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
가도쿠라 타니아 지음, 김정연 옮김 / 테이크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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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

 

독일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타니아는 양국 모두의 장점과 특색을 갖춘 살림꾼이다. 지난 번에 읽었던 작은 수납인테리어도 군더더기 없이 꼭 필요한 내용만 담았기에 지금도 가끔 펼쳐보는 데 이번 신간[타니아의 소중한 것과 오래도록 함께하는 생활]편도 맘에 들었다. 특히 이번 책에서는 꽤 오래된 빈티지 가구부터 최근에 알게된 소품까지 저자가 직접 오랜 기간 사용하며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 혹은 더이상 구할 수는 없지만 추억이 깃든 제품들을 소개해주었다.

 

물건은 생활을 풍부하게도 해주지만 자신이 유지할 수 없는 그 이상을 갖고 있으면 자신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저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앞으로도 기분 좋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141쪽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추천해주는 소품들을 하나 하나 메모하고 실제 구매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사소하게는 나무로 만든 디퓨저, 울림이 좋은 스피커, 유럽 여행중에 만난 빈티지 식기 등이 그렇다. 마치 그녀가 함께 세팅해놓은 받침대와 풍경이 그 물건만 사들이면 다 완성될 것 같지만 크지 않은 내 방, 도심안에 있는 내 집에서 그런 분위기가 완성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어렵다. 저자 또한 소개해준 대부분의 큰 가구나 소품들, 도쿄의 집에서는 놔둘 수 없는 것들을 가고시마에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처럼 도심에 한 채, 지방에 한 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참고로만 봐둬야 한다.

 

반면 독일에 방문하게 된다면 이 제품은 꼭 사야겠다 싶은 것도 물론 있다. 친환경 세탁비누 '갈자이페'는 소의 담즙으로 만든 비누인데 이 담즙의 포함된 단백질 분해 효소가 와이셔츠의 목둘레나 양말의 발꿈치 부위에 찌든 때 제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독일의 친환경 숍에서 소개해준 제품이 비누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 상품들은 소모성 제품인데다 부피도 크지 않기 때문에 욕심내도 괜찮을 것 같다.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반드시 자신의 집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익숙한 산책길, 언제나 바라볼 수 있는 나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물 등 집 밖에도 훌륭한 물건은 많이 있습니다. 9쪽

 

도쿄의 집은 책에 실리지 않았지만 직접 지은 가고시마의 집은 복도, 침실, 테라스 등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붉은 색으로 장식한 복도의 벽은 저자가 가장 맘에 들어하는 장소로 홀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공간도 이 곳에 있고 금테두른 액자 등도 이곳에 있어 사진으로 보면 꼭 촬영을 위해 제작한 세트장 처럼 느껴질 만큼 멋지다. 저자의 공간과 나의 공간을 비교하는 순간 우울해 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서문에 적힌 저자의 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반드시 자신의 집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를 떠올렸다. 운동하거나 산책하러 종종 가는 공원, 그 공원의 호수, 호수 건너편의 예쁜 건물들을 떠올리면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고 저자가 소개해준 추억의 물건을 편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저자처럼 맘에 드는 물건을 가져오거나 지인이 내놓은 빈티지한 가구를 소유할 공간이 없어도 책을 읽는 내내 행복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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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7-1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자이페 비누 메모하고 갑니다.. 솔깃하네요^^

에디터D 2015-08-26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일본가면 꼭 찾아보려구요.ㅋㅋ 혹 찾아서 사용해보고 괜찮으면 댓글 또 남길게용.ㅎ
 
위대한 생존 -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 이야기
레이첼 서스만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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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프로에서 세계에서 가장 둘레가 큰 나무를 촬영장면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전시회를 가면 한 번쯤 봤을법한 커다란 나무를 사진에 담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인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책, <위대한 생존>은 크기가 큰 나무는 아니지만 가장 적게 산 나무가 2000살이라면 대략 크기가 어느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다. 한 그루의 나무촬영도 위대해보였는데 그런 나무를 여러 번 촬영을 했다는 것, 그리고 예술차원을 넘어서 과학지식까지 포함된 내용이라 보면서도 우와~를 연발하게 되었다.


 

 

사진 찍을 대상들을 찾으러 가기 전에 그게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알아내야 했다. 오래산 나무의 목록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여러 생물종을 아우르며 내 기준에 부합하는 모든 생물을 적어놓은 목록은 없었다. 온갖 검색어로 구글 검색을 하고 여러 전문 분야의 과학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면서 하나씩 하나씩 목록을 만들어나갔다. 27쪽

 

 

 

그저 오래살았다고 촬영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또 촬영만 하고 그치는 예술도 아니었다. 작가의 말처럼 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하기에 과학자들의 인정도 받아야 하므로 위의 문장에 나와있듯이 과학 연구 논문을 찾아보기까지 한다. 하지만 난 이 책을 딱 한번 읽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주 펼쳐보기로 마음 먹고 일단 사진부터 훑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 다음 눈길을 끄는 사진을 살펴보는 식으로 읽어나갔다. 미리 밝혀두지만 이 책의 큰 목적은 예술적 가치도, 과학적 지식 함양도 아니었다. 본문에 나와있듯 인간은 이곳에 등장하는 나무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주 짧은 삶을 살다간다. 그것은 삶의 목적도, 방식도 다르기 때문인데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는 나무를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킨다. 실제 촬영된 나무 중 2그루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내가 방문하고 나서 얼마 뒤 식물원 근처에 도로를 새로 내느라 이 나무를 없앴다고 반 위크가 알려주었다. 다행인 점은 지하 삼림이 아직 많다는 점이고, 안타까운 점은 지하 삼림은 한 번 사라지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점이다. 217쪽 

 

 

 

책 속에는 '심원한 시간'의 연표라고 해서 우리가 감히 짐작도 못할 아주 오래전에 세상에 나왔다가 사라진 생명체들의 연표가 실려있다. 나무의 수명을 알아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애초에 사진만 먼저 보고 나무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저 사진을 구경하듯 할 수는 없었다. 나무 이야기만 했지만 나무외에 이끼, 균과 박테리아를 찾아가기도 하고 심지어 원래 촬영 목록에 있었지만 가는 길이 험(?)해서 갈 수 없었던 장소도 있을만큼 저자가 이 프로젝트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자연을 위태롭게 하는 무지한 인간의 모습도, 인간의 삶 저 건너에서 오랜시간 살아온 종의 위대함도 있지만 그동안 모험심을 저 깊은 곳에 두고 살아왔구나 하는 안타까움 이었다. 잠수함이 없어 못갔던 심해나 종교와 인종문제로 가지 못했다는 그 장소를 가게된다면 어떨까하고 조심스레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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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19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무척 재미있겠어요. 첫 번째 사진의 나무는 정말 신기해요. 무슨 이끼가 덮은 거대한 바위인 줄 알았어요. ㅎㅎㅎ
 
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 우리 시대의 가장 독보적인 아트 컬렉터와의 대화
찰스 사치 지음, 주연화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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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찰스 사치, 아트홀릭.

 

우선 인터뷰집이라서 다소 지루하거나 식상할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말해두자면, 기대보다 재밌고 생각보다 사치가 답변하는 대답을 보며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예민해서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만약 여기저기 잡지마다 그의 갤러리에 대한 평론이나 비평이 아닌 사생활이 공개되었다면 이 책이 그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이 2009년도 첫 출간되었고, 벌써 만 5년이 지나 아마 이 이후에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면 이 책에서 답변한 것과 다른 내용도 많이 있을거라 추측된다.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냐는 동일한 질문에 누군가에게는 스타워즈의 명대사를 인용, 재치있게 넘어가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하다는듯 누가 사는 동안 자신의 묘비명을 생각해두냐고 퉁명스럽게 답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미술에 대한 자기 애정에 확신이 있었고, 적어도 아트계에서 잘보이기 위해 아양을 떨거나 겸손한 척 하지 않는 것이 사치를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영국 언론이 당신을 부당하게 대우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비난을 참을 수 없다면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행운이 있는지를 자랑하면 안 되지요. 39쪽

사치는 좋아하는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또 전시하는 것이 개인적인 만족과 타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이유라고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그런 맥락에서 더 이상 좋아하긴 하지만 소장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면 다시 작품을 일괄 되팔기도 하는 데 이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감추지 않았다. 오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역자분도 옮긴이의 말을 읽다보면 그런 편에 서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난 오히려 사치의 입장이 쉽게 이해되었다. 팔지 않고 계속 모으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아무리 부자라도 집안이 전부 예술품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마치 독식하듯 작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술관이나 유사기관에서 전시를 목적으로 소장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본다. 설사 그가 아무리 아트 시장의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수집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광고계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 많은 수익을 얻어 평생 실컷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를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축복받았다고 인정하며 모든 성공이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광고회사에서 20시간 넘게 일하기도 했으며 자신이 처음 부터 부자였던 게 아니었고 배달원 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미술품을 사들이고 되팔기 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비단 이 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웨일스의 작은 오두막집에 살며 시를 쓰거나 동화책 삽화를 그리면서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유한 삶이 돈,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요. 73쪽

흔히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말한다. 부유한 삶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기 때문에 더 많은 물질을 원하게 되고 그럴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교를 멈추는 순간 오로지 자기가 기쁨을 느끼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다. 답변을 다 읽다보면 광고일을 즐겁게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실제 그가 다른 질문의 답변으로 쓴 내용 중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돈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형편상 반드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재물과 좋은 집, 멋진 차를 갖기 위해 내가 즐거워 하는 일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에는 관심이 많지만 예술'계'에는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사치를 예술계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순수한 호감이나 젊은 예술가들의 발굴이 목적이 아니라 투자를 목적으로 작품을 사들이는 사람들 보다는 솔직해서 호감이 갔다. 호감은 아니지만 여전히 언론과 예술계에 관심을 받는 까닭은 아마도 많은 작품을 구매할 수 있는 부와 광고일을 하면서 습득한 대중의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는 그의 능력만은 아닌 것 같다. 천국과 지옥 중에 어디를 가고 싶냐는 질문에 너무 식상한 질문이라고 답하면서도 한가지 꼭 사고 싶은 게 있다면 천국행 티켓이라고 말하는 그의 천진함, 미술작품을 제외하고는 프라푸치노에 빠져 스타벅스에 줄서서 기다리는 자신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허세없는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사치의 성격을 가장 빨리 짐작해볼 수 있는 문답이다.

 

당신의 갤러리에 불이 났는데, 한 가지만 구할 수 있다면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218쪽)

 

나요.

 

 

 

 

 

여담 :어쩌다보니 책을 읽은 곳이 스타벅스,
주문한 음료가 프라푸치노 였다. 그래서 더 재밌게 책을 읽었던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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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사전 - 삶을 예술로 만드는 일상의 철학
안드레아스 브레너 & 외르크 치르파스 지음, 김희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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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사전]은 무엇보다도 삶의 속도를 늦춰보자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머리말-

 

산다는 것에 대해 기술이 있다면 누구라도 배우고 싶을 것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인증서가 있다면 취득하길 바랄테고, 수료증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들만한데 안타깝게도 그 '모두'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인정하는 존경받는 성인의 말이라면 기술까지는 어려워도 참고사항, 지침서 정도로 우리에게 많이 퍼져있다. 기본적인 행동양식, 욕심내지 말라,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에 쓰여진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은 물론 옳지만 기술이라기 보다는 '도덕'에 가까웠다. 천천히 인생을 즐기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얘기가 달라진다.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면서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 이것이 삶의 기술이라면 부담없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막상 본문을 읽다보니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그리고 책에서 자주 만났던 철학자, 이론은 물론 처음 들어보는 철학자들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역자의 주석 덕분에 한 사람 한사람 사전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간략하게 철학자의 핵심논리까지 기재해준 덕분에 원문자체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도 이해하기 쉬웠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책을 통해 꼭 개인적으로 크게 각인된 삶의 기술은 다음과 같다.

얼마전 서평 책까지 출간한 배우 '이보영'씨가  TV프로에 나와 오랜 연애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까닭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고 아직 미혼 남녀라면 그 어떤 조언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삶의 기술 사전에서도 '고독'에 대해, 바로 홀로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홀로 방안에 조용히 머무를 수 없다는 데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본 몽테뉴와 파스칼의 생각은 옳다.' 44쪽 고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는 까닭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책에서는 하느님만 보더라도 세상에 신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으며 신은 인간이 가장 존경하고 찬미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혼자있을 때 고독을 즐기지 못하고 어떻게해서든 타인과 함께 있으려고 노력하다보면 상대방의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악의적인 행동을 서슴없이 할 수 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에 이르기 쉽다. 반면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이들은 타인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스스로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된다.

'권리'에 대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데 도저히 입에 담기도 흉칙한 범죄가 자주 곳곳에서 일어나는 요즘 신문기사 댓글에는 하나같이 '사형'제도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권위에서 반대하는 것은 피의자의 권리만 있고 피해자의 권리는 무시한 처사라는 말도 함께 나온다. 도대체 권리란 것이 무엇인가. 권리란 법률로 지정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도덕적 권리에 있어 법조문으로 존중해야 된다고 하지만 과연 피의자의 권리도 이에 해당되느냐가 핵심이 될 것 같다. 윤리에 어긋난 그들에게도 지켜지는 권리가 어째써 정작 피해자에게는 없는지 이부분은 섣불리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권리침해현장을 고발해야 할 의무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부분은 맨 첫 질문 '감각은 악마의 간계일까'에서도 언급되는 부분으로 사회부적응자나 폭력적인 사람을 공공장소에서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든 그들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다시말하자면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건드리지 않으면 된다는 의식이 강하게 박혀있는 셈이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나 대신에 권리를 침해받더라도 모른척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책에서 나오는 질문과 서술들은 결코 개별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고, 앞서 말한것처럼 낯선 인물과 이론들은 역자의 도움으로 읽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뿐만아니라 그동안 한 사람의 철학자와 단 하나의 이론을 연결할 수 있었다면 이제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것도 깨닫게되었다. 돈을 주고서라도 시간을 사는 요즘, 저자는 이 책을 읽는 것이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도 여유있게 사는 방법이라며 정작 저자는 에필로그를 적지 않았지만 친절한 역자의 말을 통해 이 책을 다음의 문장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보기 드물게 잘 차려진 철학의 성찬이다. 고금을 아울러 철학자들의 다양한 가르침을 담으면서, 의미 찾기라는 철학의 본질에 일관되게 충실한 역작이다. 5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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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제37호 2015.여름 - 하얼빈
아시아 편집부 엮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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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아시아 2015 여름호는 도시특집 개편 첫 호로 '하얼빈'이 주제였다. 하얼빈하면 함께 연상되는 단어는 '독립운동'정도 였는데 이번호에서 만난 하얼빈은 아픔도 물론 있지만 세계 그 어떤 도시보다 낭만과 서정이 흐르는 도시였다. 동양의 파리라고 불리는 까닭을 적어도 책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얼빈 이야기를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아시아에서 소개한 다른 작품과 문인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번 호 아시아의 작가에서 만나게 된 문인은 작가 구효서다. [랩소디 인 베를린]을 읽고 한참을 몽환속에 살았던터라 좀 더 각별하게 느껴지는 작가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이후에 출간된 작품은 그런 감동과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아쉬웠었다. 마치 그런 독자가 나뿐이 아니었던 것 처럼 저자가 먼저 말해준다. 2013년 이후에는 자신의 글을 찾는이가 줄어들었다고. 서문에 사르트르를 언급하며 '나는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변하는 작가는 그동안 이렇게도 써보고, 그 다음에는 저렇게도 써 봐야지 하는 변덕부리는 재미로 써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이 재미있다고 쓰는 글이어야지 독자의 재미에 맞춰줄 요량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리 말해주어 다행이었다. 앙드레 지드가 말한 것처럼 한 편의 소설에는 작가의 몫, 독자의 몫 그리고 신의 몫이 있듯 독자의 재미만 살리려고 작가의 몫을 포기해버린다면 소설의 완성도는 한없이 뒤쳐지기 마련이다. 우선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한 후에 독자의 몫도 신의 몫도 제대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계속해 보겠다는 말을 글의 말미에 적어둔 작가 구효서의 다음 작품을 차분히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호에 실린 시 중 국내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복효근 시인의 [당나귀를 들어 올리는 법]이 잔잔하면서도 맘에 들었다. 


토끼를 잡고 들어 올리는 법을 안대서

토끼를 들어 올리라는 법은 없다

토끼를 잡아 요리하는 법을 안다고

귀가 긴 짐승을 다 잡아먹으라는 법이 아니듯 


시인도 비평가도 아니라 맞는 해설을 할 줄은 모르지만 마음을 흔든시라는 것은 분명했다. 들어올릴 필요도 없는데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들어올려 보이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누가 묻지도, 부탁도 하지 않은 일들에 우리는 없는 토끼라도 찾아서 들어올리려고 애쓴다. 한편으로는 신이 우리를 내려다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토끼의 귀라는 모양새가 주는 말랑말랑한 느낌이 전해질 수록 엉뚱하게 귀를 잡아 들어올리려고 아득바득 사는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이번 호에서 모처럼 만나게 된 네팔의 시는 평안한 가운데 깨달음이 있었다. 네팔 예술원 현존하는 최고의 원로 시인이라는 마더 기미레의 시는 길지 않은데도 참 좋아 필사를 불러 일으키기 좋았다. 두 작품이 실려있는데 한편은 이웃하지 않고 홀로된 삶의 공허함을 다른 한편은 칸티푸르의 대한 애송시였다. 마더 기미레이외에 다른 시인들의 작품들도 두어편씩 실려있는데 유사한 분위기의 시를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네팔의 대표작품들의 분위기가 서로 닮아있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닮은 시도, 자연과 삶 그자체가 지니는 원대함을 노래한 시 모두 한몸처럼 아파하고 그 끝은 희망으로 가득찬 듯 보였다. 

에디터가 다른 글들도 그렇지만 특히 볼거리가 풍성하다며 서평 섹션을 에디터프리뷰에서 권하였기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총 세편의 서평 중 누구나 알지만 누구나 다 이해할 수는 없는 작품, 이상의 [날개]를 리뷰한 찰스 몽고메리의 서평을 꺼내본다. 아시아에서 출간한 바이링궐 에디션으로 읽은 이상의 날개를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바이링궐 에디션의 장점으로 작가의 짧은 소개와 작품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실려있어 탁월하다는 평을 했다. 작품 자체로 돌아가면 날개는 다른 많은 서평에서 언급한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남성'의 이야기다. 그 남성은 한국 남성을 대표하는 가부장적인 모습 대신 아내의 벌이로 생을 이어가는 나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나약함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의 끝을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마무리 함으로써 당시 일본소비문화가 한국에 미친 영향까지 교묘하게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박영희 시인의 [하얼빈 할빈 하르빈]으로 돌아왔다. 그가 하얼빈에서 처음 마주한 것은 얼후 연주였다. 슬픈데 슬프지 않고, 아픈데 아프지 않았다는 얼후의 음색이 궁금해져 동영상 사이트에 접속해 들어보았다. 영화속에서 많이 들었던 두 줄 현악기의 음색은 악기이름은 낯설지만 소리 자체는 전혀 낯설지 않았다. 저자의 말이 어떤 의민지 하얼빈에 가서 들어봐야 할테지만 소리만 들어도 전혀 모르겠다 싶지는 않았다. 할빈 하르빈 이라고도 불린다는 하얼빈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내용을 간추리면 [흑룡강여지도]에 해서여진 어촌의 본래 이름인 아라진이 하라빈으로 번역, 이후 1899년에 할빈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얼빈을 중심으로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러시아, 한반도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라 불렸던 고구려 유민들의 이야기까지 하얼빈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일뤄준다. 이어지는 내용은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사랑했다는 이효석의 [하얼빈]등 다른이의 글이 일부 발췌되어 있다. 만약 하얼빈 키티이스카야 거리를 걷게 된다면 중앙서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느 후작의 고풍스러운 서재를 연상케 한다는 서점 2층에 들러 한권의 책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누려보고 싶다고 강하게 느꼈다. 이외에도 시인이 들려주는 하얼빈의 풍경, 역사와 건물이야기가 60페이지 가깝게 이어진다. 문인의 시선에서 보이는 하얼빈 그 이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획특집'다운 분량과 내용이었다.


이번 호가 계간 아시아를 만난 첫 호는 아니었다. 리뷰를 적을 때 마다 어떤 섹션을 넣고 어떤 섹션을 포기해야 할 지 늘 고민이었다. 이번에는 개편된데다 기획특집이기 까지한 하얼빈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구효서 작가편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없는 네팔 시인들의 작품과 서평 그리고 국내 시인의 작품 한편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아마 절반도 안되는 분량이지 싶다. 홀로 즐기고 미처 꺼내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은 누군가의 글을 통해 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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