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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문학비평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다. 아무리 재미있게 써도 나와 관점이 다르면 재미'는 시시한 것'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니깐. 사유가 곰삭은 진국이라면 모를까, 어설프게 핏기만 뺀 국물은 맛이 밋밋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원본보다 훌륭한 사본을 작성하는 것은 원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래저래 비평-사본'은 찬밥 신세일 뿐이다. 나는 본질적으로 문학비평'이 원본의 사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본'도, 그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평론가들은 늘 거들먹거리며 원본에 대하여 논하지만 사실은 부러운 거다. 대학 사채업자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덥썩 물거나, 출판사에서 던져주는 떡을 냉큼 삼키면서 그들은 먹물들의 세계사를 쓴다. 문학은 나의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문학의 나의 돈줄이라는 불편한 속내를 숨긴 것에 불과하다.
김애란, 두 번째 이야기
▶ 도도한 생활
김애란의 소설집 < 침이고인다 > 를 읽고 있으면, 나는 220 볼뜨‘ 백열전구의 필라멘트‘가 된다. 김애란이 단편 < 도도한 생활 > 에서
엄마는 탈수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탈탈탈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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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나,
내가 집을 떠나던 날, 아빠는 오토바이 ‘쇼바’를 잔뜩 올린 채 도로 위를 달리며 울고 있었다. 아빠는 오토바이 속도가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 앞바퀴를 들며 “ 얘들아 너흰 절대 보증 서지 마 ! ” 라고 오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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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표현했을 때, 이 여자의 대책 없는 명랑함‘에 나의 필라멘트’는 깜빡깜빡 까르르르르 흔들리며 정신줄을 놓았다. 꺼, 졌다 켜졌다 ! 깜빡깜빡... 안녕하시렵니까 ? 반갑습니다. 읽다 보면 이 명랑함은 비극에 대처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현명한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김애란의 < 맹랑하지 않은 명랑함 > 을 좋아한다.
참 좋다 !
이 명랑함은 슬픔을 감춘 명랑'이다. 서울 반지하 셋방에서 언니와 살아가는 나‘는 ( 한때 그럴듯하게 살았던 상징적 유물인 ) 처치 곤란한 피아노’와 함께 동거한다. 가장 낮은 음계‘인 도’만 울려도 득달같이 달려오는 지랄같은 주인 눈치에 피아노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 피아노, 너 밤에 짖지마 ! 쓸데없이 울지마 ! 낑낑거리지 말란 말이야 ! 소리내서 울지 말고, 웃지도 마 ! 음냐...... " 아 설움이 이런 거구나, 하는 순간 장대비’가 쏟아지고 검은 물은 거침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아빠처럼 쇼바‘를 잔뜩 올린 채 울까? 말까?
갑자기 깜빡깜빡 거리며 신나게 까무러치던 나의 필라멘트‘가 쨍 하며 파르르르 떤다. 열이 난다. 그때 알았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리라. 필라멘트’는 울 때 쨍 하며, 밝은 곳에서만 운다는 사실. 인간과는 정반대'다.
▶ 침이 고인다.
원룸은 < 원 맨 룸 > 에서 맨‘이 빠진 것이다. 한때 급진 페미니스트’은 남성화된 언어의 전범으로 원룸‘을 지목하며 원-맨-룸’을 원 피플 룸‘으로 개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인 적이 있으며, < 한글을 사랑하는 모임 > 의 회원들은 원룸 대신에 단칸방’이라는 고유어‘를 사용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한 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어찌되었든, 원룸은 혼자 살기에 적합한 방 구조‘다. 그런데 이곳에 후배가 찾아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슬픈 서사/트라우마’ 로 원 피플 룸 주인을 유혹한다. 엄마가 껌 한 통을 손에 쥐어주고는 자신을 버렸다고, 껌을 한 통 다 씹을 동안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입 안에서는 침이 고였다고 ! 결과는 ? 원룸에 둘이 함께 산다.
이쯤에서 우리는 1룸에 함께 사는 2여자의 아름다운 동거'를 바라보게 될 거란 기대'를 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 좋아할 만한 떡밥이군, 이라고 생각할 때 어찌 돌아가는 꼴이 좀 수상하다. 기획 상품이라면 모를까, 애인이라면 모를까, 1룸에 1 + 1 ‘ 은 불편하다고 김애란은 솔직하게 말한다.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현관문을 열 때 후배가 없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뭐, 이쯤 되면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니깐. 타인의 트라우마’는 나의 상흔이 되기엔 방이, 너무 좁다 !
후배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이후로 사라진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깊이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는 말이에요. ... 떠나고 떠나가며 가슴이 뻐근하게 메었던, 참혹한 시간들을 떠올려볼 때면 말이에요... “ 지금도 침이 고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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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특선
지상의 방 한 칸‘이 이토록 간절할 때’는 크리스마스 때‘가 아닌가 싶다. < 성탄특선 > 의 연인은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서로 엉키려고 하는 순간, 방이 없다 ! 엄기영 앵커’가 “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 라는 통속적 멘트를 날리기도 전‘에, 이미 모텔 간판’은 불이 꺼진 지 오래이다. 대한민국 연인들은 이미 벌거벗은 채 전투 중이다. 이때‘가 바로 < 정기 대 방출 > 이 아니라 < 정액 대 방출 > 이 시작되는 기간'이다. 정액들의 엑소더스다.
모두, 하고 있습니까? 모두 탈출 하셨습니까 ? 개불 같은 전립선에서의 지저분한 삶, 이제 박차고 나가세요. 불알은 당신의 보금자리가 아니라 딱딱한 알'일 뿐입니다. 아브락삭스의 새가 되십시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진하십시요. 저기 아늑한 궁이 보이지 않습니까 ? 자, 달립시다. 탈출합니다 ! 으리으리한 궁궐을 향해서 짝꿍의 등짝을 세게 한 대 때려도 좋습니다. 오늘은 예수가 우리에게 준 자유의 기회입니다 ! 영광의 탈출입니다, 여러분 !!!!
소설 속 연인‘은 모두 다 하고 있을 때 하지 못한다. 열 군데 넘게 돌아다닌 모텔 방은 이미 벌거벗은 어처구니들로 가득 찼고, 호텔은 지나치게 비싸며 여인숙은 정액을 고급스럽게 대 방출하기에는 너무 왁자지껄한다.
한국의 좌파는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그들이 편안하게 누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건설교통부에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 제대로 하라고 항의 전문'을 보낼 것이 분명하다. 아, 신발 ! 아, 시 ㄴ 발 ! 나의 필라멘트가 깜빡깜빡 거리다가 쨍 하고 떴다 ! 여전히 김애란은 < 자기만의 방 > 을 이야기한다.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방음 잘 되어서, 신나게 응, 응, 응, 아흥'을 당당하게 샤우팅으로 내지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방'이 필요하다고.
▶ 칼자국
김애란이 그동안 자기만의 방‘에 집착했다면 < 칼자국 > 에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엄마의 방을 바라본다. 엄마의 방은 부엌이다. 말랑말랑한 밀가루를 칼로 썰어서 < 칼-국수 > 를 만드는 엄마의 맛’은 한 마디‘로 칼칼하다. 이 위험한 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엄마의 방/부엌‘에서 주인공 나’는 숭고를 경험한다. 배가 고픈 나‘는 허겁지겁 사과를 깎아서 먹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 어둑한 부엌 안, 사과 깎는 소리가 고요하게 퍼져 나갔다. 사과는 내 손에서 둥글게 자전하며 자신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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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어미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다. 어머니는 좋은 말/言 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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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쇼바‘를 이빠이 올리며 간지나게 울었다면, 어머니’는 탈수기 아래에서 탈탈탈탈 우는 존재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운다. 물기 하나 없는 탈수기 속 옷처럼 ! 왜 엄마는 그 흔한 방이 없는 것일까 ? 기껏해야 탈수기 옆이거나, 부엌이란 말인가 ? 하지만 이내, 다시, 생각한다. 어머니는 좋은 여자다. 어머니는 좋은 칼이며 말'이다, 라고.
▶ 네모난 자리들
이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나의 필라멘트‘가 주책없이 쨍 하며 운다. 부끄럽게, 남세스럽게, 이게 뭔가. 다 큰 사내가. 12센티미터 페니스’를 가진 수컷이 이게 뭔가 말이다. 빌어먹을, 필라멘트 새끼.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걸을 때, 나는 길라잡이‘를 자청했었다. “ 제가 길을 잘 알죠. 지름길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나는 A에서 B’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남들은 잘 모르는 골목길‘로 그녀를 안내했다. “ 평소라면 30분 걸리는 거리인데, 이 길로 가면 20분이면 가죠.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요. ” 내가... 안내했던 그 길. 그녀는 모르리라, 사실 그 길은 가장 빠른 동선이 아니라 가장 늦은 동선이라는 사실 말이다.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나는 20분에 걸쳐 길을 안내한 것이다. 가끔 그 길‘을 걷고는 한다. 걸을 때마다 설레이는 골목이다. 궁금하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까 ?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으니깐. 아, 이런... 나의 필라멘트’가 우는 바람에 잠시 딴 생각을 했다.
< 네모난 자리들 > 은 골목골목을 누비는 남자와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여자는 그 남자의 방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먼 곳에서 불 밝힌 창문만 보았을 뿐. 어느 날 남자’가 사라진다. 여자는 용기를 내서 그 남자를 찾아간다. 문은 잠겨 있다. 그녀는 문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찾아서 방 안‘을 본다. 그녀가 본 것’은 텅 빈 방이 아니라 쓸쓸한 남자의 모습이리라. 아니다, 그녀가 본 것‘은 쓸쓸한 자신의 방’이다. 타자의 방에서 자기의 방‘을 본다.
▶ 플라이데이터리코더
단편집을 읽을 때, 나는 하나의 단편‘은 읽지 않은 채 책’을 덮는 습관이 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다가 이 행위에 나름의 상징‘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책 읽기는 없다고, 독서는 언제나 미완의 행위라고 말이다. 오늘도 나는 한 편의 단편‘을 읽지 않고 책을 덮는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가 끝내지 않은 책이다. 미완의 책이다.
김애란'은 " 집 " 이 아닌 " 방 "을 이야기한다. 집과 방은 뿌리와 리좀의 관계와 같다.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순환, 계통, 소통'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은 모두 방이다. 집에 딸린 방이 아니라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방 하나다. 이 방은 자폐적이다. 그래서 생래적으로 고독한 영역'이다. 그것은 마치 혼자 생활하는 표범의 영역'이기도 하다. 고독한 곁'이다. 그리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 자본주의적 ) 현재의 삶'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자기만의 방'이 없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루 머물 모텔 방'마저 없다. 기껏해야 그들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은 지하'이거나 하늘 아래' 그리고 부엌 혹은 독서실 바닥이다. 땅 냄새에 멀미를 하는 지상은 이미 가진 자의 공간'이다. 현대의 빈민은 고독하려고 해도 공간이 없어서 고독할 수 없는 존재이다. 김애란은 그 사실을 직시한다. 깔깔거리면서, 때론 심각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