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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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우리의 문화적 가치에서 뒤로 미루거나 커피로 잠재우거나 무시할 수 있는 것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지만 예방의학에서는 잠을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자는 것을 최선의 방법 중 하나로 꼽는다.

 

평소에 잠을 적게 혹은 많이 잔다기 보다는 잠을 자는 행위라고 할 것 까진 아니지만 '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기는 하다. 특히 자발적으로 덜 자고 몰아서 자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착각했던 어느 시기에는 그야말로 잠이라는 것은 먹지 않으면 안되지만 그 시기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게임상의 '약물'과 같았다. 그러던것이 사회활동을 하고 혼자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어쩌다 누군가와 동침(?)을 해야할 때면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숙면을 취하기 힘들었다. 뿐만아니라 거의 매일같이 꿈을 꾸는 덕분에(실제 꿈은 누구나 꾸지만 기억하느냐에 따라 나뉠 뿐이다.)달콤한 꿈을 꾸기 위해 일부러 자려고 애쓸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꼭 읽고 싶었던 이유는 중학교 입할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늘 가위에 눌려 제대로된 잠을 자본적이 없었다. 그때는 수면제를 먹는다거나 그런것이 의미가 없었던게 잠을 못자는게 아니라 중간에 가위에 눌려 깨는 것이 문제였던터라 작가와 마찬가지로 잠이 든 상태에서 일어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와 내 엄마가 할 수 있었던 방법은 어릴 때처럼 엄마가 늘 내가 잠들때까지 곁에서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토닥여주는 것이었는데 이게 꽤 효과가 있었다. 이방법이 효과 있었던 이유를 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어 반갑기 까지 했다.

 

책의 내용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저자나 편집자가 나눈것이 아니라 읽고나서 내가 임의대로 나눈것은데 일단 첫번째 단락은 의사도, 상담가도 아닌 그저 기자였던 저자가 왜 잠의 대해, 수면에 대해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알고자 했는지에 대한 서막즘 된다. 그리고 두번째는 저자가 수면전문가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는 부분들과 우리가 몰랐던 잠의 과학과 비밀들을 조금씩 알려주는 부분이며 마지막 세번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정리해볼 수 있는 편안한 잠을 자기위한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저자가 잠에 대한 연구하게 된 것은 '통증'때문이었다. 어릴 때 부터 잠버릇이 심해 아내에게 하이킥을 했을정도 였는데 왜 이전부터 병원에 찾아가지 않고 잠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았냐고 묻고 싶을지경이지만 어찌되었든 본인이 수면중에 집안을 걸어다니다가 벽에 세게 부딪힌 후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수면상태를 체크하고 검사를 통해 얻게된 결말은 특별한 이상없음, 그리고 잠에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었지만 아직도 밝혀내진 못한 부분이 그보다 더 많다는 애매모호한 의사의 답변 뿐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이 험난하면서도 흥미로운 '잠으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책을 대충만 훑어봐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에는 잠, 꿈 그리고 밤과 관련된 명화들이 다양하게 실려있는데 그것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잠이란 것이 연구라기 보다는 마치 인간의 삶과 다른 영역이라 생각되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위눌림마저 악마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잠의 대해 무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고 해도 나역시 책을 읽고서야 깨달은 점이 많다. 앞서 언급했던 나의 어린시절 헤프닝을 보면 잠자기 전 규치적인 습관들이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가능했던 결과다. 낮과밤에 대한 경계가 모호한 아기부터 유소년들은 수면시간 이후에 대해 불안정한 사고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수면이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잠들고 난 이후에 그 미지의 영역은 위험하고 두려운 부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잠을 적게 자는 것도 나이가 들어 다른 청장년 시기때보다 자신을 지켜야 할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내용은 좀 뒤에 나오긴 하지만 초반에 등장하는 반수면 상태에 동물이야기가 비교했을 때 노인들이 숙면을 취하기 위해서는 그들대신 보초를 서주는 반수면상태의 동료-간호사, 요양사 혹은 배우자나 자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잠을 잘자기 위해 자기전 규칙적인 활동이 도움이 된다는 것 역시 자기개발서에서 흔히 보았던 규칙적인 생활의 강조라던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다소 강박증을 가진 바른생활 사나이들이 정확한 시간에 자고 일어났던 것을 떠올려봐도 이해가 쉽다. 가장 관심있었던 부분인 꿈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빠지지 않는 프로이트의 해석과 이와 정반대되는 교수들의 이론을 집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외우고 공부했던 것처럼 프로이트는 대부분의 해석을 유년시절의 받았던 억압과 고통 그리고 성적인 해석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후 케빈 홀 교수는 꿈을 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서 꿈이란 것이 특별한 상징이나 억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예측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이후에도 정체된 듯하다가 어느 학자의 설에 의해 다시 꿈에 대한 해석이 발표되었지만 굳이 정리하면 다소 부정적인 측면이 주를 이뤘다. 이와는 다르게 꿈을 '치료'법의 하나로 받아들인 어니스트 하트만의 경우가 기억에 남을 뿐더러 현실문제를 되돌아보고 긍정적으로 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저자와 마찬가지로 맘에 들었다.

 

책의 내용은 어찌보면 방대하고 달리보면 이런저런 이론만 나열하고 제대로된 분석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면 저자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잠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며 연구해야 될 부분이 많은 분야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자는 의학적으로 이분야에 전문가도 아닌셈이다.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우리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의문을 풀기위해 전문가들을 찾아나섰다고 보는게 맞다. 하지만 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우리가 잠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좋은 환경, 침구나 조명등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잘 자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껴안고 있거나 인공조명을 환하게 밝혀둔다면 잠은 우리와 친해질 수 없다. 또한 그런 불안정한 상태에서의 수면은 우리에게 좋은 '꿈'을 꾸게 할수도 없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애매한 결론이라고는 했어도 그 어떤 책보다 적어도 우리가 수십권의 책을 읽고 수십명의 전문가를 만나야 알 수 있었던 잠에 대한 의문을 적어도 이 책은 많이 해결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람이 잠을 안자면 정말 죽나요? 숙면을 취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등의 해답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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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집 - 집을 헐어버리려는 건설감독관과 집을 지키려는 노부인의 아름다운 우정
필립 레먼.배리 마틴 지음, 김정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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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마틴& 필립레먼 '나의 삶 나의 집'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선정된 100세할아버지의 모험담을 담은 소설은 불가능할 것 만 같은 역사속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한 남자에 의해, 또 그남자가 100세 노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이 책, 나의 삶 나의 집의 등장하는 여든넘은 이디스 역시 그 할아버지의 삶과 비교했을 때 드라마틱한 부분만 놓고 보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인데다 심지어 실화이기에 훨씬 더 흥미롭지만 정작 이 책의 메인 홍보는 노인의 모험담이라던가 누군가의 드라마틱한 삶에 기대기 보다는 애니메이션 'UP'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흥미위주 혹은 자기개발서식의 내용은 물론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터전이자 집의 중요성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지키고 싶은 누군가와 그 무엇을 지켜가는 것 등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가치까지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명인 배리 마틴이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배리와 이디스와의 만남은 쉽게 생각해봐도 도무지 가까워지기는 어려운 관계이다. 쇼핑몰을 지으려는 건설사의 현장담당자와 끝까지 버티고 자신의 집만 남은 상황에서 백만달러를 주고 심지어 그 이상의 보상도 해준다는데 이디스는 이야기를 듣는 척 하다가도 버럭 소리를 지르는 누가봐도 꼬장꼬장한 늙은이의 모습이다. 배리에게도 처음부터 친절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운명인지지 아니면 배리의 인성이 보통의 사람보다 더 낙천적이고 어느 한편으로는 시크해서 인지 소리를 지리는 이디스를 미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않도록 한발짝 물러서며 나이든 사람과 친분을 쌓는 법을 배워간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디스와 막 교제가 시작될 무렵 배리의 부친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되면서 배리는 이디스를 통해,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양쪽 모두를 그리고 나이든다는 것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괴팍하게만 보이는 이디스 할머니에게는 앞서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100세 노인과 마찬가지로 믿기 힘든 놀라운 이력을 가지고 있어 그것이 흥미로웠을 수도 있다. 심지어 초반에 배리는 이디스의 그런 이력을 반신반의 하며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점차 깨닫게 되는 것은 이디스의 이력이 사실여부를 떠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 온몸에서 그리고 행동과 말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보통의 사람에서는 느낄 수 없다라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그녀와 있을 때 이것저것 지식과 교양을 배워가고 나이들어가면서 늘어나는 아집과 불만이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는 시련과 상처에 의한 것임을 깨닫게 되는 등 배리가 깨닫게 되는 부분이 늘어감에 따라 독자도 덩달아 자신의 부모와 나이든 사람들 그리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다들 내가 이사 가기를 바라고 그게 나한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는 내가 잘 알아. 난 여기서 죽어야 해. 여기가 내 집이야. 난 여기서 살고, 여기서 죽고 싶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책을 읽는 동안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계속 떠올랐다. 아직 일흔도 안되셨지만 분명 아이들의 눈에 우리의 부모도 '노인'이 되셨고 마치 내가 건설업자가 된 것 처럼 시골집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고 엄마가 살림하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근처 아파트로 옮기시라는 말을 여러번 했었던터라 더더욱 그랬다. 이디스의 말처럼 그저 자기가 살던 그집에서 그렇게 별일 없이 살다가 죽고 싶다는 것이 어디가 잘못된 걸까. 배리처럼 난 왜 이 당연한 주장, 주장이랄 것도 없는 것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강요했을까 자기반성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디스의 이력을 하나씩 알게 되는 것, 배리와 이디스의 관계가 점차 호전되는 것을 볼 때면 마치 그 곁에 내가 앉아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하지만 배리가 이디스의 삶에 들어오면 올 수록 그만큼 이디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지고 있음을 알기에 씁쓸했다. 더불어 이 모든 일들의 배경이자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집'의 소중함을 거듭 느낄 수 있었다. 연말 그리고 전세난으로 힘겨운 요즘, 이 책을 읽고 누군가는 자신의 부모님을, 집이 없는 것에 대한 설움 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타인과의 교제로 힘겨운 이들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실화'라는 믿을만한 조언집이 되어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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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괜찮겠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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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망양'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합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일에 열중한 나머지 중요한 일을 잊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사카 코타로. 사신치바나 중력삐에로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간절하게 저자의 산문집을 기다리고 있었을거라 생각한다. 제법 진지하면서도 위트있는 그의 문체는 전체적인 스토리를 떠나서 장면 장면만 봐도 참 재미있는 마치 4컷 만화의 장점과 장편만화의 스토리를 잘 버무린것 같기 때문이다. 거기에 스노우캣의 일러스트까지 더해졌으니 탐날만한 책이었다. 읽고 난 지금은 내용자체가 정말 맘에들어 일러스트가 살짝 묻힌 것 같아 아쉬울 정도.


4개의 구성으로 나뉘어지는 데 1부는 읽는 내내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 가 떠올랐다. 소소하게 웃음짓게 만드는 작가와 아버님 덕분이기도 했고 타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그에게는 엄청난 일이 되는 듯한 엉뚱한 매력이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소장하고 희귀본은 계속 단종상태로 유지되길 바란다거나 극장에서 아주 사소한 소음과 앞좌석의 누가 앉으냐에 따른 행불행에 대한 소심한 의견은 나와 너무 같은 맘이라 나도 역시 소심한 인간이란 결론에 웃프기도 했다. 만약 1부만 읽게 된다면 이 작가의 글이 다소 가볍거나 조금은 에세이에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2부 부터는 작가가 보거나 읽은 영화, 음악 그리고 만화 등 리뷰가 주를 이루는데 내용은 소설가의 활동이라던가 소설 자체에 대한 견해도 담겨져 있어서 1부에서의 잡담이 다소 아쉬웠던 사람이라면 2부부터 집중해도 좋을 것 같다. 하나의 작품이 쓰여지기 이전 상황과 쓰여지는 동안에 과정등도 담고 있어 작품을 통해서만 보여지는 작가의 단면을 좀 더 확장시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마왕이란 작품의 경우 무언가 사회참여적이고 정치적인 부분이 엿보였는데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점 등이 그랬다. 2부에서 처음으로 스노우캣 일러스트의 장점이 보여지는 데 우스꽝스럽게도 개의 코에 침발라주는 컷이다. 이건 사람이 직접 나서는거보다 의인화된 스노캣만이 할 수 있는 점이 아닐런지. 더불어 작가의 아버님은 중간 중간 작가의 위트가 부족하다 싶을 때 꺼내쓰는 비장의 무기란 생각이 들었다. 3부에서는 앞서 1,2부에 등장했던 이야기에 살을 더 붙인 느낌이 드는데 그도 그럴것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은 이미 발표된 글들이라 시간 순서상 나중에 오게된 글이 3부에 몰려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에 겐자부로의 '외치는 소리'미주에는 아에 작가가 나중에 한권의 에세이집으로 묶일줄 몰랐다고 자백(?)까지 한다. 덕분에 그 책이 정말 무슨 내용이길래 싶은 맘에 결국 읽어봐야 할 책 목록에 올릴 수 밖에. 그런가하면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만화책의 경우는 읽고 싶지만 읽을 수 없는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 다행히 그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도라에몽은 쉽게 구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3부까지 읽으면서 이렇게 위시리스트를 적다가 괜시리 허망해지는게 4부에서 떡하니 작가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와 작품리스트를 공개해주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작가가 되기 위한 방법론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가볍지만 제법 작가가 되려면, 저자처럼 되기 위해 무엇을해야할지 메뉴얼을 구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파트이기도 하다.


작가가 된지 10년이 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쓰여진 에세이집으로 작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고 그런가하면 늘 새로운 작품, 이전에 접해보지 않았던 내용으로 출간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바람도 보이는데다 누군가 작가가 되려고 한다면 이렇게 해보는건 어떠냐며 조언을 받았던 입장에서 해주는 입장으로 성장하는 '전문가'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작품을 의뢰받고 탄생하기 까지 어떤 의도와 배경이 있었는지 숨기지 않고 공유해주는 '열린'모습과 '겸손'한 작가의 면모가 참 부럽고 멋져보였다. 무작정 작품만 던져놓고 긴 시간 함구하거나 모든 것이 독자의 상상에 달려있다고 외면하는 까칠함이 시크한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들 보다는 난 확실히 이런 모습이 훨씬 '더 괜찮은 것'같다. 한마디로 독서망양을 부르는 책을 고르라면 이 책도 포함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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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 서울의 풍경과 오래된 집을 찾아 떠나는 예술 산보
최예선 지음, 정구원 그림 / 지식너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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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아홉에서 스무살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던 그 겨울, 처음 전혜린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을 알고부터는 내가 어디에 존재하던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즘 누구나 그이름을 알고 조심스레 결심하듯 나또한 서른에는 나의 자유의지로 삶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런마음이 어느 순간 사라졌을까 지나간 시간을 더듬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책, 오후 세시, 그곳으로부터에 실린 전혜린편을 읽고서야 내가 왜 기억을 잃었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후 세 시, 그곳으로 부터는 저자 최예선이 서울 이곳저곳에 남겨진 혹은 이제 완벽하게 물리적으로는 사라졌고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는 '예술산보'의 결과물이었다.

 

예술가란, 예술이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시대를 통과하며

그 시대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란게 별거 없다싶지만 그 전에 예술가들은 시대의 불안을 가장 민감하게 감지하는 존재라고 표현한 것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시대의 불안속에 몸과 맘이 뒤틀리기보다는 그저 숨고 모른척 외면하며 살아가는 나는 그래서 서른에 죽지못했었고 예술가일 수가 없었던게 아닌가 싶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예술가들의 입장이 되어 그시절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기도 하고 혹은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되어 가상의 글을 적어놓기도 한다. 대게는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여자로 태어난 까닭에 아무래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여성예술가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때문에 최초의 서양미술을 배우고 미국과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나혜석편을 이야기하고 싶다. 작품활동을 할 때 공연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결혼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는 말에 걸맞게 그녀가 이혼을 한 이후 마치 그녀의 예술적 능력이 제로가 된 듯 그녀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그림은 단 한점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유학을 다녀오고 열렸던 귀국전시회에서는 5천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던 그녀의 전시회가 그토록 초라해진 이유는 오직 그녀가 '이혼녀'가 되었을 뿐 오히려 예술적인 영감은 마음의 상처와 원숙함을 더한 이후였을텐데도 말이다. 나혜석이 여자를 위한 미술학사를 열었던 그장소는 이제 사라지고 미술관이 새로 들어서있다고 한다. 책에는 현재 남아잇는 곳들에 대한 추억보다 이미 사라지고 자취를 감춘 장소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 한켠이 쓸쓸해졌다. 그래도 이런 경우는 덜한편이다. 서울의 아픔과 어두움을 강하게 어필한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장소가 된 피카디리 극장과 그 시대적 배경에 대한 내용은 더욱더  참혹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그 다음해에 열린 88서울올림픽. 미처 제대로 잡히기도 전에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색 비둘기가 날아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2장이 애도가 주제인 까닭에 슬펐어도 그만큼 마음이 가장 오랜시간 머물며 지난 날을 반추하기에 좋았다. 만약 슬픔보다 구보씨처럼 혹은 박완서처럼 그저 추억의 장소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사라진 장소가 아닌 실존하는 장소를 거닐고픈 이들에게는 1장이나 3장을 권하고 싶다.

 

오후 세 시, 저자는 서울에 남겨진 예술가들의 흔적을 쫓아 예술산보를 했다. 30여년전 기형도는 그 무렵 오후 4시에는 중앙일보 기자실에서 노트를 꺼내어 문학인이 되어 시를 적었다.  혹은 약속도 없이 무작정 학림다방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전혜린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한동안 오후 세시의 나라는 책을 읽고 그날 그날의 소소한 풍경을 블로그에 포스팅을 했더랬다. 이제 곧 찾아올 오후 세시 혹은 네시즘의 나는 무엇을 하게될런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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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지음 / 지식채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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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 석좌교수 장하석.

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올 초에 EBS에서 특별기획으로 진행되었던 과학철학 강의를 몰랐던 사람들이라면 장하석이라는 이름보다 아마 '나쁜사마리안들'이란 책으로 몇 년전 큰 관심을 일으켰던 그의 형 '장하준'교수만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에 워낙 화제가 되었던 책과 저자였던터라 관련 강좌와 책을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딱히 무언가 큰 '깨달음'이라고 할 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하지만 무엇때문인지 그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온도계의 철학'이라는 그야말로 전문서적 - 실제 이 책은 2006년도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러커토시상을 받은 저술-임에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으려고 애썼었다. 물론 그 책을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친근한 문체와 독자로 하여금 마치 이해가 되고 있는 것만같은 착각에 빠트리는 묘한 매력에 사로잡혔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 책,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를 보고 이책은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역시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책의 내용은 앞서 언급했던 EBS에서 기획한 장하준 교수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강좌에 좀 더 살을 붙인 결과물이다. 만약 책의 접근이 수월하지 않다면 강의를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어짜피 그 강좌를 보게되면 이 책을 읽어보고 싶을 수 밖에 없으니 결국은 이 책만 읽어도 되긴 하다. 과학철학. 철학도 어렵고 과학도 어려운데 이 두학문이 합쳐지면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과학의 정의도 알아야 하고 철학은 또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책의 내용을 종합해보자면 사람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사회가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 무언가 기존의 이론보다 더 나은 개념이나 기술을 익혀야 한다.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는 과정속에 의견이라는 것이 나뉘어 지고 이것을 서로 비판해 가는 과정이나 행위 자체를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면 이렇게 어느정도 결론이 난 이론들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이 과학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가 1700년대에 천왕성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육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토성까지 였다. 이후 천왕성이 발견되었을 때 기존의 이론에 적합하지 않아 처음에는 무시되었던 이론이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기존이론과의 비교로 밝혀낼 수 있었다. 이 현상을 보면 과학은 끊임없이 비판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는 포퍼의 이론과 정해진 자연과학을 이론에 끼어맞추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전 할 수 있다는 쿤의 이론이 대립하게 된다.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긴 하지만 양쪽의 말 모두 틀리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관측을 통해 증명해왔던 가설, 귀납적 추리이론의 경우가 일반적이었던 것을 '흑조'의 발견으로 귀납적 추리는 결국 과학적 결론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오점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대략 파트1에 해당되는 내용이고 파트 2부터는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적이 과학철학을 배워가게 되는데 이부분은 책 리뷰라고 적기에는 지나치게 리포트적인 부분이라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보다 장하석 교수의 명저 '온도계의 철학'의 일부이자 핵심인 '물의 끊이는 것'과 관련된 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니 해당 책을 읽고자 한다면 거쳐갈 수 밖에 없다. 파트3의 내용은 앞서 교수가 던져놓은 질문들, 과학의 발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과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들과 과학을 통해 사회발전을 기대하는 것과의 연관성의 기대를 얼만큼 두어야 하는지등에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들은 끊임없이 기존의 이론과 자신과 반대되는 이론의 비판적 사고를 멈춰서는 안되며 다양한 사고, 다원주의 적 과학으로 성장해야 된다고 말한다. 서양학문이었던 과학을 국내에서는 그 어떤 과목 못지않게 중요시여기며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무조건적으로 주입시키지면 왜 그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중요도는 심각하게 고민해오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그런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과학철학책이지만 학문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필수로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론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매번 강조하는 주입식, 사고보다는 그저 암기하려는 방식은 오히려 사고의 단절을 낳을 수 밖에 없고 과학이론이란 것 자체가 지금까지는 정론이었어도 앞으로의 실험과 검증을 통해 충분히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쿤은 과학이 물론 대단하고 사랑스럽지만 사회의 어떤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라고 했지만 분명 과학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런저런 사건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실제 그럴 수 밖에 없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과 제대로된 이론을 위한 비판이야 말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발전이란건 거창하게 과학계의 혹은 사회전체를 뒤바꿀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 자기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므로 우리가 좋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위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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