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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백영옥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절실했던 것이 가장 아프게 나를 배반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가장 멀리까지 도망가버린다.
낮에는 평범한 사진가들처럼 예술관련 아카데미에서 교양수업을 듣거나 자연을 촬영하러 다니다가 밤이 되면 라디오를 들으며 부업인 포르노그라피 작업을 하는 남자 성주. 그의 아내 마리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한 대의 컴퓨터에 맥os와 윈도우를 동시에 설치해놓고 그때 그때 바꿔가며 쓰는 완벽하게 이중적인 삶을 사는 남자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엄연히 비밀이고 본인도 굳이 공개하지 못하는 일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 늘 신비로워 보인다. 그것이 어둠의 비밀이라도 '비밀'이라는 특수함을 가진 이상 갖지못한 이들에게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 사람이 탐날 것이다.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사랑이 끝이 나기도 전에 결혼이란 법적인 테두리에서 밀려난 정인과 유년시절 착하게 행동한 만큼만 부모가 날 사랑해줄거라는 조건부 사랑을 받고자란 마리 그리고 십여년을 함께 살았지만 남편과 자신이 하나일 수 없고 남편의 외도가 그저 그사람의 사랑일 뿐 나와는 무관하다라고 완벽하게 이해해버린 수영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성주는 탐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갖지못하면 파괴하고 싶을만큼 탐나고 또 그 반대로 금새 싫증나고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 내 선택 때문에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내 결정이 어느 우연한 날, 내 부모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찌르리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선택이란 때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일임을 나는 매 순간 생각했다.
짝사랑을 하고 있거나 남편이 외도하거나 혹은 본인이 바람피고 있지 않다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마리'의 입장으로만 성주를 이해할 수 있고 애인의 애인들을 위해 뜨게질을 하는 조금 바보스러운 정인이나, 겉으로는 성공했으나 실은 늘 실패하며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수영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가만가만 그 두여성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려고 애썼다. 작가는 마리의 이야기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많은 페이지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자는 것도 모자라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용서할 수 없고 괴롭고 죽고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경우 상처입은 배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크게보면 둘로 나뉜다. 그를 죽이고 홀로 남거나, 같이 죽거나 혼자 죽거나. 이와 반대로 쿨하게 보내주거나. 마리가 무엇을 택했는지는 여기에 적지 않겠다. 하지만 힌트를 주자면 둘 모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을 해주고 싶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정인의 입장, 애인의 애인들에게 뜨게질을 해주는 여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말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마리나 정인이나 둘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런가하면 정인과 수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와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자기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는 자유로움 아니었을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가 사랑하는 수영을 위해, 성주를 사랑하다 그녀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 마리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감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등 잦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 것은 마리였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아직까지는 행복한 운좋은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보인다는 것, 노력도 결국은 수많은 재능 중 하나일 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마리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콕 박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성주, 마리, 수영 그리고 정인. 네 사람 중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네 사람 모두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더이상 아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서 이 소설이 비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성주가 세 사람중 누구와 다시 연이 되는 일은 없겠지만 혹은 그러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연애하길 바란다. 서로가 아닌 다른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주더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 살지 않기를. 책을 읽고 각자 어떤 상상을 할런지 알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연애'를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쓴 작품중에서는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