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 황경택의 자연관찰 드로잉
황경택 글.그림 / 가지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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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황경택의 자연관찰 드로잉

 

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근래 만나본 책 중 가장 예쁜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리뷰 첫 줄에 대뜸 책제목부터 기재하고 타이틀이 산뜻하고 찍힌 사진을 걸어보았다. 그리고 한번 더 읽어본다. 오늘은 빨간 열매를 주웠습니다.


음식사진과 셀카가 대부분인 내 사진첩에도 간혹 예쁜 열매나 나뭇잎, 혹은 꽃잎등이 등장할 때가 있다. 가로수길을 거닐 때 담기도하고 복잡한 도시 한켠에 핀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제 관심사가 아닌듯 저 홀로 피는 풀들을 만날 때 카메라에 담는데 부모님이 계시는 시골집을 방문할 때면 거의 수십장씩 찍기 바쁘다. 잘 익은 방울토마토, 장건강에 좋다는 꾸찌뽕 열매, 엄마가 특별히 나를 위해 심어준 블루베리와 튤립, 너무 커버려 내 책상위를 벗어난 꽃기린 등 하나하나 말을 걸고 사진을 찍다보면 수십장이 결코 많은것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찍고 몇 장은 출력해서 벽에 붙여두기는 해도 대부분 금새금새 기억에서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늘 새롭게 느껴지는 장점은 있지만 정확하게 그 잎들이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빛깔로 나를 홀렸는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을 뿐더러 직접 그려보며 관찰력을 키울 생각은 하질 못한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게으름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타고난 화가라는 저자의 응원에 일단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열흘동안 그렇게 자기전에 조금씩 조금씩 읽고 마지막에 드로잉까지 시도했지만 형편없는 실력이라 공개는 미루기로 했다. 여전히 관찰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작정 잘그리려는 욕심이 앞서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관찰하기! 우선 그것부터 연습해야 한다.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섰던 대상을 그림으로 옮겨보겠다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동안에, 당신 안에는 이미 남다른 관찰력과 자연에 대한 공감 능력, 생명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삶을 관통하는 직관력이 자라난다. 그것이 바로 창작의 힘이다.  ​11쪽

 

 

어떤 거창한 이유보다는 익어서 떨어지거나, 병들어서 떨어지거나, 약해서 떨어지거나.....

저마다의 사소한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112쪽


 

그림을 그릴 당시에 소감이 적혀있기도 하지만 때 이르게 떨어진 나뭇잎을 보며 집안의 어르신을 떠올리거나 친구를 떠올릴 때면 뭉클해진다. 그런가하면 생태학자 다운 면모가 드러나는 때도 있다. 특정 식물에 대한 설명이나 잎이나 꽃의 특징을 설명해줄 때, 그런 특징을 관찰을 통해 알아차린다면 좀 더 수월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그림을 통해 그런 특징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만약 이 책을 읽기 전처럼 사진으로만 담아내고 말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을 알아가게 되는 기쁨이 더해져 책을 읽는 도중 계속 드로잉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간혹 정설이 아니라 저자가 짐작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부분을 보면 슬쩍 웃음도 난다. 예를 들어 산사나무 열매의 틈이 좁은 까닭이 작은 새들만 드나들 수 있게하려고 그런것 같다는 저자의 추측이 정말 위트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산사나무의 가시만 보고 저 열매를 아에 먹지 못하게 하려고 저러나하는 못된 심보를 내보일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이건 이름이 뭐예요?" 묻고는 금세 관찰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이름만 알면 다 안다고 느끼는 것은 왜일까? 262쪽


단풍잎의 가짓수를 세어본 적이 없었는데 우리가 흔히 만나는 단풍나무 잎만 해도 무려 여섯가지나 된다. 흔히 어린아이 손바닥 같다고 하는 단풍나무, 얼마전 국립중앙도서관 근처에서 사진에 담았던 당단풍나무(책을 본 이후라서 구분할 수 있었다)아직 못보거나 책을 읽기전이라 짐작도 못하는 중국단풍나무 등 이 모든 것이 전부 단풍나무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여름에 시골에 가면 저자가 남산에서 만난 산딸기를 만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뱀'을 조심하라는 어른들의 말씀 때문에 제대로 관찰할 수 없었다. 열매를 딴 자리에 젖병 꼭지 같은 게 있다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걸 보면 저자는 누군가 이미 따먹은 거라 속상하다는데 기억나지 않으니 속상해 할수도 없다.  단풍잎 못지 않게 솔잎도 한 종류가 아닌데 보통 3개짜리가 있고 무려 5개짜리가 있다는데 시골집에가서 이것도 자세하게 살펴봐야겠다. 시골집에 가면 사진찍는데 정신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관찰하느라 더 바빠질 것 같아 읽는 동안 드로잉하고 싶은 욕구와 함께 시골에 가고 싶은 충동도 이겨내야했다. 추석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감동과 깨달음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그때마다 들었다. 참고로 저자가 시골집에서 만나는 감을 오히려 나는 시골보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더 많이 본다. 왠지 시골에서 만나는 감을 만나는것은 도시에서 건물과 자동차를 만나는 듯 흔한 것 같아 제대로 쳐다도 안보기 때문이다.


왠만하면 추천도 잘 안할 뿐더러 사서 보세요라는 말은 100권 읽고 한 두권 나올까 말까한데 이 책은 꼭 사서 보길 권한다. 무슨 책장수 같이 들리겠지만 도저히 리뷰에 담기에는 저자가 무심히 적은듯 아닌듯한 상념들과 관찰을 통해,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통해 풀어주는 정보들까지 담겨있어 서점에서 서서보는 것은 물론 도서관에서 2주간 빌려봐도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카메라로 찍어두기만 하고 그림을 잘그리고 싶다고 말하거나 타인의 관찰력을 부러워만 한다면 의미가 없겠지만 정말 그리고 싶어지고, 관찰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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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미스터리한 이방인
마크 트웨인 지음, 오경희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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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능력이 출중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상대방이 기쁨을 느끼게 할 만큼 예쁜 아가의 얼굴을 봤을 때 '천사같다'라고 말하고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한 사람들을 '천사'라고 말한다. 천사는 이처럼 저 홀로 반짝이는 사람이 아닌 이웃을 보다듬고 따뜻한 기운을 '공유'할 줄 아는 사람이다. [미스터리한 이방인]속 천사는 그런 점에서 분명 '천사'가 맞다. 맨 처음 삼총사를 찾아왔을 때 그들 눈앞에서 소인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무서운 모습도 보이지만 이내 그들이 가본 적 없는 세상 이야기와 만난 적없는 과거 영웅의 일대기를 알려주며 즐거운 분위기로 바꿔버린다. 얼핏보면 사탄이 삼총사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조금 만 더 읽어보면 인간을 싫어하기는 커녕 붉은 거미와 코끼리에 비유하며 인간사에 전혀 관심도 없을 뿐 더러 격이 다른 존재라고 강조한다.

사탄이 인간을 무시한다고 말하면서도 부끄러울만큼 인간에 대해, 인간의 삶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도덕관념', 즉 선과악을 구분하는 유일한 종족인 인간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며 생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하거나 상대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흥미'를 위해 그런 짓을 한다고 비난한다. 글의 배경은 16세기 오스트리아, 중세 유럽으로 '마녀사냥'이 한창인 때였다. 사탄의 눈에는 마녀사냥 조차 '죄'를 짓지말고 '도덕적으로'살자고 외치는 인간들만이 행하는 악습이라고 말한다. 사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인간에 대해 동정심을 갖고 있는 '나'는 사탄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만 그가 하는 말이 틀린 적이 없어 이내 포기하고 인간에게 동정심을 가져달라고 애원하기에 이른다.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도 천사인 자신은 바꿔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10억가지의 인생.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인생이 있어도 이미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은 달라지지 않으며 만약 도와줄 수 있다면 고통은 따르겠지만 단명하는 것 만이 유일하게 천사가 도와줄 수 있는거라고 말한다. 

사탄과 인간, 도덕관념, 선과악 등 책의 내용과 관련해서 공감하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테고 시니컬하게 인간이라는 종족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난 이 책을 읽고 한 없이 우울해졌다. 10억가지의 인생이 있고, 나의 노력으로, 달라진 행동으로 바꿀 수 있다하더라도 태어나는 순간 이미 정해진 운명의 틀안에서 발버둥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 수십년을 고통속에 살다가 겨우 몇 시간 행복하기 위해 그 고통이 보람되었다고 착각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랬다. 하지만 그런 우울한 마음이 들수록 오히려 감사한 마음은 커졌다. 과거를 돌이켜봤을 때 아, 그 시점에서 차라리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것이 그랬고 좀 더 좋은 세상을 살기위해 너그럽게, 이웃과 함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00여페이지의 짧은 이야기속에 참 많은 것이 미스터리 할 만큼 담겨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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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
마크 H. 엘리스 지음, 조세종 옮김 / 하양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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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공동체란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도로시 데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이 책[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는 국내 초역이자 피터 모린에 관한 첫 책이라는 점에서 한번 더 놀랐다. 종교인들의 사회부흥활동은 물론 늘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비종교인들조차 공동체적 리더십에 감탄하고 찾아가며 배우려했다는 점에서 '도로시 데이'뿐 아니라 '피터 모린'도 종교를 떠나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은 리더라고 볼 수 있다.

 

6년 전 할렘에 있었던 사무실처럼, 가톨릭교리 토론센터도 소박했으며 성공하지 못할 운명이었다. 가구도 거의 없고 벽에 아무 장식도 없었다. 251쪽

 

한국에도 종교인 중에서 신자들을 위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교회부흥에 힘쓰는 사람들은 물론 존재하는데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하는 '민들레국수집'의 서영남선생님을 역자는 소개했다. 밥퍼목사로 유명한 분도 계시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상]을 집필하신 목사님도 계신다. 그들의 공동체 활동도 보통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본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들보다 앞서 지역주민과 협동조합 운동을 조직적으로 이끌어 온 사람이 바로 피터 모린이었다. 물론 모린 역시 골드스타인에게 도움을 받아 유대인들의 접근을 유도할 수 있었다.

 

모린은 농촌과 도시의 차이가 손노동과 산업문명의 차이와 같은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땅의 생활이 협동과 기능적인 경제를 촉진시키기 때문에, 농경 사회에서는 임금과 이익을 위한 욕망이 점차 시들해지다가 마침내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57쪽

 

타이틀에 '예언자'라는 문구가 들어간 것은 피터 모린이 이미 많은 것을 예견하고 공동체 협동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농촌과 도시의 간극에서 비롯될 문제점, 수공업과 기계를 통한 문명에서 벌어지는 차이점등이 결국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생산활동에 기반이 되었던 농경사회가 소멸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읽었던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대안조차 소상인들의 자기 존중과 이웃의 중요성에서 찾았던 것처럼 피터 모린 또한 개인들의 창의성과 주도적인 요구가 크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끌었던 것이다.

 

모린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말하려 하지 않고, 교리와 도덕의 영역에서만 한정지어 대화를 하려고 했다. 성직자도 이에 발맞추어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한 채, 사람들을 알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소홀히 했다. 109쪽

 

산업문명이 발달하면서 생겨나는 문제점들을 서로의 탓으로 미루지 않고 피터 모린은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마을 운동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요즘 나 혼자 잘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20세기에 살았던 피터 모린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종교인이라고 선을 긋기전에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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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레시피 - 지구인을 위한 달콤한 우주 특강 (2016년 우수과학도서 선정작)
손영종 지음 / 오르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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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선호하는 분야가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관심이 많은 내게도 쉽게 손을 뻗기 힘든 분야가 있다. 그게 바로 천문학이다. 별자리에 관심이 많거나 보통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을 만날 때 무조건 존경부터 하고 볼 정도다. 까만 하늘에 아주 작게 보이는 별을 보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은 마법사나 마술사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쉬운 지식은 없다지만 책을 통해 습득이 안되는 지식은 아마 별과 우주이야기라 믿었던 내게 책 [우주 레시피]는 오래오래 예뻐해주고 싶을 만큼 설명도 쉽고 우주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 하나가 외롭게 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사실은 혼자서 살아가는 별은 없다고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별과 별 사이의 자기력이 존재하며 우리가 보면서 혼자라고 판단하는 별의 80%는 쌍으로 붙어있는 별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초신성'그룹의 이름은 이제 막 활활 타오르고 활동을 시작한 별이 아니라 '죽어 가는 별'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별은 죽을 때 폭발하거나 팽창하면서 아주 강한 빛을 내뿜는데 폭발하면서 지는 별을 '초신성'이라 하고 팽창하면서 사라지는 볖은 '신성'이라고 한다. 무수히 많은 별들이 가스와 먼지로 형성된 성운에서 태어나는데 이런 성운과 별집단들이 모여있는 것이 바로 '은하'다. 우리가 잘 아는 안드로메다 은하도 이렇게 별들이 보여진 것인데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존재하고 별의 생존기간도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몇만 년씩이나 되는데 밤하늘에 보이는 별은 생각만큼 많아보이거나 밝지 않다. 그 까닭은 빛의 속력과 관련되어 있다. 빛의 속도가 무한대라고 생각했던 시대에는 쉽게 풀이할 수 없었던 '까만 밤'의 비밀을 빛의 속력을 밝혀내면서 아무리 많은 별이 있어도 지구에 닿기까지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거리가 먼 만큼 지구를 밝힐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빛의 속력을 처음으로 측정하려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에게는 지동설로 알려진 '갈릴레오'가 최초로 빛의 속력을 측정하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육안으로 측정하는 방법만 가능해서 실패로 끝났다. 30년 정도가 지난 1676년 뢰머가 드디어 성공했지만 그가 측정했던 빛의 속력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속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마저 해결한 것은 그 이후로 또 50년 정도가 흐른 1727년 브래들리에 의해서였다. 속도의 차이가 생겼던 이유는 관측자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빛이 더 기울어져서 관측되었기 때문인데 교수님이 쉽게 예를 들어주셨다. 빗속을 걸어갈 때 거의 사선처럼 내리는 듯 보이는 경우와 흡사하다는 것이다.

우주 레시피를 읽다보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아주 쉽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때 빠질 수 없는 학자가 있는데 바로 '허블'이다. 그의 이름은 현재 가장 성능이 좋다는 망원경이름과 같은데 그의 관측결과를 통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웠던 가설을 취소하게 만들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내세웠던 상대성이론과 허블의 관측결과가 합쳐져 '상대론적 팽창 우주론'을 뒷받침 할 수 있게 되었다. 말그대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서 빛의 속력이 무한하다고 믿었던 과거에는 우주또한 그 크기가 무한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우주의 시작이 존재하고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주가 찰나에 순간 급팽창하면서 이때생긴 미세한 밀도차이가 중력으로 인해 점차커지면서 별과 은하계가 생기고 그안에서 생명체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주에는 지구외에도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과연 생명체의 시작은 그럼 어디서부터일까? 어쩌면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우주를 통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부분이라는데에 나도 공감한다. 자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지구인들의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까닭도 이유지만 우리외에 다른 행성에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엄청난 지능을 습득할 수 있는 긍정적인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외계인에  의해 우리가 정복당하고 또 하나의 에너지원으로 쓰(?)일 암울한 미래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과연 우주에 우리외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는지,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에 별자리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고 우리가 상대성이론을 통해 예측해보는 정보들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궁금하다면 가볍게 [우주 레시피]를 맛보면 될 것 같다. 읽다보면 정말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듣는 기분이 든다. 문체도 편안하고 목차만 봐서는 흐름을 알 수 없던 퍼즐들이 맞춰져가는 기분이 성운이나 은하를 마주하는 것처럼 신비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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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의 첫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이안 옮김 / 열림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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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바람을 견디며 묵묵하게 가정에 충실해온 여자가 어떤 계기를 통해 통쾌하게 복수하는 스토리는 뻔한데다 진부하기까지 하지만 대리만족을 느낄 뿐 아니라 화려하게 변화는 비포&애프터의 스릴 또한 높아 가볍게 읽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남은 생의 첫 날]도 그렇게 가볍게 읽고 싶은 마음에 첫 페이지를 넘겼고 초반까지는 내가 짐작했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힘들게 자식을 길러야 한다거나, 금전적으로 부족한 것도 아닌 호화크루즈 여행으로 출발한다는 점도 대리만족보다는 또 하나의 '희망사항'처럼 보이기도 했다. 극을 이끌어가는 '마리'의 이야기가 이처럼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순간 우리가 진정 공감할 수 있는 두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오랜시간 결혼식도 없이 둘 만의 사랑으로 살아온 60대 '안느' 그리고 전신성형으로 아름다워졌지만 여전히 사랑에는 자신없는 '카밀'이다. 안느를 보면서 남여사이가 얼마나 쉽게 어긋날 수 있는지 반대로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이다. 사랑에 빠져있을 때는 서로의 사소한 실수도 귀엽게 보일 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둘 중 누구하나 외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비밀이 생기는 순간 깊은 골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상대방의 심리상태를 바로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거나 기다려준다면 싸움으로 번지거나 결별의 수순을 밟지 않을 수 있지만 아무도 사랑이 진행중일 때는 이성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안느의 경우가 딱 그랬다. 카밀또한 다이어트 때문에 시련을 겪거나 남자친구의 배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연의 쓴맛이 봤던 20대 여성이라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강한척하고 사랑에 자유로운 척 하지만 오히려 더 진실된 사랑을 원하고 한없이 여린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리가 가지고 있는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에 안느와 카밀의 등장은 독자입장에서도 정말 다행스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크루즈에 있는 석달동안 지나치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데 있다. 마리가 크루즈에 오른 것 부터가 너무 빠르게 과장된 점이 있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더 머리가 어질어질 할 정도다. 마리의 경우 늘 해오던 뜨개질이 갑자기 대박이 나서 생계걱정을 단번에 해결한다던가, 엘르지를 통해 자신의 자유연애사가 온 세상에 알려졌는데도 하루이틀 괴로워하고(그나마도 크게 상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금새 회복하는 모습은 다행이긴 하지만 현실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아무리 사랑이 중요하고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고 해도 '혼자'서 잘살아가면 문제라도 있는걸까? 그나마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안느의 이야기만 어느정도 현실에 가까웠다. 소설의 힘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일, 일어나길 바라는 일을 이뤄주는 역할도 있지만 정도를 좀 넘어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역시 소설이구나.'하는 아쉬움을 벗어날 수 없었다. 만약 마리나 카밀의 경우에 놓인 사람들이 위로가 필요해서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군가는 희망의 새 길을 열 수도 있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더 큰 절망에 빠질 것 같다. '왜 난 뜨개질도 배워두지 않았을까?','난 왜 전신성형 할 돈도 모아두지 않았을까?'라고. 책에서라도 희망을 옅보고 싶은 사람이거나 조금 가볍지만 내용자체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잘 갖춘 소설을 원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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