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O K E R 











 






<< 베트맨 >> 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커 캐릭터를 따로 떼어 만든, 조커의 기원'을 담은 영화 << 조커 >> 가 곧 개봉(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작 << 베트맨 >> 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뤘으니 프리퀼(Prequel)이자 원작의 파생상품에 가까우니 스핀오프(Spin-off)의 성격을 띠는 후속작'이다. 개인적으로 " 조커 " 라는 캐릭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모처럼 기대되는 개봉 예정작'이 나왔다. 더군다나 조커 역을 호아킨 피닉스'가 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기립박수를 쳤다.  병리학적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호아킨 피닉스 만한 배우를 찾기란 드물뿐만 아니라 어릴 적 구순구개열(흔히 언청이라 부른다)에 의한 입술 흉터를 가지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와 조커는 서로 닮은 흉터를 간직한 운명론적 쌍생아'가 아닐까 ?  조커는 베트맨의 반대말'이다. 베트맨이 자본가 계급을 상징한다면 조커는 노동자 계급을 상징한다. 또한 베트맨이 남근을 상징하는 방망이(bat : 박쥐라는 뜻과 함께 야구방망이라는 뜻도 있다)를 손에 쥔 남성 자경단을 대표한다면 조커는 찢어진 입술을 가진 여성성'을 대표한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입술은 여성 성기와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조커는 베트맨의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 베트맨 >> 이라는 영화의 핵심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조커의 서사'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은 2012년 8월 4일에 작성한 글 << 베트맨보다는 조커에게 경배를, 부제 0에 대한 모든 것 >> 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이다. 예고편만 놓고 보면 조커에 대한 나의 캐릭터 분석은 정확한 편이다.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아들로 등장한다. 




옛날부터 조커/광대'는 왕의 노리개로 내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 여자 같은 남자를 조롱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내시 같다는 말이다. ) 이성복 시인이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탄했다면,  나는 " 아, 부, 부부부부부부불알'이 없는 것들 ! " 이라고 외치겠다. 영화 속 조커는 좆이 없는 존재다. 이러한 사실은 상처 입은 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입을 90도 각도로 틀면 입이 여성 성기'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조커의 입술이 유난히 강조된 이유는 바로 조커가 여성(성을 간직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술이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찢어졌다는 것은 조커가 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찢어진 입은 강간, 낙태, 임신중절'을 연상케한다. 조커는 남성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적출된 낙태아'이다. 지금 그녀는 복수를 하기 위해 배트맨과 싸움을 신청한 것이다. 말 그대로 방망이를 든 사내와 세기의 성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bat는 말 그대로 야구 배트'를 의미하지 않은가 ? 몽둥이란 폭력적 가부장의 대표적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라캉은 여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 "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0'이다. 그러므로 조커는 여자다. 왜냐하면 카드에서 조커는 숫자 0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조커'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응징하기 위해 나타난 조커 ! 얼마나 멋진가. 남근을 닮은 그 몽둥이'를 부러뜨리기 위해 그녀는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은 bat가 아니가 bad다. 그는 나쁜 놈이다.  

 ㅡ << 베트맨보다는 조커에게 경배를, 부제 0에 대한 모든 것 >> 201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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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9-01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커를 배트맨의 또 다른 자아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는데, 곰곰발님의 해석과 좋은 대조가 되는 듯 합니다.^^:)
 









" 23시간 59분 59초 " 의 세계






이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



현대는 이미지 시대'이다.  옛날에는 정보를 문자에서 얻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글자'보다는 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중심의 정보 플랫폼'이다. 그렇기에 인스타그램에서 " 핵인싸 " 가 되기 위해서는 사진을 많이 올려야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통되는 가장 흔한 사진은 자신의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이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그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그 사람의 하루'가 어떠했는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것은 24시간에서 겨우 " 1초의 세계 " 를 인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23시간 59분 59초는 공개되지 않은, 감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화된 1초의 세계가 그 사람의 하루를 대표'한다. 단언컨대, 웃고 있는 얼굴 사진을 자주 SNS에 자주 올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굳이 공유 플랫폼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광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을 감추기 위해서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웃음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스마일, 찰칵 ~ 나는 인화된 1초의 세계를 볼 때마다 그 사람의 23시간 59분 59초의 세계'가 궁금해 진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부자가 빈자 앞에서 명품으로 부를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을 올릴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그것은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이니까. 내가 속을 줄 알았지 ?  하여, 나는 행복하다. 타자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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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01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 가져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sns을 안 해요. sns에 게시물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면서 광고하는 일에 몰두하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1 11:25   좋아요 0 | URL
요즘은 무엇을 먹었는지도 항상 일단 사진을 찍곤 하죠. 왜 음식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는지 모르겠군요. 참, 요즘은 영화 티켓 인증샷도 엄청 찍던데. 이거 왜 찍는 거죠 ?
 



​                      


정 치 와   영 화   : 








조국, 의혹의 전망대
















                                                                                        세계 최초의 영화는 << 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6 >> 이다. 1분이 채 안 되는 영화'이니 " 최초의 영화 " 라기보다는 " 최초의 움짤(최초의 ㅡ 비디오 클립, 동영상, 뉴스릴) " 이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움짤-계의 박혁거세 격인 이 영화를 보고 싶다면 유튜브'를 통해 확인하시라.  내용은 제목 그대로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담았다.  최초의 영화에 초대된 최초의 관객은 열차가 도착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열차가 스크린을 뚫고 객석으로 돌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극장 빤스런 사건'이다. 이 믿을 수 없는 " 옛 어르신의 빤스-런 " 은 그 당시에는 상식'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오히려 기차의 움짤을 보고도 튀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관객의 행동이야말로 튀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대에 그리피스 감독은 서로 다른 시기에 발생한 4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한, 플롯과 내러티브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 인똘레랑스 Intolerance: Love's Struggle Throughout The Ages, 1916 >> 를 만든다. 이 영화는 후세에 시대를 앞선 진일보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영화와 관객의 수준 차이'이다. 기차가 도착한다고 빤스런 했던 관객이 이 복잡한 내러티브와 세련된 플롯 그리고 영화 문법이 전무했던 시대에 교차편집과 평행편집을 선보였으니 당시의 관객이 이 영화의 급진적인 미학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이 영화에는 엑스트라 4천 명과 말 1만 마리'가 동원될 만큼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었지만 흥행에 참패함으로써 " 미국 영화 


역사상 첫 번째 메이저 박스오피스 재앙 " 이 되었다. 이처럼 특별한 것(영화의 작품성)과 평범한 것(관객의 수준)의 간극이 클 때 비극은 발생한다. 오손 웰즈는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걸작 << 시민 케인 >> 의 흥행 참패로 몰락했다. 이 영화는 관객뿐만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신랄한 혹평을 받았다. 찰떡을 만들었는데 개떡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버스터 키튼 또한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 제너럴 >> 을 완성했으나 흥행 실패로 몰락했으며, 마이클 치미노의 << 천국의 문 >>은 후세에 " 저주받은 걸작 " 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감독에게는 치명적인 아퍼컷'이었다. 그외 몇몇 천재 감독들도 그런 방식으로 잊혀져 갔다. 


이 글에서 언급한 << 인톨러런스 >> , << 시민 케인 >> , << 천국의 문 >> 은 모두 복잡한 서사의 영화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관객은 단선적이며 단순하고 선명한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 해도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여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면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판을 정치판으로 옮기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조국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단선적이고 단순하며 선명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유권자'에게는 꽤나 복잡하며 배배 꼬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 배배 꼬였네 ~ 들쑥날쑥해 ~ " 


조국 딸 특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 학종 " 이라는 별종을 이해해야 하고, 수시와 정시의 세계를 파악해야 하며, 특례와 특혜의 사전적 차이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깐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내러티브와 플롯이 복잡해서 관객은 조국이라는 캐릭터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헷갈린다. 마치 << 천국의 문 >> 에서 제임스'라는 캐릭터를 두고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를 두고 끝장 토론을 펼치는 영화광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 그러다 보니 같은 영화인데도 영화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못해 초초하다.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꽤 훌륭한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국은 입시제도의 특례를 활용한 것이지 특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한국인의 특권 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자신이 누렸던 특권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흑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에서 " 흑인 " 여자를 보지만 백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에서 " 여자 " 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특권을 가진 자는 특권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복잡한 내러티브를 20자평으로 요약하는 기술이 탁월한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린 20자평은 다음과 같다. " 특례는 활용했으나 특혜는 없었다. " 이 20자평을 보다 짧은 10자 내외의 촌평으로 압축하자면 " 특례 OK, 특혜 N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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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8-31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국 개인보다도 이 ‘문제적 인물‘을 자기 편의적, 일방적, 단선적으로만 해석하는 이들을 볼 때면 두통을 느낍니다. 자한당 계열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조금도 인지하지 않으면서 조국 일인 때리기에만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고, 민주당과 우호적인 사람들은 ‘자한당 배후설‘을 주장하거나 ‘오직 조국만이 희망이다‘라는 식으로 일관하면서 특례의 문제성과 정당성에 대해선 ‘그래도 불법은 없었다‘는 태도만을 보이고 있더군요.
저도 제 서재에 조국에 관해서 쓰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조국 일인의 장관 임명 여부를 넘어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치적 정직성, 기득권의 형성과 대물림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부언을 하자면 저는 일명 SKY라고 불리는 대학들에 소속된 학생들이 추진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도 (그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심과 아쉬움도 들더군요. 이들도 이른바 ‘명문대‘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지언정 자신들의 출신 성분이나 입학 과정, 입신 욕망에 대해서는 자기 점검하는 기색이 별반 없더군요. 과연 이런 이들이 ‘명문대‘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 그 대학조차 갈 여력이 없어서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젊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1 15:04   좋아요 1 | URL
저도 서울대 고대 촛불 집회 보고서.. 의아.... 아니 그들은 ˝ 기울어진 운동장 ˝ 운운하던데, 사실 그들도 기득권의 핵심에 진입한 이들 아닙니까.... 좀 웃긴 일이었음 -_- , 조만간 한 잔 ~

겨울호랑이 2019-08-31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 명쾌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1 15:03   좋아요 1 | URL
ㅎㅎ 명쾌하쥬 ?
 











조국과 케네디







                                                                                               며칠 전에 조국에 대한 짧은 글을 쓴 적 있다. 그때 내 결정은 " 에포케(판단 정지) " 였다. 쏟아지는 의혹(조국 후보'로 검색되는 기사 567,998건)이 너무나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의혹은 과연 정당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의문도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에포케 선언은 언론이 쏟아내는 정보 홍수에 대한 피로감의 반향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언론은 " 조국 " 이라는 키워드를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 거룩 " 한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 얼룩 " 이 묻은 인간이었다는 폭로야말로 느와르 펄프픽션의 짜릿한 서사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들이 내놓은 의혹은 때론 터무니없거나 혹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정당한 것처럼 보였다. 조국 딸 입시 논란(에 한정해서)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 가족이 일반 국민에 비해 학종의 정보를 과독점했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보 접근성이 일반인보다는 특권 엘리트에게 유리하게 짜여진 ㅡ 공정하지 않은 교육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제도화된 틀 안에서 정보를 최대한 활용한 것뿐이다. 마이클 키멜은 백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에서 " 여자 " 를 보고, 흑인 여자는 거울 속에서 " 흑인 " 여자를 발견하고, 백인 남자는 거울 속에서 " 인간 " 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특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결핍은 눈에 잘 띈다. 다이안 아버스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치명적 약점이 된다. 다시 거울 이야기로 돌아가자. 두 여성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은 백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흑인이다. 백인 여성이 말했다. " 모든 여성은 여성으로서 동일한 억압에 직면해 있어. 그래서 여성은 연대감이나 자매애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 


그러자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의 말을 되받아쳤다. " 나는 너의 말에 대해 확신이 없어. 내가 질문 하나 해도 될까 ?  네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볼 때 뭐가 보이지 ? " 백인 여성은 당연히 거울 속에는 여자가 보이지 _ 라고 말한다. 그러자 흑인 여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한다. " 그렇지, 나한테는 그게 문제야. 왜냐하면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나는 흑인 여자가 보이거든. 나한테 인종은 가시적인 거야. 하지만 너에게 인종은 눈에 보이지 않지. 넌 그걸 보지 않아. 그게 특권이 작동하는 방식이지.  특권은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아 ! "  


이 대화에서 흑인 여성의 지적이 백 번 천 번 옳다고 해서,  우리는 백인 여자가 거울 속에서 " 여자 " 를 본 인식론적 인지 행위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도덕적 오류도 아니고 인식론적 오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조국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특권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행위를 무조건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닐까 ?  거울이 왜곡된 상을 비춘다면 우리는 기꺼기 그 거울을 깨야 한다.  당신이라면 그 왜상의 거울을 깨는 도끼는 누구 손에 쥐여 주어야 옳을까. 나무꾼에게, 아니면 난봉꾼에게 ? 


"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  오해는 마시라. 나는 조국 열혈 지지자'는 아니다. 그 유명한 케네디의 연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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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30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3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0 16:48   좋아요 0 | URL
정말 5000원 안냈다고 지랄했었나요 ?

2019-08-30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1 15:01   좋아요 0 | URL
크아아아아아아아아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그런 일도 있었군요. 역대급이네요.... 적성회비 5000원 미납했다고 지랄하는 것은 아스트랄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척하기에는 :










비웃음





 


▶  비의 몰락을 가속화한 전설적인 노래로 대중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 작품. 비라는 브랜드에 지나친 자신감을 선보여 " 레이니즘 " 이라는 해괴망칙한 작명으로 자신을 뿜뿜 할 때부터 그를 좆같이 생각한 나는 깡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는 깡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 너, 좆됐어. 쪼다야 ~ " 









                                                                                                   직장에서 윗사람이 웃기지도 않는 쌍팔련도 개그를 선보일 때 아랫것은 쌍팔들어 환호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농담꾼은 보기 좋았어라. 웃기냐, 나도 웃기다 !  아재는 젊은 사원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에 불알이 탱천하여 의기양양하다. " 이 나이에도 저 어린것들을 웃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란 말인가. 나란 존재는 그런 존재다. "  모두 다 쌍팔 머리 위로 손 들어, 예 ~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웃어 젖히는 일도 힘든데 그 농담이 약자를 희화화하거나 성적 농담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래도 웃어야 산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의 애티튜드'이다. 웃음과 미소는 약자의 방어 무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웃(어야 하)고, 윗사람보다는 아랫것이 더 많이 웃는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웃음 때문에 울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  이토록 포지티브하고 투머치 해피한 감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감정 노동'일 뿐이다. 그런데 사회적 강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보내는 약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약자의 웃음을 오해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죽을 맛이다.  웃음은 비단 약자의 애티튜드'만은 아니다. 강자도 기분이 좋으면 맘껏 웃는다. 그들이 웃는 웃음은 주로 비웃음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흔히 < 비웃음 > 이란 단어에서 " 비 - " 라는 접두사를 非 : 아닐 비'로 오해하는데,  여기서 < 비 - > 는 토종 브랜드 어원'이다. 비의 어원1)을 두고 논란이 많지만 내 생각에는 < 비- > 라는 접사가 " 힘껏 " 의 뜻을 더하는 옛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비웃음은 가짜 웃음이라기보다는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힘껏 웃는 웃음인 것이다. 


종종 조폭 영화에서 눈치 없이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오야붕으로부터 죽도록 맞는 꼬붕을 자주 보게 되는데, 여기서 꼬붕의 죄는 한바탕 웃은 죄'다.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척하기에는 오야붕의 상처가 너무나 크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주변 상황과 관련 없이 힘껏 웃을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오야붕'만 가능하다. 아양이 너무 지나치면 비아냥이 되듯이 웃음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은 더 이상 웃음이 아니다. 비웃음'이다. 자주 하는 소리이지만 꼬붕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오야붕은 손짓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오야붕의 손짓보다 한 단계 위'인 존재는 눈짓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아랫것들의 몫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웃음이 없는 여성은 애교가 없다거나 매력없다고 타박하기 일쑤'다. 반면에 웃음이 너무 많으면 문란한 여성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어느 장단에 웃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타인에게 웃음을 억지로 강요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렇기에 서비스 노동자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여성에게 " 넌 웃을 때가 제일 예뻐 ! " 라고 말하는 교회 오빠 스타일이 최악의 개새끼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놈은 대부분 이런 소리를 자주 한다. " 오빠 믿지 ?  손만 잡고 잘께 ~ " 










​                                  


1) 국어연구원의 대답 : ‘비웃음’은 15세기에 ‘비우’(월인석보 21:15)으로 처음 보입니다. ‘비우’은 ‘비웃-’의 동명사형이 그대로 명사화한 것으로 봅니다. ‘비웃-’은 동사 어간 ‘비-’와 ‘웃-[笑]’이 결합된 복합 동사로 추정되는데 ‘비-’의 정체는 알 수 없습니다. 김민수 편(1997:508) "어원사전"에서는 ‘비-’를 접사로 보고 있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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