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대, 가장 구시대적인 불질을 그리워하며   :













캠핑과 부시크래프트의 차이












                                                                                                       어릴 때는 한자 休( : 쉴 휴)를 볼 때마다 木 대신에 水가 붙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곤 했다. 제대로 쉴려면 산보다는 물가에서 발이라도 담그고 놀아야 하는 것 아닐까 ?

하지만 나이가 들다 보면 물보다는 나무(혹은 숲) 혹은 산의 물성이 인간이 가지고 놀기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물에서 하는 놀이라고 해봐야 기껏 물질과 낚시질이 전부이지만 인간은 산에서 놀면 신선(神仙)이 될 수 있다(물에서 기똥차게 노는 달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명예는 기껏해야 물개이거나 물귀신이다.  나는 묻고 싶다. 물개가 높냐, 신선이 높냐. 물귀신이 좋냐, 산신령이 좋냐. 응?) 나무를 가지고 놀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역시 " 불질 " 이다. < 부시 크래프트 bush craft> 는 한자 " 休 " 가 사람과 나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까닭을 설명하기에 적당한 스포츠다. 번역하자면 캠핑의 서바이벌 익스트림 스포츠 버전 ?!

 

 

쉽게 설명하자면 <<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 >> 이 부시 크래프트'이다. 그는 한국의 베어그릴스'이다. 부시크래프트는 옛사람들을 따라하는 원시적인 소꿉놀이인 셈이다. 덤불'을 뜻하는 " 부시(bush) " 와 기술'을 뜻하는 " 크래프트(craft) " 의 합성어로,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물을 최대한 활용해 아웃도어를 즐기는 레포츠를 말한다. 부시크래프트는 캠핑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전문화된 캠핑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의식주에 필요한 것을 직접 구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캠핑이 (아이스)크림이라면 부시 크래프트는 브루스 윌리스의 하드'다. 

이 놀이 과정에서 화룡점점은 뭐니뭐니해도 " 불질 " 이다. 도끼질로 땔감을 구하고 불을 지펴 쿠킹을 완성하면 당신은 레트로 서바이벌 익스트림 레포츠의 킹 ! 불을 다루는 방식이야말로 부시크래프터가 캠핑족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게 한다. 캠핑촌의 캠핑족들이 성냥이나 라이터로 불을 지핀다면 부시크래프터는 나무 막대기나 부싯돌(파이어 스틱)로 불을 만든다. 불은 어렵게 얻을수록 빛이 나는 법. 연기로 시작한 불씨가 보푸라기를 태우다가 나중에는 장작을 태우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면 부시크래프터가 개고생하며 불질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기 - 승 - 전 - 퐈이야 !!!    

영화 << 1987 >> 은 " 부시크래프트 "  보다는 " 캠프파이어 " 에 가깝다. 어렵게 불씨로 시작해서 끝은 통나무를 불태우는, 그런 장르'를 기대했던 나로서는 당혹스럽다. 그러니까...... 넌, 나에게 모욕감 모닥불을 줬어 !  보는 내내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 영화에서 기대했던 것은 가장 구시대적인 불질이었다.  짐승의 털을 모으거나 지푸라기를 구겨서 보푸라기를 만들고,  발화점에 도달하여 연기를 피우고,  보푸라기 위에 잔가지를 덮고 바람을 불어 불씨를 살리고,  그렇게 해서 옥이야 금이야 불이야 !   결국에는 굵은 통나무를 태우는 불꽃으로 작렬하는 불놀이 진행 코드를 기대했으나 영화는 시작부터 통나무를 태우는 불꽃으로 시작한다. 

등장인물들의 발화점이 너무 낮다 보니 감정은 과잉처럼 보인다. 낮은 발화점에서 너무 쉽게 대성통곡하고, 너무 쉽게 화를 내고, 너무 쉽게 주먹부터 나간다. 한국 신파의 잘못된 전형이 바로 낮은 발화점인데 이 영화는 그것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마치 온몸에 시너를 붓고 불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평단의 반응이었다. 이 영화는 대중영화로써 장점이 많은 영화이기는 하나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도 단점이 많은 영화'이다.  사실, 김윤석의 연기가 워낙 뛰어나서 가려졌을 뿐 그가 연기한 박처장이라는 캐릭터는 정치 악당의 전형적인 클리셰 덩어리'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인물 설정'인 셈이다. 그리고 연희(김태리)와 한열(스포일러에 해당될 수 있으므로 작자 미상)이 썸 타는 청춘 멜로 판타지도 이 영화의 톤앤매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 영화가 그럭저럭 좋은 오락영화라는 데에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는 있지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한국 영화라는 평론가 평가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반복해서 강조하자면 나는 관람객의 평가는 수긍하지만 평론가의 평가는 수긍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올해 가장 과대 평가된 영화로 남을 것이다. 뭐......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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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8-02-01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봤는데요. 이런 영화는 만든 것에 의의를 두지 않나 전 늘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작은 연못 같은 영화라든가.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2 09:06   좋아요 0 | URL
작은 연못이란 영화도 있었나요... 나중에 함 찾아봐야겠습니다아..
 


 






간결한 소음



 





                                                                                                         말이 주는 위로가 지겨웠기에 말로 표현된 위로를 믿지 않는 편이다. 말은 오염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는 글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말이 생물이라면 글은 사물(死物)에 가까웠다글이라는 문자가 주는 건조한 물성이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글에 감성이 묻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감성이 배제된 배열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경숙 소설을 읽는 것보다는 전자 제품 사용 설명서나 제품 영양 성분 따위를 읽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은 김훈과 감성적 혹은 감상적 맥락을 같이 한다. 습기를 주의하시고 건조하고 서늘한 장소에 보관하십시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문장인가.



오래 전, 낚시 방송을 즐겨 봤다. 불면에 시달려 본 사람은 모두 다 동의하겠지만, 소음이 없는 완벽한 정적만큼 숙면에(도움을 주기는커녕) 방해가 되는 요소도 없다. 불을 끄고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면 최상의 조도와 최소한의 소음이 제공되어서 수면에 도움이 된다. 시청이라기보다는 청취에 가까웠다. 내가 낚시 방송에 중독된 이유는 모든 방송 채널을 통틀어서 말의 비율이 가장 적다는 데 있었다. 방송에서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 정도 말의 소음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요즘은 그나마도 간간이 오고가는 말조차도 없는 영상을 보게 된다. 다음은 유투버 ishitani의 가구 공정 과정을 담은 영상-들이다.




나무보다 매력적인 물성이 또 있을까 ?   목수는 말없이 나무의 치수를 재고 재단하고 잇는다. 분명 저것들은 가구의 어느 편린들일텐데 우리는 처음에 그 쓰임의 행태를 잘 모른다.  하지만 공정이 진행되다 보면 저 편린은 서랍의 틀대가 되고 저 편린은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편린과 편린을 잇고, 다시 편린과 편린이 만나서 하나의 완성된 가구가 되는 것을 바라보게 된다. 정수리에 대못을 박지 않아도 단단하게 화합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듣기 좋다. 그것은 관계와 관계 사이에서 맺게 되는 최소한의 소음이다. 인간의 관계도, 그리고 관계와 관계 사이에 맺게 되는 말도 딱 이 정도의 소음이었으면 싶다. 

따스한 말의 효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떠들며 말 한 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고 강조할 때마다 절망하게 된다. 선생님, 천냥 빚은 일을 해서 갚을 생각을 해야지 말을 꾸며서 갚을 궁리부터 하시면 안 됩니다. ㅅㅂ !  간결한 말이 그립다. 질이 질(質)을 만들어 내는, 그러니까 < - 질 > 이라는 접사가 사물의 속성, 가치, 유용성, 등급 따위의 총체인  < 질質 > 을 만들어 내는 톱질, 대패질, 망치질이 내는 간결한 소음, 그런 간결한 말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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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8-01-3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다녀온 오늘, 말의 무게를 새삼 느낍니다. 내가 뱉은 말이 허망해서 후회를 곱씹네요. 쓰잘데기 없는 말들을 쏟아낸 자신이 부끄럽고 짜증나고. 가만히 듣기나 할 것을. 저는 여전히 애정결핍인가봐요.
김훈, 『공터에서』로 얘기 나눠 안 그래도 김훈 얘기를 했는데 마침 곰발님이 사용설명서 얘기를 했네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1 10:11   좋아요 0 | URL
김훈이 사전이나 소방 실무서 따위의 책을 즐겨 읽는다고 하죠 ? ㅋㅋ
처음에는 뭐 이런 작가가 다있나 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가능합니다아..

표맥(漂麥) 2018-02-01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3분 동안 유심히 목공 일을 지켜본 1인...^^

곰곰생각하는발 2018-02-02 09:06   좋아요 1 | URL
말 한 마디 없는 영상인데 참.. 사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죠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개정판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수오서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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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 와   利 를   혼 동 할   때  :

 

 

 






혜민과 홍준표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사람보다 가슴이 따뜻해 무언가를 나누어주려고 궁리하는 사람, 친구의 허물도 품어줄 줄 아는 사람, 타인의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되세요 ㅡ 혜민이 그의 위대한 명저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에서 쓴 문장이다.

짝 ! 짝 ! 짝 !  나는 기립해서 박수를 쳤다. 브라보, 아따. 씨부랄. 와우~  혜민, 가는 길에 똥 밟고 뒤로 자빠지시라.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문학적 수사도 없이, 본질을 꿰뚫는 통찰도 없이, 끓어오르는 열정도 신념도 없는 글을 좋아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가 비판하는 유형인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자주 하는 사람 " 이라는 문장에서 내가 제일 먼저 생각난 인물은 놀랍게도 부처였다. 부처야말로 머리가 똑똑한 인물이어서 옳은 소리를 자주 하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비판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며 利보다는 理에 밝은 성인이 아니었던가.

죽비 소리가 상징하듯이 불교적 언어는 치유와 위로의 언어보다는 정곡을 찌르거나 폐부를 낱낱이 드러내는 언어에 가깝다(기독교 서사가 정서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다면 불교 서사는 냉혹할 정도로 논리에 호소한다).  위 문장은 대중 불교가 속세의 사리에 밝으면 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혜민은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사람(의 말,태도,자세) > 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취하는데, 그는 그것을 義로 보지 않고 利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한다. 옳지 않은 소리를 하면서 비판을 자주하는 것은 利에 해당되지만 옳은 소리로 비판을 하는 것은 義에 가깝다.

그는 理와 利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 논어 >> 에서 " 군자는 義에 깨닫고, 소인은 利에 깨닫는다 " 고 지적했다. 혜민은 의를 이로 인식했으니..... 그는 소인이 분명하다. 이런 사람이 큰스님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혜민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구구절절 깨닫게 되는 것은 " 전지적 작가 시점 " 이다. 그는 항상 통달한 마음과 꿰뚫고 주시하는 마음으로 중생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그는 마치 청기백기 오락기 나레이터 같다. 그는 중생인 우리에게 명령한다. 청기 내려 백기 올려 아니아니 청기 내리지 말고 백기 올렸다가 내렸다가 다시 올리지는 말고 내려 차렷 열중 쉬엇 어섯 !

내가 아는 부처는 정서에 호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치에 호소하는 성인이다. 이치란 논리적 세계의 한 축이다. 그렇기에 나는 논리보다는 정서에 호소하는 혜민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만 자주하는 사람의 말 " 을 저잣거리 입말로 쉽게 말하자면 " 배부른 소리 " 이거나 " 싸가지 없게 말하기 " 이다. 그러니까 허어, 맞는 소리이기는 한데 세상 물정 모르고 하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가 젊은이를 위로할 때마다 논란이 발생하는 것은 늙은 욕망으로 젊은이의 요구를 해석하거나 훈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늙고 낡은 욕망으로 젊은 니즈를 충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 언론사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한 기사를 작성했다. 홍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특정 인물의 글에 " 좋아요 " 를 누른 데이터 목록을 확인하니 혜민이 상위권에 링크가 걸렸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서 홍준표 지지자들은 혜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들은 머리가 똑똑해 옳은 소리나 하면서 비판을 일삼는 사람들의 말을 배부른 소리로 취급하거나 맞는 말이긴 한데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류이니 말이다. 후속 보도 부탁한다. 혜민과 홍준표의 차 간담회, 멋진 기획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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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8-01-3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웃고갑니다 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7   좋아요 0 | URL
별 셋 하나... 윤동주의 패경옥 생각이 나네요.. ㅎㅎ

가넷 2018-01-29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있다보면 수행자가 맞나 싶더군요. 얼마전에 냉부에도 나오던데 도대체 뭐지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7   좋아요 0 | URL
수행자라기보다는 약 파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님이 왜 냉부에 나오죠 ? 이상한 사람입니다..

라로 2018-01-31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그런가? 처음엔 좋아서 카스 팔로 했는데 자꾸 읽다보니 짜증이 나더군요. ㅎㅎㅎㅎ 그래서 삭제했어요~~~~예전에.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8   좋아요 0 | URL
쉽게 질리는 친절이라고나 할까요.. 마음에도 없는 위로와 친절은 처음에는 듣기 좋지만 이게 자주 듣게 되면 짜증나기 마련입니다.. 전형적인 인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귀신 사정은 무당이 안다 :

 

 

 

주정뱅이 모임 4화




 



                                                                                                       어제는 주정뱅이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충무로에서 만나서 4시부터 술을 마셨다. 평소에는 블랙아웃이 밤 11시 이후의 사건에 집중되었는데, 어제는 밤 8시 이후에 벌어진 일에 집중되었다. 그래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온 것을 보면 양호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이 모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술자리 안주 삼아 노닥거렸다 : 한국어는 성별 구분이 따로 없지만 사실, 직업(군)을 지시하는 대부분은 성별 구분이 없다기보다는 남성들이 독점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가수, 의사, 교수, 배우 따위는 특정한 성을 지시하지는 않지만 주로 남성들이 독점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 단어들이다. 그러니까 가수, 의사, 교수, 배우 따위는 남성이 장악했기에 굳이 남성이라는 지시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소수 여성이 유리 천장을 뚫고 직을 얻으면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여 단어 앞에 " 여- " 라는 접두사를 붙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단어들이 여간첩, 여배우, 여비서, 여의사, 여류 화가, 여류 소설가, 여대생, 여학교, 기타 등등 따위이다.  이 사실은 한국 사회가 < 남성들이 모든 기득권을 독차지한, 지독한 차별의 결과라는 점 > 을 말해준다. 하지만 직업군을 나타내는 단어 가운데 이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단어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 무당 " 이 대표적이다. 무당은 전제가 여성이 무당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예외적으로 소수 남성이 무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가리켜 " 박수무당 "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무당이라는 직업군에 한해서는 남성은 소수이다.

주정뱅이들은 이 주제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고, 서로 오고가는말풍성을 띄우기 시작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 과부 설움은 홀아비가 안다 - 論 > 이었다.  뜻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 과부 설움은 과부가 더 잘 안다 - 論 > 으로 네이밍하기로 한다. 일종의 동무론1)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나는 주정뱅이들이 모인 원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주정뱅이 여러분, 과연 무당이란 무엇입니까 ? 귀신과 소통하는 직업을 가진 카운슬러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는 것이죠. 귀신이란 게 뭡니까. 한이 맺혀서 저승에 가지고 못하고 이승에서 떠도는 자가 아닙니까. 대부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해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죽어서 복수하마. 시발놈들아 !                                                    

정말로, 참말로, 징허게 그들은 죽어서 하얀 소복을 입고 산 자 앞에 나타나 씻나락 까먹는 소리2)를 한다. 볍씨(씻나락)를 까서 입에 잔뜩 넣어 먹으며(알곡은 씹고 쭉정이는 뱉는) 내뱉는 소리이니 우물우물하는 소리일 터. 당연히 번역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일을 무당이 한다. 무당은 통번역사인 셈이다. 그런데 기담 전설에 등장하는 귀신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처럼 귀신이라는 직업도 무당처럼 여성이 독점한 직업군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여성이 무당이라는 직업'을 장악한 이유이다.  과부 설움은 과부가 알듯이, 귀신(女)의 한은 무당(女)이 잘 안다.

귀신 사회에서도 소수자는 있기 마련이다. 희귀하기는 하지만 종종 남성 귀신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이를 몽달귀'라고 부른다. 몽달이는 장가를 가지 않은 숫총각을 뜻하는데 총각 귀신이 바로 몽달 귀신이다. 여성과는 달리 남성이 귀신인 경우는 무섭다기보다는 희화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귀신이라기보다는 도깨비이거나 요괴'이다. 여기서 도깨비는 능청맞고 변덕이 심한 아비'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귀신은 정서에 방점이 찍힌 반면에 도깨비나 요괴는 액션에 방점이 찍혔다고 보면 된다. 종합하면 이렇다 : 귀신을 상대하는 이는 무당(女)이다. 반대로 도깨비나 요괴를 상대하는 이는 도사(男)이다.

내가 귀신과 무당의 관계를 " 동무론 " 으로 썰을 푸는 이유이다. 그것은 소수자가 소수자의 언어로 남성 사회의 폭력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씻나락 까먹는 소리는 소수자의 언어이며 커뮤니티라 할 수 있다. 하여, 나는 이렇게 끝맺었다. " 존경하는 주정뱅이 여러분, 귀신이란 적어도 수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살아서는 약자이나 죽어서는 강자가 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여성 혐오를 지양해야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부류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반대로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경우는 염치와 수치도 모르는 인간들이기에 수치스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없습니다.

살아서 부귀와 영광을 누린 놈은 절대 귀신이 될 수는 없다. 귀신이란 살아서는 약자였으나 죽어서 강자로 부활한 존재이니까요. 킁킁... 그러니까 내 말의 요점은 이렇습니다. 이명박근혜 욕 많이 해도 됩니다. 이 새끼들, 죽어서 당신 앞에 혼령으로 나타날 가능성은 제로입니다아. 흔히, 지체 높은 사람 앞에서 말을 조심하라고 하죠. 다 조까튼 소리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막말해도 됩니다. 후환을 두려워해야 될 대상은 이명박근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제 말 이해하셨습니까 ? "  원탁에 모인 우리들은 잔을 높이 들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빌어먹을, 8시 이후는 기억이 없다.













​                                            


1) 김영민의 동무론이라는 책이 있던데, 이게 이 주제에 부합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2)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 쌀밥도 체하지 않기 위해서는 꼭꼭 씹어먹어야 하거늘, 하물며 생쌀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쉴 새 없이 되새김하면서 말을 하게 되면 불분명한 소리가 된다.





덧대기 ㅣ 이 블로그를 들락날락거리는 사람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나에게 있어 혜민 스님은 안철수와 함께 x밥'이다. 시간 날 때마다 씹었다. 평소 혜민의 달달한 위로가 졸라 자유한국당스러서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 문재인 지지자는 박원순, 김제동, 스타벅스, 홍준표 지지자는 황교안, 혜민 스님, 롯데 좋아요 > 라는 기사이다.  혜민은 홍준표 지지자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까 ?


 http://news.joins.com/article/22323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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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29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마녀’로 낙인찍힌 여성들은 질병을 낫게 하는 약초와 민간요법을 잘 아는 똑똑한 민중이었어요. 이 여성들이 살아남아서 지속적으로 활동했다면 의학 관련 직업에 진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마녀 집회를 ‘악마 추종자들의 모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마녀 재판을 주도한 심문관들의 편견이 개입된 인식입니다. 마녀 집회를 ‘기득권층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모임’ 또는 ‘사회 소수자들의 모임’으로 볼 수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9 20:43   좋아요 0 | URL
어딜 가나 여성 수난 시대인 모양입니다. 하긴, 성경에서도 여자는 가축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였으니 말이죠..

samadhi(眞我) 2018-01-30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정뱅이 모임 ㅋㅋㅋㅋㅋ 그저 즐겁습니다. 오랜만이죠?
저요? 네, 용케(?) 살아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9   좋아요 0 | URL
엇. 진아 님 ! 그동안 잘 지내고 계셨나요 ? 다시 뵈니 반갑습니다. 진아님..

수다맨 2018-01-30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날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서 일찍 취했습니다. 저도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더군요. 곰곰발님도 무사히 귀가하셔서 다행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31 10: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날 다 취했군요... 4명 중 3명이 블랙아웃을 경험했다고 하니 말입니다.... 과했어요..
하지만 다음에도 모임은 계속 ~~ ㅎㅎ
 

 

 

 

 

 

 

 

 

 

 

 

 

 

 

 

 

 

                                                

 

골  목  길     접  어  들     때  에   :



 





바리케이드 공성전



 




                                                                                                                                                                                                               빈병에 물을 채우기 위해 댐 수문을 여는 경우가 있을까 ?   설령 댐 수문이 열린다 한들, 빠른 물살 때문에 물을 주둥이가 좁은 빈병 속에 채우는 속도는  물바가지에 물을 담아 빈병을 채우는 속도보다 빠를 것이 없다.

그따위 짓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아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  나폴레옹 3세에게 있어서 좁은 골목길은 병 주둥이가 좁은 빈병과 같았다.  대도시에서 폭동이 발생하면 시위대는 통로가 막힌 길고 구불구불하며 좁은 길을 거점 삼아 골목 초입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장기적인 바리케이드전(戰)을 준비했다. 나폴레옹 입장에서는 대군을 시가전에 투입하여 폭동을 한방에 진압하고 싶겠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올시다.  좁은 골목이 제약이었다. 빈병을 채우기 위해서는 물바가지 한 그릇이면 충분하듯이 대군이라 한들 좁은 길 안으로 투입되는 군인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시위대 입장에서는 싸워볼 만한 전투이다. 그들은 칡뿌리처럼 곁가지를 사방에 뻗은 골목 지리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건물 자체를 성곽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빅토르 위고의 << 레 미제라블 >> 시가전 장면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비록 바리케이드 수성에는 실패했으나 정부군과 맞짱을 떴다는 점에서 실패만은 아니었다. 이 실패는 1848년 2월 혁명으로 이어진다. 시민군은 탁, 치면 어 ? 억, 하고 무너지는 당나라 부대가 아니었다. 빅토르 위고가 소설 소재로 삼았던 프랑스 6월 시민 봉기 이후에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 3세는 대로를 건설하기 위해 대대적인 도시 개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그는 도시 계획 설계자 오스만 대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 길(大路)을 뚫어라 ! " 


오스만은 주군의 명령에 따라 곡선 소로를 없애고 직선 대로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골목길 연쇄살인범이었다. 즉, 대로(大路)의 탄생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 3세 치하에 있던 시기인 제2제정의 파리(1852~1870) 때 건축된 도시는 잔혹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결여하고 있었다. 대로는 어느 것 하나 생-탕투안 거리의 멋진 곡선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이 시대에 건축된 집 중에서 어디에서도 엄정하고 우아하게 배열된 18세기식 정문이 주는 은근한 기쁨을 맛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비논리적인 도시는 견고하지 않았다1). 이처럼 권력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도시 개발을 이용한다.


도시 개발은 권력자에게 권력을 유지하고 연장시키는 도구이며, 거대한 땅을 소유한 지주에게는 벼락부자를 만드는 로또이며, 원주민은 쫓겨나서 외지인이 되었다. 이 시절, 벼락부자에게 어떻게 재산을 모았습니까 _ 라고 재태크 비결을 물으면 매우 심플한 대답이 돌아오고는 했다. " 토지가 (정부에 의해) 수용되었습니다. 하하하. " 2) 도시 개발로 인해 이익을 나누는 집단은 토건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건물을 세워도 신축 건물로는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어서 임대료가 두 배로 뛰었고 이 도시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임대료를 감당하느라 기름기 없는 음식을 섭취하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위 단락 글은 이명박과 그 아들 5세 훈이'가 설계한 뉴타운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죄악을 나열한 것 같지만 놀랍게도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영광의 3일 이후에 벌어졌던 일이다.   18세기 파리와 21세기 서울이 놀랍도록 닮은 꼴이다.  이명박(과 그 아들 5세 훈이)은 한국판 오스만 도시 개발 설계자'이다.  오스만은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 파리는 주민들에게는 커다란 소비 시장, 거대한 노동 현장, 온갖 야심의 투기장 아니면 그저 즐기는 장소일 뿐입니다. " 이 말에서 파리'라는 단어를 서울'이라는 지명으로 대체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명박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서울은 주민들에게 커다란 소비 시장,  거대한 노동 현장,  온갖 야심의 투기장 아니면 그저 즐기는 장소일 뿐입니다. 제가 그동안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약속한 대선 공약들. 이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거짓말인 거 아시죠 ? "  나는 가족범죄단 이명박을 생각할 때마다 가끔 18세기 발명품인 기요틴이 21세기에도 여전히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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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 < 오스만식 도시 개조, 바리케이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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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4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4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4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시가 새로 정비되면서부터 시민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왕정 체제의 문제점을 싹 잊고 말았죠. 혁명의 열기도 자연스럽게 식어갔고요. 도시 개발은 권력층의 ‘신의 한수’였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24 16:02   좋아요 0 | URL
오스만 요놈이 일종의 이명박 같은 놈인데... 왜 바닥은 돌을 깔지 않습니까. 그런데 시위대가 이 돌을 파서 바리케이드를 치거든요. 그래서 오스만이 고안한 게 나무 바닥입니다. 도시를 나무 바닥으로 만들었어요. 이것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면 불태우면 되니까... 영리한 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