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과 나귀



 

                              5년 전, 가족 여행을 떠났다. 계획은 일주일 동안 서울 이북(경기도. 강원도)을 샅샅이 훑고 지나는 여정이었다. 그 여정 중에는 봉평'이라는 고장도 있었다. 때마침 우리 가족이 도착했을 때에는 봉평 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향토 작가로 알려진 이효석의 << 메밀 꽃 필 무렵 >> 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였다. 소설 < 메밀 꽃 필 무렵 >> 의 무대가 봉평 5일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축제 장터는 드넓은 메밀밭이 무대였다. 이효석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여서 그곳에는 이효석 기념관과 함께 메밀과 관련된 향토 음식 그리고 농산물을 염가로 판매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관광객은 많지 않았다. 장대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갈대비도 아닌 애매한 비가 계속 내린 탓이다. 내 눈에 띤 것은 나귀'였다. 소설에 나귀가 등장하니 축제 장터에 나귀 한 마리 정도는 볼거리로 갖다 놓자는 공무원의 탁상행정이 눈에 밟혔다. 나귀는 비를 맞으며 풀을 먹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 깜짝 놀랐다. 나귀가 이렇게 예쁜 동물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후, 내 꿈은 인적이 드문 두메산골에 집을 지어 여러 짐승과 함께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나귀 한 마리, 블랙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 검은 고양이 한 마리, 거위 한 마리.....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가족 동물 농장은 규모가 커졌다. 이왕 키우는 거 타조 한 마리도 키울까 ?  좋아, 브레멘 음악대에 타조도 악단 단원으로 뽑겠어. 해 뜨면 몸집 작은 나귀를 끌고 나무를 하러 가리라. 풀을 실컷 먹인 후 등짝이 땔감을 잔뜩 싣고 집으로 오리라. 타조와 거위는 아마도 내가 죽을 때 내 곁을 지켜줄 녀석일 것이다. 타조는 수명이 80년이고 거위 수명이은 40년이라고 한다. 인적이 전혀 없는 두메산골 깊은 곳에서 눈 내리는 날 고독사하고 싶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오로지 늙은 거위만이 내 죽음 앞에서 거룩 ~ 거룩 ~ 소리내며 울어주리라. 그런 상상을 하면서 나는 지금 상암동 거리를 걷고 있다. 도시 생활에 지쳤다. 울고 싶다.





가족여행 후일담


가족여행 여정에는 내가 한때 살았던 속초 방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족은 이곳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이제부터 나는 속초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해야 했다. 가족을 이끌고 첫 번째로 찾아간 여행 명소는 동명항 방파제'였다. " 이곳은 여행객이 아닌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입니다. 대포항은 관관객을 상대하는 곳이기에 비싸기만 하지요. " 다음에 찾아간 곳은 속초 중앙병원 응급실이었다. " 이곳은 제가 등에 박힌 병 조각을 빼낸 곳입니다. 술 먹고 난동을 한 번 부렸었거든요. " 가족은 숙연한 마음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다음은 중앙시장 동해 순댓국집이었다. 내가 일주일에 서너 번 정도 이곳에서 찬 소주에 따순 순댓국을 먹었다고 하자 큰누님이 소리 내어 울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조양동 미라지 모텔 103호였다. " 저는 이곳에서 죽었습니다. 사망 시각은  새벽 4시경,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습니다. "  가족들은 옹기종기 모여 추도 예배를 올렸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예배가 끝나자 동생은 코카콜라 뚜껑을 거칠게 따 이곳저곳에 뿌렸다. " 엄니, 생각나요 ?  형이 콜라를 그렇게 좋아했잖아. " 가족은 다음날 서울로 향했다. 가족은 서울로 향하던 도중에 메밀 꽃 축제가 열린다는 봉평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비가 내려서 관광객은 그 많지 않았다. 큰누님이 비를 맞고 있는 나귀를 보며 말했다. " 어머, 비 맞는 나귀를 봐. 처량도 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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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교과서에 실렸던 이효석 수필 << 낙엽을 태우면서 >> 를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이 수필이 발표된 해가 1938년이라는데, 조선총독부에서 서기로 잠시 일했다는 이 인간은 참 배도 부르구나.  백성들은 굶주려서 굶어죽는 이도 많았던 시절에 마당의 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그리워하다니 !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하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이라던데 일제 시대에도 넓은 정원을 둘 만큼 잘 살았다는 것은......  아이고,  이런 게 문학이다냐 ! -  이런 삐뚜룸한 생각을 했다. 한국 수필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다. << 메밀 꽃 필 무렵 >> 은 여러 모로 보나 형편없는 단편'이다. 누군가 나에게 단 한 명의 한국 작가를 뽑으라고 한다면 망설이지 않고 손창섭이란 작가를 뽑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종종 남성 폭력과 패륜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를 받곤 하는데 손창섭 문학을 뒤틀어서 읽으면 반대로 남성성에 대한 조롱과 경멸 그리고 혐오로 읽혀진다. 매우 독특한 작가'다.


■ 백선생

한국에서만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가 있다. 영화 << 위플래시 >> 도 그런 경우'다. 이 영화가 한국에서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의 정서와 한국인의 정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영화가 해외에서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관객들이 미치광이 스승의 교수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데 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가혹하다. 가혹하다기보다는 미친놈처럼 군림한다. 이 작품은 잡초는 밟힐수록 강해진다는 정서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일종의 성장 영화인 셈이다. 한국인은 이런 마즈흐적 성장 스토리에 열광한다. 아흐, 마조흐 ! 그런데 잡초는 정말 자근자근 밟아야 강하게 자라는 것일까 ? 잡초(민초)따위는 밟아도 상관없다는 문화적 토양은 재벌의 막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백선생은 서른은 훌쩍 넘어 이제는 불혹에 가까운 홍탁집 아들을 말 그대로 개무시한다. 사람들은 백선생에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홍탁집 아들에게 분노한다. 그럴수록 나는 백선생에게 분노하게 된다. 과연, 저 인간은 멘토라는 자격으로 저렇게 인격을 무시하면서까지 타인을 모욕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공중파 티븨에서 말이다. 내 일도 아니면서 마치 네 일을 내 일처럼 행동하는 저 눈물겨운 사마리아인(인 척하는 바리새인의) 휴머니즘은 무엇일까 ?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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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1-23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일담까지 읽고 소오오오오름.....
한 편의 소오오오오설.....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3 22:06   좋아요 0 | URL
즐독, 감사합니다아..
 

 

 



박찬욱 감독이 틀렸다





티븨조선 방사장 딸의 폭언과 관련하여 영화 기자 하성태 씨가 재미있는 기사를 작성했다. 제목은 << 박찬욱 감독이 틀렸다 >> 이다. 이 기사가 흥미를 끈 이유는 나 또한 하성태 기자가 인용한 박찬욱 인터뷰에 대한 비판을 올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박찬욱 감독은 틀렸다고 주장했다.



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0949803847

 


 



   

Q : 이 영화(쓰리 몬스터, 2004)는 프로렐타리아의  피 빠는 부르조아의 이야기인가?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룬 것인가?

A : 이 스토리를 만들때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 JSA >> 가 흥행한 직후 여기 저기서 초청이 많았다. 그중에 거절할 수 없었던 조찬모임이 있었는데 ' 21세기를 준비하는 어쩌구 모임 ' 이었다. 재벌 2세나 교수, 의사 등 나이가 나보다는 조금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 가긴 가면서도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들 매너좋고 겸손하고 지적이고 ......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삐딱하다 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좋은 사람이라는 호감보다는 다 가진 놈들이 착하기까지 하구나 싶어 화가 나고 슬펐다.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뭘 한게 아니라 이미 다 부자들이고 부를 세습한 이들이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성격이 나빠질 일이 뭐있냐, 이전엔 천민자본주의가 있었지만 그들의 2,3세는 상류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 나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가난뱅이들은 욕망이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니 삐뚤어질 수 밖에 없다. 미덕이 세습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착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그래봐야 상류사회의 매너나 교양을 얻을 수는 없다.  그건 나중에 다뤄봐야 겠다, ' 너무 착해 미움받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찬욱 감독).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중

 


박찬욱 감독은 재벌 3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호의를 선의라고 해석했지만, 사실 그들의 예의바름은 어디까지나 이너써클(셀럽 모임) 안에서만 가능한 선의'다. 그 당시, 박찬욱은 누구보다도 잘 나가는 영화감독이었으니 말이다. 박찬욱은 그 사실을 오판한 것이다. 10세 소녀의 막말 중에서 무엇보다도 내 관심을 끈 대사는 " 아저씨는 장애인이야. 팔, 다리, 얼굴, 귀, 입, 특히 입하고 귀가 없는 장애인이라고. 미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재벌 소녀가 보기에 운전기사는 욕을 해도 못 들은 척을 하거나 들었다 한들 제대로 항의 한 번 한 적 없으니 아이가 보기에 아저씨는 입과 귀가 없는 장애인'인 것이다. 그것은 소녀의 부모가 그동안 고용인에게 대했던 태도에서 터득한 경지인 셈이다. 막말이지만 본질을 꿰뚫는 지적이다. 박찬욱 감독은 틀렸다. 재벌이 착하기도 한 세상은 없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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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렸던 이효석 수필 << 낙엽을 태우면서 >> 를 읽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  이 수필이 발표된 해가 1938년이라는데, 조선총독부에서 서기로 잠시 일했다는 이 인간은 참 배도 부르구나.  백성들은 굶주려서 굶어죽는 이도 많았던 시절에 마당의 낙엽을 태우며 커피 향을 그리워하다니 !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하급 공무원 한 달 월급이라던데 일제 시대에도 넓은 정원을 둘 만큼 잘 살았다는 것은......  아이고,  이런 게 문학이다냐 ! -  이런 삐뚜룸한 생각을 했다. 한국 수필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보는 법이다. 개울에서 멱 감는 처녀를 겁탈하는 강간 판타지를 순정으로 포장하는 << 메밀 꽃 필 무렵 >> 은 여러 모로 보나 형편없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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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곡 성



 

 

 

 



1. 여곡성, 2018


 

                                                                                                            요즘, 남들이 " 망작 " 이라며 저주를 퍼붓는 영화들을 찾아서 보는 악취미가 생겼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작심하고 보는 일'이라 안구가 썩는 고통도 즐거운 마음으로 "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영화 " 를 눈 감고 본다, 눈 뜨고 보나 눈 감고 보나 거기서 거기니까 ! << 안시성 >> 같은 쓰레기 영화를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보았던가.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망작 영화도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극장 문을 뻥, 발로 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야 티켓값이 아깝지 않다.  마음속에서는 온갖 독설이 쏟아진다. 살다 살다 이런 개 같은 영화는......  그것은 일종의 모욕을 당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메조흐적 관객이라 할 수 있다. 아흐, 마조흐 ! 아흐, 마조흐 !!   소비자가 왕인 시대에 욕쟁이 할머니집에서 욕먹는, 그 유명한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 광고처럼 형편없는 영화에 관객으로서 모욕을 당하면서도 나는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게 된다. 아흐, 마조흐 !  오늘은 악평 자자한 << 여곡성, 2018 >> 을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었으나 목에 담이 걸려서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종영이 되기 전에 하루빨리 저 그지같은 영화를 봐야 할 텐데,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형편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낡은 노포를 찾아 문어처럼 밤거리 술집을 찾아다니는 이유도 추레한 것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만약에 당신이 작가 지망생이라면 도스토옙스키'보다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이 더 많은 용기를 줄 수 있다(러브크래프트 문학이 형편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위대한 작가이다. 다만, 문장만 놓고 보면 러브크래프트는 아마추어다). 그래서 나는 B급 무비'가 좋다. 에드 우드'에게 경배를. << 여자들 >> 이라는 소설에서였나 ?  찰스부코스키는 예쁜 여자를 보면 좆이 서질 않는다는 문장을 남긴 적이 있는데 묘하게 동의하게 되는 지점이어서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결핍 없는 미학은 " DESIGN " 이지 " ART "는 아니다.  영화도 그렇다. 형편없는 영화는 나를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여곡성, 꼭 보고 말리라 ~  (어금니 꽉 물고 외치리라)  기다려라, 내가 너를 금이빨 빼고 모조리 씹어 먹어주마1) ! 

 



 

2 여곡성, 1986

                                                                                                                  옛날에는 여름이 되면 << 주말의명화 >> 시간에 납량 특집 시리즈를 상영하곤 했다. 폭서의 계절에 혹한의 공포를 선사하겠다는 편성 목적이었다. 토요일 주말 저녁이 되면 우주 로봇 건담조차 간담을 서늘케 한다는 공포 영화가 매주 상영되었다. 그때 상영했던 한국 공포 영화가 << 월하의 공동 묘지, 1967 >> , << 깊은밤 갑자기, 1981 >> , << 여곡성, 1986 >> 이었다. 거웃이 솜털처럼 야들야들 자라던 중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덤이 홍해처럼 쫙 갈라지며 화장실에서나 달았을 빨간 알전구 불빛이 세상 밖으로 번지는 월하의 공동묘지를 보며 오금이 저려서 오줌을 쌀 뻔했던 기억이 난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이 납량 특집 한국 공포 영화 시리즈 기획에서 발군은 << 여곡성 >> 이었다. 눈에서 피를 흘리는 신씨 부인의 데스마스크'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선사했다. 신씨 부인이 닭 피를 마시다가 낌새를 차리고 갑자기 뒤돌아보는 장면에서 오금보다 오줌이 먼저 저리는, 믿지 못할 신체 반응을 경험하기도 했다. 오금을 저린다는 것과 오줌을 지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곤경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영화였다. 므, 므므므므섭구나. 어디 그뿐인가. 대감이 지렁이 국수를 먹는 장면은 내가 지금껏 보았던 모든 병맛 장면을 통틀어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씬이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존 워터스 감독의 << 핑크 플라밍고 >> 에서 디바가 길거리에 떨어진 개똥을 먹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배우는 실제로 개똥을 씹어먹는다. 예술을 위하여 개똥에 쌈 싸먹는 장면을 보면 예술은 똥이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감은 귀신에 홀려서 그릇에 담긴 지렁이를 국수로 착각하고는 맛있게 먹는다. 이 장면의 리얼리티를 글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리얼리티란 가짜를 진짜처럼 연기할 때 발생하는 효과일 뿐이니 말이다. 단장이 끊어지면서 몸부림치는 지렁이 장면은 소름 그 자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장면에 사용된 지렁이는 미니어처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있는 지렁이였다고 한다. 배우는 열정을 불태워 혼신의 연기를 펼친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세 편의 영화를 다시 보곤 했다. 그 옛날처럼 오금보다 빨리 오줌을 지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 공포 영화를 자주 본다.위 세 편의 무대는 대부분 < 넓은 집 > 이다.  사랑채와 별채가 있고 뒷간과 넓은 마당이 있는가 하면 현대극인 << 깊은밤 갑자기 >> 는 이층집이다.

 

▶ 1981년에 만들어진 공포영화 << 깊은밤 갑자기 >> 의 무대가 되는 집이다. 넓은 정원에 창고로 사용하는 다락까지 계산하면 3층집에 가까운 대저택의 위용을 과시한다. 감독은 하우스호러 영화 장르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영화가 시작하면 감독은 공간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 카메라가 원을 그리며 팬한다. 하긴, 코딱지 만한 집구석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영화인가 !

 

생각해 보면, 단칸방에서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포영화의 핵심은 인간이 아니라 공간이 주는 공포'다. 공간이 넓으면 넓을수록 감독은 더 많은 공포 효과를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공포 영화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다. 한국 영화가 공포 영화 장르에 취약한 이유는 한국인이 대부분 열악한 주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기껏해야 30평짜리 아파트 공간에서 무슨 얼어죽을 공포를 선사할 것인가. 악취가 심한 고시원 방이 알고 보니 옆 호실 투숙객이 고독사해서 발생한 냄새였다는 한겨례 기사를 읽은 적 있다. 사실, 진짜 공포는 이런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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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1-22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공포 영화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이다, 이 부분에 크게 공감합니다.
 

 

 

 


이국종 : 패트리어트 게임













노무현 정권 때 탄생한 영웅이 황우석 교수라면 이명박 정권 때 탄생한 영웅은 이국종 교수'다.  세월이 흘러, 이명박은 범죄자가 되어 개똥밭에서 뒹굴고 있지만 이국종은 지금도 영웅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그 명성이 드높아서 지붕 뚫고 하이킥 할 정도'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는 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술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황우석과 이국종은 닮은꼴이다. 둘 다 " 쇼잉 " 에 능수능란하다는 점에서 말이다. 황우석이 " 구원자 - 서사 " 를 연출했다면,  이국종은 " 구조자 - 서사 " 를 연출하고 있다.  죽어가는 자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는 점에서 두 서사는 동일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황우석은 모성적 언술에 능한 반면에 이국종은 남성 서사에 의지한다는 점이다.  이제 대중은 황우석 신화가 가짜로 판명이 나자 이국종에게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그런데 정말 그는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그는 열악한 의료계 현실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면서 의료계 비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의 정의감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그가 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전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의사가 아닌 영화 감독이었다면 << 패트리어트 게임 >> 같은 영화를 찍지 않았을까 라는 상상을 했다.  kt가 지원한 무전기 덕에 수술 준비를 원활히 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한 마음에 kt 광고를 찍었다고 고백했던 그는 이제와서는 무전기의 불통에 화가 나서 수목금토토토한다.  왜 죄 없는 무전기에 대고 토토토 하십니까.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왜, 하필 카메라가 돌아가는 때에 맞춰 헐리우드 액션스타처럼 무전기를 내동댕이쳤을까.  무전기 탓을 해서 무전기를 지원하니 다시 무전기 탓을 하고,  닥터헬기 탓을 해서 닥터헬기를 지원했더니 이제는 헬기가 내려앉을 장소가 없다며  헬기 임계지점(헬기가 뜨고 착륙하는 정거장)  탓을 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그의 취향이다.  그는 전쟁 영화 속 주인공이고 싶다. 그는 사선을 넘나들며 헬기, 무전기, 구조복 따위의 소품으로 자신을 전쟁 영웅화'하고 있다. 정점은 해군 정복을 입고 청와대에서 정치인과 군인들 앞에서 강연을 했을 때이다.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 우리는 모두 한때 군인이었으며 앞으로도 군인이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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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7   좋아요 0 | URL
냄비근성 이라는 말 쓰면 한국비하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만큼 정확한 말도 없죠..

겨울호랑이 2018-11-02 2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이국종 교수에게서 안철수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6   좋아요 1 | URL
이번에 해군 명예중령인가 받았죠 ? ㅎㅎ

akardo 2018-11-02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 쪽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그냥저냥 좋게 볼 텐데 혹여 간다면 이 사람에 대한 기대는 버릴 겁니다. 근데 좀 불안불안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7   좋아요 0 | URL
불알불알하죠 ?ㅎㅎ

2018-11-03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1-21 15: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런 강한 말은 잘 안 쓰죠. 무슨 드라마 대사 같잖아요..ㅎㅎ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우울증이 심신 미약'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려준 이는 남궁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나를 조심해야 한다. 나는 365일 심신 미약 상태에 놓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사내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 심신 미약으로 감형을 받으려는 김성수보다 재수 없는 이는 남궁인이었다.  그가 분노에 차서 일필휘지로 휘갈겨쓴 문장이야말로 서사의 과잉이었고 권위의 과잉이었다. 의협심이 강한 그가 자신이 소속된 조직 내에서 발생한 의협 사태에 대해서 왜 침묵했을까 ?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핵심 트리거'는 " 우울증 " 이 아니라 " 불친절 " 이다. 그는 아르바이트 학생이 자신에게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 행위에는 고객은 서비스 노동자로부터 당연히 친절한 봉사'를 제공받아야 된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있다. 그의 전제가 맞다면 pc방 사용 대금에는 서비스 제공에 따른 부과 요금(봉사료)이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내는 요금에는 봉사료는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는 봉사료(팁)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그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친절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은 감정 노동자에게 과도한 봉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무릎을 꿇리고 욕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친절 문화'가 한국으로 유입된 경로는 프로야구 창단을 통해서 " 프로(페셔널) -  " 라는 개념이 수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스포츠 분야에서 시작된 프로는 감정 노동자는 고객에게 무조건 복종하라 라는 이건희의 훈시에 따라 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고객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직원에게는 프로 의식의 결여라는 진단을 받아야 했다. " 왜 그래 ? 아마추어같이! "  비극은 우리가 감정 노동자의 친절을 과잉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상인이 고객에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고객 또한 상인에게 친절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문화는 옛날 시장'에서 흔히 엿볼 수 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좋은 식재료를 고를 수 있는 안목과 튼튼한 발목만 있다면 품질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에 우리는 시장 상인에게 과잉 친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지인은 2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그 친구는 복지 선진국일수록 가게 상인들은 고객에게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불친절하지도 않는 태도를 보인다고 말했다. 그냥 무뚝뚝하다는 것이다. 상인과 고객 사이에 갑을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친구가 시니컬하게 말했다. " 물건 하나 사면서 고객은 왕이라고 허세를 부리다가는 따귀를 맞을 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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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8-10-29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에서 살다가 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 말로는 저녁에 술과 먹거리를 사려고 편의점으로 갔는데 사장이 때마침 담배 피울 시간이라고 문 밖으로 나와서 흡연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사장이 애연가였는지 그 자리에서 느긋하게 줄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외국 생활이 처음이었던 친구는 주문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결국에는 밖으로 나와서 계산을 좀 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자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주변에 편의점 더 있으니 다른 데 가시오. 나한테는 지금처럼 짬짬이 담배 피우는 시간이 하루에 제일 중요하니까는.˝

곰곰생각하는발 2018-10-29 17:52   좋아요 0 | URL
왜 이렇게 친절을 강요하는 것일까요. 이거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적당히 생까고 적당히 불친절하고 적당히 이기적이며 적당히 칼칼한 맛이 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만간 술 한 잔 합시다..

깊이에의강요 2018-10-30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년 삼백육십오일 심신미약이네요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