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까짓 것,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
1987 : 내풍인촌1)
주머니에서 딱성냥 한 개비를 꺼내 벽에 그었다. 교실 안이 조용해서인지 불붙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ㅡ 이문열, 변경
저주받은 걸작 영화 << 넘버 3 >> 에서 불사파 두목 조필(송강호 분)은 감정의 발화점이 매우 낮은 캐릭터이다. 발화점이 낮다 보니 언어의 온도가 낮아도 쉽게 열불을 낸다. 그는 발화점이 낮은 딱성냥 같다. 아무 데나 긁어도 불이 쉽게 붙는 성냥 말이다. 그 유명한 장면. 스승이 현정화 선수는 라면만 먹고도 장거리 달리기 경기에서 1등 했다고 설교를 하자, 제자가 스승의 잘못을 지적하며 " 임춘애입니다, 행님 ! " 이라고 정정한다. 조필은 침묵한다. 잠시, 숨 고를 시간이 지나고....... 5, 4, 3, 2, 1, 퐈이야 !!!
스승은 화, 화화화화화를 참지 못하고 점화한다. " 감정의 발화점이 낮다는 것 " 은 마음 속 불(火)을 쉽게 제어하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이다(주로 만화 같은 캐릭터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조필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발화점이 낮은 딱성냥 캐릭터들이다. 조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송능한 감독은 남근 중심인 한국 사회를 " 좆삐리 문화 " 로 희화화한 후 신랄하게 조롱1)하기 위해서 발화점이 낮은 캐릭터 난장을 묘사한다. 그가 감정의 발화점이 낮은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한국 사회가 미성숙한 얼라에 속한다는 데 있다.
이런 캐릭터들은 평면적이어서 깊이가 없다. 그리고 " 주먹 " 을 " 눈물 " 이라는 오브제로 전환하면 신파와 통속이 된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깡패 캐릭터나 속울음보다 장소 불문하고 대낮에도 대성통곡을 하는 캐릭터는 서로 다를 것이 없다. 감정 표출을 극한까지 몰고 가서 관객에게 말초적 반응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둘 다 포르노'다. 이런 방식에 능한 감독이 윤제균과 강우석이다. << 국제시장 >> 이 보여준 남조선 쌍팔련도 최루성 포대기 신파는 책상을 탁, 치니 툭, 하고 우는 울보 캐릭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기에 성공한 영화다. 이 영화가 노리는 것은 관객의 눈물샘이 전부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눈물만큼 가성비 좋은 특수효과는 없다. 눈물보다 전염성이 강한 감성 코드가 또 있을까 ? 그렇기에 재능 없는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 탁, 치면 툭, 하고 우는 발화점 낮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것이다. 대성통곡을 싸잡아서 싸구려라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지점은 대성통곡이라는 클라이맥스를 위해서는 기/승/전 과정에서 잦은 소성통곡은 자제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래야 마지막에서의 대성통곡이 빛이 난다. 좋은 예가 영화 << 길, 1954 >> 과 << 파이란, 2001 >> 이다. 저 짐승 같은 탁성'은...... 진짜다. 이것이 신파의 품격인 것이다.
영화 << 대부, 1977 >> 에서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대부 돈 클레오네는 남조선 깡패 얼라-들 : 조필과 그 똘마니들과는 달리 쉽게 흥분하지 않고 쉽게 말하지 않고 쉽게 주먹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감정의 발화점이 높은 인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모든 것은 결국에 처절한 가족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사실을. 또한 모든 폭력의 배후에는 그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영화 << 1987 >> 에 불만을 가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은 박종철 가족을 지나치게 신파로만 접근한다. 어머니는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아버지는 겨울 바다에 유골을 뿌리다가 오열하고, 삼촌도 경찰 봉고차 안에서 흐느껴운다.
자식을 잃은 부모와 가족의 마음이야 굳이 이 자리를 빌려 표현할 필요는 없지만 그 상실을 감독은 너무 자극적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배우 조우진이 연기한 박종철 삼촌의 오열 연기이다. 박종철 어머니도 울고, 박종철 아버지도 울고, 박종철 누이도 울었는데 굳이 박종철 삼촌이 오열하는 장면도 필요했을까 ? 이것은 오열하는 서정의 강조가 아니라 무의미한 반복이 아닐까 ? 기자들을 다루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차분하다기보다는 마약을 과다 투여한 중독자처럼 흥분해서 이리저리 방방 뛴다. 기개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누가 살짝 옆구리를 긁기만 해도 쉽게 발화하는 딱성냥 같다.
영화는 조폭(같은 경찰) 느와르 장르로 시작해서 스파이 장르로 바뀌다가 나중에는 멜로드라마 장르'로 끝을 맺는데, 이 혼종을 예술적 통섭의 좋은 예라고 말하기에는 이질적인 측면이 있다. 오히려 산만하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멜로 판타지는 어설프다(어설프기보다는 엉뚱하다). 현대사의 어두운 측면을 폭로하다가 느닷없이 멜랑꼴리한 러브 판타지로 전환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이 영화를 보고 뜨겁게 운, 당신의 신파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객이 흘린 선의와 슬픔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관객의 열광적 지지에도 동의한다. 그리고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 시대, 뜨거운 함성을 지지한다. 하지만 평론가의 열광적 지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장점만큼 단점도 분명하니까 ■
1) 耐風燐寸(내풍인촌) : 딱성냥, 딱성냥은 일반 성냥보다 발화점이 낮은 燐을 사용한다.
2) " 조필이 " 를 장음으로 길게 빼면 " 조삐리(좆+삐리) " 가 된다. 여기서 < 삐리 > 는 남사당패에서, 각 재주의 선임자 밑에서 재주를 배우는 초보자를 뜻한다. 종합하면 : 조필과 우락부락한 깍두기 형님-들'로 대표되는 " 불굴의 페니스 " 는 알고 보면 발기해도 3센티미터인 고추의 세계이다. 이 영화는 명백하게 미성숙한 남근의 세계(얼라의 고추)에 대한 송능한의 B급 조롱이다. 불사파를 뜻하는 표식 " olo " 은 누가 봐도 발기된 남근(고추)을 형상화한 타이포그라피이다. 영화 << 넘버 3 >> 는 김기영 감독의 << 하녀 >> 시리즈와 더불어 희대의 컬트이며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