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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큐정전 ㅣ 범우문고 194
루쉰 지음, 허세욱 옮김 / 범우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K 트 럼 프 시 대 의 도 래 :
오르막길
" 아Q ㅡ " 는 젊은 청년이지만 체력이 약하고 행동이나 성질이 너절하며 더러운 인물이다. 그는 비록 약자이기는 하나 그를 동정할 만한 구석을 찾기는 어렵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사람이 바로 아큐'라는 인물이다. 그는 야비하고 비굴하다. 그리고 멍청하다 !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길고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짧은, 루쉰의 소설 << 아큐정전 >> 은 아큐의 10년 남짓한 생을 조망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큐는 상종도 못할 인간 말종이라며 욕을 하게 된다. 아큐는 변두리 마을에서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최하층 노동자다. 그는 성명도 불분명하고(아Q는 사람 이름이 아니다. 아무개Q 라고 이해하면 된다)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다. 북어처럼 바짝 마른 그는 비열하기 짝이 없어서 마을사람들로부터 많은 굴욕을 당하고 살지만 특유의 정신승리법으로 극복한다. 그런데 그의 정신승리법은 초월적 극기'가 아니라 자기를 초월한 기만, 빛의 속도로 망각하기, 근거 없는 자신감을 동원한 자기합리화다.
그는 최하층 계급의 족보 없는 떠돌이 노동자이지만 자신을 명문가 양반 계급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다닌다. " 내가 왕년에 말이야 ...... "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의 왕년이 화려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가 왕년을 호명할수록 마을사람들에게 다구리를 당할 뿐이다. 그는 강자에게 받은 굴욕과 분노를 자신보다 나약한 여성(젊은 비구니)에게 성적 위협과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해소하며 자위한다. 전형적인 개새끼다. 그러다가 자신을 핍박하던 사람들이 혁명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혁명당에 가담한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다니다가 불쌍하게도 나이 서른에 거리에서 총살 당해 죽는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 소설에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무개 Q의 " 반(反)계급 성향 ㅡ " 이었다. 마을사람들보다도 못한 평균 이하의 밑바닥 삶을 영위하면서도 그는 꿋꿋하게 평범한 마을사람들의 계급을 부정하며 경멸한다. 하지만 그의 반계급적 소속감(왜곡된 자신감)은 자신의 욕망을 투사했던 양반에게 구타를 당함으로써 부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큐는 명문가 양반 계급을 열렬히 지지한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 그것이 바로 아큐라는 이대남의 정신승리법이다. 대한민국 20대 대선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계급투표 성향이었다.
기독교인이 반기독교 후보를 지지하고, 노인들이 노인 복지 공약이 전무한 후보를 지지하고, 박근혜를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 박근혜를 구속했던 후보를 묻지마 지지하고, 이대남은 청년의 반노동 정책을 선언한 후보를 지지한 결과가 윤석열의 당선이다. 사람들은 강남 3구의 윤석열 몰표를 비판하지만 강남 3구 유권자의 윤석열 몰표를 비판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계급 투표야말로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대 대선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결집은 강남 3구 유권자와 이대녀이며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인 셈이다.
강남 3구 유권자를 비판하기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신이 소속된 계급을 배신한 하위 계급의 무지'다. 윤석열에게 몰표를 선물한 이대남 현상을 보면서 불현듯 오래 전에 읽었던 아큐라는 중국의 이대남이 생각났다. 9급 공무원이 삶의 목표인 그들은 1급 공무원인 윤석열을 지지함으로써 가파른 계급적 상승과 그에 따른 동질감을 느끼겠지만 그것은 일종의 프로포폴이 아닐까 ? 일장춘몽 말이다. 아큐가 자오(명문가 양반)를 아버지로 선망할 때 자오가 아큐에게 선물한 것은 호부호형이 아니라 분노의 싸다구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마찬가지다.
윤석열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인 것처럼 환호하는 이대남에게 윤석열이 당신들에게 주는 선물은 청년 노동 악법'이다. 120시간 근로, 주52시간법 개정, 최저임금제 퇴행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기사를 송출하면서 그를 " K트럼프 " 라고 명명했다.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대남의 후기가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온다. 대세는 이렇다. " 장난이었는데 정말 윤석열이 당선될 줄은 몰랐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제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은 오르막길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검찰 공화국의 가시밭길이 펼쳐질 것이다.
정인은 < 오르막길 > 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 이대남이여, 건투를 빈다잉. K트럼프 시대의 도래에 앞서 루신의 << 아큐정전 >> 읽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