은 사람이라....뚫어지게 쳐다보니 망토는 마치 바바리 외투처럼 보였다. 어라?!착시현상인가 ? 방망이는 우람한 남근 같다. 맙소사, 삼미의 토템은 정신이 오락가락 삼천포로 빠지는 골목길 바바리맨이 아닌가 !한나라당 윤리 심의 위원들이 대노할 장면이었지만 그들은 무식해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5. 단골 고객님에게 감사용 선물을 드립니다.

더군다나 슈퍼스타즈에 슈퍼스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프로야구 팀이기보다는 취미로 즐기는사회인 야구 팀에 가까웠다. 선수 이름도 슈퍼스타에 어울리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다. 최강타, 전태풍, 백두산 같은 멋진 이름 대신 금광옥과장명부 그리고 감사용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금광옥은 새로운 사과 품종 이름 같고, 장명부는인기 만화 데쓰노트를 한국식 이름으로 지으면 어울릴 만한 이름 같았다. 그리고감사용은 감사용 다음에 선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법한 촌스러운 이름이었다. 얼굴도 까무잡잡해서 십 원에 열두 개 주는 아주공갈염소똥을 닮았다. 그런데도 슈퍼스타들이란다. 슈퍼맨 망토 입고 야구를 하는 정신 없는 구단답게 꼴찌는 삼미의 몫이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좋지 않은 기록은 모두 삼미가 기록했다. 한 시즌 최다 연패, 한 시즌 최소 승률, 한 경기 최대 점수차 역전패, 한 경기 최다 병살타, 한 경기 최다 홈런 허용, 한 경기 최다 사사구 허용, 특정 구단 상대 최다 연패, 최소 몸값 등등.

 

 

6. 소설도 만화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

승리한 경기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적지만 패배한 경기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메이저리그 특급 투수 크리스매튜스의 말이다. 다음 해 삼미는 기똥차게 변신을 한다. 최종 성적은 1위 자리를 아슬아슬하게 놓친 2였다. 박민규는 이 소설에서 실패의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내가 지금까지 읽은 한국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 한 편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없이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를 뽑는다. 소설도 만화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박민규에게 찬사를 !

 

 

7. 각하가 야구를 싫어하는 결정적 이유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란 본질적으로 실패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3할 타자란 열 번 싸워서 7번 실패하고 3번 성공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엄밀히 말하면 3할 타자는 실패한 타자. 그런데 야구는 3할 타자를훌륭한 타자라고 판단한다. 이렇듯 야구는 백전백승의 세계가 아니고 승자 독식의 세계도 아니다. 3 7패의 세계이다. 현대건설이 프로야구 팀을 만들지 않은 이유는 이명박의 성공 철학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야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스포츠다. 야구는이명박 씨가 쓰레기통에 버린 그 실패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본다. 각하가“ 7패나 했어 ?“ 라고 조롱할 때,삼미슈퍼스타즈 팬클럽은“ 3승이나 했어! “ 라며 당신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래서 나는 야구가 좋다. 각하와 상득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실패가 주는 짜릿한 감동을 알지 못한다.

 

8. 허공을 향해서

타자는 허공을 향해 방망이를 휘두르고 투수도 허공을 향해 공을 던진다. 타자는 외로운 존재다. 동료는 아무도 없다. 그는 동료들을 등진 채 홀로 그라운드에 선다. 앞에 보이는 것은 허공뿐이다. 그는 혼자서 9명의 상대팀 선수와 경기를 한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동료를 등진 채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향해 공을 던진다. 그들은 허각의 형 허공과 싸우는 것이다. 그것은 헛것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하지만 나는 이 외로운 싸움에서 멜로의 서사를 읽는다. 야구는 남성 액션 영화이기보다는 여성 로맨틱 멜로 영화에 가깝다. 엄청나게 빠른 직구를 자랑하는 투수의 공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공은 딱딱한 직선이 아닌 부드러운 곡선으로 포수의 글러브에 들어온다.

 

 

9. heart라고 쓰고 히트라고 읽는다.

그들은 <싸우> 는 것이 아니라 <싸랑> 을 하는 것이다. 로맨틱 멜로의 주인공들이 티격태격 싸우다가 정이 드는 장르라면 야구는 티격-타격싸우다가 눈이 맞는 장르다. 타자는 y좌표이고 투수는 x좌표이다. 곰곰생각하는발 박사의 음흉스러운 말투를 흉내 내자면 방망이는 페니스이고, 공은 젖가슴이다. 방망이 군은 공 양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자주 다니는 골목길에서 기다렸으나 공 양은 다른 곳에서 그를 기다린다. 멜로는 그것을 엇갈림이라고 부르고 야구에서는 헛 스윙이라고 부른다. 이 어긋남의 서사는 자주 반복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그들은 우연히 마주친다. 그곳은 시청 앞 지하철 역이기도 하고, 두오모 성당이기도 하고, 쇼생크 탈출에서의 그 해안가이기도 하다. 멜로 드라마는 그것을그들의 운명적 만남이라고 부른다. 야구에서는 이 운명적 만남을히트/hit’라고 부른다. 내가 보기엔 하트/heart’처럼 보인다.

http://myperu.blog.me/2015122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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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4-02-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입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실컷 웃으라고.
한동안 지마켓에서 3900원에 팔기도 했구요^^
그 책을 읽은 선배가 너무 웃겨서 눈물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뒤부터 그 선배가 책을 자주 사주지만.
남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마당극하는 대전 우금치라는 민족극패가 공연한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에서 남근목 3개를 목에 건 교주의 명대사가 생각나네요. "남근아미타불 관능보살"

9번째 비유 정말 멋져요!! 가슴에 폭 박히는 말이네요. 안타가 사랑이라...
근우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문학은 기아땅.... (이제 근우는 한밭으로 가버렸지만)
문학구장에서 종범신이 연속 홈런(끝내기)을 쳤을 때 우리끼리 "이렇게 재미있는 걸 안보는 사람은 무슨 맛으로 살지?"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