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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 나의 특별한 가족, 교육, 그리고 자유의 이야기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월
평점 :
#배움의발견 #타라웨스트오버 #열린책들 #교육 #educated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원제; Educated>는 종교를 이유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부모사이에서 태어난 저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저자의말에 적혀있는 '이 이야기는 모르몬주의에 관한 것도, 어떤 다른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도 아니다'란 말을 나또한 리뷰에서 한번 더 적고 싶다. 이 이야기를 읽고 특정 종교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 어떤 신념이 옳다고 할 때 그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며 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순수하게 각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아버지를 제외하고 타라를 포함한 다른 가족들이 종교적 신념때문에 아버지를 따랐다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을 무기로 가족을 제압한 아버지를 따랐다는 전제하에 리뷰를 적어야 할 공간에 '이들도 부모인가?'라는 질문을 가장해 여러 부분에서 분노하다가 이내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미리 밝히고 싶다. 생일이 정확하게 언제인지 알지못하는 타라는 어린 시절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있었고, 종말을 대비해 복숭아 통조림을 잔뜩 만들어놓고 혹시 모를 정부의 침입에 대비하는 상상은 어린아이에게는 모험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버지가 반복해서 들려준 한 가족의 안타까운 죽음은 어린 타라가 아버지의 과한 종말에 집착과 그에 대한 대비를 이해할 정도였으며 무엇보다 성경 그 자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에 대한 절대적 복종은 선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약초를 이용해 신성한 탄생의 순간을 지켜주는 산파로서의 능력을 한껏 보여주는 타라 엄마의 모습 또한 자부심을 가지게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어린 타라에게 부모와 형제자매보다 더 안락한 존재는 없기에 타라는 그 안에서 행해지는 불편과 노동을 견뎌보려고 노력했다.
다른 아이들은 거의 내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이 있는 그곳이 정말 좋았다.
모두가 하는 행동을 나도 똑같이 한다는 사실이 좋았다.
-중략- 우리는 하나의 무리가 되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132쪽
하지만 한 살 한 살 자아를 의식하고 성악의 재능을 보이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늘어나면서 타라의 마음속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찾아온다. 이성의 눈뜨게 되는 것도 촉발제의 역할을 했지만 그녀에게 교육, 즉 배움의 세상으로 인도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아마도 아버지보다 더 극단적인 숀오빠의 행동과 두 차례의 사고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배움의 발견, 타일러 오빠가 던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다.
"오빠 생각엔 내가 꼭 떠나야 할 것 같아?"
타일러 오빠는 눈 한번 깜짝이지 않고, 전혀 주저 없이 말했다.
"내 생각엔 이 집이 너한테는 최악의 곳이야"
오빠는 속삭이듯 말했지만, 그 말들은 고함처럼 느껴졌다.
"떠나서 어디로 갈 수가 있을까?"
"내가 간 곳으로가."
오빠가 말했다.
"대학으로 가는거야." 195쪽
만약 이 이야기가 소설이었다면 대학에서 에세이를 쓰고, 여러 권의 책이 쌓인 도서관의 장면들이 낭만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처럼 타라가 공부하는 과정이 주마등처럼 혹은 압축된 몇 장면으로 지나가지 못했다. 가족과의 싸움이 그녀를 기다렸고 무엇보다 가족을 배신한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대학졸업 이후 자신이 희망하는 공부를 지속해도 될만큼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치열한 날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좌절하며 또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설이니 가능하지'라는 말을 독자로 하여금 함부로 내뱉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과연 얼만큼의 재능이 있는지 끝까지 가본적은 있는지, 그저 공부만 하면 되는 시절을 왜 그토록 허망히 보냈는가를 짧게나마 자책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떤 공부를 얼만큼 원하고 있는 책을 읽으면서 끝없이 묻고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순간까지 그 열여섯 살 소녀는 늘 거기 있었다. 내가 겉으로 아무리 변한 듯했어도 나는 여전히 그 소녀였다. -중략-
그날 밤 나는 그 소녀를 불렀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떠난 것이다. 그 소녀는 거울 속에 머물렀다. 그 이후에 내가 내린 결정들은 그 소녀는 내리지 않을 결정들이었다. 그것들은 변화한 사람, 새로운 자아가 내린 결정들이었다.
이 자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변신, 탈바꿈, 허위, 배신.
나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른다. 506-7쪽
나에게 교육이란 무엇인가. 또 타라가 말하는 교육과 나의 교육의 의미는 다르다 할지라도 어느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를 물을수도 있겠지만 한 아이의 엄마의 입장에서 볼 때 나의 잘못된 가치관 혹은 내 배우자의 가치관이 아이의 마음을 때로는 육체까지도 병들게 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린 딸 타라의 입장에서,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배움앞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기쁨을 맛보기도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읽어서인지 500페이지라는 책의 두께만큼이나 여운이 오래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