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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우주에 나를 부치다
김경 지음 / 이야기나무 / 2014년 10월
평점 :
리뷰 제목이 시건방지다는 것을 인정한다. 김경의 첫 소설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라니 이렇게나 건방진 독자가 있을까 싶지만 실은 그녀의 전작들에 모조리 별 다섯개 평점을 바치고 한 권을 제외한 작품 모두를 소장하고 있는 애독자이자 이번 작품역시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읽었다는 것을 밝힌다. 첫 소설로는 더 좋을 수 없는 이유는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그리고 소설가가 된 손미나씨나 전직이 패션지 에디터였다는 점에서는 작가 백영옥씨와도 매우 흡사한데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소재, 잘 쓸 수밖에 없는 소재를 택했기 때문이다. 소설가로서 저자가 가장 잘 알고 있는 패션잡지의 피처에디터의 삶과 그녀가 현재 고층빌딩 숲을 떠나 진짜 '숲'에서 살고 있는 이야기를 글로 옮겼으니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다.
"토니 모리슨이 그랬어. 자유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는 거라고. 당신이 더 이상 좌절한 상태가 아니거나, 어떤 사람이나 어떤 삶의 방식에 속박되지 않게 되었다면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라고." p.251
나처럼 그녀의 애독자-굳이 팬이라고 적기에는 낯간지러운-인 사람들은 SNS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종종 접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아주 묘하게 웃음질 수 밖에 없는데 그냥 소설이거니 작정하고 간략하게 책 내용을 말하자면 패션지에서 야근을 밥먹듯 살면서도 언젠가 값이 오를지 몰라 빚을 내고 사놓은 아파트 대출금과 그녀가 속해있는 그야말로 트렌드를 쫓아야 하는 잡지기자 생리상 갖춰야 할 불필요한 머스트해브 아이템등을 사느라 돈을 벌지만 늘 가난하게 살던 어느 날, 영혼이 아름다운 시골마을 화가를 만나게 되어 연애를 한다는 '로맨스 소설'을 가장한 '저항 소설'이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지는 독자의 상황과 심리상태에 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으니 그것까지는 적을 순 없을 것 같다. 확실한건 읽는 내내 '영희'가 '경'이의 연애스토리라고 착각하고 혼동하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기자들이 작가에게 제발 묻지 않았으면 싶은 질문인 '본인 이야기인가요?'를 떠올리며.
" - 근사하잖아? 빚져도 되는 유일한 대상은 사랑하는 사람뿐이라는 거? 그 빚 때문에도 서로 평생 사랑하고 의지하고 존중할 수 있다면, 그 빚은 사실 상 빛 그러니까 'Light'처럼 좋은 거고." p.193
패션지 기자인 영희가 세네카의 말을 따라 편지를 통해 화가에게 접(?)근하고 또 그 화가와 연애를 하며 혼인신고를 하기까지의 스토리는 닭살이 돋고 그야말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느껴지는 지나친 묘사덕분에 조금 힘겨웠다. 과연 내가 김경의 애독자가 아니었다면 초반에 그런 장애물을 잘 견뎌내고 그녀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로맨스인듯 로맨스아닌 로맨스소설 이지만 저항소설인 작품 전체를 다 흡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니 이점은 읽기전에 약간의 각오까진 아니지만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초반을 넘어 슬슬 현재 자신의 방식을 털어내고 점차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던 삶, 사진작가 권부문이 진짜 삶을 깨닫는 시기를 만나게 된다.
"생각보다 훨씬 혹독했죠. 속초에서의 시간이. 그런데 그 혹독한 시간을 견디며 나라는 사람의 다른 국면을 만나 거죠. 뭐. 세르반테스가 바깥세상에서 사기 치고 남의 돈 갖고 장난치다가 감옥 들어가서 정신차렸듯이...... 그리곤 감옥에서 [돈키호테]를 썼지요? 아마....." p.230
작품에서 위에 언급한 스토리로 책을 쓰겠다는 여자에게 남자는 조금 뻔하지만 그 때문에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더 수월하게 이해될 수 있을거라고 말했던 것처럼 어찌보면 16부작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닥 보고 싶지 않은 뻔하고 통속적인 몇 장면도 있지만 결말에 이르게 되면 갈등이 해소되고 제법 어록이라 할 만큼 괜찮은 말들과 인용구도 많다. 그런가 하면 결혼과 동시에 제주도 주부가 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가수 이효리, 이상순 부부의 삶과도 비교되어 외딴 곳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자연과 벗하는 삶을 꿈꾸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심지어 책속 부록처럼 등장하는 영희의 취향리스트를 훑어보면 역시 그동안 읽어왔던 저자의 에세이의 밑거름이 되고 작품에서도 등장했던 작가, 가수, 음반 등이 약간의 코멘트와 함께 수록되어 있어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공감과 반전에 의한 감동은 없지만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는 정도라면 첫 소설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두번째 소설에서는 저자가 또 얼만큼 성장해서 독자를 찾아줄지 기대감도 높아졌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