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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천부적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영어의 역사
필립 구든 지음, 서정아 옮김 / 허니와이즈 / 2015년 3월
평점 :
품절
세계사를 품은 영어 이야기 - 필립 구든 지음(서정아 역)

영어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하게 되었는가?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왜 영어가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지는 물론 책을 읽다보면 간접적으로 세계사를 공부할 수 있는 부교재로도 손색이 없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세월이 꽤 지난 나와 같은 독자들이라면 새삼 복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이고, 현재 학습중이거나 아직 초중등 과정을 수학하는 학생들에게는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바벨탑'과 관련된 일화를 들어본 적이 있을것이다. 원래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언어, 통일된 단어를 사용했지만 신에게 도전이라도 할 것처럼 높은 바벨탑을 쌓아올리자 신이 노여워하여 인간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어떨까? 의사소통이 원활해서 지금 보다 분쟁이 덜 했을까? 외국어 교육이나 관련 업종 등등이 사라지면서 언어에 쏟았던 노력을 한 곳으로 집중해 효과적인 지식을 쌓아올릴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람들이 만국공통어를 가지려는 까닭은 이해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지만 지역 분포도를 보면 영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반드시 직업적 성공이나 좋은 학점을 위해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요할게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문학, 문화등을 공부하기 위해 언어가 기본이라는 점을 깨닫고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영어의 시작은 어느 곳, 어느 시대인가?
로마인들이 나타나기 이전 영국과 아일랜드에는 켈트어를 쓰는 사람들이 살았다. 켈트어는 유럽 어족에서 오래전에 갈라져 나온 어파다. 그 후 영국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5쪽-
영어의 중심 잉글랜드는 본래 켈트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켈트어를 현재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코틀랜드 지역의 극히 일부다. 로마인들이 지나간 이후 유럽 북서부 끝자락에 살던 집단들이 몇 백 년에 걸쳐 영국을 침략했는데 이 침략자들의 언어가 곧 영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주변국들의 세력다툼으로 프랑스가 영국을 집권한 때도 있었지만 언어를 지배하지는 못했다. 언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문화를 통째로 지배할 수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만 떠올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앵글로색슨인은 켈트 문화를 업신여기고 무시했다. 우월감은 커녕 열등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도한다. 39쪽
앵글로색슨인에게는 제대로된 글자가 없었지만 원시적인 문화는 아니었다고 말하며 <베어울프>서사시를 그 증거로 언급한다.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알파벳과 같은 문자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후 200년간 잉글랜드는 평화를 맞이했지만 프랑스 등 인근 나라의 침략은 이어졌다. 언어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침략의 흔적은 남았다. 고대 노르드어를 사용한 바이킹의 경우 앵글로색슨어(고대 영어)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영어 중 상당수가 고대 노르드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영문학을 공부할 때 가장 처음 배우는 작가 제프리 초서와 관련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다름아닌 그가 표준어가 아니라 사투리를 사용하였으며 당시 사투리는 다른 지역 사람과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제각각이었다는 점이다. 초서가 <캔터베리 이야기>이야기를 사투리로 쓴 덕분에 그가 사용한 사투리가 표준어가 된 것은 작가인 초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영어의 가장 큰 장점은 맞춤법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변형이 쉽고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저자가 그 사례로 든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었는데 그가 쓴 작품(멕베스, 햄릿, 템페스트 등)을 보면 하나의 단어에 여러가지 뜻을 부여하거나 품사를 변경시킨 흔적이 자주 보인다. 셰익스피어의 경우 별도의 챕터를 구성해서 그를 둘러싼 흥미로운 가설과 일화등을 알려주는데 좀 더 관심있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 호기심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영어가 발달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언어가 된 계기는 16세기 말에 나타났다. 영국이 제국을 건설하고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미대륙 동부 해안에 소규모 식민지가 하나둘씩 세워졌다. 이러한 식민지 건설은 청교도의 도착과 더불어 신대륙에서 영어가 뿌리를 내리는 데 기초를 마련했다. -147쪽-

영어의 탄생배경과 영문학 초기의 문학 및 영문학이 꽃피울 수 있었던 셰익스피어 등을 포함, 영어의 발달사가 총 7장 중 3장까지 이어진다. 4장부터가 근대 영어 및 미국의 독립을 다루고 6장 부터가 영어의 세계화라는 큰 제목으로 영어가 다른나라에 전파되었던 계기와 19세기 영어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지는 까닭에 두번째로 핵심이 될 만한 영어가 과연 앞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 것인지를 다룬 6장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저자는 202년경에는 영어를 사용하거나 배우는 모든 사람 가운데 원어민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도 가장 많은 영어학습자는 중국인이며 이 숫자가 미국의 총 인구수를 뛰어넘는 다고 한다. 그들이 배우는 영어가 단일화된 표준 영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한다. 쉬운예로 우리가 영어를 배우러 어학연수를 떠나는 국가는 미국보다는 그보다 학비가 저렴한 말레시아, 싱가포르,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다. 영어의 근원지인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비싼 학비가 부담스러워 정작 우리는 표준영어라고 떠올리는 장소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영어를 배운다. 물론 그곳에 영어도 표준영어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변종 영어가 나타난 이유를 역사에서 찾았다.
말레이반도와 같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서는 현지인도 영어를 익혀야 살아가는 데 유리했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던 브리튼인이 라틴어를 몇 마디라도 알아둬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264쪽
위의 경우 생존과 편의를 위해 영어를 배웠지만 실제 원어민의 교육을 받기 쉽지 않았기에 조금 다른 영어가 파생되었다고 말하며,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달리 중국은 무역과 상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런가하면 싱글리시, 즉 싱가포르식 영어는 영어, 말레이어, 중국의 푸첸어 단어를 섞어 쓰는 말로 영어 단어의 뜻이나 형태가 바뀌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영어를 긍정적으로 '배우기'위해 변종된 경우도 있지만 스페인과 프랑스처럼 영어의 번성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서 변종 영어가 탄생되기도 한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다면 이런 변종 영어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영어를 사용하면서 지역이나 민족간의 서로 이해하지 못할 단어가 존재하며 요즘은 이메일이나 인터넷 등을 사용하면서 생겨난 신조어까지 통일된 언어라고 부르기에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런 문제를 구체적으로 7장에서 다뤘다.
영어권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허용되는'언어 공동체에 살고 있다 생각하면 착각이다. 320쪽
말, 그리고 글은 본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정치적으로 사용되면 한 개인의 문제를 떠나 국가간의 문제로 번질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과정에서 '침략' 및 '민족적 우월성'등 부정적인 측면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인종차별적인 단어를 작품에서 그대로 표현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사례로 들며 저자는 말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영어를 잘 사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는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영어의 활용과 학습의 방향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잊고 있었던 내용과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며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서가 문제였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부교재로 사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이 책의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책을 다시 펼쳐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영어공부하는 데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어 좋고, 영어는 싫지만 영어의 탄생과 파생과정을 세계사 속에 녹여내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짧게 평하기에는 책이 가진 장점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쉽지 않은 내용을 국내 독자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번역해준 역자의 노력도 상당해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