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리 안 데 쓰 드 라 이 브 :
죽을 맛입니다
한국 사회는 죽음에 대한 강박적 언어 습관을 가진 문화에 속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지배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배고파 죽겠고, 목말라 죽겠고, 외로워 죽겠고, 바빠서 죽겠다고 말한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 가능한 영역이다. 배 고파 죽을 수도 있고, 목 말라 죽을 수도 있으며 바쁘면 과로사로 죽을 수도 있고, 외로우면 괴로우니 죽을 수도 있는 아이러니. 아니 그러니 ?
그런데 우스워 죽겠고, 행복해 죽겠고, 예뻐 죽겠고, 미워 죽겠고, 심심해 죽겠다 _ 라고 말하면 복잡하다. 죽을 일이 많기로서니 바빠서 죽고, 우스워 죽고, 행복해 죽고, 심심해 죽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미워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은 아스트랄하다. 심심한 상황을 좋아하는 나는 심심해 죽겠다 _ 라는 경고성 멘트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이러다가 나 정말 죽는 거임 ?! 이처럼 한국인은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죽음 직전까지 간다. 주성치 영화를 보며 낄낄거리다가도 웃다가 죽는 꼴을 상상하면 정말 웃기는 상황이어서 몸서리나게 된다.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결국 생에 대한 강한 의지가 표출되는 모양이다.
한국인은 보신을 위해서라면 개불 알까지 뜯어먹을 기세다.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닥칠지도 모르니 거시기를 뜯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할 때마다 " ~ 해서 죽겠어 ! " 라는 한국 특유의 죽음 충동(코리아 데쓰 드라이브 ?!)을 자주 언급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건강 염려증 환자의 럭키금성 삼 파장 발광 다이어드적 초정밀 극성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아따, 참말로 찌릿찌릿하다. 오호통재다. 자주 죽는 남자가 있다. 유덕화는 영화 속에서 자주 죽는다. << 천장지구 >> 에서 코피를 흘리며 죽기 시작하더니 << 복수만가 >> , << 지존무상 >> , << 용재강호 >> , << 결전 >> , << 삼국지 : 용의 부활 >> , << 무간도 >> 에서도 죽는다.
대부분 장렬하게 죽지만 때론 비렬한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장렬하게 죽는다. 그는 멋지게 죽는 데 최적화된 배우이다. 그의 연기 철학은 목련처럼 지저분하게 죽느니 동백꽃처럼 단칼에 죽는 연기력을 선보인다. 입만 열었다 하면 죽을지도 모른다며 징징거리는 캐릭터라면 이룰 수 없는 폼사의 경지'이다. 이런 경우를 두고 " 죽을 맛 " 이라고 하는가 보다. 제작자가 이 사실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유덕화는 자주 죽는다...... 폼생보다 어려운 것은 폼사'다. 그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폼생폼사한다. " 폼生 " 은 자기 의지가 반영된 결과이지만 " 폼死 " 는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다. 사람들은 개똥밭에서 뒹굴지언정 멋지게 죽고 싶어 환장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니 말이다. 살아서 " 폼생 " 을 성취할 기회조차 없었던 나는 유덕화가 멋지게 죽을 때 항상 감탄하게 된다. 나에게 폼생폼사는 불가능한 판타지이기는 하나 적어도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다는 생의 의지는 없다. 적멸(寂滅)하는 것이 내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