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드 시    잡 는 다  :


 

 

 

 

 

 


 

트랙터가 아우토반을 달려야 할 때


 

 

 

 

 


 


 

                                                                                                          설경구의 반대말은 백윤식이다. 설경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과장된 연기를 펼칠 때 백윤식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목석처럼 서 있다(나는 설경구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것은 비겁한 변명입니다 !!!!!! _ 라고 외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메소드 연기의 정석이라고 칭찬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느끼하다. 연기 그따구로 하면 안된다).

연기 스타일만 놓고 보자면    :    < 백윤식 > 은 이타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이다.  액션(연기는 액션이다)이란 리액션이 받쳐 줘야 훌륭한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리액션이 뛰어난 배우와 연기를 한다는 것은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마라톤 선수와 같다는 점에서, 송강호와 함께 연기하는 배우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연기 꿈나무에게 백윤식은 꽤 훌륭한 페이스메이커는 아니다.   그는 한국판 포커 페이스이자 스톤 페이스(버스터 키튼의 별칭이다) 이다.  설경구가 매소드 연기(물론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지만)를 한다면 백윤식은 맹맹한 연기를 펼친다. 하지만 그게 매력이다.

반면에 < 성동일 > 은 익살스러운 몸짓과 얼굴 표정으로 광대 연기를 펼치는 스타일이다.  정색을 한다기보다는 약방에 감초 역할을 한다.  그는 한국판 조커 페이스이다. 그런데 그가 선보이는 익살에는 매우 독특한 측면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자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 칼 " 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성동일은 스치듯 지나치는 찰나의 표정을 섬세하게 혹은 섬뜩하게 연기할 줄 아는 배우이다. 이런 배우들은 범죄 영화 끝자락에 나타나서 관객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배신자 역할이 금상첨화이다. 만약에 투 페이스, 그러니까 포커 페이스(백윤식)와 조커 페이스(성동일)가 짝패로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면 두 사람은 환상의 커플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도는 커플이 될까 ? 

 

 

 

영화 << 반드시 잡는다, 2017 >> 는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영화'다. 백윤식이 돈만 밝히는 구두쇠 영감을 연기한다면 성동일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은퇴한 형사 영감을 연기한다. 시작은 참담하다. 초반 30분 동안 나는 이 영화를 계속 볼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끝낼 것인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노스페이스 노땅페이스의 조합이 그닥 불꽃 투혼으로 타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은 추격 스릴러 장르에서 감독이 두 어르신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    권장 속도 시속 130km 이상'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는 아우토반을 최고 시속 10km인 트랙터가 달려야 할 때, 감독은 어떤 전략을 취할까 ?   모름지기 추격 스릴러라면 시속 200km를 달리는 듯한 속도감   :   속도의 쾌감은 반드시 스피드를 높일 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모짜르트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조건 볼륨을 높여야 하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박자다. 조르주 앙리 클루조의 << 공포의 보수, 1953 >> 과 리콜라스 윈딩 레프의 << 드라이브,2011 >> 은 박자가 느려도 박자를 제대로 맞추면 훌륭한 속도감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을 활용해야 할 터인데

 

감독이 과연 달리다가 시동이 꺼지기 일쑤인 고물 트랙터 두 대를 가지고 그런 속도감을 낼 수 있을까 ?  조금만 달려도 폐병 환자처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고물 트랙터, 백윤식과 성동일은 < 본 아이덴티티 - 시리즈 > 처럼 싱싱이와 생생이의 아우토반 활주로 액션 율동극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작품이다. 감독은 낡은 트랙터 두 대를 가지고 속도감 있는 추격전을 재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일찌감치 속도전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이 단점을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따른 노인 문제(고독사, 노인 차별, 노인 혐오 따위)에 집중해서 사회적 어젠다를 도출하는 데 성공한다. 영리한 셈법이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점은 뒤로 갈수룩 백윤식, 성동일, 천호진의 불꽃 튀는 어르신 연기가 좋다. 특히 천호진의 칼 같은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다 아는 우화이지만 토끼와 거북이 경주에서 최후 승자는 거북이다. 어찌 되었든 거북이는 달린다 ■

 

 

-

 

 

덧대기        ㅣ       영화제 때 GV(감독과의 대화 시간)를 몇 번 참가했다가 질문 수준에 경악해서 그 다음부터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감독님, 이 영화 흥행할까요 ? _ 라는 질문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었다. 다음 질문은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감독님, 혹시 좋아하시는 한국 음식이 있나요 ?                    맙소사 !   이러다가는 캔 로치 감독에게 두유노싸이 ? 라고 물을 판이다.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선일보 기자는 " 댓글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 특정 지지자의 악성 댓글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 " 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품격을 갖춰 문학적 표현을 해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뾰족한 표현 방법이 없다. 그 기자에 대한 내 생각은 < 좆밥 > 이다. 댓글이 무서워서 기사를 못 쓰겠다는 기자의 고백은 < 기레기 > 라는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된장 못 담든다는 소리가 아닌가. 이러다가는 검은색이 무서워서 간장 못 담근다는 소리도 할 판이다. 기자는 권력자를 두려워 말고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데 댓글 따위가 무섭다고 하니 그동안 제대로 된 기사는 썼을까 _ 라는 의문이 든다. 하여튼, 너는 좆밥이다. 좆밥아, 좆밥아, 사랑하는 나의 좆밥아..... 왜 사니 ? 다음날, 대통령 기자 회견에서 댓글 발언을 했던 기자가 후기 기사를 작성한 모양이다. 그 기사의 피날레는 다음과 같다. "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마다 수십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였다. 이후에 쏟아질 악성 댓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댓글이 무서워서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를 수십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일 정도였다면, 네티즌보다는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배는 무서운 이명박근혜라는 거악 앞에서는 얼마나 많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을까 ?  < 썼다 > 라는 기자의 직업 윤리보다 < 지웠다 > 라는 비윤리적 기자 정신을 가진 자의 자기 검열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 썼다 > 라는 욕망이 < 지웠다 > 라는 욕망을 덮을 때 좋은 기자는 탄생한다고 믿는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3&aid=000334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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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1 11:05   좋아요 2 | URL
제가 영화제 할 때 감독과의 대화(gv)를 아예 참석 안합니다. 시간이 남아돌아도 말입니다.
감독에게 한다는 소리가 한국 음식 먹어본 것 있으세요 ? 이런 질문이나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gv입니까
댓글 무서워요. 덜덜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이게 질문입니까...

이영화봤어요 2018-01-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반가운 마음에, 트랙터가 아우토반을 달릴 때라는 표현에 감탄하고 가요 ㅋㅋ
 


 



2018年, 1일1식 4년 차





                                                                                                      해가 바뀌었으니 < 1일1식 > 을 한 지 4년 차에 접어들었다. 평소 세 끼를 먹다가 한 끼로 줄인다는 것은 " 죽을 맛 " 이 아닐 수 없다. 처음 2개월은 허기를 이기지 못해서 하루에 2리터 생수를 1.5개씩 마셨다. 위에 가득 찬 수분은 아래(방광)로 흘렀고, 먹은 것은 없는데 화장실 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방광이 지랄을 하는 것이다. 뭘 그리 잘 먹어서 화장실에 자주 가 _ 라고 농담처럼 던진 진담을 들을 때는 지랄방광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곤 했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때가 바로 이 즈음이었다. 

누가 나에게 64색 크레파스를 주며 가을 하늘을 그리라고 하면 하늘을 파란색 대신 노란색 크레파스로 색칠했을 것이 분명하다. 별 볼 일 없던 놈이 이제는 대낮에도 별 볼 일이 생기는구나. 불쌍타, 시바...... 아따. 페루애는 참말로 불쌍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허기뿐만은 아니었다. 식사하셨어요 _ 가 인사말로 오고가는 대한민국 정서상 점심 굶는 남자에 대한 시선이 고울 리 없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그렇게 3개월을 버티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지금은 허기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굶으면 힘을 못 쓴다고 하던데 지금은 농경 사회가 아니지 않은가.

힘을 얻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사람은 운동선수다.  만약에 당신이 운동선수도 아니면서 힘을 얻기 위해 과식을 한다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다. ​ 한 끼를 굶으면 힘을 못 쓴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람 몸은 비상 상태를 대비해서 체내에 30일치 식량을 저장한다. 그리고 권투선수는 살인적인 절식으로 경기에 나선다. 힘은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지 포만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1일1식 초기, 한 끼에 세 끼를 먹는 과식도 이제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이다.  위가 점점 쪼그라들더니 일반인의 한 끼 정량만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몸무게는 1식을 시작한 첫해를 제외하고는 변화가 거의 없다.  

무엇보다도 의학 협회에서 제공하는 표준 몸무게 수치와 똑같다.  하루 한 끼'만으로도 일상 생활을 하면서 표준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요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다만, 나는 2년 차 - 3년 차 과정에서 "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 " 을 1년 정도 유지했는데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고지방저탄수화물 식단도 일종의 < 원푸드다이어트 식단 > 과 비슷하다. 지금은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에는 애매모호한) 비스무리한 사람이 되었다. 1년 내내 삼겹살을 먹었는데 이제는 삼겹살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피냄새 때문에 입맛이 떨어진다. 

한 음식만 먹게 되면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다이어트 식단에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요즘은 양배추에 꽂혔다.  처음에는 배추의 맛에 매료되어 열심히 먹었으나 수분이 많아서 양배추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통은 먹고 있다.  씹을 때 들리는 아삭거리는 소리가 좋아서 먹기 시작했다. 청량감이 끝내줘요 ~                         맛에 양배추를 씹는다. 1일1식이 체중 감량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고혈압을 정상 수치로 낮추는 효과도 있다. 또한 염분 섭취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당연한 소리이다.

음식을 싱겁게 먹는 사람이 하루에 10끼 식사를 하는 것과 음식을 매우 짜게 먹는 사람이 하루에 1끼를 먹었다고 했을 때 1일 염분 섭취량이 높은 쪽은 음식을 싱겁게 먹는 사람이 하루에 10끼를 먹는 경우다. 이처럼 1식은 염분을 줄이는 데에도 효과가 높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염분을 과다 섭취하는 과정은 음식을 짜게 먹기 때문이 아니라 세 끼를 먹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 상식은 세 끼가 건강을 유지하는 최적의 식습관이라고 선전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조까고 있네. 지상의 모든 동물은 " 공복과 만복의 무한한 반복 " 에 적응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공복을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해서 만복을 지속하라고 충고한다. 아침 먹고 4시간 지나면 공복이 된다고 ? 웃기는 소리다. 만복인 상태에서 다시 점심을 채워서 만복을 유지하고 다시 만복인 상태에서 저녁을 채워서 만복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 끼의 진실이다. 한 가지 더 ! 다이어트에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 아니라 절식이다.





​덧대기

1.    1일1식이 모두에게 유익한 식습관이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신뢰일 뿐이다(성장 중인 청소년에게 1일1식을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장이 끝난 성인이라면 1식은 유익하다)

2.    모든 음식은 약이면서 동시에 독이다. 약을 많이 섭취하는 것보다는 독을 체내에 쌓이지 않도록 절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3.    음식을 다룰 때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은 원소 환원주의이다. 예를 들면 < 사과 = 비타민 c > 라는 식이다

4.    체중 감량을 위해 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미친 짓이다(운동은 균형 잡힌 체형을 위한 수단이다)

5.   1식을 하지 않을 때는 끼니를 굶으면 힘이 없다고 느꼈는데, 1식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밥이 힘의 원천이라는 믿음이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힘은 근육에서 나온다. 그리고 근육은 운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밥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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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1-10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일 3식‘을 해야한다는 것 역시 일종의 세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성장기 청소년과 단백질이 필요한 노년기를 제외하고는 절식이 더 건강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0 18:41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1식도 그 환경에 적합한 사람에 한해서라는 조건이 붙어야 겠지요. 중요한 것은 절식은 확실히 좋다는 겁니다. 1식을 하지 않더라고요. 3식을 절식으로 꾸미는 것도 매우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인은 의외로 많이 먹어요. 몰랐는데 저도 옛날에는 거실 나가면 항상 쇼파 테이블에 놓인 먹거리 하나씩 집어들고 방으로 들어오근 했거든요. 오징어를 씹는다진지 땅콩을 조금 먹는다든지.. 그런 식으로.. 그런데 지금은 아예 군것질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24시간 굶습니다..

라로 2018-01-10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양학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곰발님과는 생각이 약간 달라요. 하지만 예전에 저도 일일 일식 했었는데,,,, 실패했어요. ㅎㅎㅎㅎ 언급하신 것처럼( 언급하셨다고 맘대로 해석 ~~^^;;) 개인에게 맞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듯요. 저는 일일 일식 했을때 고지혈증이 올 뻔 했었어요. 너무 안 먹으면 우리 몸에 있는 다른 부분이 작용을 하거든요. 암튼

곰곰생각하는발 2018-01-10 18:3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각자의 환경에 맞는 습관입니다. 저에게는 1식이 맞다고 해서 1식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장기 때 1식을 권하지 않고 겨호 님 말씀처럼 영양이 필요한 노인과 환자분에게도 권하는 것은 위험하겠지요. 저도 처음 두 달은 어지럽고... 별이 보이고.. 막 그랬습니다.. ㅎㅎ
 

 

 

 


 




엄마, 나만 없어 !


 

                                                                                                            노스페이스 본사 사장이 한국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 안녕, 코리안 친구들 ! 우리는 그저 팔 달린 옷을 생산했을 뿐인데 날개 달린 옷처럼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가다니 이게 다 여러분 덕DUCK 이야.                                 

한국에서는 등산복이 교복으로 팔리고 있으니 기현상인 셈이다. 누가 보면 대한민국을 오지 중의 오지로 산악 국가로 오인할 만하다. 미쉐린 타이어 패션을 코스프레한 당신, 오지고요 ~                     오죽했으면 미국 본사에서 TF팀을 만들어서 한국의 노스페이스 열풍을 분석했을까 ?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산은 남산으로 해발... 음, 그러니까 그게 음.....  해발...... 260m로, 아... 아닙니다. 회장님. 제가 착각한 것이 아닙니다. 남산은 2600m가 아니라 260m이 맞습니다아.                           이 연구 보고서는 회장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켰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등산할 만한 산도 없는 나라에서 이토록 많은 등산복이 팔렸으니 내가 시베리아에서 냉장고를 판 셈이군, 허어... 그 많던 미쉐린 타이어, 그러니까 노스페이스 패딩은 지금 어디 있을까 ?  요즘도 심심치 않게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 10대의 불꽃 로망 패션이었던 노스페이스는 이제 60대 노인들이 입고 다닌다. 10대 손자들이 입고 다니지 않으니 60대 노인들이 고가의 패딩을 버리기는 아까워서 대신 입고 다니는 것이다. 아, 옛날이여 !  그리고 그때의 열풍이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 바로 롱패딩 신드롬이다. 노스페이스 패딩이 미쉐린 타이어를 흉내 냈다면 롱패딩은 애벌레를 흉내 냈다.

문제는 유행이 지나면 매우 촌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유행 따라 옷을 사는 소비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유행이 지나면 한때 유행했던 옷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된 옷은 대량 폐기될 운명이 될 수밖에 없다. 마치, 헌책방에 가장 많이 깔린 책이 한때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 책이듯이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입는다는 데 당신이 웬 참견이슈 ? 롱패딩을 예로 들어보자. 얼리어답터는 유행을 선도하는 소비자 그룹이다. 이 그룹은 대부분 경제적 사정이 좋다. 이들은 패션 리더로 올해의 패션을 선점하면 그 아래 단계에 있는 소비자도 그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롱패딩을 입게 된다. 그리고 그해에 유행하는 옷을 살 만한 경제적 여력이 없는 계급의 아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 엄마, 나만 없어 ! " 부모 입장에서는 무리해서라도 롱패딩을 사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엄마에게 " 엄마, 나만 없어 ! " 라고 말하는 부류는 사정이 나은 경우다.  그 말조차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지만 당신의 소비가 누군가에게는 부담과 억압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가난한 아이들을 소외시키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유행 때문에 쉽게 버려지는 옷을 위해서 오리와 거위들은 살인적인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거위 털 소재 옷은 80%가 살아 있는 거위에서 뽑은 털이다. 깃털을 뽑는 과정에서 짐승의 살갗이 찢어지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살갗이 찢어진 거위는 마취도 없이 꿰매져서 6주 후에 다시 지옥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짐승들은 벌거벗겨진 채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과연 롱패딩 한 벌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짐승은 몇 마리일까 ? 소비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유행따라 옷을 입는 사람은 멋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유행에 편승하는 부류일 뿐이다. 좋은 옷을 오래 입는 것이 윤리적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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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9 14:38   좋아요 2 | URL
뻔데기 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이 글은 지적질이 아니라 저에 대한 반성입니다. 프레이야 님 에세이 읽고서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저는 옷이 싸다는 이유로 새옷 사서 쉽게 버리고 다시 싼 옷 사자는 주의엿거든요.그런데 그게.. 반드시 좋은 소비 패턴은 아니더군요..

앞으로는 유행 타지 않은 옷을 오래 입을 생각입니다. 낡은 외투라고 쪽팔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8-01-09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9 14:48   좋아요 1 | URL
어느 책에서 봣는데 지구상 모든 생명은 에너지를 생성한다고 하더군요. 짐승은 죽어서 누군가의 먹이가 되니 그 짐승의 에너지 생성에 영향을 주는 것.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에너지 생성 0라고 하더군요. 자연 입장에서 보면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죠..

꼬마요정 2018-01-09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모피, 깃털, 가죽 옷은 쳐다도 안봅니다. 덕분에 추위도 많이 타는데 겹겹이 껴입고 대체소재 찾아 입죠. 도대체 살아있는 동물들이 얼마나 싸고 하찮으면 그렇게 온 곳에 널려있는지... 여기가 시베리아도 아니고 라쿤털이 꼭 필요한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9 16:00   좋아요 0 | URL
유투붕에서 찾아보니 정말 무자비하게 뜯기더군요. 전 이게 그냥 양털 깎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벌거벗겨진 채 진흙탕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거위를 봤는데... 아, 정말.. 미안하더군요..

꼬마요정 2018-01-09 17:04   좋아요 0 | URL
다른 이야기지만, 샥스핀도 싫어합니다. 상어는 부피가 크기 때문에 지느러미만 자르고 본체는 바다에 던지더라구요. 지느러미가 없는 상어는 헤엄 못치고 숨 못쉬고 바다 밑에 가라앉아 죽는데, 그 상어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9 17:19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이야기압니다. 지느러미가 없으니 상어 무게의 의해 바다로 내려앉죠. 결국 수압에 의해 눈알이 뽑히고 허파가 터집니다.. 그렇게 죽는 거예요. 그 지느러미 맛 좀 보겠다고 인간이 저지른 죄죠. 사실.. 상어 고기가 못 먹습니다. 빨래비누 맛이 나거든요... 그래서 지느러미만 자르고 산 채로 바다 속으로....
저는 개고기도 반대합니다. 옛날에는 고기가 귀했으니 그랬지 이젠 넘치는 게 고기인데 왜 굳이 개고기 맛을 못 잊고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로 2018-01-09 15: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좋은 옷이 오래가요. 옷이라면 한 일가견 있다고 생각하는 일인 드림.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9 15:58   좋아요 0 | URL
공감 100가 날립니다. 맞아요. 좋은 옷 사서 오래 입는 것이 윤리적 소비입니다... 백퍼공감 !
 

 

 

 

 

 

 

 

 

 

 

 

 


 






1985 그리고 1987 : 희망을 위해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고문 피해자에게 무엇이 제일 힘들었는가 _ 라고 물었을 때 고문 피해자의 대답은 내 상상을 벗어났다.

 

 

- 남영동 대공분실   :   한때 후암동에 거처를 두다 보니 오고가다 보게 되는 건물이 바로 이 건물이었다. 지금은 경찰성 인권센터'라는 간판을 달고 있지만 그 전에는 간판이 아예 없어서 처음에는 천주교와 관련된 교육 기관인 줄 알았다. 건축 외양이 훌륭하고 건설자재가 고급이어서 이곳이 고문실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외딴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모여사는 동네 주거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고문실은 5층이다. 공교롭게도 창문이 가장 많은 층이다. 나는 김수근의 후예들이 김수근 대표 건축물로 < 공간 > 사옥을 뽑는 데에 동의한다. 공간 사옥의 미학적 가치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빛나는 공간 사옥의 쌍생아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사실을 숨기면 안된다. 이 사실을 외면한다면 공간 사옥의 미학적 가치도 없다. 그는 권력에 봉사하기 위해서 공포라는 예술적 장치를 이용했던 사람이다. 

 

 

나는 그가 공포와 폭력의 강도를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것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니까. 그런데 그는 고문 가해자가 몽둥이를 내려놓고 나서 느닷없이 친형이나 친언니처럼 굴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공포와 폭력으로 윽박지르던 자가 신파에 호소할 때, 그래서 저토록 무시무시한 괴물도 사실은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고문보다 힘들었다는 것이다. 고문 가해자가 사나운 짐승이 아니라 선량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문 피해자는 잠시 동안 희망을 갖는다고 한다. 나의 진심을 다해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어쩌면 들어줄지도 몰라. 고문 피해자가 고문을 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희망이었던 것이다. 

희망을 갖는 순간 마음이 흔들립디다. 공포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이었어요. 희망이 없을 때는 견딜 만하지요. 그냥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이지만, 어느 순간 희망이 생기면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놀라운 점은 고문 가해자가 고문 피해자에게 친형이나 친언니처럼 대하는 태도가 고문 기술 교본의 정석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거친 바람보다 따스한 햇볕이 지나가는 사람의 모자를 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 << 남영동, 1985 >> 를 보았을 때 내 눈에 박힌 것은 창문이었다.

 

배우 이경영과 김의성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기형적인 쪽창을 보면서 나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대한민국이 낳은 세계적 건축가 김수근이 떠올랐다. 그는 왜 한뼘 크기의 쪽창을 만들었을까 ?  이 쪽창은 고문실뿐만 아니라 화장실 그리고 나선형 철제 계단에도 배치되어 있다. 의도가 깔린 계산인 셈이다. 다시 한 번 묻자. 김수근은 왜 대공분실 곳곳에 쪽창을 설치했을까. 환기를 위해서 ?  아니다. 희망을 위해서다. 이 창문은 한뼘 크기이기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애초에 탈출이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든 기형적인 창틀인 셈이다. 하지만 역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 창문은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 목적이 아니라 반대로 수감자에게 작은 희망을 심어주도록 설계한 잔인한 수작이다. 이 작은 희망으로 인해 더 많은 거짓말을, 더 많은 희생자를, 더 굳건한 권력을 !  또한 이 창문은 세상과의 고립을 극대화한다.


밤 고문보다 힘든 것은 낮 고문이라고 한다. 벌건 대낮에 이토록 잔인한 고문이 펼쳐지지만 창문 밖의 세상은 찬란하고 따스하다는 사실이 고문자의 고립감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아무도 없는 고문실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면 어디에다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까 ?  아마도 저 한뼘 크기의 창문일 것이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 저 밝은 곳에 두고 온 선한 자들의 세계. 그것은 일종의 희망이다. 살아서 저기 너머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그래서 김수근은 곳곳에 희망이라는 쪽창을 만든다. 잔인한 설계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을 연봉 1억이라고 소개하는 블로거가 있었다. 외제차를 몰고 취미로 고가의 피규어를 모은다고 자랑하는 친구였는데, 나는 그 친구가 올린 사진 한 장을 보고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사진 배경 뒤로는 천장 바로 아래 쪽창이 보였다. 이런 창틀 구조는 그 집이 반지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반은 지상이고 반은 지하인 공간이다 보니 볕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쪽창을 높이 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주거 환경의 빈곤을 경험했던 터라 그의 거짓말이 슬픔으로 다가왔다.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실에서 사망한 박종철도 같은 심정이리라. 참...... 신기한 일이다. 창문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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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영동 대공분실 5층에는 다른 층에 비해 훨씬 좁은 19개의 창문이 있다. 팔 하나를 겨우 내밀 정도인 이 창문들은 ‘고문실’이라는 용도를 은폐하고 투신자살을 방지하는 동시에 건물 입면 비례를 감안한 미적 측면까지 고려한 설계의 결과물이다. 고문실 출입문들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어쩌다 문이 열려도 반대쪽을 들여다볼 수 없다. 방문은 안에서는 열 수 없고 밖에서만 열어줄 수 있게 되어 있다. 고문실 벽에는 소리를 흡수하는 타공판이 부착되어 있는데, 고급 자재가 아닌 목재를 사용한 탓에 고주파수의 비명소리가 벽을 타고 옆방으로 전달된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피의자’는 눈이 가려진 채, 자기가 가는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나선형 계단을 통해, 암흑 속에서 울리는 발소리와 욕설을 들으며, 엄청난 공포감 속에서 고문실로 들어선다. 이토록 용의주도한 설계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다. “이곳은 음각과 양각의 비례로 계획된 입면, 접힌 모서리, 벽감으로 만든 출입구, 잘 분리된 동선, 심리적 고통을 배가시키는 나선형 계단, 고문을 은폐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된 19개의 창문, 고문에 효율적인 공간 구성과 집기 디자인과 마감재로 만들어진, 현대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악의적인 공간을 품고 있는 공간입니다.” 


-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책소개 글 중에서


B 반지하 방에서도 살았고 옥탑 방에서도 살았다. 반지하 방은 방의 절반에 지하에 있다 보니 창문 크기가 작았다. 그렇다면 옥탑 방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니 창문이 클까 ? 옥탑 방의 창문도 크기가 작다. 왜냐하면 방풍 역할을 하는 구조가 없기에 옥탑은 한겨울에는 시베리아 벌판이기에 창문 크기를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작은 창문을 소유한다. 안양 충훈부 반지하 방에서 살 때, 나는 유독 창문을 자주 보았다. 그 쪽창은 지하생활자에게는 박하사탕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어쩌면 박종철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 저 너머의 따스한 세상을 꿈꾸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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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8-01-07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둠에 갇혀본 사람은 한 줌 햇빛이 희망이요 그리움임을 알지요... 음...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7 14:33   좋아요 0 | URL
고문의 정석에 의하면 희망을 줘야 진술을 쉽게 얻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많은 창문을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제가 남영동 근처에서 살았어요. 서울역 후암동.. 조금 내려가면 남영동 대공분실이 나오거든요. 보면은 매우 특이한 것 중 하나가 대공분실 층만 쪽창이 굉장히 많습니다. 다른 층이 10개 정도라면 그 대공실 층에서는 30개 정도 되요. 그러니까 그 층에서는 창문이 가장 많은 거죠.

AgalmA 2018-01-08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도 다다오의 빛의 교회가 창 없이 틈으로 들어오는 빛으로 십자가와 신성을 표현한 것과 참 반대되는 극단이지요.
김수근 건축가의 흑역사이긴 하지만 대단하긴 대단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8-01-08 14:55   좋아요 1 | URL
이 양반에 권력에 붙어서 엄청난 부를 챙기신 분이에요.
국가 주도 도시 건설은 모두 정부가 이 분에게 맡기거든요.
아마 대한도시건축협회 이사장인가 아마... 그렇죠....
그리고 전두환을 미국 측과 연결시켜 준 분이 이분입니다..

AgalmA 2018-01-08 15:07   좋아요 1 | URL
작품과 인격이 정비례하는 게 아닌 경우 많지요.
 

 

 


 


꾼 : 고기를 맛있게 굽는 요령

 



 


                                                                                                        고사모란 모임이 있다. " 고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을 줄인 말인데 그녀는 이 모임의 원년 멤버였다. 좋은 고기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고기 맛을 보는 친목 모임이란다. 처음에는 맛집 탐방을 핑계로 술이나 마시는 주정뱅이 클럽 모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룰이 있었는데 바로 술이었다. 술을 마시게 되면 고기 맛을 술이 잡아먹게 되어 모임의 성격이 변질된다는 이유에서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그는 고기를 맛있게 굽는 비결로 < 삼세판 > 이라는 키워드를 내걸었다. 고기는 딱 세 번 뒤집어야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질 급한 사람에게 고기 굽는 일을 맡기는 것은 비극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우, 우리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에요. 스테이크는 세 번 뒤집을 때가 가장 맛있거든요. 모든 고기는 세 번 지져야 한다니까요.

그는 고기가 익는 타이밍에 대하여 1시간 내내 설명했지만 혓바닥 고자'에 가까운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밖에 없었다. 6인조 사기꾼이 등장하는 영화 << 꾼, 2017 >> 을 보는 내내 고사모 회원인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저씨, 판을 너무 자주 뒤집으면 고기 맛이 떨어져요. 판을 너무 자주 뒤집으면... 판아안을 너무무무 자주 뒤집으면.... 고기 마아아아앗이  떠떠떠떠... 떨어져요.                         이 영화를 연출한 장창원 감독은 성질이 급한 나머지 반전이랍시고 불판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익지도 않은 생고기를 열불나게 뒤집고, 뒤집고, 뒤집고, 뒤집는다.

쉽게 말해서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노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반전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매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망작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홀아비 냄새가 진동했다. 4D 영화였다면 밤꽃 향기 작렬했으리라. 허점을 찾자면 끝이 없으니 첫 번째 허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을 내자.

 

 

천장에는 CCTV가 주렁주렁 달렸다


 

춘자(나나), 고석동(배성우), 김과장(김세하)은 사기꾼 짝패가 되어서 보석상에서 고가의 보석을 훔친다. 춘자가 주인 몰래 보석을 훔치는 장면에서 고석동의 보이스 오프가 들려온다. " 어이, 이봐. 춘자야 !!! " 뒤돌아보면 형사인 척하는 짝패 고석동과 김과장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하면 이 장면이 얼마나 허투루 마투루 휘뚜루 마뚜루 지어진 각본이라는 사실을 쉽게 깨닫게 된다. 과연 CCTV 없는 보석상이 있을까 ?  천장에 박힌 알전구를 보라. 보석상 주인 입장에서 보면 형사 놀이가 사기극이라는 사실을 금세 간파할 것이고 제일 먼저 CCTV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

더군다나 주인은 춘자라는 사기꾼 본명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춘자, 얼마나 귀에 쏙쏙 박히는 이름인가(차라리 사기꾼 춘자 이름을 류여혜라고 했다면 수긍했을 것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기억하기 힘든 이름이니까). 얼굴도 공개되었겠다, 이름도 밝혀졌으니 형사들이 이들을 찾는 것은 쉬운 일. 사기꾼이 등장하는 영화를 수없이 봤지만 사기칠 때 서로 본명 부르며 사기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이렇게 허술한 잡범들이 고도의 사기극이랍시고 사기를 치고 있으니 관객인 나로서는 사기 당한 느낌이 든다. 또한 각본이 엉터리다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시나리오를 보며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연출부도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의 스포일러를 공개했다고 투덜거릴 필요는 없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을 읽었다면 당신은 나 때문에 시간과 돈을 번 것이다. 이런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인생을 낭비하는 것과 똑같다. 명심할 것,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고기 굽는 일을 맡기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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