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마침표를 닮았다  :

 


 


                                   우아하나 우울한 우리 호구

 



원래 추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축구와 함께 어디서든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혼비는 추가 시간에 강하니까.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中

 

 

 

 

 

                                                                                                    먹을 때 가시 많은 생선보다 위험한 것은 씨 있는 과일이다. 나는 칠레산 체리가 너무 맛이 좋아서 허겁지겁 먹다가 체리 씨를 삼키고 말았는데, 그만.......  임신을 하고 말았다. 산부인과 의사가 말했다. 선생님 몸속에는 체리 씨가 발아하여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아. 

당시 나는 맨체스터 축구팀 골키퍼였는데 그 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골키퍼는 외로운 직업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소속된 팀이 공격력이 뛰어나다면 더더욱 그렇다. 동료들이 우르르 상대 팀 골문으로 몰려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며 놀 때 나는 고독에 몸부림쳤다. 동료가 골을 넣으면 그들은 상대 진영에서 서로 껴안고 기쁨을 만끽하지만 나는 철처히 외톨이였다. 한때 시인을 꿈꿨던,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골대를 지키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반칙은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고 심판의 휘슬은 쉼표이며 축구공은 마침표'다.

조금 더 확장하자면 경기 중에 몸싸움으로 약이 바짝 오른 선수들끼리 내뱉은 쌍욕은 큰따옴표요, 심판 판정에 불만이 많은 선수가 들릴락 말락 내뱉는 쌍욕은 작은따옴표다. 그리고 자살골을 넣은 수비수의 당황한 얼굴은 말줄임표다. 문장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마침표이듯이 축구를 완성하는 것 또한 그물을 흔드는 축구공이다. 그런 공을 보면 멀리 차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이 직업(골키퍼)이야말로 개똥쉣이다 !   나는 체리를 임신한 것을 계기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불행은 파도처럼 몰려온다고 했던가.  체리를 낳고 나서 산후조리를 할 시간도 없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요량으로 신발(축구화)를 벗고 장갑(글러브)를 끼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공을 던질 수는 있었다. 눈 감고 공 던지는 선수도 많으니까. 나는 야구장에 맹인 안내견 골든 레트리버를 옆에 두고 공을 던진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 타자가 친 땅볼을 개가 물고서 타자를 향해 뛰어가 터치 아웃'을 시킨 적도 있었다. " 부덕의 소치 " 보다 꽤나 상투적 문장인 " 논란의 소지 " 는 있었으나 미국 MLB 사무국은 반려동물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맹인 선수를 위해서 마운드에 오른 개는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펄럭이(맹인안내견 이름)는 투수 앞 땅볼은 물론이요, 라인 드라이브로 날아가는 공을 다이빙 캐치로 멋지게 잡아내서 관중들로부터 우박과 같은 박수를 받곤 했다. 

타자들은 눈 뜨고 던지는 공보다 눈 감고 던지는 공을 더 무서워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맹인 투수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았다고 해서 마운드로 뛰어들어가 맹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는 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니까. 야구 스포츠 캐스터 빈 스컬리(Vin Scully | Vincent Edward Scully) 씨는 늘 이런 멘트를 날렸다.


맹인 투수 페루애, 와인드업 !  눈에 뵈는 게 없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합니다아. 배리 본즈 선수. 서서 삼진 아웃. 아, 투수가 눈 감고 던진 공을 타자가 눈 뜬 채 서서 당하는군요. 멍청한 놈......

통산 성적 53승 61패. 방어율 4.42.  실패한 성적도 아니요, 그렇다고 성공한 성적도 아니었다.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나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맹인 투수가 되었고 펄럭이 또한 동물로서는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기록되었다. 보직은 투수 보조였다. 은퇴 후 생활은 무료했다. 시각장애인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속일 생각만 했다( 어쩌면 나의 피해망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특단의 조치로 맹인 안내견인 " 펄럭이 " 를 훈련소로 보냈다. 내가 훈련소 소장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 펄럭이가 속이 뒤틀린 인간을 보면 짖도록 훈련시켜 주십시오. 가능할까요 ? " 소장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 그럼요, 매우 쉽습니다. 개의 후각 능력은 인간보다 1000배 우수합니다. 냄새로 암 환자도 찾을 수 있으니 말이죠. 속이 썩은 인간은 개코 앞에서 딱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암호를 하나 만들기로 하죠. 선생님께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시다가 상대방의 속내가 궁금하면 펄럭이를 향해 오늘은 날이 좋구나, 라고 말씀하시면 펄럭이는 그 말을 저 인간은 속이 뒤틀린 인간이니 ? 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개가 신나게 짖으면 상대방은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인 경우죠. 허허허허. "  몇 달 후,  펄럭이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보더니 컹컹 짖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무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이 좋구나.             그러자 개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저놈은 속이 뒤틀린 놈이로구나. 꽈배기를 먹었나. 속이 꼬인 놈.  헐, 상종 못할 놈이로세. " 나는 그 길로 아무개와 인연을 끊었다.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세상에 속이 뒤틀린 인간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  가뜩이나 인간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나는 더욱 인간에 대해 회의적인 인간이 되었고 그럴수록 펄럭이는 더욱 크게 짖곤 했다.  어느 날 옆집 꼬마가 나에게 말했다. " 펄럭이는 참 이상해요. 훈련소에 다녀온 이후,  아저씨만 보면 코를 실룩실룩하며 아저씨를 향해 짖어요. 아저씨가 개 주인인데 말이죠. " 

집으로 돌아왔다. 낮에 옆집 꼬마가 했던 말이 맴맴 돌았다. 나는 펄럭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즈막히 말했다. " 오늘은 날이 참 좋구나 ! " 펄럭이는 나를 향해 맹렬히 짖었다.  






-





이런 말도 안되는 리얼리즘 소설을 써볼까 ?  소설집 제목은 < 이것이 리얼리즘이다 ! >  어제 2017 월드컵 축구 보다가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잠이 들었으나 다음날 일어나 보니 천지가 개벽했다.  어느 배팅 업체가 이런 신소리를 하시었었었다. 한국이 독일을  2  :  0  으로 이길 확률에 베팅을 거느니 차라리 독일이 한국을  7  :  0  으로 이길 확률이 더 높습니다. HAHAHAHAHAHAHAHA...... 전자는 판타지요, 후자는 리얼리티'에 더 가깝다는 말.  독일 (국민)도 늘상 이런 태도였으리라. 한국은 나(독일)의 호구이지, 암 그렇고 말고 !  하지만 허무맹랑한, 말도 안되는 판타지라 여겼던 서사가 결국 리얼리티'를 획득했다. 독일은 한국의 호구가 되었다. 후후후, 맙소사 !  < 한국 vs 독일 월드컵 경기 > 를 인문학적 표현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판타지가 리얼리티'다. 혹은 판타지아는 리얼리티보다 힘이 세다. 됐고 ! 

+

반팔 Y셔츠(white shirt : 와이샤츠는 화이트 셔츠의 일본식 발음이다 )만 보면 촌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디자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반팔 Y셔츠는 못난이'다. 원래 Y셔츠는 겉옷이 아니라 속옷이다. 그렇기에 복식 에티켓을 유난히 따지는 영국 신사들은 예의를 갖추어야 할 자리에서는 반팔 화이트셔츠를 입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트 상의를 벗지 않는다고 한다. 수트 상의를 벗고 화이트셔츠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빤스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속옷이었던 Y셔츠를 잘라서 반팔용으로 입는 것은 찢어진 빤스를 입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직장인들이 여름에 반팔 Y셔츠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꼴을 볼 때마다 맹꽁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긴팔을 입되 더운 여름이 오면 와이셔츠 소매를 접어 입어야 한다. 반대로 긴팔 T셔츠(라운드 티셔츠)도 못난이에 속한다. 미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라운드 티셔츠는 반팔이 멋있다. 결론은 Y셔츠는 긴팔만 입어야 하고 (라운드)T셔츠는 반팔만 입어야 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백꽃


 


                                                                                                        동백꽃을 처음 본 곳은 거제도였다. 동백, 그 흔한 꽃을 그곳에서 처음 봤을까마는 거제에서 본 동백은 서늘할 만큼 아름다워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제도에 머무를 때였다. 지인'이 늦겨울에 꽃구경 가자 했을 때 퉁명스럽게 개나리 보러 내가 거제도까지 왔겠소 _ 라는 신소리를 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할 일도 없던 터라 꽃구경을 핑계 삼아 대낮부터 겨울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앉아 싱싱한 횟감을 앞에 두고 밖에 두어 살얼음 낀 소주를 마시리라, 생각하니 좋은 거라. 우리 일행이 간 곳은 장사도( - 島)였다. 장관이었다. 그곳에는 1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감탄한 대목은 " 개화 " 가 아니라 " 낙화 " 였다. < 보통의 낙화 > 라면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다 지는 풍경일 텐데, 동백꽃은 꽃잎이 낙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빨간 꽃 머리(꽃송이) 전체가 쑥 빠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꼼꼼히 살펴보면 심상치 않다. 일반적으로 낙화란 꽃의 노화 현상인데,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은 노화는커녕 무섭도록 싱싱한 모습을 보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모습으로 어느날 아침 바람 없는 날에 툭, 무심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모두 다 하늘을 향한 채. 눈을 부릅뜬 채 참수 당한 젊은 혁명가의 머리 같다. 묘하다. 정말, 묘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처절한 모습이나 처절하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한순간에 멜랑꼴리하며 야리꾸리한 동백꽃에 매료되었다.

이 기묘한 감상은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동백나무는 불길한 나무라 하여 집안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무사 목이 잘려 땅에 떨어진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여 춘수락(椿)이라고 하였다. 영화 장르에 빗대서 동백꽃을 비유하자면 로맨스보다는 느와르에 가깝다. 우리 일행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싱싱한 횟감에 찬 소주를 마셨다. 이보다 좋은 화전놀이는 없어라. 2차는 노래방이었다. 청승맞은 노래는 금물이라는 강령을 어기고 나는 박상규의 조약돌을 불렀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고 /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어디 가나 / 이슬이 눈물처럼 꽃잎에 맺혀 있고 / 모르는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는구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6-28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8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시적 간결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의 수컷들은 그 혼자로도 충분했을 텐데도 짝을 부여받았잖아요 ! " 우레와 같은 박수.

 

 

- 모스크바의 신사 中, 에이모 토올스​

 




 


                                                                                                      꽃 피는 봄에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자들이 들소 떼를 사냥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먹잇감은 암컷이 잡았으나 들소 만찬을 시작할 즈음에 (사냥에 참여한 적도 없던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께서 갑자기 나타나 제일 먼저 숟가락을 드시었다.  그 풍경을 본 그녀는 " 뻔뻔한 불알후드의 가부장적 허세 " 는 짐승 새끼나 인간 새끼나 똑같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에라이, 사파리에도 지랄에 풍년이 물드는구나.                       배가 부른 수컷은 사파리 여행용 차가 지나가는 길에 배를 드러낸 채 엎드리고는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파리 여행자들이 차 안에서 사진을 찍으며 요란법석을 떨어도 배부른 사자는 눈만 끔뻑 끔뻑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차가 사자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도 사자는 배 째라잉 ~           그는 야생 사자의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나태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저 무시무시한 짐승도 배가 부르면 평화로운 짐승이 되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배부른 사자가 달콤한 잠에 빠져들 때에 한해서 ! 

사파리 여행 길라잡이가 이 상황을 설명했다. " 사자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초원에서 쫄쫄 굶으며 사나흘 신나게 농땡이 치다가 다시 사냥을 하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상태가 최적의 피지컬을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사자는 사자는 배부른 상태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상태일 때 사냥을 시작합니다. " 나는 그녀의 여행담을 듣고 나서 비로소 왜 야생 동물은 비만이 없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물론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돼지와 하마는 비만 아닌가요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무명씨, 아니올시다아아.           돼지와 하마의 체지방률은 15%다. 인간의 체지방률을 감안하면 매우 날씬한 몸매다.

야생 동물은 거의 모두 다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야생 동물이 비만이 없는 원인은 간헐적 단식(24시간, 48시간, 72시간 단식)을 자의 반 타의 반 실천하기 때문이다. 짐승은 인간과는 달리 노화의 기간이 굉장히 짧다. 매미 같은 경우는 죽기 1초 전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느닷없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세 /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으면 못 논다며 흥에 겨운 노래를 부르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로 죽는 것이다. 매미야말로 짧고 굵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다가 바로 죽으니 요절인지 호상인지 애매모호하다. 야생에서 사는 짐승들은 대부분 노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에 인간과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는 노화 현상이 뚜렷하다. 그 이유는 풍부한 먹이 공급으로 인해 간헐적 단식 패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생명은 연장되었으나 연장된 만큼 노화에 따른 고통과 상실도 증가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이 연장되었다는 기쁨 못지 않게 노화에 따른 두려움도 커졌다. 인간은 모두 매미 같은, 넘나 열정적인 생의 간결한 마감을 원한다. 노세 /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으면 못 논다고 핏줄 터져라 생생하게 노래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소절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죽음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평생 땅속에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고작 일주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매미는 불행한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때는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요, 매미는 졸라 멋진 삶을 살다가 간 녀석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시적 간결함이지요         매미와 같은 " 시적 간결함 " 을 간직한 꽃은 동백꽃이 아닐까 싶다. 동백꽃은 다른 꽃처럼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다가 시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꽃 머리가 통째로 쑥 빠져 떨어진다. 다시 말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을 선택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꽃나무와는 달리 꽃 핀 자리 밑바닥이 지저분하지 않다. 노화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장수가 아니라 간결한 삶의 종말이 아닐까




 
 

뜬금

비오는 날에는 찬 소주(냉동실에 1시간 정도 두면 살얼음이 살짝 언다. 이때의 소주 맛은 기가 막히다)에 따순 순댓국이 최고다. 비가 오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레알마드리드 팀에서 골키퍼로 생활하던 시절, 속이 더부룩하여 내과를 찾았더니 담당 의사가 남성 비뇨기과를 추천했다. 경기 없는 날에 비뇨기과를 찾았는데 담당 의사가 다시 산부인과를 추천했다. 산부인과요 ???!              며칠 후, 산부인과를 찾았다. 나를 진찰한 의사가 말했다. " 선생님, 혹시 한 달 전에 칠레산 체리 드신 적 있으신가요 ? 아, 그렇군요...... 체리...... 맛 좋죠 ? 하지만 체리를 드실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선생님 몸에서 지금 체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체리 씨를 통째로 삼키는 바람에 몸속에서 체리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골키퍼 생활을 은퇴하기로 했다. 석달 후, 싱싱한 체리나무를 낳았다. 부성애란 아...... 이토록 무서운 것이어라. 나는 어린 체리를 양육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야구 팀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생활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았다. 하지만 곤경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려왔다. " 앞날이 캄캄하시죠 ?  의학적 진단을 내리자면 시력 완전 상실입니다. " 의사는 내게 시각 장애 진단을 내렸다. 의사의 진단대로 나는 앞을 못보는 맹인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공을 던져야 했다. 어린 체리를 키워야 했으니까.  메이저리그 최초의 맹인 투수가 탄생한 것이다. 야구 해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 페루애, 와인드업. 던졌습니다. 쓰뚜라잇크 !  눈에 뵈는 게 없는 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습니다. 배리 본즈 선수, 꼼짝도 못한 채 서서 삼진 아웃 당합니다아 ! "  타자들은 내가 던진 공을 두려워했다. 가장 무서운 공은 160KM 강속구가 아니라 눈에 뵈는 게 없는 공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8-06-2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널티 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알 :



 


 

 

몸을 던진다는 것,

https://youtu.be/nl313NeqBbI : 이동기, 논개

 

                                                                                                      가수 이동기는 부른다. 몸 바쳤어, 몸 바쳤어, 떠내려간 그 푸른 물결 위에 !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앉은 채 강물로 뛰어든 기생 논개를 기리는 노래'다. 강철군화 정권 때 나온 노래이니 " 건전가요 " 인 셈이다.  

제4,5공화국 때 가수가 음반을 낼 때에는 반드시 음반 말미 끝 트랙에 이 장르(건전가요) 노래 한 곡을 반드시 넣어야 했는데 말 그대로 노래 내용이 건전한 노래다.  듣다 보면 참...... 건전하다, 시바 !                   당연히 특정 정권과 국가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일종의 쁘로빠간다(propaganda)인 셈이다. 목적이 수상하다 보니 의식 있는 가수들은 건전가요를 부끄러워했으나 종종 히트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동기가 부른 건전가요 << 논개 >> 는 조용필을 누르고 가요톱텐 1위를 하는 기염을 토한다. 헤헤, 귀염귀염 !   논개, 사회적 멸시를 받던 관기는 후대에 의기로 칭송받는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다는 것은 숭고한 행위'이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다고 해서 모두 다 칭송받는 것은 아니다. 월드컵 < 대한민국 vs 멕시코 > 경기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현수 선수는 국가를 위해 몸을 던졌으나 칭송 대신 욕만 먹고 있다. 그것도 한 경기에서 패널티 박스 안에서 두 번이나 몸을 던졌는데(태클) 말이다. 축구 오따꾸가 아니어도 수비수가 패널티 박스 안에서 몸을 던지는 행위'는 위험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더군다나 수비수가 패널티 박스 안에서 팔을 몸통에서 떨어뜨린 채 나비처럼 날아다니다가는 재앙에 올 수도 있다는 사실(박스 안에서 수비를 하는 선수는 핸들링 반칙을 피하기 위해 양팔을 항상 몸통에 붙인다)을 모르는 이도 없다.

그런데 장현수는 이 기본적인 경고를 무시한다. 결과는...... 뭐, 다들 아시리라. 장현수는 국가를 위해 몸을 던졌으나 욕만 먹고 가지요. 불쌍타, 쪼다 현수 !  필연적으로 패널티 박스 안에서 몸을 던져야 하는 선수가 있다. 패널티 킥을 맞이한 골키퍼는 키커가 공을 차면 한쪽으로 몸을 던져야 한다. 피터 한트케 소설 << 패널티 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 Die Angst Des Tormannes Beim Elfmeter, 1971 >> 은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 골키퍼는 저쪽 선수가 어느 쪽으로 찰 것인지 숙고하지요. 그가 키커를 잘 안다면 어느 방향을 택할 것인지 짐작할 수 있겠죠. 그러나 페널티킥을 차는 선수도 골키퍼의 생각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골키퍼는,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공이 오리라고 다시 생각합니다. 그러나 키커도 골키퍼와 똑같이 생각을 해서 원래 방향대로 차야겠다고 마음을 바꿔 먹겠죠?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입니다. 그러면 키커는 침착하게 다른 방향으로 공을 차게 됩니다. 골키퍼는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


이처럼 키퍼와 키커의 관계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쪽은 키커'다. 몸을 던진 키퍼의 반대 방향으로 공을 차면 되니까. 하지만 pk를 실축하는 키커를 종종, 아니 자주 보게 된다. 골키퍼의 불안 못지 않게 키커의 불안도 크기 때문이다. 실축에 따른 어마어마한 중압감 때문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는 것이다. 피터 한트케는 골키퍼가 직면한 불안을 빗대서 현대인의 불알을 이야기한다. 불알은 소중하니까. 그렇기에 현대인은 불알을 두려워한다. 아프니까. 앞날은 예측불가능하다. 운이 좋다면 불운을 피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불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쪽으로 몸을 던진 것인가, 혹은 어느 쪽으로 공을 찰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될 대로 되라지, 흥.








​                                    


내 이웃이라면 다들 아시리라. 나는 레알마드리드 팀에서 골키퍼로 활동했다. 그동안 총 35번의 pk 상황을 맞이했는데 패널티 킥을 차는 키커의 공을 막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돌이켜보면 실패의 연속인 셈이다. 하지만 어쩌랴, 운이 나빴을 뿐이다. 그 후,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톤 레드삭스 팀의 투수가 되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레알 진실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8-06-25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월드컵에 야신상을 받게 될 골키퍼가 누가 될지 기대됩니다. 독일이 예선을 통과하고, 토너먼트에도 승승장구한다면 노이어가 2회 연속 야신상을 받을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6-25 15:44   좋아요 0 | URL
신들린 골키퍼 보면... 이야, 진짜 운동 신경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참, 어제 보니깐 일본도 꽤 잘싸우더군요. 아시아 티켓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시아 국가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아시아 몰락하면 티켓 하나 짤릴 지도 모릅니다..ㅎㅎ

cyrus 2018-07-01 13:35   좋아요 0 | URL
제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네요. 독일이 탈락하다니.. ㅎㅎㅎ 그래도 한국이 이겨서 기분은 좋아요. ^^

2018-06-25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6-25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 카시야스, 마르티네스와 동료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레알 영광입니다^^:)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좆밥이 쌀밥에게







                                                                                                     잊힐 만하면 까고, 또 잊힐 즈음에 다시 깐다. 깐 데를 핀-포인트'로 겨냥해서 다시 까니 나라는 인간을 두고 잔인하다 아니할 수 있다 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하지 않을 이, 뉘냐?  
​이웃의 글은 내 망각을 다시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훌륭한 글이다). 안철수, 신형철, 정성일 그리고 신경숙은 내 밥이다. 변방의 어두컴컴한 블로그나 운영하는 어느 좆밥이 이토록 훌륭한 교양 인간을 " 영양가 없는 쉰밥 " 이라고 외치니 가소롭게 생각할 이 많겠으나 어쩌랴 ! 독자여, 내 교양 수준이 여기까지인 걸 부디 이해하시라. 아님 말고 !  신경숙과 박근혜의 공통점은 몸은 여성이지만 맘은 남성( 욕망에 기생하는)이라는 데 있다. 신경숙 소설은 철저하게 남성 가부장 욕망을 따른다. 소설 속 여성은 주체적이지 못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수동적인 말더듬이 캐릭터이다. 주눅 든 여성 이미지'라고나 할까 ? 
문체도 그렇다. 문장을 제대로 완성조차 못해서 쉼표로 끊거나 마침표 대신 말 줄임표를 자주 사용한다. 신경숙 문체 특징은 < 낮게 웅얼거리기(혹은 옹알거리기) > 이다. 이처럼 여성 목소리를 낮춰 집 담장을 넘지 못하게 하니 어르신 보시기에 좋았어라. 아니, 남성 문학평론가가 보시기에 졸라 좋았어라. 신드롬에 가까웠던 << 엄마를 부탁해 >> 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을 대표하는 문학이다. 진단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가족(문제)은 가족에게 ! 수구 정권에 기생한다는 점에서 프로파간다에 가깝다. 신경숙은 가족 문제를 철저하게 가족 문제로 고착화한다. 케어의 책임은 복지 정책 몫이 아니라 엄마(와 그 구성원) 몫이라고 주장한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 케어 " 라고, 블알후드의 쌍팔련도 욕망을 빌려서 신경숙은 이야기한다. " 엄마 !  고마워, 사랑해, 그리워 ! " 웃긴 소리이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 시발..... 엄마 등골 그만 좀 빼먹어라 ! " 믿는 구석이 없으면 가족에게 집착하게 된다. 가족 자경단이 생겨나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으니 내 가족은 내가 지킨다 ! 한국 사회는 가족이 무너지면 그것을 보완할 케어 장치가 전무하다. 그러다 보니 홍수에 집이 떠내려가면 땅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하는 이유이다.
반면에 사회적 케어 시스템이 잘된 국가의 시민들은 집에 떠내려갔다고 대성통곡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곤경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 나는 모성애를 찬양하고 희생을 미화하는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신경숙의 지랄 같은 수구적 욕망을 읽는다. 형편없는 소설이다.












뜬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 흥남부두'st 의 쌍팔련도 마인드 > 는 밖에서는 온갖 값비싼 산해진미를 즐기면서 정작 입으로는 집밥이 제일 맛있어요 _ 라고 말하는 인간'이다. 그들은 집밥 맛의 비결이 가사 노동자가 불 앞에서 흘린 땀(노동)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니미, 엄마손이 비결이란다. 가끔 외식해라, 집밥 타령만 하지 말고. 한여름에 불 앞에서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다맨 2018-06-25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경숙도 신경숙이지만 책 뒤표지에 실린 백낙청 교수의 표사가 정말이지 민망하더군요. 한때는, 어떤 의미에선 지금까지도, 참여문학 진영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사람이 저만한 소설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 보기에 딱했습니다
사실 백낙청은 자신의 진영(창비)과 이해 관계가 맞닿는 한에서만 해당 작가에게 호평을 하면서 그외의 작가들에게는ㅡ 민중 지향적인 색채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비교적 냉연한 시선을 보내는 경향이 전부터 있기는 했습니다. 예컨대 문지 진영으로 알려진 조세희(황석영 만큼의 리얼리즘적인 전망이 없다)나, 무크지 출신의 박노해(선동이나 슬로건 정도에 불과하다)에게는 상당히 박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6-25 15:46   좋아요 0 | URL
백낙청이 엄마부탁을 빨아줄 때의 그 아름다운 문장... 정말 좋았죠. 징글징글합디다. 이렇게 매문은 아름다운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제 비오는날 술 한잔 해요..

거지 2018-06-29 03:1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니 신경숙이나 빨던 작자가 감히 조세희를 깠다고? 사막보다도 척박한 한국 현대문학에서 그래도 읽을만한 거의 손에 꼽을 작품을 쓴 작가를? 그러고보니 백가놈은 박민규같은 쓰레기도 빨았지. 하여튼 제대로 노망난 영감탱이임 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