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사정은 무당이 안다 :
주정뱅이 모임 4화
어제는 주정뱅이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충무로에서 만나서 4시부터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블랙아웃이 밤 11시 이후의 사건에 집중되었는데, 어제는 밤 8시 이후에 벌어진 일에 집중되었다. 그래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온 것을 보면 양호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 모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술자리 안주 삼아 노닥거렸다 : 한국어는 성별 구분이 따로 없지만 사실, 직업(군)을 지시하는 대부분은 성별 구분이 없다기보다는 남성들이 독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수, 의사, 교수, 배우 따위는 특정한 성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주로 남성들이 독점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가수, 의사, 교수, 배우 따위는 남성이 장악했기에 굳이 남성이라는 지시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소수 여성이 유리 천장을 뚫고 직을 얻으면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여 단어 앞에 " 여- " 라는 접두사를 붙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단어들이 여간첩, 여배우, 여비서, 여의사, 여류 화가, 여류 소설가, 여대생, 여학교, 기타 등등 따위이다. 이 사실은 한국 사회가 < 남성들이 모든 기득권을 독차지한, 지독한 차별의 결과라는 점 > 을 말해준다. 하지만 직업군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이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단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 무당 " 이 대표적이다. 무당은 전제가 여성이 무당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예외적으로 소수 남성이 무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가리켜 " 박수무당 "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무당이라는 직업군에 한해서는 남성은 소수이다.
주정뱅이들은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서로 오고가는말풍성을 띄우기 시작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 論 > 이었다. 뜻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 과부 설움은 과부가 더 잘 안다 - 論 > 으로 네이밍하기로 한다. 일종의 동무론1)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나는 주정뱅이들이 모인 원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주정뱅이 여러분, 과연 무당이란 무엇입니까 ? 귀신과 소통하는 직업을 가진 카운슬러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것이죠. 귀신이란 게 뭡니까. 한이 맺혀서 저승에 가지고 못하고 이승에서 떠도는 자가 아닙니까. 대부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죽어서 복수하마. 시발놈들아 !
정말로, 참말로, 징허게 그들은 죽어서 하얀 소복을 입고 산 자 앞에 나타나 씻나락 까먹는 소리2)를 한다. 볍씨(씻나락)를 까서 입에 잔뜩 넣어 먹으며(알곡은 씹고 쭉정이는 뱉는) 내뱉는 소리이니 우물우물하는 소리일 터. 당연히 번역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일을 무당이 한다. 무당은 통번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기담 전설에 등장하는 귀신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처럼 귀신이라는 직업도 무당처럼 여성이 독점한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이 무당이라는 직업'을 장악한 이유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알듯이, 귀신(女)의 한은 무당(女)이 잘 안다.
귀신 사회에서도 소수자는 있기 마련이다. 희귀하기는 하지만 종종 남성 귀신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를 몽달귀'라고 부른다. 몽달이는 장가를 가지 않은 숫총각을 뜻하는데 총각 귀신이 바로 몽달 귀신이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이 귀신인 경우는 무섭다기보다는 희화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귀신이라기보다는 도깨비이거나 요괴'이다. 여기서 도깨비는 능청맞고 변덕이 심한 아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귀신은 정서에 방점이 찍힌 반면에 도깨비나 요괴는 액션에 방점이 찍혔다고 보면 된다. 종합하면 이렇다 : 귀신을 상대하는 이는 무당(女)이다. 반대로 도깨비나 요괴를 상대하는 이는 도사(男)이다.
내가 귀신과 무당의 관계를 " 동무론 " 으로 썰을 푸는 이유이다. 그것은 소수자가 소수자의 언어로 남성 사회의 폭력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소수자의 언어이며 커뮤니티라 할 수 있다. 하여, 나는 이렇게 끝맺었다. " 존경하는 주정뱅이 여러분, 귀신이란 적어도 수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살아서는 약자이나 죽어서는 강자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성 혐오를 지양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부류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반대로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경우는 염치와 수치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수치스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아서 부귀와 영광을 누린 놈은 절대 귀신이 될 수는 없다. 귀신이란 살아서는 약자였으나 죽어서 강자로 부활한 존재이니까요. 킁킁... 그러니까 내 말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이명박근혜 욕 많이 해도 됩니다. 이 새끼들, 죽어서 당신 앞에 혼령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아. 흔히, 지체 높은 사람 앞에서 말을 조심하라고 하죠. 다 조까튼 소리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막말해도 됩니다. 후환을 두려워해야 될 대상은 이명박근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제 말 이해하셨습니까 ? " 원탁에 모인 우리들은 잔을 높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빌어먹을, 8시 이후는 기억이 없다.
1) 김영민의 동무론이라는 책이 있던데, 이게 이 주제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2)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 쌀밥도 체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꼭 씹어먹어야 하거늘, 하물며 생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쉴 새 없이 되새김하면서 말을 하게 되면 불분명한 소리가 된다.
덧대기 ㅣ 이 블로그를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나에게 있어 혜민 스님은 안철수와 함께 x밥'이다. 시간 날 때마다 씹었다. 평소 혜민의 달달한 위로가 졸라 자유한국당스러서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 문재인 지지자는 박원순, 김제동, 스타벅스, 홍준표 지지자는 황교안, 혜민 스님, 롯데 좋아요 > 라는 기사이다. 혜민은 홍준표 지지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
http://news.joins.com/article/22323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