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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로다 화연일세 세트 - 전3권
곽의진 지음 / 북치는마을 / 2012년 8월
평점 :
꿈이로다 화연일세.

단 하루만에 세권을 다 읽고서도 리뷰가 한참이나 늦어진 까닭은 아직까지도 정말 맘에 들었던 작품을 잘 풀어 낼만한 글쓰기 능력이 부족해서였다. 연재의 분량을 늘리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무작정 고 박경리 선생님을 뵙고 어찌할까를 물었다던 저자 곽의진. 그때 그녀에게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설명하였거나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셨다해도 작품은 이어졌겠지만 이토록 자신에 찬 작품은 아마 나오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전 3권. 십여권이 넘는 책에 비하면 그리 긴 소설도 아니지만 단편 소설이나 한권 짜리 장편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분량이 벅찬게 맞다. 하지만 꼭 권하고 싶은 이유, 찬찬히 적어가볼까 한다.
이 책을 읽은 배경을 먼저 꺼내놓자면 아빠가 여행을 떠나 시골집에 혼자 계신 엄마를 만나러 가던날 이었다. 책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가지고 부러 3권이나 되는 책을 가지고 간 까닭은 도심한복판에서 머리도 정신도 그리고 몸도 힘든 상태가 아니라 엄마 곁에서, 엄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먹고 엄마가 누웠던 그 이불속에 들어가서 밤새 읽으면 작품의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창을 열면 온통 까만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던 별들을 보며 읽은 작품, 꿈이로다 화연일세는 책 속에서도 책 밖에서도 허련, 소치의 이야기를 가슴에서 떠나지 않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치라는 호를 받기 전의 허련은 그림을 잘그리고 몸에 기품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사람으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비범함에 여성의 마음을 흔들기 까지했다. 본처와 자식을 고향에 두고 올라와 그림에 매진하면서도 다른 이성을 품에 안은 허련이 보통때라면 예술이고 나발이고 너무 미웠을텐데 어찌된 일인지 그가 그리고 지은 서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듯 본처의 마음처럼 그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했다. 스승 추사에게 '혼'이 들어있지 않았다며 혼나는 부분에서는 몇 년전 열심히 보았던 드라마 황진이의 학춤이 떠올랐던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어디 허련의 이야기 뿐인가. 장편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각 등장인물들의 태생에과 기구한 인생 이야기는 어쩜 그리도 먹먹한지 중간 중간 책을 덮거나 아에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반대로 재미지게 쓰여진 구수한 사투리나 소소한 일상의 그 시절 풍경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초의선사도, 추사 김정희도 친근하게만 다가왔다. 읽으면서 이런 기복은 반복되었는데 기다림과 인내라는 보편적이지만 따지고 들자면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던 지고지순한 여인의 사랑과 정인을 향한 변함없는 애정은 지금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되어 움츠러 들게 했다. 하지만 또다시 수묵향이 베어오는 추사와 허련의 藝人으로서의 삶을 다룬 부분이 등장하면 다시금 내게도 이토록 꿈꾸고 미치고 질투가 나서 부들부들 몸이 떨렸던적이 있었던가 상념케 했다.
3권을 모조리 다 읽었을 때는 새벽도 아니요, 아침을 지나 가까스로 정오를 삼십여분 남겨둔 때가 되어버렸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으면서도 엄마에게 이 책 꼭 읽어보라고, 엄마도 좋아할 만한 책이라며 시골집에 두고올 때 가방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속에 무언가 가득 채워진듯한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어찌보면 실제 존재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꾸며주는 부분이 평범하다고 별다를거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엄청나게 놀라운 반전이나 언빌리버블한 인생역전 이야기 라고 보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다들 알지 않은가. 가장 맛있는 밥은 값비싸고 유기농 재료로만 만든 고급 요리도 아니요, 조미료로 맛을 낸 중독성 강한 음식도 아닌 엄마의 정성인 집밥인 것을. 엄마의 정성이 느껴지는 한끼의 밥처럼 저자 곽의진의 '혼'과 '정성'이 느껴지는 엄마의 밥상 같은 책을 찾는분이라면 분명 이 책이 맘에 쏙 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