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숭 과 숭 고 :
시바, 뭘 봐 ?
일본의 행인들은 다른 행인을 보지 않는다. 대도시의 공간 속에서 남을 보고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우선 보지 않는다는 말을 잘 새겨야겠다. 공공의 장소이므로 시선은 비교적 자유롭다 하더라도, 내 경험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의 체험은 전혀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행인이나 인근의 타인들을 제 맘껏 쳐다보고, 지긋이 보고, 노려보고, 째려보고, 싱긋거리면서 보고, 구경거리처럼 보고, 느물거리면서 보고, 되돌아 뒷모습까지 챙겨 본다. 그러나 일본의 거리에서 행인들이 시선을 처리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 이미 한국인의 참견벽은 유명하며, 우리 스스로 그 점을 인정한다.
ㅡ 19-1. 남을 보지 않는다(1)
일본을 시선사회라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말은 남들에게 보내는시선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회, 서로의 시선을 조심하는 사회라는 뜻으로 읽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종류의 조심 속에서, 다시 차분한 사회의 오의를 읽어낼 수 있다. 거꾸로 생떼 쓰듯이, 행짜를 부리듯 나번득이면서 남들을,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간섭하려는 사회라면 그것은 반시선사회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과 몸, 그 인격과 영혼에 대해 영영 닿을 수 없는 아득한 염려와 배려가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회일 것이다. 다른 수많은 나라에 비하자면 한국이 어느 정도 살 만한 곳이라는 기초적 사실을 기억하더라도,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은 더할 나위 없는 반시선사회로 보인다.
ㅡ 19-2. 남을 보지 않는다(2). << 집중과 영혼 >> 김영민
뒤로 호박씨를 깐다거나 태도가 가식적이야 _ 라는 말을 고상하게 표현하자면 " 연극성(theatricity) " 이다. 주의할 점은 < 연극성 theatricity > 과 < 연극성 인격장애 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 를 혼동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후자가 병적인 증후라면 전자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무대 연출 욕망'이다. 네이버 프로필을 완성하기 위해 빈칸을 채우다 보면 like와 dislike 카테고리를 채워야 하는데 대부분은 좋아하는 것에는 정직한 사람, 예의바른 사람을 기입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거짓말 하는 사람 가식적인 사람 따위를 기입한다. 그런데 나는 이 생각 없는 생각 진술이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 예의 > 란 기본적으로 연극성에 기초한 과장된 마음 표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식사를 했는지가 궁금해서 식사하셨어요 _ 라고 묻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음에 둔 말처럼 꺼내는 행위는 가식에 가까울까, 아니면 정식에 가까울까 ? 예의를 갖추기 위해 던지는 말과 행위는 대부분 마음에 없는 말과 행위'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like 카테고리 빈칸에 뒤로 호박씨 까는 행위, 가식적 태도 따위를 기입할 용의가 있다. 저는 뒤로 호박씨 까는 사람을 좋아합니다아. 나는 말끝마다 " 내가 바른 말을 자주 해서 출세를 못하는 성격 " 이라거나 " 내가 좀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한 편이어서...... "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부디, 조까세요 !
철학자 김영민은 " 가장 좋은 삶은 연극(적)이라는 발견 " 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예의(바른 사람)는 기본적으로 무대 연출의 결과인 셈이다. 그렇기에 인생은 한 편의 연극이 아닐까. 김영민이 일본인의 특징으로 남을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을 때 그것은 < 알면서도 모른 체 > 하는 연극성을 지적한 것이다. " 왕년 " 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꼰대가 되니까 " 소싯적 - " 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 잠시 내 소싯적으로 돌아가자. 나는 눈에 잘 띄는 캐릭터였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묶고 다녔으며 에스닉한 목걸이를 서너 개 주렁주렁 달고 다녔고, 손톱은 검은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녔다. 그뿐이 아니다. 찢어진 청바지에는 mb***, 박근혜 *** 라고 쓴 후에 불에 타 죽는 쥐새끼 그림을 그렸다.
또한 흰색 무명티에 유성 매직으로 이성복의 그해 가을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필사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 이 행위의 뒷면에는 한국 특유의 시선 문화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항을 담고 있었다. 내가 하고 다니는 꼴이 워낙이 하이브리드,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아나키, 키치, 정신분열적이다 보니 모든 시선이 집중되었다. 물론 내 정면에 있는 사람들은 시선을 애써 외면했으나 그 외면에는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는 못했다(흘금흘금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다). 내가 뒤돌아서는 순간,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물론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라운드티 뒷쪽에 다음과 같은 문구도 잊지 않고 작성했다. " 시바, 뭘 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