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치 도 록 꼴 리 고 싶 다 :
남성애와 가족애와 인간애가 동시에 조우할 때 :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2인칭 소설 << 아우라 >> 를 흉내 내자면 : < 너 > 는 인간을 혐오하기 때문에 인류를 사랑하게 되었다. 만약에 인류마저 혐오하게 되었다면 너라는 놈은 희대의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너'는 나다. 그러니까 인류애'라는 카테고리는 내 안의 악마(성)을 컨트롤하기 위한 최후 보루인 셈이다.
이 형용모순이 이율배반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 형용모순과 이율배반이 나의 정체성'인 셈이다. 인간을 싫어하다 보니 인간 몇 놈이 모이면 꼴도 보기 싫다. 오고 가는 입말에 싹트는 우정 운운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고가는 입말에 싹트는 것은 빈 쭉정이'일 뿐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듣고 싶은 것은 진실 따위가 아니라 " - 날씬해졌다 " 는 말과 " - 예뻐졌다 " 는 거짓말'을 듣고 싶을 뿐이다. 그나마 " - 우리가 남이가 " 라는 우정 과시형 거짓말에 비교하면 양반이다. 알탕 모임에서 누군가가 내게 우리가 남이가 ! _ 라고 외치면
나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만 니힐하며 시니컬하게 말대답을 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남이지 님이니, 니미. 그러다 보니 가족주의보다는 개인주의를 옹호하게 되었다. 골방에서 죽은 듯, 혹은 죄지은 듯,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여, 제발 닥치고 골방에서 조용히 살아라. 취향이 이토록 고약하다 보니 지나치게 남성성과 가족애를 강조하거나 인간애를 찬양하는 영화'는 아연실색 넘어 아연질색하게 된다. 영화 << 실미도 >> 는 이 모든 것을 강조해서 나를 무간지옥으로 이끈 대표적 영화'에 속한다.
IMF 이후 게릴라성 집중호우처럼 집요하게 양산되었던 "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하는 영화-들 " 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한국 남성의 뻔뻔함'이다. IMF 이후, 한국 영화들이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하는 동안 여성이라는 존재는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기껏해야 영화 << V.I.P >> 엔딩 크레딧에서는 여자 시체1,2,3,4,5,6,7,8,9,10,11 따위로 등장하거나 << 남한산성 >> 에서 대사를 하는 여성은 고작 5살짜리 여자아이'가 전부였다. 또한 영화 속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여성은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괴물, 미친 여자, 유령 따위)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IMF 때 남성이 고생했다면 여성은 개고생했을 것이 자명한 데에도 그것에 대한 성찰은 없다.
영화 << 실미도 >> 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목에 핏대 세우며 외친다. " 우린 죽디 않아 !!!!!!!!!!!!!!!!!!!!!!!!!!!!! " 나는 이 샤우팅이 사회/경제적 발기 불능에 대한 한국 남성의 신경 쇠약 직전의 정서적 지랄'로 읽었다. 나는 극장에서 혼잣말을 했다. " 그래, 다시 꼴릴 수 있어 ! 실미도 대원들, 용기 내...... " 내가 이 영화가 괴랄했던 이유는 임포텐츠 환자들이 집단으로 나와 말할 때마다 느낌표 열 개를 남발하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 나도 꼴리고 싶다아아아아 !!!!!!!!!!!!! " 맙소사, 이런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동원했다니.
미치도록 꼴리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을 떼창하다니. 오오. 하나님, 맙소사.
덧
영화 << 마이파더, 2007 >> 는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을 간 남성이 성인이 되어 사형수인 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휴먼 드라마로 모성애 못지 않게 부성애를 강조한 영화'다. 아따, 그 부성애가 단장의 고통을 리얼리티하게 전하니 눈물이 박연폭포처럼 쏟아진다. 그런데 실화 속 주인공인 사형수는 모녀를 수십 조각으로 토막살인 한, 매우 극악한 흉악범이었다. 여기서 반전 하나 ! 실제로 아버지와 아들은 부자 관계가 아니었다. 사형수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가짜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만들어졌다. 그 시대에는 고개 숙인 남성을 위로한답시고 이런 인간조차 휴먼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는 시대였다. 참... 좆같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