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과학 - 세상을 움직이는 인간 행동의 법칙
피터 H. 킴 지음, 강유리 옮김 / 심심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을 움직이는 인간 행동의 법칙, 신뢰의 과학은 마셜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조직행동학자인 저자의 20여년간의 연구를 담은 책으로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혹은 신뢰가 무너졌을 때 회복하는 방법은 물론 기존에 통용되던 방법들의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해나갈 수 있다. 그로인해 독자인 우리는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신뢰 위반을 직면했을 때 관계회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고(13쪽) 동시에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다. (14쪽)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신뢰와 관련하여 편향된 부분이 있음을 먼저 알아야한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떻게 훼손되는지,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각자의 사회적 연결고리를 재구축하는 방법에 대해 유용한 통찰을 제시하는 것이다. 25쪽

우리는 초반의 신뢰를 쌓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가하면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기 보다는 사회적 제재 혹은 처벌로 인해 위험을 덜 느끼는 것 또한 '신뢰'의 개념으로 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누군가 물건을 비우고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물건이 도난당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때 무언의 약속은 신뢰라기 보다는 좀전에 이야기한 것처럼 위험요소를 낮춘 것에 가깝다. 그런가하면 성적이 좋지 못한 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응원을 하기 보다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의심한다. 반면 긴 시간 신뢰를 쌓아온 사람이 범법 행위를 했을 경우에는 '실수'라고 치부하거나 우리가 알지못하는 상황이 있었을거라 쉽게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쌓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배경, 학벌, 거주지 등 우리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런것을 두고 사람을 평가할 때 큰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가령 학벌이 좋은 누군가의 잘못은 마치 이미 신뢰가 쌓인 사람을 대하듯 쉽사리 신뢰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만약 신뢰가 무너졌을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 잘못된 행동이 발각되거나 그동안의 행동이 거짓이었음이 밝혀진다면 '빠른 사과'가 도움이 될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사과를 해서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사과를 할 땐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 말로만 하는 사과가 아니라 피해자가 있을 경우 가해자의 처벌 뿐 아니라 피해자를 위한 구체적인 보상이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통해 사과를 했을 때 회복이 된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결과를 위의 내용에 맞게 인용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신뢰가 깨지거나 회복되는 상황과 방법보다 더 중요하게 느꼈던 부분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바라볼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결과 였다. 이는 특정 인종이나 성별 혹은 집단을 바라볼 때 우리가 편견을 가지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신뢰를 가지고 긍정적인 상황을 일으킬거라고 기대하며 기다릴 경우 실제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 상대가 원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하게 되면 이를 극복하기보다는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저자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며 그런 노력들을 실제 하고 있다라는 사실이었다. 다만 저자의 다음의 말을 고려하여 진정한 의미의 '괜찮은 사람', '신뢰가 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대부분이 성자가 되려고 애쓰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거울 속 자기 모습을 당당하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궁극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렇란 자기 인식이 어떻게 다양한 잘못의 빌미가 되는지 짚어볼 필요도 있다. 38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이름 없는 순례자 - 영적 깨달음을 구하는 순례자의 이야기 가톨릭 클래식
최익철 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6월 29일은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었다. 그 중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의 내용 중 '끊임없이 기도하라'라는 말씀을 그저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끊임없이'기도한다는 것을 참으로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 <이름 없는 순례자>의 순례자는 어떻게 '끊임없이'기도할 수 있는지, 기도가 아닌 그 무엇도 끊임없이 쉬지 않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 방법을 찾아 순례여정에 오른다. 이 책을 읽을무렵 한 신부의 '거룩함'과 관련된 강론에서 '기도'만이 한 인간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내용을 들었다. 결국 '끊임없이 기도한다는 건'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정작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만약 책만 읽을 상태로 서평을 적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내용으로 썼을 것 만같다. 그렇게 가벼이 넘기지 말라고 주님께서 그 신부의 강론을 마치 순례자가 찾아나선 순례여정처럼 마주하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참 잘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순례자님을 저희 집으로 인도해 주셨네요. 어서 이리로 올라오세요." 145쪽

우리는 왜 끊임없이 기도하여 거룩해져만 하는가. 그것은 거룩함만이 우리를 온갖 유혹와 위험, 이 책에서는 '암흑 세계(마귀)'라고 표현하였다. 그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는 기도하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하는 마음, 기계처럼 자기 욕심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하는 선행을 쌓아야하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감사하는 마음, 그 무엇보다 '자비를 청하는 기도'를 바쳐야한다고 말한다. 예수 기도, 내심의 기도, 주님의 기도 등이 그러하다. 거룩함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을 흔들었던 부분은 사실 '기도하는 법'을 다룬 초반이 아니라 '고해성사'와 관련된 부분이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분을 끊임없이 생각할 것이다. 250쪽

아이와 함께 있지 않는 순간에도 아이의 옷을 고르고,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나 장난감을 보면 웃음이 난다. 또 앞으로 아이와 함께 가보고 싶은 곳,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등 거의 매순간 아이를 생각하고 있다. 이건 내가 유별난 엄마라서가 아니라 보통의 엄마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반면 하느님을 나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사는가. 이웃의 사소한 실수에도, 어쩌다 겪는 고난에도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며 주님을 잊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 주님을 찾는 나를 하느님께서 항상 지켜주신다. 왜냐면 그분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시기에 한시도 놓침없이 생각해주시기 때문이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십시오. 시나이의 그레고리오 성인은 "당신의 생각은 기도로 정화될 것이고, 기도는 당신에게 깨달음을 가져다줄 것이며, 모든 잘못된 생각들을 없애 버릴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33쪽

기도는 나를 거룩하게 만들고, 기도는 내게 남아있는 나쁜 것으로부터 나를 구하며 무엇보다, 진심으로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또 어느 순간 이 책을 다시 읽게되면 그때는 또 어느 부분에서 오래 머물게 될까. 이 마음을 함께 나누어가는 것 역시 아주 작은 선행의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시편과 아가 - 주님을 향한 아름다운 노래
최민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일미사 화답송은 시편의 내용이 대부분인데 평소에 미사에 참례하지 않고 펼쳐서 읽다가 원문을 찾아볼 때가 간혹 생긴다. 다윗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시편은 '하느님께 드리는 이스라엘의 응답'(6쪽)이라고도 한다. 즉,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닌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니 이따금 화답송에 마음이 오래도록 남았던 까닭이다. 읽다보면 성경에 쓰인 표현과 조금 다른데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성경)시편119장

1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이들!

2행복하여라, 그 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3. 불의를 저지르지 아니하고 그 분의 길을 걷는 이들!

(이 책, 496쪽)

1 야훼의 법을 따라가는 사람들,

그 생활 깨끗한 이 행복하도다!

2 당신의 계명을 지키며,

마음을 다하여 주를 찾는 사람들,

3 부정을 아니하고,

당신의 도를 행하는 이들은 복되도다

위의 내용처럼 의미는 유사하지만 그 표현이 조금 달라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3절 처럼 '복되도다'라는 표현으로 끝을 맺으면 희망적인 느낌이 더해져 앞의 내용보다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같은 장의 5절의 내용을 보면,

(성경)

아, 당신 법령을 지킬 수 있도록 저의 길이 굳건하였으면!

(이 책, 496쪽)

당신의 규정을 지키기 위하여,

내 걸음이 꿋꿋하게 하여 주소서

서두에 밝힌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께 바친다는 뉘앙스로 보자면 훨씬 더 간곡하게 전달되는 기분이 든다. 반면 성경의 풀이가 훨씬 더 간결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는데 그 부분음 다음과 같다.

(성경) 82장

1 하느님께서 신들의 모임에서 일어서시어 그 신들 가운데에서 심판하신다.

(...)

4 약한 이와 불쌍한 이를 도와주고 악인들의 손에서 구해 내어라.

(이 책 350쪽)

1 신들의 모임에 하느님이 일어나사,

그 신들의 가운데서 심판하시다

(...)

4 아쉽고, 억눈린 자를 구하여 주고,

악인들의 손아귀에서 그를 빼내어 주라

위의 내용을 보면 좀 더 분명하고 현대어투로 적힌 부분이 가독성을 가진다. 마치 같은 말씀을 두고서도 다른 시선으로 주님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와 가장 낮은 자세로 한없는 주님의 사랑을 구할 때의 말투가 달라지는 기분이랄까. 성경과 이 책, 그리고 환호송에서 다뤄진 내용의 차이를 비교하고 나눔을 이어가다보면 결국 '귀 있는 자'인 우리들 한 명 한 명을 만나러 와주시는 주님의 크신 자비와 사랑을 느끼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인간이 되다 - 인간의 코딩 오류, 경이로운 문명을 만들다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 #추천 #도서 #인간이되다 #루이스다트넬 #흐름출판 #오리진

인간이 가지는 고유성과 취약점에 대해 가볍게 한 두가지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과 손의 도구화를 넘어 고차원적인 수의 활용과 기술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반면 취약점을 놓고 보자면 인간은 도구 없이 맹수 혹은 작은 벌레나 균에 의해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 책은 본래 전공이 생물학자였던 저자 스스로, ’홈그라운드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20쪽)‘고 했을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출발한다.

진화는 완벽을 추구하는 대신에 충분히 괜찮은 차선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진화는 새로운 조건과 생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이미 갖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든 해나가야 하는 제약이 있다. 제도판으로 되돌아가 처음부터 재설계할 기회가 없다. 13-14 쪽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즉, 우리의 결함과 능력은 모두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진행되었다. 14쪽

그리고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성장과 정체, 발전과 퇴보, 협력과 갈등, 노예 제도와 해방, 교역과 약탈, 침략과 혁명, 역병과 전쟁을 거치면서도, 이 모든 소란과 열정 속에서 변함없이 유지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14쪽

이 책에서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면서 문화와 사회와 문명에서 기본적인 인간성이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인류의 독특한 특성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공유한 우리 몸과 행동의 특징도 살펴볼 것이며, 인류학과 사회학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측면이 우리의 생물학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그런가하면 인간의 주요 성향인 무리 행동 편향은 빠른 판단 도구기능을 하므로 시간과 인지 노력을 절약해주는 반면 경제적인 부분이 있어서는 버블 위기를 낳기도 한다. 또, 저자가 이전에 출판했던 책과 이어져 있음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웅장한 규모의 역사와 현대 세계가 만들어진 과정을 다른 각도에서 탐구하기 위해 쓴 삼부작 중 마지막 책이다. 첫 번째 책은 <사피엔스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과학 지식 - 지식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두 번째 책 <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마지막 이 책이다. 오리진은 워낙 스테디셀러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첫 번째 책은 이 책을 읽기 전 먼저 읽어봐야할 것 같다. 이렇게 적으면 마치 강의 전공서처럼 느껴질테지만 단순히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밀접한 부분도 다루고 있는데, 정신작용물질(마약과 같은)에 대해서도, 낭만적 사랑과 인간 가족에 대해서도 그리고 감염병에 관해서도 다룬다. 무엇보다 개인을 넘어 집단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위험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는 정신적 결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초반에 명사들의 추천글에 등장하는 책들과, 저자의 이전 책들까지 포함하면 아마 이 책 한권으로 시작해도 꽤 주요한 책들을 함께 읽는 흥미로운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독서여정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케네스 클라크 지음, 이연식 옮김 / 소요서가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명 #소요서가 #예술 #과학 #철학 #인간

문명의 적은 무엇일까요? 그건 무엇보다 공포입니다. 25쪽

1969년 영국 BBC에서 방영되었던 내용을 2017년 단행본으로 엮은 뒤 2017 다시 개정된 판본을 번역한 이 책은 서문만 읽어봐도 저자 케네스 클라크가 여러가지 염려되는 부분을 안고서 집필 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저자소개를 잠시 하자면 마치 히어로물이나 스릴러물에 등장할 법한 이력, ‘역대 최연소인 30세의 나이에 내셔널갤러리 관장으로 발탁‘(얼마나 소설같은 일인지 전공자들은 공감할 만한)되었으며, 옥스퍼드 교수로 있었고, 이 책의 기반이 된 다큐멘터리 <문명>을 제작한 이후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저자소개만 읽고서도 이 책은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문명의 적에 대해 묻고는 그 답이 다름아닌 공포라고 대꾸한다. <멋진 신세계>의 문명인들은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에 노출될 일이 거의 없다. 그런 맥락에서보자면 그들은 분명 완벽한 문명사회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원하는 문명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적의 존재가 없는 것이 아닌 적을 인지하고 고통을 느끼며 예술(혹은 문학)의 힘을 아는 상태여야한다.

문명인이라면 적어도 공간과 시간의 양면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알고, 자신이 지나온 곳과 나아갈 길을 의식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쓰는 능력은 이를 위한 아주 편리한 도구이지요. 40쪽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지고 단순히 매뉴얼만 읽고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삶이 과연 문명인의 삶일까하는 것에 대답은 굳이 적지 않겠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명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제 본격적인 문명, 즉 예술적 맥락안에서 들여다보면 서구사회에서는 기독교를 제외시키고는 설명되지 못한다. (동양에 대한 부분이 빠진 것은 저자 서문에 밝힌 것처럼 언어를 알지 못하면서 문화를 안다고 할 수 없기 대문이다). 기독교 미술을 수강하면서 스테인드글라스, 즉 빛으로 표명도는 절대자의 전능의 시작을 이 책에서도 잘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쉬제르가 교회 건축에서 첨두아치만이 아니라 채광창과 트리포리움 같은 여러 높은 창의 채광까지 포함해서 고딕 양식을 도입했다고, 아니 사실상 발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빛이 충만한 거룩한 건물은 찬란하다˝라고 기록했는데, 이로써 이후 2백 년 동안 행해진 온갖 건축의 대계획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79쪽

쉬제르가 창안한 장미창은 명동성당에만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장미는 성모마리아를 상징하고, 명동성당의 주보성인이 바로 ‘무염시태마리아‘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을 알고 다시 미사를 마치고 장미창을 바라보면 이전에 수업에서 의미를 알았을 때보다 더 큰 감명으로 바라보게 된다. 책에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책을 읽으면서 여러차례 다시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초기 기독교사회에서 그다지 관심받지 않았던 성모마리아가 어떻게 주요 인물과 순명의 상징으로 성당 곳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포괄적인 세계의 여러 종교, 인간 존재의 모든 부분에 파고드는 이집트, 인도, 중국 등의 여러 종교는 여성 중심의 창조원리를 적어도 남성 중심의 그것과 동등하게 중시했습니다. 244쪽

이후 등장하는 네덜란드 사회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재능‘과 관련지어 램브란트의 예술관을 만나게 된다. 종교적 신념을 가졌던 그였지만 오래전 아벨라르와 마찬가지로 보다 과학적인 증명을 원했고, 17세기 사람들에게 있어 수학은 사람들에게 칭송은 물론 ‘당시 가장 뛰어난 지식인들의 종교‘(276쪽) 이기도 했다. 사담이지만 데카르트의 경우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까닭에 친구들의 방문에도 누워서 ˝생각하고 있네˝(278쪽)라고 답했다는 부분은 누구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 얘기라고 놀리지 않았을까 싶다. 이처럼 이성과 경험이 예술사에 미친 내용을 읽다보면 당연하게도 인간에 의해 꽃피워진 문명이 탐욕으로 인해 어떻게 퇴색될 수 있는지도 볼 수 있다. 종교에서 멀어진 인간이 다음 경의의 대상으로 자연을 택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자연을 경외하는 이들의 시구절을 볼 때면 그 자리에 신 혹은 연인을 대입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과 클라크가 언급한 것처럼 후대역시 낭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낭만주의 역시 성공적으로 부흥할 줄 알았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1810년 무렵에는 앞서 18세기에 사람들이 품었던 온갖 낙천적인 희망이 결국 거짓이었다는 게 분명해졌습니다. 인권, 과학의 발전, 산업의 혜택 등 모든 것이 망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혁명으로 얻은 갖가지 자유는 곧 반혁명, 혹은 혁명정부를 장악한 군인 독재자가 박탈했습니다. 412쪽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고야의 <5월 3일>을 오래 전 고야전에서 본 기억이 났다. 또 책을 읽는동안 관람했던 <빅브라더 블록체인> 전시작품 중 조승호 작가의 <은신처>와 김혜미 판화가의 <피난처>를 연결지어 보게 되었다. 전시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작품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내용도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 두 작품의 사전적 의미를 잠시 언급하자면, 전자는 몸을 숨기는 곳이고 후자 역시 고통이나 전쟁등으로 인한 외적인 것으로부터 피해 숨는 곳이다. 은신처는 망루와 같은 높은 곳에 설치하고 감시당하거나 감시를 하는 양쪽 모두를 아우르고 있고, 피난처는 ‘내면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이자 처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작가 인터뷰에서 발췌)으로 책에서 말하는 인간이 만들어놓은 작품 자체가 예술가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난처로 가변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자연숭배에 이어 빛, 인상주의로 이어져오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비슷한 시기에 존 버거는 클라크와 마찬가지로 TV를 통해 이야기를 펼쳤는데 훨씬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고, 문화와 예술을 둘러싼 담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실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였다. (역자 후기 중)

비슷한 시기에 아는 분도 존 버거의 책을 추천했던터라 의도치 않게 이 두 책을 다 읽는데다 앞서 나열한 전시 중 어느 한 편도 제대로 감상을 적지 못했다. 그러니 서평을 적으면서도 이렇게 정제되지 않은 글을 남겨도 되는 것인지 자문도 해봤다. 하지만 역자의 말처럼 클라크가 문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는 대신 ‘문명이 아닌 것‘에 이야기하면서도 구체적인 인물과 건축, 그리고 작품등을 통해 보여준것처럼 나또한 어설프게나마 내가 이해한 바를, 내가 보았던 것들에 기대어 적었다고 믿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