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어느 바나나맨의 비극









박민규 소설 << 지구영웅전설 >> 에는 수많은 DC 영웅이 등장한다. 아메리카 히어로를 대표하는 슈퍼맨은 물론이고 배트맨, 아쿠아맨, 스파이더맨도 맹활약을 펼친다.  이 무리에는 한국인(1인칭 소설 주인공)도 끼어 있는데 바로 " 바나나맨 " 이다.  루저 소년이 자살을 결심하고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를 도와준 이가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장수원을 닮은 듯한 슈퍼맨이 어눌한 한국어로 높낮이 없이 띄엄띄엄 소년의 안부를 묻는다. " 괜찮아요 ?? 많이 놀랐죠 ?? " 그것이 인연이 되어 최초의 코리아 히어로,  아니 최초의 아시아 히어로가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 바나나맨 " 인가 ? 




" 너무 작아, 마치 한국의 땅덩이처럼 작구나 "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곤란해 하는 슈퍼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컨셉을 친근한 영웅 쪽으로 맞춰 보는 건 어떨까 ? " 로빈의 힘찬 목소리가 부메랑처럼 날아 돌아왔다. " 이를테면 바나나맨(Banana-man) 같은 것 말이지 ! " " 겉은 노랗다. 그러나 속은 희다. 그거야말로 우리의 컨셉에 딱 맞는 이름이군. 좋아, 다들 어때 ? " 모두가 동의를 뜻하는 박수를 쳤기 때문에, 그 순간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구영웅전설, 박민규

 


하지만 속이 희다고 해서 주인공 < 나 > 가 완전한 백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나나맨의 주요 임무는 아메리카 히어로의 시다바리'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원더우먼의 생리대 심부름 따위'였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얀 바나나보다는 차라리 겉은 하얗고 속은 노란 웨딩 케잌이 되고 싶은 바나나맨은 자신도 영웅이 될 수 없냐고 반문한다. 슈퍼맨이 충고한다. " 넌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야. " 그러자 바나나맨이 소리친다. " 그럼 미국인이 될 테야 ! " 슈퍼맨은 한심하다는 듯 말한다. " 소용없어. 그런다 해도 넌 백인이 아니니까 ! "  박민규의 의도는 명백하다.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은유이다. 박민규도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한다.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만 명예 백인으로 간주해주겠다고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명예 백인이라는 단어에서 바나나맨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죠.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껍질은 황인종이지만 속엣 것은 백인인.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나나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백인이 되고 싶은 아시아인의 식민지적 근성은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으나 일본처럼 노골적으로 " 명예백인 " 을 갈망하는 나라는 없다. 유튜브를 보면 일본은 아시아인이 아니라 백인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유튜버가 수두룩 빽빽이다. 


일본인을 조롱할 때 " 명예백인 " 이라거나 " 바나나 " 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내가 위스키와 샌드위치 그리고 재즈에 열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작가의 " 바나나적 근성 " 이다. 하루키 문학 작품 속에서 그놈의 샌드위치 얘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샌드위치뿐이랴. 위스키, 와인, 스파게티, 샐러드, 토마토 요리가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일본인의 밥상이라기보다는 구라파의 밥상을 보는 듯하다. 누군가는 하루키 문학을 " 탈아(脫亞 : 아시아를 벗어난)적 세계 " 라고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 입구(入歐  :서구화한)의 세계 " 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과 마주친다. 바나나적 근성(화이트 워싱)을 이해하면 왜 일본 만화 속 인물들이 모두 서양인의 두상과 신체 구조를 닮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이것이 일본 만화다 >> 에서 프레드릭 L쇼트는 " 일본 만화를 처음 접하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접시 모양의 눈, 오똑한 코, 그리고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을 보며 왜 이렇게 많은 백인이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지 궁금해한다. " 고 지적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가 다카하시 요시오는 저서 << 일본인종개량론 >> 에서 


인종 개량을 목적으로 서양인과 잡혼하여 인종 자체를 개량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서양인은 신장, 체중, 두뇌 어느 면에서든지 일본인보다 뛰어나다고 전제한 후,  열등 인종이 우등 인종과 잡혼하면 열등 인종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국가와 개인을 위해 능력 유전을 목적으로 잡혼을 장려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은 스스로 명예백인이라 자위하며 아시아인을 열등인종이라 여기는 것이다. 징징거리는 진중권을 볼 때마다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의 " 바나나적 욕망 " 이다. 그는 한국 대중의 정념을 싸잡아서 열등한, 너무나 열등한 서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심하다. 


대표적인 예가 << 디워 >> 논쟁이다. 영화에 대한 진중권의 과잉 반응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국뽕은 비단 한국 대중의 천박한 정념의 특징이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싸워 이긴다(결국 지구는 미국 대통령이 구한다)는 롤랜드 에머리히 영화에 비하면 << 디워 >> 의 국뽕은 귀여운 수준이 아닐까 ? << 디워 >> 에 대한 대중의 즐거움을 진중권은 왜 그토록 싫어했던 것일까. 언젠가 진중권은 << 나도 국적을 포기하고 싶다 >> 라는 도발적 제목의 신문 칼럼(2013,경향일보)을 쓴 적이 있다. 이 칼럼에서 그는 유학 도중 비자 연장을 하기 위해 


독일 관공서를 간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  한국 여권을 든 자는 제3세계 인종들로 이루어진 기다란 줄의 틈바구니에 끼어 몇 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지만 일본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쾌적한 장소에 설치된 한산한 창구 앞으로 갔다면서 일본은 서유럽 국가와 같은 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라며 부러워한다. 여기서 그가 부러워하는 것은 화이트 워싱 한 바나나맨에 대한 선망이다. 탈아입구론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그는 입만 열었다 하면 그놈의 "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와 " 파타파직스 " 을 남발이다. 


한국 문화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 호모코레아니쿠스 >> 도 제목부터 탈아입구에 다다른 바나나적 욕망이 진하게 풍긴다. 여기서 그는 한국인과 일본인을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들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정념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편이다. 가령 어떤 상점에서 물건을 산 후 결함이 있어 주인에게 항의를 한다고 해보자. 처음에는 고객의 불평을 들어주다가 곧 말싸움이 시작되고, 이 설전이 길어지면 어느 시점엔가 주인은 자제심을 잃고 " 나, 더러워서 장사 안 해 " 라고 할 것이다. 실제로 유학에서 막 돌아와 이 땅의 습속들이 낯설기만 하던 시절, 비슷한 경우를 여러 번 겪었다. 일본에서라면 어떨까 ? 모르긴 몰라도 주인이 스미마셍 을 연발하며 끝까지 항의를 들어줄 것이다

-호모코레아니크스,102쪽

 


진중권이 두 나라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내린 결론은 " (정념이 풍부한 한국인은)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 " 이다.  혼네(本音, 속내 혹은 본심)와 다테마에( 建前, 겉치레 혹은 가식)로 대표되는 일본의 가식이 한국의 정념보다 우월한 문화적 표상이라면 그가 화이트 워싱하고 싶은 서양인이야말로 한국인보다 더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출하는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구라파는 한국보다 더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 내가 보기에 진중권은 바나나맨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문화 현상들은 모두 다 역사적 후진성의 징표로 읽힌다. 


최근 JTBC의 신년토론회에서 맹활약을 펼친 진중권의 태도를 보면서 느닷없이 내 뇌리에 호출된 인물은 핵주먹 타이슨이었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다가, 결국에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던 그 유명한 희대의 경기가 떠올랐다. 맙소사, 성스러운 홀리의 귀를 물어뜯다니...... 안티조선운동에 앞장섰던 진중권이 느닷없이 레거시 미디어를 절대 신뢰한다고 말했을 때 그가 즐겨 사용하는 unheimlich(언캐니)을 체험했다. 대한민국 1등 신문인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박혁거세 같은 상징이 아니었던가. 이 얼마나 우스꽝스운 어느 호모코레아니쿠스의 파타파직스적 세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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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0-01-05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지 않아 곰곰발님의 말씀으로 짐작해 봅니다만, 아마도 우리나라에 대한 비판이 담긴 책이라 여겨집니다. 예전에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여겨졌던 부분을 저자의 바뀐 모습으로 인해 부정적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마치 90년대 김지하의 분신에 대한 비판이 「오적」을 비롯한 그의 작품 전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과 같은 현상처럼 느껴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5 17:39   좋아요 1 | URL
네, 바로 그겁니다. 진중권의 태도(현)로 다시 보니까 굉장히 탈아입구적 태도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더군요. 왜 그 사람 특유의 외래어 미학 용어의 남발만 봐도.. 스스로를 명예백인인 척하는...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는 얘기구요.. ㅎㅎ
 














                                  


방법적 HEY ! : 그때그때 달라요






                                                        만나봤어요 ?






끊임없이 의심한 끝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의심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데카르트









철학과 논리는 떼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다. 왜냐하면 철학에는 논리가 필요하고 논리적 사고를 거쳐야 철학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JTBC 신년 토론회는 " 토론 " 이 아니라 진중권이 울분을 " 토(로) " 하기 위해 마련한 깔아놓은 멍석이 되었다. 시작부터 상기된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는 그를 보면서 대환장 쑈를 예감했는데 아니나 달라, 막장으로 치달았다. 새해 벽두부터 반짝반짝 빛나는 스튜디오에서 오바이트'를 하니 보기 민망했다. 이 토론회에서 진중권을 감싼 심인은 원한 감정'이다. 니체에 의하면 원한 감정은 겁쟁이의 노예 도덕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상대를 향해 주먹질을 하고 싶지만 차마 용기가 안나니 한발 물러나서 나중에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퇴행한 결과이다. 그동안 말이 좋아 겸임교수( : Part Time Professor )이지 문자 그대로 파트 타임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선생이나 다름없는 비정규직 교수였던 진중권이 이곳저곳 떠돌다가 최성해 총장의 은혜로 박사 학위도 없는 신분으로 정규직 교수가 되어 입에 풀칠한 지 어언 7년.  이 안락을 깨트린 자가 조국 일가'였으니 원한 감정이 생겨났던 모양이다. 조국을 옹호하자니 은혜 입은 총장에게는 배덕이어서 차라리 절친을 배신하는 쪽으로 각을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진중권의 화는 조국 때문에 자신이 직장에서 쫓겨났다는 실업자의 원한 감정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국의 반대편인 검찰을 옹호하게 되고, 결국에는 작년 초 채널A 방송에 나와 김학의 사건을 언급하며  " 공수처가 있었다면 과연 이 사건이 덮였을지 생각해 볼 문제" 라며 " 지금이 '공수처'를 설치할 절호의 기회다. 야당이 틀어버리니 여당은 국민을 설득하고 기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던 말(2019년 3월, 채널A 외부자들)을 뒤집고,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분위기가 하도 무서워서 그동안 감히 질문도 못 꺼냈는데… 이제 통과됐으니 묻는다”며 “공수처, 전 세계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던데,  


왜 그것만이 검찰 개혁의 방법이라고들 했던 것이냐...... 꼭 그래야만 하는 한국인만의 DNA 특성 같은 게 있는 거냐”고 반문하는 사태에 이르고 만다. 아아. 양심을 팔면서까지 한입으로 두말 하기 있기/없기 ?  나도 되묻고 싶다. 꼭 그랬어야만 했냐 ?  무리한 논리를 전개하다 드디어 정신줄 놓게 된 것이다. 진중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무오류성을 주장한다. 전지적 시점에 가까운 " 내가 아니까요 ! " 와 " 만나봤어요 ? " 라는 단호한 선언은 그가 중세적 인간(전근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대중 앞에서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는 진리 탐구를 위한 첫 번째 규칙으로 "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진리인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 것 " 을 주문하면서 속단과 편견을 피하라고 강조했는데, 진중권은 근대 철학의 핵심인 < 의심 > 대신 맹목적 < 믿음 > 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중세의 전근대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다.  그는 토론회에서 주류 전문가의 권위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 기성 언론과 검찰을 절대 신뢰한다고 선언했는데 그렇다면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성과 권위를 믿는다고 했던) 왜 진중권은 그 옛날 안티 조선운동의 앞잡이가 되었나 ?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할아버지가 아니었던가 ?  이런 인간이 21세기 논객이랍시고 논리적 사고 운운하는 것은 지나가는 민들레가 웃을 일이다. 끝으로 그때그때 다른 입장에 대한 너님의 해명을 듣고 싶다. 해명할 수 없다면 주체적으로 너절하게 찌그러져라. 그리고 아름답게, 미학적으루다가 더러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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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1-0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국 사태부터 아는 것이 하나없는 인간이지만
따끈따끈한 곰발 님의 글을 첫빠로 읽게 되는 영광이 2020년에 오다니!!
저 아무래도 2020년 제대로 대박칠 것 같은 느낌!!^^;;;;;;;

라로 2020-01-03 12:49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이런 진지한 글에 이딴 댓글을 달아서요. 흑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3 13:10   좋아요 0 | URL
제 글은 곱창의 막장 같은 느낌이니 막, 그냥 쓰셔도 됩니다.
라로 님 올해에는 항상 필승하시기 바랍니다. 해든이 화이팅 ~

2020-01-03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3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다맨 2020-01-03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형편없이 망가졌지만, 1980년대에 쓰였던 조갑제의 글들을 저는 참 좋아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일하셨던 어떤 분은 ‘1989년 이전의 조갑제보다 더 훌륭한 기자를 본 적이 없다‘면서 그야말로 최고의 상찬을 했지요.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 몸이 끔찍하게 망가진 고문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들의 참상을 사실감 넘치는 르포로 담아낸 왕년 조갑제는 기자 정신의 살아있는 표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만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느 때부턴가 자기 분열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본인이 했던 말을 깡그리 잊고 만, 그야말로 맛이 간 사람으로 변하더군요.
저는 어제 토론을 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예전에 진중권이 인터넷상으로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이들을 조롱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곰곰발님 글을 읽고 나니 (실업자의 원한 감정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가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더더욱 자기 점검이나 자기 반성을 철저히 해야한다고 봅니다. 저는 진중권을 예전부터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가 그토록 냉소하고 모멸해마지 않았던 사람들과 동류가 되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니, 뭔가 웃프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3 17:11   좋아요 0 | URL
만약에 진이 토론 후 정신승리한다면 정신병원 가야죠. 논리적 사고가 제로가 되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의 전문성과 권위에 대해 자신은 절대 신뢰한다고 한 인간이 왜 그 옛날에는 안티조선운동의 선두에 섰는지 .. 이율배반 아닙니까. 조선일보야말로 레거시 미디어의 상징이 아닙니까.

찔레꽃 2020-01-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날 토론회를 보며 느꼈던, 그러나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던 마음을 속시원히 대신 표현해 주셨네요. 세종대왕님이세요~ ^ ^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4 18:44   좋아요 0 | URL
궁예의 재림을 보는 듯합니다. 궁예의 관심법이 진중권을 통해 재현될 줄..... 그 누구 알았겠습니까 ?
그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파타파직스‘만 남발하고... 이 개념을 20년째 반복하고 있는 걸 보면 한심하단 생각이 듭니다.
 






​                                


진중권의 전지적 작가 시점  :








내가 아니까요 !









트위터를 떠난 키보드 워리어 6명(  :  진중권·고은태·박권일·이택광·한윤형·허지웅) 한 팀이 되어 투쟁 담론을 펼친 적 있다. 처음에는 아삼육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댄스 그룹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처럼 서로 사바사바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말빨  사람들이 모인 자리이다 보니 쥐꼬리보다 작은 말꼬리에 서로 빈정 상해서 토라지게 되었다. 그 유명한 사건이 < 진중권-한윤형 블락 사건 > . 공지영의 << 의자놀이 >> 를 놓고 펼쳐진 트위터 오랄 베틀(입씨름)이었는데 두 논객의 타임라인은 지저분한 막말로 채워졌다. 


진중권은 공지영을 지지하는 쪽이었고 한윤형은 공지영을 비판하는 쪽이었다. 그들이 쏟아내는 막말 표현에 비하면 내가 즐겨 사용하는 문학적 관용어 조팝에 볍씨 쌈 싸 먹는 소리라거나 박 씨 발라먹을 소리 따위는 상류사회의 교양어'로 보일 정도였다. 아마도 그때의 타임라인을 목격하신 분이라면 페루애의 문학적 교양어가 얼마나 우아하며 정갈한지 뼈져리게 느낄 것이다. 구경꾼들은 그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말풍선이 워낙 지저분하다 보니 어느 편을 지지해야 할 지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진중권은 진보 논객의 새끼 사자로 무섭게 자라는 한윤형을 애새끼(서자) 취급했다.  


한마디로 호구 새끼 취급을 했다.  가미가제 독고다이 식 유아독존에 빠져든 진중권에게 자신을 제외하면 모두 다 " 듣보잡 " 인 것이다.  진중권이 한윤형을 블락한 행위는 진중권이라는 가문의 족보에서 한윤형을 파 버린 것과 비슷했다. 한윤형의 반응도 이와 유사했다.  아버지에 의해 호적에서 파 버림당한 서자의 광분이 느껴졌다. 양파 버림도 아니고 마늘 버림도 아니고 파 버림이라니 !  아버지에 대한 인정 욕구라고나 할까 ? 한때 자신의 닉네임을 " 진빠1호 " 라고 지을 만큼 그를 추종했던 한윤형은 아버지에 의해 호적에서 파 버림을 당하자 삐뚤어진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했던 그는 상습적으로 여자친구를 폭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무엇을 하는지 나도 몰락(몰라). 진중권이라는 캐릭터를 다시 보게 된 계기는 조국을 둘러싼 말폭탄이었다. 특히 어제 진행된 JTBC 토론은 진중권의 몰락이었다. 압권은 정준희와 진중권의 오랄 베틀이었다.



진중권 : 레거시 미디어 보도가 대부분 맞았고요, 여러분이 성찬하는 품질 좋은 기사는 다 왜곡이고 날조입니다.

정준희 : 그렇습니까 ?

진중권 : 예

정준희 : 최성해 총장의 말은 다 옳았나요 ? 그걸 보도한 언론은 다 옳았나요 ?

진중권 : 디테일은 조금 틀렸지만....

정준희 : 다 옳았다고 하셨잖아요 ?

진중권 : 내가 언제 옳았다고 했습니까 ?

정준희 : 전반적으로 레거시 언론들은 다 옳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진중권 : 아니, 최최성해 총장님이 발, 아니, 말한 것을 갖다가 레거시 미디어들이 보도를 했구요. 

         디테일은 틀렸지만 그분이 말할 실체 표창장이 왜곡됐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준희 : 왜곡됐다는 확신은 판결의 문제로 넘어갔기 때문에...(우리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

진중권 : 판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준희 : 어떻게 확신하시는데요 ? 

진중권 : 제가 아니까요 !

정준희 : (어이없는 웃음 ) .......



이 어처구니없는 오랄 배틀'에서 진중권의 최종 결론은 " 내가 아는 것이 진리 " 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현상을 분석하지 말라고 지적했던 진중권이 정작 스스로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어 내가 아는 것이 진리요, 네가 아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 사용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진중권은 소설을 쓰고 있다. 아마도 진중권은 토론이 끝난 후 집에 가서 이불킥 하지 않았을까 ? 내가 아는 것이 곧 진리라는 말은 우주 최강의 무식한 소리'이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솔직히 그를 이길 자신이 없다1). 진중권이 내 글을 읽고 나서 내가 무엇을 잘못했냐 ? _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의 오류가 뭔지... 2) " 







​                           

1)  진중권 : "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 "

2)  진중권은 트위터에서 컴퓨터에 대해 떠들다가 전문가에게 반론이 들어오자 블락을 먹인 적이 있다. 정확히는 진중권이 트위터에서 나꼼수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어떤 때는 값이 없다가, 다른 때는 다른 파일이 뜨다가, 어떤 때는 검색 결과가 늦게 뜨다가, 어떤 지역은 검색이 되다가, 다른 지역은 검색이 안 되게 만들려면, 기술적으로 어떤 조작을 해야 하나요'라 말한 적이 있었다. 이에 한 조지아공대 연구원이 웹페이지에 코드 한 두줄만 삽입하면 진중권이 지적하는 기술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며 직접 시연 싸이트를 링크하는 멘션을 보내고, 또한 코드 한 줄만 추가하면 웹페이지 로딩 시간을 30초까지 지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하지만 이러한 반박에 대해 진중권이 보인 대응은 해당 연구원의 트위터를 일방적으로 블락하는 것이었다. 다른 트위터리안이 어째서 블락을 먹인 것이냐고 묻자 진중권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그런 뻘소리하면 블락이다'라 대답했으며, '어째서 연구원 분을 블락한 것인지 모르겠다. 대체 그 사람이 무슨 오류를 저지른 것이냐'는 질문에는 '잘 생각해 보세요, 그 분의 오류가 뭔지'라는 답변을 남겼다. 결국 자신의 명언인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다'의 역표본이 되었다.

- 나무위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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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2 12:44   좋아요 0 | URL
네에. 노회찬 문상 안 갔다고 하더군요. 같은 당의 리더의 문상에 가지 않앗다는 말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가 없는 듯.

레삭매냐 2020-01-02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의 책을 하나도 읽지 않은 게
어쩌면 이렇게 다행이라는 생각
이 드는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쑈는 한 번 봐야지 싶네요.

자신의 무지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수구화되어
가는 꼰대의 내음이 물씬...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2 16:57   좋아요 0 | URL
진중권이 유시민을 까기 위해 내세운 전략이 태극기 부대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진이 유를 비판하면서 알릴레오의 선동 전략이 히틀러적이고 스탈린적이라고 지적하는데
이것은 전형적으로 빨갱이 새끼라는 욕이죠. 진은 태극기 부대가 좋아할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는 집회를 거론하면서 서초동 집회는 몇십 만이 모였고 광화문 집회는 몇백 만이 모였다고 말하는데
이거 태극기 부대가 서초 집회보다 자신의 집회가 파워있다고 우기면서 내세운 논리 아닙니까.
진은 이것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악의적인 거죠. 이기기 위해서 별짓 다하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

가넷 2020-01-02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순간 부터 이상해져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런...-.-;;;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3 12:40   좋아요 0 | URL
입만 열었다 하면 꼰대 문화를 비판하더니 중권이야말로 꼰대대왕이 되었으니 난감합니다. -.-
 













돈가스와 스테이크












                                                                                               한국 사회는 권위적이다. 누구나 동의한다면 에브리바디, 부처 핸섬 ~        청년이 꼰대의 권위에 삿대질을 하면 대뜸 너는 뭔대 ? _ 라는 앙칼진 말풍선이 돌아오는 사회'다. 그렇다면 권위적 사회를 떠받들고, 그것을 동조하는 현대인의 심리는 무엇일까 ?  바로 " 무력한 자의 심리 " 이다. 상대와 싸워서 이길 힘이 없는 사람은 전의를 상실한 채 오히려 그 상대의 힘에 복종하다가 결국에는 숭배하는 태도를 취한다. 인질로 잡힌 피해자가 인질범을 동조하거나 찬양하는 " 스톡홀름 신드롬 " 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살았다며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태극기 흔드는 빈곤한 노인-들의 심리도 결국은 무력한 사람이 강력한 힘에 복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M(마조히즘 : 피가학)이다. 문제는 무력한 자의 M이 S(사디즘 : 가학증)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관계라는 데 있다. 프로이트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S와 M은 불가분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는 서로 정반대의 성향으로 으르렁거렸지만 결국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성격이었듯이 S와 M도 그렇다. 강한 힘 앞에서는 복종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향해서는 가차 없이 폭력적이다. 


덩치가 작은 개일수록 사납게 짓듯이 태극기 집회가 유독 사나운 이유이다. 내가 << 백종원의 골목 식당 >> 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 권위를 찬양하는 대중의 무력한 태도 " 였다. 이 길목의 미친놈은 나라고 외치는 백종원은 골목 세계에서는 절대 권위자(이자 동시에 골목 파괴자)이다. 백'에게 토를 다는 놈은 백이면 백,  놈의 혓바닥을 뽑아버릴 기세로 달려든다. 그 골목은 백이 " 내가 혀혀혀혀, 현정화라면 현정화1) " 인 세계이다. 백종원에게 토를 다는 임춘애 파는 배신, 배반, 관계 대명사를 부정하는 TO부정사'다. 


백종원이 골목 상권을 파괴하는 요식업계의 거대 프랜차이즈 대표라는 점을 상기하면 자영업자들이 그를 숭배하는 것은 힘 없는 빈곤 노인이 자유한국당을 추종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그가 " 프랜차이즈도 못 이기면 식당하지 마라 ! " 라고 말했을 때 진심으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경우의 수는 희박하다. 한때 프랜차이즈 기업 << 파리바게트 >> 가 동네 골목 상권 안으로 침투했을 때 소비자들은 모두 환호했다. 카드 혜택 및 적립으로 빵 값이 쌀뿐만 아니라 맛도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성비 면에서 게으른 동네 빵집보다 프랜차이즈 파리바게트를 애용하는 것은 당연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  2019년 현재 우주를 통틀어서 빵 값이 가장 비싼 곳은 대한민국이다.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이지만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것은 당연히 대기업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처음에는 각종 카드 혜택과 저렴한 가격으로 골목에 입성한 파리바게트는 그 골목의 동네 빵집을 전멸시킨 후 빵 가격을 달동네 계단보다 가파르게 올리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우주 최강에 이르게 된 것이다. 동네 이웃의 불행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며 가성비만 좇다가 결국 되돌아오는 것은 우주 최강의 빵 값이다. 지금, 우주 최강의 빵 값이 당신 심장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있는 중이다. 빵이야, 빵이야 ! 



 




그렇다면 왜 백종원은 대세남이 되었고 대중은 그를 추종하게 되었을까 ? 그것은 " 고립자의 심리 " 로 설명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추방되는 공포라고 말한다. 현대인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거나 추방되는 공포( : 왕따 )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쉽게 할 수 있는 수단은 유행(대세)에 편승하는 것이다. 왕따에 대한 공포가 유행에 대한 집착을 낳은 것이다. 그렇기에 유행에 민감한 사회일수록 고립과 소외 문제가 심각한 사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한민국의 허니버터칩 현상과 노스페이스의 교복화 현상(롱패딩 열풀을 보라)은 고립자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한국 대중이 골목 식당의 음식 맛에 매료되는 것은 사실은 음식 맛 때문이 아니라 백종원이라는 브랜드 유행에 대한 추종 때문이다. 한국 사회를 크게 두 가지로 권위주의적이며 대세추종적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한국 사회는 " 쾌락지향적 " 이다. 먹고 마시고 싸는 쾌락 3종 세트가 한국보다 잘 발달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한민국은 먹방의 시조새이자 종주국이요, 찬란한 밤문화는 일본을 열심히 따라잡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한국인이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쾌락은 " 순간 " 에 방점이 찍힌 감정이고 행복은 " 지속 " 에 방점이 찍힌 태도이다. 


행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삶의 긍정적 태도를 오래 간직해야 된다는 점에서 쾌락과는 다르게 행복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2)에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그것을 순간적 쾌락이라 여기지 않고 행복이라 여긴다. 그러다 보니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권태에 빠진 사람은 그 심리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고 마시고 싸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 백종원의 골목식당 >> 에 대한 대중적 열광은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대세추종적, 쾌락지향적 성격이 현대 한국인의 무력감, 고립감, 권태감과 맞물리면서 만들어진 만성적 우울증이 낳은 현상'이다. 


12시간 줄을 서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는 포방터 시장 돈가스는 영화 << 매트릭스 >> 에서 멀건 죽에 진저리를 쳤던 사이퍼가 가상 세계에서 허겁지겁 먹던,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하지만 가짜였던 스테이크와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있잖아. 난 이 스테이크가 진짜가 아니라는 걸 알아. 내가 이걸 입에 넣으면 매트릭스가 내 뇌에 이것이 맛있고 육즙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고 " 









​                             


1)   넘버 3, 조필(송강호)의 명대사

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행복을 단순한 기분(감정)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로 보았다. 행복(Happiness)의 어원이 " 우연(hap) " 이라는 것은 인간이 행복을 작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기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작위성)가 행복한 기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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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0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12-30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사라져버린 골목마다 있었던 구멍가게, 동네 맛집을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흐른 듯 보입니다. 그렇지만, 4대강 보를 열었을 때 맑은 수질로 인해 오지 않던 철새도 돌아오고, 강변 모래도 쌓이는 것을 보면서 아주 늦은 일만은 아니라는 위안도 해봅니다. 곰곰발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잘 부탁 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30 11:31   좋아요 1 | URL
되돌아와야지요. 구멍가게가 대기업 가게에 지지않고 건승했으면 합니다. 겨울호랑이 님도 새해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꾸벅 ~

레삭매냐 2019-12-30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좀 쌩뚱 맞지만...

돈스파이크가 돈까스, 파스타, 스테이크
의 약자라고 합니다만...

곰곰생각하는발 2019-12-30 11:4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조크 이해했습니다..

라로 2019-12-30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빵이야, 빵이야!
저는 빵야, 빵야,,,그러는데.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곰발님의 필력은 여전히 살아있군요!!!♥
암튼 여기도 파리 바게트가 들어와 있는데 대만의 JJ Bakery나 85도 보다 비싸요.
그래서 잘 안가요. 그정도 맛은 포기할 수 있어서?ㅎㅎㅎ
암튼 저도 새해 인사드릴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곰곰생각하는발 2019-12-30 13:32   좋아요 0 | URL
스위스 물가 높기로 악명 높은 곳인데 스의스 빵보다 2배보다 더 비싼 빵을 한국인이 먹고 있으니...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로 님도 새해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라로 님 글 자주 올려주세요.. 요즘 심심합니다..ㅎㅎ

프레이야 2020-01-01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지에서 맛집 찾아다니기만 빼도 보다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지요. 많다고 좋은 건 아니고 보다 의미있는 걸 우연한 행복거리를 조우할 기회도 많아지구요. 경자년에도 곰발님의 찌릿한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1-02 11:33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맛집 찾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기는 하나 지나치게 여행의 식도락화‘가 되었다고나 할까요..ㅎㅎ
 












1초의 오르가슴도 없이 사정없이 끝내버리기








로이트는 식칼을 든 살인마'였다. 그의 책을 펼치는 순간,   뒤통수에서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면 사람 얼굴 가죽을 벗긴 가면을 쓴 프로이트가 식칼을 들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기존의 사상이 저 높은 곳을 향한 흠모였다면 프로이트는 밑바닥 아래에 깔린 인간 내면의 추잡스러운 욕망을 보라고 충고한다. 전자가 형이상학이라면 후자는 형이하학인 셈이다. 


평소 난도질 공포 영화를 좋아했던 나는 프로이트가 피범벅이 된 얼굴로 지하실 밑바닥에서 드루와, 드루와 ~ 라고 유혹했을 때 내심 기뻤다. 오(호)라, 프로이트여. 내 육신을 도륙해다오. 내 기름진 배때기에서 뒤룩뒤룩 살찐 내장을 내팽개쳐다오. 맑스도 내 뒤통수를 친 철학자'였다. 하부 구조( 물질 : 생산 경제 )가 상부 구조( 정신 : 이념 사상 정치 종교 문화 )를 결정한다는 맑스의 도발적 낫질에 등짝 찍힌 기분이 들었다. 마르크스도 하부 구조인 지하실에서 나에게 속삭였던 것이다. 드루와, 드루와.  프로이트가 식칼을 들고 마르크스가 낫을 들었다면 니체는 망치를 든 파괴자'였다.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고 철학 하던 자에게 니체는 말한다. 내려와, 내려와 ~       니체는 철학자들이 계룡산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땅에 발을 디디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그리고는 망치를 들고 훌륭한 가치라 믿어 의심치 않은 가치를 1초의 오르가슴도 없이 사정 없이 퐈괴한다. 맙소사, 1초의 오르가슴도 없이 사정없이 끝내버리는 사내라니.  이처럼 좋은 책은 어두운 곳에서 호시탐탐 독자의 뒤통수를 노리는 놈들이다. 공부란 내가 모르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난도질이야말로 훌륭한 죽비'다. 스승은 비열할수록 훌륭한 스승이다. 


반면에 독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살랑살랑 웃으면서 머리도 쓰다듬고 가끔 눈물도 흘리는 멘토의 책은 좆으로 보면 된다. 혼자인 사람에게 혼자여도 괜찮다, 라고 지껄이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아래로'다. 즉, 하수'다. 니체였다면 그 멘토의 멱살을 잡고 아주리 쌍쌍바를 먹인 다음에 원 펀치 쓰리 강냉이를 털었을 것이다. 독서의 고수라고 자청하는 이들이 독서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힐링을 얻는다고 고해성사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해마다 지랄은 풍년이구나.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명백하다. 


타인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일은 유쾌하다. 타인을 괴로워하게끔 만드는 것은 더욱 유쾌하다. 이것은 하나의 냉혹한 명제다. 니체의 << 도덕의 계보 >> 에 나오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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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3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3 14: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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