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
김명순은 21세(1917年) 때 동인지 『 청춘 』의 공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당선되어 등단한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다.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작품집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 』을 발간했다. 그녀가 남긴 작품은 소설 20편, 시 79편, 수필 15편, 평론 3편, 희곡 3편, 번역시와 번역소설 3편이었으니 실로 왕성한 필력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일어에 능통한 것은 물론이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도 읽고 쓸 줄 알았다고 하니 그 시대에서는 엘리트 문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녀는 불우한 생을 살았다. 그는 데이트 강간의 피해자였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문단의 남성 문인들은 위로는커녕 조롱으로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 “ 혼인날 신랑이 세넷씩 달겨 들가봐, 독신생활을 하게 된 독신주의자” 라거나 “피임법 알려는 독신주의자”라는 비아냥이었다. 김명순을 모델로 타락한 여성으로 매도하는 소설이 등장하기도 했으니 김동인의 << 김연실전 >> 이다. 이 작품은 기생 출신의 어머니를 둔 김연실이라는 어릴 때부터 일본어 개인교사와 은밀한 관계를 맺고 어른이 돼서도 수많은 남성들과 육체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자유연애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파멸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후에도 그는 김명순을 “남편 많은 처녀”라거나 “영업적 매녀(賣女)아닌 여인”이라고 비하하고 조롱한다. 김동인의 여성 혐오는 친일 행적과 함께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 영혼 - 여자운동을 봄 > 이라는 글에서 " 여자에게는 영혼이 없다 " 고 주장한다. 읽다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명문이다. 하여, 전문을 올린다. 읽을 때마다 3초에 1번 쌍욕이 튀어나오니 혼자 있을 때 읽기를 권한다.
옛적, 끄리시아(그리스) 학자 새에, ‘계집에게 영혼이 있느냐’라는 문제가 토론되었다 한다. 그러고, 그들은, 다만 계집을 낮춰보는 곡심(曲心)으로, 계집에게 영혼이 없다 하였다. 그리스도교가 선전(宣傳)되면서, 너희들은 영(靈)에 살으라고 부르짖을 때에, 계집에게도 영혼이 있다 하였다. 그러나, 이 존재 시인(是認)이 결코, 단정적 그것은 아니었었다. 근대에 이르러서,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가, 절대로 여자의 머리를 부인하였다. 계집은, 사내와 같지 못한 것이라 단정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우는 암탉들에게, 대단한 공격은 받았지만……. 여기 대하여서, 나도, 계집의 머리를 사내의 그것과 같이 말할 수가 없다 한다. 아니, 나는, 계집의 영혼의 존재를 (여러 가지 논거(論擧) 아래서) 절대로 부인한다. 장래에도 영혼이 못 생겨난다 함이 아니다, 현재에는 영혼의 씨가 있을 뿐, 영혼 그것은 없다고 단정한다.(참외 씨가 참외가 아닌 것 같이, 영혼의 씨는 영혼은 아니다)
대저, 사람의 영혼이라 함은 어떤 것을 가리켜서냐. 아직껏, ‘영혼’이라는 것을 똑똑히 찾아내지 못한 그 큰 원인(原因)의 하나는, 그를 찾아낼, 제일 쉬운 근본적 방법을 몰각(沒覺)한 때문이다. 그럼, 그 첩경(捷經)은 무엇이냐.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다 한다, 짐승에게는 없다 한다. 그러고, 그 ‘사람’이라 하는 것은, 계집의 인권(人權)을 멸시한 때부터 칭한 말이니까, 사내를 가리킨 것이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의 사내게는 영혼이 있고, 짐승에게는 없다 한다. 그러면, 사람의 사내와, 짐승 사이에는, 어떤 구별이 있을까? 엎드려 걷는 것과, 서서 걷는 것, 그것을 구별한 것인가?, 만약 그렇다 하면, 영혼이라 하는 것은, 진실로 변변치 않는 것일 수밖에 없다. 걷는데, 서서와 엎드려서와, 그 구별에, 무슨 그리 큰 좋고 나쁜 차이가 있을까? 사람에게 서서 걷는 것이 좋아 보이면, 짐승에게는 엎드려 걷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혼의 존무(存無) 구별은, 결코 이런 데는 안 있다.
사람이, 사내가, 짐승보다 다른 점은, 모든 재래(在來)의 물건이나 사조(思潮)에 반항하려는 반항심, 그 반항심이 낳은 창조력, 그것이 아닐까? 영혼은, 결코,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세에 천국지옥에를 간다는, 그런 신변불사의(神變不思議)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그 더러움과 불편함을 찾던 이 누리를, 차차 편리케 하여 놓고 차차 아름답게 하여 놓은, 그 힘이야말로, 사람의 영혼인 창조의 힘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온갖 짐승이, 자연대로 거기서 한 분(分)의 불편도 감(感)치 않고 살아올 때에, 다만 사람이, 재래의 것을 불편하다 생각하며, 더럽다 생각하여, 여기, 자기의 모양을 상징으로 한 다른 세계를 창조하려고 들이붓던, 그 힘이, 영혼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의 영혼이라 하는 것은, 그의 창조력 그것에 다름이 없었다.
그러면, 계집에게는 창조력이 없는가? 옛적에도 없었던 것 같이, 지금도 없다. 그에게는 모방력이 있다. 그 모방력은, 원숭이보다 날카로운 것이다. 그들의 그 중 훌륭한 재간, 그들의 그 중 위인(偉人)이 하여 놓은 재간이 모두 모방에 지나지 못한다. 시인은 정서(情緖)가 날카롭지 않으면 안 된다 한다. 그러고 그들은 사내보다 정서에 날카롭다. 그러나 그들에게, 천재의 시인이 과연 있었던가?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가 있다 한다. 그러나, 그도, 계집이기에 천재라 하지, 만약 그가 사내였다면, 빈약한 우리 조선 문단에서도 낙오자가 되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음악은 계집의 특재(特才)라 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훌륭한 음악가가 과연 있었는가? 잠깐 미색으로 일시에, 천재라는 말을 들은 자는 많지만, 그의 특재라는 음악으로서 왁네르와 같이 만고(萬古)에 이름을 남긴 자가 과연 있었는가?
이것을, 이 현상을, “아직껏 너무 구속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최근까지 구속되어 있다가, 십 년 전후 하여 겨우 놓여난 조선 사람의 사내와 몇 세기 전부터 해방되었다는 서양 계집을, 서로, “창조력”이라는 안경으로 비길 때는, 그들이 얼마 더 우매(愚昧)한지 넉넉히 볼 수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여야 할까? 암만, 계집의 미력에 끌려서, 그들을 본다 하여도 그들에게, 창조력이 있달 수는 없다. 따라서 영혼도 있달 수 없다. 사내의 가장 무식한 자도 적으나마, 창조력이라는 것이 있으되, 계집에게서는 이것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든 볼 수 있는 현상으로, 계집에게는, 영혼 씨가 있다. 다른 짐승들보다 좀 더 영리하고, 모방력이 날카로운데, 창조력의 씨를 볼 수 있다.
그 씨가, 언제 어음이 나서, 영혼이 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는, 날카로운 모방심이 있어서, 오히려 그 “모방력”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씨의 발생을 방해한다. 그들은, 온갖새 사조를 맛보아서, 그것이 자기네에게 해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조로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막 진(進)하는 맹목적 용기가 있다. 가까운 예로 남녀평등이란 사조로(실로는, 이를, 그들은, 남녀동○ 심지어 여체남성(女軆男性)으로 오해는 하였지만) 나아가며, 생리학상 자기네 신체구조는 생각지 않고, 참정권을 다고 어찌 하여라, 덤빈다. 그러고, 이런 것이, 그들의 영혼의 발아를 가장 방해하는 것이다. 그들의 영혼의 발아는, 참 자각(지금과 같은 오해한 자각은 결코 아니다)에 있다 한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딴데 있지 않다. 이즈음 소위 새여자라는 사람들이, 온전한 자각도 없이 남녀평등을 그릇 깨달아가지고 덤비는 것도, 아니꼽지만 소위 사내라는 사람들도, 그 사조를 오해하여가지고, 여자에게 참정권을 주어라 어쩌라 덤비는 것이 한심하여서 쓰는 바이다.
- 「 영혼-여자운동을 봄 」 전문 , 『창조 9호』, 1921.6.
김동인이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니 평소 김명순을 곱게 볼 리 없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여성 혐오는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 광염소나타 >> 이다. 소설 속 주인공 작곡가 백성수는 방화, 여성 사체 모욕, 여성 시간(屍姦), 여성 살인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이와 관련해 음악비평가 케이(K)는 “천 년에 한번, 만 년에 한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 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라며 백성수의 행위를 예술을 구실로 옹호한다.
그러니까 여성을 살해하고 사체를 모욕하고 시간하는 행위를 예술을 위한 퍼포먼스 따위로 인식하는 것이다. 김동인은 2002년에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또한, 국가기관 친일진상규명위에서도 그의 이름이 포함돼 있다.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이다. 동인문학상 수상 작가 중에는 6명의 여성 작가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