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풍 의   식 사 는   없 다   :

 

 

 

 

 

 

 

 

 

 

 

  폭풍의 언덕과 간헐적 단식

 

                                                                                                               책벌레가 책벌레를 만나면 묘한 경쟁심이 생기곤 한다. “ 에밀리 브론테의 << 폭풍의 언덕 >> 을 읽어 보셨죠 ? 워낙 유명한 고전 소설이다 보니. , 아직 안 읽으셨다고요 ?! , 네에....... 읽어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 내가 한 말이다.

말줄임표 표시로 생략된 문장은 대략 이런 것이리라. 이 유명한 작품을 아직도 안 읽어 봤다니, 게으른 이로군 ! 하지만 고전에 대한 정의가 모두 다 읽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거의 다 안 읽은 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이 책을 읽은 사람은 고작 1%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 책장을 뒤져 책을 찾았다. 그리고는 페이지를 허투루 넘기다가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소장한 책 중에서 밑줄이 그어지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책이다. 책을 사면 항상 구입한 날짜를 기록하는데 200599일로 기입되어 있으니 그동안 나는 이 책을 사 놓고는 마치 읽은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줄거리는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읽지 않은 책이라면 도대체 이토록 선명하고 뚜렷한 앎은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간서치로서의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양아치로서의 쪽팔림만 남아서 나는 하늘을 우러러 목 놓아 울었다). 나야말로 게으른 책벌레였던 셈이다. 그동안 책 좀 읽었다고 위세를 떨면서 상대를 업신여겼던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보다는 귤을 드리고 싶다. , 드세요 ! 겨울에는 귤이 제철이다. 읽지도 않은 헌책을 타인에게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어제는 100페이지 가량 읽었다. 도입부인데도 꽤 재미있다. 다음 문장이 눈길을 끈다


  

나는 12시에서 1시 사이에 오찬을 하는데, 애초에 이 집에 딸린 일종의 비품처럼 집과 함께 맡게 된 마나님 같은 가정부는 5시에 정찬을 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한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폭풍의 언덕 17. 민음사, 김종길 번역

 

서구 사회가 오랫동안 두 끼 문화를 유지하며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록우드의 식사법은 요즘 유행하는 18 : 6 간헐적 단식과 동일하다. 헤더 안트 앤더슨의 << 아침식사의 문화사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아침을 먹는 것은 힘든 농사일을 하기 위해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빈민층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는 아침식사를 일부에게나마 허락할 수 있는 근거였다. 하위층 농민과 육체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의 첫 몇 시간을 버텨 낼 에너지가 필요했으므로, 이들에게는 아침식사가 허락되었다. 또 어린이나 노인, 병자처럼 몸이 약해서 한낮의 식사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은 죽 한 그릇으로 속을 채울 수 있었다. 결국 이유가 무엇이든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비웃음을 사는 일이었다.

 

- 아침식사의 문화사 중에서 

        

, 옛날 서양인은 가벼운 점심(오찬)과 그보다 조금 더 충실한 저녁 정찬을 즐겼다. 두 끼 문화는 조선시대에도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이덕무는 << 청장관전서 >> 에서 백성들은 하루에 평소 두 끼만 먹는다고 적는다. 하루 식사를 통칭하는 " 조석 " 이라는 단어가 : 아침 조와 : 저녁 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옛 조상은 오래전부터 아침과 저녁으로 구성된 두 끼만 먹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에 세 끼를 먹어야 한다는 현대의 삼시세끼 신화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현대에는 만병의 근원을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만병의 근원은 삼시세끼이다. 현대인이 공복 시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때가 아침'인데, 이 때에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곧 공복기를 깬다는 의미이니 아침을 먹는 것은 나쁜 식습관인 셈이다(아침을 뜻하는 breakfast는 단식 = fast 를 부순다 = break 는 의미이다).  

삼시세끼 드시고도 건강한 분이 이 글을 읽으면 뭐, 이런세끼라고 할을 날리시겠으나 영양 과잉이 병을 부른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대인은 알게 모르게 너무 많이 먹는다. 과학자들이 추적 조사하여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인류는 오랫동안 평균 20시간 동안 굶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인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먹고 있는 실정이다. 매조지를 할 시간이 왔다.  문득 이 글에 대한 정체성에 의문이 든다. 독서 리뷰인가 아니면 생활 에세이인가. 오랜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쓴다.  히스크리프도, 캐서린도, 록우드도 두 끼만 먹었다. 폭풍의 식사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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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 


 


1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 장수

파나마 모자를 원가로 파는 파나마 모자 장수가 있다. 예를 들면 파나마 모자를 십 원에 사서 십 원에 되파는 것이다. 고로 파나마 모자 장수는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를 파는 것이다. 묻지 않을 수 없다. 파나 마나 한 파나마 모자를파냐고 !  같은 이유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거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대부분의 한국 에세이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싸구려 감성으로 둔갑시켜 유통한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 류'의 에세이 말이다. 김난도, 혜민, 이기주 에세이가 대표적이다. 독자들은 이런 책에서 " 위로 " 를 받지만 나는 기분이 " 아래 " 로 곤두박질친다.  깊이가 있는 글감은 깊이 팔수록 맑고 영롱한 샘물이 샘솟지만 감성 이기주의 에세이(미안해요, 이기주 씨이이 ~)는 파나 마나 우물이 아니라 똥물이다. 몇 번 선택 실수를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책 표지만 봐도 대충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다. 주먹 불끈 쥐고 외치게 된다. 내가 다시는 이따구 책에서 우물 파나 마라...                                결론은 이렇다 : 파나 마나 한 모자는 안 파는 게 상책이고 파나 마나 한 우물은 애초부터 삽질 안 하는 게 상책이다.






2 차마 웃을 뻔하였다

김영민의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는 선문답 같은 글이 많아서 문장 읽기가 녹록치 않다.  그래서 바짝 긴장하며 읽다가 싱겁게 끝나는 글이 있어서 종종 차마 웃을 뻔하였다.  뭐야, 싱겁기는. 독특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 김영민 선생 !  그런가 하면 산문이라 하기에는 리듬을 타는 운문에 가까운 글도 있다. 예를 들면,



누가 더 많이 아픈지 경쟁한다. 인간이다. 누가 더 억울한지 다툰다. 인간이다.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경쟁이 되지만 내 '생각' 속에서 이미 상대는 보이지 않는다. 인간이다. 너와 내가 맞물린 자리를 알아챌 때에야 비로소 화해이지만 그 자리는 늘 한 발 늦다. 인간이다. 상대의 마음이 깨어졌기에 나도 내 깨어진 마음을 붙안고 찾아올 수 있었을 뿐이다. 인간이다. '그리고(and)', 는, 이미 늦은 것이다. 인간이다


- 이미 늦은 것, 인간이다 205쪽


야금야금 읽기에 좋은 에세이'다.








3 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

옛날에 군대에서 참호를 파느라 삽질을 하다가 점심 먹고 풀밭에 누워 까무룩 잠을 잔 적이 있다. 이리저리 뒹굴다 보니 풀밭에 얼굴을 파묻고 잔 모양이었다.  코끝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다.  한 마리의 지네가 더듬이로 내 코끝을 더듬거리며 지나는 것이 아닌가 !  가장 가까이에서 본 지네였다.  아, 놀라워라. 무서워서 오줌을 쌀 뻔했다.  몸은 경직되고 호흡이 빨라졌다. 내가 움직이면 지네가 덜컥 물 것 같아서 옴짝달싹도 못한 채 지네가 지나가기를 숨죽여 지켜보아야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리긴 하나 돌이켜보면 그 감정은 혐오가 아니라 경외'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때 내 감정은 팜 파탈의 첫 등장을 지켜보는 느와르 영화 속 탐정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는 탐정처럼 말이다. 대체로 독이 있는 것은 아름답다. 지네가 더듬이로 나를 건들고 지나갔을 때, 그러니까 내 얼굴을 건방지게 더듬이로 희롱하고 농락했을 때, 내 몸은 지네의 에로티시즘으로 인하여 발기되어 온몸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점은 본질적으로 마비이자 맹목이다. 콩깍지가 씌이고, 호흡이 가빠지며, 넋 놓고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독(毒)을 읽는다. 상대에게 끌린다는 것은 그 대상이 독을 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  숲길을 걷다가 독을 품은 뱀을 만나게 될 때의 신체 반응은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의 신체 반응과 동일하다. 어찌 할 줄 몰라 넋 놓고 바라보며, 때론 멀리 도망치고 싶지만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아름다운 대상에게 매혹된다. 그것이 사랑이다. 내게도 그런 여자가 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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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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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는 주어의 복심(腹心)이다 :





박근혜와 건달-들


 

 

 

 

김영민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된 계기는 << 집중과 영혼 >> 이라는 철학 에세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쉽지 않은 문체였으나 만연체와 문어체 사이에서 종종 눈에 띄는 시적 언어'가 예사롭지 않았다. 한국의 철학자들이 대부분 서양 철학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김영민은 소중한 철학자이다.

나는 오랫동안 오고가는입말에서 중심부에 해당되는, 부사(구)로 강조한 " 술어의 세계 " 를 믿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동사와 형용사는 주어의 욕망처럼 보이지만, 진실은 항상 번역이 필요한 영역이다. 진실은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한다(진실을 폭로하는 이는 천사가 아니라 주로 악마다). 오히려 진실은 중심부가 아닌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부에 놓여 있다. 김영민은 이렇게 말한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라는 게 내 오랜 지론이다. 포이어바흐나 니시다 키타로라면 술어는 주어의 진실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진실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엉뚱한 자리에 숨어 있기도 한다(92쪽,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中) ". 그 사람의 욕망을 읽으려면 부사의 쓰임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부사는 주어의 니드 the need(s)이자 이드 the id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이다. 인간이랍시고 내뱉은 말투를 듣다 보면 이 짐승은 부사를 지나치게 남발하며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박근혜 왈, " 그러니까 그게 너무 많은 음모가 좌파 진영에서 저를 이렇게 매우 막 공격하는 게 과연 이게 옳은가, 그리고 ...." ).  분열된 부사구, 바로 그것이 박근혜의 정신세계인 것이다. 부사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은 술어가 빈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무들이 자신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내듯이, 박근혜는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술부가 사실은 황폐한 내부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 넓은 부사(구)를 남발한 것이다.

서평의 고수이신 파란여우 님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김영민은 " 자본주의와 창의적으로 불화하기 위해서 채택한 생활양식으로 1일1식을 실천하고 있다 " 고 한다. 파란여우 님의 글을 인용하면   :  1일 1식은 생산과 소비까지 자본주의 체계가 점령한 현실에서 개인이 실천 가능한 저항 양식이다.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이라는 언급으로 보아 폭주하는 산업 성장을 비롯해 노동착취를 가리킨 느낌이 든다. 1일 1식을 “정치적 행위”라고 규정한 이 인터뷰에는 《보행》에 나온 “ 여자의 말을 배우기 ”와 《차마, 깨칠 뻔하였다》에 나온 “여자라는 장소”, “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와 겹친다(파란여우, 욕심 없는 의욕- 글쓰기와 칼쓰기에서 발췌).

" 하루 세끼 식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강요한 생활 " 이란 언급은 내가 " 삼시 세 끼라는 신화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든 허구 " 라는 대목과 일맥상통한다. 현대인에게 세 끼는 치명적인 < 독 > 이다.  하물며 좋은 아내의 기준을 아침밥을 차려주는 여자'로 규정하는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남자는 거개가 건달이다. 표정도 건달이고 눈매도 건달이고 매무새도 건달이다. 앉아 있어도 건달이고, 서서 걸어도 건달이다. 밥을 먹을 때도 건달이고, 악수를 할 때도 건달이고, 모르는 여자를 대할 때도 건달이고, 심지어 발제를 하거나 강의를 할 때도 건달이다. 핸드폰을 놀리거나 담배를 피울 때는 더더욱 건달이니, 술을 먹을 때에는 살펴 말할 건덕지조차 없다(한국남자들, 혹은 건달들 112쪽)



김영민은 한국 남자에 대해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추기 위해 " 건달 " 이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 식대로 말하자면 " 밤꽃 향기 작렬하는 불알후드 새끼 " 인 셈이다. 깡패를 순화한 건달이 내뱉는 입말의 특징 중 하나는 과장된 부사(구)의 남발이다. 이들에게 과거는 왕년(往年)이 아니라 왕년(王年)이다. 그들은 " 허벌나게 " 허세가 심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염불을 외운다. 주여, 밤꽃 향기 작렬하는 저 불알후드 새끼들의 허벌나게 찬란했던 허세를 제발 잠재우게 하소서 !





+

한국 남자 거개가 건달이 된 이유는 대한민국이 근대성을 거치지 않고 전근대에서 곧바로 현대로 직행했다는 데 있다. 근대성의 핵심은 에티켓 교육에 있다. 이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한국 남성은 manner를 모른다. 건달의 탄생이다. 이처럼 건달이 창궐하다 보니 지랄이 흉년이었던 적은 이승만 정권 이후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랄은 항상 풍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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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8-11-3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글 보고 마음이 들썩들썩 했는데, 곰발님이 쐐기를 박으셨네요. 장바구니.....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씁니다. 쉬운 책은 아니에요. 선문답집 같기도 하고 종종 유머도 있고... 종합적입니다. 함 읽어보세요..ㅎㅎ

수다맨 2018-12-02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김훈은 인터뷰에서 문학으로 분류되는 글(소설, 시 등)보다는 기록문(조선왕조실록, 난중일기 등)을 더 좋아한다고 밝힌 적이 있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그의 문체는 명확한 사실만을 전달해야 하는 기자 경력과, 부사/형용사를 가능한 배제하고 단순한 주술 구조로 문장을 쓰려는 과거 무신/사관들의 작법에 빚진 바가 큽니다.
저는 이문구 같은 (판소리체와 타령조를 염두에 두고 문장을 쓰는) 예외적인 작가를 제외하면, 부사를 많이 쓰는 작가일수록 인식의 빈곤을 장식적인 언어로 감추려 든다는 혐의를 가질 때가 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14: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기록문이죠. 특유의 만연체가 맛이 나기란 쉽지 않죠. 그런 점에서 이문구의 문체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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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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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의 리뷰를 미리 쓰다  :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1 사람만이 절망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_ 라는 흔해빠진 감성을 접할 때마다( : 대표적인 작품이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 』이다. 읽을 때마다 이기주의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현실은 시궁창인데 작가에게는 동화 속 세상인가 보다. 나는 입만 열었다 하면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외치는 놈에게서 단 한 번도 희망의 불씨를 읽은 적이 없다 ) 감성팔이 소녀의 재림을 보게 된다. 이런, 망할 !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 중심 사고에 세뇌된 말종이다. 인간은 결코 희망이 될 수 없으며 대안이 될 수도 없다. 김영민의 신간 << 차마, 깨칠 뻔하였다 >> 를 구입한 이유는 목차의 제목이 흥미진진했다는 데 있다. 목차 - 제목'이 이토록 내 흥미를 끈 경우는 흔치 않다. 읽지 않은 책을 읽은 척하며 허세를 부리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목차 제목만 훑는 것이다.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내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책의 리뷰를 쓸 수 있는 히마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몇몇 제목이 흥미를 끈다. 6장의 제목이 < 사람만이 절망이다 > 이다. 날카로운 통찰이다.



2

내 취향은 이렇다  :  정상적인 체위보다는 변태적 체위가 좋고 A급 영화보다는 B급 영화가 좋다. 그리고 이음매 없는 매끈한 표면보다는 꿰매거나 묶인 흔적이 있는 울퉁불퉁한 표면이 좋다. 토드 브라우닝 감독이 연출한 << 프릭스 >> 를 보았다. 1931년도 작품인데 볼 때마다 놀라게 된다. 마지막 20분은 현대 영화가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기형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기형인 분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형인을 배우로 캐스팅했다. 샴쌍둥이, 소두증 세 자매, 양팔이 없는 장애인은 물론이고 양팔만 있는 이도 등장하며 양팔과 함께 두 다리조차 없는 이도 등장한다.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볼거리로 여겨졌던 인물들이 주체적 지위를 획득하게 되고, 반대로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이들이 마음속 괴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영화는 비주류가 주류를 응징하는, 비정상성이 정상성을 살해하는 전복적 서사로 진행된다. 감독은 당신에게 묻는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정상적인 부류와 신체는 건강하지만 마음은 사악한 부류 중에서 누가 더 기형적인가 ?  이 영화는 불온한 상상력으로 인해 30년 동안 상영 금지 목록에 오른 기록을 남겼다.  사악한 마음을 응징하는 것으로 끝이 나니 권선징악인 셈이지만 주류 사회는 비주류의 욕망이 불쾌했던 모양이다. 권선징악을 불온하다고 여기는 검열 사회야말로 불온한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보통 대화를 나눌 때 술어(동사,형용사)의 쓰임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믿는다. 싫다, 밉다, 좋다 따위가 솔직한 마음의 표현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 사람의 진짜 복심은 부사'에 숨겨져 있다.  술어는 대부분 위장에 가깝다.  부사는 주어의 복심이다. 이 문장 또한 김영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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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9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8-11-29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하루에 한끼 먹고 부터는 통풍이 사라졌어요. 역시 그동안 참 많이도 처먹었더란 말이죠..여전히 요즘도 1일1식이라서 좋더군요..사람들이 하루 한끼만 먹으니 다들 빠짐없이 한마디씩 하더군요..어떻게 그렇게 먹고 사냐고..먹는 낙없이 재미없잖아라고 하더군요..사실 먹는게 얼마나 고역인지 ㅎㅎㅎㅎㅎ(그러게요..곰발님 가까이 계셨더라면 참 죽이 잘 맞게 씹어 돌렸을텐데...아쉽습니다.ㅎ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9 17:44   좋아요 1 | URL
오 !!!!!!!!!!!!!!!


저도 요즘은 굶는 게 얼마나 힘든가 보다는 이제는 먹는 게 얼마나 힘든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식사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아, 불편해요. 1식이 일상이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먹게 되는 식사는 정말 고역입니다....


통풍 사라지셨더니 축하드립니다. 치어스 ~~~~~~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9 17:53   좋아요 1 | URL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통풍도 가만 보면 과식이 주범이란 생각이 듭니다. 통풍 치료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식으로의 전환이죠.
소식은 느리게 흐르는 혈액 순환을 빠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거든요...

2018-11-3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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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그  찌질함에  대하여  :


 


물통이냐 알통이냐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과 같다는 주장에 대하여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물론, 개중에는 자신이 생태주의자여서 이 가해자 프레임을 억울해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자연생태주의자일수록 오히려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기생충이라는 프레임을 적극 받아들인다.

 

생태주의자가 철저하게 생태주의적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자연을 파괴하는 가해자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종에 종속된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현대 일본인에게 전범 국가 국민으로서 피해 국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 일본 젊은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전범 행위는 자기 세대가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화를 부를 뿐이다.  일본이라는 국가에 종속된 이상, 일본인은 전범 국가 가해자라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모두는 일종의 원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는 가부장 사회 속에서 여자를 힘의 논리로 제압하고 착취했기에 잠재적 가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한국 남자 A가 나는 그동안 여성을 때린 적이 없기에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전후 세대 일본인에게 전범 국가 국민으로서 피해 국가에 사과를 할 필요 없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 사회는 남성에게 남성의 원죄론을 거론하는 순간 불같이 화를 낸다.  그리고는 말이 막힌다 싶으면 뜬금없이 여자도 군대 가라 _ 는 소리나 하고 있다.

 

일종의 군무새(앵무새처럼 군대만 찾는다는 소리) 탄생이다. 군대 가지 않으면 입 닥치고 가만있어 _  라는 으름장이다.  남녀 차이를 단순하게 군필 VS 미필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앵무새들이 자주 하는 소리가 너희(사무실 여성)는 사무실 물통 한 번 들어봤어 ?  이다.   남녀를 군필이냐, 미필이냐 그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던 남성들이 이제는 알통 VS 물통의 관계로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군필과 알통, 이 모두는 결국 힘의 논리이다. 한국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꺼내드는 수작이 고작 알통이냐 물통이냐를 가지고 싸우고 있으니 이 논리적 박약 앞에서 나는 삐약 _ 하며 하늘 한 번 보고 물 한 모금 마신다.  이게 바로 한국 남성의 낯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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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17: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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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1-27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성의 원죄론을 거부하기 위해 남자들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 ‘착한 남자’입니다.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는 걸 드러내기 위해 만든 표현입니다. 그랙서 이런 표현을 자주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전무결한 존재라고 착각해요. 자신들이 살면서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 여성에게 차별적인 언행을 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모른 척하는 것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7 17:48   좋아요 0 | URL
나는 한국 남자들이 왜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등신새끼들..

서연오 2018-12-03 1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트넘치는 곰발님 글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여성혐오는 뿌리깊은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태어나서 단 한번도 성폭행, 성추행, 심지어 일부는 여성들을 성적대상으로 여긴적 자체가 없기에 자기자신은 완전무결에 무죄이며,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 특히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여성들을 비판하는것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사회정의에 이바지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의 이 내면구조를 보고있자면 같은 남자로서 화가 치밉니다. 특히나 이 문제는 소위 청년이라는 젋은 세대들에서 더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일부 여성운동가들(오세라비 이영희씨? 또는 이선옥씨?)까지 합세해서 남녀평등과 여성상위시대는 이미 달성되었으며, 2,30대 남성청년들이 이런 구조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를(심지어 이런 이야기는 소위 진보진영 청년들에게 더 잘 먹히는듯합니다)하는 걸 보면 이 나라 남자들은 답이 없어도 한참 없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2-03 20:31   좋아요 0 | URL
제가 주장하고 싶은 말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말씀하셔서 공감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 흥분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오세라비와 이선옥의 주장을 보다 보면... 이 사람들 정말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꾸나, 그러니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분들은 전제가 이미 양성평등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다 보니 자꾸 삼천포로 빠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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