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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 서로 다른 두 남녀의 1년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최갑수.장연정 지음 / 인디고(글담) / 2015년 9월
평점 :
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여행이 일상이 된 남자 / 일상을 여행하는 여자

서로다른 두 남녀의 1년 같은 시간, 다른 기억
잠들기 전 이 책을 읽던 10월의 며칠 동안 정말 행복했다. 여행이 일상이 된 남자와 일상을 여행하는 여자가 1년 동안 찍고 쓴 글은 같은 기간 나는 무얼하며 보냈나를 떠올리는 시간이기도 했다.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 각각의 계절에 불어오는 바람의 향과 세기가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도 때 마다 달랐다. 여행이 일상이 되었던 그 남자의 글은 그 누구보다 일상을 사랑하는, 아주 사소한 소품마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느끼게 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면 우산위로 톡, 톡, 톡 하고 물방울이 떨어진다. 그 소리가 좋다고까지는 생각했는데 그 남자처럼 우산이란게 빗소리를 잘 듣기 위해 만들어낸 물건이라고 까진 생각치 못했다. 그 남자는 사소한 거에 맘을 쓰는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여자의 우산은 알록달록 마치 동요에서 나오는 그런 각양각색의 우산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남자의 글도 여자의 글도 모두 우리가 느꼈었던 감정이지만 글로 옮겨내지 못했다. 어쩌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부지런함과 자기고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산 위로 울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우산이란 물건이 비를 피하라고 만든 물건이 아니라
빗소리를 들어보라고 만든 물건 같다
-그 남자의 우산-

가을이 시작 될 무렵 옷정리를 하면서 운동화 한 켤레를 정리했다. 지난 해 헬스장에 등록하면서 마련한 것인데 신다보니 너무 편해져 이곳저곳 참 많이 신고 다녔다. 지난 유럽여행에도 녀석 덕분에 하루에 만 10시간 가깝게 돌아다니면서도 그렇게 피곤한 줄 몰랐고 물집도 없이 다녔다. 그러다보니 이 녀석은 상할 대로 상해 여기저기 터지고 망가진 게 눈에 확 들어왔다. 곁에 두고 싶지만 신지 않고 보관만 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해 정리했는데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이런 정든 녀석은 오히려 잘 보관하는 모양이다. 어릴 때는 그들처럼 이것저것 잘 모아두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그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살면서 꼭 필요한 물건은 트렁크 안에 다 들어갈 정도로 많지 않다는 것을 나이를 먹을수록 깨닫기 때문이다. 좀 덜 상하게 신었더라면 이따끔 꺼내 신을 수도 있었겠지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사진에 남아있는 것으로 만족해도 될 것 같다.
여행을 하며 배운 두 가지.
살면서 필요한 웬만한 것들은
60리터 배낭 속에 다 들어간다는 사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
- 그 남자의 겨울

두 사람의 사계를 읽는 동안 카메라에 담아두었던 내 사계를 뒤돌아보았다. 예쁘게 잘 나온 사진, 못나거나 흐릿하게 나온 사진. 모두 다 내가 보고 담아두었던 내 삶의 한 조각들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외출하는 날에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많은 것들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쁜 꽃만 보이던게 렌즈를 들이대고 지켜보면 꽃을 감싸는 잎도 남다르게 느껴지고 꽃위에 앉아있는 벌, 나비들에 오히려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담아보고 싶어 다른 때 보다 더 예쁘게 입고 싶은 마음도 든다. 그 여자의 말처럼 좋은 사진을 찍고자 하는 그 마음에 따라 오늘 나의 하루도 달라지고 그렇게 조금씩 더 예뻐진 하루 하루가 모여 내 삶의 조각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교적 반복적이고 심심한 생활이지만
어떻게든 보려 하면 나의 하루는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나를 미소 짓게 하거나, 눈물 나게 하거나,
가슴 뛰게 하는 것들은 내가 알아보기 전까진
소리 없이 늘 그곳에 있었다.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으로 그것들에게 새롭게 인사했다.
-그 여자의 프롤로그-
먹지 않으면 존재자체가 불가능한 우리에게 '냉장고'가 가지는 의미는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듯 하다. 꽉 채워진 냉장고를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그 남자의 글에도 크게 공감하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보여지는 그 모습이 꼭 그때 당시에 자신의 모습과 같다고 느껴진다는 그 여자의 말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인기있는 예능프로 중 '냉장고를 부탁해'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15분 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묘기처럼 만들어내는 과정도 볼거리지만 매 회 등장하는 게스트들의 냉장고를 옅보는 재미도 크기 때문이리라. 아주 귀한 식재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를 만나거나 어제 내가 먹었던 혹은 즐겨먹는 음식이 있을 경우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두 사람이 들려주는 냉장고의 풍경은 그렇게 나를 기쁘게도 하고 지금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느끼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사람, 혹은 흐트러진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을 때에 냉장고 문을 열어버리는 사람에게 그렇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지도 모른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요즘의 내가 보인다고 생각해요.
냉장고가 꼭 지금의 나를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들켜버린 그 기분이 왠지 싫기 때문이에요.
- 그 여자의 냉장고-
여행기를 좋아하지만 '여행지'라는 조금 특수한 장소에 머물면서 쏟아내는 감정의 글을 읽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행지가 특수한 장소가 아닌 늘 마주하는 일상이라 그런지 부담스럽지 않고 쓴 사람보다 내가 더 부끄러워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남자가 느꼈던 것을 나도 느끼고 있었고, 그 여자가 말하는 그 서글픔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나도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가장 좋았던 것은 두 사람 덕분에 나의 지난 1년도 참 행복하고 기뻤고 슬펐고 그래서 아름다웠구나를 깨닫게 해주었던 점이다. 고마운 책, 사랑스러운 책, 2015년 10월 밤을 참 따뜻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