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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37호 2015.여름 - 하얼빈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계간 아시아 2015 여름호는 도시특집 개편 첫 호로 '하얼빈'이 주제였다. 하얼빈하면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독립운동'정도 였는데 이번호에서 만난 하얼빈은 아픔도 물론 있지만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도시였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까닭을 적어도 책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얼빈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아시아에서 소개한 다른 작품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번 호 아시아의 작가에서 만나게 된 문인은 작가 구효서다.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고 한참을 몽환속에 살았던터라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작가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그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아쉬웠었다. 마치 그런 독자가 나뿐이 아니었던 것 처럼 저자가 먼저 말해준다. 2013년 이후에는 자신의 글을 찾는이가 줄어들었다고. 서문에 사르트르를 언급하며 '나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변하는 작가는 그동안 이렇게도 써보고, 그 다음에는 저렇게도 써 봐야지 하는 변덕부리는 재미로 써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이 재미있다고 쓰는 글이어야지 독자의 재미에 맞춰줄 요량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 말해주어 다행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것처럼 한 편의 소설에는 작가의 몫, 독자의 몫 그리고 신의 몫이 있듯 독자의 재미만 살리려고 작가의 몫을 포기해버린다면 소설의 완성도는 한없이 뒤쳐지기 마련이다. 우선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한 후에 독자의 몫도 신의 몫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계속해 보겠다는 말을 글의 말미에 적어둔 작가 구효서의 다음 작품을 차분히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호에 실린 시 중 국내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복효근 시인의 [당나귀를 들어 올리는 법]이 잔잔하면서도 맘에 들었다.
토끼를 잡고 들어 올리는 법을 안대서
토끼를 들어 올리라는 법은 없다
토끼를 잡아 요리하는 법을 안다고
귀가 긴 짐승을 다 잡아먹으라는 법이 아니듯
시인도 비평가도 아니라 맞는 해설을 할 줄은 모르지만 마음을 흔든시라는 것은 분명했다. 들어올릴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들어올려 보이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누가 묻지도, 부탁도 하지 않은 일들에 우리는 없는 토끼라도 찾아서 들어올리려고 애쓴다. 한편으로는 신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토끼의 귀라는 모양새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이 전해질 수록 엉뚱하게 귀를 잡아 들어올리려고 아득바득 사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이번 호에서 모처럼 만나게 된 네팔의 시는 평안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다. 네팔 예술원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시인이라는 마더 기미레의 시는 길지 않은데도 참 좋아 필사를 불러 일으키기 좋았다.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한편은 이웃하지 않고 홀로된 삶의 공허함을 다른 한편은 칸티푸르의 대한 애송시였다. 마더 기미레이외에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도 두어편씩 실려있는데 유사한 분위기의 시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네팔의 대표작품들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닮은 시도, 자연과 삶 그자체가 지니는 원대함을 노래한 시 모두 한몸처럼 아파하고 그 끝은 희망으로 가득찬 듯 보였다.
에디터가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 볼거리가 풍성하다며 서평 섹션을 에디터프리뷰에서 권하였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세편의 서평 중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작품, 이상의 [날개]를 리뷰한 찰스 몽고메리의 서평을 꺼내본다. 아시아에서 출간한 바이링궐 에디션으로 읽은 이상의 날개를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바이링궐 에디션의 장점으로 작가의 짧은 소개와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실려있어 탁월하다는 평을 했다. 작품 자체로 돌아가면 날개는 다른 많은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남성'의 이야기다. 그 남성은 한국 남성을 대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 대신 아내의 벌이로 생을 이어가는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끝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마무리 함으로써 당시 일본소비문화가 한국에 미친 영향까지 교묘하게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박영희 시인의 [하얼빈 할빈 하르빈]으로 돌아왔다. 그가 하얼빈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얼후 연주였다. 슬픈데 슬프지 않고, 아픈데 아프지 않았다는 얼후의 음색이 궁금해져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보았다. 영화속에서 많이 들었던 두 줄 현악기의 음색은 악기이름은 낯설지만 소리 자체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민지 하얼빈에 가서 들어봐야 할테지만 소리만 들어도 전혀 모르겠다 싶지는 않았다. 할빈 하르빈 이라고도 불린다는 하얼빈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흑룡강여지도]에 해서여진 어촌의 본래 이름인 아라진이 하라빈으로 번역, 이후 1899년에 할빈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 한반도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렸던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까지 하얼빈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일뤄준다. 이어지는 내용은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했다는 이효석의 [하얼빈]등 다른이의 글이 일부 발췌되어 있다. 만약 하얼빈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걷게 된다면 중앙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느 후작의 고풍스러운 서재를 연상케 한다는 서점 2층에 들러 한권의 책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누려보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이외에도 시인이 들려주는 하얼빈의 풍경, 역사와 건물이야기가 60페이지 가깝게 이어진다. 문인의 시선에서 보이는 하얼빈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획특집'다운 분량과 내용이었다.
이번 호가 계간 아시아를 만난 첫 호는 아니었다. 리뷰를 적을 때 마다 어떤 섹션을 넣고 어떤 섹션을 포기해야 할 지 늘 고민이었다. 이번에는 개편된데다 기획특집이기 까지한 하얼빈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효서 작가편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없는 네팔 시인들의 작품과 서평 그리고 국내 시인의 작품 한편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아마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지 싶다. 홀로 즐기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글을 통해 퍼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