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시공사 베른하르트 슐링크 작품선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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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주정뱅이에 가까웠던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시다 보니 오늘은 귀한 날이다.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을 사서 술상을 차렸다. 호박을 삶아서 믹서기로 갈은 호박 스무디를 만들어 맥주 500CC 잔에 채우고 호박으로 만든 부침개와 돼지고기 큼직하게 썰어 넣은 김치찌개와 밥 한 공기를 담았다.

맥주컵에 소주를 담고 그 위에 거품이 나지 않도록 맥주를 부었다. 물론, 이 과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소맥을 탈 때에는 거품이 생길 때의 공간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소맥을 타기 위해 (소맥을 타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특수한) 소맥 전용 젓가락 한 짝을 컵에 담고 다른 한 짝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이때에도 신중한 계산이 필요하다. 타악의 힘이 젓가락 쇠기둥에 미치는 영향과 맥주 탄산이 이에 반응하는 격랑의 소용돌이를 계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 거품을 만들어 거품을 맥주 유리컵 꼭대기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은 시시포스가 바위를 끌고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

이 작고 즐거운 수고를 위해 나는 오늘도 캄캄한 밤에, 컴컴한 방에 홀로 정좌를 하고 젓가락 쇠기둥을 내리친다. 참선하는 마음, 이와 같으리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소맥을 24시간 동안 굶어서 허기진 위장에 쏟아 넣는다. 방은 고요하다. 티븨도 없다. 아름다운 여자를 생각했다. 알싸하게 퍼지는 술기운이 좋다. 안주로 호박 스무디를 마셨다. 놀라운 사실은, 아니 씨발.......  소맥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그만 인사불성이 되어 작별인사도 못하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는 사실이다.  한때 " 말술 " 을 먹었으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 벼룩(의 간으로 담근)술 " 에도 잠을 자는구나. 일어나 보니 새벽이다. 이 황망함. 뭐랄까 ?  고자가 된 듯한 느낌 ?!  내가...... 고자라니. 아, 내가 고자'라니.  

차라리 계룡산 쌍쌍봉 아랫골의 고라니로 살고 싶다아.  새벽에 일어나 남은 벼룩술을 마셨다.  벼룩의 간이 이런 맛이로구나. 문득, 사랑이라는 것도 소맥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는 시금털털한 보리 맥주와 나라는 맑고 독한 소주가 섞이는 과정. 처음에는 서로의 밀도가 달라서 맥주 아래 소주가 가라앉으나 어느 순간 타악의 힘으로 젓가락 쇠기둥을 치는 순간  맥주와 소주가 격랑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간다는 것, 그 하얀 포말.  아, 저 격랑.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듯이, 소맥을 말아먹지 않은 자는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나는 속으로 말한다. 소맥이 얼마나 맛있다고.

10년 전에 읽었으나 읽은 줄도 모르고 다시 읽은 소설(책 읽어주는 남자)을 생각했다. 이 소설이 오프라 윈프리 쇼의 북클럽 코너에서 소개되었을 때 패널 - 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논란의 핵심은 스물한 살 차이가 나는 열다섯 살 소년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한나의 사랑이 과연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가 _ 라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질문을 받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화가 나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지적한 후,  유럽의 독자들은 단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하엘과 한나를 통해 전쟁 이전 세대와 전쟁 이후 세대의 세대 갈등을 말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 한나 " 를 이해하기로 했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아이가 문자 세계로 진입했는가 못했는가에 따라 상상계와 상징계로 분류했다.  상상계에 머무르는 아이는 당연히 문자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기에 입말(구술성)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한나 슈미츠'가 그런 경우'다.  그녀는 몸은 성숙한 여인이지만 구순기에 고착된 어린아이'이다.  그렇기에 그는 선악의 구별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나치 부역에 대한, 그에 따른 죄의식이 없다.  그녀는 순수한 의미에서 無知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하엘과 한나의 사랑은 그루밍'이 맞다. 

미하엘보다 한참 어린 이는 한나 슈미츠라는 갓난 여자아이'이다. 한나는 교도소에서 문자를 배운다. 

그녀는 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255쪽

그것은 구순기 고착에서 벗어나 성인의 세계로 진입했다는 상징이다. 비로소 한나는 성인이 되어 선악을 구별하게 된다.  결국 한나는 석방 예정일 전날에 목을 매달아 자살을 선택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고 능력에 따라 행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는 어린이로서 사랑을 시작했고 어른으로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을 당신에게 추천한다. 소맥 마시며 소설 읽기 좋은 새벽이다.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좋은, 캄캄한 겨울 새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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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욕 죽겠지, 욕이 욕을 부른다  :




 



백종원 신드롬

 

 

 

 

 

 

                                                                                                                                                                                                                서당개 삼 년이면 " 풍월강산 " 을 읊는다지만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식당개 삼 년이면 " 풍비박산 " 이 되는지라 식당 개업 팔 할은 망한다. 그런 의미에  백종원은 요식업계의 허준'이다. 그가 나타나 침을 놓으면 앉은뱅이 죽은 가게도 벌떡 일어난다.   " 침을 놓는 " 기술은 점점 향상이 되어 이제는 " 침을 뱉는 " 수준이 되었다.

처음에는 < 위로 > 로 시작한 방송이지만 이제는 < 독설 > 이 주무기가 되었다. 포방터 홍탁집 아들을 다루는 백종원은 거침이 없다. 가뜩이나 소 눈깔처럼 생긴 눈알을 불알이며 욕설을 내뱉을수록 욕먹는 사람은 욕을 한 사람이 아니라 욕을 먹는 쪽이다. 그것이 바로 백종원 매직'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것은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이 어떻게 기어올라올 것인가에 달려 있다. 씨이이발, 이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_ 라고 백종원이 백기 들고 가게 문을 힘차게 닫고 나갈 때 방송은 투 비 컨티뉴 라는 자막이 흐르며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결정적 순간에 뒷목 잡고 쓰러지며 끝나는 막장 일일 드라마'처럼 말이다.

시청자는 고분고분하고 말귀 잘 알아듣는 골목식당 출연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즉, 착한 쥐가 쥐가천성'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못된 개새끼의 개과천선에 관심이 높다(이런 고급 말장난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이 블로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문장이다). 그렇기에 << 백종원의 골목식당 >> 에서 백종원은 방송이 진행될수록 발언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침을 놓던 그가 방향을 전환하여 침을 뱉기 시작한 이유이다. 지난 주말에 충무로 다방에 앉아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백종원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 시청자를 붙잡기 위해서는 어제보다 더 자극적인 상황 연출이 필요하듯이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막장드라마化 될 것이다.

종극에는 백종원이 솔루션을 신청한 가게주인의 멱살을 잡거나 진짜로 침을 뱉는 지경까지 가리라. 자극에 중독이 되면 보다 더 강한 자극을 원하듯이 말이다. 아니나 달라. << 백종원 골목식당 >> 예고편은 백종원이 침을 뱉는 수준이 한층 강화된 모습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 방송 기사를 모니터한 기사 제목이 모두 < 백종원 구역질 분노 " 폐업하는 게 낫겠다 " 충격 식당 등판 ? > , < 이번에 또 최악의 식당 등장하나 ? > , < 백종원 구역질 + 폐업 요구까지, 홍탁집 뛰어넘는 가게 나오나 ? > .........   침을 놓던 백종원이 침을 뱉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더니 이제는 침을 뱉는 수준의 오버액션에 해당하는 구역질 신공을 선보일 모양이다. 최악의 식당은 이제 최악의 악당처럼 읽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열광하는 멘토의 진짜 모습이다. 짓밟을 대로 밟아 놓고서는 다시 일으켜세우며 위로하는 멘토의 애티튜드를 보다 보면 영화 << 300 >> 에서 크세르크세스가 " 나는 관대하다, 나는 관대하다, 나는 관대하다 " 고 말하는 대사가 생각난다. 크세르크세스는 언제나 관대하다. 단, 조건이 있다. 나는 관대하다. 만약 나에게 무릎을 꿇는다면 너에게 스파르타는 물론이고 모든 그리스를 지배할 수 있는 왕위는 물론이고 부귀와 영화를 주겠다. 하지만 끝까지 항전하면 스파르타의 모든 건물, 사람, 가축, 풀 한 포기조차 모조리 불태우고 스파르타를 역사에서 지우겠다.” 

사람들은 백종원이 요식업계의 허준이라며 칭송하지만, 정신과 의사도 정작 다른 의사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듯이, 그도 약을 처방받아야 할 환자'다. 내가 약사는 아니다만 그에게 내릴 약은 " 조까라마이싱 " 이다. 이름이 제법 거칠긴 해도 이보다 약효가 빠른 약은 아스피린이 유일하다. 백종원 씨, 조까라마이싱 캡슐 한 알 먹고 기운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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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4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5 07:02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백종원 이 양반 사기꾼이죠.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은 미원으로 맛을 낸다고 하면 일단 하수잖아요. 서양도 서양요리사의 기준이 설탕을 쓰느냐 안 쓰느냐에 명성이 다르다고 하더군요. 서양에서는 설탕으로 맛을 내는 요리사를 하수 취급한다고 합니다.
아, 글구 진짜 궁금한 게 백종원 가게 음식 맛있나요 ? 난 진짜 맛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싸지도 않아요... 뭐가 백종원 가게가 저렴하고 맛있다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쌍   욕   몰   아   일   체   론  :




 


 

언제나 당신이 항상 옳다



 

 


최태섭 작가의 << 한국, 남자 >> 를 아직 읽지는 않았으나 예스24 남성 회원들이 < 어쩜 그렇게 한(국)남(자)스럽니? > 라는 제목의 뉴스레터에 항의하기 위해서 집단으로 불매운동(집단 탈퇴 인증 글)을 전개하는 꼴을 보게 되었다. 이 스펙타클하고 스피디해서 아스트랄한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의 불꽃 튀, 튀튀튀튀튀튀는 싸다구'는 일견, 하는 짓이 가관처럼 보이기도 하고 장관처럼 보이기도 한다(이 사태에 대해 비판은 해도 비난을 할 생각은 없다. 그것도 일종의 소비자 권리이니 말이다). 이럴 때마다 장탄식을 내뱉게 된다.                       

어떤 이는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책 구입비와 평균 이상의 자산 보유와 평균 이상의 가방끈을 가진 능력있는 남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탈퇴의 변을 싸지르기도 했다. 걱정이 앞섰다. 저렇게 후, 후후후후후후후후후륭(훌륭)하신 예스24 부호를 잃었으나 예스24는 24시간 안에 망하겠구나. 하지만 웬걸 ?! 전혀 지장이 없으시단다. 2400년은 버틸 수 있다고.  좆도 아니면서 좆도 있는 것처럼 으스대는 것이 이런 거무퉤퉤한 으름장 고객의 특징이기는 하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씁쓸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기계에 끼어 사망한 24살 비정규직 노동자가 4시간 동안 방치된 사건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으면서 고작  예스24 책팔이 상업 광고 문구 하나에 열을 내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한국 남자의 특징 중 하나는 고슴도치형 왕자병이다. 고슴도치 교육법과 사랑법에 길들여져 있다 보니 거개가 뱁새이나 그들은 모두 자기가 황새인 줄 안다. 이러다 보니 한국 남자는 여성의 미소와 친절을 오해하기 십상이다. 저, 개년이 왜 나에게 꼬리를 치지 ?   남자는 자신에게 눈웃음을 주는 여자가 정작 몸을 안 주면 쌍년이라고 욕하고  그렇다고 몸만 주면 꽃뱀이라고 욕한다.  왕자병의 증세는 주로 자기애와 결부된 병적 자기 연민'이다. 아프냐 ?,  나는 더 아프다 !  이런 마인드'다. 또한 한국 남자는 식욕이 강해야 성욕도 강하다는 < 쌍욕몰아일체론 > 을 믿어 의심치 않는지라 식탐이 하늘을 찌른다.  아침 밥을 차리지 않는 여성은 칠거지악이어서 남자는 식은 반찬 앞에서 사랑도 식는다. 주먹 불끈 쥐고 다짐한다. 나를 시금치로 보다니 !

그리고 열에 아홉을 잘못해도 잠자리 의무전에 성공만 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라 믿는다. 섹스가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켰어요. 나는 좆도 아니면서 좆도 있는 것처럼 으스대는 수컷의 남성다움이 지겹다.  좆도 아니면서 좆도 있는 것처럼 말하니 좆같이 들릴 수밖에 없다. 김영민은 한국 남자는 거개가 건달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한국 남자는 거개가 양아치'다. 아침 밥을 차리는 여자를 현모양처의 절대 기준으로 삼는 남자도 양아치요, 집안 청소를 잘하는 여자를 현모양처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양아치요, 날씬한 몸매를 입이 닳도록 찬양하는 남자도 양아치요, 머리 기른 여성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강요하는 것도 양아치'다.

여자니까 남자보다 더 잘하는 분야는 없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요리를 잘하고, 청소를 더 잘하고, 간병을 더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배움과 기술의 문제일 뿐이다. 숙련의 문제라는 것이다. 너도 열심히 해봐, 더 잘할 수 있어 !  우리는 이 사회가 여전히 여성들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각성해야 한다. 당분간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성의 목소리를 지지할 생각이다. 당신은 항상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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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12-12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서 메갈과 워마드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 사회적 약자와 곤경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하던 이가 메갈을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와 곤경에 관심을 가지고 그 메갈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곤경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하면서 오로지 여성의 남혐 문제만을 놓고 열을 올리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이런 놈의 뇌구조가 궁금할 뿐이다.

2018-12-12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2 17: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자신을 대범한 진짜 사내라고 한다면 소수자와 약자의 욕설도 기꺼이 받아줄 아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 뭐가 그리 열받는다고 탈퇴까지 하고 장문의 글을 올리고......

잠자냥 2018-12-12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속으로 좋아요 5개를 누르고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2 18:00   좋아요 1 | URL
다음에는 6개 누르고 가세요..

2018-12-13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3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2-13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곰곰님 글을 읽으면 제게 없는 야수성, 야성 같은 걸 느낍니다 그게 본질적이기도 하지만 그게 태도의 차원이기도 한데, 저돌적이라고 해야 할까? ㅎㅎ항상 소수자들의 편에 서서 변하시는 모습이 너무 진지하고 숙연해집니다 이거 첫 댓글인듯 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3 14:31   좋아요 1 | URL
앗, 첫 댓글인가요 ? 오고가다 많이 본 이름이어서 몰랐습니다. ^^
저도 한남이다보니 한남의 속속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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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takes a lot to change a man   :












아름다운 포기







 







                                                                                                                    사람들은 변신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렇기에 그리스 신화나 설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백마 탄 왕자를 만나 공주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이야기도 일종의 변신이고,   마굿간에서 잠을 자던 허드렛 일꾼 소년이 복수를 위해 비바람이 치는 언덕을 떠났다가 몇 년 후에 근사한 신사가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일종의 변신이다.

사랑이 한 사람을 변화시켰다는 것도 변신이라는 속성에 대한 매혹이며, 한 사람의 용기가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서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인간이 변화를 갈망하는 이유는 인간 본성이 어둡다는 데에서 오는 절망에서 비롯된 희망 사항이 아닐까 ?   나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180도 변했다는 서사를 믿지 않는 편이다.   비바람 치는,  히스 꽃 피는 언덕을 떠난 허드레 일꾼 히스클리프는 겉모습만 근사하게 바뀌었을 뿐,  본성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입은 검은 정장 양복만큼 그 마음도 검다.   생활에서 오는 오랜 습속과 선의와 악의가 섞인 본성과 풍진 세월을 겪느라 딱딱하게 굳은 근성은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종교인의 간증 서사와 범죄인의 참회 서사'를 믿지 않는 쪽이다.  악인은 세월과는 관련 없이 늘 악인'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명박의 어린시절이 순수했을 거란 상상을 1도 한 적이 없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악마적 속성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믿었던 어린 날의 순수는 타락한 현실 속 자신을 근사하게 변명하기 위한 레트로 판타지인지도 모른다.  설령 변한다 한들, 인간은 조금씩 조금씩 변하여 먼 훗날에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고작 자신의 본성이,  근성이,  습속이 그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3도 정도의 방향타'만 움직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게 될 뿐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 변신에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시 물거품이 되어 원상태로 돌아갈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10년 동안 금주를 실행했던 자의 결심이 딱 한 잔 술에 무너지고 30년 금연가가 빌린 담배 한 모금에 무너지듯이 변신의 다른 이면은 언제든지 원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복원력'이다.  영화 << 스타 탄생 >> 에서 브레들리 쿠퍼는 <  maybe it's time  > 이란 곡에서 "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it takes a lot to change a man "  라고 노래한다.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hell, it takes a lot to try.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물며 한 사람이 살아온 날들의 흔적이었던 천성을 바꾼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사랑에 빠지면, 연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사랑의 힘이 상대방의 사소한 습속 정도는 쉽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큰 결점을 고치는 것보다 오히려 작고 사소한 습관일수록 고치기가 더 쉽지 않다. 사랑의 힘으로 상대를 변화시키겠다는 결의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과연, 사랑의 힘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설령 많은 노력으로 오랜 습속을 바꿨다고 해도,  먹이를 주면 꼬리를 흔들며 왔다가도 이내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서 달아나는 검은 개의 얼굴처럼,  바뀐 습속은 다시 원상태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벽을 허물어 다시 세우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간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한 환상도 사랑에 대한 환상도 모두 헛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 것. 그냥 그 사람이 가진 결점을 이해하는 방식. 그것이 사랑하는 타자에 대한 아름다운 포기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음악은 브래들리 쿠퍼의 < maybe it's time > 이다.  그는 담담하게 부른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사람은 정말........ 씨발,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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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2-11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고쳐쓰는거 아니라며..
살다보니 이 문장이 맞는다는것을 증명해 보일때마다 씁쓸해지고..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15:4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자주 오판하는 것 중 하나죠.
사랑의 힘으로 그 사람을 고쳐서 쓰겠다는 망상.....

2018-12-11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11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2-11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사람들이 ‘변신’하면서 놀고 즐기는 코스프레를 왜 좋아하지 않을까요? 이제 코스프레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었는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만화에 나올 법한 가발을 쓰고, 옷을 입는 코스프레를 싫어해요.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상대방의 변화를 낯설게 보거나 용납하지 못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은 본인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잘 몰라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2-11 17:47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전 조금 다르게 생각했는데 한국인은 타인에 대한 무례한 관심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서 오히려 변화를 강조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김치다






                                                                                                                   김치가 알맞게 익은 기간은 짧다. 숙성의 시간'이 지나면 알맞게 익은 김치는 이내 신 김치로 전락하고 만다. 손이 자주 갈수록 더더욱 그렇다. 그 다음부터는 밥상에 내놓아도 손이 가지 않는다.


시어 터진 김치는 손이 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냉장고 부피라도 줄여볼 요량으로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이내 버려지게 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불꽃 같은,   숙성된 사랑은 짧다. 달콤한 연애 기간 시간이 지나면 신 김치처럼 시들어가고 점점 손이 가는 횟수도 줄어든다. 시들어진 사랑은 보다 작은 김치통에 담겨 냉장고 속 구석에 박혀 있다가 냉장고 정리를 할 때 버려지게 된다. 문제는 냉장고에 푹 익은 김치가 없을 때 발생하게 된다. 있을 때는 처치 곤란하지만 없으면 먹고 싶은 것이 시어 터진 김치다. 결 삭은 신 김치에 돼지고기 살점 넉넉히 넣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고, 비가 오면 김치 부침개도 먹고 싶다. 그리고 말린 호박에 멸치 넣고 끓인 칼칼한 김칫국도 먹고 싶다.

 

사랑도 이와 같나니 사랑이 없으면 그 사랑이 그립다. 옛 애인과의 연애 경험을 빗대서 설명하자면 가장 알맞게 숙성된 사랑은 1년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이후는 무덤덤한 관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들어갔다. 신 맛에 입맛이 물리기도 해서 갓 담은 새 김치를 먹고 싶기도 했다. 여자도 마찬가지 심정이었으리라. 여자는 군둥내 나는 김치에 질려서 관계의 파김치가 되었으리라.  파 ~ 이런 김치 이젠 싫어 !  어느 날, 그녀는 김치통에 담긴 나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아 밖에 버렸다. 여자는 말했다. " 이제 당신의 그 군둥내 참기 힘들어 ! "  그날, 나는 대문 밖에서 노란 쓰레기 봉투에 담긴 채 한없이 울었다. 긴긴밤, 아무도 날 찾지 않았다.

길고양이마저도 날 지나쳐갔다. 저 날카로운 발톱으로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더욱 갈기갈기 찢어주렴. 우우웅. 나는 쓰레기 청소차 탱크로리에 갇혀 난지도로 향했다. 덜컹거리는 쓰레기 차 안에서 탄력 없는 내 살결을 눌러보았다. 한번 들어간 결은 복원력을 잃은 채 움푹 파인 상태로 뚫렸다. 그리운 내 사랑이 나를 버렸네.         사랑은 늘 그렇다.  군둥내가 나기 시작하는 순간 달달했던 사랑도 군둥내를 풍기며 시들어지기 시작한다. 풍문으로 들었다. 젊은 남자를 만나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아삭하며, 시큼하지만 달콤한 사랑.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사랑을 그리 부러워하지 않는다. 갓 담은 김치 같은 사내와의 사랑은 다시 시어질 것이고,

눈 덮인 산길에 발길이 푹푹 빠지듯이 김치 결은 삭고 하얀 꽃이 필 거란 사실. 그리고 내 몸에서 났던 군둥내가 그 사내에게도 나리라는 사실. 군둥내가 나는 김치 냄새를 지울 방법은 없다.  김치의 회춘은 불가능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신 김치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드냐에 있다.  비가 오면 부침개를 만들어 먹고, 차가운 소주 한 잔 생각나면 저녁에 고기 살점 넣고 푹 끓인 김치찌개도 좋으리라.   바닥에 노릇노릇 눌러붙은 김치볶음밥도 좋다.  군둥내 난다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시큼하고,  새큼하며,  달콤하고, 칼칼한 맛이었던가.  누군가에게 잘 익은 김치 같은 사내가 되고 싶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나는 이미 풋풋한 세월 너머 군둥내 나는 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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