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 마 의 루 이 스 :
프레시안, 엿이나 먹어라 !
" 전화받으시죠? " 밤 11시 40분, 수신인 입장에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께가 아닐 수 없다고 아니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명료한 정신은 아니어서 흘려듣고는 이내 끊어버린다.
다음날,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하기 1시간 30분 전에 프레시안 단독 특종 보도가 송출된다. < 나는 정봉주 의원에게 성추행 당했다 !!! > 일파만파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조중동 기사는 알고 보면 대부분 쪽파로 판명이 나는 경향이 많았는데, 프레시안이 자신만만하게 터트린 일파만파는 대파로 확장되었다. 정봉주, 서어리, 프레시안은 이틀 내내 실시간 검색어 1,2,3위를 다투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잘 짜인 각본을 바탕으로 한 정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악인이 승승장구하여 인생 만렙을 찍으려는 그 시점에서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것이야말로 정치 스릴러가 갖춰야 할 품격 있는 클라이맥스가 아니었던가 !
벼랑이 아찔할수록 몰락은 아름다운 법이니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 시발..... 졸라 아름답다야. 노파심에서 미리 밝혀두는 것이지만 나는 정봉주 지지자가 아니다. 지지자이기는커녕 정봉주와 미권스를 사이비 종교 따위로 인식하는 쪽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재능 기부하듯이 프레시안을 비판하는 글을 계속 작성하는 이유는 정봉주를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레시안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우선 서어리 기자의 프레시안 단독 특종 보도는 취재 보도 윤리에 위반된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A와 그것을 취재한 기자는 대학 동문으로 학창 시절 서로 언론 시험을 함께 준비하며 돈독한 우정을 쌓은 친구 사이'이다.
그들은 취재원과 기자 사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델마와 루이스에 가깝다. 과연, 프레시안 정봉주 의혹 보도는 미투에 속하는가 ? 내가 보기엔 이것은 미투가 아니라 허투'다. 이 문제에 대한 비판에 대하여 피해자 A는 그게 무엇이 잘못인가 _ 라고 반문하지만 응답해야 할 사람은 피해자 A가 아니라 서어리 기자'이다. 서어리 기자는 이 비판에 대해 반드시 답을 해야 한다. 왜 ? 그는 기자이니까. MBC 김세의 기자의 보도가 취재 윤리 위반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일반인이라고 소개된 인터뷰이'가 알고 보니 김세의 기자와 아는 사이'인 웹툰 작가 윤서인'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서로 아는 사이이면서 마치 모르는 사이인 척 인터뷰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 김세의 - 윤서인, 리포트 > 와 < 서어리 - 친구A, 리포트 > 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 A가 서어리의 오랜 친구라면 특수한 이해관계와 인정 관계가 성립되기에 본인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기보다는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뒤로 물러나고 제 3자가 그 사건을 전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이 합당한 조정이 아니었을까. 서어리 기자가 A와 특수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보니 기사는 " 성추행 의혹 " 보도가 아니라 " 성추행 확정 " 보도처럼 변질되고 말았다.
모두 다 " 다스는 MB 것 " 이라 해도 언론은 " 다스는 MB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 고 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 보도의 기본이다. 기사에 감정이 투영되다 보니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기사는 복수의 서사처럼 변질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정봉주가 그날의 알리바이로 방어권을 행사하자 프레시안은 이번 사건을 알리바이 중심으로 물타기 하지 말라고 충고를 하는데, 나는 여기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 모든 용의자가 법 앞에서 다퉈야 하는 문제는 첫째는 알리바이 증명이요, 둘째도 알리바이 증명이요, 셋째도 알리바이 증명이다.
프레시안은 정봉주를 용의자로 확정해 놓고서는 용의자로 낙인찍힌 자의 알리바이 증명 노력이 물타기 전략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옛날에 정봉주가 A에게 추태를 부렸다면, 지금 당신(프레시안)은 진보 언론이라는 같잖은 좆부심으로 정봉주에게 추태를 부리고 있는 꼴이다. 둘 다 고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프레시안을 두고 겨 묻은 개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은 똥 묻은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