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조지프 나이 지음, 이기동 옮김 / 프리뷰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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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관련분야 베스트셀러 1위 / 조지프 S. 나이 -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미국의 세기가 종말을 맞이했는지를 논의하기 전, 저자는 각국의 관련 전문가들이 말하는 미국의 세기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를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의 종말이야 관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의견을 모아보면 저자의 말처럼 미국의 세기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점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때라고 볼 수 있다. 이전까지는 대영제국의 산업혁명이후 쌓아올린 헤게모니가 세계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으므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소프트파워면에서 볼 때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때는 그 1941년 전후가 된다. 물론 미국의 세기가 시작되었던 그 때가 미국의헤게모니 시대라고 말할 수는 없고 절반의 헤게모니라고 표현하는데 그 까닭은 소련의 핵무기 보유를 지켜봐야 했다는 점과,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결국 휴전이라는 완전하게 끝난 상태가 아닌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점 등을 꼽았다. 군사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경제적인 측면으로 볼 때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미국의 세기가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저자는 조목조목 여러가지 상황을 들어 부정하는 데 우선 쇠퇴라는 단어가 갖는 이중적인 의미부터 짚어준다. 한 국가가 쇠퇴했다고 보려면 그 쇠퇴가 내외적으로 한 국가가 몰락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네덜란드처럼 이웃하는 영국의 파워가 세지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들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 의미로 보자면 여전히 미국은 건재한 편에 속한다. 그럼 미국을 쇠퇴했다고 말할 수 있는 나라가 있는지를 따져보면 아마도 대부분 '중국'을 거론하게 될 것이다. 중국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 2장에서 러시아, 일본, 인도, 유럽, 브라질 등의 나라가 과연 미국을 견제할 만한 상대인지 알려준다. 인구가 많거나, 자원이 많거나 혹은 영토가 넓거나 소프트파워가 더 세거나 하는 등 더 나은 점이 있을수 있고 유럽연합, 혹은 두개국 이상이 협력했을 경우도 예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상대가 안되는 까닭도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본격적으로 앞서 언급한 중국은 과연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이 책의 주된내용이 다름아닌 중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국가의 소프트파워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만들어진다. 문화와 정치적 가치, 그리고 대외정책이다. 다른 나라들에게 호감을 주는 문화를 보유해야 하고, 국내외적으로 표방하는 가치가 호소력이 있어야 하며, 또한 대외정책 면에서 정당하고, 도덕적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을 만한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94쪽

우선 중국의 영토는 인도와 견주어도 결코 작지 않으며 러시아와 협력할 수 있다는 여지를 갖고 있다. 러시아 뿐 아니라 일본과 협력했을 때를 예상하면 그게 현실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미국의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중국의 유교사상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문화컨텐츠의 힘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정하고 인기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럴확률이 적은 이유도 명백하다. 과거 일본이 중국에서 벌였던 잔인한 학살과 현재 해협을 사이에 두고 표면적으로 진지하지만 민감한 사항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공산당의 존재는 소프트파워면에서는 결코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결국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시점은 다른 나라에 의한 쇠퇴가 아니라 미국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세우고 어떻게 소프트파워를 이어가느냐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분리되었을 초창기만해도 미국은 고립된 정치를 펼쳤던게 사실이다. 그때만해도 이웃나라에 영향력을 펼치는 정도가 미약했다. 하지만 자만에 빠져 이라크 침공이라는 실수를 범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국가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미국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는 불평등, 그리고 미래 인력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이냐 하는 것들이다. 정치제도를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것인지도 심각한 문제이다. 139쪽

저자는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위협이나 비교로 인한 쇠퇴는 여러가지 근거를 통해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내부적인 요소만 해결한다면 미국의 세기는 결론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다만 그 양상만 달라질 거라고 말한다. 어찌보면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눈으로 보면 강대국이고 따라잡을 수 없는 롤모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중국의 닫힌 정책과 모방하려는 기술력이 주는 위험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와 역사적인 과오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약해지는 일본, 주변국과의 유대관계를 개선하지 않는 브라질, 한가지 자원만 개발하려는 안일함과 국수주의에 늪에빠진 러시아를 통해 앞으로 우리나라가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쳐야하고 어떤 노력을 해야할지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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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 - La Villa de Paris
윤진서 지음 / 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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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La Villa Ed Paris

 

작가의 전작 에세이 [비브르 사 비]를 읽고서 다음 작품은 분명 여행에세이, 오로지 여행을 중심으로 쓴 특정[지역]의 낭만기라고 짐작했었다. 그때는 장기여행을 중단한지 꽤 오래된 상태라 그렇게 예상했던 거고, 여행에 다녀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그녀가 왜 에세이나 산문이 아니라 '소설'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것,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났으면 싶었던 일, 아예 일어나면 안되었던 일등 자기가 했던 여행을 좀더 아름답고 소중한게 간직하기 위해 선택한 장치가 소설이었을거라 생각한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는 생각할 필요없다. 작품속에서는 '실연'이 계기가 되었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여행자들 중 실연보다 더 많은 이유와 아예 이유없음 상태로 많이들 떠난다. 뭔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보다 비우기 위한 여행이 많고 소설 속 그녀도 여행을 통해 '인생의 축제'와 같았던 사랑을 보낼 수 있었다.

 

"상대가 모르는 걸 가끔 나도 모르는 거요." 13쪽

 

서른의 그녀는 다툼 후 횡하고 나가버린 남편을 두고 저렇게 말하는 아내의 말뜻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방이 모르는 걸 알고 있어야 부부의 호흡이 잘 맞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상대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 이론적으로 보면 완벽한 부부의 모습이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다면, 너무 꽉찬 상태보다 누군가 손길을 뻗을 수 있도록, 바람이 오갈 수 있도록 약간의 여유와 빈틈이 생긴다면 사랑도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고 유연해 질 수 있음을 그녀, '나'는 여행이 길어질 수록 깨닫게 된다. 그녀가 미처 말로 뱉을 수 없었던 인연들에 대해, 사랑을 생각하는 다른 관점에 대해서는 친구 '효정'이 대신한다. 빌라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반겨주는 이가 연인일 때도 행복하지만 말할 수 없는 피곤함이 전신을 차지해버릴 때는 오히려 '친구'가 열어주는 그 장소가 천국이 된다.

 

집에 돌아와 벨을 눌렀다. 벨을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언제나 기쁘다. 다른 누군가의 집이건 나의 집이건 간에 그곳은 가장 아늑하고도 모든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54쪽 

 

계획없이 떠난 그녀의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들을 만나고 그 인물들이 말해주는 자신의 얼굴과, 삶을 전해듣는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얼굴, 가진게 없는 얼굴, 텅빈 얼굴은 얼핏 들으면 '재미없는 얼굴'이자 전혀 호기심이 일지 않는 얼굴일 수 있지만 욕망과 위선이 가득찬 세상에서는 오히려 누군가에 의해 채워질 수도 있고 아예 망가뜨릴 수도 있는 '무(無)'의 상태가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그런 얼굴을 가진 그녀라도 여행지에서 비포선라이즈에 나오는 일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 그녀가 그런일은 소설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구나를 깨닫는 것처럼 [파리 빌라]는 분명 소설이지만 그래서 낯설지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온다.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치 책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우리들의 몫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으쓱했다.

 

모두가 현재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모든 과거는 미래를 낳는다. 오늘의 나는 사라지고 내일은 또다른 내가 태어난다. 매일매일이 조금 다른 '나'일 것이다. 내일이 온다. 136쪽

 

'나'의 사랑은 갑자기 뜨거워졌다가 갑자기 식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대가 모르는 걸 아는 척해서 떠나버린 것도 아니다. 어쩌면 상대가 감추고 싶었던 것을 들춰내서 떠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비밀과, 적당한 무지가 공존해야만 사랑이 유지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랑하면 웃음이 많거나 눈물이 많거나 혹은 둘 모두의 상태가 되버린다. [파리 빌라]는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연기와는 정반대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격정적이지도 않고 순백에 가까운 여리여리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삶과 사랑, 그리고 서른 살의 적당한 어리석음과 아직 많이 남아있는 희망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여행을 떠나기 전 읽었을 때 보다 돌아와서 다시 읽었을 때 더 좋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이야기로 내 여행을 좌지우지 당하지 말고 내여행과 그녀의 여행이 어땠었는지 비교하며 반추해보고 거기에 약간의 상상을 덧붙여 완성시키는 조작된 추억이 더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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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에서 식탁까지 100마일 다이어트 - 도시 남녀의 365일 자급자족 로컬푸드 도전기
앨리사 스미스.제임스 매키넌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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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지 반경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음식만 먹고 사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부산까지는 무리고 전주 정도가 약 160km, 즉 100마일이다. 그렇게 따져보니 소금은 물론 거의 대부분 수입해서 먹는 설탕과 소금은 없어도 되지만 결코 없어서는 안될 '후추'까지 포기해야만 한다. 제임스가 처음 제안할 때 앨리사가 왜 곧바로 동의하지 못했는지 이해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제임스의 제안에 말려버린 착한 앨리사지만 나였다면 절대 반대, 무조건 안된다고 소리높였을것이다. 세상에 밀가루 없이 어떻게 6개월을 버텼을까? 그러다가도 감자로 샌드위치를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손을 가진 남자가 함께 한다면, 그것도 요리는 무조건 남자의 몫이라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리뷰를 적는데 왜이렇게 중심을 못잡냐고 묻는다면 이 책 자체가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부분에서는 나도 해볼란다 로컬푸드! 했다가 또 페이지 몇장 넘겨 그들의 고난을 읽노라면 결코 할 수 없다 로컬푸드!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자의 추천글을 유심히 읽어본 독자라면 이 책이 출간된지 10년이나 지났으면서도 한국에 번역되어 나왔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이 책은 로컬푸드를 위한 책이 아니라 우리의 먹거리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이자 앨리사와 제임스라는 두 남녀를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특별한 책이었다.

 

현대도시에 살면서 이런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내가 미소 짓는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토요일 아침, 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고, 자전거에 신선한 채소 한 보따리를 실은 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106쪽

 

로컬푸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간단했다. 외딴 곳에서 손님을 맞아야 하는데 양배추 한덩어리 밖에 없었다. 주변 강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밭에 나가 채소를 거둬들이고 과수원에가서 과일을 가져와 샐러드와 디저트를 만들어 먹은 한끼의 식사가 제임스에게 '로컬푸드'로 풍성한 식탁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하지만 소금이나 설탕 등의 재료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터라 막상 로컬푸드를 선언하고 난 뒤 고생이 시작된다. 그리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연구도 함께 시작되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 연구발표에 의하면 우리가 식탁에 올리는 먹기리는 평균 250마일 떨어진 곳에서 옮겨지는 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주변에서 나는 식재료로 먹는 것이 운송비도 들지 않고 싱싱하게 먹을 수 있는데 왜 그 먼곳에서부터 식재료를 공급받는 것일까? 그것은 값싼 노동력을 포함 운송비를 감안하더라도 훨씬 저렴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국내 시장만 가봐도 중국산과 국산의 가격차를 봐도 알 수 있다. 또 한가지 책을 통해 알게된 사실은 '유기농'이라 할지라도 100마일 넘어에서 들여온 식재료가 많다는 것이었다. 로컬푸드로 1년 살아보기를 선언하기 이전에도 제임스와 앨리사는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유기농이란 단어가 로컬푸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재배방식의 차이일 뿐 결국 멀리서 넘어오기는 마찬가지다.

 

도시에서는 수백 개의 브랜드가 강렬한 광고를 동원해 경쟁하고, 새로 등장한 체인점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싸게 파는 전략을 구사해 소비자들이 기존 업체와 관계를 끊도록 유도했다. 사람들이 농촌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83쪽

 

이렇게만 보면 로컬푸드로만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고 실제 초반에는 꽤 많은 돈을 들여 한끼 식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정도 안정기에 접어들고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되는 밀을 찾아내면서 보통때와 비슷한 비용으로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현명한 이 커플은 예외사항을 미리 마련해 두었다. 친화를 목적으로 한 모임에 참가하는 경우라던가, 여행을 떠났을 때는 여행지를 기준으로 100마일 로컬푸드를 먹으면 되고 앞서 언급한 모임이 중식당에서 개최되면 해당 요리를 먹어도 무관하다는 것이다. 본문 뒤에 Q&A를 통해 궁금했던 사항이 상세하게 나와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중간중간 로컬푸드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도 일러스트와 함께 실려있어 그림이나 레시피를 다 읽은 뒤 혹은 읽기전 훑어보거나 표시해두고 나중에 레시피북으로 활용해도 된다. 로컬푸드를 제철에 다량으로 구입하는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저장방식등도 나오는데 실패담은 꼭 참고해야 한다. 무턱대고 많이 사들였다간 앨리사의 옷장처럼 옷대신 식재료가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심지어 상해서 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만 잔뜩 늘어놨지만 솔직히 앨리사와 제임스의 지인들이 벌이는 헤프닝도 만만치 않게 재미있고 앨리사네 가정과 제임스네 이야기만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믿었던 할머니가 알고보니 그다지 요리에 관심이 없었다던가 유년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과일을 따러다니는 추억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저 평범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영화나 소설속에 등장하는 유년기를 경험하거나 제임스처럼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요리를 잘하는 남자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난관에 매달려 구애를 펼치거나 정말 좋아하는 구두랍시고 낡은 줄도 모르는 엉뚱한 남자를 사랑해주는 여자도 충분히 멋져보였다. 지인들과 연구논문과 로컬푸드 도전기와 가족이야기가 끊임없이 제임스와 앨리사를 오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볍게 펼쳤다가 중간즘에는 메모하고 다시 펼쳐보는 재미를 주는 100마일 다이어트! 동참할지 말지는 나중문제니 로컬푸드를 실천할 생각이 없다며 읽지도 않는다면, 진정한의미의 '식사'를 놓치는 셈이다.

 

유리잔에 천국을 담을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미네소타였다. 그렇다면 벤쿠버는? 반쯤 열린 껍데기에 담긴 생굴과 화이트와인 한잔. 이런 사치가 없다면 삶은 음울할 것이며, 그것들을 제 땅에서 제철에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보물창고처럼 경험하는 방법일 것이다. 3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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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
사키야마 가즈히코 지음, 이윤희.다카하시 유키 옮김 / 콤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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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고, 반드시 보려고 했던 영화가 아니었는데 우연하게 만나 깊은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마치 당시의 내 상황과 고민을 다 알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질 때 소위말하는 '연'이 아니었는가 싶다. 책,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의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출판사가 연이었다고 말하고, 유학을 다녀 온뒤 일본 내에 출간하는 책을 해외로 알리는 중요한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한계를 느끼고 평생 나이들어 할 수 있는 일을 원할 때 섬, 카오하간을 만난 것도 모두 '연'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연'이라고 말할 때는 단순히 그 행동이나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를 뜻하지 않는다. 부족함이 없는 상태, 그야말로 더 뺄것도 더할 것도 없이 '풍족한'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목도 아마 '아무 것도 없는 풍족한 섬'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활을 위해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얻은 경험으로 이것 만큼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겼던 일. 영리 사업이 아닌 일. 모두가 즐겁게 하는 일.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 25쪽

알고 지낸 변호사를 통해 필리핀의 사유지를 구매하려고 나섰을 때 확인해보니 이전 소유자는 제대로 된 채무와 법적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차분하게 일을 처리해나갔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1988년 드이어 완전하게 섬 카오하간에 주인이 된다. 그곳에 이미 살고 있던 섬주민 300여명의 문제도 그가 오로지 영리목적이나 휴양의 목적이었다면 지인들의 조언대로 내보냈겠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 누군가를 해치거나 상처주는 일이 아니었기에 주민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고려했다. 자신도 즐겁고, 주민도 삶의 영토를 잃지 않으면서 지인들도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섬을 만드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2장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유지로 등록된 섬이 있는 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비교가 되었다. 어느쪽이 좋은 행정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떠올려지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제주에 유명한 세가지 중 한가지가 바람이듯, 카오하간도 바람이 늘 머무는 섬이다. 그래서인지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는 작은 돛단배 사카양이 교통수단이다. 바람을 이용하는 이동수단은 섬에 가본적도 없는 데 여유가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다.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들, 자연을 거스리거나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망치지 않고 그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섬주민들을 내쫓았다면 저자가 과연 섬에서 지금처럼 평안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심신이 더울 때 한 자락의 바람이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섬인 만큼 태풍의 위협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태풍의 무서움을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섬 주민들은 쓸데없이 태풍에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태풍에 날아가지 않는 집을 건축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제 뜻대로 할 수 없는 이기지 못할 적에게는 헛된 저항을 하지 않고, 부서져 버리면 다시 고쳐 짓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33쪽

바람과 태풍의 이치를 거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처럼 식수와 관련된 부분도 섬주민들은 지혜를 발휘한다. 비가 내릴 때 허둥지둥 하지 않고 빗물을 모아 마시기도 하고 요리에 사용하기도 한다. 벌레가 이따금 떠 있을 때도 신경쓰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요리용으로는 그대로 사용하지만 식수는 끓여마신다고 하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세부에서 사온 생수를 마신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섬의 빗물과 외부인들이 사온 생수의 오염도를 측정했을 때 빗물이 훨씬 깨끗했다는 사실이다. 섬을 산 이후에도 지인에게 기존에 하던 업무와 유사한 일을 부탁받았을 만큼 저자는 아에 일을 놓고 섬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생할 수 있는 일과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저자의 일복이 참 탐나기도 했다. 일본에 돌아왔을 때 서점에 들려 섬에 가져갈 책을 고르는 행복은 활자로만 읽는데도 행복한 기운이 전해졌다. 섬에 돌아가면 이내 저자는 섬주민들의 일상을 옅보고 좋은 점과 일본사회에 다른 점을 독자에게 알려준다.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삶은 끝도 없고 흥미롭기만 했다. 심지어 섬의 사는 개는 도시의 고양이처럼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기 보다는 자기만의 삶을 사는 동등한 입장이라는 부분은 웃음이 났다. 도시의 유약하고 주인만 바라보는 주인바라기 개들이 카오하간으로 간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인도에는 이런 철학이 있다. "인생에는 배울 시기, 사회 속에서 살아갈 시기, 사회에서 배운 것을 사회로 돌려주는 시기가 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통과한 다음에는 자신만의 세상에 다다르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219쪽

저자는 아직 자신이 현세를 떠나 숲으로 갈 시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배운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시기, 어쩌면 현세를 떠나는 마지막 시기직전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지도 모른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나눔'과 '공유'다. SNS가 자기과시와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 정보의 홍수의 대표라고 말하지만 순기능적인 면을 보면 그것은 단연 공유였다. 카문기 섬의 주인처럼 오로지 평화를 위해 섬을 꾸려나가진 않지만 섬에서 전해져 오는 방식 그대로를 수용하는 저자의 카오하간 운영방식이 내 입장에서는 훨씬 '공유'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카오하간의 특징이자 진정한 의미에서 '풍족할 수 있는'방법인 것이다. 섬을 통해 교류가 늘어나고 동반자를 만날 수도 있었던 만큼 카오하간은 저자에게서나 그 섬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연'이다. 그 연은 두 역자에게도 이어진 듯 했다. 늘 불어오던 바람과 더불어 살아숨쉬는 '젊은 바람'이 불어주길 기대한다고 저자는 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섬을 만나면 어떤 기분일까 싶다가도 내가 젊은 바람인지에 대한 확신은 서지 않았다. 혹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하거나 '연'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저자가 그토록 기다리는 젊은 바람이 되어 카오하간으로 날아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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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
이수아 지음 / 자연과인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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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여행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행선지가 산티아고였다. 보통 한달 여정으로 떠나지만 짧게는 15일 전후로 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해놓고도 미련이 남았었다. 올 초부터 하루 10km걷기와 주말마다 20km전후로 걷기를 병행했던 것도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서라기 보다 혹시나 떠나고 싶을 때 체력이 염려되어 가지 못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마지막 아웃 일정을 스페인이 아닌 런던으로 했던 것은 비움을 위한 산티아고 행 이전에 학부시절 부터 꿈꿨던 '더블린'을 직접 보고와야겠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헌데 저자가 순례여정을 마치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에 더블린을 경유했다고 하니 좀 더 유연하게 생각했어도 좋았겠구나 싶었다. 물론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그 선택의 후회도 없고 오히려 준비없이 산티아고로 떠났다면 그것은 고행이 아니라 무지였겠구나 싶었다. 무작정 걷는 것보다 최소한의 준비와 목적을 가졌을 때 비로소 산티아고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책, [사랑하면 산티아고로 떠나라, 그녀처럼]을 다 읽고서 든 결론이었다. 저자 이수아, 그녀는 왜 산티아고로 갔을까.

 

평생 독신으로 살거라 다짐했던 저자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남편 고든을 만나게 된다. 첫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진 것은 부럽고 축하할만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을 키워가는 그 시점, 고든이 피부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고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끼면서도 고든은 순례길을 떠난다. 어떤 기적을 바라고 떠난 것이 아니라 암환자를 위한 모금활동을 위해 떠난 그 여행을 고든이 하늘로 간 뒤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흔히 순례기나 여행기를 보면 길위에 적어놓은 메모 혹은 일지를 바탕으로 회상하며 쓰기마련인데 이 책은 달랐다. 바로 그 길위에서 쓴 그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길을 떠난 지 3일 째 되던 날이 첫 일지고, 그 다음날, 어떤 날은 걷고 난 뒤 숙소에서 바로 쓴 내용도 있다. 마치 책을 펼쳐 읽는 게 아니라 현재 여행중인 블로거의 포스팅을 접하는 생생함이 느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 하면 다들 큰 시련과 상처를 껴안고 좀 더 단단해지기 위해 떠나기 마련인데 '사랑'을 위해 떠난 그녀 덕분에 회환이나 우울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발에 상처가 생기고 아킬레스건이 당긴다고 고통을 호소하지만 오히려 그녀가 고통을 호소하는 그 순간마저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겸손함이 느껴졌다. 동행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처음으로 마셔봤다는 보카디요는 과연 어떤 맛일까? 싶으면서 꼭 산티아고 여정에 발을 딛는다면 마셔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길위에서는 누구나 오랜 벗처럼 느껴진다. 오로지 걷는 것 밖에 할일이 없고, 견디는 것이 전부인 그 여정은 타인의 이야기를 사심없이 들을 수 있는 좋은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동행이 없을 때는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속한 곳은 스코티시 챔버 오케스트라이다. 동양인 최초 첼리스트로 조금 거만할 것도 같은데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면 늘 웃고 곁에 있는 누구던지 그녀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흥미로운 것은 떠나는 목적자체가 희망을 품어서인지 길위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과 동행자들과의 추억이 왠만한 고급 여행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이 여유로웠다.

오늘 밤에는 또 다른 아홉 사람을 위한 친교의 만찬이 있었다. 요리는 제이드와 죠지의 몫이었다. 와인은 넘쳐났고 우리의 만찬은 늦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77쪽

하지만 걷고 또 걷는 여정이 늘 파티로만 가득찰 수는 없다.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기전 여유롭게 걷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전까지 그녀는 뒤에서 다른 이들을 쫓아야 했고 때로는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식당에 찾아가 하룻밤을 부탁해야 할 때도 있었다. 순례길의 날씨는 예측은 할 수 있지만 변화무쌍해서 비가 오기도 하고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추워질 때도 있고 뙤약볕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부분을 적어가는 날에도 그녀는 긍정적이었다. 비를 많이 맞았지만 숙소를 잘 만나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거나 하는 부분을 감추지 않았다. 구토로 인해 아에 일정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는 친구들이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고 그 순간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즐겨야 했다. 음악은 나를 즐겁게 했고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중략-그것은 나로 하여금 음악에 맞춰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226쪽-

고든과의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녀가 순례여행을 시작한 날도 우연처럼 고든과의 1주년 결혼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남편과의 추억과 그가 미처 마치지 못한 모금활동을 위해 길위에 올라섰지만 그녀 스스로 표현하기를 자신에게 '환골탈태'가 일어났다고 할 만큼 더 큰 행복과 기쁨을 얻고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순례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은 파울로 코엘로의 '순례'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산티아고에 다녀왔어도 참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은 남았지만 역시나 처음 든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준비없이, 목적없이 떠났다면 그녀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무엇을 얻고 무엇을 비울 수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번역된 언어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과감없이 써내려간 그녀의 순례여정은 그동안 읽었던 산티아고 여행기 중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깨닫기 위해서가 아닌 사랑을 위해 떠날 수도 있는 순례길,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그녀의 일지는 일말의 두려움으로 망설이고 있는 예비 순례자들에게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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