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하면 접니다
인간은 학습된 위선을 연출한다. 그래서 우리는 - 선한 척, - 깨끗한 척, - 불쌍한 척, - 예의바른 척, - 예쁜 척을 한다. 척하기가 위선의 한 종류라는 점에서 일상생활에서 연출되는 우리의 연기는 위선이다. 인간은 혼자일 때에는 다큐를 찍지만 사람과 대면할 때에는 영화를 찍는 법. 나 또한 상대와 상황에 따라서 선한 척, 불쌍한 척, 예의바른 척한다. 나는 서산 간월도 피조개처럼 음흉하게 피식 쪼개며 말한다. " 척하면 접니다, hahahahahahaha " < 척하기 > 를 조금 고상하게 표현하면 " 전략적 의태 " 요, " 상호작용 의례(Interaction Ritual, 어빙 고프먼) " 이다.
쉽게 말해서 : 언행불일치라 할 수 있는 " 뒤로 호박씨 까기 (행위) " 는 인간의 속성'이라는 말이다. 누군가가 " 나는 뒤로 호박씨 까는 사람이 제일 싫어 ! "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뒤로 호박씨를 제대로 까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부류는 남이 안 볼 때에는 위, 아래, 앞, 옆에서도 깔 사람이다. 고마 해라, 마이 깠다 아이가.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인간과 인간은 서로 " 연극적 접근 " 으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과 뒤가 다른 속셈을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사회화된 인간의 표상인 셈이니까 !
위선이 사회에 필요악인 이유는 이 행위가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조금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 선한 척 > 은 비록 그것이 가식의 결과'라 해도 결국에는 선한 행위의 유사 실천이니깐 말이다(위악이 악한 척하는 행위'이지만 결과적으로 악한 행위로 종결되듯이). 그렇기에 사회는 당신에게 " - 척하는 삶 " 을 은밀하게 종용한다. 정리하자면 위선은 정의와 함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위선의 반대편은 선'이 아니다. 오히려 위선은 선의 결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육식을 하는 사람이 동물권(동물 윤리, 동물 복지)을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다.
언행불일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동물 학대에 반대하며 동물권을 주장하는 잡식주의자의 선의를 우리는 과연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잡식주의자는 동물 윤리 논쟁에서 빠져, 라는 프레임을 조직적으로 유포하는 쪽은 축산업 자본가'다. 채식주의자만이 동물 윤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주장은 결국 채식주의자가 아닌 대다수의 입에 자물쇠를 걸게 되는 결과이니 그들 입장에서 보면 동물 윤리를 주장하는 이의 목소리를 소수 의견으로 묶을 수가 있다. 정치적 행위에서 가장 중유한 것은 " 쪽수 " 이니 결과적으로 이 프레임은 자본가-기득권에게 유용하다.
이 프레임 전략을 사용하면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 하워드 진 교수는 위선의 아이콘이 된다. 그는 자본가(자본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했는데 이 행위는 언행불일치'이다. 하워드 진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본주의 미국 사회에서 돈을 벌어 상품을 구매하고 여행도 다니니 위선인 셈이다. 링컨은 어떤가 ? 백인 주제에 감히 흑인 노예 해방을 ?! 얼굴에 숯 칠이라도 해야 진정성이 있는 것 아녀 ? 이 얼마나 웃기는 PC냐, 에이씨 ~ 조국 논란도 마찬가지다. 강남에 사는 사람이 강남 기득권'을 비판하는 것을 두고 무조건 위선이라고 말하는 것,
특목고를 비판한 사람의 자녀가 특목고에 진학한 것을 두고 당신은 진보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워드 진에게 당신은 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벌이를 하냐는 질문과 같다. 흙수저가 금수저를 욕하는 것보다는 금수저가 금수저를 욕하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 대한민국에도 상위 1% 부자세를 부과하라고 주장하는 월트 디즈니의 손녀 아비가일 디즈니 한 명쯤은 있는 것도 좋은 그림이 아닐까 ?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격동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혼자 비를 맞고 서 있는 조국을 보다가 문득 태풍 링링'이 생각났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태풍 링링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를 위해 직접적 영향권에서 우뚝 선 적 있었느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