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도 준치와 집나간 며느리 :
밥그릇 크기, 실화냐 ?

이 스틸은 이봉래 감독이 1962년에 연출한 << 월급쟁이 >> 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오른쪽에는 젊은 엄앵란이 밥그릇 위에 손을 얹고 행복하게 웃고 있다. 밥그릇 크기가 국을 담는 그릇보다 2배 이상 크다. 그 옆에 앉은 꼬마의 밥그릇도 성인 밥그릇과 같다. 현재 식당에서 파는 공깃밥 그릇보다 최소 3배 이상은 크다(양으로 따지자면 어림잡아 4배 이상 많은 것 같다). 그러니까 1960년대 사람들의 한 끼는 현대인이 하루에 세 끼 먹는 밥의 총량보다 많았다. 밥그릇 크기, 실화냐 ? 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5,60년대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일을 유일한 낙으로 사는 내가 그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응, 실화야 !
이 그릇은 영화용 소품이 아니라 실제로 5,60년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밥그릇이라고 한다. 소국에서 벌어지는 대식의 풍모는 전설이 되어서 서양 사람들이 조선인을 두고 놀라울 정도로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 민족이라고 서술한 기록도 있다. 이 스틸 장면은 중요한 정보 두 가지를 현대인에게 알려준다. 첫째, 탄수화물 중심 식사는 비만의 주범이 아니다. 둘째, 탄수화물 중심 식사는 성인병의 주범이 아니다. 5,60년대는 한국인이 가장 날씬했던 시대로 고혈압과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식품 기업의 스폰서를 받아 가며 대중에게 가짜 정보나 흘리는 사이비 식품 영양학자들이 " 비만의 주범은 탄수화물 " 이라는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
저탄고지가 다이어트 식단으로 유통되면서 고탄이 비만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탄수화물은 죄가 없다(물론 지방도 죄가 없으며 저탄고지 식단도 죄가 없다). 탄수화물이 죄인이라면 한 끼 식사로 현대 한국인의 세 끼보다 많은 밥을 먹어치웠던 5,60년대 한국인은 비만과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했어야 한다. 저탄고지 식단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인 이유는 맛이 없다는 데 있다. 설탕과 양념을 최대한 제한한 음식이 바로 저탄고지 음식이다. 우리는 < 저탄고지 > 가 제한 없이 마음껏 먹어도 좋은 마법의 다이어트 식단이라고 믿고 있지만 저탄고지 식단이 체중을 감량시키는 원인은 저탄고지 음식 맛이 일반 음식보다 맛이 없어서 식사량이 줄어든 탓이다.
그리고 가공식품과 외식 음식은 저탄고지 식단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외식과 간식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하루 전체 식사량이 대폭 줄어든다. 매우 클래식한 결론이어서 실망할 수도 있는데 비만의 주범은 탄수화물도 아니고 지방도 아니다. 단순하게 말해서 현대인은 5,60년대 한국인보다 더 많이 먹기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이다. 밥그릇의 크기가 작아졌을 뿐 하루 식사량의 총량이 5,60년대보다 크가 증가하였다. 그렇다면 과식을 부르는 요소는 무엇일까 ?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매우 클래식한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음식이 맛있으니까 ! 물을 과음하는 이는 없다. 물이 맛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향미와 조미와 감미료를 탄 청량음료는 얼마든지 과음할 수 있다.
이처럼 향미와 조미와 그리고 감미료의 발달이 음식 맛을 폭발적으로 증진시켰다. 여기에 더해 고춧가루와 고추장이 착색료 역할을 담당하니 시각적으로도 풍부해진다. 떡볶이가 맛없다는 황교익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이다. 하지만 정크푸드'이다. 음식으로써 가치가 없다는 말이다. 황교익은 단짠 음식(설탕과 소금)이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이라고 주장하지만 진짜 범인은 < 맛 > 이다. 맛있는 음식이 비만을 부른다. 그런 점에서 맛집을 찾아 소개하고 맛을 예찬하는 황교익의 태도는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황교익이 " 말이 맛을 만든다 " 고 주장하는 것은 경청할 만하다. 전어와 준치는 종종 같은 말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전어는 청어목 청어과이고 준치는 청어목 준치과이다.
맛도 비슷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서 전어를 준치라고도 하고 준치를 전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내가 전어와 준치를 예로 든 이유는 상업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때문이다. 준치는 " 썩어도 준치 " 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고 전어는 " 집 나간 며느리 " 로 유통되었다.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프레임은 2000년대 만들어진 전략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어는 실제로 맛있는 생선이 아니다. 옛날에는 맛없는 생선이어서 동물 사료로 사용되었던 매우 값싼 생선이었다. 그랬던 전어가 집 나간 며느리라는 프레임이 덧씌워지자 환장할 맛으로 둔갑하였다. 반면, 준치의 프레임 전략은 실패하게 된다. 준치 하면 " 썩어도 ~ " 라는 나쁜 어감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준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만하다. 준치나 전어나 맛은 서로 대동소이한데 말이다.
이처럼 맛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말이다. 포방터 돈가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돈가스가 된 것도 맛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종원의 말이 큰 작용을 한 것이다. 맛집은 대부분 외진 곳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그토록 맛있다는 포방터 돈가스가 외진 곳이기에 장사가 안된다는 서사는 쉽게 납득할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 권위를 부여받은 누군가가 맛을 보장하는 순간 맛없던 음식도 맛있는 음식으로 등극하게 된다. 맛을 믿는 것은 어리석다. 환상적인 맛은 대부분 환상이다. 맛은 환상이다.
■ 덧대기
저탄고지식을 하기도 했고 자연식물식을 하기도 했으나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완수하지 못한 채 지금은 일일일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도 저탄고지식과 자연식물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자연식물식이 저탄고지식보다는 자연스러운 식단이란 생각이 든다(저탄고지식에서 " 고지식 " 이란 표현에 마음에 걸린다, 농담이다). 하지만 자연식물식과 일일일식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일일일식을 선택할 것이다. 일일일식은 혁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