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풍 의 식 사 는 없 다 :
폭풍의 언덕과 간헐적 단식
책벌레가 책벌레를 만나면 묘한 경쟁심이 생기곤 한다. “ 에밀리 브론테의 << 폭풍의 언덕 >> 을 읽어 보셨죠 ? 워낙 유명한 고전 소설이다 보니. 아, 아직 안 읽으셨다고요 ?! 아, 네에....... 읽어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 내가 한 말이다.
말줄임표 표시로 생략된 문장은 대략 이런 것이리라. 이 유명한 작품을 아직도 안 읽어 봤다니, 게으른 이로군 ! 하지만 고전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 읽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거의 다 안 읽은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고작 1%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책장을 뒤져 책을 찾았다. 그리고는 페이지를 허투루 넘기다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소장한 책 중에서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책이다. 책을 사면 항상 구입한 날짜를 기록하는데 2005년 9월 9일로 기입되어 있으니 그동안 나는 이 책을 사 놓고는 마치 읽은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줄거리는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읽지 않은 책이라면 도대체 이토록 선명하고 뚜렷한 앎은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간서치로서의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양아치로서의 쪽팔림만 남아서 나는 하늘을 우러러 목 놓아 울었다). 나야말로 게으른 책벌레였던 셈이다. 그동안 책 좀 읽었다고 위세를 떨면서 상대를 업신여겼던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보다는 귤을 드리고 싶다. 귤, 드세요 ! 겨울에는 귤이 제철이다. 읽지도 않은 헌책을 타인에게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100페이지 가량 읽었다. 도입부인데도 꽤 재미있다. 다음 문장이 눈길을 끈다
나는 12시에서 1시 사이에 오찬을 하는데, 애초에 이 집에 딸린 일종의 비품처럼 집과 함께 맡게 된 마나님 같은 가정부는 5시에 정찬을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폭풍의 언덕 17쪽. 민음사, 김종길 번역
서구 사회가 오랫동안 두 끼 문화를 유지하며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록우드의 식사법은 요즘 유행하는 18 : 6 간헐적 단식과 동일하다. 헤더 안트 앤더슨의 << 아침식사의 문화사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아침을 먹는 것은 힘든 농사일을 하기 위해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빈민층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는 아침식사를 일부에게나마 허락할 수 있는 근거였다. 하위층 농민과 육체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의 첫 몇 시간을 버텨 낼 에너지가 필요했으므로, 이들에게는 아침식사가 허락되었다. 또 어린이나 노인, 병자처럼 몸이 약해서 한낮의 식사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은 죽 한 그릇으로 속을 채울 수 있었다. 결국 이유가 무엇이든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비웃음을 사는 일이었다.
- 아침식사의 문화사 중에서
즉, 옛날 서양인은 가벼운 점심(오찬)과 그보다 조금 더 충실한 저녁 정찬을 즐겼다. 두 끼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덕무는 << 청장관전서 >> 에서 백성들은 하루에 평소 두 끼만 먹는다고 적는다. 하루 식사를 통칭하는 " 조석 " 이라는 단어가 朝 : 아침 조와 夕 : 저녁 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옛 조상은 오래전부터 아침과 저녁으로 구성된 두 끼만 먹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현대의 삼시세끼 신화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 현대에는 만병의 근원을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만병의 근원은 삼시세끼‘이다. 현대인이 공복 시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때가 아침'인데, 이 때에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곧 공복기를 깬다는 의미이니 아침을 먹는 것은 나쁜 식습관인 셈이다(아침을 뜻하는 breakfast는 단식 = fast 를 부순다 = break 는 의미이다).
삼시세끼 드시고도 건강한 분이 이 글을 읽으면 뭐, 이런세끼’라고 할을 날리시겠으나 영양 과잉이 병을 부른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이 먹는다. 과학자들이 추적 조사하여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인류는 오랫동안 평균 20시간 동안 굶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먹고 있는 실정이다. 매조지를 할 시간이 왔다. 문득 이 글에 대한 정체성에 의문이 든다. 독서 리뷰인가 아니면 생활 에세이인가. 오랜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쓴다. 히스크리프도, 캐서린도, 록우드도 두 끼만 먹었다. 폭풍의 식사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