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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규의 끄덕끄덕 드로잉
덕규 지음 / 북센스 / 2019년 8월
평점 :
끄덕끄덕 드로잉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끄적거리다 + 덕규
고개를 '끄덕'이다 라는 의미로 덕규의 끄덕끄덕 드로잉이라고 한다.
그림을 정말 잘 그렸구나 하는 끄덕임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끄적거린 내용이 정말 그럴듯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몇 가지 그림에 사용된 글들을 가져와보면 가령 '자두자두 졸린 자두'라는 끄적임과 함께 졸고있는 자두가 그려져있기도 하고 '가장 있기 있는 파이'라는 주제에 1,2,3위 단상대위에 올라서 있는 파이 중 단연코 1위는 '와이파이'다. 이렇게 두 가지만 나열해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않는가. 글로도 수긍이 가는데 그림으로 보면 훨씬 아기자기 하고 귀엽다. 비숑을 콕하고 찌르면 바람빠지는 소리가 '비~쇼오오옹'하고 난다던가 하는 생각을 저자 덕규 뿐 아니라 한 번씩은 다들 해봤을 법한 가정이다. 아무생각없이 멍하고 있다가 책을 펼쳐도 재미있고, 무언가 심난하거나 머리가 복잡해서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읽어도 좋은 덕규의 끄덕끄덕 드로잉.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간단하게 귀여운 친구들을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러스트계의 백종원이라고나 할까. 토끼, 강아지, 곰, 야옹이를 쉽게 그리는 방법도 책에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따라그려 보았는데 요리와 마찬가지로 쉽다고는 해도 막상 해보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하긴 할 것 같다. 워낙 곰손이라서 예쁘게 그리진 못했지만 어느정도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자가 별도로 알려주지 않은 나머지 캐릭터도 금새금새 따라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번 피식 하고 마는 그림도 있지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만드는 끄적임들도 있다. 아기캥거루가 엄마에게 삐쳐서는 제 방으로 가겠다는 편을 보면 비단 엄마 캥거루의 아기주머니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아이들 심지어 요즘에는 40대가 넘도록 결혼하지 않거나 돌싱들이 부모님집에 얹혀 사는 경우를 보더라도 '제 방'이 자기가 만든 방이 아니라는 것을 잊고 산다. 지나친 간섭으로 자녀를 피곤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지만 대부분 철이 들기 전까지 자녀들은 부모의 마음을 다 알기 어렵다. 얼마전에 읽었던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에서 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제대로된 대화를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린 캥거루가 폴짝 뛰어들어간 곳이 결국 엄마의 품인 것처럼 우리도 결국 부모님 곁으로, 부부는 배우자 곁으로 가게 되는게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공감가는 끄적임이 몇 개 더 있는데 '삼각형, 사각형, 원'이라는 표현과 달리 '동그라미, 세모, 네모'라고 하면 왠지 어감이 둥글둥글 하게 느껴진다는 끄적임도 와닿았다. 물론 화이트의 <네모의 꿈>의 경우는 정확하게 사각인 세상을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사각형의 꿈보다는 왠지 훨씬 동화적인 분위기로 다가오지 않는가. 저자의 말처럼 '동그랑땡이 아닌 원땡'이라고 하면 그 감칠맛 나고 기름진 맛이 덜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엄마 동그랑땡!"이라고 해야 왠지 더 친근하고 정감있게 들린다.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역시나 '끄적임'이 예술인 이 책은 저자가 무언가 계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는 말에 더더욱 저자가 평소에 얼마나 유순하고 둥글둥글한 생각을 하고 사는가 궁금해진다. 물론 실제로 외모는 거리감을 두게 생겼다고 고백했는데 어쩌면 그런 상황하나하나가 더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