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김지현 / 레드스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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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 / 캐서린 라이언 하이드 지음



 

 

표지에 성별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파란색 스웨터를 입은 아이가 등을 보이고 앉아있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그레이스'다. 바람에 나부끼는 듯 보이지만 표지만 자세히 보아도 아이의 머릿결이 헝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람 때문이 아니라 약물에 취해 아이를 방치하는 엄마 때문이라는 것을 몇 페이지만 넘겨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아이가 밖에 나와있는 이유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지만 엄마와 떨어지는 것은 그레이스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에 빌라 현관에서 저렇게 매일 가로등 불이 켜지기 전 까지 앉아있다. 빌라에 사는 사람들은 커튼뒤에 숨어 몰래 그레이스를 쳐다보기도 하고 현관을 오가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학교에 정상적으로 다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이 아이가 원하는 도움을 물어보진 않는다.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가졌을거라 예측되는 사람을 만났을 경우 어느정도 자립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면 먼저 손내밀기 쉽다. 그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일이라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시간이나 비용적 측면을 떠나 가슴이 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약물로 방치하긴 했어도 그레이스가 엄마곁에 있길 원하고, 무엇보다 위탁기관이라는 곳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훈훈'하기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던 레일린은 무턱대고 그레이스의 보모역할을 떠안는다. 레일린이 용기를 내긴 했지만 빌라에 사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덩치만 어른이 되었을 뿐 마음속에는 그레이스처럼 보호받거나 치유되어야 할 부분들을 가지고 있다. 어린 그레이스를 통해 '키카 큰'사람들도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보이는 과정이 과장되지 않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조금씩 열린다. 초반에 입주자 한명이 갑자기 죽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는데 그의 이름은 후반부에도 다양한 이유로 계속 언급된다. 마치 그가 그레이스에게 베풀었던 온정이 그만큼 크고 값진 일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이.


[흔들리고 있는 소녀를 보거든]의 이야기는 최근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학교에서 사라져버린 아이들 중 유사한 상황이 분명 있으리라 짐작될 만큼 현실적이다. 아이가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처럼 아이의 분명하고 큰 목소리를 귀찮아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스의 말처럼 어른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몇 마디 말로 시간을 끌더라도 결국 되돌려 보낼 '엄마'의 부재가 성가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가 없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아이를 어디까지 돌봐야 할지도 고민인데다 그레이스의 엄마가 마치 자신의 아이를 빼앗겼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화를 감당할 여력이 없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이 돌봐야 할 때를 말한다. 빌라 전체가 그레이스를 위해 서로의 손을 마주 잡기로 했을 때 무모하고 허술한 계획이었지만 가능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계산없이 본능적으로 먼저 나섰던 레일린 덕분이기도 하다. 누가먼저인지도 중요하고 누군가 시작했을 때 동참할 수 있는 '키만 큰 어른'이 아니라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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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 - 1858년 하느님의 성전에서 벌어진 최초의 종교 스캔들
후베르트 볼프 지음, 김신종 옮김 / 시그마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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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개봉한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묻혀져있던 가톨릭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보스턴 글로브지 특종팀 기자들에 의해 세상밖으로 나오게되는 과정을 그린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성 암브로시오 성당의 수녀들]이란 책을 본 순간 이 영화를 떠올린 사람들이 나 뿐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책의 내용은 100년도 더 지난 1850년대 성 암브로시오 성당 수도원을 배경으로 있었던 일로 그 이후에도 종교단체가 가지는 보수성과 폐쇄성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그저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 인 것 처럼 보인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감추려고 하는 이들을 묵인해주는 사람과 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타리나를 다루는 역사 서술 또한 그녀의 인생과 그 후에 있었던 재판 과정을 비밀로 하는 경향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공식 전기 작가인 카를 테오도어 친겔러의 텍스트도 이 추세를 따랐다. 564쪽


카타리나 폰 호엔촐레른은 성 암브로시오 성당에서 루이사 마리아란 이름으로 15개월 동안 예비수녀로 지낸다. 그녀는 수도원의 다른 수녀들과는 달리 귀족이며 로마 출신도 아니었다. 그 때문에 처음부터 그녀가 수도원에서 호의적인 대접을 받지 못했을거라 짐작할 수 있고, 그녀의 고발로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 마치 그녀가 젊고 아름다운 수녀원장 대리를 질투해서 거짓된 증언을 한다고 오해받았을 가능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초반에 그녀가 예비수녀로 정착하기 전 무려 6개월간 수도원에서 사건의 중심인 마리아 루이사를 아주 호의적인 인물로 보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카타리나가 보았을 때도 마리아 루이사는 '성녀'로 보여졌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예비수녀로서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심지어 그녀가 알고있는 진실을 외부에 알리고자 했을 때 수도원의 수녀들은 그녀를 독살하려는 시도까지 감행한다. 그녀가 독살 등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할 때 조차 그녀의 가족력과 병력 등을 앞세워 사건은 물론 그녀에게 가해진 위협조차 그녀의 착각인 것 처럼 몰고 갔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그 이후 사촌의 도움으로 카타리나가 수도원에서 탈출, 재판에 서기까지의 내용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이 사건은 무려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이야기다. 해당 사건과 관련된 문서가 1998년이 되서야 비로소 공개되었다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영화속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다름아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기록한 문서들이 법에 의해, 혹은 가톨릭 교구의 요청에 의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묻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부패하고 타락한 단체, 그것도 종교단체에서 이런 일들이 예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도 어째서 교회를 다닐 수 있느냐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며,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곳은 어쨌든 사람이 주관하는 단체에서 발생하고 있다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비단 종교단체 뿐 아니라 학교, 문화기관, 공기관 등에서도 사건은 일어난다. 다만 일어난 사건을 확실하게 책임지고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실수를 한 사람만큼 모른 척 하거나 아예 눈감아주는 사람 역시 잘못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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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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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그녀의 전작을 떠올린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만약 오프라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만났다면 뒷표지에 추천사라도 한 번 보았을텐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혹은 누군가에게 우연찮게 리베카 솔닛의 신간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대부분 '페미니즘' 혹은 '맨스플레인'을 떠올리며 머뭇거렸을 것 같다. 그랬을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의 리뷰는 한 편 한 편 모두 소중할 것 같다. 이 책은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와의 추억을 들려줄 뿐이다. 그러므로 미리 밝혀두자면 이 리뷰는 이 책은 어떤 이야기가 닮겨있고, 어떤 부분이 감동이었어! 등의 소개보다는 이 책을 읽고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는 기억을 떠올리고 기술한 내용에 가깝다.

 

어머니게에 당신의 동화를 골라 보게 했다면, 아마도 [신데렐라]를 골랐을 것이다. 관심받지 못하고, 과소평가되었던 여자아이, 섬세했지만 집에 틀어박혀 일만 해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 45쪽

 

쌍둥이 여동생이 있지만 동생에 비해 자신이 덜 예쁘다고 생각한 저자의 엄마는 외할머니가 많이 의존했던 큰 딸이었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가 몸이 아프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 살림을 돕게 하려고 학교에도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지는 바람에 외할머니도 일을 시작하면서 엄마는 두 번 버려지게 되었다고까지 표현한다. 누군가에게 예쁨받고 보호받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거라고 까지 말하며 과연 엄마의 삶이 행복과 불행중 어디에 가깝냐고 한다면 불행이었을거라고 말한다. 이후로 엄마의 외형적인 묘사부터 자신을 키울 때 드러나는 성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엄마도 큰 딸이었다. 위로 큰 언니와 오빠가 있었지만 병으로 엄마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실질적으로 외할머니가 의지를 많이 하시긴 했다. 작가의 엄마가 보호받지 못하고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것과는 달리 다행이라는 표현이 적확할지는 모르지만 친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가부장적인 할머니였지만 '큰 딸'이었기에 외삼촌들과 함께 유일하게 할머니 사랑방에서 맛있고 좋은 것들을 다른 이모들과는 달리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엄마는 우리 자매를 키울 때에도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의 친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옛날이야기 등을 자주 들려주시곤 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히려 엄마의 엄마, 나의 외할머니가 저자의 엄마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엄마의 기억속에 외할머니가 늘 차갑고 무뚝뚝했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후에 '체'는 헝클어진 머리에 사령관을 상징하는 별이 하나 박힌 베레모를 쓴 채, 열정에 불타는 얼굴을 상징하는 불멸의 이미지로 기억된다.(중략) 1960년 3월 5일 사진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그 사진이 이제 체 게바라의 삶보다 훨씬 많이 알려졌다. 그건 모든 것을 의미하며,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다. 168쪽

 

책을 읽다보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 아이슬란드 울피르 이야기, 체 게바라가 쓴 동명의 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등 다양한 작품들을 불러들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미 읽거나 본 작품들도 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어 연쇄독서를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프랑스어나, 영어 단어 중 그 의미가 변화거나 확장된 이야기까지 흘러나온다. 노처녀에 해당하는 단어가 왜 비하적인 표현까지 이르렀는지, 북극제비갈매기가 왜 제비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는가 등 이 책의 부제인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란 표현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었다. 분명 첫 챕터인 [살구]편을 읽을 때만해도 '엄마' 와 유년시절 기억을 쫓는가 싶었는데 그녀의 아이슬란드 여행기와 불교에 빠져든 이야기까지 듣다보면 서문에 밝힌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와 더불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겪어왔던 이야기로 덮어졌다. 그렇기에 만약 길고 긴 여행길을 떠나야하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 단 한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할 것 같다.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유익한지보다 결국 얼마나 나를 즐겁게 시간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 줄 책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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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노릇 아이 노릇 - 세계적 그림책 작가 고미 타로의 교육 이야기
고미 타로 글.그림, 김혜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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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적 그림책 작가라고는 해도 고미 타로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낯익은 이름이라 읽고서 기억을 못하나 했는데 책의 뒷표지에 실린 소설가 김중혁의 산문집 [뭐라도 되겠지]에서 고미타로의 글을 언급했음을 알고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책을 읽을 당시에도 메모해두고선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덕분에 편견도 없고 그저 새롭게 다가올 것이 오히려 다행이기도 하다. [어른노릇 아이노릇]에서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중에서는 어른들은 너무 오래 살아서 '편견'에 갇혀있어 모든것이 새로운 아이들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메모까지 해두고 잊은 내 처지가 얼마나 다행인가.



책 제목은 어른노릇, 아이노릇이라고 마치 각자의 '노릇'이 나뉜것처럼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상식'과 허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처럼 들렸다. 세계 어디를 가도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게임시간을 줄이거나 아예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예체능계에 속한 아이들은 운동, 악기연주, 회화 등으로 시간을 보내도록 강요하는 데 작가의 말처럼 아이들이 집중하고 싶은 대상이 없어서 게임에 몰입하고 있을 수도 있고 '몰입'자체가 정말 중요한 태도 중 하나라면 그것이 설사 게임이라도 굳이 막아야 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열심히'하라고 할 때에 '무조건'은 '부모가 원하는 것'에 다른 말처럼 들린다. 그런가하면 작가가 나고 자란 일본의 분위기도 내가 살고있는 한국사람들이 미술관에서 보이는 태도와 거의 흡사하다. 작가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거나 화풍이나 미술사를 알지 못하면 선뜻 미술관에 다니는 것을 꺼릴 뿐 아니라 클래식 연주회장을 가도 제 때에 박수를 치지 못할 것이 염려되어 아예 발길을 끊는 경우도 많다.




모두 '예술을 느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면서 소나 양처럼 조용히 앉아 보고 들을 뿐입니다. 그림이나 음악을 접하면 예술 바이러스 같은 게 몸에 들어오는 데 그 바이러스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잘 키우려면 되도록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뭐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94-5쪽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사고방식이 어떤 사람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특히 아이가 있는 학부모들은 그렇게 자유방임적으로 키우는 것은 당신만의 방식일 뿐, 우리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 않겠느냐 반문할 것만 같다. 가령 어릴 때 태교에 좋다고 태어나기도 전에 태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아이가 어느정도 성장해서 수험생이 되기 전까지는 그림책을 읽어주던 부모라면 '그림책 읽어주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하기 어렵다. 저마다 자기만의 즐기는 방식이 있어서라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유년시절 엄마가 직접 들려주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아서 혼자서도 책을 읽고 엄마에게 다시 부탁해 듣기도 했었던 기억때문인 것 같다.



학교를 부정하는 젊은이들 중에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자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은 학교에 가서는 안 됩니다. 학교에 있으면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정하고 떠나는 겁니다. 학교를 떠난다, 그만둔다는 행위에서 그런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186쪽




언젠가 유명 사립대 학생이 공교육 시스템을 부정하며 자퇴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의 취지는 이해가 가고, 열심히 공부했던 만큼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 당당하게 버릴 수 있는 패기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마치 학교에 계속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현 교육시스템에 무조건 복종하고 용기가 없어서 머무르는 듯한 상대적인 비참함을 준다는 점에서는 좋게만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학교를 부정하는 것이 그들 개인의 의견인 것처럼 학교에서도 충분히 좋은 스승과 제도를 통해 진정한 교육자로 성장하는 사람들도 있기에 '배우고 싶은 사람은 학교에 가서는 안된다'라고 강경하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공감되지 않았다. 이렇게만 적으면 분명 지나치게 독단적인 작가의 글 혹은 자기기준에서만 저자의 의견을 이해한 편협한 독자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문에 밝힌 것처럼 '편견'을 벗어야한다는 점에서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며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할 뿐이지 이외에 다양한 사례와 의견등은 나또한 저자와 뜻이 같다. 정리하면 이 책을 읽다보면 내게 부족하거나 내가 고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그 까닭이 무엇인지 살펴보면서 아이에게 꼭 필요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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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 행복해지고 싶지만 길을 몰라 헤매는 당신에게
법륜 지음, 최승미 그림 / 나무의마음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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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지나 이제 곧 마흔을 앞둔 내게 대학졸업을 앞둔 어린 친구가 물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 뜻대로 공무원 준비하기는 싫어요. 어떻게하면 좋죠?"


성공과는 거리가 먼 내게도 그저 인생을 좀 더 살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조언을 구하는데 스님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묻고 또 물었을까. 스님께서 쓰신 책을 읽고서도 못내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거라 생각한다.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렇지 못해 전 불행합니다."


혹시 이런 내맘과 지금 당신의 마음이 같다면 조금 더 이 리뷰를 읽어주면 좋겠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을 바꿀 순 없다고 믿어왔고 그 믿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역시나 변하지 않는 믿음이 하나 더 있다. 바꿀순 없지만 바꾸고자 하는 이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법륜스님의 [행복]은 내게 그런 믿음을 확인시켜 준 책이기 때문이다.


'이 길만이 내길'이라며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고 가리지 않는 자세야말로 천상의 자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다만 하나라도 붙들고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22쪽


성년이 되기 전 이미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정해졌다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같이 부럽다고 말한다. 꿈이 없는 자신이 한참 뒤쳐지는 것 같고 좋아보이는 타인의 꿈이 혹 자신의 꿈은 아닌지 여러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그나마 시도라도 해보면 맞는지 아닌지라도 알아차릴 텐데 그럴만한 용기도 여유도 없는 요즘 친구들은 꿈이 있어도 고민, 없어도 고민일 것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꿈을 쫓느라 지금의 나는 그저 버티고 참아야만 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줄 깨닫지도 못하고 그렇게 살아온 셈이다. 설사 하고 싶은 일이 있다한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적용해보려고 시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일뤄준다.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길이 바로 옆에 있었는데 그저 한쪽면만 보고 살아왔음을 깨닫게된다.


화가 난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는 내 분별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그 주변 상황과 사람들을 판단하니까 내 기준에 맞지 않을 때 화가 올라오는 겁니다. 66쪽


연인사이에서, 친구 혹은 동료 그리고 가장 가까운 가정안에서 가족과의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결국 상대방이 틀리고 내가 옳다는 이기심에서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뜻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은 성인이 된 그 사람의 몫일 뿐이다. 진정으로 상대를 위한 것이라면 내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화를 낼 까닭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매순간이 값지고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184쪽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개인이 다스려야 할 부분이었다면 이어지는 내용은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었다. 앞서 개인의 이기심이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타인과의 관계를 괴롭히는 것이라 버려야 할 대상이었다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안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개인적으로 노력을 해보고 안되면 그때는 바꾸려고 노력을 해봐야하는데 우리는 그저 남이 바꿔주기를, 사회탓으로 돌리기만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안일하게 세상을 바라보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에게 말로 이기려는 마음, 내가 가진 능력을 넘어서는 남의 좋은 것을 보고 내 능력의 그 이상을 가지려는 욕심 또한 내가 아닌 타인을 이기겠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마음없이 그저 현재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행복해질 것이고 내가 우선 행복해져야 그렇지 못한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눈을 돌리고 개선해나가려는 의지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안에서는 제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괴롭고 밖으로는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이기적인 타인 때문에 불행했던 사람이라면 법륜 스님의 [행복]을 읽는 것 만으로도 그 전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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