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핀 꽃에서 멈추다
박윤희 지음 / 현자의마을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나를 위한 독서라기 보다는 '엄마'에게 권해드릴 만한 책인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골랐다. 어릴 적 엄마가 내가 손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늘 책을 놓아두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강요가 아닌 자연스럽게 손 닿을 수 있는 곳에 책을 놓아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 그렇게 여러 권의 책을 무언으로 권해드렸는데 엄마가 60세라는 인생 2막에 접어드신 후로는 그다니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제서야 아, 내가 엄마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엄마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그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고 엄마가 읽었을 때 좋을 책을 찾는 다는 것은 지금 내 기준에서의 '추천도서'가 아닌 엄마에게 '언니'가 되어주고 '인생 선배'가 되어줄 수 있는 분의 책이었다. 박윤희님의 [활짝 핀 꽃에서 멈추다]는 그렇게 내곁에 왔다.



이 글의 주인공은 소위 '잘 나가는, 성공한 5%'의 사람이 아닙니다. 평범한 우리 주변의 할머니이며, 어머니이며, 이모이며, 언니입니다.


내가 십대였을 때 엄마가 들려주는 추억과 스무살 이후 들려주는 엄마의 추억이 다른 것처럼 어쩌면 이 책도 아직 내가 읽기에는, 엄마에게 권해드릴만한 책인지 판단할 자격이 내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인생 선배님들은 어떻게 살아오셨을까? 하는 정말 아이같은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다. 잘나가는 누군가의 자기개발서를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묵묵하게 자기 삶을 살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자기개발서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삶 그 자체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저자의 노년기의 삶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만났던 우리 선배님들의 내용을 재구성 한 것이다. 그덕분에 한 사람의 이야기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만날 수 있는 분들의 연애사, 고난, 극복 등 다양한 드라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분들의 이야기는 전혀 낯설거나 촌스럽지 않았다. 그분들이 하던 연애도, 결혼도 그리고 다툼과 좌절이 약간의 변형만 있을 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그대로였다. 만약 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오래된 그녀'들의 이야기를 접했다면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전달되었을지도 모른다. 손주를 봐주고 있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어머니가 아닌 며느리의 입장에서 설명되었을 수 있고, 가난하고 능력없는 배우자와의 결혼 이야기도 그와 이별하고 재기에 성공했다는 식의 다른 결론이 나왔을 것만 같다.


"혼을 불태우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이 한 선택에 집중해야 해요. 그리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성실해야 하고, 정직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죽지 않을 정도로 무리도 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한 노력의 결과로 행복해져야 하죠." 137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고령사회'라는 담론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부정적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우리가 부양을 책임져야 할 세대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그리고 이 리뷰를 읽은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우리가 성공이 목적이 아니라 행복이 목적이라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위한 자기개발서를 원한다면 '오래된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색볼펜 읽기 공부법 - 책읽기에서 시험준비까지 인생을 바꾸는
사이토 다카시 지음, 류두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3색볼펜 읽기 공부법 : 사이토 다카시 지음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의 책을 이전까지 총 3권 읽었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혼자 있는 시간의 힘]등이다. 세권의 내용이 조금씩 중복되거나 서사처럼 이어지는 부분이 물론 많았지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크게 공감했고, 혼자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조언은 유익했다. 뿐만아니라 이 책을 읽기 전 '파란펜'을 내세운 공부법에 관한 책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꽤 컸던 모양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감상평을 먼저 밝히자면 크게 공감하거나 바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북돋아 주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마저 결국 '저자'의 개발과정이었을 뿐 나와는 맞지 않는것 같다라는 우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3색 줄긋기는 크게 객관과 주관으로 나뉘는데 파란색 줄과 빨간색 줄은 객관, 초록색 줄은 주관이다. 파란색과 빨간색 줄은 개인적인 취향이나 감성, 가치관에 따라 긋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대체로 혹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한 곳에 그어야 한다. 47쪽


아무래도 저자는 학술적인 목적으로 제출용 혹은 연구용 문서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것을 주제로 색을 나눈 것 같다. 비단 이 책의 저자 뿐아니라 책은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자기것이 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다. 반드시 까지는 아니지만 밑줄을 긋지 않고 포스트잇이나 별도의 노트를 만들어 기록하는 것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느꼈기에 나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객관적으로 중요할 경우 정도의 따라 파란색과 빨간색을 사용하고 객관적이진 않지만 맘에드는 표현이나 관심이 가는 경우 초록색을 이용하라는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제대로 학습되지 못하거나 이해가 어려운 독자를 위해 예문을 들어주고 사례를 들어주는 곳은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내용이 지나치게 반복되다보니 책을 읽는 속도가 더딘데다 만약 저자의 조언대로 하자면 이 책은 그다지 3색 볼펜이 필요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관적으로 와닿는 문장이 없을 뿐더러 객관적으로 중요한 내용도 3색 볼펜의 구체적인 사용방법 외에는 이전의 저서의 내용에서 크게 다른 부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하나 밑줄을 긋는 것이 익숙해지면 마치 공이 날라올 것을 대비해서 기다리는 타자처럼 마침애 밑줄을 그을만한 문장을 만났을 때 기뻐할 뿐 아니라 그런 기쁨을 찾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는 것이 흥미로워진다고 했지만 이부분에 있어서는 저자와 나의 생각이 같지 않아서 더더욱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부모는 자녀가 각자 어디에 초록색 줄을 그었는지 살펴보면 신기한 것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자녀의 다른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재미있어하는 아이였구나'라고 새삼 깨달을 때도 많다. 110쪽



물론 이제 막 독서에 흥미를 갖는 아이들이나 본격적인 입시경쟁에 뛰어들게 되는 청소년들의 경우 학습서를 비롯 자발적인 공부나 독서가 아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할 때라면 빠른 시간내에 요점을 파악하는데 분명 큰 도움이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자기만의 독서방식, 습관이 있는 사람 중 지금까지의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다거나 책을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아 교정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미 굳혀진 자기만의 방식이 있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효율적인 독서방법과 공부하는 자세를 바로잡아주고 싶은 부모나 그런 의지가 있는 성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3색볼펜 방식이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책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나는 3색볼펜 방식이야말로 스모의 준비 운동과 같은 기본 동작이라고 생각한다. 2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예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백영옥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가장 잘하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절실했던 것이 가장 아프게 나를 배반한다.

가장 가까이 있던 것들이 가장 멀리까지 도망가버린다.


낮에는 평범한 사진가들처럼 예술관련 아카데미에서 교양수업을 듣거나 자연을 촬영하러 다니다가 밤이 되면 라디오를 들으며 부업인 포르노그라피 작업을 하는 남자 성주. 그의 아내 마리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한 대의 컴퓨터에 맥os와 윈도우를 동시에 설치해놓고 그때 그때 바꿔가며 쓰는 완벽하게 이중적인 삶을 사는 남자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엄연히 비밀이고 본인도 굳이 공개하지 못하는 일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 늘 신비로워 보인다. 그것이 어둠의 비밀이라도 '비밀'이라는 특수함을 가진 이상 갖지못한 이들에게는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그 사람이 탐날 것이다. 어린나이에 결혼하고 사랑이 끝이 나기도 전에 결혼이란 법적인 테두리에서 밀려난 정인과 유년시절 착하게 행동한 만큼만 부모가 날 사랑해줄거라는 조건부 사랑을 받고자란 마리 그리고 십여년을 함께 살았지만 남편과 자신이 하나일 수 없고 남편의 외도가 그저 그사람의 사랑일 뿐 나와는 무관하다라고 완벽하게 이해해버린 수영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성주는 탐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갖지못하면 파괴하고 싶을만큼 탐나고 또 그 반대로 금새 싫증나고 돌아설 수 있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 내 선택 때문에 평생 후회할 수도 있다.

내 결정이 어느 우연한 날, 내 부모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찌르리란 것도 알았다.

하지만 선택이란 때로 선택하지 않은 것을 감당해 내야 하는 일임을 나는 매 순간 생각했다.


 

짝사랑을 하고 있거나 남편이 외도하거나 혹은 본인이 바람피고 있지 않다면 대다수의 여성들은 '마리'의 입장으로만 성주를 이해할 수 있고 애인의 애인들을 위해 뜨게질을 하는 조금 바보스러운 정인이나, 겉으로는 성공했으나 실은 늘 실패하며 살아간다고 고백하는 수영이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가만가만 그 두여성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보려고 애썼다. 작가는 마리의 이야기에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지만 어쩌면 그렇게 많은 페이지가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자는 것도 모자라 사랑에 빠졌다. 당연히 용서할 수 없고 괴롭고 죽고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경우 상처입은 배우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크게보면 둘로 나뉜다. 그를 죽이고 홀로 남거나, 같이 죽거나 혼자 죽거나. 이와 반대로 쿨하게 보내주거나. 마리가 무엇을 택했는지는 여기에 적지 않겠다. 하지만 힌트를 주자면 둘 모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을 해주고 싶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다시 돌아가서 정인의 입장, 애인의 애인들에게 뜨게질을 해주는 여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정말 단순하게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보면 마리나 정인이나 둘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동병상련이라고나 할까. 그런가하면 정인과 수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와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자기마음대로 끝낼 수 있다는 자유로움 아니었을까.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주가 사랑하는 수영을 위해, 성주를 사랑하다 그녀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 마리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어도 된다고는 했지만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감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등 잦은 상념에 빠지게 만든 것은 마리였다.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을 때, 세상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아직까지는 행복한 운좋은 사람과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보인다는 것, 노력도 결국은 수많은 재능 중 하나일 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마리의 이야기가 가슴에 콕콕 박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별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그것 이외의 것들은 그저 너무나 하찮은 변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것으로 이별을 정당화할 순 없다.


 

성주, 마리, 수영 그리고 정인. 네 사람 중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적어도 네 사람 모두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더이상 아파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들어서 이 소설이 비극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성주가 세 사람중 누구와 다시 연이 되는 일은 없겠지만 혹은 그러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 다시 연애하길 바란다. 서로가 아닌 다른이에게 또다시 상처를 받고 주더라도 이미 지나간 과거에 붙들려 살지 않기를.  책을 읽고 각자 어떤 상상을 할런지 알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에 '연애'를 정면으로 드러내놓고 쓴 작품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컨드핸드 타임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하은 역)





1917년의 혁명 직전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라는 글을 썼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핸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소비에트 연방시대를 살았던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증언을 토대로 [세컨드핸드 타임]을 집필했다. 집필기간도 상당했을 뿐 아니라 '소련'의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알지못했던 이들에게 이보다 더 생생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당대의 사람들과 사회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역자후기를 포함 600여페이지 그 이상의 내용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소련'으로 더 익숙한 소비에트 연방 시대. 그리고 그 이후 고르바초프와 옐친으로 이어지는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그 어중간한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유'가 '돈'의 다른말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정작 1991년도에는 모두 혁명을 하기 위해 바리케이드 앞에 서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유를 원했지만 결국 뭘 얻었나요? 옐친의 혁명, 약탈적 혁명을 얻었어요.



소비에트 연방시대가 끝나고 고르바초프가 양쪽 진영의 눈치를 살피는 동안 대다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가 다가오길 기대했다기 보다는 지금과는 다른 세상, 스탈린과 레닌과는 다른 방식의 '사상'과 '통제'를 원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시말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 처럼 공산주의의 좋은 점과 민주주의의 좋은 점만을 모은 그런 사회말이다. 하지만 막상 옐친이 집권한 이후 '돈'이 사회에 중심이 되고 과거의 사기꾼들이 이제는 '신흥부자'가 되어 자신들의 지배하는 모습을 볼 때 '당원'이었던 사람과 가족들에게 민주주의가 과연 좋게 느껴졌을까? 자신들의 힘으로 피켓을 만들고 선거를 통해 리더를 뽑았을 때 믿고 있던 그 희망들이 사라져버린 것을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나라를 위해 혹은 국가를 위해 왜 싸워야하는지도 모르고 전쟁에 직접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들이 그나마도 더이상 영웅은 커녕 제대로된 보상조차 받을 수 없이 '소보크'라는 무능한 존재가 되어버린 약자들의 세계는 사상과 상관없이 늘 똑같았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서로 상반되는 증언을 써내려가도 혼란스럽다기 보다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소비에트 시절 작전에 침투했다가 적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한 남자는 죽지 않고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포로교환 이후 집이 아닌 수용소로 끌려가야했다. 그 안에서 다양한 문인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며 '시의 힘'을 알게된 사람은 결국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끊임없이 꿈을 이야기하고 위트를 간직하며 희망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했다던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른 책에서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중간에 이 이야기를 굳이 언급하는 것은 희망없는 시대, 세컨드핸드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안에서 자포자기 하고 노예인 삶에 만족할 게 아니라 우리는 꿈꾸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모스크바 부엌에서 도청을 의심하고 우려하면서도 저녁이면 식탁에 모여앉아 누군가를 헐뜯고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껄껄 웃었던 것 처럼.



전 한번도 영웅이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다. 전 영웅들이 싫어요!

영웅은 사람들을 많이 죽이거나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하니까요.



초반에는 소비에트 시대에 대해서, 호모 소비에티쿠스들의 삶에 대해서 알아가고 검색하느라 책을 읽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러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그들의 삶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삶이었다. 레닌과 스탈린 시대에는 종교도 필요없고 이웃집의 누가 차를 샀는지 집을 샀는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절이 어쩌면 과거의 그들에게는 훨씬 더 만족스러울런지 모른다. 너도 나도 다를게 없는데 '돈'이 많다는 이유로 사람을 노예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반대로 한 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아닌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해야 평화로울 수 있는 사회도 우리가 희망하는 사회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로운 세상'이 그냥 오지는 않을것이다. 타인에 의해, 누가 정해놓은 신이 나서주기를 기다린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세컨드핸드 타임'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진유정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


소박한 미식가들의 나라, 베트남 낭만 여행

 

 



223343.jpg





거칠고 투박하지만 무엇이든 포용하고 자라게 하는 대지처럼 깊고도 깊은 맛의 국수를 먹으러 나는 호이안에 간다.




지금은 아니지만 하루에 2회 이상 쌀국수를 먹는 게 자연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거주하던 오피스텔 주변에 괜찮은 음식적은 없지만 괜찮은 쌀국수 집이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정말 맛있었고 입이 얼얼해질 정도로 얼큰하게 한 그릇 비우고 나면 머릿속에 있던 복잡한 고민과 스트레스를 완벽하게 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쌀국수가 그때만큼 그립지는 않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렇게 미친듯 단일메뉴에 빠지기란 쉽지 않다. 정작 미쳐서 먹을 때는 깨닫지못하다가 어느정도 정신이 돌아오니 그 음식의 시작,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베트남'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딱 그 무렵, 책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네]를 만난 것이다.




아침 7시에 떠오르는 국수와 한낮에 당기는 국수, 그리고 늦은 밤에 생각나는 국수는 분명 다르니까.




위의 문장은 '국수 사전'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특정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먹고 싶은 국수가 다르고 시간대 별로 먹고 싶은 국수가 다르다는 저자의 말에 환호까지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국수 사전은 없다. 그렇게 깊게 국수를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겨서 그날 그날 기분대로 찾아갈 수 있는 주소록도 없어 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자랑처럼 들려 부러웠다. 이참에 나도 국수사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맛있다고 너무 자주 간 탓인지 어느 순간 예전 그 맛이 아니라고 가지 않은 국수집들만 생각났다. 아마도 그건 저자처럼 기분에 따라 어울리는 집을 찾아가야 했는데 기다릴 줄 모르고 먹어치우듯 다닌 내탓이 아닌가 싶다. 그런가하면 저자가 말하는 '도시마다 감싸고 있는 독특한 향'을 나는 맡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바닷가에 갔을 때 나는 비릿한 물내음은 그 도시만의 독특한 향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한 곳이 떠오르긴 했는데 다름아닌 대만 야시장에서 파는 '취두부'냄새 정도였다. 쌀국수를 한참 즐겨 먹을 때 하노이 거리를 걸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만약 그랬다면 쌀국수가 아니라 '직화'달달한 고기냄새에 더 빠졌을지도 모른다. 바로 분짜라는 다진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로 국수를 엄청나게 좋아한다고는 해도 고기를 이길수는 없으니까. 책을 보면 분짜 사진도 함께 실려있는데 언뜻봐서는 포장마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닭꼬치'보였다. 비주얼만큼은 확실히 친근하고 달달한 숯불향기가 활자에서도 느껴져 베트남 하노이를 간다면 쌀국수 말고 분짜에 먼저 달려들 것 같다.




불 맛을 풍기는 고기에 달콤한 소스가 살짝 스미면 그야말로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동남아시아 음식에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한 입만 먹어보면 앉은자리에서 두 그릇도 먹게 되는 음식이 바로 분짜다.




타이틀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 왔다'라는 표현은 저자가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마를레네 디트리히'라는 노래가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해당 노래에서는 화자가 베를린에 가방을 두고 와서 베를린이 계속 생각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얼핏 타이틀만 보면 '국수'가 핵심인 것처럼 보일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수'보다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착이라고 보여진다. 덕분에 베트남 곳곳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음식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베트남 국수에 관한 추억만 질리게 접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베트남'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두번째로 떠오른 것이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루에 두끼니 이상을 쌀국수로 먹을 때 였다. 쌀국수 레시피도 친절하게 부록처럼 실려있지만 요즘 대세인 어떤 요리사의 말처럼 쌀국수는 해먹기보다는 사먹는 맛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그 생각만 굳혔던 것 같다. 사먹어야지, 그것도 꼭 베트남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