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러 나 누 가 '알고' 있 었 다 는 게 왜 중 요 했 을 까 ?
달걀은 幻이다1)
달걀이 손가락과 바꿀 만큼 가치가 있나 ?
없소 ! 하지만 기분은 좋소. 이게 내 본래의 모습이오(但我覺得痛快 這個才是我自己). 안 다쳐야 했겠지만, 검(劍)이 옛날처럼 빠르지 못했소. 옛날에 검이 빨랐던 것은 옳다고 믿고 했기 때문이오. 대가를 바란 적이 없었소. 난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동사서독〉(왕자웨이, 1994)
<< 아비정전, 1991 >> 을 40번 넘게 보았다. 만우절이 되면 변두리 극장 어디선가 왕자웨이 영화제가 상영되고 있었고 << 아비정전 >> 은 단골 상영작이었다. 길거리 극장이 아니더라도 이날이 되면 티븨 변두리 채널 어디선가 아비정전은 상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상영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왕자웨이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왕자웨이 영화 중 최걸 : 최고 걸작)은 << 화양연화, 2000 >> 이다. 완벽한 영화이다. 한뼘의 간격이 주는 미학을 이토록 집요하게 다룬 영화가 있었던가. 하지만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아니다, 최걸 영화를 선정하는 것과 최애 영화를 선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까. 내가 " 최애 " 하는 왕자웨이 영화는 << 동사서독,1994 >> 이다. 그렇다면 왕자웨이 영화 중 실패한 영화는 무엇일까 ? 그것 또한 << 동사서독 >> 이다. 서사의 불균질성, 점프 컷의 지랄같은 오용, 필터의 남용, 통일성의 결여, 기타 등등......
하지만 이 얼룩들, 이 오류들, 이 헛점투성이로 오염된 << 동사서독 >> 은 오히려 영화의 주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유물론자이다. 그렇기에 유심론자와 대립하게 된다. 유심론자(관념론자)는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그대의 마음이라고 말하지만 유물론자는 그대의 마음은 움직이는 깃발이요, 바람이라고 말한다. 이 차이에 대해 나는 대립하지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사소한 문제여서 우리는 서로 다른 오솔길을 걷고 있는 산책자일뿐이다. 하지만 나를 " 빡 " 치게 만드는 것은 혜민 같은 사이비 유심론자'이다. 삼라만상, 모든 번뇌가 다 마음먹기에 달렸지요. 허허허허허허허허 _ 라고 산신령 놀음을 할 때마다 엿죽방망이로 빰따구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혜민의 유심론은 독일 관념론(유심론)에 대한 모독이며 쌍팔년도 흥남부두 격정 신파의 신흥 종교 사업 버전에 불과하다.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중 하나가 마음일 수는 있으나 전부일 수는 없듯이)은 팔 할이 마음이 아니라 구조'이다.영화 << 동사서독 >> 에서 홍칠공은 유물론자 캐릭터'다. 그는 물질을 사람의 마음 표현으로 이해한다. 다음은 네이버 영화에 소개된 줄거리다.
① 장국영(구양봉) : 백타산의 원주민인 구양봉(장국영 분)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이 그를 키웠다. 구양봉의 꿈은 유명한 검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무술 연마를 위해 고향을 떠날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는 여인(장만옥 분)과 고향에 남을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한다. 결국 그녀는 그의 형과 결혼한다. 10년 후, 냉소적이고 돈만 알게 된 구양봉은 사막으로 가서 그곳에 여관을 개업한다.
② 양가휘(황약사) : 구양봉은 황약사(양가휘 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역시 사랑에 관한 슬픈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한때 가장 친했던 친구의 부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도화림을 떠나게 된다. 매년 복사꽃이 피는 시절이면 구양봉에게 찾아와 같이 술을 마시고는 백타산으로 구양봉이 사랑했던 여인을 방문하러 떠난다. 10살난 아들을 가진 그녀는 아직도 구양봉을 사랑하고 그를 잊지 못하고 있다. 일 년 전 황약사는 고소성 밖에서 자칭 모룡연(임청하 분)이라는 남자와 친구가 된다. 그의 여동생과 결혼할 것을 언약한다.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지만 황은 떠나가 버린다. 모룡연은 황약사가 약속을 어긴 것에 분노하며 구양봉을 찾아와 동생을 대신해 복수를 하고 싶다며 황약사를 죽여달라고 한다. 그가 떠난 뒤 그의 여동생인 모룡연이 나타나 그녀의 오빠를 죽여주면 오빠가 제시한 돈의 2배를 주겠다고 한다. 구양봉은 모룡연이 여동생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대화를 지속하는 동안 모룡연과 모룡언이 내면에 두개의 인격체를 지닌 동일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③ 장학우(홍칠공) : 어떤 젊은 처녀(양채니 분)가 구양봉을 찾아와 그의 동생의 복수를 간청한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것은 달걀 한 바구니와 당나귀 한 마리뿐이었다. 구양봉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지만 그녀는 도와줄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고집한다. 가진 것 없는 검객 홍찰(장학우 분)은 구양봉의 눈에 띄어 그의 휘하에 들어가 이제는 유능한 청부 검객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구양봉의 뜻을 어기고 돈도 없는 어린 소녀의 복수를 대신해준다. 그가 받은 대가는 오직 달걀 한 개뿐이었다. 마적단과의 싸움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은 그는 그를 찾아온 아내와 함께 떠난다.
④ 양조위(맹무살수) : 도화림에서 온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영락한 검객(맹무살수, 양조위)이 어느 날 구양봉을 찾아와 살인청부 일을 하겠다고 자청한다. 그는 눈이 완전히 멀기 전에 복사꽃이 피는 것을 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갈 돈이 필요했다. 그는 아내(유가령 분)가 절친한 친구와 부정을 저지르자 집을 떠나는데 그 친구는 다름 아닌 황약사였다. 이렇게 가슴에 나름의 상처를 지닌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세월은 흘러가고 마침내 구양봉은 형수(옛 애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자신의 여관에 불을 지르고 떠나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현상(現像) 으로 드러내는 것은 물성(物性)이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 물잔을 건네는 것, 그러니까 목이 마른 사람이 받은 잔(盞)은 물을 건네준 사람의 마음이다. 선의가 물잔이라는 물성으로 교환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음은 물성을 띤 현상으로 나타난다. 주고받는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인간 관계란 결국 물성을 띤 물적 관계의 교환인 셈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장학우(홍칠)가 자기 손가락 한 개를 기꺼이 양채니의 달걀 한 개와 교환한 심리 기제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잘린 손가락과 달걀 한 개)은 타자와 타자에 대한 서로의 선의가 물성을 띤 물질성으로 변한 상태인 것2)이다.
반면에 홍칠공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유심론자들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얽혀 있으며 정념의 교환, 혹은 마음 교환의 실패로 맺어진 관계들이고 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다. 장국영(구양봉)을 사랑한 장만옥(자애인)과 그녀를 사랑한 양조휘(황약사)가 나누는 대사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한다.
- 날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어요(자애인)
-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말도 있소(황약사)
- 난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그는 말해주지 않았아요(자애인)
철학자 김영민은 << 집중과 영혼 >> 에서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며 " 그러나 누가 '알고' 있었다는 게 왜 중요했을까 ? " 라고 묻는다. 중요하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다. 그들은 마음을 물성을 띤 물질성의 교환 형태로 뜻을 전하는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원시적인 정념의 교환 형태로서만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정인들이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없으니 메신져도 사라진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말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마음과 마음의 교환 거래로 맺어진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황약사는, 구양봉은, 맹무살수, 자애인은 마음을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유심론자들이다.
달걀은 환(幻 : 헛보이다, 미혹하다, 변(화)하다, 바뀌다)이다. 선의를 드러내기 위한 성의는 중요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성의 표시의 가치가 아니라 선의의 가치'다. 홍칠은 기꺼기 그 작은 선의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1) 집중과 영혼, 32 달걀은 환이다
2)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은 군만두를 통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이우진)의 마음을 읽는다 군만두는 이우진(유지태)의 악의를 띤 마음으로 물성으로 환幻 한 것이다 김영민 스타일로 표현하자면 " 군만두는 幻이다 " 군만두는 메신저의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