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팔일, 황교안의 단식 투쟁 :











무식(無識)과 무식(無食)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유총의 고문 변호사였다는 황교안이 8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을 때 크게 웃고 말았다. 공덕동 로터리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 자라는 민들레처럼, 일주일 전부터 땅바닥에 드러누우시며 생사를 오가는 양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웰빙 정당의 우두머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일일일식 6년 차에 접어드는 나로서는 일주일 굶었다고 헬렐레하는 모습이 칠렐레팔렐레하는 츤데레처럼 보여 내 마음이 막 설레. 내가 만약에 일일일식을 실천하지 않고 살았다면 황교안의 응급실 직행을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끼 굶어도 배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스물넷 끼를 굶었으니 죽을 맛이겠구나......                  


내가 아는 사람(처음에는 간헐적 단식으로 시작했다고 나중에는 일일일식을 실천하는 분이다)은 일 년에 한 번 2주 단식'을 실천한다. 처음에는 여름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2주 단식을 하다가 몸의 부담을 크게 못 느껴서 다음해부터는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2주 단식'을 한다. 직장 동료들은 그녀가 2주 단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건강과 일상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인간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굶주림에 매우 강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한두 번의 무식(無食)이 영양 결핍을 초래한다는 상식이야말로 무식(無識)한 소리이다. 


아침밥이 현모양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통하는,  한 끼만 굶어도 영양 결핍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싸우스꼬레아 씨월드에서 하루에 한 끼'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말이 귀에 박힐 리 없겠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진실인데 말이다. 과격한 표현을 빌리자면 " 1일3식은 과식의 형태이며 만성 피로의 주범 " 이다. 불교 용어 중에 < 회소향대 迴小向大 > 라는 말이 있다.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향한다는 뜻이다 . 일일일식도 회소향대의 한 방식이다. 소식으로 큰 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위장은 대략 10시간 정도 삽질 일을 한다. 내용물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위장에 가득 찬 음식물을 쪼개고 위장 밖으로 내보내는 데 소요되는 평균 시간이다. 위가 비워지면 위장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수축을 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소리가 " 꼬르륵 " 이다.  


꼬리륵 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위장에서 근무하는 내장 노동자가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이때 시트루인이라는 성장 호르몬이 발생한다. 회춘을 돕는 호르몬이다. 휴식 시간이 충분히 보장되어야 다음에 일을 할 때 노동을 견딜 힘을 충전하는 법. 이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위장 노동자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식사 후 최소 10시간 이상의 공복이 필요하지만 일일삼식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는다(공복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12시간 이상의 공복이 필요하다).  결국, 위장 노동자는 좆나게 삽질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어느 정도 다 비웠다 생각했을 때 다시 주인의 목구멍에서 음식물이 쏟아지니 죽을 맛이다. 


그것은 마치 퇴근 30분 전에 직장 상사가 다가와 책상 위에 10시간짜리 일감을 던져주고는 오늘까지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만성 피로의 핵심은 바로 몸속 내장 노동자의 피로 때문이다.  인간이 어리석은 지점은 바로 이때'다. 우리는 몸이 피곤하면 기운을 되찾겠다고 보신 요리부터 찾는다.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몸이 피로할 때에는 휴식이야말로 최고의 보약일 텐데 목구멍에서 동물성 단백질이 쏟아지니 내장 노동자는 삼복 더위에 죽을 맛이다, 진짜루 !  더군다나 동물성 단백질 분해는 식물성 단백질 분해보다 더 많은 삽질을 해야 한다.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때 노동자는 결국 손을 놓듯이,  몸속 노동자는 임계점에 다다르면 손을 놓는다. 그 결과는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누누이 말한다. 일일일식을 실천하라고 말이다. 일일일식의 실천이 독한 다이어트보다 쉽다고 설득하려 하지만 대부분은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심하기 바란다. 사자는 배가 부른 상태에서는 사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자가 사냥을 하기로 결심하는 때는 며칠 굶고 나서이다.  굶은 상태에서 사냥을 해야지 운동 능력이 최상인 상태가 되어 성공 확률이 더 높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까 ?  달려라 하니를 봐라. 운동장 수돗가에서 맹물만 먹고도 1등 하지 않았던가. 매조지하자. 형이 말 편하게 할게.  니들, 한국 복싱이 왜 잘나가다가 요즘 빌빌대는지 아나 ?  다 이 헝그리 정신이 없기 때문이야. 헝그리 정신. 우리 교안이 단식팔이 작심팔일 되었잖아. 옛날엔 말이야, 다 라면만 먹고도, 진짜 라면만 먹고도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 홍수환. 어... 어,어,어 엄마 챔피언 먹었어. 복싱뿐만이 아니야, 응 ? 그 누구냐. 현정화, 현정화 걔도 라면 먹고... 라면만 먹고도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씩이나 따 버렷어.  (일동) 임춘애입니다, 행님 !!!!!   뭐, 임춘애'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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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둘리 2019-11-29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유쾌하고,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9 16:1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19-11-29 16: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웃기는 건,
우리 그이가 뭣 때문에 이 엄동설한에
나가서 無食을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기묘하게도 그전까지만 해도
아우성치던 당의 잡설들을 無食으로 일축
하는 효과를 얻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
성하지 않았나 싶네요.

無食한 남자, 우리 그이 정말 짱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9 16:15   좋아요 1 | URL
단식 5일 만에 누워서 빌빌거리는 것을 보며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약자의 마지막 저항인 단식을 이런 식으로 연출하는 것도 아름답고
의식을 잃을 만큼, 그동안 늘 잘 처드셨다는 것도 아름답고
다 아름다워요.

coolcat329 2019-11-29 2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1일2식을 하는데 1식은 자신이 없네요. 그래도 아침을 안 먹어 16시간 정도는 공복상태를 유지하고 있네요. 위가 쉴 때 시트루인이라는 회춘호르몬이 나온다니 참 반가운 사실이네요.

첫 문단은 많이 웃겼습니다 ㅋ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30 13:03   좋아요 0 | URL
16시간만 유지해도 탁월한 효과를 얻죠. 아침은 안 먹는 게 최상입니다.

수다맨 2019-11-30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黃씨가 단식을 중단해서 자한당의 몽니는 여기서 끝이겠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필리버스터를 통해서 국회 일정을 파토내려 하더군요......
오래전에 (지금보다 훨씬 제정신이었던) 조갑제가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이라는 책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30 23:44   좋아요 0 | URL
매국질하는 거죠... 그 새끼들은.

붕붕툐툐 2019-11-30 2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일 1식 뽐뿌 글이네요. 저는 지금도 저체중이라 1일 1식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을까봐 걱정되는데, 괜찮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30 23:43   좋아요 1 | URL
저체중이시면 1식은 그렇고 간헐적 단식은 추천합니다. 뭐, 아침 굶는 거니까요. 저녁 일찍 먹고 아침 거르면 대부분 16시간 간헐적 단식이잖아요. 고거 추천합니다. 쓰레기통 쓰레기도 쓰레기를 비워야 냄새가 안나듯이 사람 몸도 위에 24시간 항상 음식물 쓰레기가 있으면 냄새가 나는 법입니다.

붕붕툐툐 2019-12-01 09:42   좋아요 0 | URL
와우!! 정성스런 댓글 감사드려요~ 도전해 보겠습니닷!!

비로그인 2019-12-15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동감합니다.
저도 단식을 해본 사람으로써(2번, 1주 줄이고 2주째 완전단식 3주째 서서히 늘리고)
황교활의 단식개드립치는 꼬라지 보고 얼마나 역겹던지...
독실한 교인이라던 황교활..
하는 짓보면 예수님께서 그토록 저주하던 바릿새인보다 더 역겨운 짓거리만 하죠..
완전 사탄의 자식..

단식을 하고 나면 진짜 몸이 완전 좋아지고 머리도 완전 맑아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2-16 08:17   좋아요 0 | URL
단식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종종 단식 기도 하시잖아요. 5,6일 단식을 자주 하시죠... 이걸 황교안은 4일째부터 드러눕다니...

rhkdgus2007 2020-05-11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 단식하시기전에 영양제 맞지 않았음?
댓글저장
 
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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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무     인  사  도     없  이     :












"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 "











                                                                                                발자크 소설 << 고리오 영감 >> 에서 19세기 파리 사람들은 위선자이며 돈에 굶주린 사람들로 묘사된다. 파리는 속물을 품어주는 소굴이다. 이 소설에는 출세만이 미덕이라고 믿는 프랑스 청년 라스티냐크가 등장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 "  이 당찬 결의 앞에서 나는 그때 그 시절의 파리가 생각났다. 믿을지 모르겠으나 한때 파리를 내 친구삼아 지낸 적 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적은 없지만 나는 당신보다 파리를 잘 알고 있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만의 우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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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희가 부릅니다. << 너무합니다 >>  ” 색소폰이 구슬프게 울리더니 김수희의 너무합니다 라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 마지막 한 마디 그 말은 / 나를 사랑한다고 ”  시작부터 타령이다아니나 다를까, “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가세요 / 날 울리지 말아요 ~ /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 당신은 너무합니다. ”

​떠난 남자에 대한 원망이 알알이 박힌 노랫말'이노래 속 남자는 요샛말로 헤어지는 여자에게 희망 고문을 시키고 떠나는 유형이다飛鳥不濁水 비조불탁수1’ 라는 말이 있다날아가는 새는 노닐던 물을 더럽히지 않고 떠난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는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일까 정희진의 << 정희진처럼 읽기 >> 라는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꼭지는 얀 마텔의 << 파이 이야기 >> 라는 소설에 대한 메모제목은 “ 아무 인사도 없이 ” 이다.

 

   

 1977년 7월 2거대한 화물선이 침몰한다힌두교도이자 무슬림이며 크리스천인 파이라는 사연 많은 이름의 인도 소년과 250킬로그램짜리 뱅골호랑이가 227일 동안 바다에서 표류한다둘은 멕시코 해안에서 구조된다아니소년은 구조되고 리처드 파커(호랑이 이름)는 뭍에 닿자마자 근처 밀림으로 들어간다소설과 달리 영화는 사라진 밀림 입구를 두 번 클로즈업한다통증이 느껴지는 압권이다소년은 엉엉 운다살아남은 감격 때문이 아니라 7개월 넘게 함께 했던 리처드 파커가 뒤도 안 돌아보고 “ 아무 인사도 없이(so unceremoniously) ” 떠났기 때문이다운동 경기 때 득점을 해도 세러머니를 하는 게 인간인데...... “ 나는 그가 내 쪽으로 방향을 틀거라고 확신했다날 쳐다보겠지귀를 납작하게 젖히겠지으르렁대겠지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매듭지을거야그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밀림만 똑바로 응시할 뿐이었다그러더니 고통스럽고끔찍하고무서운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날 살게 했던 리처드 파커는 앞으로 나아갔다그렇게 내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 .... ( 중략 ) ... 인간이 급격히 외로워진 시기는 의미이성역사주의 따위를 앞세워 자연을 공격하면서부터다....... 사람은 인연 덕분에 산다하지만 그것은 인간 스스로 부여한 의미일 뿐 자연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

 

아무 인사도 없이, 66~67쪽 

 

한쪽은 떠날 때는 말없이 떠나라고 말하고다른 한쪽은 인사 한 마디 정도는 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원망 섞인 말을 한다.  둘은 서로 상반된 지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동일한 감정에서 파생한 넋두리이니 이심전심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떠난 자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두 사람이 보기에는 둘 다 " 너무합니다, 너무합니다, 당신은 너무한 "  사람이다. 이 감정(들)에는 원망이 섞였으나어디 미움뿐이랴. 사무친 정에 대한 깊은 회한이 짙게 남아 있으리라. 정희진은  리처드 파커의 거시무언(去時無言) 장면에서“ 나도 그 장면에서 울었다 ” 고 고백한다나는 정희진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다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본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 파이 이야기 >> 는 톰 행크스가 열연한 << 캐스트 어웨이 >> 와 닮은 구석2이 있다른 점이 있다면 250kg짜리 벵골호랑이 대신 250g짜리 배구공 윌슨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무게가 아니지 않은가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척 롤랜드(톰 행크스)는 땟목 위에서 뜻하지 않는 일(폭우)로 망망대해에서 윌슨과 헤어진다척 롤랜드는 애타게 윌슨을 부르지만윌슨은 아무 인사도 없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리처드 파커(호랑이)처럼 말이다척 롤랜드의 쇳소리 나는 울음에는 서운함과 그리움이 묻어 있다. 그는 울면서 외친다. " 아'임 쏘리, 윌슨 ! "  떠나는 자에게 남겨진 자가 먼저 미안하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나도 이 장면에서 울었다. << 캐스트 어웨이 >> 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2년 전 성탄 전야로 되돌아가야 한다내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250그램짜리 배구공이 아니다.  그보다 더 작은 2.5그램에 대한 이야기다. 작다고 눈물의 염도나 싱거운 것은 아니다. 모래알이든 바윗덩어리이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지금부터 내가 당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연이 길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서사이나,  웃으면서 읽어도 좋다.

 

깊은 밤티븨를 켰다오늘 같은 날은 볼 만한 영화'가 많지성탄 특선(特選)이니까 !  이제 막끝났는지 캄캄한 화면에서 엔딩 타이틀이 느리게 올라가고 있는 채널을 발견했다곧이어 다음 상영작을 예고하는 자막이 화면 오른쪽 상단에 떴다문득 이 영화는 특선 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많이 양보한다고 해도 성탄 에 어울리는 영화도 아니었다함박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무인도에 갇힌 벌거숭이 사내의 1인 모노로그'라니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성탄과 특선에 어울리는 작품을 물색했지만 마땅히 볼 만한 작품은 없었다하는 수없이 << 캐스트 어웨이 >> 를 보기로 했다시작은 딱히 재미있지도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았다.

지루하다 싶으면 책을 읽다가 책이 지루하다 싶으면 영화를 보았다내가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한 때는 배구공 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척 롤랜드(톰 행크스는 그 공 에게 윌슨 이라는 사람 이름을 부여한다그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빵이나 잼'보다는 친구 였다. 윌슨은 과묵한 친구였지만 척 롤랜드에게는 " 빵 터지도록 잼나는 친구 " 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혼잣말이 늘면 광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는 끊임없이 윌슨과 (혼잣말이 아닌대화를 한다그때부터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다영화 내용'에 대한 데자뷰가 아니었다그것은 나의 과거 속 어떤 체험과 연결된 정서'였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를 깨닫지는 못했다하지만 이 수수께끼'는 이내 풀렸다.

척 롤랜드가 망망대해'에서 윌슨 을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나는 척 롤랜드'보다 많이 울었다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척 롤랜드를 연기한 톰 행크스'보다 척 롤랜드가 당시 처했던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내 눈물은 같은 아픔을 공유한 자만이 공유할 수 있는 연민이었다척 롤랜드에게 윌슨이 있었다면나에게는 크로넨버그'가 있었다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자유로움의 상징이었던나만의 파리 속초에서 < 1년 을 살았다내가 살던 곳은 모텔 105호 달방'이었다야심찬 계획으로 출발했으나 어느 순간우울증이 깊어서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노트북 모니터는 항상 텅 비어 있었다. 커서는 인적이 드문 길 위에서 기름이 떨어져 멈춘 자동차처럼 제자리에서 깜빡거릴 뿐 나아가질 못했다. 

불안을 동반한 불면이 깊어 갈수록 술 에 내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외롭고 낮고 쓸쓸했다. 이 낯선 타관에서 대화를 나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달방에 갇혀서 하루 종일 음을 소거한 채 낚시 채널을 시청했다유일한 낙은 낚시줄에 잡힌 대어를 보는 것이었다그때 날 찾아온 것은 파리 였다파리 한 마리가 내 달방으로 날아왔다당시 날씨는 겨울을 눈 앞에 둔 쌀쌀한 늦가을이었기에 파리가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한파를 견디고 끝까지 살아남은지구상에서 마지막까지 견딘, 지상의 마지막 파리'였던 것이다늦가을 모기는 잡는 것이 아니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내가 이 속담을 알게 된 계기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에서였다나 또한 그 파리를 잡거나 쫓아낼 생각이 없었다.

둘째 날파리는 천장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다음날동네 마트에서 횟감을 사서 혼자 달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파리'가 내 주위를 윙윙 날아다녔다생선 냄새를 맡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다며칠 동안 달방을 나간 적도 없고 창문을 연 적도 없었으니내가 며칠 전 본 파리가 분명했다. " 배가 고프겠구나 ! " 생선 회 한 조각을 바닥에 내려놓자 파리가 그 살점 아래 내려앉았다그것을 인연으로 해서 파리와 나는 달방에서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이름도 지었다. " 이제부터 넌 크로넨버그다 ! " 그렇게 보름을 함께 보냈다배구공을 보며 대화를 나눴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는 침대에 누워 맞은편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어느 소설가가 그러더라전쟁터에 나간 병사는 누구나 살아남기를 원한다고하지만 끝까지 살아서 제일 마지막에 죽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두려운 거지끝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두려운 거다...... 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지금 넌 두려운 거야이 지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파리이거든...... "

그러던 어느 날서울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 잠시 서울에서 며칠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미룰 수는 없었다파리의 끼니가 걱정되어서 꿀물을 사발에 가득 담은 후 달방'을 떠났다내가 다시 달방으로 돌아왔을 때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파리였다하지만 파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얼어서 죽었니 ? 아니면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난 거니 ?  몇 시간 동안 파리의 흔적을 찾아헤매다 지쳐서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눈물이 났다두려웠다그 감정은 고독도 아니었고 외로움도 아니었다. 적군이 우글거리는 적지에서 혼자 살아남은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나다니 살짝 배신감도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피식웃음이 났다파리가 떠났다고 슬퍼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

2015.12.2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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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티냐크와 달리 나는 파리와 경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어깨죽지에는 날개가 없으니 말이다. 파리가 병원균을 옮기는 더러운 해충이기는 하나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것 하나 없다. 인간의 관점에서 파리가 해충이라면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야말로 해충이다. 인간은 항상 음식을 훔쳐 먹기 위해 손을 더럽히는 족속이다. 발자크는 << 고리오 영감 >> 에서 사기꾼 보트랭의 입을 빌려 인생은 지저분한 부엌보다 더 멋질 것도 없고 부엌만큼이나 고약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음식을 훔쳐 먹기 위해서는 손을 더럽혀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 시대의 도덕이라고. 


곁에 아무도 없다 보면 누구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그때는 한 마리의 파리가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매달린 파리를 보다 보니 정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을까 ?  기다려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다가 아무 말 없이 떠난 파리를 그리워하며 우럭처럼 울었던, 정신 나간 한 남자의 멜랑꼴리한 센티멘탈'에 대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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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칼과 황홀







멸치 중에서 최상품은 " 죽방멸치 " 이다. 죽방(렴)은 대나무로 만든 부채꼴 모양의 말뚝으로 밀물 때 물의 흐름에 따라 문이 열렸다가 썰물 때 문이 닫히면서 잡힌 멸치를 죽방멸치라고 부른다. 맛이 뛰어나서 멸치 떼를 대형 그물에 가둬 잡는 일반 멸치보다 그 가격이 10배 더 비싸다.  산문집 << 칼과 황홀 >> 에서 성석제는 죽방멸치 한 마리 가격이 어림잡아 200원꼴이라고 계산하기도 한다. 그만큼 귀한 멸치인 것이다. 처음에는 멸치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겠지만 먹어본 사람은 죽방멸치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죽방멸치는 비린내가 거의 없다. 


또한 멸치 똥은 일반 멸치처럼 검지 않고 주황색을 띤다. 그렇다면 무엇이 맛의 차이를 결정하는 것일까 ? 죽음에 대한 공포가 맛의 차이를 결정한다. 촘촘한 그물코에 머리가 꽂힌 멸치는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다가올 죽음을 직감한다. 움직여야지만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공포이다. 멸치는 이 과정에서 속이 까맣게 썩는다. 우리가 멸치를 씹을 때 느끼게 되는 멸치의 쌉싸래한 비린내는 공포의 결과인 셈이다. 반면, 죽방림에서 잡힌 멸치는 자신이 죽방림에 갇혔다는 사실도 모르다가 죽기 직전에 가서야 알게 된다. 그래서 성석제는 죽방림을 멸치의 천국이라고 말한다. 


어부는 죽방에 갇힌 멸치를 뜰채로 건져내자마자 곧바로 끓는 물에 넣어 삶기 때문에 죽방에 갇힌 멸치는 그물에 잡힌 멸치에 비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다. 놀다가 죽은 멸치가 죽방멸치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죽방멸치는 맑은 광택이 나며 투명하다. 그리고 예쁘고 날씬하다. 뒤틀려서 비명을 지르는 표정을 한 일반 멸치와 사뭇 다른 것이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하는데 멸치도 그렇다. 신나게 놀다 죽은 멸치는 때깔도 좋다. 내가 김난도와 혜민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 아니다. 


그것은 성장통이 아니라 속이 까맣게 썩는 과정일 뿐이다. 청춘 멘토라는 사람이 고작 가난한 청춘에게 한다는 소리가 고생 타령이라니 한심할 뿐이다. 고생이 돈 주고 살 정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내 고생을 당신에게 팔겠다. 그의 철학이 그토록 확고하다면 당신 자식새끼도 멸치잡이 그물에 머리가 꽂혀서 캄캄한 바닷속에서 두려움에 속이 까맣게 썩는 마음고생을 경험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꼬리는 힘차게 움직이는데 몸은 그물코에 꽂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때의 공포가 성장의 밑거름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는 그런 너님이 역겹다. 




+

은갈치와 먹갈치는 가격이 2배 차이가 난다. 당연히 은갈치가 맛이 좋다. 은갈치는 낚시로 잡은 갈치이고 먹갈치는 대형 그물로 잡는다. 먹갈치의 속이 먹처럼 까맣게 썩는 과정은 그물에 잡힌 멸치와 동일하다. 일반 멸치를 유심히 본 적 있다. 눈알은 짙은 색을 내며 움푹 들어가 있고 항상 고통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저 속을 뒤집어 보지 않아도 속이 새카맣게 탔으리라는 것은 짐작 가능하다. 가끔 멸치 똥을 떼다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들곤 한다. 도대체 얼마나 두려웠기에 이렇게 까맣게 태웠을까......



++

산문집 << 칼과 황홀 >> 에 대한 리뷰에서 이 책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이유는 마땅히 칭찬할 만한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들어간 삽화는 오히려 읽기를 방해하고 성석제의 글은 심심하다. 또한 음식 에세이이면서 음식에 대한 애정도 찾아볼 수 없다. 이 정도 애정이라면 황홀이 아니라 소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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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11-28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의 본질은 기억이다. 예를 들면 군대 생활이나 교도소 생활‘을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요리 1순위는 자장면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내가 군 생활을 할 때, 휴가 나와서 제일 먼저 간 곳은 집이 아니라 중국집이었다. 왜 많고 많은 맛있는 요리가 많은데 하필 자장면인가 ? 맛에 대한 기억은 7살에 고착되어 있다고 한다. 7살 때 먹은 음식을 기억하는 것이다. 자장면은 특별한 요리였다. 주로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온가족이 모여서 즐겁게 외식을 할 때 단골 메뉴가 자장면이어서 자장면에 특별히 맛있는 요리가 아니지만 외부와 단절한 우울한 생활을 하다 보면 자장면이 생각나는 것이다. 맛의 본질은 맛이 아니라 기억이다.

수다맨 2019-11-28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으로 고생만 죽도록 하고, 권세와 재물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고생 예찬론을 언급한다면 최소한의 진실성은 있지요. 그리고 막상 그런 사람들일수록 고생이나 노동은 그냥 통증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김난도는 물론이거니와 조국(장관 되기 전)이나 신형철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모종의 불편함도 곰곰발님께서 쓰신 글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8 16:2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조국은 아프니깐 청춘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잖습니까. ㅎ 김난도는 가난한 청년을 상대로 ˝ 가난-코인 ˝ 벌이를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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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죽음



                        8월 여름이었다. 내가 사는 빌라 현관 입구를 지나치려다가 계단 밑에서 몸을 웅크린 참새를 발견했다. 참새 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것으로 보아 새끼가 분명했다. 참새는 내가 가까이 다가갔는 데도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위 먹은 참새였다.

자세히 보니 깃털도 여기저기 뽑힌 것으로 보아 들짐승의 공격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손 감옥을 만들어 새를 가둔 후에 집으로 데려갔다. 우선, 베란다에 물을 흥건히 뿌려 온도를 낮추고, 잎이 넓어서 짙은 그늘이 지는 파초 화분에도 물을 흥건히 뿌려서 환경을 조성한 후에 참새를 그 화분 속에 넣어 두었다. 서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늘에서 쉬면서 기운을 차리면 곧 하늘로 날아가리라. 쌀과 함께 물그릇도 화분 속에 두었다. 나는 화분 속 참새가 궁금하여 자주 베란다를 향했다. 참새는 그때마다 인기척을 알아차리고는 숨는 시늉을 하곤 했다.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았다. 부릅뜬 눈이 제법 초롱초롱했다.

10분이 흘렀을까 ?  내가 다시 그 참새를 보러 갔을 때 참새는 그새 죽어 있었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 참새의 간결한 죽음 " 이었다. 참새는 죽기 전까지 두 눈 부릅뜨고 서서 버티다가 동정同情도 없이, 애도哀悼 도 없이, 그리고 자기 연민도 없이 홀로 죽는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짐승의 죽음 앞에서 어떤 숭고한 힘을 느꼈다. 불현듯 D.H 로랜스의 Self Pity / 자기 연민'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에 빠진 짐승을 본 적 없네

얼어 죽어 가지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작은 새, 결코 자신을 동정하지 않네


죽은 참새를 크리넥스 티슈로 감싼 후에 산에 묻었다.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않도록 그 위에 제법 큰 돌을 얹었다. 최은영 소설집 << 쇼코의 미소 >> 에 수록된 단편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에서도 " 곰 "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홀로 죽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보금자리 집을 떠나, 어두컴컴한 어느 곳에서 죽는다.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 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그애가 사라지고 한 달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 울고 또 울었지. 내가 괜히 곰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곰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아픈 걸 보고 내가 마음 아파하니까 죽으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 최은영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곰은 죽을자리를 찾기 위해 보금자리를 떠난다. 곰은 자신의 죽음을 동정하지 않는다. 내가 키우던 개도 그랬다. 죽기 10분 전까지 고개 빳빳이 들었다. 내일 다시 올게 _ 라는 내 말에 개는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일련의 죽음들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된다. 내 죽음 앞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자고. 살고 싶다고 애원하지 말자고. 죽을 때는 간결하게 죽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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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월드










                                                                                               퍼펙트 월드'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치고 평단의 평가도 야박하고 대중 인지도도 낮은 영화'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탈옥수와 꼬마 인질의 관계는 결국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전이되면서 영화는 새드엔딩을 향해 치닫는데, 그 연출 솜씨가 만만치 않은 영화'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영화라면 빼놓지 않고 보았기에 이 영화도 극장에서 보았는데 박연폭포 같은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꽤 있었다. 


내가 서울역 후암동에 둥지를 튼 계기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이었다. " 퍼펙트 월드 " 라는 이름의 영화감상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이 결정은 순전히 퍼펙트 월드'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퍼펙트 월드라는 이름과는 달리 후암동 뒷골목은 로맹 가리의 비숑 거리(자기 앞의 생)와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와 비견할 만한 빈곤과 비참의 세계'였다.  늙은 성매매 여성과 앵벌이 그리고 돼지엄마(포주)와 기둥서방들이 모여 살았는데, 후암동 뒷골목은 서울에서 가장 위험한 우범지대'로 뽑혔다.  앵벌이들은 구걸을 하기 전에 반드시 영화감상실에서 영화를 보았다. 


그들은 감상실 안에서 푸른 알약(이라는 감기약)을 다량으로 복용했다. 이 알약에는 마약과 같은 환각 작용을 일으켰는데 그 환상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 일을 하기 위해 전철역을 향하곤 했다. 이 알약은 평형 감각을 마비시키기에 걸을 때 비틀거리고 나중에는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된다. 흡사 중증 광우병에 걸린 소처럼 보인다. 앵벌이들은 하반신 마비 환자처럼 지하철 안에서 기어 다니면서 쪽지를 돌리며 구걸을 했다. 이 쪽지의 글씨체와 문장은 오롯이 내가 썼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여의고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  


내가 그들에게 맨정신으로 구걸을 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 쪽팔리잖아요. 어떻게 맨정신으로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구걸을 해요. 우리도 사람이어서 쪽팔린 감정은 있어요. "  구걸해서 번 돈은 거의 대부분 돼지엄마'라고 불리는 포주에게 돌아간다. 돼지엄마는 쪽방을 운영하면서 앵벌이들의 숙식을 제공했는데 열악한 시설과는 달리 지나치게 비싼 숙박비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푸른 알약을 제공하는 딜러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푸른 알약을 다량으로 살 수 없었는데  돼지엄마는 다른 루트를 통해서 대량으로 구매하여 매우 비싼 가격에 되팔았다. 


백 원 하던 알약은 천 원으로 둔갑하기 일쑤였고, 가격 흥정은 돼지엄마 마음대로였다. 앵벌이들은 이 알약을 사는데 그들이 하루 구걸해서 벌었던 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그들은 더 많은 알약을 사기 위해 더 많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어야 했다. 환각 속에서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강인했고 매력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앵벌이를 만났다. " 까불이 " 란 녀석도 있었고 하모니카를 잘 불어서 " 하모니카 " 라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 스마일 타이슨 " 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얼궁은 험악하고 덩치는 큰데 항상 웃는 녀석이었다. 그는 아마추어 복싱 선수 출신이었다. 


이 친구는 앵벌이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며 정장 차림으로 나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복지 재단에서 다시 시작하려는 그를 위해 비용을 지불한 모양이었다. 정장 입은 모습이 꽤 근사해 보였다. 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적십자(녹십자였나 ?!)였다. 푸른 알약을 장기적으로 과다 복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그중에서 연골을 파괴하여 심한 경우는 팔이나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그런 경우 적십자는 이들을 강제 입원시켜서 절단 수술을 진행했기에 앵벌이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았다. 


그런가 하면 이곳에서 12살에 임신한 여자아이를 본 적도 있다. 늙은 성매매 여성의 딸이었는데 누군가가 못된 짓을 한 모양이었다. 이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참했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폭력적이었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비정상적이었다. 하모니카를 잘 불어서 하모니카라고 불리는 아이(내가 지어준 별명이다)는 환각 상태에서 싸움을 하다가 까불이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었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은 죽거나 교도소에 가거나 행불되어 하나둘 사라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하곤 했다. : 우리 병 들어 죽을지언정 행불(행방불명)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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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11-26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른 알약, 러미널이라고 예전에 이 서재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클린트 이스드우드는 참 신기한 게, 내용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세월 동안 매번 비슷한 얘기(유사가족)만 하는 것 같은데 이게 질리지가 않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11-26 12:29   좋아요 0 | URL
러미널은 사실 하얀색 알약이죠. 사람들이 이 알약 열 개씩 , 물 없이 씹어서 아작아작 먹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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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클옹 영화는 모두 다 유사 가족의 복원 욕망을 다루죠. 똑같은 얘기인데 변주 솜씨가 좋다 보니 질리지가 않죠. 가족이라는 주제는 사실 무궁무진한 소재이니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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