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 고르는 방법.
개인적으로 책를 고를 때 우선순위'를 매긴다. 이 기준에 따라 책을 고른다. 하지만 모든 분야의 책이 이 기준에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서적을 고를 때'와 인문학 서적을 고를 때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제목 중에 로렌스 블록의 < 800만 가지 죽는 방법 > 이란 소설이 있다. 각자의 맞는 방식이 따로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소개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1. 저자
영화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저자'는 영화 감독이다.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책의 주인은 저자'다. 좋은 저자'가 좋은 책'을 쓴다. 누군가는 이 우선순위에 쉰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걸 누가 모르나요 ?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기준은 좀 다르다.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감독이 있다. 히치콕은 공포영화의 제왕이다. 그는 이 분야에 닳고 닳아서 뭘 좀 안다.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연예학개론 같은 말랑말랑한 로맨스멜로무비'를 만든다면 잘 할 수 있을까 ?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저자'가 있기 마련이다. 에너지 자원'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다면 우선 제레미 리프킨'을 권하고 싶다. 그는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엔트로비, 바이오테크 시대 등을 통해서 줄곧 에너지 자원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던 사람이다.
2. 출판사
솔직하게 말해서 책을 고를 때 사전 지식을 미리 얻기란 힘들다. 말이 좋아서 좋은 저자를 찾고, 훌륭한 번역가를 선택하라고 말하지만, 시부랄 ! 그걸 어떻게 아나 ?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팔 할은 그냥 백지 상태'에서 책을 고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 리프킨인지, 냅킨인지 알 게 뭔가. 이럴 때 비장의 카드를 소개한다. 출판사'다 ! 광범위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는 갑돌이 출판사'보다는, 특정 분야 전문 출판사의 책'이 더 좋다. 예를 들어 당신은 지금 환경 분야의 책을 골라야 한다. 일단 당신은 까막눈이다.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두 권의 책이 마음에 든다고 치자. 한 권은 < 생각의 나무 > 에서 나온 책이고, 다른 한 권은 < 에코리브르 > 의 책이다. 당신은 당연히 < 에코리브르 > 의 책을 골라야 한다. 전자가 이마트의 유기농 채소 코너라면, 후자는 좋은 먹거리 소비자 생협'과 같다. 명목상 둘 다 유기농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마트에서 파는 유기농 채소'를 100% 믿는 사람은 병신에 가깝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에코리브르'는 환경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이다. 당신은 환경에 관련된 책 정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대신 에코리브르 직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환경에 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다. 이들이 모여서 환경 관련 책을 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좁히면 당신은 비외른 롬보르의 < 회의적 환경주의자 > 라는 책을 고르게 될 것이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이어서 서점의 알짜배기 매대'에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팔리지 않을 것 같은 책을 꾸준히 출판하는 출판사의 책이 좋은 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백 프로다 ! 출판사는 영화 전체를 기획하는 프로듀서'와 같다. 영화의 칠 할은 감독의 몫이지만 나머지 삼 할은 프로듀서의 몫이다. 좋은 프로듀서 아래 좋은 감독이 나오고, 좋은 감독 아래 좋은 영화가 나온다. ( 영화에 대한 책은 한나래'의 책이 좋다. )
3. 번역가
요즘 < 레미제라블 > 이 인기다. 영화의 감동을 책으로 보려는 움직임이 유행처럼 번진다. " 아, 읽어야 겠어 ! " 그리고는 온라인 서점을 통해 < 레미제라블 > 을 클릭하다가는 이내 깜짝 놀라게 된다. 어마어마한 장편인 것이다. 이솝 우화인 줄 알았더니, 태백산맥인 것이다. 소설을 읽기 위해서 6,7만 원'을 지불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지 않은가. 고전이기 때문에 이 책은 다양한 출판사'가 책을 내놓은 상태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눈동자가 500원짜리 동전만큼 커질 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출판사 " 더클래식 " 에서 나온 < 레미제라블 > 이 한글판 5권 + 영문판 5권 해서 종합 10권에 39,720원에 팔리는 것이 아닌가 ! 냅다 산다. 그리고는 곧 어마어마한 후회'가 쓰나미처럼 몰려올 것이다.
발 번역의 전설적인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 출판사 책의 번역은 " 베스트트랜스 " 로 되어 있다. 번역 집단'이 서로 각자 페이지를 맡아서 번역을 한 것이다. 이런 번역이 좋을 리 없다. 경상도 출신의 번역가는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하고, 전라도 출신의 번역가는 전라도 사투리로 번역을 하는 꼴이다. 이것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장발장이 198페이지에서는 " 음마, 내는 장발장이 아니랑께 ! " 라고 말하다가 359페이지에서는 " 배가 고파 빵 좀 훔쳤습니더 ! " 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 고전의 생명은 번역에 있다. 번역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문학 작품을 예로 들면 < 그리스인 조르바 > 는 그리스어를 전공한 사람이 번역을 해야 한다. 조르바'를 중국어 전공자'가 번역을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좋은 번역가'가 좋은 책'을 만들고,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좋은 대본을 만든다.
4. 참고문헌
위의 우선순의 1,2,3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두 권의 자연과학서 책'이 남았다고 치자. 두 권 모두 사면 좋지만 10대는 44만원 세대요, 20대는 88만원 세대이니 이들에게는 무리한 지출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나는 책 맨 뒤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확인한다. 참고문헌 페이지'가 많은 쪽이 더 좋은 책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문헌 목록의 페이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참고했다는 것이 된다. 위의 2번 우선 순위에서 거론된 < 회의적 환경주의자 > 라는 책이 훌륭해서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치자. 이쪽 분야의 책을 더 읽고 싶다면 ? 이 책의 참고문헌을 보면 된다. 참고문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을 확인한 후 그 사람 책을 찾아서 읽으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훌륭한 작가'가 자주 인용한 작가'라면 그 사람은 더 훌륭한 작가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독서는 같은 분야의 책을 연속으로 읽을 때 지식이 체계적으로 쌓인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같은 분야의 책을 연속적으로 스무 권 정도 읽으면 그 분야의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독서의 연속성은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매트 리들리의 < 이타적 유전자 > 를 달랑 하나 읽는 것보다 연속으로 리차드 도킨스의 < 이기적 유전자 > 을 같이 읽으면 체계적으로 정리 할 수 있다. < 이타적 유전자 >의 참고문헌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리차드 도킨스'다. 책을 읽을 때, 참고문헌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이 확장된다. 참고 문헌은 영화가 끝나면 오르는 엔딩 크레디트'이다. 영화 엔딩 크레디트'를 끝까지 보는 것이 영화광의 마지막 의무가 아닐까 ?
5. 차례
차례를 읽으면 책의 윤곽이 대충 잡힌다. 서점 가서 쓸데없이 책 내용을 살핀다고 책 중간을 펼치고서 읽지 마라. 그것은 시간 낭비에 가깝다. 도서관이라면 모를까, 혹은 서점에서 책 한 권 읽고 가겠다는 심산이면 모를까 ? 후루룩 살펴보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독서 행위가 무슨 라면인가. 후루룩 쩝쩝 하게 말이다. 내용 파악은 차례의 소제목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차례'를 살피는 것은 비단 책을 선정하기 위한 것에 그치면 안 된다. 독서 주에도 수시로 차례의 소제목과 순서를 외우는 게 독서에 도움이 된다. 암기할 수 없다면 종이에 써서 책갈피로 활용하면서 틈틈이 자신이 읽는 대목이 어디쯤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차례만 암기해도 책 전체를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이런 습관을 들이면 내용 전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음은 리프킨의 < 육식의 종말 > 에 나오는 차례를 옮겨본다. ( 나, 오늘 여러분들에게 서비스 제대로 하는 거다. )
1부 소와 서양 문명
1. 도살업자를 위한 제물... 15
2. 소로 그려졌던 신과 여인들... 24
3. 신석기 시대의 카우보이... 34
4. 신이 내려준 선물과 자본... 40
5. 소를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도... 4
6. 소를 '남성'의 상징으로 여겼던 스페인... 51
7. 소 사육장이 된 아메리카... 56
8. 영국인과 육식... 65
9. 감자를 먹게 하라... 70
10. 살찐 소와 비대한 영국인... 75
2부 미국 서부 정복기
11. 철도 연결과 소 떼의 이동... 83
12. 육우로 대체된 버펄로... 90
13. 카우보이와 인디언... 101
14. 목초가 곧 금이다... 107
15. '옥수수로 사육하는' 육우 정책... 115
16. 철책을 두른 목장과 토지 사기... 123
3부 쇠고기의 산업화
17. 쇠고기 기업 연합... 137
18. 쇠고기 해체 공정... 142
19. 현대의 쇠고기... 150
20. 자동화된 정육공장... 158
21. 전세계적인 '육우 기지화'... 176
4부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
22. 소 떼의 천국... 185
23. 맬더스와 육식... 190
24. 지방의 사회학... 200
25. 육식의 대가... 206
26. 인간을 집어삼키는 소... 213
5부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
27. 생태적 식민지 정책... 221
28. 열대지방에 자리잡은 목초지... 230
29. 발굽 달린 메뚜기 떼... 240
30. 사막으로 변해 가는 아프리카... 256
31. 물을 빼앗긴 사람들... 262
32. 더워져만 가는 지구... 268
6부 육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의식구조
33. 쇠고기 심리학... 279
34. 육류에서 비롯된 남녀 차별주의... 282
35. 쇠고기가 낳은 계급주의 - 국수주의... 294
36. 소 떼와 개척정신... 300
37. 햄버거와 고속도로 문화... 311
38. 현대 육식 문화 비평... 328
39. 쇠고기, 그 차가운 악... 340
40. 육식의 종말... 345
당신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 하지만 목차를 외우면 이 책이 어떤 주장을 할 것인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소제목'은 앞으로 다룰 분량의 주제어'이기 때문에 그렇다. 한 줄 요약인 셈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목록을 외워라. 이 목록을 살피다 보면 의문점이 생기게 된다. < 5부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소 떼'에서 챕터 32 더워져만 가는 지구 > 는 무슨 뜻일까 ? 소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란 소리인가 ? 이 의문점을 가지고 읽다가 책을 읽다가 5부 코너에 도착하게 되면 이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다. 그러면 머리에 쏙 박힌다.
목차는 일종의 지하철 노선도'와 같다. 이 노선도를 모르면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조마조마한 심정이 된다. 무엇을 할 수도 없다. 방심하다가는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은가 ? 하지만 이 노선도'를 외우면 느긋해진다. 책을 볼 수도 있고 창 밖의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한 정거장 전에는 미리 문 앞에 나와 대기할 수도 있다. 독서 틈틈이 목록을 살핀다는 것은 이처럼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는 것과 같다.
6. 독서의 甲은 문학인가 ?
사람들은 책 하면 우선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을 떠올린다. 하지만 독서의 범위는 넓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개인적 취향을 전제로 하자면 < 책을 읽는 행위의 효율성 > 만을 놓고 보면 문학'이 가장 재미없다. 반면 가장 재미있는 분야가 자연과학서'이다. 수학의 역사를 다룬 < 페르마의 정의 > 는 얼마나 재미있었나. 수학 평균 30점대의 내가 이 책을 미친듯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수학/과학을 끔찍이 싫어했던 나로서는 의외의 결과'였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 중 가장 재미있었던 분야는 문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서'였다. 읽다 보면 스티븐 킹 소설은 저리 가라, 이다. 정말 흥미진진하다. 르포르타쥬 같은 보고 기사 또한 끝내준다. 에릭 슐로츠의 < 패스트푸드의 제국' > 이나 설탕의 위험을 경고하는 더프티의 < 슈거 블루스 > 는 많은 정보'를 선사한다.
여기에 인문학서는 교양을 살찌우는데 가장 효과가 좋다. 철학서는 어떤가 ? 읽기가 괴로워서 그렇지, 철학서 한 권은 어마어마한 지식의 확장을 얻게 된다. 시간 투자 대비 가장 효율이 좋은 책이 바로 철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프로이트와 니체와 맑스는 읽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학이 자연과학서'보다 후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독서의 다양한 접근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비유를 든 것이다. 독서 습관 중 구 할이 문학에 치중된 사람은 좆병신이다. 같은 이유로 자연과학서만 읽고 문학을 외면하는 것도 좆병신이다. 누누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가장 좋은 문학 감상문은 문학만 읽은 사람이 쓴 독후감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이의 눈으로 바라본 감상문이다.
문학평론가의 평론을 읽으면 토가 나오는 이유는 문학이 세상의 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평론도 다르지 않다. 정성일의 평론이 그지 같은 이유는 영화가 세상의 왕'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문화의 시다바리일 뿐이다. 오타쿠는 정밀하지만 깊이가 없다. 정밀함과 깊이를 혼돈하면 안 된다. 그가 만든 < 카페 느와르 > 는 " 따분하 " 다. 문화'라는 친구가 영화라는 친구에게 하와이 가라고 할 때, 영화가 문화에게 " 니가 가라, 하와이 ! " 라고 반기를 들면 안 된다. 하와이는 정성일이 가야 한다. 영화가 문화보다 상위 개념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각 분야는 서로 동등한 가치를 부여받는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하다면 스티븐 킹도 위대하다. 여기에 우열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