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은 마침표를 닮았다 :
우아하나 우울한 우리 호구
원래 추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축구와 함께 어디서든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혼비는 추가 시간에 강하니까.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中
먹을 때 가시 많은 생선보다 위험한 것은 씨 있는 과일이다. 나는 칠레산 체리가 너무 맛이 좋아서 허겁지겁 먹다가 체리 씨를 삼키고 말았는데, 그만....... 임신을 하고 말았다. 산부인과 의사가 말했다. 선생님 몸속에는 체리 씨가 발아하여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아.
당시 나는 맨체스터 축구팀 골키퍼였는데 그 일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골키퍼는 외로운 직업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소속된 팀이 공격력이 뛰어나다면 더더욱 그렇다. 동료들이 우르르 상대 팀 골문으로 몰려가 그들만의 리그를 펼치며 놀 때 나는 고독에 몸부림쳤다. 동료가 골을 넣으면 그들은 상대 진영에서 서로 껴안고 기쁨을 만끽하지만 나는 철처히 외톨이였다. 한때 시인을 꿈꿨던,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골대를 지키며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반칙은 맞춤법이 틀린 문장이고 심판의 휘슬은 쉼표이며 축구공은 마침표'다.
조금 더 확장하자면 경기 중에 몸싸움으로 약이 바짝 오른 선수들끼리 내뱉은 쌍욕은 큰따옴표요, 심판 판정에 불만이 많은 선수가 들릴락 말락 내뱉는 쌍욕은 작은따옴표다. 그리고 자살골을 넣은 수비수의 당황한 얼굴은 말줄임표다. 문장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마침표이듯이 축구를 완성하는 것 또한 그물을 흔드는 축구공이다. 그런 공을 보면 멀리 차야만 하는 숙명을 지닌 이 직업(골키퍼)이야말로 개똥쉣이다 ! 나는 체리를 임신한 것을 계기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불행은 파도처럼 몰려온다고 했던가. 체리를 낳고 나서 산후조리를 할 시간도 없이 입에 풀칠이라도 할 요량으로 신발(축구화)를 벗고 장갑(글러브)를 끼었으나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공을 던질 수는 있었다. 눈 감고 공 던지는 선수도 많으니까. 나는 야구장에 맹인 안내견 골든 레트리버를 옆에 두고 공을 던진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었다. 타자가 친 땅볼을 개가 물고서 타자를 향해 뛰어가 터치 아웃'을 시킨 적도 있었다. " 부덕의 소치 " 보다 꽤나 상투적 문장인 " 논란의 소지 " 는 있었으나 미국 MLB 사무국은 반려동물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맹인 선수를 위해서 마운드에 오른 개는 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펄럭이(맹인안내견 이름)는 투수 앞 땅볼은 물론이요, 라인 드라이브로 날아가는 공을 다이빙 캐치로 멋지게 잡아내서 관중들로부터 우박과 같은 박수를 받곤 했다.
타자들은 눈 뜨고 던지는 공보다 눈 감고 던지는 공을 더 무서워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맹인 투수가 던진 공에 머리를 맞았다고 해서 마운드로 뛰어들어가 맹인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는 것은 좋은 매너가 아니니까. 야구 스포츠 캐스터 빈 스컬리(Vin Scully | Vincent Edward Scully) 씨는 늘 이런 멘트를 날렸다.
맹인 투수 페루애, 와인드업 ! 눈에 뵈는 게 없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합니다아. 배리 본즈 선수. 서서 삼진 아웃. 아, 투수가 눈 감고 던진 공을 타자가 눈 뜬 채 서서 당하는군요. 멍청한 놈......
통산 성적 53승 61패. 방어율 4.42. 실패한 성적도 아니요, 그렇다고 성공한 성적도 아니었다.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했다. 나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맹인 투수가 되었고 펄럭이 또한 동물로서는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기록되었다. 보직은 투수 보조였다. 은퇴 후 생활은 무료했다. 시각장애인이 되다 보니 사람들은 나를 속일 생각만 했다( 어쩌면 나의 피해망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특단의 조치로 맹인 안내견인 " 펄럭이 " 를 훈련소로 보냈다. 내가 훈련소 소장에게 요구한 것은 하나였다. " 펄럭이가 속이 뒤틀린 인간을 보면 짖도록 훈련시켜 주십시오. 가능할까요 ? " 소장은 껄껄 웃으며 답했다.
" 그럼요, 매우 쉽습니다. 개의 후각 능력은 인간보다 1000배 우수합니다. 냄새로 암 환자도 찾을 수 있으니 말이죠. 속이 썩은 인간은 개코 앞에서 딱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암호를 하나 만들기로 하죠. 선생님께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시다가 상대방의 속내가 궁금하면 펄럭이를 향해 오늘은 날이 좋구나, 라고 말씀하시면 펄럭이는 그 말을 저 인간은 속이 뒤틀린 인간이니 ? 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개가 신나게 짖으면 상대방은 속이 밴댕이 소갈딱지인 경우죠. 허허허허. " 몇 달 후, 펄럭이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를 보더니 컹컹 짖었다.
어느 날이었다. 아무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이 좋구나. 그러자 개가 맹렬히 짖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저놈은 속이 뒤틀린 놈이로구나. 꽈배기를 먹었나. 속이 꼬인 놈. 헐, 상종 못할 놈이로세. " 나는 그 길로 아무개와 인연을 끊었다. 이런 일은 반복되었다. 세상에 속이 뒤틀린 인간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 가뜩이나 인간에 대해 냉소적이었던 나는 더욱 인간에 대해 회의적인 인간이 되었고 그럴수록 펄럭이는 더욱 크게 짖곤 했다. 어느 날 옆집 꼬마가 나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