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가성비에 대한 환상
비비케이(BBK)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제대로 된 사회에서라면, 거의 반년 안에 스무 권이 넘는 논픽션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그 가운데 어느 한 종이 100만부나 팔리고 그게 시중의 화제가 되고 칼럼에 오르내리는 사회가 <엄마를 부탁해> 같은 소설이 100만부나 팔리는 사회보다 훨씬 바람직할 수도 있다.
ㅡ 장정일
자본주의 상품 가운데 " 가성비 " 가 가장 낮은 것은 책'이다. 책이라는 상품은 소비자가 지급한 가격에 비해 큰 효용(실용)을 주지 못한다. 투자 비용과 독서를 위해 소비된 시간을 감안하면 쾌락(만족)은커녕 오히려 고통을 선사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 스터전의 법칙 > 을 생각한다. 모든 것의 90%는 쓰레기 !
그중에서도 가성비가 최악인 상품은 제임스 조이스의 << 더블린 사람들 >> 일 것이다. << 더블린 사람들 >> 은 읽는다는 행위가 고문의 한 형태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제품이다. 독서 행위가 마라톤 경주라고 했을 때, << 더블린 사람들 >> 에는 깔딱고개가 수십 개 등장한다. 완주할 수 있을까 _ 라는 의문이 계속 들지만 의문이 계속될수록 결승점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목표는 기록 경신이 아니라 완주'가 아니던가 ! 독서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다. 고로 간서치는 마조히스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가성비가 낮다는 것은 좋은 상품이라는 의미'이다.
260억이 넘는 스위스 파텍필립 수제 황금 회중시계는 실용과 효용적 측면만 놓고 보면 형편없다. 시간을 보기 위해 이 시계를 구매하는 억만장자는 없다. 이 시계는 오로지 감상용일 뿐이다. 반대로 가성비가 높다는 것은 하품(下品)을 의미한다. 이런 상품들은 대부분 박리다매 전략을 통해서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사고 읽는 행위는 럭셔리한 것이다. 한승태 노동 에세이이자 르포 문학이라 할 수 있는 << 고기로 태어나서 >> 는 내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다(문학 분야에서는 애나 번스의 << 밀크맨 >> 을 추천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한국 출판문화에서 불모지라 할 수 있는 르포르타주에서 이룩한 뛰어난 성취라 무엇보다도 반갑다(출판 문화 강국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논픽션이다). 평소 소설과 시만이 위대한 문학 예술이라고 믿는 문인(문단)의 지랄같은 허세가 역겨웠는데 이 작품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로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픽션 대신 논픽션을 선택한 로이는 문학 한다고 힘 주는 작가들에게 묻는다. " 대체 언제부터 작가들이 논픽션 쓰기를 포기했는지요 ? "
이 책은 저자가 몸소 체험한, 고기로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는 닭/돼지/개 농장 현장을 다룬 르포인데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문학적 재능에 힘입어 쉽게 읽힌다. 사육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다. 이 책을 읽다 보면 " 사육장 " 이라는 단어는 " 살육장 " 을 은폐하기 위해 사용한 나치의 언어규칙(Sprachregelung)화'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나치는 < 학살 > 이라는 표현 대신 < 최종해결책> 이라는 단어로 은폐했다). 저자는 동물농장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동물을 기르기 위한 노동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기 위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장이 늦은 병아리와 돼지는 그 자리에서 즉결 처리, 도태, 청소된다. 동물 복지 윤리에 따른 애도도 없고 절차도 없다. 병아리 다리를 잡고 머리를 시멘트 바닥에 내리치는 것이 전부다. 새끼 돼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생명이란 질긴 것이어서 머리가 으깨진 병아리 더미에서도 아프다고 밤새 운다고 한다. 우리가 가격 대비 최고의 단백질 공급원이라고 찬양하는 치느님의 고단한 일생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 보민 치느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 표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들이 찬양하는 치느님은 닭 농장에서 평균 35일을 산다. 닭이 13살까지 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너무 짧은 생'이다.
얼마 전, 키우던 개가 죽었다. 대형견이어서 수혈 1회 비용이 150만 원이었고 하루 입원비는 40만 원이었다. 개에게는 피가 필요했고 그럴수록 나는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돈 때문에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개가 죽은 후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다짐이 영원한 결의가 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개 한 마리 입양해서 키울 생각이다. 젊은 녀석보다는 늙은 녀석을, 예쁜 녀석보다는 흉한 녀석을, 순종보다는 믹스견을 입양의 조건으로 고려해 보아야 겠다.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으면 한다. 한국 출판 문화에서 훌륭한 르포르타주를 만난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행운이다. 이 책은 기(록하는)자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고 소설가의 르포르타주로도 훌륭하다. 저자 한승태는 기자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지만 둘 다 해냈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