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장편소설 아메리카나(1,2권)는 나이지리아 대학생 이페멜루가 미국 유학을, 그녀의 연인 오빈제의 영국 유학과 함께 두 사람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등의 러브스토리까지 담겨있다. 우선 1권에는 이페멜루가 미국 유학시절 나이지리아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인종차별 그로인한 경제적인 어려움등으로 인해 오빈제와의 결별에 이르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우주 고모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 보니 고모의 말이 늘 모호했고 자세한 내용은 없이 "일"과 "시험"이 어떻다는 얘기만 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아니면 그녀가 자세한 얘기를 묻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2부 (1권 188쪽)


미국 유학을 가기 전까지 이페멜루는 그곳에서 어떤 어려움이 자신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다. 위의 발췌문처럼 어쩌면 자세히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녀가 겪게되는 시련을 두고 누군가는 인종과 여성차별이 있더라도 그녀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그녀였더라면'이라는 가정으로 이페멜루에게 적의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1권에 등장하는 이페멜루가 시련을 통과해가는 모습을 두고 비난하고자하는 마음은 없다. 오히려 자신의 나라를 벗어나 더 나은 환경으로 가고자 했을 당시의 심정과 그런 상황이었기에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 혹은 어학연수 또는 워킹홀리데이를 희망하고 실제로 떠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들의 성공기가 화제가 되더니 최근에는 오히려 어학도 놓치고, 시간도 버리고 버티기 위해 일만하다가 몸과 마음 모두 상처입은 상태로 귀국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은 <보라색 히비스커스> 이후 두 번째인데 매번 느끼는 것이 '나이지리아', '흑인' 이라는 키워드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현시대를 사는 여성으로, 젊은청년으로 또한 부조리를 가진 사회의 구성원이 가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제약을 잘 건드려주고 있다는 감상이었다. 이 책에서도 이제 막 꿈을 향해 나아갈 때 생각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이 없는 것, 고난 앞에서 미래에 분명 후회할 줄 알면서도 잘못된 길을 택하는 우매함을 선택하는 모습 등이 지난 날의 청년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들 이런 부분에서는 공감하는 바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미국으로 떠난 이페멜루의 삶이 고단했던 것처럼 영국으로 떠난 그녀의 연인 오빈제의 삶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네." 오빈제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 "네"라는 말은 볼 빨간 이민국 관리와 일로바와 클리오틸드와 자기 자신에게 모든 게 끝났음을 인정하는 말이었다.

"당신은 비자가 만료되었으므로 영국에 체류할 수 없습니다." 3부 (2권 90쪽)


이페멜루가 미국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방법을 두고 의견이 나뉠 수는 있음은 배제하고 오빈제는 결과적으로 영국에 남지 못했다. 이유를 알지못한 상태로 연인에게서는 소식이 끊기고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된다. 어찌보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에 완벽한 감정으로 서로를 사랑했던 두 사람의 결말이 다소 안타까울 수 있겠지만 스포인 점을 감안하자면 그렇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오빈제의 어머니의 죽음으로 두 사람이 연결되었을 때 그렇게 안타까운 상태로 마무리되었으면 더 아름답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또한 두 사람의 선택이며 내가 가지 않을 길, 혹은 갈 수도 있는 길을 보여주는 소설적 장치이기에 전체적으로 앞서 읽었던 성장소설과는 또 다른 방식의 성숙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직 읽지 않은 아디치에의 다른 소설에서는 또 어떤 방식의 성장과 성숙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한 이기주의자 (스페셜 에디션) - 나의 가치는 내가 결정한다
웨인 W. 다이어 지음, 오현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테디셀러인 <행복한 이기주의자> 개정판이 나왔다. 꽤 오래전에 읽었던터라 대략적인 느낌만 남아서인지 다시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처음 읽는 기분이었다. 총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첫 번째 주제는 ‘먼저 나를 사랑한다’로 자신을 사랑 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회도 그리고 삶 자체를 사랑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 이 책은 프롤로그만 읽어도 진가를 알 수 있을정도로 맘에 들었다. 이전에는 그저 좋은 책이었는데 나이들어 그만큼 상처도 깨달음도 경험도 다양해져서 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동안 자기계발서를 최소 100여권은 넘게 읽었는데도 오래 전 출간한 이 책이 더 와닿는 건 왜일까.




나의 생각은 나 자신의 것으로, 오로지 나만이 유지하고 바꾸고 통제할 수 있다. 22쪽


지금까지 내 스스로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상대방이 내 말을 믿어주는 것 뿐 아니라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따라줄 때에 나를 사랑한다고 믿는 어리석음이다. 그런데 정작 내 자신은 어떤가. 오늘일은 미루지 말자 해놓고 스스로도 부끄러운 핑계를 대며 미루기도 하고 실수라도 하면 마치 모든 것을 망치기라도 한 듯 자학에 가까운 책망까지 하곤 했다. 결국 자신도 통제못하면서 타인에게 ‘사랑’이란 이유로 부당한 요구를 했던 것이다. 이 내용은 네 번째 챕터 ‘자책도 걱정도 하지 않는다’와 연결된다. 자책은 과거의 일에 발목을 붙잡힌 것으로 나와 상대 모두을 자책감에 빠지게 만들어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첫 번째 마음가짐과도 무관하지 않다. 거울앞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외모가 맘에 들수도 있지만 아마 그 반대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행동이나 태도등이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외적인 부분도 원망하거나 제대로 보길 주저 할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키가 좀 작든 크든 나를 사랑하는데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내 몸이 바로 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을 싫어한다는 것은 자신을 인간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55쪽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이부분은 두 번째 챕터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다’와 이어진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타인의 시선은 그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서두에 발췌문처럼 나를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하나 뿐인데 그 유일한 통제권을 타인이 가져가도록 둔다는 것은 한 번뿐이자 고유한 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과거와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섯 번 째 ‘새로운 경험을 즐긴다’편을 집중해서 읽고 실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할 수 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161쪽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과거 잘못에서 벗어나질 못하면 당연히 모든 일의 선택 기준이 현재의 내가 아니게 된다. 늘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메뉴만 먹고 같은 장소만 다닌다면 어떤 변화도 맞이할 수 없다. 변화는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과도 같은 데 성장을 거부하면서 행복해 질 순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10가지의 마음가짐 모두가 긴밀하게 이어져있다. 행복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을만큼 책의 어느 일부분이 마음에 와닿고 공감이 된다면 다소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더라도 끝까지 읽기를 바란다. 조금씩 쌓여가는 저자의 조언들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네, 일상을 기적으로 - 순간을 그린 화가, 모네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 이야기
라영환 지음 / 피톤치드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순간을 그린 화가, 모네의 치열했던 삶과 예술이야기



작년 11월, 졸업여행으로 나오시마 섬, 지중미술관을 방문했었다. 그때 만났던 모네의 수련 연작.

이전에도 오랑주리 미술관 등에서 모네의 작품을 마주했던 적은 있지만 당시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느껴져서 스스로 당혹스러웠다. 굳이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그림을 보기만 하다가 이제는 전공이 되어 그린다는 행위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어서있을 수도 있고, 미술관으로 가는 길목에 길게 이어져있던 수련연못을 들여다본 예행이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연작이 전시된 공간이 시간에 따라 빛이 변하는 자연조명으로 영향이었다.


모네는 책을 가까이 하며 살았다. 모네는 <바티뇰의 아틀리에>에서 보듯이 저널리스트, 소설가, 조각가 등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하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은 그에게 독서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책을 통해 변화되는 세상을 보았고 새로운 시대를 화폭에 담아낼 방법을 찾았다. 27쪽



<르누아르가 그린 책을 읽고 있는 모네>


모네에게 영향을 미친 화가는 우선 첫 번째 스승이자 메놑였던 외젠 부댕, 두 번째 스승이었던 용킨트 그리고 마지막 터너까지 이 세사람의 공통점은 그림이란 화실이 아닌 자연으로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고 특히 앞의 두 스승은 모네에게 자유로운 방식의 화법을 이어나가도록 지도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터너의 빛을 바라보는 화법은 모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터너는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직 바람과 물과 빛의 시각적 효과에 있었다."나는 이해할 수 잇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단지 한 풍경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74쪽




아버지의 반대로 모네는 미술공부를 어릴 적 부터 하지는 못했다. 그나마 고모의 영향으로 첫 번째 스승을 만나게 되면서 선생님들의 캐리커처 등으로 용돈을 벌던 수준에서 풍경화로 전환, 바다를 끊임없이 그리게 된다. 이후 르누와르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도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다. 특히 모네에게는 아내이자 뮤즈였던 카미유 역시 모네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가장 좋아했었기 때문에 아내를 잃었을 때 그의 상실감은 상당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또 아내가 낳아준 두 아들을 위해 다시금 붓을 들었고 혹평을 받긴 했지만 새로운 모험을 통해 자신의 화풍에 변화를 주었다. 동료 인상주의 화가들 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그의 그림은 수차례의 여행과 처음 그림을 배울 때 마주했던 바다, 그리고 연작시리즈를 통해 차후에는 인상주의 화가에서 인상주의 대표화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건초더미>나 <수련>연작에서 보는 것과 같이 동일한 풍경을 반복해서 그린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중략- ​같은 풍경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묘사하려던 시도는 모네를 단지 인상주의 화가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닌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만들었다. 142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모네의 작품이나 생애를 설명하기 보다는 모네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책의 전체적인 흐름은 그의 화풍의 변화와 생애를 놓치지 않고 조명하고 있었다. 앞서 그의 화풍이 아내의 죽음이후 달라졌다고 했는데 사실 인상주의 화가들이 화실이 아닌 자연에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이전의 고전주의 덧칠기법과 비교하면 다소 완성도가 떨어져보일 수도 있었다. 특히 터너에 의해 화풍이 변화되었을 때는 형태보다 빛이 주는 변화, 즉 현실성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더더욱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혹평을 받아야 했다. 모네의 그림이 후반부로 갈수록 추상화적인 분위기가 생겨난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평탄했던 화법에서 벗어나 자신이 그리고자 했던 것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같은 장소에서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갔다는 점이다. 심지어 수련 연작을 그릴 당시에는 맘에 드는 작품이 아니면 과감하게 불태우는 등 어찌보면 답답할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반복해서 그렸다. 뿐만아니라 어떤 특별한 대상을 찾기보다는 그가 자주 마주할 수 있는 성당, 포플러, 기차 역 등이 그러하다. '일상을 기적으로'만드는 그의 작품들은 결국 타고난 재능만이 아닌 끊임없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모네의 포플러 연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 오해를 만들지 않고 내편으로 만드는 대화법
추스잉 지음, 허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이들을 펭귄보다 못하다고 비난하는 것 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혹은 내용이 지나치게 가벼운 것은 아닌가 싶을 수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우선 제목이 탄생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펭귄이 말해도 당신보다 낫겠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추스잉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가 영국 BBC 방송국에서 일할 때 함께 일하던 애튼버러 경이 펭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펭귄들은 자기 개성이 뚜렷해서 똑똑한 펭귄, 아둔한 펭귄, 약삭빠른 펭귄, 너그러운 펭귄, 이기적인 펭귄 등 아주 다양한 성격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추스잉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자기 개성이 무엇인지 몰라 자기소개 하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18쪽


제목과 이 책의 집필이유가 위의 발췌문에 다 드러나있다. 결국 이 책은 말을 잘하기 위해서는 화자 스스로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말하고자 하는 목적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뿐만아니라 말이란 것은 소리로 전달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소리를 제대로 알고 부정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책의 구성은 저자가 직접 경험에 의해 터득한 방법이기 때문에 라디오 DJ, Tv 방송진행자, 모의토론 장, 강연 및 다양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익힌 내용을 바탕으로 현실감있게 전달해준다. 특히 철학적으로 말하는 방법 및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말하기 방법은 누구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만큼 강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강연자라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은 청중에게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심야 라디오 진행자라면 깊은 밤 잠못이루는 청취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말투나 억양이 중요할 것이다. 흔히 진행자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 혹은 화법은 억양이 강하지 않고 발음이 정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임기응변에 능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는 사람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 추스잉이 조사하고 체험한 바에 의하면 연단(혹은 진행자의 위치)에 있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의 모습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마치 화장을 두껍게 하듯 그럴듯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톤까지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상대방에게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강연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PPT를 열심히 준비하는 경향이 많은데 저자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 방법이다. 전문용어나 이미지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PPT없이 강연하라고 조언한다.


PPT를 사용하면 강연자는 게을러지고 청중들은 강연자가 준비한 자료를 그대로 읽기만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PPT가 유용한 것 같지만 점점 PPT에 의지하게 돼요. 강연자와 청중 둘 다. 그러면 결국 PPT가 주인공이 되어버리죠. 128쪽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강사들은 PPT없이 강연을 진행했다. 보조적인 역할을 위해 PPT가 등장하긴 하지만 TED의 대부분의 강연자들도 PPT없이도 막힘없이 청중들에게 전달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강연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저자는 추가적인 TIP으로 가급적이면 강연장에 모인 청중의 눈을 적어도 한 번씩은 마주보라고 이야기한다. 오래전 강연을 할 때의 나를 떠올리며 반성하게 되었다. 또한 지나치게 겸손한 태도도 오히려 청중에게 해당 강의를 굳이 들을필요가 없었다는 후회를 남길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법도 상당히 와닿았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상대방이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이미 다 알았다는 듯이 무시하거나 짐작으로 결론을 내는 것은 가까운 사람이지만 대화는 할 수 없는 상대로 만들게 된다. 심지어 저자의 사례를 언급하자면 망고를 좋아한다고 했으나 말린 망고는 예외라는 말을 하지 못해 친인척들이 여행 때마다 말린 망고를 보내주어 곤란했던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마 이런 경험은 부모자식 사이에 흔한 일일 것이다. 비단 우리 부모님의 경우만 보더라도 어릴 적 한 때 좋아했던 음식을 여전히 좋아한다고 믿으며 이제 부모가 된 자녀에게 어린 시절 먹었던 음식을 사다주시곤 한다. 고마운 마음에, 귀찮아서 등의 이유로 묵인하게 되면 나중에는 서로 불편해지고 고마웠던 마음마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가하면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요구할 때 마치 상대방의 의사를 물어보는 듯한 질문형식의 조언도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녀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이부분은 연인사이에서 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맘대로 하려는 이기심이 상대를 위한 것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가끔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고 자기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이 자기 생각이라는 걸 밝히지 않으려고 제삼자를 끌어들여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남의 얘기를 대신 전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이용하는 것이다. 270쪽


PPT사용에 있어서의 주의점,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법에 이어 크게 반성하게 한 부분이 바로 위의 발췌문에 쓰인 제삼자의 의견을 끌어와 내 의사를 대신했던 부분이었다. 단순히 유명인사의 명언이나 책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차후에 혹시라도 발생 할 문제를 대비해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특히 직장 내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한다. 수 많은 사람들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다양한 상황속에서도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도 요령있게 대화하는 방법까지 이 책에는 그야말로 말을 '제대로'하는 방법이 잘 나와있다. 저자가 서 너개가 아닌 8개 외국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태도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금 저자의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69쪽



배우 박정민. 혹은 작가 박정민. 양쪽 모두 잘 어울리는구나를 책<쓸 만한 인간>의 개정증보판을 읽고서야 느꼈다. 몇 해전 처음 읽었을 때는 뭐랄까, 부러움과 질투에 눈이 멀었었나보다. 그 사이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다시 읽으니 이번에는 자꾸 자꾸 '행복해질거다, 잘 될 거다'란 식의 저자의 작은 응원들이 기분좋게 들렸다. 최근에 화제가 된 영화<엑시트>를 보면 만년백수 주인공에게 주변사람들이 앞으로 ' 될 거다'라며 위로하지만 결국 재난현장 한 가운데에 남겨지게 되자 잘되긴 뭐가 잘되냐며 분노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예전에 내가 딱 그랬다. 그랬던 내가 그 사이 나이먹고 겸손해진건지 아니면 정말 잘된일들이 많았음을 이제사 깨달았는지 박정민 배우의 저 위로들이 맘에 와닿을 뿐 아니라, 맞아요! 하며 맞장구치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참 따뜻한, 좋은 기운이 많은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되었는데 동물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진실로 따뜻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필터링 되지 않은 이야기가 오히려 엄마에 대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래도 역시나 마음을 오래 끄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


저자의 말처럼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있다는 말, 그것을 느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참 부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타인을 느끼게 된다면 그에대한 배려와 이해도 함께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 저래', '왜 사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대방을 무시하게 되고 쉽게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그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생명경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것은 '나만 살아있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찌질하게 살았더라도 지금 그렇지 않으면 된다. 지금처럼 알려진 배우가 되기 전까지, 그래서 누구누구의 친구라며 자신을 소개해야하고, 연애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당시의 박정민의 이야기 속에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지나친 긍정과 연쇄적인 오해속에 살았던 것 같아 보여도 상대방을 완벽한 악인이라고 단정하지 않았기에 스스로 상처도 덜 받았던게 아닌가 싶다.



누군가의 삶을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보고 희극이냐 비극이냐 하기 전에 일단 '영화 같은 인생'이라고 결론내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독자 모두가 제 각각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괜스레 설레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사는 동안 단 한 권일지라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출간하고 싶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내 마음이 달라진 까닭도 있겠지만 배우로서의 박정민을 보는 시각자체가 달라져서 책이 더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읽을 당시에는 영화<변산>,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기 전이었다. 특히 피아노에 천재적 재능을 지닌 서버트증후군 진태역의 박정민을 보면서는 정말 감정이입이 잘 되어서 그랬는지, 함께 본 사람이 엄마여서 그랬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동이 꽤 오래갔다. 역시 배우는 글도 좋지만 연기로 말해야 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설사 그것이 개정증보판일지리도) 읽는 내내 킥킥 거리기도 하고 별도의 표기도 하며 이전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다. 개정판 출간에 엄청나게 적극적이진 않았던 것 같지만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내기로 한 건 잘한 것 같다. 덕분에

'글도 쓰는 배우'에서 '연기만큼 글도 맛깔나는 배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상식에서 박수만 치던 배우에서 이제 당당하게 수상하러 가는 작가가 된 배우여! 그게 언제일지라도 산문이든 아니든 작가로 또 찾아와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