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불 앞에서 요리를 하는 것에 대하여 :
에이스 침대와 기생충
10년 전, 가구는 과학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에이스 침대'였다. 에이스 침대 광고 모델이었던 박상원은 이렇게 말한다. "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입니다아. "
이때부터 소비자는 가구 하면 제일 먼저 인체 공학적 설계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 광고로 재미를 쏠쏠하게 본 에이스 가구 회사는 수면공학과학연구소를 설립한다. 공학에, 과학에, 연구에..... 아따, 조또, 대따 머시따. 그런데 가구는 과학이 될 때 미학을 잃는다. 잠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침대가 아니라 근심 걱정이다. 가구가 과학이 될 때 미학을 잃는 대표적인 예가 컴퓨터 의자'이다. 인체 공학적 설계로 만들어졌다는 PC방 컴퓨터 의자의 디자인은 누가 봐도 이상한 가분수'다. 텔레토비 같다고나 할까 ? 의자다운 권위도 없고 세련된 몸매도 없다.
컴퓨터 의자는 마치 스테로이드를 남용한, 상체 운동에만 올인한 늙은 보디 빌더의 최후 같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사두박근, 오두박근은 우람한데...... 남근은요 ?

내 관심사가 의자'이다 보니 영화 << 기생충 >> 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영화 속 소품도 박 사장 집 의자'였다. 공사판에서 나뒹구는 각목으로 만든 것 같은 의자는 누가 보아도 불편한 것처럼 보인다. 팔걸이도 없고, 등받이 면도 없고, 바닥 쿠션도 없다. 인체 공학적 설계와는 거리가 멀다. 가구는 과학이라고 외쳤던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찰 만하다. " 허허. 허리가 불편해서 어디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겠소 ? 허리 다운 되기 십상이오, 허리 업 ! 박 사장, 당장 저 싸구려 의자부터 바꾸시구려. 침대와 의자는 인간의 가장 오랜 벗이라오 ! "
그런데 어쩌나. 봉준호 감독은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소품으로 등장한 쓰레기통이 250만 원, 식탁 테이블이 500만 원 그리고 의자 하나에 2,500만 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자 세트 가격이 아니라 의자 한 개 가격이 말이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말한 의자는 이 의자가 아닐 확률이 높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닥 놀랍지는 않다. 왜냐하면 비싼 의자일수록 불편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인체공학적 편안함을 강조하는 이에게는 이 의자는 불편한 의자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 창조적 생략 " 이다.
내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편리함(편안함)에 대한 현대인의 강박과 믿음'이다. 현대인은 불편하다는 것을 나쁜 요소라고 인식한다. 집을 지을 때도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은 편리이다. 침대, 가구, 신발, 의상도 모두 편리를 우선한다. 하지만 인간은 인체 구조상 편리에 최적화된 존재가 아니라 편리에서 쾌락을 느끼는 존재도 아니다. 때론 불편이 주는 미덕을 그리워한다. 믹스 커피보다 손수 기계로 내린 커피가 맛있는 까닭은 불편한 과정에 쏟는 애정 때문이다. 케이블카를 통해 본 풍경과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다르다. 불편이 죄악이 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하여, 나는 모든 노동자 파업을 지지하며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할 용의가 있다. 학교 급식 노동자 파업을 지지한다. 좋은 의자는 앉기 불편하다.
1) 봉준호 : 박 사장네 집과 기택네 집, 기택이 사는 동네 모두 세트거든요. 특히 부잣집은 가구 하나하나 신경 썼어요. 의자 하나에 2,500만 원에 식탁이 500만 원이더라고요. 임대료도 되게 비싸요. 촬영장에 모포로 덮어두고 애지중지했죠. 정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경수 가격이 그렇게 비싼지 처음 알았습니다.

▶ 봉준호 감독이 2500만 원짜리'라고 말한 의자는 아마도 이 의자'일 것이다. 이 의자는 바실리 의자로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마르셀 브로이어가 1925년에 제작한 의자'이다. 영화 속 의자는 바실리 의자 디자인을 바탕으로 변주된 예'이다. 의자 이름이 " 바실리 " 인 까닭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집에 입주할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별칭으로 " 바실리 체어 " 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공식적 이름이 되었다. 가만 보면 의자의 형태(점,선,면)가 칸딘스키의 회화를 닮았다.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답게 처음에는 대중을 위한 의자였는데 그 의미가 퇴색되어 지금은 사업적 성공과 감각적 우위를 자랑하기 위한 고소득자의 전유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