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탈은 그만 부립시다 :
羞 :
부끄럽구요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 유형이 있다. 하나는 < 도끼로 이마 까 >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 깐 데 또 까 > 유형이다. 나는 깐 데 또 까 유형에 속하기에 안철수만 깐다. 홍준표와 김문수는 내 관심 대상에서 제외된 지 이미 오래. 내 눈엔 너만 보여. 뭐, 이런 마음이라고나 할까 ?
자유한국당이 승냥이라면 바른미래당은 양의 탈을 쓴 승냥이다. 둘 중 어느 정당이 더 나쁜가 _ 라는 질문은 어불성설이다. 둘 다 승냥이 새끼이니까. 북한 말 중에 < 승냥이법칙 > 이란 말이 있다. 승냥이가 어린 양을 잡아먹는다는 생존 법칙인데, 한마디로 승냥이가 승냥이지 승냥이가 개과천선한다고 해서 푸들 되냥 _ 이런 뉘앙스. 안철수가 지난 대선 티븨 토론회에 나와서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_ 라고 양탈을 부릴 때, 오타다. 앙탈을 부릴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다. 승냥이와 양아치는 계통발생학적 시선으로 보자면 서로 멀다고 하면 안 되갓구나야.
안철수는 항문기 고착 캐릭터다. 다 큰 어른의 이런 양탈은 질색이다. 그가 문재인을 뼛속까지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을 바라보는 안철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문재인 ! 다아아아아아아아 부쉐버리갓어 ~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모범생에 금수저이자 엄친아였던 그가 문재인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번번이 낙마했으니 그의 수치심이 하늘을 찔렀으리라. 그의 수치심은 승부욕에서 비롯된 부끄러움이다. 문제는 안철수라는 캐릭터는 수치는 아는데 염치를 모른다는 데 있다.
전자(수치 羞恥 : 부끄러울 수, 부끄러울 치)는 체면을 중시하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이라면 후자(염치 廉恥 : 청렴할 염, 부끄러울 치)는 도덕적 각성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염치는 없고 수치만 있는 인간은 결국 물불 안 가리고 복수만 다짐하는 캐릭터가 된다. 좋은 예가 영화 << 달콤한 인생 >> 의 강 사장(김영철)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건달이란 양심은 팔아도 쪽은 안 판다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쪽을 파는 짓은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안철수는 속으로 이런 말을 외쳤을 것이다. 문재인은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눈에 보이는 게 없게 되면 염치도 사라진다. 염치가 뭐예염 ? 먹는 거예염 ??! 자신을 너무나 괴롭혔던 자가 우두머리로 있는 당과 합당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염치가 없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두 번이나 뛰어들었던 자가 서울 시장에 목숨을 거는 것도 웃긴 일이거니와 자유한국당과 후보 단일화 협상을 진행한 것만 봐도 그렇다. 나는 안철수를 볼 때마다 순한 양의 얼굴 뒤에 숨겨 놓은 추레한 승냥이1)를 보게 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신에게 염치란 무엇인가 ?
1) 수(羞)는 양을 뜻하는 羊(양 양)과 소를 뜻하는 丑(소 축)으로 구성된 한자다. 두 짐승 모두 솟과( 포유강 소목의 한 과)이기에 한자 구성이 유유상종처럼 보이지만 내막은 다르다. 여기서 丑은 소를 뜻하는 축과 함께 용모가 추하다, 나쁘다, 부끄러워하다는 의미의 추'로도 쓰인다. 반면, 羊은 대부분 좋은 의미로 사용된다(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기는 양고기다. 양고기 하면 역시 칭타오다). 좋은 예가 美와 善이다. 羊이 용모가 예쁜 것을 대표한다면 丑(소 축, 추할 추)는 추한 것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羞에는 미와 추가 공존한다. 안철수는 羊에 가까울까, 丑에 가까울까 ? 나는 후자에 750원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