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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초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양억관 옮김 / 이상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제로의 초점....
내 기대가 너무 컸던걸까. 아니면 없던 추리력이 갑자기 생겨나 너무 빨리 사건 발생 원인을 짐작하고 범인까지 맞춰버렸기 때문일까. 그렇다고는 해도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추리소설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흥미진진함, 즉 사건을 쫓고 쫓는 긴장감 만큼은 좋았다. 범인이 누굴것 같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죽었을 것이다를 알아가는 과정, 어쩌면 애초에 범인은 이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었어도 분명 그 과정을 밝혀가는 내용이 궁금해서 읽었을테니까 말이다. 기실 추리소설을 읽을 때 범인을 아에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점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혹은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해서를 비롯해 껄쩍지근한 사건에 개입되지 않기 위해 해야할 일, 조금의 나쁜짓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거다. 전혀 예기치 못하는 곳에서 우리는 원수는 아니었지만 원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대를 만나게 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 상황에서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면 가급적 멀리 상대가 나를 끌어들일 수 없는 위치로 알아서 사라져줘야한다. 조금의 억울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지 한달도 안돼서 남편이 실종된다. 남편의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 가족관계,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 그리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있다는 정도가 전부다. 작품에서 데이코의 경우는 자신이 남편 겐이치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부분을 자주 언급하는데 반드시 그런것도 아니다. 그녀처럼 아는이를 통한 중매가 아닌 10여년을 연애한 연인들도 속이려 하는 자에게 당할 재간은 없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지만 애초에 꼬리마저 잘라놓는 이에게는 어찌 당할 수 있으랴. 물론 겐이치의 경우는 속이려 했다기 보다 애초에 드러낼 까닭이 없었던 경우지만 내용을 다 읽고나니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일단 반전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비단 범인이 누군지를 지목하는데 있어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번역상의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대놓고 범인을 의심케 하는 문장이 많을 뿐더러 왜 죽였는지의 이유를 알고나면 그동안 그토록 긴밀하게 쫓았던 모든 사건들과 정황 구조가 아까울 정도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겐이치의 실종이 죽음과 관련있는 것인지 아님 실종된 것처럼 보이기 위한 실종인지를 두고 고민도 하며 몰입할 만큼 문장 자체가 흡입력이 있음은 거듭 강조하고 싶다.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그리고 반전이 있는 추리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소 싱거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한가지 더 조금의 잘못도 없이 떳떳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절실하게 든다. 마치 죄짓고 살아온 사람같지만 적어도 상대가 내게 칼을 들이밀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자백하는게 최선이다.