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어 같기도 하고 포르투갈어 같기도 한 살인 방식에 대하여  :
















도끼와 상어

                 












                                                                                                      공포(두려움)가 섹스 상품만큼 잘 팔린다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었다. 보기에는 곰같이 보여도 영상 감각만큼은 여우 같은 사람이었다.

파방에 수수엿 장수처럼 별 볼 일 없던 배우 안소니 퍼킨스는 식칼 하나 손에 쥐고 상대방을 향해 휘투루마투루 예닐곱 차례 종이칼을 휘둘렀을 뿐인데 스타가 되었고, 영화 << 사이코 >> 는 천문학적 수익을 거둬들였다. 타인을 어떻게 창발적으로 죽일 것인가 _ 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고민이자 인생 화두였다. 도끼로 이마 깔 것인가, 아니면 도끼로 이마 깐 데를 또 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깔 것인가 ! 흥행에 눈이 먼 제작자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 "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깐 데를 또다시 까기 " 로 하죠 ? 자극적으루다가.......                                       

하지만 히치콕 감독은 지나치게 깐 데 또 깐 데를 다시 또 까고 또다시 까는 행위는 자칫 공포 차원을 벗어나 혐오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동물적 본능으로 알고 있는 인물이어서 선을 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그는 혐오 감정은 흥행(돈)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리라 _ 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을 잘 죽여야 영화가 살 수 있는 공포 영화 장르에 있어서 걸작(傑作)이냐 걸작(乞作)이냐1)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이다. 어디까지 도끼로 이마를 깔 것인가, 도끼로 깐 데를 또 까도 되는가, 검열과 윤리적 문제는 해결되었는가 ?

이 오랜 고민 끝에 나온 영화가 바로 << 프렌지 >> 이다. 이 영화는 당대 검열 기준으로 보자면 공포와 혐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지만 김정은처럼 문재인 손을 잡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때가 때인지라 잠시 삼천포로, 아니 판문점으로 빠지자면 4.27 판문점 정상회담이라는 영화는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의 " 선을 넘었다 " 는 점에서 러브어페어'이자 폴리티칼 브로맨스 장르이다. 사랑 영화의 핵심은 두 사람이 선을 넘으면 안되는 데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선을 넘는 행위이니깐 말이다. 김정은은 문재인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내래 동지를 잊지 못하갓시오. 동지 생각만 하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당최 모르갔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날래 왔습네다. 자, 선을 넘갓시오.  긴긴밤 내내 보고 싶었습네다, 사랑하는 문재인 동지 ! "  

특히,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새소리를 달콤한 음악삼아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장면은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 를 뛰어넘는 명장면이다. 두 정상이 나눈 것은 밀담이 아니라 밀어다.  사이칠데이# 로맨틱# 성공적 !  본론으로 돌아와서 히치콕의 모든 영화는 걸작이지만 내 취향을 고려하자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와서 만든 마지막 영화 << 프렌지 >> 는 정말 위대한 걸작2이다. 그는 사람을 제대로 죽일 줄 아는 예술가다. 히치콕 쵝오 !

 

 

그런데 공포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비단 히치콕 감독만은 아니다. 홍준표라는 악다구니와 나경원이라는 어처구니-들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 떼거지 자유한국당 역적 패당도 그동안 북풍 장사로 부귀 영광을 누린 족속이다(참말로 어처구니가 없네) 그들은 북한이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공포를 유발했고 이 안보팔이 약발이 꽤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 되는 황무지가 대구를 중심으로 부울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경상도만 수성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3.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 도끼로 이마 까  " 라는 스킬도 처음에 등장할 때에만 신선하지 자주 나오면

식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어서 유권자들은 악다구니와 어처구니들의 도끼질에 질리기 시작해서 어느 순간 도리질을 치기 시작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러니까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자유한국당은 도끼질을 남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 도끼로이마깐데또깐데다시또까고또다시이마깐곳다시또까고까고다시또까는북한의도끼만행......... " 이토록 길고 긴 도끼 변주곡은 김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로 시작하는 전설적 만담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네이밍이다. 그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안보 위기론이다.

이 정도면 식상을 떠나 상식을 떠난  클리셰가 아닐 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아니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도끼로 적당히 까야 공포가 발생하는 것인데 도끼로 너무 많이 이마를 까다 보니 공포가 혐오로 변질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다. " 이 개 씨부랄 새끼들아, 그만 까라. 불쌍하지도 않냐 ?  너희들은 피도 눈물도 없냐 ? "  이리하여 자유한국당이 야심 차게 제작한 공포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게 되니 눈물이 앞을 가리리라.  이 사실을 간파한 것일까.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 선거 로고송으로 국민 동요 < 상어 가족 > 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공포에서 동화로 장르를 변경한 것이다. 미성년자 관람 불가에서 전체 관람가로 변경하니 세대를 초월한 월경이다. 도끼로 이마 까던 놈들이 양팔을 허리춤에 올리고 혀 짧은 목소리로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엄마 상아 뚜루루 뚜루 ~  이런 노래를 부를 생각을 하니 진정 공포스럽다. 진짜루.  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  그냥 하던 대로 도끼로 이마나 까. 전체관람가는 너희들에게는 안 어울린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야. 평소 안 하던 짓 하면 일찍 죽는다더라.









​                                            


1) 乞 : 구걸할 걸, 망할 걸, 거지 걸

2)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몇 안 남은 행운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불행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보면 되니까

3)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친 유권자 수는 충청남도 + 충청북도 + 전라남도 + 전라북도 + 제주도 + 강원도 인구를 모두 합친 유권자 수보다 많다. 그것이 자유한국당이 믿는 구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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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8-04-29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늘 저도 블로그에 홍준표. 나경원에 대해 썼는데요, 곰발 스승님의 글을 읽어보니 지우고 싶어지네요 ㅠㅠ 댓글이 안달렸다면 당장 지웠을 듯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와 정상회담을 비교한 대목이 특히 공감이 갔습니다. 생각보다 김정은이 세련된 지도자더군요. 언론의 매도 땜시 저도 그런 줄 몰랐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08:55   좋아요 0 | URL
스승님이라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늘 과대포장의 칭찬을 해주셔서...
저는 다리 회담이야말로 기가 막힌 한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남북 하면 어두침춤한 색깔이 떠오르잖아요.
더군다나 두 정상만 가지는 밀담은 대부분 검은색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게 코페루스쿠스적 전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유리 안에 두 정상을 가둬 다 볼 수 있게 만들고 주조색이 파란색과 초록 아닙니까.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걸작이에요, 걸작 !

2018-04-30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30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0:41   좋아요 1 | URL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평양 가서 냉면 먹고 유럽 가서 여행하고.... 뭐, 이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 박근헤가 한 말 중에 딱 하나 맞는 소리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죠... 어서어서 좋은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문 대통령님 너무 열일 하시는데 과로로 건강 상하실까 슬쩍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ㅎㅎ

수다맨 2018-04-30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홍준표가 대권이나 전국구에는 이제 관심도 미련도 없는, 그저 지방정당의 왕초로서만 어떻게든 남고자 북풍 장사를 하고 있는 거라면 전략적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되었거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유산과 악습에 애착을, 현 정부에 무조건적인 반발심을 가진 어르신들의 한표는 확실히 끌어모을 수 있거든요.
자유한국당은 한국 사회에서 정당적인 가치와 의의를 잃은지 한참이나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존속 여부조차 점점 불투명해질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는 홍준표가 아주 잘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당은 한시 바삐 사라져야 나라에 보탬이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30 13:32   좋아요 0 | URL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우리 준표는 보물이죠. 한국당에게 준 표가 이제는 민주당에게 줄 표로 바뀌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준표 같은 인물은 정치사의 똥물 아니겠습니까. 뭐, 한국당 전체가 똥물이기는 하지만..

나와같다면 2018-06-0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한당의 선거운동 로고송
˝아빠 상어 뚜루루 뚜루, 엄마 상어 뚜루루 뚜루~˝ 들으면, 뭔가 부자연스럽고 괴기스러운 불편한 감정이 들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6-09 10:12   좋아요 0 | URL
동화 생각납니다. 빨간 모자 소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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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악수








 




2002년 월드컵 때, 인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떼거지로 응원을 할 때 나는 코웃음을 쳤다. 코로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항문으로 웃을 수는 없으니까. 내가 세계사에서 거대한 획을 그을 이날(2018년)에 그날(2002년)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히키코모리 성향이 있는 개인주의자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촛불 집회 때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으로 스무 차례 정도 출근 도장을 찍은 계기는 위대한 이명박근혜 동지가 싼 똥 때문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투철한 민주주의 시민 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부터 광장에서 만난 세 사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세 사람이야말로 나한테는 가장 훌륭한 책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었다. 소리성애자인 나는 내 옆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두 명의 학생들이 나누는 대사에 넋을 놓고 듣고 있었다. 서울 말씨 같기도 하나 어찌 들으면 강원도 사투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경상도 사투리 같기도 했다.  도대체 이 인간들의 출신 성분은 어디인가 ?  궁금증을 참지 못한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 어디서 오셨어요 ? "  내 질문에 그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제주도였다. " 뭐요, 제주도에서 광화문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올라왔다구요 ? "  내용인즉슨,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 허락을 받아 친구와 함께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때 내가 깨달은 점은 제주도에서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왔는데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는 내가 집회에 빠지면 안 되겠구나 _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코 꼈네. 물어보지 말 걸 그랬어. "  두 번째는 휠체어를 탄 구순 노모를 끄는 (아들로 보이는) 장년의 남자였다. 그 어마어마한 인파를 뚫고 휠체어를 끈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아들은 구순 노모를 데리고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그때 깨닫게 되었다.   혼자 집회에 참석하기보다는 주변인을 동원하라.  나는 생각했다. " 시바, 코 꼈네 ! " 세 번째는 휠체어가 아니라 들것(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 바퀴가 달렸다)이었다.

그 환자는 앉아 있을 힘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집회에 참석해서 작은 힘이라도 보탤 요량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나는 생각했다. " 진짜루, 코 꼈네 ! "  그렇게 주말마다 나오다 보니 스무 차례.  하지만 나는 이 평화로운 집회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프랑스처럼 조금 더 폭력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  내 판단은 틀렸다. 그때의 평화가 지금 김정은과 문재인이 악수를 하게 만든 원천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 역사적인 결과에 나도 한몫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하다. 이 자리를 빌려 제주도에서 올라온 학생, 휠체어를 탄 구순 노인과 그 아들,

마지막으로 들것에 실려서 별 하나 없는 캄캄한 서울 하늘을 바라보셨던 그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 평화로운 밤을 만든 사람은 문재인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이다. 당신들은 나의 가장 위대한 스승이었다. 많이 배웠시다. 만수무강하십시오.






 


덧 ㅣ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 야, 시발 개새끼들아 ! 대한민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외신 기자들이 이 감격스러운 장면 앞에서 울더라. 씨부랄새끼들아. 니들이 사람새끼냐.. 나라 잃었냐. 부모 초상 치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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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4-2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나경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어처구니가 없다‘ 는 논평을 내놓았군요.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영향력을 이렇게 괴물처럼 사용할 수 있다니..
근데 이 사람 ‘다스‘ 주어가 없다는 말 사과는 했던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9 14:34   좋아요 0 | URL
나경원 사전에 배는 있어도 사과는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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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신발 !




                                                                 

                                                                                                    봄이 오면 운동화를 사고 싶다는 마음이 을숙도 점례 할매집 둔덕에 피는 쑥도 아니면서 불쑥 솟는다. 지난겨울 내내 방한을 위해서 무거운 신발만 신다가 봄이 되니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싶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운동화를 신을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된다. 뿐만 아니라 운동화 가격도 만만치 않다. 실용성을 따지자면 한두 번 신다가 신발장에 갇힐 운동화를 사느니 그 돈을 보태서 좋은 구두 한 켤레를 사는 게 경제적 소비이다. 나는야.....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행동가 !  4년째 1일1식을 실천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최소주의 삶에 경도되어서 내가 소유한 물건을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일단 현관에 위치한 신발장에 갇힌 신발은 두세 컬례만 남기도 모두 처분했고 책은 돈이 될 만한 것은 팔고 나머지는 모임이 있을 때마다 가지고 나가서 나눠주었다. 책장을 1/5 줄이는 데 성공 ! 

옷은 90% 정도 처분했다.  작년에 입지 않은 옷은 올해도 입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작년에 입지 않았고 올해도 입지 않은 옷은 내년에도 입지 않을 가능성에 매우 높다는 어느 미니멀리스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버리기로 했다. 내가 동물 털로 만든 오리나 거위 털 패딩을 입은 소비자의 비윤리성을 지적하는 이유 또한 내가 오리나 거위 털 패딩을 처분했기에 가능했다. 비열한 지적질이 아닐 수 없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린다. 아임쏘리 ! Ummmm..... 아임파인탱큐,엔드유 ? 그래도 봄인지라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5월 7일에 피는 진달래처럼 폴짝폴짝 뛰고 싶다.

어느 미니멀리스트는 경제적 소비와 윤리적 소비를 위해서 옷을 살 때에는 옷 가게에 가기 전에 먼저 집 옷장을 열어보라고 충고했다. 나는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아 _ 하고 나서 무릎을 탁, 치면 이상하니까. 옳거니 ! 그는 옷 매장에서 가장 예쁜 옷을 사는 것보다는 집 옷장에 걸린 옷과 두루두루 어울릴 만한 옷을 사야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합리적 소비자이자 경제적 소비자이며 윤리적 소비자이기도 한 나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운동화를 사기 전에 옷장 대신 잘 신지 않은 신발들만 따로 모아둔 다용도실 신발장을 열어보았다.

깜짝 놀랐다. 운동화라고는 한 켤레도 없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멀쩡한 운동화가 여섯 켤레나 있는 것이 아닌가 ?  더군다나 밑창을 살펴보니 밑창이 거의 닳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새 운동화나 다름없었다. 어찌 된 일인가.  타임라인을 뒤로 돌려보기로 했다. 지난 날들이 주마등까지는 아니더라도 밝은 형광등처럼 지나갔다. 아, 이런 씨이이인발 !  나는 해마다 봄이 되면 운동화 한 켤레를 샀던 것이다. 운동화 한 켤레 없는 내 빈궁한 삶을 저주하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재재작년에도, 재재재재......  그리고는 봄날에 잠깐 신었다가 경성 모던보이 풍각쟁이 날라리 오빠처럼 쉽게 싫증을 내고는 다른 고무신으로 갈아탄 것이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소비자이며 내로남불의 이중인격자인가.  입만 열었다 하면 윤리적 소비를 외치던 녀석이 알고 보니 해마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놈이었던 것이다.  운동화 여섯 켤레를 세탁기에 넣어 세탁한 후 뽀송뽀송하게 말렸다. 피식, 웃음이 났다.  참.... 골고루 샀구나. 퓨마, 나이키 1.2, 컨버스, 소커니, 아디다스. 이토록 어리석은 소비 욕망 - 들.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 신발처럼 깨끗한 운동화를 보면서 결심했다. " 그러고 보니 뉴발란스 운동화가 없네 !  뉴발란스 하나 사야겠어...... "


 

 






덧 ㅣ 이 화창한 봄날, 이게 다 문재인 덕이다. 만수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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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04-27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과 그림자를 드라마틱하게 활용하는 곰곰생각하는발님의 사진..

네.. 이게 다 문재인 덕입니다
충분히 누리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8 06:05   좋아요 1 | URL
막국수처럼 막 찍은 사진입니다..ㅎㅎㅎ


하여튼 이게 다 문재인 덕이고 촛불 시민 덕입니다...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님 !! (제가 알기로는 나와같다면 님, 항상 촛불 집회에 나오셨던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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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간을 삽니다  :


 





시간에 쫓기는 청춘들 


 


                                                                                                   보통 섹스는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쾌락이다. 이 글은 사정 시간을 지연해서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차원을 이야기하는,  조루냐 지루냐 그것이 문제로다 _ 따위를 논하는 장이 아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남성이 여성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한 매너와 선한 의지를 선보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둘은 사랑을 나눈다.  물론,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여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한량도 있지만 일반 남성 대부분은 원빈 앞에서 모두 오징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부끄럽고요. 됐고 !  그런데 성범죄 가해자들은 이 지루한 시간을 생략한 채 바로 결과만을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권력과 재력으로 이 지난한 공정을 생락한다. 

매춘은 돈을 주고 여성의 몸을 산다기보다는 이성과 섹스를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 비용을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자의 시간(품값)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동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현빈의 츄리닝이 공장 츄리닝에 비해 명품인 이유는 장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탓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을 주고 타인의 노동 시간을 구매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수 있는 것은 가사 노동자가 정성을 들여서 밥상을 차렸기 때문이니까. 

반대로 가난한 노동자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아침에 눈 뜨면 부랴부랴 씻고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에는 분초를 다투는 달리기도 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와는 달리 시간을 구매할 여윳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도 불공정한 시간 배분에 있다.  흙수저는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서 알바 일을 하지만 금수저는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면 된다. 당연히 흙수저는 금수저에 비해 공부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특혜와 편법이 난무하게 되면 일반 평사원이 전무가 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 30년은 3년으로 단축되기도 한다.

대한항공 조현민 씨처럼 말이다. 조현민은 애비와 에미를 허벌나게 존나 잘 둔 덕에 남들이 임원이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을 무려 27년이나 생략한 채 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허벌나게 존나 말이다. 나는 그들 로열 패밀리에게 허벌나게 존나 묻고 싶다. " 자사 노동자를 그렇게 노예 부리듯이 부려먹으면 허벌나게 좋냐 ?  "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시간 불평등을 야기한다.  대한민국 일반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살인적 수치'라는 것은 한국 사회가 빈부 격차가 심각한 사회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기에 더해 치솟는 집값은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집터를 서울에서 서울 외각 자리로 밀려나게 만든다.

당연히 출퇴근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함께 퐌타스띡한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가난한 노동자는 늘 시간이 모자란다.  개그콘서트에서 인기 있었던 코너 << 생활의 발견 >> 은 흙수저의 시간 불평등을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쓴 글이 있기에 갈무리하며 매조지하자.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시장의 법칙이다. 골목 또한 마찬가지다. 흩어져서 제각기 경쟁하는 것보다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모여서 골목을 형성할 때가 더 유리하다. 골목 형성이 효율적인 상권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벌집처럼 오밀조밀하게 모인 군집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광고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단, 가고 본다 ! 가장 좋은 책은 종이책이지만 그래도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이 있지 않은가 ? 풍전옥이 문전성시라면, 그 옆의 전주집은 어떤가 ? ** 골목의 장점은 상황에 대처할 피드백이 공존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터들이 좋은 상권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광은 < 원조 > 들의 <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난의 서사‘ > 를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가난했던 그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까닭은 그곳이 변두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골목의 큰 판이 바로 시장이다. 이 시장도 원조들의 가난한 성공담을 바탕으로 한다. 변두리는 어느새 이들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상권의 중심이 된다. 땅값이 오른다. 재주는 상인이 부렸는데, 상금은 건물 입대 주인이 주워 먹는 꼴이다. 최초의 시장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시장 근처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달동네가 형성되는 것이다. 할렘의 한국 버전이 바로 달동네다. 할렘의 탄생이다. 처음에는 값 싼 지역으로 출발했지만 시장의 범위가 커지자, 땅 값은 치솟는다. 이 치솟는 집값을 마련할 여지가 없는 사람은 좀 더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한국의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이 대충 이런 식이다.

 

지금부터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시장 밖 주거지로 옮긴 ( 더 싼 방을 위해서 ) 시장 노동자는 시장 중심에서 멀어진 만큼 더 많은 노동 시간을 할당받는다. 왜냐하면 출퇴근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장 안 노동자'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집이 없는 시장 노동자는 이래저래 지친다. 그런데 문제는 더욱 꼬인다. 시장 중심을 장악했던 외지인은 배가 부르자 복잡한 주거 복합 상권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을 즐기고자 한다. 퇴직연금자나 건물 임대업자 그리고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출퇴근 시간'이야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닌가 ?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냈던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옮긴다. 땅값은 오르게 되어 있다. 이에 시장 노동자는 쫓겨나듯이 다시 더욱 먼 곳으로 옮긴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악순환. 악순환이다. 이제는 서울에 직장을 둔 경기도 외각 거주자가 탄생한다. 그들은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을 거리에 버리는 것이다.

 

초기 < 생활의 발견 >서사는 바로 가난 때문에 자신의 주거지를 빼앗긴 가난한 외각 거주자의 씁쓸한 풍경을 다룬다. < 생활의 발견 > 이 주는 웃음은 장소와 사연 ( 둘 중 하나는 이별을 통보한다. ) 의 엇박자가 주는 골 때리는 장면에서 쏟아진 페이소스'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물고는 우리 헤어져 ! ” 를 진지하게 말한다. 이별과 식욕의 관계는 마치 < 금각사 > 의 미시마 유키오< 인간실격 > 의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한 상극이다. 이별 앞에서의 왕성한 식욕이라니 !

  

하지만 호탕하게 웃다 보면 왠지 모를 비애가 느껴진다. 그것은 슈퍼맨이 아닌 소시민의 비애이리라. 이별에 어울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창 넓은 커피숍 정도가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콩트 속 주인공은 대부분 식당이다. 왜 그들은 커피숍이 아닌 식당을 선택할까 ? 보아하니, 콩트의 배경은 저녁인 것 같다. 퇴근길이거나, 수업을 끝내고 만난 것이다. 그들은 식당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 밥도 먹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며,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한다. 그들은 한곳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이다. 부자들이야 밥은 식당에서, 술은 술집에서, 이별 통보는 마지막에 들린 찻집에서 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럴 수가 없다. 돈도 돈이거니와 시간도 없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놈의 퇴근길은 지옥 같다. 걸레처럼 지친 몸으로 잠이 들고, 다시 걸레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음먹고 제대로 이별을 통보할 수도 없다.그냥 한곳에 앉아서 오늘 해야 될 모든 코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가 이별 고백을 했던 감자탕 집 < 풍전옥 >은 식당이었으며, 술집이었고, 커피숍이었다. 짬짜면이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웃기는 짬뽕 같은 식당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 생활의 발견 > 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사는 찌르레기가 한 마리가 찌르르르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별조차도 멋지게 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별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넘치는 노동 시간 앞에서, 퇴근길 지옥 앞에서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모두 지친 우리는 슬픔 앞에서도 침이 고인다. 마치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밥그릇 앞에서 무한 대기해야 하는 개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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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9: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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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4-23 09:29   좋아요 0 | URL
제 이웃이 말씀하시더군요. 요즘은 ˝ 시간을 낸다는 ˝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정말 지금 노동자는 시간조차 낼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2018-04-2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7 1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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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을 입든 말든 당신이 뭔데 지랄이야 _ 라고 말하는 이에게 :  







정치와 패딩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동물 (깃)털로 만든 옷 10벌 가운데 8벌은 살아 있는 짐승의 털로 만든다고 한다. 처음부터 살아 있는 짐승의 털을 뽑아 옷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시작은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뽑은 오리나 거위 깃털을 다른 용도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다가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 수요가 급증하다 보니 이제는 강제로 산 짐승의 깃털을 뽑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 깃털을 깎는다 " 는 행위가 아니라 " 깃털을 뽑는다 " 는 데 있다. 깎는다와 뽑는다의 차이를 못 느낀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역지사지.  김건모는 노래한다.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네가 나라면 넌 웃을 수 있니 ?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오달수의 대사를 인용하자면 당신은 상상하는 순간 비겁해질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이 사람을 A라고 하자)강제로 당신 머리털을 뽑는 장면을 상상하면 된다.  모근에는 살점과 함께 찢어진 살에서 배어 나온 피가 묻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 이 모오오오오오든 것이 1분 안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찢어진 살은 그 자리에서 실로 꿰매진다.  당신이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그 고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A는 털이 뽑힌 당신을 한 번 쓰고 버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경제적이지 않으니까.  휴먼 패딩을 생산하는 A는 털이 다시 자랄 때까지 당신을 보살핀다.  두 번째 고통은 첫 번째 고통보다 더 고통스럽다.  왜냐하면 머리털이 강제로 뽑힐 때의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경험한다는 것은 기억을 각인한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영단어를 암기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육화된 기억이다.  이런 식으로 머리털이 뽑힐 때마다 고통은 N 번째 고통보다 더 고통스럽다. 

동물 깃털로 만든 옷의 소재를 제공하는 동물들은 평균 10여 차례 정도 털이 뽑히고 나서야 비로소 죽는다고 한다. 이렇듯 짐승은 인간이 부리는 멋을 위해서 평생을 벌거숭이로 살다가 죽는다. 지금 당신이 멋을 내기 위해서 입고 있는 패딩은 그런 식으로 유통된다. 모피를 입고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이나 (동물 털로 만든) 패딩을 입고 동물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은 서로 다르지 않다. 가죽을 얻기 위해 짐승을 죽여서 가죽 옷을 만드는 행위와 산 짐승의 털을 강제로 뽑아서 패딩 옷을 만드는 행위 중 어느 것이 더 비윤리적일까 ?   내가 보기에는 후자가 더 비윤리적이다.

나는 동물 생명권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인류 멸망이 곧 지구 멸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동물 털 소재로 만든 패딩을 유행 따라 입고 다니는 소비 형태에 대하여 비판은 해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개고기 식용 반대를 외치며 캣맘을 자처하면서 적극적으로 동물 생명권을 주장하는 당신이 유행따라 패딩 신상을 몇 벌씩 구매하며 블링블링한 엣지를 뽐낸다면 그 행위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신랄하게 비난할 것이다. 여보세요, 지금 당신이 멋으로 입고 다니는 패딩 속 깃털은 피묻은 깃털입니다.  보통 구스다운 한 벌에 들어가는 거위의 깃털은 15마리에서 20마리 정도라고 한다.  

이 표현을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 보통 구스다운 한 벌에 들아가는 거위의 피 묻은 깃털은 15마리에서 20마리 정도입니다아. "  누군가가 패평을 부탁한다면 나는 이런 논평을 내놓겠다.  신의 엣지에 나는 때찌. 제 점수는요 !          내가 이 글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 선택 = 정치 " 라는 점이다. 미시(微視)가 거시(巨視)를 세우는 토양이듯이 거시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의 발화점은 대부분 미시사에서 사소하게 다루던 꼬투리였다.  쉽게 말해서 숲을 전소시킨 발화점은 젖은 풀잎 하나

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을 통해서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기사를 읽으며 누른 클릭, 좋아요, 댓글 하나가 결국에는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다. 마찬가지다. 당신이 특정 상품을 소비하기 위해 선택한 목록 또한 결국에는 정치적 행위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피를 구매하려 할 때 윤리적 저항에 직면하듯이 구스 다운 패팅 역시 윤리적 저항에 직면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노래 한 곡 띄웁니다. 인순이가 부릅니다. 거위의 꿈. 저는 이 곡을 끝으로 물러납니다. 좋은 밤 되세요. 굿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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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0 11:14   좋아요 0 | URL
동물 윤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소비자는 문제가 있습니다.
동물 털 소재로 만든 패딩 소비율이 한국이 1위 러시아가 2위란 소리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소련은 살인적인 추위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한국은 ? 그거 아시나요 ? 모피 소비율 세계 1위도 한국이라는 거 ?
그 수많은 캣맘과 댕댕이 아빠 엄마들은 그렇게 동물 사랑을 부르짖으시면서 어떻게 살아 있는 짐승의 털을 뽑아서 만든 옷을 죄책감없이 입으며 옷맵시를 뽐내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2018-04-22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2 21:31   좋아요 0 | URL
잘 들어갔습니다.. ㅎㅎㅎ 다음에도 또 봅시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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