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도끝도없는 미토끈트리아적 아메바의 오색창렬한 욕망 :













내가 넘나 사랑한 똥멍청이들 !



▶ 좀비 영화는 관객을 똥멍청이로 만든다.  고상한 척하지 말고 그냥 웃고 즐겨 쭈글아 !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이 장르의 법칙인걸 !  나는 밑도끝도없는 미토끄트리아의 헤모글로빈적 욕망 앞에서 부처 핸섬 _ 을 외칠 수밖에 없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싸구려 b급 영화 << 좀비오 >> 는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 와 함께 생각 없이 보기에 최고인 영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한 편도 빠짐없이 섭렵한 나는 그의 영화가 무척 흥미롭지만 하루에 세 편 연속으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감상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타르코프스키, 엥겔로플로스 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는 모든 감각을 오롯이 본다는 행위에 몰입해야 하기에 보고 나면 후유증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뇌에 과부하가 걸렸어.

거장의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나 같은 얼라는 그래도 거장이 숨긴 행간을 찾아내기 위해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다 보면 머리가 아플 수밖에. 사랑한다는 것은 " 어떤 몰입의 형태 " 이기에 사랑은 필연적으로 두통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이럴 때에는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같은 영화가 쵝오 !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 국제시장 >> 이나 << 인천상륙작전 >> 같은 상그지새끼 같은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이어서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중에서도 나름 품격을 갖춘 고상한 영화를 보게 된다(<< 국제시장 >> 이나 << 인천상륙작전 >> 같은 영화는 박근혜 같은 애들이나 좋아할 영화다).

​꼴이 좀 거시기하기는 해도 좀비는 내가 최애~ 하는 장르'다. 라캉의 그 유명한 전언인 " 사드와 함께 칸트 ! " 라는 말 품새를 살짝 17.3도 정도 비틀어서 b급스럽게 흉내 내자면  "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조지 로메르 영화를 ! "  좀비 영화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뻔뻔하다는 데 있다. 그냥 좀비가 당신 앞에 뙇 ~ 나타난다. 좀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에게 다가올 뿐이다. 배우 이병헌처럼 질질 짜며 "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네 ? " 라고 묻지 않는다. 그냥 물고 뜯고 즐길 뿐이다.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변명도 없고 미사여구를 동원한 가족애와 인류애를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좀비(영화)는 평소 뇌섹남/녀를 자랑하던 당신에게 인문학적 교양과 상상은 지나가는 계룡산 초지읍 둘레마을 민들레에게 주고 질펀하게 비명이나 지르라고 충고한다. 소리 질러, 부처 핸섬 yo!                                     좀비의 하드코어한 주문에 넘나 띨띨한 똥멍청이가 된 관객은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처는 잘생긴 남자라고 외치는 사이에 영화는 끝난다. 논리는 잠시 접어두고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좀비물이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정신없이 사는 삶보다는 생각 없이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

생각 없이 살면 이렇게 낄낄거리며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념, 무상, 무아는 원초적 쾌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을 비우기 위해 오징어처럼 흐느적흐느적 걷는 좀비를 호명한다. 좀비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앞에 뙇 ~ 나타나다오. 오늘 밤은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기꺼이 넘나 띨띨한 똥멍청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여..... 오라, 좀비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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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맥도날드 햄버거 ?! 












                                                                                                         많이 먹는다는 것은 더 많은 영양분을 확보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더 많은 독소를 몸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음식 성분에는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과식은 체내 장기 노동자(말 그대로 간, 심장, 위장 따위의 체내 내장 노동자)의 과로를 초래한다.  

주인의 과식은 내장(노동자)의 과로를 부른다. 시도 때도 없이 먹는다는 것은 몸속 장기 노동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을 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지방은 지방산으로, 탄수화물은 단당류로 분해한다. 저잣거리 입말로 표현하자면 내장 노동자들은 해종일 졸라 곡괭이질 해서 음식을 잘게 부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야, 이 주인 놈아 ! 제발 음식은 꼭꼭 씹어먹어랏 !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것들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호르몬과 효소를 이용하여 각종 대사작용을 일으킨다. 여기서 끝 ?!

아니다, 대사작용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노폐물)은 밖에로 배출시켜야 한다. 주인 입장에서 보면 포만감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장기들은 죽을 고생을 하게 된다. 간장, 심장, 위장, 대장, 소장은 혼잣말로 신세한탄하기 일쑤다. 주인 잘못 만나 개고생이구나. 아, 개 같은 내 인생이여 !                            내장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만성 피로에 시달릴 때 비로소 질병이 틈새를 노리고 찾아온다. 과로에 시달리는 내장 노동자에게 질병이 침투하면 엎친 데 덮친 꼴이 된다. 총칼을 든 내장 노동자들은 외부에서 침투한 질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틈틈이 총칼을 내려놓고 곡괭이를 들어 음식을 쪼개야 한다. 전투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몸이 아플수록 굶지 말고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인간과는 반대로 짐승은 몸이 아프면 몸이 회복될 때까지 당분간 곡기를 끊는다.  몸이 아플 때 짐승은 공복을 유지함으로써 몸속 내장 노동자들이 오롯이 질병과 싸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컹컹컹..... 나는 당분간 굶으마, 내 몸속 장기들아, 너희들은 전투에만 집중해 다오 !          영양 과잉 사회 속 현대인에게 있어서 굶는다는 것(만복에서 공복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늘려주는 방식)은 쇠약이 아니라 치유의 방식'이다. 그렇기에 조금씩 자주 먹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복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 규칙적으로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건강에 좋다. 저녁 6시에 저녁밥을 먹고 다음날 아침을 굶고 점심밥을 먹는다면 그만큼 공복 시간(16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속을 비우는 것은 내장 노동자들에게 휴식을 주는 과정인 셈이다. 아침 황금 밥상을 예찬하는 전문가들은 아침을 굶으면 점심에 과식하기 때문에 아침 결식이 체중 증가의 원인이라고 앵무새처럼 말하지만 이런 주장은 1초만에 반박할 수 있다. (아침) 결식에 따른 허기가 과식의 원인을 제공한다면 운동은 다이어트의 최대 적'이다. 강도 높은 운동이야말로 허기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과식의 원인을 제공한다.

힘든 운동은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데도 전문가들은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포츠 산업은 현대 사회의 주요 돈벌이 산업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운 이라면 아침밥은 굶어라. 그리고 운동하지 마라. 운동은 당신의 허기를 촉발시킨다.





덧대기


1. 점심을 한자로 풀어내면 點心(점찍을 점, 마음 심)이다. 점을 찍듯이 간소한 마음으로 가볍게 먹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  간에 기별도 안 갈 정도로 먹는 게 점심이었다(줄여서 간식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옛날에는 < 두 끼 정식  +  한 끼 간식 > 에 가까웠으니 정색하고 말하자면 삼시 두 끼였던 셈이다. 정식으로 세 끼를 섭취하는 현대의 삼시 세 끼와는 차이가 있다.  현대의 삼시 세 끼는 전통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허구'다.


2. 정량(1인분)의 기준은 무엇일까. 햄버거 한 개 ?! 1950년대에는 햄버거에 소고기 28g이 들어갔지만 오늘날에는 170g으로 늘어났고 심지어는 300g이 넘는 제품도 있다. 또한 1970년대 맥도날드 햄버거 열량은 평균 540칼로리였지만 오늘날은 1510칼로리나 된다.  패스트푸드 산업이 거대한 돈벌이 시장이 되자 장사꾼들은 " 값 싸고 양 많은 햄버거 " 를 앞다퉈 내놓으며 사이즈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 결과 빅사이즈가 정사이즈로 둔갑한 것이다.  장사꾼 장삿속에 현대 소비자는 점심에 50년대 햄버거 세 개를 먹는 꼴이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비만의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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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5-26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는 1일1식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 예정이시라면 맛있는 점심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6 13:25   좋아요 1 | URL
푸짐한 저녁밥상을 차려서 먹도록 하겠습니다..ㅎㅎ

2018-05-26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엿 먹어라 !







​종술은 심각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고봉밥 한 그릇을 단숨에 먹어 치웠다 


- 윤흥길, 완장 中

  ​



                                                                                                               양파를 물에 담그면 나중에 싹이 나듯이 보리도 물에 담그면 나중에 싹이 난다1).  싹이 난 보리와 고두밥을 골고루 섞은 후 물을 부어 약불에 3,4시간  끓이면 조청(물엿)이 되고 굳으면 엿'이 된다. 

다시 말해서, 엿의 단맛은 오롯이 보리와 쌀이 만든 맛'이다. 보리와 쌀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결국에는 단맛으로 산화하신 분이다.  알고 보면 쌀과 보리는 슈가보이'다. 밥은 곧 sugar 덩어리'다.  그렇기에 밥 한 공기에 포함된 당을 각설탕으로 환산하면 22개나 된다는 사실에 놀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설탕(雪糖)을 의미하는 한자 당/탕(糖)의 부수가 米(쌀 미)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밥이 곧 설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채식주의자인 승려들이 몸집이 후덕한 이유도 설명이 가능하다. 허세를 부리지면 한자 糖을 사용하는 혈당과 당뇨(와 관련된 성인병)는 쌀의 과잉 섭취와 관련이 있다.

밥이 주식인 한국인에게 반찬 없이 삼시 세 끼를 밥만 먹는다고 가정해도 하루에 최소 각설탕 66개를 먹는 꼴이 된다. 여기에 간식과 야식을 포함(떡볶이 1인분 : 각설탕 17개, 콜라 : 9개, 아이스크림 : 13개, 식빵 1개 : 13개,  잔치국수 1인분 : 39개)하면 하루에 각설탕 100개 이상을 섭취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커피를 마실 때 각설탕 한 개 더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해야 하는 당신에게는 놀랄 만한 사실이다. " 이거 실화냐 ? "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명쾌하다. " 응, 실화야 ! "

< 저탄고지 > 의 핵심은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데 방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인 밥을 줄이는 데 방점을 찍는 식단이고, 내가 실천하고 있는 < 1일1식 > 도 따지고 보면 밥 두 공기를 먹지 않는 식단이다. 그리고 현미 위주의 식단도 백미의 양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제 흰 쌀밥 위주로 삼시 세 끼를 채우는 것은 위험하다. 옛 사람들은 고봉밥을 먹어도 탈이 없었던 것은 그 당시에 설탕은 귀한 음식 재료였다는 데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아침에 먹는 밥이 황금 밥상이라며 꾸역꾸역 밥을 권하는 것은, 음.... 그러니까, 그게.......... 밥 먹으라는 소리는 엿 먹으라는 소리와 똑같다 ■








​                                       



1) 엿기름은 엿으로 만든 기름이 아니라 싹이 난 보리를 말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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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5-2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어머니는 콩밥, 잡곡밥을 많이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흰쌀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콩밥, 잡곡밥을 많이 먹었어요. 콩을 많이 먹으면 정자 수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어요. 콩밥 먹은 양을 생각하면 정자 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거예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5 14:34   좋아요 0 | URL
저도 평생 잡곡밥을 먹었습니다. 콩밥이죠. 콩 넣고 보리 넣고 수수 넣고 ... 저희는 말린 고구마도 넣어도 정말 잡곡밥을 먹었는데... 그게 전 그렇게 싫더군요. 어린 마음에.... 지금은 그립습니다.. ㅎㅎㅎㅎ

다크아이즈 2018-05-25 0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일일일식 이론이 올라 올 때마다 솔깃해지는 일인입니다.
근데 방법을 알면서도 곰발님처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강단과 의지력이 부럽기만 하옵니다.

일일 이식을 하되 탄수화물을 줄이는 방법으로도 살이 빠질까요?
(운동 없이요 ㅠ)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5 16:08   좋아요 0 | URL
뺄 살이 뭐가 있다가 다이어트를 하시나요..ㅎㅎ
다이어트에 운동을 가성비 측면에서 보자면 형편없죠. 운동으로 살 뺄 생각하면 안 되고 무조건 식이 요법인데... ㅎㅎㅎㅎ 방법이 없습니다. 눈 딱 감고 1식 한달만 해보세요. 평생 다이어트 해서 오는 고통을 생각하면서... 1식을 습관화하면 이거 장점이 무궁무진합니다. 정말 강추합니다아..

2018-05-25 09: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5 14:30   좋아요 1 | URL
미국이 비만의 천국이 된 이유는 맥도날도 때문이랍니다. 지금의 햄버거 보통 크기가 50년대에는 딱 절반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쟁을 하다 보니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크게 경쟁을 하다 보니 지금처럼 빅 사이즈 햄버거가 표준이 되어서 사람들도 그것을 따라하다 보니 1일 섭취량이 늘었다는 겁니다.. 결국 많이 먹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계략인 거죠. 확실히 사 먹는 음식은 더 많이 먹게 하기 위해 달고 짜게 음식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ㅎㅎ
 





순대국과 꼬부랑국수


 

 

                                                                                                       남조선 한글 정책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규칙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온통 예외투성이라서 억지로 짜 맞춘 " 가다와꾸 " 같다. 예외가 많다면 불규칙인데 그들은 규칙이라고 우기니, "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이온데...... " 라고 말했던 어린 장금이의 삐딱한 곤경이 이해가 간다.

사이시옷 정책은 참고 참았던 내 인내심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정책이었다. 어느 날 눈을 뜨니 순대국이 순댓국이 되었고 만두국이 만둣국이 되었다. 만두를 만두라 하지 못하고 만둣으로 써야 하니 입말이 쓰다. " - 국 " 앞에 사이시옷이 붙으면 맛이 안난다. 시옷이 주는 어감이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추측한다). 사이시옷 넣는 조건은 간단하다. 한글은 기본적으로 소리나는 대로 적는다는 것이다. 소리 나는 대로 쓴다고 ?  소리 나는 대로 썼다가 맞춤법 틀렸다고 욕 좀 먹어본 사람이라면 황당한 시추에이션이다.  언제부터 한글이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문자였던가 !

예외 많은 규칙은 규칙이 될 수 없다는 상식을 모르는 것일까 ? < 예외 많은 규칙 > 은 한글 맞춤법의 특징이어서 사이시옷을 넣느냐 마느냐도 그때그때 다르다.  전세 + 집 = 전셋집인데, 전세 + 방 = 전세방'이란다. 한자어와 한자어가 결합하면 사이시옷을 삽입하지 않는다는 규정 때문이다(전세방에서 전세(傳貰)와 방(房)이 모두 한자어로 구성되었다). 억지로 규율을 정하다 보니 북어로 국을 내면 북엇국이 되고 탕을 내면 북어탕이 된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서 서로 사맛디 아니 한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구별을 짓는 것은 언어 차별이다.  그런데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도 예외는 존재하니 곳간(庫間), 셋방(貰房), 횟수(回數),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따위는 모두 한자로 구성된 단어인데 사이시옷을 넣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예외의 예외도 존재한다.

고간과 차간을 각각 곳간과 찻간이라고 적으니 기차간이라는 단어를 기찻간(汽車間)이라고 쓰는 것이 합당할 텐데도 기찻간은 틀린 표기이고 기차간이라고 써야 한다. 뭐지 ?????!!    이 정도면 원칙보다 불규칙이 더 많은 규칙'이다. 사이시옷 정책은 예외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어렵다. 또한 그것이 한글맞춤법의 특징이기도 하다. 소리 나는 대로 적었다고 좆 되거나 젖 된 경우...... 다들 있으시죠 ?  반면, 북조선 한글 정책은 남조선 한글 정책에 비해 우수하다. 라면을 북한에서는 " 꼬부랑국수 " 라고 한단다.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귀에 쏙쏙 박힌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은 북한어로 길동무라고 한단다.

만약에 남조선과 북조선이 통일이 되어 한글 정책을 하나로 통일해야 된다면 남조선은 무조건 북조선 한글 정책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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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1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2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앵무새, 그는 몸으로 울었다




 



나는 이름이 없어. 너도 이름이 필요 없어. 우리는 바깥 세상의 모든 것을 잊고 이 방에서 만나는 거야 !



-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김애란 소설을 다시 보기 시작한 계기는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었다. 이토록 " 형편없는 "  소설을 " 형편있다 " 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문단의 허세가 놀라웠을 뿐만 아니라

명색이 대한민국 문학상을 싹쓸이한 소설가가 쓴 소설치고는 지나치게 미숙하다는 점도 놀라웠다. 실망했으나 기대를 저버린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저지른 실수이겠거니 했으나......      그 후에 나온 작품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예쁜 문장으로 예쁜 감성을 탁마하는 기술이야 김애란만 한 작가가 어디 있겠는가마는, 작가가 소설 속 주인공의 절망과 빈곤을 이야기하면서 지나치게 예쁜 문장만으로 상황과 심리를 묘사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소녀 감성처럼 느껴졌다.  김애란 소설은 가난한 달동네 담벼락에 칠해진 예쁜 벽화 같다(구경꾼이 보기에는 예쁜 그림이나 동네 주민에게는 불편한 관심일 뿐이다).

나이가 들다 보니 달달한 소설보다는 담담한 문학이 좋아진다. 권정생의 << 몽실 언니 >> 는 꾸미려는 수작이 없어서 좋다.  실에 대한 직시와 시대에 대한 증언은 이 작품의 깊이를 더한다. 김애란이 명심해야 될 것은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미문이 아니라 직시와 증언이라는 점이다. 가난한 마을의 담벼락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한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소설 << 몽실언니 >> 에서 몽실이는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길 위에서 헤어진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몽실이는 언제나 그렇듯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름이 뭐예요 ?                

몽실이는 왜 그토록 사람의 이름에 집착했을까 ?  양돈장에서 처음 일하게 되는 사람들이 쉽게 범하는 실수 중 하나는 새끼 돼지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 녀석은 똘똘이, 이 녀석은 촐랑이, 그 녀석은 얼룩이. 이름이 생기는 순간에 각각의 고유한 개성도 생기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돼지를 키워서 도축장으로 보낼 때에는 마음의 상처를 얻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양돈장에서 돼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일부러 짐승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혹은 그 사람의 이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마음가짐의 출발이다.

앵무새를 키우는 친구가 있었다(https://blog.naver.com/unheimlich1/221080922232  : 숙녀와 새). 혼자 사는 그는 앵무새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자기 이름을 반복적으로 앵무새에게 상기시켰다고 한다. 내 이름은 ○○○이야. 따라해 봐 !                          혼자 사는 그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하는 말은 혼잣말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외롭지 않다고 했다. 그는 나를 만나면 항상 입에 침이 마르도록 앵무새를 칭찬했다(정확히 말하자면 친구가 아니라 아는 동생이었다).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몇 달 후였다. 새가 사라진 것이다. 친구는 술자리에서 앵무새를 잃어버렸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은 그 앵무새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구는 내내 앵무새 이름을 부르며 슬퍼했다. 그때는 다 큰 사내가 작은 새 한 마리 때문에 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혼잣말이 늘어날수록 그 친구의 슬픔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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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1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8-05-12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ㅠㅠ 아오 곰발님 글 너무 좋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담담한 문학이 좋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5-12 14:15   좋아요 1 | URL
앗, 고양이라디오님 오랜 만입니다. 왤케 오랜.. 아니다... 저도 요즘은 좀 뜸합니다아..

고양이라디오 2018-05-12 14:39   좋아요 0 | URL
요즘 책 읽는 것도 뜸하고 알라딘 활동도 뜸합니다아..
생활리듬이 깨졌습니다. 바로 잡으려 노력중입니다ㅜ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5-12 14:45   좋아요 1 | URL
저도 불규칙합니다. 어느 달에는 몇 십권씩 일다가 또 몇 달 간은 한 권도 안 읽기도 하고...ㅎㅎㅎ

2018-05-20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1 12:53   좋아요 0 | URL
오랜 만이십니다. 댓글도 반갑지만 야무 님의 알찬 포스트가 그립군요. 잘 지내시지요 ? ㅎㅎ
김애란, 너무 소년소녀 감성으로 글을 쓰는데 어느 순간 불편하더라고요.. 왜 이렇게 다듬지 ? 이런 반감...
어서어서 패션 포스팅 올려주십시오. 발군의 글입니다.... 시리즈로 쭈욱 한번 가시지요 ?

2018-05-21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2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인 구달이 침팬지...실험동물에게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첫 사례라고 하죠. 번호로만 취급하며 대상화할 때 함부로 다루기 쉽고 거기서 소통의 마음이 생길리도 만무.
언젠가 버스를 탔는데 앵무새를 동행자로 데리고 다니는 아저씨를 보고 깜놀@0@...그런 분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5-24 13:36   좋아요 0 | URL
버스에서 앵무새와 동행한 사람, 혹시 제가 아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또 다른 생명의 시작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