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자
우리는 이 땅 위에 우리는 태어나고 아름다운 이곳에
자랑스러운 이곳에 살리라 빠빠빠 빠바 빠빠빠 빠바~
-이선희, 아름다운 강산
늘 다짐했다. " 두고 보자 ! " 철천지원수를 만나는 심정으로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에 한 끼만 먹겠다고 선언했을 때, 나는 하루 종일 밥만 생각했다. 가수 이선희가 < 아름다운 강산 > 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에도 중독성 강한 후렴구인 " 빠빠빠 빠바 빠빠빠 빠바 ~ " 라는 의미 없는 기표가 내게는 " 밥 ! 밥 ! 밥 ! 밥 ! 밥 ! " 으로 들려서 가락에 흥이 나는 것이 아니라 입안에 침이 고였다.
두고 보자, 상다리 부러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먹으리라. 하루 종일 쫄쫄 굶은 것에 대한 보상 심리'라고나 할까. 저탄고지를 8개월 정도 실천한 때도 이 즈음이었다(말이 저탄고지이지 사실은 고 단백질-고 지방 식단이었다). 위에 밥이 들어가 헛배를 채우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 고기만 먹기로 작심한 것이다. 고기는 단백질의 왕이요, 힘의 원천이었으니까 ! 그런데 육식은 내 체질과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깃덩어리에서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육질의 차이인가 싶어 질 좋은 부위로 바꿔 먹기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꿈에 들짐승이 나타나 말했다. "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 지금은 들짐승의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여서 풀과 과일'을 열심히 뜯고 있다.
저탄고지 비스무리한 식단는 중단되었다. 뭐, 가난한 내게는 탱큐였다. 내가 식생활 습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 맛의 허구 > 였다(삼시 세끼라는 허구적 신화는 굳이 이 자리를 빌려 비판할 생각은 없다. 시간 날 때마다 누누이 했던 주장이어서 식상한 감이 있다).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재료의 맛 때문이 아니라 향 때문이다. 후각에 시각과 청각이 더해지면 맛이 탄생한다. 혓바닥은 식감을 책임질 뿐이다. 눈을 가린 채 코를 막은 실험 대상자에게 양파를 주면서 사과라고 거짓말을 하면 피실험자는 양파를 사과라고 착각하고 맛있게 먹는다. 이 실험 결과는 맛을 관장하는 것은 혓바닥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그리고 후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꽤나 과학적인 속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 셈이다. 그렇다 보니 양파를 사과라고 속이고 파는 장사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과 코를 가리기만 하면 탱큐 ! 좋은 예가 갈매기살과 토시살'이다. 돼지 가로막 부위에 붙은 갈매기살의 양은 매우 적은 소량이어서 대중성과 상업성을 가질 수 없지만 고깃집 중에서 두 집 건너 한 집은 갈매기살을 판다. 돼지 한 마리에서 차지하는 양이 1%에 불과하다는 갈매기살은 어떻게 해서 대량으로 유통되는 것일까. 답은 토시살에 있다. 내장 근처에 있는 살이어서 비린내가 심한 토시살을 감추기 위해 식당 주인은 향내가 강한 양념으로 버무려서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을 지운다. 갈매기살이냐 토시살이냐를 감별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진짜 갈매기살은 양념이 전혀 없는 생고기로 나오고 토시살은 양념이 되어 나온다. 이처럼 양념은 품질 낮은 식재료를 은폐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섬마을 사람들이 해산물을 요리하는 방식을 보면 도시의 대중식당에서 파는 해산물 조리 방식에 비해 매우 간단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양념을 최소화한다. 그 이유는 갓 잡은 해산물 자체가 워낙 싱싱하기에 굳이 양념으로 주재료 본연의 맛을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맛의 신화 못지 않게 난공불락인 것은 단백질 신화'이다. 인간의 생애를 통틀어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시기는 갓난아기'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쑥이 쑥쑥 자라봤자 결론은 쑥이지만, 이 시기에는 콩나물처럼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폭풍 성장인 셈이다.
모유는 인간의 생애 주기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기에 최적의 영양을 공급하는 공급원이다. 그렇기에 모유 성분을 분석하면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의 황금 분할'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유에서 단백질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단백질이 성장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양소라는 서구의 단백질 신화'가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한다. 또한 10% 미만의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굳이 육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채식만으로도 단백질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탄수화물과 지방이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공격받는 와중에도 단백질 신화가 여전히 무패의 기록으로 지금도 철옹성을 쌓고 있는 이유는 든든한 스폰서를 둔 덕이다.
단백질 신화를 지지하고 재정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익 집단은 축산업과 낙농업 협회로 이들의 로비는 군사 무기 로비 산업보다 강력하며 규모도 훨씬 크다. 하지만 단백질은 체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산성으로 변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좋은 식량이 된다. 동물성 단백질이 나쁜 영양소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단백질 과잉에 있다. 현대인의 식단은 탄수화물 과잉과 지방 과잉뿐만 아니라 단백질 과잉 식단이기도 하다. 영양 과잉 사회에서 어떤 영양소를 더 많이 취득할까 _ 라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백질을 더 많이 보충하기 위해 고기'를 찾는다.
김치 없이는 못 살았던 20세기 한국인은 이제 고기 없으면 못 사는 21세기 한국인으로 변했다. 나는 육식도 아니고 채식도 아닌 잡식주의자이지만 육식보다는 채식이 보다 바람직한 방식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피터 싱어의 << 동물 해방 >> 과 마빈 해리스의 <<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 >> 는 단백질 섭취를 놓고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피터 싱어는 동물 윤리를 들어 식물성 단백질 공급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마빈 해리스는 동물성 단백질이 문명 발달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내가 마초남 마빈 해리스보다는 초식남 피터 싱어의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단백질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육식을 비판할 생각도 없다. 다만, 삼시 세 끼를 모두 육식으로 채우는 방식은 욕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지금보다 고기 값이 2,3배는 더 비싸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축이 가축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육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값이 오른다면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